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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직박구리가 나에게 깨우쳐 준 것들
    토요일 아침이었다. 평소보다 여유롭게 시작하는 토요일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기로 했다. 날도 화창하고 기분도 좋아 아이들을 연신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섰다. 한 20분쯤 길을 걸었을까, 갑자기 제일 앞서 가던 셋째가 소리를 지르며 멈춰서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인가 싶어 셋째 옆에 가서 자세히 보니, 새 한 마리가 뒤집혀서 퍼득퍼득 거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새가 (사람이 누워 있는 모양처럼) 뒤집힌 것을 보지 못해서 아픈 새가 불쌍하기보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아이들은 아픈 채로 힘없이 쓰러진 새를 불쌍히 여기며 ‘우리가 구해야 한다’고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길 바랐다.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엄마인 나는 거리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어린 새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지렁이와 개미의 공격에 누워 있는 새의 날개가 잠깐 퍼득일 때는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 뒤로 숨기도 했다. 그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저 적당히 동물에 대한 동정심을 갖고 있다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빨리 그 자리를 뜨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30분 즈음이 흐른 후부터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여기에 계속 있어봤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해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할 수 없어. 이제 그만 산에 가자”고 재촉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완강했다. 특히 둘째 딸은 금새 눈물이라도 뚝뚝 흐를 것처럼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내게 동물병원에 전화를 하든, 어떻게 하든 이 새를 돕기 전에는 절대 산에 가지 않을 거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정말 난감했다. 특히 아이들이 “엄마는 교회도 다니면서 어떻게 이렇게 아픈 새를 보며 그냥 갈 생각을 할 수가 있냐”고 말할 때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19에 전화를 했다. 모르겠다. 왜 하필 그 때 119가 생각이 났는지, 119로 전화하면 이런 위급 상황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19에 전화해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민원 상담하는 곳인 110에 전화를 하란다. 119를 끊고 다시 110에 전화를 하니 야생동물 구조와 관련된 것은 관할 구청에 알아봐야 한단다. 그리고 덧붙여서 오늘이 토요일이라 관련 민원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할 수 있다는 상세한 설명과 함께. 다시 또 영도구청에 전화를 하니, 야생동물 긴급구조대로 연락해 드디어 담당자와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 담당자에게 누워있는 새 사진을 문자로 보내주니 어딘가에 부딪힌 ‘직박구리’라며 상자를 구해 옮긴 다음 잘 보관하고 있으면 오후에 구조하러 오겠다고 한다. 내가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말하자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이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상자를 구하는 일도, 새를 보호하는 일도 아이들이 알아서 다 했다. 나는 징그러워 차마 직박구리 근처에 가기도 싫은데 둘째는 맨손으로 그 새를 만지며 상자에 담아 집까지 모시고(?) 왔다. 아이들은 집 앞 놀이터에 직바구리를 두고 눈을 떼지 못하며 긴급구조원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약 2시간 후 긴급구조차량(야생동물-천연기념물) 이라는 마크가 붙은 차가 와서 직박구리 상태를 확인하고는 잘 치료하겠다고 데리고 갔다. 아이들은 그제야 안심하며 놀이터에서 돌아와 밥도 먹고 자기들끼리 직박구리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 작은 해프닝으로 인해 나는‘당황스런 사건을 만날 때 나의 말과 행동’을 직면하게 되었다. 아픈 새를 볼 때 아이들이 한 말은 “어떻게 해서든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라는 것이었고, 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며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기를 바랐다. 또한 아이들이 “길거리에 아파 누워있는 새를 보고 그냥 갈 수는 없다”고 말했을 때도 나는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집에 데려가서 키울 수도 없지 않냐”며 노력도 해보지 않고 포기했다. “할 수 있을 만큼 했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아이들에게 쓰지 말라고 했던 문장들을 내가 계속 쓰고 있었다. 그날 밤 혼자 많은 생각들을 했다. 이론과 실제의 간극, 알고 있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차이 등에 대해 아이들을 통해 배웠던 점들을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육아 15년 차이지만 여전히 나는 아이들을 통해 오늘도 배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겸손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양육해야 함을 다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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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7-23
  • [신앙교육 나침반]세대를 분리하는 예배의 결말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몇몇 교회들은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들을 교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은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를 분리하여 예배드리고 교육받는 시스템의 마련이다. 혁신적인 교회들은 전 연령이 함께 예배드리고 교육받던 형태에서, 부모가 예배할 때 동시에 운영되는 주일학교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부모세대들과 자녀세대들이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각 세대별로 분리된 예배와 교육은 개인의 경건에 매우 유익하다고 판단되었으며, 현재 대부분의 교회가 세대를 분리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1부 예배는 40-50대 성도들을 위한 클래식 고전예배, 2‧3부 예배는 현대인들의 취향을 조금 더 배려한 세미클래식한 분위기의 예배, 4부 예배는 20-30대 젊은 세대를 위하여 워십팀과 드라마팀을 동원하여 모던 예배로 드린다. 이러한 세대분리 예배는 회중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켜서 전통적인 형태의 예배보다 회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었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ἐκκλεσία)’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죽음, 부활에 응답하는 가운데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기 위하여 부름 받은 공동체이다. 교회는 고린도전서 12장 27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의 말씀과 같이 세대와 계층과 문화를 뛰어넘고, 언어와 인종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의 몸이 된 신비로운 연합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 안에서 이러한 다양성이 하나 되는 신비로운 연합이 경험되어져야 한다. 예배가 다양한 지체들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한 몸을 세우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분리된 예배의 결과는 참혹하다. 세대 간 신앙교류의 부재로 인해 신앙의 공동체성이 약화되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 공동체의 집합이며, 교회 신앙공동체의 붕괴는 작은 단위인 가정 신앙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세대분리예배는 가정 내 부모와 자녀의 분리를 가져오는 비극을 낳게 된 것이다. 세대가 분리되어진 예배와 교육체제 안에서는 신앙의 대 잇기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교육학자 존 웨스터호프 3세는 신앙의 대를 잇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세대를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자로 받아들이며 끌어들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참된 예배란 1세대부터 3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교류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예배는 다음 세대를 통해 잃었던 비전을 회복하고, 젊은 세대의 열정에 참여하며, 앞선 세대들의 역사적 교훈과 신앙의 유산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세대 간의 매듭이 끈끈하게 묶여지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예배,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예배, 곧 ‘세대통합예배’(Intergenerational Corporate Worship)이다. 세대를 통합하는 예배의 결말은 어떠할까? 세대통합예배의 결말은 ‘가정의 회복’이다. 가정은 예배 안에서 부모와 자녀의 연합을 경험하게 되어 점차 참된 성소로 세워져간다. 온 가족이 하나의 말씀을 담아서, 삶속에서 그 말씀으로 살아내려는 동일한 열망을 품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세대통합 예배는 경건한 가정을 세우고자 하는 교회비전의 심장이 된다. 하나님은 부모세대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자녀세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전수하도록 명령하셨다(신명기 4:9-10). 우리가 자녀세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는 최고의 방법은 예배이다. 우리의 자녀들은 세대와 문화를 분리하지 않고 통합하는 예배의 자리에서 비로소 복음의 능력을 몸소 경험하게 되며, 그러한 복음 안에서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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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1-07-23
  • [다음세대 칼럼]목사님 제가 꼭 한번 쏘겠습니다
    오늘날 입시 제도는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와 많이 달라졌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당연히 공부가 필수이지만, 봉사 활동과 같은 이른바 ‘스펙’들도 필요하다. 그런데 학교에 있다 보니 아이들이 봉사 활동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이리 저리 방법을 알아보던 중 우연히 ‘밥퍼(밥퍼나눔운동)’를 알게 되었다. 마침 서울 다일교회 담임 목사로 계신 김유현 선배의 도움으로 밥퍼 본부를 소개받고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봉사활동을 했었다. 본부장님이 우리 학생들 20명을 매주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밥퍼 봉사는 매주 토요일 오전 부산 시청 광장에서 노숙인들과 노인들에게 밥을 퍼 주는 사역이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여기에 동참하여 설거지, 식판 나르기, 어르신들 안내하기 등의 봉사를 했다. 섬김의 정신을 배우면서, 아울러 봉사 시간도 덤으로 얻는 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열심히 봉사 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매주 참석했지만, 학교 업무가 많아지고 다른 봉사 단체와도 연결되면서 매주 참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학생 중 S를 팀장으로 세워 그에게 밥퍼 봉사의 인솔을 맡기고, 나는 다른 봉사 활동을 진행했다. 그렇게 몇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 뜬금없이 봉사팀장으로 임명했던 S가 이렇게 물었다. “목사님, 여기 오신 어르신들 밥값이 얼마나 드나요?” 나 역시 모르는 사항이었기에 국장님께 물어보았다. “국장님, 이렇게 어르신들 식사 대접을 하면 하루에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 “음, 300만 원 정도 듭니다.” 국장님과 내가 대화하는 것을 듣더니 S가 끼어들었다. “목사님, 15년 안에 제가 한번 쏘겠습니다. 그리고 계속 저분들께 밥을 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 귀한 말이다. 그동안의 봉사 활동을 통해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았다. 물론 S의 말이 지켜질지는 이제 7년 후(위의 약속을 한 후 8년의 시간이 흘렀다)가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어려운 노숙인들을 위해 밥을 쏠 수도 있고, 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의 목적과 돈을 버는 목적이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S는 앞으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살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이들의 스펙을 쌓게 해 주기 위한 도구로 봉사 활동을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작은 섬김 속에서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하고 있었다. 나는 S가 대견스러웠다. “짜식, 꼭 그렇게 해라.”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걸작이다. “네, 목사님. 오천 명을 먹이겠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라는 가치가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삶의 모토가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대학 입시에서 면접관들을 대할 때마다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단다. 이는 분명 일반적인 고등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면접관들이 면접 중에 칭찬하더라는 이야기를 자주 전해 듣는다. 가치교육은 이런 것이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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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3
  • [교사의 힘]교사의 책임
    1. 교사는 약속을 지키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사역이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존중하는 일입니다. 존중하는 사람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약속을 쉽게 어기면 신뢰할수 없게 됩니다. 2. 교사는 자신의 영성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교사는 영성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위해 투자하지 않는 사람은 교사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교사가 먼저 먹어야 아이들에게 줄수 있습니다. 자신의 영성을 위해 말씀을 먹고 적용하며 간증하는 교사들이 가르칠 때 그 말씀 또한 강하게 전달되는것입니다. 바쁘다고 핑계 대며 자신의 영성 배양을 소홀히 하는 교사라면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교사를 안하는 것이 낫습니다. 3. 교사는 자기 개발의 책임이 있습니다. 유행하는 문화, 아이들의 언어, 가르치는 방법등 교사가 배워야 할 것들은 많습니다. 올해 아이들에게 적용했던 방법을 내년에 똑같이 적용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똑같이 반복하면 안됩니다. 아이들은 매우 빠른 변화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교사는 변질되면 안되지만 변화에는 민감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여 아이들의 리얼타임 문화코드에 맞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보는 TV프로, 유튜브, 영화, 광고등에 관심깊게 보면서 아이들의 문화추이를 따라 잡아야 합니다. 성경공부 도입부에 사용하면 자연히 생동감 넘치는 변화가 생깁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교사를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그의 말에 귀기울이게 됩니다. 들리는 성경공부는 아이들과 함께 그들의 문화를 알아가는 교사에게 주어집니다. 준비하고 노력하는 교사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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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의 힘
    2021-07-23
  • [교사의 힘]뜨거운 열정이 아이들을 감동시킨다.
    교사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무런 감동이 없다면 사역에는 아무런 간증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교사에게는 자신이 맡은 아이들의 영혼에 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아무나 교회를 다닐 수 있지만 아무나 교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현직 초중고등학교 교사라 해도 자신의 신앙에 대해 뜨거운 열정이 없고 주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 없으면 교회교사는 못합니다. 그만큼 교사가 중요하고 1년 동안 학생들과 사역하는 그 시간은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교사와의 관계를 통해 주님과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먼저 교사가 주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없이 아이들과 놀 수는 있지만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고 그들의 변화를 위해 수고하는 교사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사역하지 않으면 관계를 형성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사역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해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부분에서 애써야 합니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교사 사역은 사명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들이 있다면 그 교회학교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가 교사감이 된다 싶은 분들에게 애원하다시피 사역을 맡긴다면 아이들의 영적변화가 가능할지 의문스럽습니다. 교회는 다음세대에 투자해야합니다.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예산만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을 위한 사역을 펼쳐야 합니다. 교사들을 지원하는 부서도 세우고 예산도 마련하여 교육과 훈련을 하면서 교사들도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교회학교의 예산 중 교사를 위한 부분은 거의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을 확신하는 교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가능성이 큽니다. 교회학교 부흥은 교사들의 열정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사가 영입되는 것보다 목숨을 걸고 아이들을 향할 한명의 교사를 세우는 일에 힘을 쓴다면 앞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승부를 걸 수 있습니다. 교사는 어떠한 책임 속에 사역해야 할지는 다음 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전문성이 필요한 사역입니다. 교사는 어떠한 책임 속에 사역을 해야 하는지 함께 다음 회에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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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의 힘
    2021-07-09
  • [다음세대 칼럼]기독교교육-가치를 가르치다
    “목사님,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왜 필리핀 어린이들을 위해 컴패션 후원 모금을 해야 하는 거죠?” 어느 날 학생 D가 내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그런 다음 곧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어차피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거라면 우리나라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요?” 나는 D의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D야, 만약에 말이다. 120년 전, 아니 가깝게 60년 전에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의 누군가 우리를 돕지 않고 자기들 나라의 어려운 사람들만 생각했다면, 지금의 한국이 있었을까?” “아니오. 우리도 누군가의 원조를 받았으니 이만큼 된 거겠죠?” “그래. 목사님은 그렇게 생각한다. 네 말처럼 우리나라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이 많아. 그런데 말이다, 우리나라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으면 해. 특별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생활로 받아들였으면 한다는 거지. 이제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커졌단다. 5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한국이 된 거야. 목사님은 그래서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누군가 우리를 도왔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그 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나는 우리 브니엘의 아이들이 그냥 우리만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니라 좀 더 넓게, 특별히 제3세계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나는 너희들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뿐 아니라 그들을 춤추게 만들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지독한 가난으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필리핀의 어린이들에게 우리가 모은 돈이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 너희들이 하는 모금은 단지 3천 원이라는 액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망이라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겠어.” 젊은 청년시절 김동호 목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김동호 목사님의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라는 슬로건을 교육의 핵심가치로 삼고 학교에서 가르친 지 어느덧 15년이 다되어간다. 이 문구에 매료되면서 내 삶은 ‘나 중심의 삶이 아니라 타인 중심의 삶’으로 바뀌었다. 나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복 받게 하는 삶을 지향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할 바라고 생각한다. 어느덧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은 나의 목회 철학과 교육 철학이 되었다. 브니엘고등학교와 브니엘예술고등학교에 부임하여 15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목사 선생으로 살면서 줄곧 아이들에게 외쳤던 메시지는 “오천 명분을 먹어 버리는 인생이 아니라 오천 명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외침에 반응하는 제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자들이 취업하여 첫 월급을 받고 그 월급의 일부분을 컴패션을 통해, 월드비전을 통해 기부약정했다는 제자들이 소식을 전해오곤 한다. 가치교육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난 후 배웠던 삶을 실천에 이르게 하는 것. 이것이 교육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회교육에서, 그리고 미션스쿨이 해야 할 일은 뭔가를 벌이긴 보다는 일상에서 영향력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 있는 교육들이 현장에서 다 많이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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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9
  • [신앙교육 나침반]미키마우스 사역의 틈새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몇몇 혁신적인 교회는 자녀양육에 집중하는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들을 교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그들의 자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교회는 전 연령이 함께 예배드리고 교육받던 형태에서, 부모가 예배할 때 동시에 운영되는 주일학교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부모세대들은 자녀로부터 한 시간 정도 해방되어 예배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자녀세대들은 자신들의 발달수준에 맞는 주일학교 예배와 다양하고 역동적인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었다. 이후 대부분의 교회는 자녀세대를 발달연령별로 세분화하여, 사역전문성을 갖춘 전문사역자를 고용하였다. 또한 자녀세대들이 발달특성에 맞게 활동할 수 있는 맞춤형 사역공간을 조성하였다. 각 부서의 전문사역자들은 교회의 바깥 영역에서 영유아, 어린이, 대학생, 청년들을 위한 사역을 독립적으로 추진하였다. 부서들은 자체의 비전과 프로그램, 커리큘럼, 예산을 세우게 되었다. 스튜어트 커밍스 본드 박사는 이와 같이 전문성을 갖춘 교육부서의 존재에 대해 ‘귀가 하나뿐인 미키마우스’라고 표현하였으며, 독자적인 교육부서가 증가할수록 미키마우스에 귀가 하나 더 추가된다고 하였다. 각 부서의 성장을 의미하는 미키마우스의 귀의 증가는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까? 2014년 8월 5일, 팀라이트는 자신의 블로그에 ‘교회 밖에 있는 주일학교 아이들(Sunday School Our Kids Out of Church)’라는 제목의 글 마지막 부분에 아주 놀라운 사실을 보고하였다. ‘잃어버린 세대를 되찾을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 듯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역사상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세대를 길러냈다.’ 부모와 자녀세대의 분리된 예배와 수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된 사실 사이에 다른 이유도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둘 사이에 큰 연관성이 있음 또한 인정해야 한다. 각 부서의 독자성이 커질수록 틈새도 커질 수밖에 없다. 어린이 부서의 다양하고 재미있는 활동에 익숙한 아동은 청소년 부서에서 드리는 예배가 힘들다. 또한 청소년 부서에서 자유롭게 예배드렸던 청소년이 어렵고 난해한 설교와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부서 사이의 틈새가 너무 커져 버린 것이다. 잃어버린 세대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마련한 미키마우스의 ‘귀’가 오히려 가장 많은 영혼을 잃어버리는 곳이 되었다. 그렇다면 교회는 지금까지 구축한 교육부서의 전문성과 독자성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교회는 여전히 각 연령대에 적합한 사역을 가치 있게 진행해야 한다. 단, 이것만은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각 부서사역은 반드시 교회공동체라는 큰 원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교회 밖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원이 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각 부서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모든 부서들이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을까? 교회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가정 공동체이다. 따라서 모든 부서가 교회와 한 팀이 되어 동역하려면, 자녀의 일주일의 시간에 최고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부모와 동역하면 된다. 부모를 적극적으로 사역에 동참시켜, 부모로 하여금 자녀들에게 예배의 핵심 메시지를 일상 속에서 전하는 교사가 되게 한다면 틈새는 좁혀질 것이다. 각각의 부서가 가정공동체와 손을 맞잡을 때, 부서간 틈새는 가정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좁혀지게 될 것이다. 결국, 자녀세대들은 주일 예배의 한 시간과 일상의 167시간의 틈새가 없는 경건한 일상을 날마다 경험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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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1-07-09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엄마가 너희의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 줄게!”
    “엄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코로나로 인해 띄엄띄엄 등교하는 초등학교 4학년 딸이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와서는 친구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내 친구가 그 일 때문에 엄마한테 엄청 혼나고 벌도 섰대. 진짜 슬펐을 것 같아. 내 친구 너무 불쌍해. 그 엄마 너무 했어” “친구한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니 은별이 친구도 이런저런 부분에서는 잘못한 것 같은데, 그 엄마도 딸이 그렇게 행동해서 기분이 나빴을 것 같아”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의견도 말하려고 시작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는 이미 100% 자신의 말에 공감하지 않은 나를 향해 불신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도 “그냥 잠잠히 듣기만 할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올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부분적 공감’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깨달은 나의 한계 중 하나는 “나는 누군가를 온전히 100%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 상대가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나, 내가 낳은 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의 가족은 내게 ‘온전한 공감’ 받기를 원하며 감정을 쏟아 대화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온전히 공감해주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부분적 공감’만 하며 대화의 종착지로 가면 갈수록 내 이야기만 하는 어리석음을 수없이 많이 저질렀다. 특히,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정서적 공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기에 공감하는 척, 마음을 이해하는 척, 100% 경청하는 척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내 것을 아이들에게 주입’ 시켜야한다는 속셈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람의 내면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정서적 지지’이다. 내 편이 되어주는 단 한 사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나의 정서를 100% 공감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단 한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특히 내면이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가장 가까운 엄마, 아빠로부터 받는 절대적 공감과 수용이 인생을 건강하게 펼쳐갈 평생의 자양분이 된다. 그런데, 난 사실 공감과 수용이 쉽지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는 말처럼 그들의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주고 싶은데, 실제 삶 속에서는 나의 정서를 읽고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아이들의 마음을 100%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오늘부터 연습하기로 했다. 먼저, 아이가 나를 부를 때는 하는 일을 멈추고 아이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싱크대에 쌓여있는 그릇들, 건조기 속에 들어있는 빨래들, 거실 여기 저기 널려 있는 책들 등 모두 나의 손을 거쳐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빨리 집안일을 끝내고 아이들 저녁 준비를 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면 아이들이 “엄마”라고 불러도 그 일을 하면서 대충 “어, 무슨 일이니?”라고 흘려보낼 때가 많았다. 아이의 요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 훈련부터 시작해보았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아이가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즉각 반응하기. 물론 쉽지 않았다. 거품이 잔뜩 묻은 고무장갑을 쉴 새 없이 빼다 끼다를 반복했으며 두부 한 모를 온전히 다 써는데 20분이 걸리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절충점을 찾아 처음보다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먼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일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다. 또한,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하루 10분 정도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이들이 많아서 엄마와의 둘만의 대화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실천하지 못했지만 지금부터 한 걸음이라도 내딛어 보는 것이다. 사실, 나도 엄마로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어서 아이들의 온전한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 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아이들에게 버팀목이 되는 존재,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 편이라는 정체성을 내가 먼저 인식하고 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가치를 마음 속에 담고 노력할 때 아이들에게 나의 진심이 조금이나마 전달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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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7-09
  • [교사의 힘]평생 잊을 수 없는 교사가 되라
    주일을 기대하며 아이들을 만나길 설레는 토요일 저녁을 보내고 계십니까?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만하는 것이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알고 싶고 함께 있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사랑을 받는 아이들은 분명 그 교사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주일 밤마다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하고 내일 만날 아이들을 떠올리며 답답한 마음을 갖는 교사는 똑같이 아이들도 만나고 싶지 않는 교사일겁니다. 그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주중에도 만남이나 카톡으로 소통하는 교사를 아이들은 기억합니다. 그 기억은 평생 갑니다. 물론 매주 공부한 것을 말하라 하면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사에 대해 말하라 하면 따뜻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관계를 통해서 마음을 엽니다. 아이들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습니다. 마음은 진정한 관계를 통해서만 열려집니다. 교회는 수없이 외쳐지는 표어나 말들이 많습니다. 다음세대는 표어나 말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삶과 터치로 변화됩니다.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면 시간이 지나고 지속적인 그 선생님의 삶을 통하여 아이들은 마음이 열립니다. 그 열린 마음으로 듣는 복음이 또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여 아이들과 만나야 합니다. 1대1이나 1대2까지는 관계형성에 도움이 되지만 3명이상 만나면 이미 소그룹이 형성됩니다. 아이들과 만남을 조금 어색하셔도 1대1이나 1대2안에서 하셔요. 그리고 무엇인가를 전해주거나 가르치지 마시고 그저 간식함께 드시고 시간을 보내시면 됩니다. 코로나 시대에는 줌(Zoom)으로 만나시고 치킨을 집으로 쏘셔도 좋습니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줌으로 만나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합니다. 성경공부시간에 가르치는 성경은 진리입니다. 그 말씀 외에 사람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어떤 교사인가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교사, 아이들과 시간과 물질을 들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교사. 바로 그 교사가 아이들을 살립니다. 학생들이 좋아한다고 다 좋은 교사는 아닙니다. 말씀 준비 안 하고 아이들과 항상 놀기만 하는 교사는 직무유기입니다. 그러나 주중에 만남이나 카톡으로 관심과 사랑을 느낀 아이들에게 교사의 말씀은 들리는 말씀이 됩니다. 들어야 하는 말씀이 아니라 들리는 말씀은 효과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입니다.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는 교사가 있는 한 아직 한국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아직도 아이들은 그 교사의 헌신을 통해 변화하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다음세대는 진심으로 삶을 나누는 교사 한사람을 통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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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5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몸으로 경험하며 가슴으로 느끼는 교육을 꿈꾸며⋯
    <땀을 뻘뻘 흘리고 산을 오른 후 시원한 물 한 잔 벌컥벌컥 마시기, 해가 질 무렵 모래를 밟으며 시원한 바닷가의 공기 느끼기,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엄마를 발견한 후 와락 안기기, 보조바퀴를 뗀 후 신나게 두 발 자전거로 달리기> 요즘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육아 프로그램들을 보면 두 가지를 느낀다. 하나는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구나!’이고, 또 하나는 ‘사람을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돈이 전부가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할텐데…’라는 생각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화려하게 세팅된 키즈카페에서 노는 아이들이 바닷가 모래를 만질 때 느껴지는 오묘한 촉감과 약간의 지저분함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이가 필요를 느끼기도 전에 부모가 알아서 제공하면 아이는 무엇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까? 세상은 물질만 있으며 뭐든지 다 이룰 수 있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줄기차게 말하지만, 사실 인간이 인간되는 가장 기본적인, 예를 들어 사랑, 자존감, 배려, 충만과 같은 마음의 자양분들은 물질 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그 다른 요소 중 하나는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경험이다. 5년 전, 1년 동안 제주도에 살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막내가 100일 정도 될 무렵이었다(막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외출이 가능한 한 달 후부터 여기저기 함께 다녔다). 그 때 나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기’였다. 내가 본 제주도는 발을 딛는 모든 곳이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만 가면 환상적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고, 또 차를 타고 10분 정도 더 가면 저기 오름직한 동산이 반기고 있었다. 절물자연휴양림같은 곳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매일 매일 다른 매력을 뿜어내기에 언제든 가도 새로웠다. 집 안에서 장난감을 갖고는 한 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노는 것을 지겨워하는 아이들이 밖에 풀어 놓으면 한 두시간은 물론이고 한 나절 내도록 놀고 또 노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밖’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밖에 나갔을 때 마음껏 상상하며 어디든 뛸 수 있는 자연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싸한 자연이 아니라도 괜찮았다.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고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만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최적의 교육 장소였다. 최근에 오랜만에 바닷가를 찾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아직 해가 떠 있는 것을 보며 “오랜만에 아이들과 바닷가에 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자”며 온 가족이 갑자기 바다로 간 것이다. 바닷가에 도착 후 처음에는 그 주변을 산책했다. 새롭게 꾸민 구름다리(?) 같은 것도 건너고, 돌도 몇 개 주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모래 위를 걷고 싶다고 해 양말을 벗고 본격적으로 바다 곁에서 맴도는 순간 아이들의 숨은 뜻이 드러났다. “엄마, 바닷물에 발만 살짝 담그면 안될까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바닷가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는 것은 그 순간 이미 아이들이 바닷물에서 놀고 있으며 결국 옷이 다 젖을 것을 경험적으로 예상해야 한다. ‘그래, 너희들이 여기까지 왔으면서 어찌 그 말이 나오지 않나 싶었다’를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아직 날이 추우니 10분 정도 정말 발만 담그자”라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받아내고 아이들을 물로 보냈다. “오빠, 진짜 시원하지. 우리 안으로 더 들어가자”부터 시작해 “우리 물이 오면 4명이 동시에 뛰는 거 하자”까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난치고 웃고 떠들며 달이 저 멀리 보이지 않을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그렇게 놀았다. “엄마,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오늘처럼 매일 매일 밖에 나가서 놀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한결같이 밖에서 또 놀고 싶다며 다음을 기약한다. 그리고 그 날 아이들의 일기장에는 “너무 재미있었다” “또 가고 싶다” “바다가 너무 좋다” 등 기분 좋은 단어만 가득 써 놓았다.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밖에서 놀기’. 나는 앞으로도 상황이 되는 한 이 교육 방법을 추구하며 몸으로 경험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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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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