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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다음세대 기사

  • [다음세대칼럼] 참된 영적 스승
    필자는 5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중3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내가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 수많은 스승들이 계셨습니다. 우리가 스승이라고 말할 때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의 선생님을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들이 스승이십니다. 성도들의 존경과 신임으로 임직을 한 중직자들도 스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학교에서 가르쳐 주시는 교사들도 스승이십니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양육해 주시던 부모님께서도 엄격하게 스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필자에게는 수많은 스승들이 계셔서 제가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가르치는 스승의 입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스승들이 기독교계에 많을 때 교회 안에서 다음세대가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영적 스승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가 무엇일까요? 먼저,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18절에서 ‘아들 디모데야’라고 편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2절에서도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다음세대를 바라보는 스승의 태도는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무리 좋은 지식을 전하고, 좋은 환경을 제공해도 사랑이 없는 교육은 헛수고입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가 있습니다. 많은 스승들이 있습니다.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있지만 현실은 참 어둡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5절 말씀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않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다’라고 기록합니다. 사도 바울은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자녀를 낳는 심정으로 제자를 양육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필자가 만나는 청소년들은 위기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이 청소년들을 지도하다보면 지독히 말을 듣지 않는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열매를 거두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좋은 스승은 바로 아버지의 심정으로 양육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적 스승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양육하는 스승입니다. 두 번째, 아버지의 마음으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17절은 하나님 말씀만이 모든 사람을 온전하게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교육의 교재는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온전하게 만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생활에서는 다음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에 너무 소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모두 좋은 대학 진학과 연봉이 높은 곳에 취업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학교의 성적보다는 생명의 말씀이 더 소중함을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단순한 대학 진학보다 믿음의 비전을 키우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중요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임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본을 보이는 부모, 교사,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세대에게 말씀을 읽는 모습, 묵상하는 모습,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순간순간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영적 스승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참 스승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참 제자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참 스승, 하나님이 찾으시는 영적 스승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다음세대가 세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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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4
  • [신앙교육나침반] 코로나 키즈와 함께 하는 추수감사절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걸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뒤바뀐 세상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거 같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다음세대는 우리의 생각 그 이상으로, 코로나로 인해 잃어버린 것이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빠르게 흡수하여 성장하는 다음세대들에게, 코로나 펜데믹은 그들에게 큰 구멍을 남겼습니다. 펜데믹으로 인한 깊은 두려움과 불안감은 이 아이들의 몸과 영혼에 고스란히 흡수되어, 자해와 자살과 같은 극단적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우울감과 무기력 같이 침습력 강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다음세대는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프게 하고,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가학적인 것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다음세대가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한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아이들의 작은 한숨은 불안과 두려움을 삼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내뱉는 소심한 외침, ‘힘들어요. 도와주세요!’입니다. 지금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한 것, ‘환경을 초월한 감사와 찬송’입니다. 올해 추수감사절은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교회의 다음 세대에게 전혀 감흥이 없는 절기일지 모르겠습니다. ‘이 힘들고 두려운 터널 속에서 무엇을 감사하라는 거지?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지?’ 교회는 추수감사절 예배와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 아이들에게 분명히 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터널 속에서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이유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 평소보다 더욱 강하게 자신의 양을 붙잡고 지키시는 목자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란다.” 교회의 모든 세대가 한 자리에 모여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와 놀이시간을 마련해보십시오. 불안하여 떠는 다음세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감사의 능력을 받아서 힘차게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온 세대가 가을 열매를 이용해서 즐겁게 감사할 수 있는 감사의 송축 놀이 세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❶ 앗싸! 감사!: 밤이나 도토리를 높이 던지면서 “앗싸!”라고 외치고, 종이컵으로 “감사!”라고 말하며 받습니다. 혼자 받기 또는 두 사람이 주고받기를 할 수 있습니다. ❷ 감사의 파워: 불평을 상징하는 종이컵을 세웁니다. 이때 종이컵 안쪽에 1-10까지 점수를 적습니다. 감사의 가을열매를 던져서 넘어뜨리거나, 테이블 위에서 진행할 경우 손가락으로 열매를 튕겨서 불평을 테이블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❸ 송축해: 빈 계란박스 안에 감사이름, 감사장소, 감사물건, 감사추억, 감사음식과 같은 주제를 적습니다. 박스 안에 작은 도토리나 콩을 넣고 흔든 후에, 뚜껑을 열어서 감사열매가 들어간 곳의 내용을 보고 감사를 고백해봅니다. 올해 추수감사절에는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다음세대와 함께, 감사와 송축을 통한 치료와 회복을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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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코로나 이후 교회학교 세우기
    코로나19 이후로 교회에서 다음세대가 모이기 힘든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사역은 멈출 수 없습니다. 도리어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다음세대 부서에 관심이 있고 지원할 마음이 있음을 더욱 보여주는 것이 교인들의 교회 사역 참여에도 도움이 되고 교회학교의 부흥과 성장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민교회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부서별, 연령대별로 다양한 전도방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중 소개하고 싶은 대표적인 부서별 맞춤 프로그램은 유치부의 ‘소풍으로 마음 열기’와 어린이부의 ‘체험형 교구로 참여시키기’, 그리고 청소년부의 ‘블레싱 택시’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① 유치부 ‘소풍’으로 마음 열기 코로나19 이후 가장 출석에 타격을 입은 부서는 가장 어린 연령대의 유아부와 유치부입니다. 젊은 세대의 부모들이 자신의 어린 자녀들이 질병에 감염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실내에서의 예배나 모임에 참석하기를 꺼리는 실정입니다. 또한 유아부나 유치부는 연령대의 특성상 주일 모임에 식사나 간식이 빠질 수 없는데 식사나 간식을 먹을 때는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젊은 부모들은 이런 시간에 혹시 바이러스가 전파되지는 않을까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교회 주변에 있는 동물원이나 식물원, 놀이동산이나 공원 등의 외부에 장소를 정해서 모여 자연 속에서 예배드리고 교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야외 소풍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좁은 가정에서만 있던 부모들로서는 외부로 나와서 자녀들과 함께 바람을 쐴 수 있는 기회도 되고 아이들은 평소에 보고 싶었던 친구들이나 선생님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들에게 매우 반응이 좋습니다. 그리고 소풍으로 한번 마음이 열린 부모와 아이들은 연이어 주일 예배에도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집니다. 또한 이렇게 소풍을 갈 때는 교사나 부모들만 동행하기보다 교회 안에 유아부나 유치부를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기도 그룹이나 후원그룹을 만들어서 함께 동행해도 더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고 실질적인 지원이나 후원을 이끌어 낼 수도 있습니다. 실내에서 모이기 어렵다면 실외로 나가 보세요. 마음도 열리고 전도의 폭도 넓어집니다. ② 어린이부 ‘체험형 교구’로 참여시키기 어린이부는 아이들이 직접 참여해서 성취하는 것을 즐기는 연령대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왔을 때 수동적으로 말씀을 듣고 교육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이럴 때 교회 안에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교구들이 준비되어 있다면 교회 오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자기 친구들에게도 기쁘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성민교회 어린이부는 농구게임과 축구게임, 미니 포켓볼을 즐길 수 있는 어린이용 기구들이 준비되어 있어서 어린이들이 언제든 교회에 오면 체육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처음 교회에 전도되어 온 어린이들은 낯선 예배나 성경공부 보다는 익숙한 체육활동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자연스럽게 참여합니다. 오히려 처음 나온 어린이들이 이런 게임이나 활동에 기존 어린이들보다 더욱 재능을 보이면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통해서 새로 나온 어린이들이 교회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 정착율도 자연히 높아집니다. 그리고 부서의 책상도 어린이들이 마음껏 창의적으로 퍼즐처럼 맞추면서 모양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어린이 전용 책상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공부하며 놀고, 놀면서 공부하는 어린이 맞춤형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이 처음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호기심을 키우고 흥미를 일으켜 교회에 오는 것이 날마다 즐거워지고 있습니다. ② 청소년부 ‘블레싱 택시’로 관계 형성하기 성민교회 청소년부는 교역자와 교사가 학생이 있는 학교나 학원으로 찾아가서 소수로 만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청소년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축복하고 복음을 전하는 ‘블레싱 택시’ 프로그램을 시행했는데 이러한 시도는 교사와 학생, 교역자와 학생간에 유대감을 높이는 데 크게 일조하였습니다. ‘블레싱 택시’는 청소년들이 평소에 학교와 학원 일정 때문에 밖에서 시간을 내서 만날 여유가 없다는 현실에서 착안한 프로그램입니다. 담당 교역자와 담임 교사가 교회 승합차량에 학생들이 이동시간에 편안함과 질 좋은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고급 시트와 편안한 슬리퍼, 다양한 간식 등을 준비하고 학생의 동선을 따라 학교에서 학원, 또는 학원에서 가정으로 이동하면서 짧은 시간이나마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격려하고 심방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블레싱 택시’를 통해서 믿지 않는 친구에게 자연스럽게 교회의 교역자나 교사를 소개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만남의 시작은 주일예배로 이어져서 많은 새 신자들이 교회를 찾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시간에 담당 교역자는 청소년들에게 ‘요즘 나의 고민 1순위는?’, ‘나에게 있어서 성민 청소년부란?’ 등의 지정 질문을 재미있게 던지면서 부담 없이 대화를 시도했고 청소년들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청소년들이 요즘 어떤 일로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위기도 형성되었으며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우리 청소년부의 정체성과 나아갈 바도 알 수 있는 바람직한 의견 청취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엔데믹 이후 준비된 교회학교와 그렇지 않은 교회학교는 천양지차의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준비가 잘 된 교회학교는 다시 회복의 움직임이 시작될 것이고 준비되지 않은 교회학교는 침체가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회복되기 위한 전도의 방식을 고민하면서 연령대별, 부서별로 학습 대상의 특징을 이해하고 부모들과 학생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실질적인 준비와 투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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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2-10-14
  • [다음세대칼럼] 봄과 함께 찾아온 트럭
    몇 년 전 트럭이 하나 생겼다. 이 트럭에는 가슴 아픈 스토리가 가득 실려 있다. 나의 오랜 친구가 외국에서 담임목회를 하다가 이민목회의 한계를 느끼고 대책도 없이 급거 귀국하였다. 곧 바로 다음 목회의 길이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귀국했지만 5년 넘는 세월이 지나도록 청빙하는 교회가 없었다. 두 아들과 함께 생계는 이어가야하기에 친구 아내가 친정 오빠의 도움을 받아 푸드트럭을 마련하여 길거리로 나섰다. 개나리가 꽃피운 따뜻한 봄날 노랑색을 예쁘게 칠한 자그마한 트럭은 그 사모님의 환한 웃음과 함께 골목길에 피어났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잠시 모여 웃음꽃도 피우면서 직접 만든 특허받은 김밥과 커피, 스낵으로 골목의 생동감을 살려갔다. 그해 겨울 보물상자의 청소년상담교육센터의 센터장님이 갑자스런 사정으로 사임하면서 이 사모님이 새로운 센터장으로 그 공백을 채워주셨다. 평소에도 청소년들에게 마음을 많이 두고 있었기에 푸드트럭을 운영하면서도 상담과 관련된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아이들을 섬길 기회를 기다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물상자 상담센터는 여러 가지 비행이나 범죄로 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일명 문제아, 비행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기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분은 너무도 밝게 아이들을 품고 챙기며 엄마 같은 역할을 너무나 잘해 주었다. 당연히 아이들도 이 분을 잘 따랐고 상담센터 교육 분위기도 눈에 띄게 밝아졌다. 상담센터에도 아이들의 환한 웃음꽃으로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그러던 중 갑작스런 남편의 담임목사 청빙으로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센터장을 그만두었지만 오랜 동안 기다린 그 길을 축복하며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했다. 부임해가는 교회가 문제가 있다고 들어서 내심 걱정하였지만 너무 행복하게 목회하면서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져가고 성도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낸다는 봄소식에 위안이 되었다. 부임한지 5개월이 흘렀을까? 친구 목사가 늦은 밤 갑자기 연락이 왔다. 지금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인데 자신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아내가 위독하여 긴급 수술한다며 기도부탁을 해온 것이다. 너무 놀라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기도 전에 그 사모님이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셨다는 가슴 아픈 연락을 받았다. 생명이 소생하는 봄날. 그날도 노란 개나리 꽃이 만발한 화창한 봄날 사모님은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1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또 다시 봄은 우리 곁을 찾아왔다. 너무 사랑했던 동생의 1주기를 보낸 사모님의 오빠가 연락이 왔다. “임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 여동생 소천 1주기 추모예배를 다녀왔습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동생이 우리 곁을 떠나 천국으로 간지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네요~ 혹시 저의 연락이 목사님께 부담을 드릴꺼 같아 노크하기가 힘듭니다만 동생이 운명하던 스넥카를 인수 금액에 연연하지 마시고 인수하셔서 필요하신 곳에 운영을 먼저 해 보시는 것이 어떠실까요? 이번 추모식을 다녀와서 동생이 더 생각이 나서 스낵카도 빨리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목사님께 조용히 노크해 봅니다~” 나는 생전 사모님의 마음처럼 다음 세대 특히 청소년을 위해 의미있게 사용되면 좋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푸드트럭을 인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푸드트럭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후배 청소년사역자들과 함께 생각을 모으기로 하고 모임을 가졌다. 각 교회나 선교단체마다 푸드트럭을 구입해서 다음세대를 효과적으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 번씩 해봤겠지만 한 교회나 단체가 푸드트럭을 운영하기에는 운영비와 효율성에 있어서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임을 통해 사연을 가득 담은 이 푸드트럭을 어떤 교회든지 어떤 선교단체이든지 다음세대를 만난다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쉐어푸드트럭이름을 ‘봄봄’으로 정하고 함께 운영하기로 결정을 했다. 각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길거리에서 교회 안과 밖의 다음세대들을 만나서 먹이고 상담해줄 수 있는 일을 위해 이 푸드트럭이 마음껏 사용될 수 있길 기도한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고 꽃을 닮았던 그분의 마음을 담은 노랑 푸드트럭은 어디든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켜 꽃 피워나가길 기대한다. 봄날 꽃 향기를 날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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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4
  • [신앙교육나침반] 레고 LEGO!
    구글, 나이키, 페라리, 디즈니 등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는 브랜드는 바로 ‘레고’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연령층에게 사랑받는 장난감 레고(LEGO)는 덴마크어로 '잘 논다'라는 뜻을 가진 'leg godt(틀:IPA-da)'를 줄인 말입니다. 잘 노는 것이 가치 있을까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떠올려 봐도,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달리 매일 잘 노는 베짱이는 한심하게 보일 뿐입니다. 정말 놀이는 무가치한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세대들에게 잘 노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놀이는 언어이기 때문이죠. 아이들은 놀이로 말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놀이를 통해서 소통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눈과 눈을 마주보며, 온 몸을 부대끼며 놀이를 하는 것은 자녀에게는 밥을 먹는 것과 같이 중요한 일입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몸이 아프게 되듯, 놀이밥을 먹지 않으면 마음에 병이 옵니다. 아이가 ‘나랑 놀아줘’라고 말하는 것은 ‘내 얘기 좀 들어봐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심심하니까 놀아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청소년이 된 자녀가 ‘제가 고민이 생겼으니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어릴 때부터 자녀의 놀이친구가 되어서 아이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고 소통해준다면, 아이는 인생을 살면서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당연히 부모를 찾게 됩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인생을 살다가 어떤 어려운 문제를 만나더라도 어차피 부모는 신경도 안 쓸 것이라는 불신으로 부모와 소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부모들은 자녀와 ‘잘 노는 것’보다 ‘잘 가르치는 것’을 우위에 둡니다. 한글을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치고, 운동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고, 성품을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학교에 가서 가르침을 받고, 학원에 가서 가르침을 받고, 교회에 가서 가르침을 받고, 집에서도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러다보니, 소통할 시간은 없지요. 중요한 것을 배워야하기 때문에 놀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소통하는 시간을 모든 업무 중 가장 중요하지 않는 최하위 항목에 넣어두고, 시간이 생기면 하고, 시간이 없으면 하지 않는 일로 여깁니다. “놀이는 할 일이 없는 부모나 하는 일이에요. 너무 바빠서 놀이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소통의 시간을 단 10분도 마련하지 못한 채로 하루를 보냅니다. 어릴 때부터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어떤 결과가 기다릴까요? ‘단절’입니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부모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게 됩니다. 학교와 교회,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으로부터 고립과 단절을 스스로 선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강조하셨습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 하나님은 규율과 관습, 심지어 진리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밖에서 전달된다면 공허한 종교일 뿐임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무나 명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너희는 나를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너희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사랑의 관계 맺으며 소통하는 것을 다른 모든 것보다 우위에 두셨습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필사적으로 다음세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것은 관계맺음을 통하여 전달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관계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없습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자녀와 관계를 맺으면서 소통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기독 가정의 부모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기르시는 방법을 따라서, 자녀들에게 반드시 사랑의 관계 테두리 안에서 신앙을 전수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의 중요한 사명을 찾게 됩니다. 교회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기독 가정에게 주일만이라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온 몸과 마음을 합하여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지치고 아픈 몸과 마음을 활짝 열어 보이고, 부모들은 자녀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타락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켜낼 강력한 힘을 얻게 됩니다. 향기나무는 이러한 가치를 알기에, 오늘도 어떻게 하면 이 땅의 기독 가정이 건강하고 만족스럽게 잘 놀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성경놀이를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가정의 소통을 회복시키는 장을 마련하기 원한다면 적극적으로 도움 드리겠습니다(문의| 향기나무교육개발원 031-30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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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4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교사들이여,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2)”
    교회학교 선생님 여러분! 남이 나를 몰라 준다고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남이 내가 무슨 수고를 하는지 모른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서운해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세우셨고,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교회의 역사를 이루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부르실 때 주님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이게 동행이잖아요? 동행하는 게 먼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동역하는 걸 중요하게 보지만 먼저는 동행입니다. 동행한다고 그러면 우리는 사실 부담스럽잖아요. “주님과 동행?” 그러면 왠지 힘들고 어렵고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동행’이라고 하는 게 어떻게 하는 것이죠? 함께 손을 잡고 걷는 것이잖아요? 보폭을 맞추고 방향을 맞춰서 속도를 맞춰 걷는 건데요. 같이 동행을 할 때 누가 더 힘들까요? 내가 힘들까요, 하나님이 힘들까요? 여러분, 옆에 꼬마가 있는데 옆에 꼬마랑 저랑 둘이 걷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제가 힘들어요, 꼬마가 힘들어요? 제가 힘들죠. 꼬마는 힘들 것이 없죠. 왜? 꼬마는 막 걸으면 되잖아요. 아무 데나 막 걸으면 제가 맞추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가 힘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훨씬 힘들어요. 우리가 워낙 우리 맘대로 가니까 “야! 너 그렇게 갈 거야? 진짜?” 그리고는 같이 가주시고 “야! 너 그렇게밖에 못해?” 그런데 같이 가주시고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동행이 무엇인가?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는 매주 최고의 예배를 못 드리잖아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보세요. 나의 예배가 매번 하나님 수준에 맞는 예배입니까?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수준으로 내려와 주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세요. 그것도 매주요. 여러분, 오늘도 예배 가운데 은혜 많이 받으셨죠? 그거 내가 한 거 아니잖아요? 그거 하나님이 나와 함께 동행해 주셨어요. 내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은혜를 주셨어요. 얼마나 감사해요? 여러분,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는 데 그 예배 가운데서 그다음 힘을 얻으면 뭘로 가요? 바로 동역으로 갑니다. 마가복음 3:14~15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그랬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도하는 힘을 주십니다. 교사 열심히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아이를 잘 먹이고 양육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부모님이 감동을 하십니다. 그리고 안 믿는 부모가 우리 교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아이가 나도 아이를 잘 건사 못하는데 선생님이 너무 안 잘 챙겨요. 매일 매일 기도해 주시고, 매주 전화 오고, 아이 잘 도착했다고, 잘 먹고 있다고, 잘 놀고 있다고, 또 잘 데려다주고, 그러니까 선생님의 사랑에 부모들이 감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온 새 신자가 있는데 아이들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데 선생님이 와서는 “안녕하세요. 그 아이는 저희 부서로 데려가요.” 예배를 마음껏 드리고 났더니 그 아이가 “엄마! 저 오늘 너무 예배 잘 드렸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그러면은 “야! 우리 교회 또 와야지!” 이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교사는 교사 열심히 하면 전도하는 겁니다. 교사만 열심히 해도 전도가 된다니까요? 여러분, 찬양대원은 찬양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는 설교로 전도하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리에서 예배하므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사들에게 이야기를 해요. 절대 나가서 전도할 생각하지 말고 애들 잘 가리켜라! 그럼 그게 전도다! 애들이 우리 교회 행복하면 가만히 있겠어요? 가만히 있지 않아요. 계속 소문을 내요. 아파트에 소문내고, 학원에 소문내고, “우리 선생님 짱이야! 우리 교회 짱이야!” 그러면 몰려오게 되어 있다니까요! 부모를 감동시키면 그 부모까지 다 얻을 수 있어요.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뭐라고 하세요?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신답니다. 여러분, 교사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 귀신을 내쫓는 권능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우리는 귀신이라고 말하면 착각을 하는데 너무 헐리웃 영화를 많이 봤어요. 너무 전설의 고향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귀신’ 그러면 어머나 ‘무서운 귀신’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귀신은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 귀신은 어떤 존재일까요? 성경에 쓰여있기를 마태복음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오늘의 말씀을 마태가 적을 때 그냥 귀신이 아니라 더러운 귀신이라고 적습니다. 성경적으로 귀신의 개념은 무서운 귀신이 아닙니다. 더러운 귀신입니다. 왜 더럽습니까? 하나님을 알되 경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해요? 당장 쫓아내야 하는 게 맞는 것입니다. 또한 귀신만이 아니라 모든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로서의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은 지금 정말 더러운 귀신에 빠져 있어요. 세상을 지배하는 정복의 영, 경쟁의 영, 남을 짓밟고 올라가서라도 내가 잘되어야 한다는 세상 물질의 영, 개인주의 영, 이기주의 영에 지금 아이들이 가득해서 아이들을 지금 괴롭히고 끌어내려고 있어요. 이러한 때에 모든 더러운 것과 모든 악한 것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권능이 내 손에 있음을 믿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군사, 하나님의 화해의 정병으로 우리가 쓰임 받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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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2-09-23
  • [다음세대칼럼] 또 하나의 기적- 둥지극단 이야기
    “로미오! 당신의 이름은 왜 로미오인가요?” “어머? 우리 처음 본 사이에요. 제가 그렇게 쉬운 여자로 보이나요?” “난 엄마 딸 자격 없는 년이다. 엄마 왜이래 몸이? 나 때문에 이렇게 된거가? 엄마를 버리고, 엄마 아프게 한 이 못된 년을 속 시원해질 때까지 때리라! 왜 아무 말도 안하는건데 차라리 때리고 욕을 하란 말이다” “점순아 잊지않았지? 넌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딸 점순이다” “엄마~~~~~” 2017년도부터 시작된 둥지극단 “엄마의 바다”는 이번에 여섯 번째로 9월 2일과 3일 이틀간 부산진구청소년센터에서 3번의 공연을 하였습니다. 각종 비행과 범죄로 소년재판을 받고 둥지청소년회복센터에서 생활 중인 아이들과 시작한 ‘둥지극단’이라는 자체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연극의 스토리가 가족과 갈등, 가출 등 아이들의 살아온 삶의 상황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엄마의 바다 2022”에도 3번의 공연에 100여명의 분들이 오셔서 아이들의 작은 몸짓에 큰 격려를 주셨습니다. 둥지에서 연극공연을 하게 된 계기는 6년 전 평소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공연의 관람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던 극단 디아코노스 김태연 단장이 둥지 아이들과 1주일에 1회 만남으로 연극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출발이었습니다. 이후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고 연기감각도 좋아 연극공연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이 이번에 여섯 번째 공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외된 채 자기 표현을 서툴러하고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무대에서 숨겨진 재능과 끼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 둥지 아이들이 공연을 위해 연습하면서 ‘대사를 외울 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다 사라진 채 점점 더 진지하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우리끼리 하려던 공연이 아이들이 정말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더 제대로 된 무대를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둥지극단이라 이름을 정하고,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매년 연극공연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 비해 아이들의 표정도 밝아지고 함께 생활하는 분위기도 좋아지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나 작은 약속을 지키는 모습에서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이탈하거나 무단가출하는 일이 하나도 없이 점점 더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아이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처음에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다들 별 흥미도 없었고 귀찮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다툼도 잦았고 우리들 사이에 갈등도 많았습니다. 다투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면서 우리들은 더욱 뜻 깊은 이야기와 무대를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참 많은 변화를 하였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습관처럼 대사를 외우며 웃고 떠들었고,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별거 아닌 변화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로선 엄청나게 큰 변화를 한 것입니다. 저희들은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아마, 이 공연이 끝나고 나면 더 자랑스럽고 멋진 우리들이 되어 있겠지요? 우리들의 노력이 색색의 화려한 조명에 묻히지 않고 색을 빛내는 별이 되고 싶습니다” 둥지 아이들이 이번 연극의 무대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의 무대에서도 주인공으로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응원해주는 분들이 필요합니다. 주변의 위기청소년, 비행(非行)청소년들이 이러한 관심과 응원을 통해 이젠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삶의 행복한 비행(飛行)을 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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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3
  • [신앙교육나침반] 성경적 성교육, 부모가 지금 하라!
    다음세대가 위험합니다. 수많은 기독부모들이 하나님 자리를 이탈하여, 하나님이 아닌 세상으로부터 양육의 지혜와 힘을 얻습니다. 기독부모들은 다음세대의 교육을 학교와 학원에 전적으로 의탁합니다. 그 결과, 다음세대는 성경적 신본주의 대신 세속적 인본주의로 세뇌되고 있습니다. 세속적 세계관은 과연 무엇일까요? 세계관은 모든 행동과 생각의 이유가 됩니다. 세속적 세계관의 중심에 “I am God!” 사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진화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인간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사상입니다. 인간은 동물이므로, 내가 원하는 것(본성)이 곧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 됩니다. 이러한 세계관에 지배를 받는 다음세대는 이렇게 외칩니다. “내 생각과 감정이 나를 이끈다!” 내 몸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면 결과는 어떠할까요? 낙태, 동성애, 폭력과 살인이 모두 정당화됩니다. 다음세대는 세상으로부터 진화론에 입각한 성교육을 받으면 안 됩니다. 다음세대는 믿음의 부모로부터 가정에서, 성경적인 성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어떻게 성경적인 성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은 십계명 6계명과 7계명에 근거한 성경적 성교육 설교와 놀이를 개발하여 현재 보급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에게 성경적인 성교육 설교를 할 수 있는 ‘실물자료와 영상자료’를 제공합니다. 또한 온 가족이 성경적인 성교육을 경험할 수 있는 ‘우리집 성경놀이키트’를 제공합니다. 부모들이 어렵지 않고 쉽게, 성경적인 성교육을 전수할 수 있는 양질의 컨텐츠를 만나보시기 추천드립니다. 성경적 성교육에서 강조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를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성경적 성교육은 ‘가정의 창조’부터 이야기해야합니다. 세상은, 신체의 성기관의 구조와 기능에 중점을 두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성경험을 부추기는 방법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성교육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가정이 되게 하신 말씀부터 이야기합니다. 세속적 세계관으로 볼 때, 가정은 목적이 없고 인간의 본성을 따라 저절로 생겨난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볼 때, 가정은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과 설계를 따라 탄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세우는 목적으로, 사람에게 생명과 성(性)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하필 가정을 만드셨을까요? 아담과 같은 여러 명의 남자를 만들어서 강한 군대를 만드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왜 하나님은 가정을 세우는 것으로 창조의 대미를 장식하셨을까요? 말라기 2장 15절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셨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하나님은 경건한 가정을 통해서 믿음이 대대로 전수되기를 열망하십니다. 둘째, 성경적 성교육은 하나님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생명과 성(性)을 선물하셨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생명과 성(性)은 인간이 엄마 뱃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과 감정대로 생명과 성(性)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내 마음대로 하나님이 주신 성(性)을 함부로 바꾼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생명이 위험해집니다. 성(性)은 생명과 동일한 가치와 비중이므로, 생명처럼 소중하게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 6계명(살인하지 말라!)과 7계명(간음하지 말라!)을 연이어 명령하시며 생명과 성(性)을 보호할 것을 외치셨습니다. “제발 사람의 생명을 살려라! 제발 사람의 성(性)을 지켜라!” 셋째, 성경적 성교육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몸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세상은 몸을 인격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인격이며, 몸은 동물의 본성을 지닌 물질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몸을 함부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정반대입니다(로마서 12장 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은 몸을 통해 예배 받으십니다. 왜냐하면 몸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존귀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8주가 된 태아는 강낭콩만한 작은 크기라고 합니다. 세상은 생각과 감정이 없는 조그만 태아를 인격체로 보지 않고 단백질 덩어리로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8주도 되지 않은 작은 태아를 하나님의 형상자로 보십니다(시편 139: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이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인구갤럽조사에 따르면 1년에 150만 명의 태아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죽어갑니다. 인구비례로 볼 때, 세계에서 태아를 가장 많이 죽이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부모들은 하루 빨리 믿음의 자녀에게 성경적인 신본주의 세계관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성경적인 성교육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성(性)에 담긴 하나님의 꿈과 열망을 전수해주십시오. 성경적 세계관이 담긴 성경놀이를 통해서 이 땅에 경건한 가정이 아름답게 보존되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적 성교육놀이 문의: 향기나무교육개발원 031-30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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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3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교사들이여,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1)”
    요즘 아이들 가르치기 참 힘드시죠. 그런데 아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요? 왜? 그 사랑을 우리가 받았으니까요. 교사는 교사로서 교사하는 게 아닙니다. 실은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면 아이들이 나를 보고 배워요. 내가 교사니까 가르치는 대로 따라와라! 나에게 배워라! 이러면 애들은 꿈쩍도 안 하는데요, 그런데 내가 먼저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면 아이들은 그 뒤를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저도 아이들을 목회하면서 기도 안 하고 말씀만 듣고 찬양을 안 하는 아이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야! 기도해! 말씀 들어! 찬양해!”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제가 먼저 예배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걸 따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잔소리 안 해도 제가 진짜 진심으로 기도하면, 앞에서 기도하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눈물로 기도했더니 아이들이 그 기도를 따라오더라고요. 찬양 율동을 저부터 시작하니까 목사님이 찬양을 하는데, 율동을 하는데 어떻게 안 해요? 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그렇구나! 다른 교육은요, 달라요. 수학교육, 영어교육은 영어만 잘하면 됩니다. 수학만 잘하면 됩니다. 영어를 가르치고 수학을 가르쳐요. 그런데 기독교 교육은요, 기독교를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내가 기독교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하더라고요. 내가 가르치기 이전에 내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 아이들이 나를 보고 예수님을 보더라고요. 그리고 나를 보고 예수님을 따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제자로서의 교사’입니다. 마가복음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는데 ‘산에 오르사’라고 하는 것은 이제 예수님이 산에 올라서 기도하신 후에 부르셨다는 뜻인데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잘해서 부름받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똑똑해서, 경력이 있어서, 자격증이 있어서, 부름을 받은 게 아닙니다. 왜 불렀어요? 하나님이 나를 원하셨어요. 저는 이게 너무 좋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셨어요. 왜? 여러분들을 통해 예배받기를 기뻐하세요. 여러분들을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너무 사랑하세요. 너무 행복해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교회의 앞날을 누구에게 맡겼나? 천사에게 안 맡기고 하나님은 교사에게, 이 세상 아무리 유명한 석학에게 맡기지 않고 오직 할 줄 아는 건 기도밖에 없는, 오직 할 줄 아는 건 순종밖에 없는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린 영혼을 맡기셨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를 원하셔서! 저는 이것이 최고의 훈장인 것 같아요. 최고의 자격증입니다. 세상이 나를 끌어 내릴 수가 없어요. 예수님이 나를 원하셨다는데요! 나를 부르셨는데요! 교사 여러분!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자녀 여러분! 자부심을 갖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누구예요?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넘볼 수 없고요, 세상이 우리를 깔볼 수 없어요. 하나님의 사람! 바로 원하는 자들입니다. 마가복음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열두 제자를 불렀다는 말이죠. 이스라엘은 원래 야곱의 아들들로 구성된 12지파였어요. 그런데도 열두 지파가 지금 다 와해되어 버렸어요. 12지파 가운데에서 북이스라엘, 남유다로 나뉘어지면서 남유다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똘똘 뭉쳐있는데 북이스라엘의 열 지파가 다 망가져 버린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다가 북이스라엘은 쫄딱 망해서 앗시리아로 다 흩어지면서 지파가 무너져 버렸어요.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는 이제 지파 개념이 사라지고 유다와 베냐민만 남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유다 지파, 사도 바울은 베냐민 지파입니다. 이 두 지파밖에 안 남아요. 다 사라져 버려요.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열두 제자를 통해서 12지파를 다시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함을 열두 제자를 통해서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겠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이스라엘.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다시 내가 일으키겠다!”라고 열둘 제자를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다음 세대를 구축하는 하나님의 구축병인 줄 믿습니다. 다음 세대를 살리는 방법이 무엇인가? 12명을 세우는 거였어요. 하나님은 우리 교사들을 통해서 우리 교회의 미래를 세우시고, 우리 부산의 미래를 만드시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켜 가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 12명을 세우셨다고 했어요. 그들은 원래 혼자 설 수 없는 이들이었어요. 그들은 다 어부, 세리, 열심 당원... 별로 사회적으로 주목받을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제자로 세우셨어요. 우뚝 세우셔서 이제는 그 12명의 이름을 우리도 알잖아요. 모두가 알잖아요.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요. 왜요? 그 열두 명이 이제 높이 세워져서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부심을 가지고 올 여름 다음세대 사역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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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8
  • [다음세대칼럼] 금쪽같은 내 새끼
    (창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청소년은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큰 관심사며 화두라 할 수 있다. ‘다음 세대’라는 이름으로 보호하고 격려하고자 하지만 저출산과 각종 문제로 막상 그 대상이 없어진지 오래됐다. 특히 교회적으로는 부서 자체가 없어진 교회를 흔히 볼 수 있으며 사회 학교에서도 인원수가 줄어들고 학급이 줄어드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생계를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지나친 방임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있을 것이고 반대로 지나친 간섭으로 옥죄어서 나타나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런 문제들마다 상당수의 부모들에게서 이런 얘기를 듣곤 한다. “저희도 부모가 처음”이라서. 맞는 말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를 이유로 하기엔 더 많은 가정은 지극히 평범하게 화목하게 잘 지낸다. 그건 그들이 결코 부모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일까를 고민하다가 ‘지나친’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말처럼 지나친 사랑이 오히려 독이 된 전형적인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해결점은 결국 ‘믿음’에 있다는 다소 진부한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비행 청소년의 보호처분 기간을 늘리기 위해 재판에 참여(위탁보호위원 자격)하게 됐었다. 재판을 위해 청소년과 그의 보호자도 함께 출석했으며 이내 재판이 진행되었다. 그런 와중에 보호자는 처분 결과에 대해 납득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다며 소란을 피우며 막무가내인 행태를 보였다. 결과는 바뀌지 않은 채 재판은 끝이 났고 분이 풀리지 않은 보호자는 학생의 담당 선생님께 온갖 욕설과 협박의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했었다. 어떤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보호자된 사람으로서 내리사랑의 아름다움처럼 보이는가? 동시에 이와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하나님께 바쳤던 사건이 떠올랐다. 하나는 다른 사람은 믿지 못하고 오직 자신만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는 아집과 교만의 결과였고, 하나는 자기의 낮음을 인정하며 전적인 신뢰를 보인 결과였다. 만약, 저 보호자가 법원과 센터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었다면 과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너무 사랑하는 내 자식이지만 너무 안타깝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더욱 신뢰하며 기꺼이 맡기지 않았을까? 이러한 얘기는 사회적으로만 통용되는 것일까? 이러한 맥락을 따라 교회에서 우리 자녀들이 진짜 믿는 믿음이란, 부모들이 진짜 믿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왜 중고등부 사역이 어렵고 왜 중고등부 아이들 전도가 어렵고 주일이면 시험기간이면 학원 가기 바쁘고 심지어 그렇게 떠나기까지 하는 것일까. 교회 선생님들이 사역자들이 못나서 그런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저 사례와 유사하게 가정에서 믿음의 대상을 올바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확신한다. 아무리 교회 선생님들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쳐도 고작 일주일에 한 번 가르치는 것과 일주일 내내 생의 곁에서 내 혈육인 부모가 학원과 세상을 더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몸소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인다면 과연 어느 것에 힘이 더 실릴까. 그것은 엄청난 은혜와 노력이 아니고서는 후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평일 6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세계관으로 똑같이 살다가 고작 주일 하루 교회에서 설교와 프로그램으로 아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건 결국 교만이고 허황된 욕심 아닐까. 그러다 변하지 않으면 교회를 탓하며 저 보호자와 같이 행동하지는 않을까. 또한 반문할 수 있겠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도 가르친 적도 없냐고. 그러나 또한 명심해야 한다. 가정에서의 교육이란 말하고 가르치는 것은 일부일 뿐, 부모가 사는 모습 그 자체가 곧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금쪽같은 내 새끼는 부모가 제일 잘 알고 부모만이 답이리라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맡길 수 있어야 한다. 학원을 그래서 보내는 것 아닌가. 부모보다 더 잘 가르치리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더욱이 하나님이 유일한 위로자요 부모요 스승이라 믿는다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세상의 것보다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세상에서는 찾을 수도 구할 수도 없는 가치를 교회를 통해서는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자녀에게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먼저 부모가 그렇게 살아내는 모습으로 자녀에게 가르쳐 양육해야 할 것이다. 온전한 사랑으로 완전한 믿음이 자녀에게 잘 전해지기를, 그를 통해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더불어 아름다워지고 부흥하는 날을 속히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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