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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퀴어축제와 반동성애 집회
    지난 25일 경남 창원시에서 제3회 경남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됐다. 교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퀴어축제를 강행 한 것. 경남 퀴어축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개최되었는데, 2020년에는 온라인에서 열렸고 2021년과 2022년에는 개최되지 못했다. 퀴어축제가 강행되자 경남기독교총연합회와 바른가치수호경남도민연합은 창원시 성산아트홀 인근 도로에서는 ‘퀴어 반대 연합 집회’를 개최됐다. 행사 전 창원중부경찰서는 양측의 충돌을 우려해 경찰관 1000명을 투입해 안전 펜스를 설치하는 등 집회 관리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경찰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충돌은 없었다. 퀴어축제에 참여한 인원이 예상보다 적었기 때문. 경찰은 당초 1,000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퀴어축제에 200여명(오후 2시 기준, 경찰추산) 만이 참석했다. 반면 반대집회의 경우 2,000 여명이 참석해 동성애 반대를 외쳤다. 반대집회에서 말씀을 전한 박석환 목사(소금과빛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악법과의 싸움은 영적 싸움”이라며 “진리와 말씀으로 싸우고, 기도로서 승리하자”고 권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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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12-01
  • 시작하는 출발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정인규 목사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에스겔 34:16) 부산에 6.25 피난 시절 1951년 1월 4일 북한에서 믿음을 지켜 오던 많은 피난민들이 월남하여 부산 서구 남부민동 산의 465번지의 피난민촌 주변에 한양공대 가교사를 짓고 그 곳에서 한양공대 설립자 고 김연준 장로(지금의 한양대학교)와 몇 몇 공대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1952년 3월 2일 초대 목사로 염명수 목사를 모시고 첫 예배를 드린 것이 한양교회와 남부민교회의 효시로 분리 했다가 다시 두 교회가 합병한 것이 오늘의 은성교회로 서구 해돋이로 22번길 3-4 자리에 안착 한 것이 7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니까 순전히 함경도 출신과 평안도 출신들 끼리 물과 기름과 같이 모여 합친 곳이 은성교회로 출발한 것이다. 그것도 한양교회는 함남노회 소속이고 남부민교회는 경남노회 소속이었는데 통합 부산노회로 귀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은성교회로 합병한 그 당시 담임목사가 정연승 목사이고 전도사가 전동윤 목사이다. 그 후 최상식 목사(고인)가 18년 시무하였고 3대 구영철 목사가 7년간 시무하였고 4대 안영서 목사가 4년간 시무하고 5대 문경모 목사가 5년간 시무하고 2008년에 6대 여충호 목사(현 노량진교회 담임)가 3년간 시무하고 2012년에 7대 김태승 목사가 11년간 시무하고 2023년 6월말 사임 후 임시당회장으로 오신 분이 정인규 목사이다. 약 7개월 여정에서 서로 마음의 상처를 싸매고 치유하며 화합을 이루면서 새 담임목사 청빙할 때까지 주일날 메시지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화합을 도모하는 메시지가 주축을 이루었다. 정인규 목사(68세)는 소속된 부산노회 안에서 교회 담임목사가 공석일 경우 임시당회장 혹은 대리당회장의 적임자로 내세우는데 우선 주자로 모시며 파송 받는 목사이기도하다. 일찍이 성지학교 출신 졸업생으로 모교의 첫 번째 교목실장을 13년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의 제자들 가운데 20여명의 목사가 나오기도 했다. 대남로교회, 성덕교회에서도 목회 시무도 했을 뿐더러 교회 내분이 있는 교회에 임시당회장으로 파송 받으면 항상 중립에 서서 당회 운영을 하고 있다는 정평이 나 있다. 이번 은성교회 임시당회장 시에 담임목사 청빙 과정에서 친한 친구 목사가 추천하는 친구 아들을 두고 친구가 원수가 되어도 좋으니 정중히 거절하고 중립에서 당회 운영을 해 왔다고 솔직한 고백을 들었다. 부산에서 태어나서 가야교회(고 이신용 목사 시무)가 모교회이며 정 목사의 사모는 한식요리사, 요양보호사, 운전면허증, 부산YMCA에서 운영하는 산후도우미 베이비시터 과정을 수료하여 자격증을 취득한 전업주부이다. 슬하에는 1남 1녀로 여식은 한동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생식 전문회사 미래 전략실에 7년간 재직한 후 미국 뉴욕 포담대학교 로스쿨을 하여 국제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워싱턴 DC 항소법원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혼인한 사위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고든-콘웰 신학교에서 교역학 석사 학위 취득 후 현재 미국 뉴욕 소재 웨스트체스터연합교회 전도사로 시무하고 있다. 아들은 동아대학교에서 경영정보 전공으로 외국계 회사에 재직 중에 있다. 내가 아는 정인규 목사는 (사)부산십대선교회(YFC)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아버지처럼 다정다감하며 십대 청소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재)21세기포럼 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제9회 기독문화대상’(교육부분)에서 부산십대선교회(YFC)가 상을 받기도 했다. 이제 불과 2년밖에 남지 않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임시당회장으로 헌신하면서 그때 맞는 말씀으로 주일 설교를 하여 교회 내의 갈등이 있을 경우 잘 조정하고 화합으로 상처를 치유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정인규 목사는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은퇴란 삶으로 보여주는 마지막 설교’라고 말했듯이 남은 2년 어간을 유종의 미를 거두어 내는 삶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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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호주선교부의 미우라 고아원 출신 김순복 여사
    김순복, 결혼 후에는 남편의 성을 따라 박순복으로 불린 한 여성의 삶의 여정은 초기 경남지방 교회 역사의 한 단면이자 한 여성의 변화된 삶의 행로를 보여주는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김순복은 어떤 여성이었을까? 1892년 10월 12일 내한한 호주장로교 제2진 5명 중 여선교사 멘지스와 진 페리, 그리고 퍼셋은 부산진 죄천동에 거주하면서 한국인들과 접촉하기 시작했고, 전도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의 첫 번째 사역은 고아원의 운영이었다. 처음부터 의도한 사업은 선교사 집에 버려진 아이 때문에 1893년 고아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고아원이 부산경남지방 최초의 사회복지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미우라(Myoora)고아원이었다. 버려진 한 아이로 출발했으나 점점 수가 증가되어 2년 후에는 13명으로 늘어났다. 그 중의 한 아이가 김순복(金順福, 1887-1942)이었다. 6살 혹은 7살 정도 되었을 때 이 고아원에 오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부모도 알 수 없고, 어떤 환경에서 고아원에 수용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미우라에 와서 서양 선교사들을 만난 덕에 신앙교육을 받게 되었고, 멘지스가 시작한 일신여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게 성장한 김순복은 1905년 호주선교부를 도우며 매서전도인으로 활동하던 박성애(朴晟愛, 1877-1961) 라는 청년과 혼인하게 되었다. 이때가 1905년 2월 15일이었고 18살 때였다. 남편 박성애는 28세였으니 순복이 보다 10살 연상이었다. 박성애의 혼인은 약간 늦었으나 당시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처녀를 찾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맨지스는 자신이 양육한 순복이와의 혼인을 주선한 것이다. 결혼 예식을 주례한 이는 왕길지 선교사였다. 이때의 예식은 호주장로교 휘하의 주일학교를 위한 잡지인 「레코드 The Record」 18권 2호(1906. 2) 표지와 내지(10쪽)에 게재되었고, 신부 김순복이 에벤에셀교회 주일학교에 보낸 짧은 편지도 소개되어 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간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저는 여러분들이 베풀어 주신 후원에 힘입어 평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가련한 소녀였으나 여러분들의 자상한 도움으로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입고 잘 살고 있고, 주야로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알게 된 점에 대하여 더 큰 감사를 드립니다. ... 비록 우리가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항상 주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이 세상에서도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박순복.” 이때부터는 남편의 성을 따라 박순복으로 불렸다. 남편은 1877년 5월생으로 부산진구 범일동에서 4남매의 장남으로 출생했는데, 한문 사숙에서 수학하고 가업에 종사하던 중 내한한 서양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지금의 부산 동구 좌천동의 호주선교부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삶의 행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청년 박성애는 호주 선교사들과 접촉하게 되고 결국 기독교 신앙을 받아드리게 되지만 처음에는 서양에 대한 호기심뿐이었다. 선교사들과 접촉하게 되지만 자기를 들어내려 하지 않았기에 여선교사들은 그를 ‘니고데모’라고 불렀다. 그러나 24세가 되던 1901년 초에는 분명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부산진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1901년 2월 10일에는 왕길지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게 되는데, 자신의 아내가 될 김순복도 이 때 세례를 받았다. 그후 왕길지 선교사의 주선으로 대영성서공회 매서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부산진교회 수요 예배 인도자로 임명되었다. 이렇게 변화된 길을 가자 호주선교사 멘지스와 왕길지는 그를 순복이에게 소개하고 혼인하게 이끌어 간 것이다. 그런데 박성애는 호주의 첫 의료선교사인 휴 커를의 조수로 채용되었고, 커를 이사는 의사나 병원이 없는 서부 경남의 진주에 가서 일하고자 했다. 그래서 커를은 박성애 부부에게 진주로 같이 가서 일하자고 제안했고, 이 제안에 따라 이들은 1905년 10월 18일 부산을 떠나 진주로 향했다. 고아소녀였던 김(박)순복은 호주장로교선교부의 진주지방 개척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때 부산을 떠난 이들로는 커를 의사와 그 부인 앤스티, 부산에서 얻는 큰 딸 사라와 둘째 딸 프란시스, 박성애 가족으로는 어머니 양주련, 박성애와 부인 김순복, 박성애의 남동생 박자룡 두 여동생 박은실과 박보렴 등 6 사람이었다. 선교사 가족 4사람과 총 10 사람이 늦은 가을 낙엽이 거리를 부산을 뒤로 하고 진주로 향한 것이다. 마산까지는 기차로 갔고 마산에서는 가마꾼의 도움을 받아 진주로 향해 20일 저녁 9시 30준 진주에 도착했다. 이날이 음력으로 9월 22일이었다. 이들 일행은 진주 성내면 4동 북만 안에 있는 정경철씨 소유 초가집에 임시로 거주하게 되었다. 김순복의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 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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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12-01
  • [박정곤 목사] 다(多)문화·다(多)민족·통일(統一)시대의 한국교회 선교에 대한 제언
    조선일보 11월 8일자 기사에 의하면 국내 거주 외국인 인구가 226만명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4.4% 수치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기준에 의하면 총 인구 중 외국인, 이민 2세, 귀화자 등 ‘이주배경인구’가 5%를 넘으면 다문화, 다인종 국가로 분류합니다. 2024년이 되면 외국인 또는 외국출신인구가 공식적으로 5%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즉, 2024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One Nation) 국가가 아니라 공식적인 다문화국가, 다민족국가가 될 전망입니다. 이미 세계화(Globalization)의 추세에 따라 국기에 대한 맹세 문구도 바뀌었습니다. 1972년에 수정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라는 문구가 2007년도 개정안에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로 바뀌었습니다. 단일민족사상에 근거한 ‘조국’과 ‘민족’이라는 표현대신에 ‘대한민국’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미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단일민족국가의 정체성 보다는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하나의 국민이 되는 ‘대(大)한민국’을 전망했던 것입니다. 2008년 11월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는 오는 2025년에 남북한이 통일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통일연구원(KINU) 2023 한반도 정세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여전히 남북관계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향후 5년안에, 북한체제가 무너지든지, 남북한이 통일이 되든지, 통일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북한의 문이 열리게 되는 모습으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1998년 CIA 보고서의 ‘북한붕괴론’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화시대 그리고 남북통일시대에 한국교회는 어떤 선교적 전략을 가지고 앞으로의 상황을 대비해야 할까요? 먼저 새터민 선교와 디아스포라 외국인 선교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새터민 선교입니다. 한국에도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먼저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사람들은 탈북한 새터민들입니다. 헌법 3조에 의하면 북한의 주민들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래서 탈북한 북한의 주민들에게도 대한민국정부는 합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지위와 자격을 부여해 줍니다. 성경에는 성도가 가장 우선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할 대상을 ‘형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3:10;4:20). 물론 여기에서 ‘형제’는 믿음으로 하나님안에서 한 가족이 된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는 바울사도의 경고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딤전5:8). 탈북민들은 같은 민족이며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선교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고려인, 조선족들도 같은 동포들이지만 100여년이라는 세월동안 떨어져 지내다 보니 언어와 사상과 관습에 극복하기 어려운 차이점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남북한도 다른 체제에서 70년 이상을 떨어져지내다 보니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보다는 이질감이 더 많아진 상황입니다. 또한 선교는 세상 나라의 사람들이 하나님나라로 들어오게 되는 영적(靈的)이민의 도구이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적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이해와 인내심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2022년 6월 기준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민 수가 33,981명입니다. 사망자와 이민자를 제외하면 현재 약 2만 7천명의 탈북자가 거주 중인 것으로 추산됩니다. 한국교회는 이 탈북새터민들을 얼마나 잘 돌아보고 있을까요? 북한기독교총연합회가 발표한 '2023년 전국 탈북민교회 기본 현황'을 보면 올해 탈북민교회는 72개로 지난해보다 4곳 늘었습니다. 2000년 이전 2곳에 불과했던 남한 탈북민교회는 2000년대엔 18개, 2010년대 51개, 2020년대엔 19개가 들어섰습니다. 뉴코리아교회 정형신 목사는 “탈북민교회가 세워진 지역의 탈북민 거주 현황을 대조해보면 인구대비 교회 숫자는 제주도가 157명당 1개로 가장 높고, 경남이 1,082명당 1개로 가장 낮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교회가 있는 부산, 경남지역엔 탈북민교회가 부산에 1개, 경남에 1개입니다. 탈북민선교에 대한 교회들의 관심은 증가하고 있으나 실제적으로 새터민 중심의 탈북민 선교센터와 교회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두 번째로 이주 외국인 선교입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함에 따라 전세계가 일일(一日) 생활권이 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몰려든 많은 이민자들의 성공신화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전쟁이나 기근, 국가부도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상황 때문에 베트남의 보트피플이나 우크라이나 난민들처럼 대규모 이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부산 경남에 합법적으로 체류중인 외국인 인구가 20만명이 넘었습니다. 10년전에 5만명이 채 안되었으나 현재 한국인의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로 인해 외국인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 중심으로 영어예배나 한글학교를 운영하는 교회들이 있지만, 실제로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예배는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일본의 고령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한국사회의 인구절벽입니다. 그 와중에 지속해서 인구가 늘어나는 계층이 다문화가정입니다. 2022년 통계청자료에 의하면 2022년 국제결혼이 17,000건으로 2021년보다 27.2% 증가했습니다. 국제결혼의 비중이 전체 커플의 11%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부의 교육, 경제적 지원등 여러 정책들이 있지만, 실제적으로 2세들의 교육과 국방의 의무, 정체성 문제에 대한 교회의 역할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장기체류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5년이상, 10년이상, 영구정착하는 외국인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이들을 외국인이 아닌 대한민국에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서의 인식을 가지고 선교적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각 나라, 각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가진 현지 사역자, 지도자 양성 및 외국인 교회 개척, 설립이 필요합니다. 김해시에 네팔인 목사가 운영하는 외국인센터에 2-300명의 외국인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밀양에는 다카공동체같은 일부 모범적인 선교사례가 있긴 하지만, 수 많은 외국인들에게 각 나라와 각 민족의 언어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지역 교회들의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다문화, 다민족, 통일시대의 디딤돌과 걸림돌 문제입니다. 한민족(韓民族)은 수 천년에 걸쳐 하나의 문화와 언어로 형성된 단일민족(單一民族)집단입니다. 현재 중국땅에서 수십개의 나라와 수백개의 민족들이 비교적 짧은 주기의 나라의 역사를 가지고 세워졌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이 한 번 세운 나라는 수 백년, 거의 천년가까운 세월을 유지했습니다. 그것은 배타성이 아닌 다양성 속의 하나됨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다양한 나라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습니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비록 자신들의 출신과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대한민국의 법을 따라야 할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어느정도 함께 맞추어 살아야 할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사회통합프로그램 같은 정부기관의 공신력있는 활동에도 참여해야 하지만, 민간외교차원에서 특히 교회에서 ‘한국어 학당’, ‘한글교실’ 같은 외국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활성화 시켜야 합니다. 이것을 계기로 외국인들이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하고, 교회의 섬김과 헌신을 통한 선교적 열매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국제 외교는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국가간 등가인 것을 교환하거나 동일한 행동을 취하는 주의로 외교의 기본적 원리의 하나입니다. 이슬람권에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거나 예배당을 합법적으로 세우는 일 등도 이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슬람권에서는 법으로 기독교나 타종교 전도를 불법으로 금지시켜 놓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신들의 기도할 권리, 선교할 권리, 모스크를 지을 권리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호호혜주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이러한 여러 이유들로 인해, 일본은 기독교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호 호혜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이슬람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무슬림들을 사랑하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외교의 기본적인 원칙하에 이들을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무분별하게 외국인들을 받아들이면 서구권에서 겪었던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우리도 동일하게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외국인들이 통일시대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선교적으로 우리가 선교사를 보내기 힘든 지역에서 우리나라에 다양한 외국인들이 몰려오는 것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공산권, 힌두교, 불교권, 이슬람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좌우(左右)대립, 동서(東西)대립등 지역감정과 지역불균형의 정치적, 경제적 갈등이 있습니다. 통일시대에 이 땅에 들어온 이민자와 외국인들로 인한 다극화 상황은 남한과 북한이라는 양극화의 긴장상태를 완화시켜줄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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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3-12-01
  • [서임중칼럼] 인생의 초겨울을 느낀다
    가을 단풍이 좋다는 지인들의 노래를 따라 한나절 산행을 했다. 그렇게 가을이구나! 했는데 겨울바람이 어느 새 문풍지를 흔든다. 이제는 단풍도 빛바랜 풍광을 보며 만상(萬象)이 떠오른다. 이전엔 법주사 앞을 지나려면 통행세를 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이 폐지된 지 반년이 지나면서 법주사 방문객과 등산객이 15% 증가했다는 보도를 듣는다. 자연이 무상으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인데 그곳의 불법주차와 쓰레기도 함께 늘었다는 뉴스를 듣자니 우리의 문화생활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정서가 여전히 곱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문화생활, 공중 생활이 질서정연하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35년 전 한일 역사 연구를 위해 3주간 일본에 체류할 때였다. 공중전화통 위에 지갑을 놓고 깜빡 잊고 나온 것이 생각나 4시간 만에 다시 가 보았다. 지갑은 놓아둔 그대로 있었다. 무척 감동을 받았던 터라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대중목욕탕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수건을 2장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다음 사용자를 위한 배려로 자기가 사용한 곳을 말끔하게 정리정돈 하는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대중식당에서나 공공장소에서는 큰소리 내는 일이 없고, 대화도 옆 사람에게 결례되지 않도록 조용조용 하는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본의 한 모습이다. 스위스에서 본 일례로 비가 오는 날이었다. 식당에 일본인 단체 손님이 들어오는데 우산을 순서대로 줄을 세워 보관하는 것이었다. 보기 드문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산행을 하며, 불법주차에 불법 쓰레기 투여, 시골 장터 같은 카페 등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속까지 참담해지는 장면들을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는 표현처럼 우리의 삶도 아름답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가을이 익어간다는 말처럼 우리의 삶도 성숙하게 다듬어져 갔으면 좋겠다. 문득 내 나이를 생각한다. 인생의 초겨울을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 깊어 가면 푸름을 자랑하던 모든 식물은 그 빛을 아주 잃고 생존한 일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봄이 오면 얼어붙던 땅을 헤집고 새로운 움을 틔우며 새 생명으로 탄생한다. 그 한 포기 풀을 통해서도 내 삶을 반추한다. 내 인생 또한 겨울을 맞이하면 이 땅에서의 내 삶도 마무리될 것이다. 나는 부활의 아침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그 나라에서의 삶을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에서의 내 삶은 초겨울을 느낀다. 초겨울의 오늘을 나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계절의 겨울이 깊어 가듯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축복하고 감사하는 말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포항중앙교회에서 시무하던 때였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퇴근할 무렵이면 예배당 마당 한켠에서 나를 기다리는 분이 계셨다. 어느 한 주일도 예외가 없다. 입고 있는 옷은 1년 365일 똑같은 옷, 역사에 관한 것이라면 천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해박한 사람, 그러나 아이들 말로는 항상 2% 부족함을 드러내는 분이다. 내가 현관에 나타나면 한달음으로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그분 손에 쥐어드리고 어깨를 한 번 감싸 두드려 주며 “밥 잘 잡숫고, 항상 감사하고, 아셨지?” 하면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쏜살같이 돌아서 달음질하곤 했다. 목사를 보고 싶어 하는 그분, 손에 만원을 쥐어 드리면 금방 얼굴이 환해지면서 천진스럽게 어린아이처럼 인사하고 돌아서는 그 분의 모습은 수천만 원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간애(人間愛), 순수함 그것이다. 나는 주일마다 그렇게 그분을 만났다. 말 한마디 없는 그 분은 수천만 마디를 눈빛과 표정으로 목사에게 말한다. 그러던 분이 어느 주일에 보이지 않았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혹여 늦나 싶어 차 안에서 잠깐 기다려 보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 편찮으신가?’ ‘설마…?’ 그러다가 다음 주일에 나타난 그 분을 보면서 괜스레 눈시울이 젖었다. “아픈 데 없지? 괜찮지?” 그러면서 그날은 2만 원을 손에 쥐어 드렸다. 목사는 그렇게 주일만 되면 만원으로 행복을 경험했다. 그분은 나에게 있어서 오늘의 예수님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나를 보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올 때 나는 주님을 보듯 반기고, 그것이 매 주일의 행복한 시간이 되었고 나도 매 주일 그분을 주님처럼 생각하며 보고 싶어진 것이다. 은퇴 후에는 그분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당부, 갇힌 자들을 돌아보고, 목마른 자에게 한 잔의 냉수라도 내어주며, 헐벗은 자를 입히고, 아픈 자를 찾아 위로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해 주는 것은 유별난 행동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일 수도 있고, 때로는 문안 전화 한 통화일 수도 있으며, 흔히 쓰는 문자 메시지 한 줄일 수도 있다. 내가 기도할 때 한 마디의 중보일 수도 있고, 내가 먹는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사랑의 연주다. 그것이 나눔의 축복이다. 그것이 행동하는 믿음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유별난 계획을 세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날마다 오늘의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계절의 겨울이 깊어 가듯 우리네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사랑하며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갔었던 동경의 ‘고시래’ 식당이 떠오른다. 수많은 손님이 식당 주인 배우 욘사마, 배용준 씨를 그리워하면서 ‘그분은 언제 오실까?’ 고대하는 마음으로 그 비싼 음식을 주문하여 먹고 있었다. 계절의 초겨울에 내 인생의 초겨울을 생각한다. 계절의 겨울이 깊어 가듯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 더욱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그러다가 다시 오시는 그 분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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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시사칼럼] 디아스포라가 우리의 희망입니다
    지난 주간에 중국의 동북부에 위치한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충격적인 한파가 밀어닥쳤습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늦여름 날씨가 지속되다가 돌연 기온이 영하 25도까지 떨어지면서 폭설이 내려 도시 전체가 마비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간의 화제가 된 이 지역을 한민족이라면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이곳이 ‘간도’ 지방이기 때문이고, 그 중심에 안중근 열사의 의거가 일어났던 하얼빈 시가 있기 때문이며, 지금도 많은 동포들과 그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간도’ 땅을 향해 요즘만큼 한국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적이 드문듯합니다. 홍범도 장군도 관련이 있습니다. 육사 교정에 있는 흉상 철거 문제로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엄청난 홍보 효과가 있었습니다. 1920년 6월 7일에 일어났던 봉오동 전투 말인데, 소수의 대한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대를 무찌르고 큰 승리를 거두었던 이곳은 오늘날 지린성(吉林省)으로 불리지만 역시 대표적인 ‘간도’ 지방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당시 이 일대에 거주하던 한인들의 규모는 『백범일지』에도 소개되어 있는데, 독립자금과 관련해서 김구 선생은 “동북3성(흑룡강, 길림, 요녕)에 250만, 러시아에 150만, 일본에 40-50만 명의 동포가 있으나 각각의 사정으로 기댈 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오직 미국 본토와 하와이, 멕시코, 쿠바를 아우르는 일만 명의 동포 성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당시 벌써 500만 명이 넘는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정확한 수치는 누구도 알 수 없으나 가난과 압제와 구직 등 이런 저런 사정으로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그래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던 숱한 동포들이 존재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기념일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10월 5일을 ‘세계 한인의 날’(World Korean Day)로 지정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국(260만), 중국(235만), 일본(82만), 캐나다(24만) 등 현재 세계 각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은 약 730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 5,100만과 비교할 때 거의 15%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올해 초에 부산 지역의 청년 인구에 관한 유의미한 통계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습니다(2023. 2. 22, 부산시). 이에 따르면 2011년 11월 기준 만 18세에서 34세까지의 부산 인구는 총 68만 9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했고 전년도에 비해 2.1% 감소한 수준으로 2015년 이후에는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이대로라면 20년 후인 2040년대에는 40만 명대가 예상됩니다. 일자리를 좇아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비율도 높지만 혼인율 자체가 낮고 특히 해당 연령대 청년 출산율은 0.476명으로 심각한 수준이라 앞으로 반등의 기대가능성조차 별로 없는 실정입니다. 물론 부산 지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날이 갈수록 인구절벽의 전망이 불안한 심리에서 기정사실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자체가 문제입니다. 이제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대신 ‘인구는 경제력이고 국력이다’라는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때입니다. 더군다나 생산가능연령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니 산업현장에 인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뿐더러 사회 각 분야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라는 아우성이 울려 펴지게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을까요? 문제 해결의 단서를 우리는 성경 속 이스라엘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디아스포라가 되고 말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곳에 거하든 민족과 신앙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차면 그들 중 일부는 기꺼이 다시 돌아와 조국과 성전의 재건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주전 6세기 바벨론에 살고 있던 백성들 중 5만에 가까운 이들이 귀환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놀랍게도 현대에 와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합니다. 1882년부터 1948년까지 유대인 디아스포라 가운데 50만 명 이상이 다시 돌아와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건립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인 디아스포라는 그 규모와 영향력에 있어서 결코 유대인 못지않습니다. 만일 이들 중 일부만이라도 통일된 조국으로 돌아온다면, 그래서 현재 51,430,000명인 대한민국과 25,750,000명으로 파악되는 북한의 인구에 합쳐진다면 물경 8천만에 가까운 세계 20위권의 인구 대국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대부분의 인구는 청년을 비롯한 생산가능연령대일 거라는 점이지요. 그렇다면 소멸하는 인구 문제로 걱정하는 우리에게도 한 줄기 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답을 바로 이번 간도 땅 ‘디아스포라’를 통해서 바라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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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은혜의말씀] 나귀를 타신 이유(막 11:1-10)
    유월절을 앞두고 전국에서 모여든 순례자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깔거나 흔들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는 백마가 아니라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요? 스가랴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500년 전에 이 일을 예언하였습니다.(슥 9 : 9) 오늘,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를 살펴봅시다. 1.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구약의 예언된 바에 따라 움직이고 계십니다.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말씀에 대한 순종의 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너무 많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말씀이 무엇이라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쓰여지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그분의 말씀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2.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보세요. 뒤뚱거리는 어린 나귀 위에 앉으신 주님, 얼마나 볼품없는 초라한 모습입니까? 세상의 왕은 가능한 자신이 가진 권력을 극대화합니다. 반면 그리스도는 왕이신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왕 중의 왕이 오히려 더 작아지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전반적인 메시지는 능력의 길은 겸손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겸손하게 섬기고,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겸손히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본성이 원하는 것하고는,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의 욕망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우리의 겸손한 섬김이 누군가에게 쉼을 줄 수 있습니다.(막 10 : 45) 마지막으로, 주의 일에 쓰임 받았던 나귀 주인의 순종을 살펴봅시다. 나귀 주인은 주께서 쓰신다는 말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여기서, ‘주’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원어로 ‘아도나이’인데, 하나님의 주권, 권한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나귀 주인의 것을 가져간 것이 아니고, 그동안 주님의 것을 나귀 주인이 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쓰고 있으면 착각하는 것은 이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입니다. 모든 만물은 주님에게서 나왔고, 주님의 의해서 돌아가고, 주님께로 돌아갑니다.(롬 11:36) 여러분, 우리는 소유의식을 가질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을 잠시 맡았다는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는 이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 음성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한 영혼을 작정하는 것, 내 영혼의 VIP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여, 그가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섬기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은, 겸손한 순종의 섬김을 통해, 주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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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다음세대와 소통을 위해 틈을 만들라
    분홍목사를 만나면 아이들은 슬쩍 미소를 짓습니다. 왜일까요? 저는 아이들한테 모든 애교를 다 떱니다. 일종의 틈을 아이들과 저 사이에 만드는 겁니다. 그 틈으로 복음이 전달되고 아이들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저는 분홍 자켓을 입고 분홍목사 명찰을 달고 아이들에게 다가갑니다.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잘 보이는 게 저의 꿈입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 마음이 열려야 그 아이가 살고, 그 아이 부모가 살고, 그래야 그 부모가 우리 교회를 떠나지 않고, 그래야 그 조부모들이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시거든요. 그래서 부산에서는 특이한 교회로 소문이 나서 매주 방문객이 오고 매주 탐방을 오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걸 어디서 배웠냐면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여러분,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나오는데요. 누가 크죠? 골리앗이 훨씬 큽니다. 키가 3m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큰데 정작 그 싸움에서 이기긴 누가 이겨요? 다윗이 이겨요. 조그마한 다윗이 이겨요. 어떻게 이겨요? 물매를 돌려서 던져요. 이마에 맞아요. 그런데 중요한 건 이 골리앗이 그냥 비무장이 아니라 온 몸에 62kg짜리 놋으로 된 철갑 갑옷을 입었고요. 이마에는 투구를 썼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마에 물매를 맞췄을까? 제가 연구를 해 봤습니다. 그러다가 은혜를 받았는데요, 그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엘라 골짜기에 이 골리앗이 나와서 무려 40일 동안 외쳤습니다. “야! 바보 같은 이스라엘 놈들아! 한 놈만 나와라. 1 대 1로 붙자. 내가 지금 물러갈게.” 그런데 아무도 못 나와. 열흘 지나 20일 지나 30일 지났습니다. 그러다 40일이 지나고 전쟁의 막바지가 되었습니다. 골리앗이 이제 퇴근하려고 막 준비하는데 나왔다는 거예요. 골리앗이 너무 긴장이 되는 거예요. 진짜 나왔다고? 정말, 누가 나온 거야? 하고 보니까 땅에 붙었어요. 얼마나 어린 애가 나왔는지 얼굴은 빨갛게 해가지고 칼도 창도 없어요. 물매인지 뭔지를 돌리는데 얼마나 웃겨요. 그러니까 너무 웃기니까 골리앗이 어떻게 했을까요? “으하하하” 웃었겠죠. 웃는데 투구가 들린 거죠. 들려가지고 틈이 생겨서 물매에 맞은 거죠. 제가 깨달았어요. 그렇구나. 다윗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다른 전사였으면, 이 둘이 정말 제대로 싸웠으면 승패를 알 수 없죠. 골리앗이 이길 확률이 높죠. 그런데 다윗이니까, 너무 가소로우니까, 너무 애가 나오니까 웃다가 투구가 들려서 물맷돌을 맞았구나. 그걸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요. 아이들한테 저를 낮추자,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홍융희라는 이름도 아이들은 몰라요. 그냥 분홍 목사님, 우리 분홍 목사님 그래요. 아이들이 본당에 오면 신이 나요. 본당에 오면 마음이 편해요. 왜? ‘저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야. 설교하는 저분이 내가 알고 친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아이들이 마음이 편하고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저희 교회는 본당에 함께 모여 예배할 때 참 다들 표정이 좋습니다. 그럴 때는 찬양대도 가운 벗어 던지고 같이 아이들처럼 색색으로 옷을 입고 함께해 주시는 교회고, 제일 중요한 거는 저희 장로님들이십니다. 하루는 저희 토끼 옷을 입은 유치부 목사님께서 아이들을 지도하시면서 다니시니까 이 장로님들이 “목사님! 힘드시겠어요.” 그러니까 “그럼 같이 하실래요?” 하면서 들고 나온 거예요. 유치부에 있던 공룡 옷, 백호 옷, 곰 옷을 들고 와서 이분들이 갑자기 그 옷들을 입으신 거예요. 계획이 없이. 그리고는 이분들이 예배중인 본당에 들어와 버리신 거죠. 어떻게 됐을까요? 난리가 났죠. 애들이 그냥 “와!” 하고 박수가 터지면서 갑자기 막 곰이 나오고, 공룡이 나오고, 백호가 나오고. 이분들이요. 그러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좋아졌어요.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주고 그러면서 제가 깨달았어요. ‘다음 세대 목회하는 기쁨과 보람이 이런 거구나!’ 그래서 이렇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의 이제 핵심적인 두 가지가 있는데 다음 세대 사역의 핵심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세요. “어떻게 애들을 데려오나?” 그러시거든요. 저희 부산 사하구가 온통 신평, 장림 등등 공단이 많아요. 애들이 없어요. 그런데 “어디서 데려오냐?”라고 물어보는데 여러분, 그게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은 어떻게 잘 키울까? 하는 거죠. 여러분, 집안에 애들이 많은 건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먹기나 많이 먹습니다. 어떻게 잘 키우느냐? 하는 게 중요하죠. 여기엔 두 가지 핵심이 있는데 복음과 사랑입니다. 복음이란 다음 세대들이 교회에 와야 할 이유를 바르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게 복음이라고 저희는 믿어요. 교회에 와야 할 이유.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이유, 그게 복음이죠.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저희는 그중에서도 우리 교회에 와야 할 이유, 이것을 분명히 경험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부산의 교회가 1,800개 교회가 있는데요. 어느 교회를 가나 다 구원받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교회에 와야 합니까? 우리교회에서만 받을 수 있는 사랑을 애들이 경험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여러분의 교회가 바로 그 교회에서만 받을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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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11-10
  • [다음세대칼럼] 내 증인이 되리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자상하게 연도 만들어주시고, 썰매도 만들어주셨습니다. 신앙도 모범을 보여주셨고, 장로로서 40년 동안 잘 섬기시면서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도 후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길 간절히 바라셨던 분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1999년 12월 소천하셨습니다. 소천하신 후에 짐을 정리하다가 누우셨던 머리맡에 말씀충만, 기도충만, 성령충만, 능력충만, 믿음충만이라는 글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글귀가 언제 기록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거의 유언과도 같은 당부였습니다. 그 글귀를 기억하며 지금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6절에서 8절은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당부의 말씀이 있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시는 유언과 같은 당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과 승천 사이의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하여 열심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준비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대화를 나누었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성숙하고 진리에 대하여 무지한 제자들에게 최후의 당부를 남기셨습니다. 그 최후의 당부는 모든 성도들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최후의 당부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증인들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증인이 되리라.’ 당부하십니다. 요 21장에서 요한의 앞날을 궁금해 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22절에서 대답하십니다. 만약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요한을 이 땅에 살려둔다고 해도 그것은 베드로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베드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문장은 가정법 문장입니다. 종말 때까지 요한을 살려두시겠다고 단정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1장 23절은 기가 막힌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대답을 마치신 뒤에 제자들 사이에 헛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한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소문이 퍼집니다. 잘못된 소문이 퍼진 것입니다. 그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은 철부지 어린애들이나 막 신앙에 입문한 초신자들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비롯해서 주님을 3년 동안이나 밤낮으로 모셨던 주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23절 뒷부분에서 사도 요한은 그 헛소문을 정정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 21장에서 보면 제자들의 수준이 매우 한심스럽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사도행전에 이르러서는 참된 교회의 개척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님의 증인으로 업그레이드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에서 ‘되리라’라는 동사는 헬라어로 미래형이면서 명령형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면서 반드시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명령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인 관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을 좇아서 구체적으로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법률 용어로서 증인이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반드시 보고 들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을 보고 듣지 못했다면 처음부터 증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둘째, 반드시 출석 요구에 응해야 합니다. 응하지 않을 경우 구인을 당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반드시 진실만을 증언해야 합니다. 거짓 증언을 할 경우 위증죄로 처벌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제물로 돌아가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주님에 대하여 듣고 그분의 역사를 우리 삶으로 체험한 산증인들입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삶 가운데서 주님의 증인으로 출두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의 증인으로 증언해야 합니다. 세상 법정의 증인과 주님의 증인 된 우리의 차이는 세상의 증인은 말로만 증언하면 그만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증언은 우리의 삶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순교자로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들은 것이 분명하고 본 것이 너무도 확실했기 때문에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저버리고 위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순교자’가 될지언정 ‘증인’임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헛소문을 퍼뜨리던 연약한 제자들이 그들이 보고 들은 진실들만을 전하는 참된 주님의 증인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에 각 교회들마다 전도축제가 한창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행사로만 여깁니다. 우리는 진실된 증인의 삶을 살아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참된 증인이 되어서 헛소문이나 듣고 전하는 성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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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신앙교육나침반] 온 세대와 함께 하는 추수감사절
    120세의 노련한 리더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향해 다음 세대의 양육을 책임져야 함을 절절히 외쳤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6장에서 자녀 세대들을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빼앗기지 않기 위한 핵심 전략을 명령하였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는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그는 부모 세대가 내적 차원인 ‘마음’을 두고 싸워야 함을 명령하였습니다. 모세는 부모 세대가 단순히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백성이 아닌, 하나님과 뜨겁게 사랑하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뜨거운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보다 더 큰 영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으로 관계 맺는 부모는, 자녀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관계 맺습니다. 부모가 자녀와 뜨거운 사랑의 관계 안에서 전하는 복음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강력하고 매력적입니다. 자녀의 지치고 어두운 영혼을 사랑으로 부둥켜안고 전하는 복음은, 자녀의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복음입니다. 수많은 자녀 세대의 마음이 상하여 굳게 닫혀 있습니다. 많은 아이가 “힘들어!”란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아이들의 먹거리에는 온통 환경호르몬과 중금속으로 가득하며, 아이들이 숨 쉬는 터전은 신종 바이러스와 초미세먼지로 인해 마스크를 벗기조차 두렵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문을 닫고 온라인 소셜 미디어와 가상의 게임 공간에서 평온함과 안정감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고립과 단절이라는 보호막 안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지금도 수많은 자녀 세대가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을 스스로 선택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순수한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사랑의 테두리 바깥에서 전해지는 율법과 진리는 공허한 종교가 되어, 자녀 세대의 삶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규율, 관습, 진리는 껍데기일 뿐인 종교가 되어, 결국에는 소멸하고 말 것입니다. 신앙의 전수가 자녀 세대의 마음을 보듬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다음 세대의 삶에 생명의 영향력을 미치는 복음이 됩니다. 올해 추수감사절에는 교회의 모든 세대가 다음 세대를 보듬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세대가 함께 마주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와 놀이시간을 마련해보십시오. 교회와 가정이 하나된 그 자리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 쓰러진 다음세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감사의 능력으로 힘차게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온 세대가 가을 열매를 이용해서 즐겁게 감사할 수 있는 감사의 송축 놀이 세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❶ 앗싸! 감사!: 밤이나 도토리 등의 가을열매를 높이 던지면서 “앗싸!”라고 외치고, 다양한 크기의 그릇으로 “감사!”라고 말하며 받습니다. 혼자 받기 또는 두 사람이 주고받기를 할 수 있습니다. ❷ 감사의 파워: 불평을 상징하는 종이컵을 세웁니다. 이때 종이컵 안쪽에 1-10까지 점수를 적습니다. 감사의 가을열매를 던져서 넘어뜨리거나, 테이블 위에서 진행할 경우 손가락으로 열매를 튕겨서 불평을 테이블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❸ 송축해: 빈 계란박스 안에 감사이름, 감사장소, 감사물건, 감사추억, 감사음식과 같은 주제를 적습니다. 박스 안에 작은 도토리나 콩을 넣고 흔든 후에, 뚜껑을 열어서 감사열매가 들어간 곳의 내용을 보고 감사를 고백해봅니다. 올해 추수감사절에는 이 땅의 모든 교회가 다음세대와 함께, 감사와 송축을 통한 치료와 회복을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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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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