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6-01(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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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나침반] 복음을 놀이하다!
    향기나무 교육개발원은 지난 3년 동안 쉼 없이 ‘우리집 성경놀이터’를 개발하였습니다. 이는 부모가 자녀에게 복음을 인지적인 방법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구조화되지 않은 놀잇감을 이용해서 복음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컨텐츠입니다. 지금까지 향기나무가 개발한 놀이는 약 100여개가 넘으며, 그 중에서 복음 놀이 50개를 정리하여 책으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50주 과정의 복음놀이 책이 발간되면, 누구나 손쉽고 저렴하게 복음놀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복음놀이터는 저 멀리 땅 끝에서 복음을 전하시는 선교사님들과 한인교회 사역자들에게는 귀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사역하는 현장은 한국보다 훨씬 더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장벽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 세대의 장벽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복음 도구는 안타깝게도 인지적인 방법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향기나무교육개발원에서 개발한 복음 놀이는 언어와 문화와 세대를 뛰어넘을 수 있는 차별화된 복음도구가 될 것입니다. 아래는 이번 복음놀이 50주 과정의 놀이시연에 참여한 인원입니다. 4세 어린이 1명, 5세 어린이 1명, 7세 어린이 1명, 9세 어린이 2명, 10세 어린이 4명, 11세 어린이 1명, 12세 어린이 1명, 12세 어린이 1명, 14세 청소년 1명, 40대 장년 5명, 50대 장년 2명 다양한 연령의 영아, 유아, 아동, 청소년, 장년이 3일 동안 동일한 놀잇감과 내용으로 복음놀이를 경험하였습니다. 복음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세대의 수준 격차로 인한 어려움이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함께 뛰고 놀고 웃으면서, 우리는 어느 새 나이와 성별과 모습을 초월한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복음놀이의 힘입니다. 복음을 인지적,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아서 복음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요? 복음놀이가 마친 둘째 날, 이들 중 세 명의 아동들이 목욕탕에서 만난 할머니께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말을 능숙하게 잘 하지 못하는 유아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복음의 스토리를 떠올려 이야기합니다. 이 모든 것은 복음을 온 몸으로 경험한 당연한 결과입니다. 「복음을 놀이하다 50」(가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앞으로도 많은 과정이 있으며, 무엇보다 많은 분들의 후원과 기도가 절실합니다. 예수님 손에 올려진 오병이어처럼, 주님 손에 올려져 열방의 많은 영혼을 배불리는 데에 쓰임 받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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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3-01-20
  • ‘파룬궁’ 션윈 예술단 부산과 서울에서 공연 주의
    예장합신 총회에서 ‘사이비 종교’로 결의된 파룬궁(설립자 이홍지) 션윈 예술단이 부산과 서울에서 공연을 준비중이다. 션윈예술단 측은 “중국 5천 년 전통문화가 지닌 풍부한 유산을 예술형식으로 복원하고 있다”며 온오프라인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진행중이다. 이단전문지 현대종교는 “션원예술단의 공연은 파룬궁 집단 소속 공연이며, 공연에는 반정부적 정치 요소, 포교를 위한 종교적 요소들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고 우려하면서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션원예술단은 2006년 파룬따파(파룬궁) 수련자들이 설립했(다)”는 내용과 “1992년 [파룬궁 교주] 리훙쯔(이홍지) 선생님이 고향인 중국 동북부 도시 창춘(長春)에서 처음 강습반을 열면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소개됐(다)”는 주장이 션윈예술단 홈페이지에 담겨있다고 보도했다. 파룬궁은 예장합신 교단이 지난 2018년(103회 총회)에서 ▲창시자 이홍지가 지신의 본질이 삼위일체라고 주장 ▲모든 중생의 구원자는 이홍지 자신이라고 주장 ▲사람의 수명을 2년 연장해 주었다거나 죽은 자를 살려냈다고 주장 ▲파룬궁을 수련해야만 천국에 간다고 주장 등의 문제로 “사이비종교”로 결의된 바 있다. 한편, 파룬궁 션윈 예술단은 오는 2월 2일부터 5일까지 부산에서 5회 공연을, 2월 15일부터 19일까지 서울공연 7회를 준비중이어서 주의가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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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01-20
  • 영화 ‘교섭’, 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모티브
    영화 ‘교섭’이 18일 개봉됐다. ‘교섭’은 2007년 7월 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모티브로 한 영화. 피랍 당시 샘물교회는 정부가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한 아프가니스탄에 복음을 전파하러 갔다는 이유로 대중들에게 많은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영화개봉이 기독교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영화 ‘교섭’ 감독을 맡은 임순례 감독은 최근 모 언론사 인터뷰에서 “실화의 종교적인 신념을 영화에 많이 담지 않았다. 과연 국가의 기능과 책임, 또 공무원들의 책임과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며 영화가 불필요한 논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어떤 시선으로 비춰질지 교계가 신년초부터 걱정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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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01-20
  • 이상규 석좌교수와 故 옥한흠 목사의 한국교회 미래에 닥칠 예언
    2023년 새해 들어서 한국교회 미래에 대해 기도하던 중 우연히 접하게 된 사연을 보고 ‘아! 이거구나’하고 영감을 얻게 되었다. 적어도 필부 노인이 되면 치매나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무조건 10시 경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에 기상하여 묵상 기도와 더불어 새벽 말씀을 들으면 매우 유익하다. CBSTV에서 1월 9일 새벽 5시 옥한흠 목사(1938-2010)의 영상 메시지에서 “한국교회는 이미 신뢰를 잃어 버려 사회가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고 더 교회를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추세이다”면서 “시편 5편 9절에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모두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고는 마지막 때를 향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땅에 공의와 정의가 사라지고 음란과 부패와 불법이 판을 치고 있다면서 미래 한국사회는 종교다원주의와 교회 통합주의로 가고 있다고 이미 13년 전에 하늘 나라 가시기 전 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옥 목사는 교회 신뢰회복을 위해서 목회자들이 정직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무슨 맹세 따위는 하지도 말아야 한다(마태복음 5:33~37). 이미 신뢰가 땅에 떨어져 아무도 믿어 주지 않고 있는 것이 당면한 한국교회 위기의식”이라고 말했다. “로마서 13:11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고 시대의 때를 볼 수가 있었다. 한편 중앙 교계지 N신문지에 박정규 박사(서울 교회사연구소장, 전 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교수)의 기고 글에 의하면 부산 교계가 낳은 역사 신학자 이상규 박사(고신대에서 36년간 교수, 현 백석대학교 석좌교수)를 아주 면밀히 엮어 조명한 글에서 “이상규의 역사관은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통합적인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나는 서양교회사를 한국교회사의 눈으로 인식하고 한국교회사를 서양교회사적인 전통으로 헤아리는 원근법적인 안목을 갖게 되었다’ 말했다. 특히 앞으로 한국교회가 당면한 도전을 미래학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어 주목되었다”고 말했다. 첫째는 이단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과거에는 이단들이 은밀하게 침투하고 활동해 왔는데 현대에 와서는 공개적으로 공격적으로 일간신문 전면 광고란에 게재하면서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둘째의 도전은 이슬람의 활동이다고 말하고 현재 국내의 무슬림 수가 21만명이지만 2050년에 이르면 개신교 신자 수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고 우려하고 있다. 셋째는 동성애 문제와 동성혼 문제인데 정치계에서도 이를 합법화 하려는 법제화 하려는 경향에 한국교회가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넷째는 한국교회 세속화 문제로 한국교회가 다같이 각성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제 포스코로나 이후에는 가나안 성도도 있지만 교인 대부분이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의 수평이동이 빈번하여 새신자 전도는 적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미래 전망은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며 가르쳐 온 학자의 양심에서 우러난 한국교회를 향한 충정어린 충고이자 아끼고 사랑하는 한국교회 미래지향적인 염려에서 나온 발상이다고 간주하고 싶다. 이상규 박사는 1952년 경북 영주시 안정면 용산리에서 아버지 이창, 어머니 박귀돌 사이에 태어났다. 그 때는 6.25 전쟁 중이라 출생신고를 늦게 하여 호적나이로는 1952년 12월 13일로 되어 있다. 이 박사가 호주 유학길에 가기 전 부산 초량교회 최동진 목사 시무시절에 출석하고 있었다. 마침 그 초량교회 시무했던 성창기업 정태성 장로(성창기업 창업자이자 한국기독실업인회 초대 회장 역임)가 그가 소속한 부산기독실업인회 회장 시절 총무는 정금출 장로(2022년 작고)가 회 이름으로 호주 유학길 장학금을 전달할 그 때 당시 필자가 교계기자로 취재한 기억이 났다. 1987년 2월 호주 유학길에 올라 호주 신학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1990년 3월부터 고신대학교에서 만36년간 교수로 사역한 후 2018년 2월에 정년 퇴임하면서 기념 논문집 ‘한국교회와 개혁신학, 내가 살아 온 날들’을 기념 논문으로 펴냈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부산에 사는 누님 집에서 잠시 지낼 때 1970년 4월에 창간한 함석헌옹의 ‘씨알의 소리와 기독교 사상’과 1969년 7월부터 안병무 교수가 창간한 ‘현존’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신학대학 교수와 우찌무라 간죠의 영향 아래 김교신의 영향을 많이 입었던 함석헌옹의 ‘씨알의 소리’와 장준하 선생이 창간한 사상계가 그의 역사 사고를 엮어 준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1975년 고려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학 과정을 고려신학대학원에 이어 신학석사 과정을 마칠 때부터는 보수주의 신학의 칼빈의 개혁신학에 심취하여 180도로 보수주의 신학을 위해 호주 유학을 떠났지 아니했겠는가 필부 노인 장로는 조심스럽게 진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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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20
  • [목회자칼럼] 틈 속에서 숨을 쉬는 생명력
    길을 걷다 우연히 바라본 아스팔트 위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아직 차가운 바람이 불고 생명은 꽁꽁 얼어버린 것만 같은 추운 날씨에 따뜻한 온기를 품은 보랏빛 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아스팔트 위 차가운 시멘트로 뒤덮인 벽돌과 벽돌 사이 그 작은 틈 속에서 생명이 꿈틀 거리고 있었습니다. 작고 작은 틈 속에서 약하게만 보이는 꽃이 강인한 생명을 갖고 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약하게 보이는 식물이라도 강한 생명력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생명력은 어떨까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재되어 있는 거대한 생명력이 숨쉬고 있을 것입니다. 이 생명력이라는 것이 때로는 환한 빛 속에서 찬란하게 잉태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스팔트 위에서 본 보랏빛 꽃처럼 좁은 틈과 틈 사이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빠르게 달리고 지나 그 속도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이 생명은 땅 속에서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숨을 쉬고 있습니다. 세상은 틈이 생기고 균형이 깨지면 곧 망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오히려 생명력은 허물어진 틈 속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습니다. 빈틈은 상대방의 공격을 허락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내 안에서 생명을 탄생시키는 문이 되기도 합니다. 이 말은 나의 약함이 오히려 주님을 의지해 새로운 생명을 낳는 힘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 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이름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도 아등바등하며 지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땅에서 생명을 주실 예수님을 기대하며 그 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예수님을 용납하지는 않았습니다. 틈과 흠이 있는 자만이 예수님을 용납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흠과 틈이 있는 자만이 예수님을 사모합니다. 흠과 틈이 있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하지만, 목회자로 섬기고 있는 나는, 성도의 흠과 틈도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예수님을 나의 생명으로 여기지 못할 잘못을 범할 때도 있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겨울 캠프를 섬기면서 흠이 많아 보이는 아이들, 틈이 많아 보이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멈추었습니다. 흠과 틈이 많은 저 아이들의 깊은 내면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청소년들 안에 있는 생명이 보이는 순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말씀을 계속해서 전했고, 기도회를 통해 아이들의 틈 속에 있는 생명이 발현되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긍휼과 은혜로 생명이 살아났습니다. 청소년 캠프뿐만 아니라 장년들을 위한 세미에서도 고통의 틈이 많고, 아픔의 흠이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깊은 틈과 거친 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바로 “나”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틈과 흠을 있는 그대로 용납해주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내가 받은 용납과 사랑은 내가 하는 사랑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하고 큰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무 자주, 쉽게, 그 사랑을 잊으며 다른 사람 용납하기를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까이 있는 공동체, 자녀 심지어 배우자까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제, 2023년 1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한 걸음 더 나아가며 용납하는 자로 살기를 바랍니다. 내가 100만큼의 틈을 용납 받았으니, 다른 사람의 10만큼의 틈을 용납하며 생명을 살리는 자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2023년을 마무리 할 때는, 내 속에 ‘사랑의 흔적’ ‘용납의 흔적’이 자리잡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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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20
  • [김성철목사] 가상공간(VR)이 만들 1평의 기적 시대를 준비하자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 많은 부분이 이전 일상으로 회복되고 있다. 변화된 것은 코로나시기에 경험했던 재택근무나 온라인 대면 문화인 온택트(ontact) 문화가 새로운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2022년 2학기 컴퓨터 강의를 진행하면서 현장과 온택트 이원 체계로 강의를 진행하였다. 현장에 온 학생들은 직접 노트북을 가지고 예전처럼 컴퓨터를 배웠다. 반면 온택트에 참여한 학생들은 집에 있는 컴퓨터 앞에서 현장과 연결된 화상을 통해 강의를 듣고 공유된 화면을 보면서 컴퓨터를 배웠다. 현장과 온택트 구분 없이 질문하고 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온택트 문화는 거리라는 공간적 난관을 극복하고 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실습을 요하는 컴퓨터 강의에 큰 어려움이 없다면 성경공부나 기도회 등의 교회 모임도 더 쉽게 이원 체계를 통한 서비스가 가능하다. 교회 지도자들은 거리 때문에 참석이 어려운 성도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현장과 온택트 서비스를 함께 진행하는 것도 고려하면 좋겠다. 머지않아 새로운 일상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 또 하나의 문화가 VR 문화이다. VR은 가상현실을 뜻하는 Virtual Reality의 약자이다. VR은 이전에도 몇 차례 시도되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VR기술의 획기적인 발달로 머지않아 또 하나의 일상문화가 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 주고 있다. 2021년 11월에 다시 만난 VR문화는 우리 부부의 일상에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변화를 주었다. VR문화는 우리 부부에게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서로 다른 가상공간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를 한다. 나는 VR탁구장에서 탁구경기를 즐기고 아내는 가상 공간에 펼쳐진 큰 체육관에서 강사들의 지도를 받으며 다양한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를 한다. 탁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취미를 실천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1시간 운동을 위하여 준비하고 이동하고 샤워하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은 바쁜 일상 속에서 큰 마음을 먹지 않으면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VR은 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었다. 가로 세로 1평의 공간만 있다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운동복을 갈아입고 VR만 착용하면 1평의 공간은 가상공간 안에 완벽한 탁구장을 제공한다. 그곳에는 언제나 함께 운동할 전 세계의 탁구인들이 모여 있다. 실제 탁구장에서 운동하는 것과 90% 이상의 만족감을 느낀다.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주변 목회자들에게 이야기해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얼마 전 자주 만나는 분들과 내가 사용하는 VR기기로 체험의 시간을 가졌다. 한 목회자는 가상현실에 펼쳐진 탁구대가 실제 있는 줄 알고 손을 짚었다가 앞으로 넘어지는 일이 생길 정도로 실제처럼 보인다. 앞으로 공간을 찾아서 움직이는 일은 급격하게 줄어 들것이다. 사이버 공간이 제공하는 1평의 기적을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1평의 공간만 있으면 프라이빗 영화관이 되기도 하고, 체육관이 되기도 한다. 멋진 풍경과 함께하는 회의장과 업무공간을 열 수 있다. VR문화는 이동하지 않고 필요한 공간에서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만든다. VR문화가 일반화되면 지금까지의 교회의 활동에 더하여 평일에도 시간과 공간에 제한되지 않는 실질적인 성도의 코이노니아가 가능하도록 그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다. 평일에 이동에 필요한 시간과 재정을 절약하고 가상공간에서 성경공부를 하거나 취미가 같은 성도들이 평일 교제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다. 청년 모임 중 하나로 사이버 공간에 함께 모여 같은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나눔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특히 미래세대를 고민하는 교역자들은 앞서 그들의 일상이 될 문화 속으로 들어가서 준비하여 그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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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3-01-20
  • [이상규교수의역사탐색] 조만식 장로와 주기철 목사
    이런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주기철 목사가 평양 산정현교회에 시무할 때였다. 예배가 시작되고 나서 10여분 지났을 때 조만식 장로가 터벅터벅 예배당 안으로 들어왔다. 예배를 인도하던 주기철 목사는 모범을 보여야 할 시무장로가 예배시간에 지각을 했으니 덕이 안 된다며 ‘조 장로님은 뒤에 서서 예배를 드리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때 조만식 장로는 묵묵히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진위에 대한 확인 없이 설교자들에 의해 유통되었고, 이것저것 살을 붙어 이야기는 보다 극적으로 확대되었다. 그가 예배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은 갑자기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잠시 대화하다 보니 그만 예배시간에 늦어졌다며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였고, 설교가 끝난 후 주기철 목사는 다시 조만식 장로에게 ‘ 앞으로 나오셔서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했다고 살을 붙였다. 그래서 앞으로 걸어 나온 조 장로는 울먹거리면서 기도했다며 기도내용까지 첨가했다. ‘하나님, 이 죄인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죄인이 애국운동을 한답시고 사람을 만나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시간에 늦고 말았습니다. 목사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면 설교하던 도중에 이토록 책망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종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은혜스러운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 은혜 받는 것을 방해한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교인들이 함께 통회 자복하는 기도회로 번졌고, 교회 부흥의 시발이 되었다며 기발하게 각색을 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사실일까? 조만식 장로, 주기철 목사, 그리고 산정현교회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한 사람이 장기려 박사였다. 그래서 그에게 회자되고 있는 이 이야기에 대해 물었다. 장기려 박사는 한마디로 단언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 같지도 않는 말이라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말할 가치조차 없는 허구라는 의미였다. 누군가에 의해 꾸며낸 이 이야기는 조만식 장로와 주기철 목사의 인격을 모독하고 있고, 올곧은 신앙으로 한국교회를 깨웠던 산정현교회를 모욕하고 있다. 주기철 목사가 우리민족의 큰 어른에게 그처럼 무례하게 대하는 무지한 목사가 아니었고, 조만식 장로는 예배시간을 놓치는 그런 규모 없는 장로가 아니었다. 고당(古堂) 조만식(1883-1950) 장로는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인물이자 규모 있고 절제된 삶을 사셨던 민족지도자였다. 평생 한복을 입고 다니며 국산품애용이 나라 사랑의 지름길이라며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하신 어른이셨다. 1905년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여 1908년 졸업하고, 6월 일본 도쿄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서 수학했다. 1911년에는 메이지(明治)대학 법학부에 진학했는데, 이때 김성수, 송진우 등을 만나 교우관계를 맺었다. 미국유학을 준비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한 그는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취임했다. 이후 교감을 거쳐 1915년 교장이 되었는데, 이때 주기철은 학생이었다. 조만식은 3·1운동에 가담한 일로 평양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0년 1월 만기를 1개월 앞두고 가출옥했다. 그해 10월 다시 오산학교 교장으로 취임했으나, 일제가 교장 취임을 승인하지 않아 1년 만인 1921년 4월 사임했다. 1925년 4월 다시 오산학교 교장으로 취임했지만 1년 만에 6·10만세운동으로 교장직에서 물러났다.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에서 일했고, 1945년 11월에는 조선민주당을 창당하여 반공노선을 걸으며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그가 1904년 경부터 한정교의 권유로 평양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에 출석하면서 기독교 신자가 되었는데, 1906년 산정현교회로 분리될 때 이 교회로 옮겨갔고, 1921년에는 집사가 되었다. 당시 강규찬 목사가 담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22년 12월 그의 나이 39세 때 장로가 되었다. 집사가 된지 1년 만에 장로가 된 것은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진해 웅천 출신인 주기철(1897-1944) 목사는 조만식 문하의 오산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에서 한 학기 수학한 후 1925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초량교회를 거쳐 1931년 마산 문창교회에 부임하여 5년간 일하고 1936년 10월, 평양 산정현교회에 부임했다. 39세 때였다. 당시 산정현교회 장로는 조만식을 비롯하여 김동원, 김찬두, 박정익, 변홍삼, 오윤선, 최정서 등 한국교회와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 당시 주기철 목사는 엘리트 목사였고, 어른을 존경하고 존중할 줄 아는 목사였다. 예배 시간 늦었다고 14살이나 많은 어른 장로에게 서서 예배 드리라고 말할 만큼 무례한 목사가 아니었다. 조만식 장로는 주일 아침 사람을 만난다고 예배시간을 어기는 그런 허술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신앙과 애국이라는 두 영토에 굳게 서서 싸웠고, 소련군 사령부에 끌려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기에 평양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은 것이다.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 이들은 예의범절을 소중하게 여기며 서로를 존중했던 지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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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01-20
  • [안동철 목사] 천안 예수상 건립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대강절 기간 중인 12월 5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있는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한국기독교기념관 홍보관 및 예수 조형물 착공 감사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모 인사는 “케이팝에 열광하는 전 세계인들이 한국에 왔다가 기독교기념관을 방문한 뒤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일에 작은 도구가 되길 바란다.”는 계획을 밝혔다. 보도에 의하면 한국기독교기념관은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일대 65,000여 평 부지에 총 사업비 1조 80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짓는다고 한다. 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기독교 테마파크로 기념관 내에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예수상보다 훨씬 더 큰 예수상을 세운다고 한다. 브라질에 있는 예수상은 정식 명칭이 ‘구세주 그리스도상’인데, 높이 710m의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 높이 30m, 양팔의 길이 28m, 무게 635t 규모를 자랑한다.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을 상징하고, 에펠탑이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듯이 이 예수상은 리우데자네이루를 넘어 브라질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 착안했는지 천안에 만들 예수상의 규모가 엄청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보다 3배나 더 큰 92m 예수상을 만들겠다고 한 것이다. 이날 참석한 교계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는 왜 이 프로젝트가 필요한지를 말했지만 아무리 좋게 봐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금지하는 일이다.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은 분명히 말씀한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4~5상). 물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쪽에서는 이 예수상은 우상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역사는 이런 생각에 반하는 길을 걸어왔다. 항상 거대한 형상은 우상숭배로 연결되었다. 그랬기에 종교개혁자들은 과도할 만큼 교회당 안에 모든 성상을 없앴고, 십자가까지 우상화될 수 있어서 교회당에 설치하기를 꺼려했다. 둘째, 규모의 논리는 전혀 복음적이지 않다. 지금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쪽에는 92m나 되는 예수상을 보러 온 사람들이 결국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이 거대한 예수상 앞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이들의 주장대로 케이팝에 열광한 사람들이 거대한 예수상으로 인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반복음적이다. 기독교 복음은 거대한 예수상이 아닌 말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지향한다. 세상의 종교들처럼 거대한 교주의 무덤이 아닌 빈무덤을 자랑한다. 기독교는 규모의 논리를 거부한다. 셋째, 상업적 생각이 가득한 이 프로젝트는 중단되어야 한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총 공사비가 1조 800억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엄청난 재정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가? 아마도 이 정도 천문학적 금액이면 교회의 헌금으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사업자가 붙을 것이고, 여러 사업에 따른 각종 이윤을 추구하는 이런저런 방식이 개입되지 않겠는가? 이미 이런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말 부정적으로만 본다면 ‘예수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데 교회가 이런 일에 함께 하는 것이 맞는가? 이런 이유로 이 사업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엄청난 돈을 들여 거대한 건물을 짓는 것보다 교회의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이다. 또한 세속화되고, 반기독교적 정서가 강한 우리 사회의 물줄기를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이 낮아져서 인간이 되신 ‘성육신 정신’이 필요하다. 이런 거대한 예수상을 짓는데 시간과 막대한 돈을 쓸 여유가 없다. 천안의 거대한 예수상 건립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 오피니언
    • 정론
    2023-01-05
  • [성서연구] 끝에서 보는 시작
    지난 12월 3일 우리나라와 포르투갈의 월드컵 예선 3차전이 있었는데, 우리가 2대 1로 승리했습니다. 같은 시간에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2대 0으로 승리했지만, 골득실에 밀려 탈락했고, 우리가 16강에 진출했습니다.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에 우루과이 선수들은 주저앉았고, 우리 선수들을 얼싸안고 기뻐했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포르투갈 선수들은 끝났고, 우리에게는 다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라디아 4장 4절에 <때가 차매>란 구절이 있습니다. 원문의 뜻은 <시간의 충만이 오다>란 뜻입니다. 마치 경기 종료 휘슬 소리가 울리는 순간과 같습니다. 이기고 있는 팀은 휘슬 소리에 기뻐하지만, 지는 팀은 낙심합니다. 휘슬 소리가 어떤 이에게는 절망으로, 어떤 이에게는 소망으로 다가옵니다. 본문의 <때가 차매>도 그러한 순간입니다. 세상의 휘슬 소리는 종말의 선언입니다. 종말은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에 슬픕니다. 그렇다면 소망과 기쁨의 휘슬 소리는 없는 것일까요?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휘슬 소리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못 박힌 행악자의 인생은 십자가 위에서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꿈도, 욕망도, 열정도, 분노도 거친 한 모금의 호흡과 함께 끝날 상황이었습니다. 누가복음이 이 사람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 안에 있으면 끝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는 소리임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놀랍게도 이 사람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호소하는 행악자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행악자에게 낙원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끝을 시작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종말은 시작으로 바뀝니다. 주님은 처음이요, 시작이요, 알파이십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심으로 우리의 죄악의 삶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삼 년 동안 열매가 없었고, 포도원지기에게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지기가 호소했습니다. 한 해만 더 기회를 주면 두루 파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잘 기르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찍혀나가야 할 끝에서 한 해 더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은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주님 안에서 우리 인생의 끝인 죽음은 부활 생명이라는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끝난 곳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됩니다. 세상에서의 마지막 호흡이 멎는 그 순간, 우리는 천국의 공기를 호흡하게 될 것입니다. 아쉬움이 많은 2022년도가 끝나갑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맙시다. 예수님께서는 2022년도의 끝을 2023년의 시작으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비록 후회가 많더라도 새로운 용기로 2023년을 향해 나아가길 원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세 가지 결심을 해야 하겠습니다. 첫째, 묵은 것들, 우리를 패배하게 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단절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은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아멘.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와 단절해야 합니다. 둘째, 이어나가야 할 것은 계속 이어나가야 합니다. 선수들이 질 때도 국가대표인 것처럼, 잘 살지 못할 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했을 뿐입니다. 새해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축복을 계속 붙잡아야 합니다. 셋째, 새로운 시작을 위해 새로운 것들을 우리 삶에 받아들이길 원합니다.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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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2
  • [시사칼럼] 토끼와 묵상
    호주(Australia)의 ‘150년 전쟁’ 혹은 ‘회색 전쟁’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토끼” 때문에 벌어진 전쟁 같은 실화입니다. 1859년 거대한 미지의 대륙에 정착한 토마스 오스틴이라는 사람이 고향인 영국이 그리워 사냥용 토끼 24마리를 들여왔는데 이것이 발단이었습니다. 가공할만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토끼들은 순식간에 불어나서 농작물을 비롯한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은 토끼들을 없애기로 결심했고, 1870년 무렵엔 200만 마리 이상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이동이라도 막아보고자 1900년대에는 3,000km 넘는 울타리를 쳤건만 이 또한 곧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1920년대가 되자 토끼의 숫자는 100억 마리에 육박합니다. 이후 정부는 여우를 비롯한 천적도 동원해 보았고, 독극물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생물학자 파스퇴르까지 나서서 바이러스를 활용한 퇴치법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도 2~3억 마리 이상의 토끼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합니다.(『인간의 흑역사』(2019), 『재난 인류』(2022)) 토끼의 번식력과 생존력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해주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바로 그 “토끼”의 해 곧 ‘계묘(癸卯)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토끼는 동양에서 열두 종(種)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불릴 정도로 친숙할 뿐 아니라, 속담이나 격언에도 토끼가 등장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 다 놓친다”거나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노릇한다” 그리고 “토사구팽(兎死狗烹)”이나 “토의 간”(별주부전) 같은 익숙한 표현들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반면 서양의 중세시대에 토끼는 의외로 악당이나 불한당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생긴 모양 때문에 회색토끼(hare)가 주로 그러했는데, 반대로 다산의 특성이나 온순한 이미지 덕분에 에덴동산이나 성모 같은 다수의 성화(聖畵)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람에 부활을 상징하는 동물로도 쓰였습니다. 베네치아의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가 1479년 완성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치에 있는 지붕 위에 두 마리 토끼가 보입니다. 그러나 뭐니 해도 토끼와 기독교 관계의 백미는 성경 속 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레 11:6, 신 14:7 참고)가 그러하고 여기서도 “새김질”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사실 토끼는 소나 양처럼 위가 서너 개라 소화를 위해서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동물(ruminant)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토끼가 “새김질”을 한다고 했습니다. 생물학적 지식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토끼가 쉴 새 없이 입을 오물거리는 모양을 보고 여타 반추동물처럼 되새김질을 하는 것으로 표현했을 뿐이라는 견해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성경은 고대인이 쓴 비과학적 기록이며 오류투성이의 문서일 뿐입니다. 그런데 1972년 독일의 동물학자 그리지멕(Grizimek) 박사가 편찬한 동물백과사전에는 토끼를 ‘유사되새김질(pseudo-rumination)’을 하는 반추동물의 일종으로 분류해 두었습니다. 1880년대부터 이미 토끼가 비타민이 풍부한 특수한 물질(씨코트로프, caecotroph)을 밤이나 새벽에 내놓고 이를 다시 새김질해서 소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현대과학이 19세기에 와서야 밝힌 사실을 3,500년 전에 기록한 ‘성경무오성’의 승리라고 찬사를 바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토끼가 “새김질”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새김질”은 ‘묵상’과 관련이 깊습니다. 한글성경이 침묵할 묵(黙)과 생각할 상(想)을 써서 번역한 이 말의 원어는 ‘하가’로 비둘기소리나 사람이 중얼거리고 속삭이는 모습을 가리키는 의성어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너무 많이 알려져 버린 일부 구절을 제외하고(시 1:2; 수 1:8 등) 해당 단어를 대부분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로 바꿨습니다(시 49:3, 119:97 등). 작은 소리로 읊조리려면 당연히 우물거리는 입 모양이 되겠지요(삼상 1:13). 일종의 “새김질”에 해당합니다. 물론 인간에게는 생물학적 의미의 새김질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의 새김질은 필요합니다. 질긴 풀이나 고기를 되새김질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꿀 같은 하나님 말씀을 되새김질해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 말씀이야말로 우리의 길이고 빛이며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토끼의 해라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잘 되었습니다. 올해야말로 제대로 “새김질”을 하는 원년이 되도록 목표를 정합시다. 주야로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을 우물거리면서 읊조리고 소화시킵시다. 그래서 영적으로 더 건강과 성숙을 얻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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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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