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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육칼럼] 아버지의 자녀양육 참여의 중요성
    전통적인 개념의 좋은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자녀를 덜 구속하며 주로 가정 밖에서 일을 하고 자녀의 양육이나 교육에 덜 개입하며 경제적인 지원을 했지만 오늘날 좋은 아버지는 자신의 발달은 물론 자녀의 발달과 사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책임을 수용하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동발달적 측면에서 볼 때 아버지의 양육행동이 어머니의 앙육행동과는 질적으로 다르며 자녀는 부모 모두에게 애착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아버지의 역할과 영향력을 중시하게 되었다. 또한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가하면서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갈 자녀들이 반드시 발달시켜야 할 안정애착과 사회성 발달, 인지 발달, 성취동기 육성과 성 역할 학습에 아버지가 미치는 영향을 많은 연구결과들이 밝히고 있다. 먼저, 아이들이 영아기에 주 양육자와 맺는 안정애착 즉 정서적 유대감은 양육자와의 신뢰로운 관계는 물론 이후 또래관계를 비롯해 모든 대인관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발달 영역이다. 쓰다듬어 주고, 놀아주는 사회적인 자극이 영아의 애착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아버지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영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이는 자녀의 대인관계는 물론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아버지는 자녀의 인지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유아의 인지발달에 도움을 주지만 그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아버지는 자녀의 놀이 상대로서 물리적인 기술을 통하여, 어머니는 따뜻한 돌봄을 통해서 자녀의 인지발달을 돕는다. 한 연구에서 아버지가 있어도 아동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아동과 아버지와 충분한 시간을 갖는 가정의 아동으로 나누어 연구한 결과 그 당시의 나이가 어릴수록, 그 기간이 길수록 지능과 학업성취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하고 있다. 많은 연구결과들은 아버지가 아동과 많은 시간을 가질수록, 그리고 아버지가 친절하며 따뜻하게 잘 놀아주고 격려해 줄수록 아동의 인지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끝으로 아버지들은 자녀들의 사회적 관계와 성취동기, 직업선택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이들의 발달시기에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주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언어적 소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자녀의 성취동기 발달에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이 안전하고 지지받는 환경에서 개방적인 탐색과 성취를 통해 자기주도성을 키워가도록 도울 때 자녀의 성취동기가 육성된다는 것이다. 자녀의 성 역할 학습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역할은 어머니보다 좀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남아는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통해 남성의 역할을 배우며, 여아는 아버지를 통해 남성에 대한 관심과 남성과의 친말한 관계형성에 대해 배우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따뜻하고 바람직한 양육과 보호는 자녀의 균형 잡힌 성장에 매우 중요하며 확고한 가치관이나 신념이 형성되지 않은 아동들은 부모의 태도와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여 흡수하며, 동일시 대상으로 중요한 아버지가 올바른 모델이 되고 자녀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아동의 바람직한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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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고신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의료인 박상은 원장
    박상은 안양샘병원 미션 원장이 지난 5일 베트남 의료선교 중 별세했다. 박상은 원장의 소천소식에 누구보다 놀란 교단은 고신. 박 원장은 분당샘물교회 출신으로 2015년 보건의 날 국가생명윤리 보건의료에 대한 공헌으로 국민포장을 수상한 바 있고, 2014년에는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가생명윤리 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돼 국가 생명윤리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다. 특히 아프리카 미래재단을 통해 아프리카 말라위, 집바브웨에 병원을 세우고 에이즈 예방사업, 모자보건 사업, 간호대학, 의과대학을 설립해 그들 스스로가 의사와 간호사가 되어 의료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자립하는 일도 진행해 왔다. 197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당시 봉사단체인 한국누가회 모임을 만든 장본인이며, 누가회를 통해 의료선교에 열정을 쏟은 인물이다. 복음병원과는 과거 1980년대 장기려 박사 밑에서 수련의 과정을 거친 바 있고, 장 박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5년 고려학원 이사회(당시 이사장 강영안 장로)는 당시 전광식 총장이 복음병원 새 병원장 후보로 제청한 박상은 원장을 투표에 붙였지만 부결한 바 있다. 당시 임상교수들과 노동조합이 ‘외부인사 영입 반대’를 외친 것이 부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평생 환자를 섬기며, 선교에 열정적이었던 박상은 원장. 갑작스런 별세 소식에 많은 기독 의료인과 고신교단 인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안양샘병원은 예정돼 있던 개원 기념행사 등을 전면 취소하고, 오는 12일까지를 애도 기간으로 지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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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총신대 재단 이사 사임한 소강석 목사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총신대 재단 이사직을 사임했다. 소 목사는 “제104회 총회에서 총신대 재단 이사 증원(30인)을 결의했음에도 재단 이사회에서 총회 결의를 이행하지 않았고, 제108회 총회에서도 이에 대해 발언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며 “총신대 재단 이사회 정상화를 이룬 105회 총회장으로서 양심상 재단 이사직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사임 이유를 밝혔다. 소강석 목사는 임기는 2025년 4월 8일까지였으나 약 1년 5개월을 남기고 사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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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어딜 가나 ‘말썽’인 신천지
    이단 신천지가 12일 대구에 집합한다. 신천지 114기 수료식이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리는데, 약 9만명, 버스 2000대가 집결할 예정이다. 작년에도 대형버스 2,900여대가 동시에 움직여 교통체증 관련 100건이 넘는 민원이 쏟아진바 있다. 수천대의 대형버스 등이 넓은 부지를 찾아 달성군 구지면으로 이동해 주차를 했는데, 버스들이 약속한 장소를 벗어나 다른 구역에 불법주차를 하면서 교통체증이 발생하자 다수의 민원이 발생한 것. 작년과 마찬가지로 신천지 반대집회도 계획되어 있다. 신천지 반대집회는 대구 스타디움 인근 경기장 네거리 일대에서 반대집회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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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11-10
  • 분열의 속성을 못 버린 한국교회 연합운동 현 주소
    부산교계의 연합기관 분열 상태나 수도권 중심의 교계 연합단체 분열상태가어지 그리 닮은 꼴인가? 지난 11월 8일 오전 11시 영도성결교회에서 개최된 부산복음화운동본부 설립 9주년 기념 성회에 참석해 이모저모 이야기를 주어 담아 보았다. 이날 기념성회 책자 표지에 함께하는 기관 이름을 나열된 면면을 보니 수도권이나 부산권 교계의 상황이 별 다르지 않다. 부산기독교총연합회, 부산교회총연합, 부산자유기독인총연합회나 수도권의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이하 한교총),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장서영 목사, 이하 한기총)이 닮았다. 서로 대립과 반목으로 통합의 꿈은 요원하고 최근 하나되는 것을 무기한 유보를 선언하고 말았다. 지난 3년간 열렬히 추진되던 통합의 능선이 가까이 다가선 듯 했지만 통합의 의지는 실패하고 숙제로 남겨두고 말았다. 한편 제2 도시라는 부산 교계의 통합 움직임도 아예 안개속으로 사라져 그렇게도 자랑하던 광복동 트리축제는 2년 전부터 내부 비리와 고발건으로 좌절된 채 관할 중구청이 맡아 트리축제가 아닌 일반인들 축제로 모습이 변하고 말았다. 부산광역시 박형준 시장은 광복동 트리축제를 본래의 모습으로 계승하려면 부산 교계 연합단체가 하나로 통합해야만 부산시에서 축제 기부금 약5억원을 지원할 수 있다고 공개석상에서 말한 바 있다. 보란 듯이 물 건너 가 버렸다. 그런데 부산교계의 연합 운동 단체는 42년간 긴 역사 속에서 하나로 이어져 왔지만 광복동 트리 축제 과정에서 자체 재정적 의혹 비리로 인해 아예 대화의 열기마저 문을 닫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신선하게 나타난 것이 2014년경 부산교계 연합운동(부기총)의 주역이었던 원로들이 ‘나라사랑기도회’를 시작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 시작되었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하여 ‘나라사랑기도회’와 전도운동이 더해져 ‘부산복음화운동본부’가 발족했다. 과거 부기총 대표회장을 역임했던 증경 회장들인 박선제 목사, 이재완 목사, 석준복 감독, 윤종남 목사, 김창영 목사가 발기 모임으로 출발한 것이 오늘 설립 9주년을 맞은 부산복음화운동본부이다. 신선한 바람을 타고 부산 교계에 성시화운동본부와 양대 산맥으로 우뚝 존립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부기총 대표회장을 역임했던 원로들이 부산교계와 하나님 앞에 죄책 고백의 선물로 부산교계에 전도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무너져 간 부산교계 연합운동의 대타로 세운 운동체가 바로 부산복음화운동본부로 출발되어진 것이다. 박산제 목사는 이날 격려사를 통해 “나이든 분들이 무슨 정치를 하겠는가? 첫째 나라사랑, 둘째 영혼구원. 오로지 2가지 목표를 향해 전심으로 달려왔다”고 말하면서 진심이 담긴 격려로 피력했다. 부희연 대표회장 이건재 목사도 축사를 통해 “이 전도운동은 순교자 다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것이다”고 격찬했다. 이날 핵심이었던 설교에서 김문훈 목사는 “포도원교회 어느 집사는 10년 동안 중고교 학생들 4천명을 전도했는데 원불교(원망하거나 불평하지도 않고 교만도 하지 않는) 오직 전도에만 집중하여 매일 학교 앞에서 전도의 열을 올려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과거 복음병원에서 폐암으로 한달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죽을 때 죽더라도 두려워 하지 않고, 졸지도 않고 절제하면서 견뎌왔다”고 말했다. 또 “하박국 말씀처럼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으로 전환시켜 주시는 분이 하나님 한 분이시다. 예수 이름으로 나아갔더니 성전을 4개처(드림센터 본부성전, 화명성전, 덕천성전, 양산쉼터) 천억원 이상으로 전도폭발로 부흥시켜 주셨다. 이런 기적을 이룩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면 된다는 긍정 마인드로 출발해서 용기를 얻어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시킨 발상과 믿음으로 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자신의 신앙 간증을 고백하여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날 김문훈 목사가 “한국기독신문 대표인 신이건 장로가 지금으로부터 20년전 부산 교계에 3K, 김문훈 목사, 김운성 목사, 김성곤 목사가 부산 교계에 부흥의 불꽃을 태울 것이라고 3개 교단(고신, 통합, 합동) 부산노회 연합 남전도회연합회 집회가 열린 광복교회에서 한 말이 현실이 된 것 같다”며 과거를 회상하면서 말했다. 김 목사는 고신대 복음병원 부속 의과대학 교목에 지나지 않았던 분이 갑자기 건강에 적신호가 나서 아파트 한 채 값 가량으로 수술을 하고서야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치유의 역사가 시작된 날로부터 오늘날까지 전국적인 부흥 강사로, 방송 트로이카로 등장하여 한국교회에 전도의 바람을 불게 했다. 그런 분을 부산복음화운동본부 주강사로 초청 했다면서 사회자 정명운 목사(부산복음화운동본부 사무총장, 금사교회 담임)가 김목사를 소개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감투 욕으로 만들어 낸 연합운동의 현주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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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목회자칼럼] 한적한 곳, 기도하사
    예수님의 일정을 보면 놀랍다. 저물어 해가 지도록 모든 병자들을 고치고 많은 귀신들을 내쫓았다. 다음날 새벽,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밤늦도록 여러 병든 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셨다. 분주한 일정과 수많은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그 다음날 새벽에는 피로에 지쳐서 일어나기가 힘들텐데 예수님은 새벽미명에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나가서 하나님과 단둘이 만났다. 움직이는 거리를 보면 온 동네를 두루두루 다니시며 각종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았다. 일이 많아서 피곤한 것이 아니고, 관계가 불편할 때 힘이 든다. 거리가 멀어서 힘든 게 아니고, 마음이 멀 때에 몸도 멀어진다. 예수님은 경천애인 하셨다.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각종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아 주셨다. 예수님의 3대 사역이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고치시는 것이었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이 바뀌고, 가정이 회복되고, 문화가 변혁된다.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된다(마28:20). 예수님은 못 고치시는 병이 없었다. 모든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악하고 더러운 귀신에게 시달리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내쫓아주셨다. 그렇게 수많은 환자들을 상대하며 육체적으로 시달리고, 감정소모가 극심했지만 예수님은 짜증내지 않고 본심으로, 사명으로, 기쁨으로 일하셨다. 사람들을 만나, 일들을 쳐내는 것보다 하나님 아버지와 단둘이 만나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이 휴식이요, 회복이요, 배터리 충전이었다. 제자들에게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고 하셨다(막6:30,31). 다윗의 라마나욧 같은 한적한 곳에 가서 성령 충만 받아야 한다. 우리가 매여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으로 착각해서 내가 모든 것을 관여하지 않으면 세상이 안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겨 버리라.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고, 교제다. 모든 관계의 시작과 끝이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야 해결이 된다. 내 컨디션, 내 일정이 우선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고, 하나님 역사하심을 기대하고 기다리라. 하루의 골든타임에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주님을 독대, 직고, 대면하라. 하나님과 통친합락(通親合樂)하라. 돌려막기로 땜방을 하지마라. 일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분주한 일정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나를 잃어버리기가 쉽다. 예수님은 사역보다도 아버지와 단 둘이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다. 아버지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주의 일을 할 수 있다. 제목을 두고 기도하라. 내 컨디션이 중요하고, 내 일정이 중요하면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 틈이 없다. 내 컨디션보다 하나님의 역사가 먼저이기 때문에 힘들수록 기도해야 된다. 일을 해도 힘이 빠지고 감정이 소비되는 일이 있고, 해도해도 지치지 않는 일이 있다. 그것이 헛된 일과 사명의 차이다. 예수님의 일정과 사역을 보면 영혼구원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시 하셨다. 우리도 세월을 아끼고, 알찬 생활을 하고,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복음전파와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야 된다.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이다. 연민의 눈길을 가지고 이웃의 사람들을 바라보라. 그때 사랑의 손길을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 있을 것이다. 기도가 사역이다. 시간이 있을 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바쁘고 힘들 때, 시간을 뚝 잘라서, 한적한 곳으로 나가서, 오히려 사람들을 피하고, 주님과 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져야 된다. 주님과 나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느슨해지면 마귀가 틈을 타기 때문이다. 시간이 남아돌 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바쁠 때 기도하면 하나님의 본심을 깨닫게 되고,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 일에 치이고 사람들에게 부대끼며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으로 마음중심을 잡게 된다. 바쁠수록 기도해야 허둥거리지 않는다. 기도가 사랑이다(시109:4). 인간적인 열정으로 사랑하면 상처받고, 기대하면 실망하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게 된다. 그런데 도끼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반응에 목을 맨다면 얼마나 가련한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주신다. 기도 없는 사랑은 절반이다. 우리가 부모님의 눈물의 기도 덕분에 살아가는 것이다. 기도는 전쟁이다. 출17장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르비딤에서 싸울 때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모세의 팔이 피곤할 때,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무찔렀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를 쉬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 가정에 위기가 오고, 일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골든타임을 놓치기가 쉽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기도하는 것을 방해한다. 성경에서 새벽기도의 모범을 보이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믿음의 용사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이다. 얍복강에서 야곱의 씨름, 산꼭대기에서 모세의 두손, 다니엘의 기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금식기도, 죽을병이 걸린 히스기야의 면벽기도, 성벽을 재건한 느헤미야의 기도, 한나의 기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한 고넬료... 시편57:8에서 다윗은 새벽을 깨웠다. 학개서 1장을 보면 사람들이 아프고, 병들고, 가난하고, 한재가 든 이유가 나타난다(학1~6,9~11). 믿음이 부족한 부모가 예배를 소홀히 하니 자녀들도 하나님을 떠나고 구멍이 뚫어진 전대와 같이 돈이 모이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자녀교육을 하니 가뭄이 들어 수고하는 모든 일에 열매가 없다. 일보다, 사역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새벽기도 시간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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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한국기독교여자절제회와 여귀옥 여사
    대한여자절제회는 1923년 9월 조직된 이래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했으나 1939년 일제의 간섭으로 ‘절제회’를 ‘교풍회(矯風會)’로 개칭하게 된다는 점을 앞에서 지적했다. 절제운동은 사실상 계몽운동이자 정신적 갱신운동으로 일종의 민족운동의 성격이 있었다. 일제는 술과 담배는 물론 아편까지 허용하고 있었는데, 여자절제회가 금주 단연운동을 전개하는 일에 대하여 내심 불만이었다. 저들의 우민정책에 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절제’라는 용어 대신 ‘교풍’이라는 용어로 명칭을 변경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아 절제회의 전통을 따라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고, 1950년에는 미국에서 열리는 절제회세계대회에 홍 에스더 여사를 파송하는 등 활동을 재개했다. 1952년 2월 24일에는 서울시 절제회를 조직한 이래 여자절제회 부산지회(3월 3일), 대구지회(8월 21일), 제주도지회(9월 27일), 인천지회(11월), 청주지회(12월 12일), 대전지회(12월 14일), 천안지회(12월 16일), 수원지회(12월 18일) 등이 조직되어 전국규모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 1953년 1월에는 대한여자절제회연합회 창립30주년 기념식과 제1회 전국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전국대회는 ‘힘차게 재건하라’는 주제로 부산 보수감리교회에서 개최되었는데, 참가인원은 1,647명에 달해 대성황이었다. 이때 회장은 홍에스더, 유각경, 부회장은 남궁함라, 최활란 여사였고 총무는 황애덕 여사였다. 이때 절제회보 제1호가 다시 발간되었고, 보다 적극적인 절제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전쟁 유가족을 위한 희망원을 설립하였고, 적극적인 금주 운동을 전개하고, 축첩 반대, 국산품 애용운동 등을 전개했다. 이 당시 금주운동 표어가 “술 냄새 없는 곳에 민족의 향기가 있다”, “남은 피 흘리는데 그대는 술 마시는가?”, “술잔 깨뜨리고 새살림 빚어내자”, “생활 혁신은 금주로부터” 등이었다. 1955년 이후에는 생활간소화운동, 복장 간소화 운동, 소년절제회 육성, 절제회 청소년 지도자 수양회, 전국남여 중고등학교 학생 금주 웅변대회 개최, 서독과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세계절제회대회 대표단 파송, 기독교여성 선거계몽 강연회 개최 등을 실시했다. 1957년에만 서울 부산대구 광주 전주 마산 청주 등 전국적으로 56회의 절제강연회를 개최했다. 1960년대에도 이런 사업은 계속되지만, 특히 절제회보를 발간하고 축첩자 반대운동, 신생활운동을 전개했고, 양주 제조장 허가 반대 진정서 65통을 정부 요로에 전달하였고, 미신타파운동을 전개하였다. 따지고 보면 여자절제회는 정신계몽운동이자 민족개조 운동이었다. 이런 여자절제회를 이끌어 온 역대 회장은 홍에스더(1대), 신형숙(2대), 최활란(3대), 유각경(4대), 최활란(5대), 홍에스더(6대), 김성무(7대), 최금봉(8대), 여귀옥(9대) 여사 등이었다. 해방 이후 여자절제회 운동에 크게 기여한 이가 여귀옥(1923-2006) 여사였다. 대구 출신으로 신명여고를 거쳐 1939년 평양여자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1941년 청년사업가인 김수근 씨와 혼인하였다. 그가 여자절제회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 초였다. 1952년에는 여자절제회 대구지회 이사가 되었고, 1957년 6월 11일 서울기독교연합회 회의실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라는 주제로 열린 제20회 절제회연합회 전국대회에 여귀옥 여사는 김순해, 한재동 여사와 같이 대구지회 대표로 참석했다. 절제운동의 이념과 정신에 깊이 동감했던 여귀옥 여사는 1959년에는 사비로 대구절제회관을 구입하였다. 1962년부터는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연합회 이사로 봉사했다. 철저하게 성경중심적으로 사셨던 여귀옥 여사는 신앙생활도 모범을 보이셨고 1965년 서울 영락교회 권사가 된다. 1966년 1월 서울 동자동의 절제회관 부지 구입 때는 가장 많은 800,000환을 기부하였고, 1969년에는 절제회의 강단 단상의 책상을 헌납했다. 1970년 절제회관을 건축할 당시에는 건축위원장으로 봉사하면서 172평의 대지에 건평 262평의 회관을 건축하게 되는데, 여귀옥 여사의 헌신의 결과였다. 1971년 1월 25일 신축된 절제회관에서 모인 총회에서 여자절제회연합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임되어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회장으로 봉사했다. 특히 절제회관 건립 후에는 절제장학재단을 설립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는데 이 장학사업은 그 후 50년간 계속되어 각종 전문직 종사자들과 목회자들을 배출했다. 그가 회장으로 재임하는 기간동안 통상적인 절제회 사업 외에도 1980년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 세계대회에 참석하면서 세계절제 운동에도 동참하여 국제적으로 헌신했다. 그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2006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는데, 뒤돌아보면 그가 절제회를 위해 일한 기간은 60여년에 달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일생을 살았고,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여 저명한 화가인 김영주 여사,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연세대학교 특임교수를 역임하신 김정주 박사, 제28대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하신 김성주 회장, 대성그룹의 김영훈 회장이 그 선대의 신앙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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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11-10
  • [전영헌 목사] 학교를 포기하지 마십시요
    우리 학교(브니엘예술고) 교문을 들어서면 돌비에 새겨진 교훈을 보게 된다. 우리 학교 교훈은 좀 특별하다. 무엇보다 아주 길다. 1.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2.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3. 나는 웃는 자와 같이 웃고, 우는 자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련다. 4. 나는 조국과 인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학생들은 교훈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학교 교훈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교훈은 그 학교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따라서 교훈을 통해 우리 학교가 어떤 정신에서 출발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6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굴곡을 지나온 우리 학교지만, 다른 미션 스쿨과는 달리 아직도 종교라는 교과목을 통하여 신앙 교육을 하고 있고, 아이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중생회’(BORN AGAIN)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기독교에 대해 거의 안티 수준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학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생회 때마다 회심하는 아이들이 수십 명씩 나온다는 점이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항복하고 엎드리는 아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된다. 나는 학교에 부임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브니엘이 이 땅에 있는 또 하나의 학교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실 때에 유일한 학교로 사용되게 해 주십시오!” 나는 우리 학교 아이들이 학교의 교훈대로만 산다면 시대에 영향을 미치는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 학교 학생뿐 아니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학교의 교훈대로만 살아도 이 땅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날 것이다. 나는 다시 이 땅에 있는 미션 스쿨들이 설립 당시의 ‘처음 정신’으로 돌아가 신앙의 정체성을 다시 세워 나가기를 소망한다. 나는 아직 학교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대의 흐름상 종교 교육을 마음껏 할 수 있거나 학교에서 복음을 마음껏 전파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이유는 학교의 생명은 진학의 결과에 달려 있기 때문에 종교교육이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의 존재 목적이 단순히 대학 진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진학만큼이나 중요한 기능이 있다. 바로 ‘삶의 변화’이다. 그리고 내가 모든 관심을 쏟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우리 학교에 온 아이들이 성적 향상과 함께, 다른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 그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이이며 소명 의식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누구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션 스쿨에 속한 교사들만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같이 해야 한다. 과거 미션 스쿨들의 영광을 회복하고, 신앙의 전성기를 다시 맞이할 수 있도록 미션 스쿨을 위한 관심과 기도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 학원 선교는 학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교회와 믿음의 가정이 같이 해야 한다. 나는 90퍼센트의 학생이 불행한 교육적 상황에서 90퍼센트 이상의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 다시 한 번 미션 스쿨의 영광을 회복하고 싶다. 최근 SNS 담벼락에 학교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목사님 한분의 글을 보았다. 아니다 학교가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이다. 교회가 학교를 위해서 어떤 수고를 했는지, 교회가 기독교사들을 위해서 어떤 격려와 힘이 되어 주었는지...비판만 하고 말로만 소망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의 동산으로 만들 책임은 학교와 함께 교회에도 있는 것이다. 부탁드린다. 학교를 포기하지 마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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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소강석칼럼] “당신의 가을이 더 행복하길...”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넣으십시오. 많은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극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하략)” 이는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입니다. 여름이 그토록 길고 폭염의 나날들이었지만 정작 가을 문턱에 서니까 그래도 남극의 여름의 햇빛을 그리워하고 있는 시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폭염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어떻게든지 여름 햇빛을 피하려고 하였지만, 아직도 푸른 나뭇잎들은 여름 햇빛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햇빛이 강렬할수록 더 부지런히 광합성 작용을 하며 과일들은 단맛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뜨거운 햇빛이 여름의 꽃들을 피어나게 하였습니다. 지금 어디를 가든지 길가엔 과꽃, 패랭이, 초롱이 꽃들로 한창입니다.아니, 제가 산행하는 길에는 벌써 앙증맞게 코스모스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웬 시골 처녀가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수줍은 듯 서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화려하고 흠모할 만한 미의 자태를 갖춘 모습은 아니지만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순결한 작은 몸짓으로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지난, 8월의 뜨거운 햇빛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시원하게 될 수 없었노라고... 살아있는 모든 이들은 여름을 사랑해야 한다. 가을이 오면 올수록 지난 여름이 그리워질 것이라고...” 산행을 한 후 책상에 앉아 아까 전에 본 코스모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아니, 산 녘에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초가을에 피어난 꽃들의 미소가 제 가슴속에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침묵의 모국어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여름이 폭염의 계절이었다면 지금 맞는 가을은 당신에게 정염의 계절이 되기를 바래요. 지난 여름의 폭염이 오늘의 우리들을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듯이 이번에 맞는 가을은 당신에게 꼭 행복한 계절이 되기를 바래요. 가을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야 다시 오게 될 불볕더위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마침내 그 불볕더위가 그리워지고 그 더위 속에서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갑바도기아 대교부 중 한 사람인 닛사의 그레고리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 보훈을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는데(마5:8), 닛사의 그레고리는 이 청결한 마음이란 에덴동산에서 창조되었을 때의 본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을 회복하면 자연과 교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저절로 아름다운 시가 나오고 음악이 나오며 천재적 예술성을 발휘하는 영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신학자의 말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감히 이런 글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다시 산행을 한다면 이번에는 제가 꽃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그래, 너희들도 여름을 잘 견뎌냈지. 지난 여름에 불볕더위가 있었기에 오늘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지 않았느냐. 너희들도 가을이 오면 지난 여름을 더 그리워하게 될 거야. 그러나 짙은 가을이 온다고 아쉬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거라. 아직은 가을이지만 여전히 폭염을 일으키는 저 태양의 불꽃처럼 너희들도 이글거리는 삶을 살거라. 우리 모두 함께 가을이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정말 올 가을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 햇볕으로 인해 모두에게 가을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고 좋은 소식의 열매를 따 먹는 계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가을이 행복한 계절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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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0
  • [성서연구]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건 이글의 제목이며, 매우 중요한 명제입니다. 누가 물어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게 뭡니까?> 그러면 대답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명제는 너무 당연해서 이상하게 들릴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명제를 제목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세례 요한이 등장하셨을 때 많은 이들이 놀랐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요한의 존재와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서 그가 메시아인가를 질문했을 정도입니다. 많은 이들이 요한을 메시아로 여겼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맥락의 말씀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매우 심각한 어조로 <선생님에게 세례를 받는 그 예수라는 이가 세례를 베푸는데, 사람들이 다 예수에게로 간다.>고 말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로서는 이런 현상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요한에게 몰려왔는데, 이제는 예수님에게로 가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본문은 이 때 요한이 제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 즉 메시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제자들은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증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장차 요한의 제자들은 이렇게 말해야 하겠지요. <여러분, 더 이상 우리 요한 선생님을 찾지 마세요. 우리 선생님은 예수님의 길잡이일 뿐입니다. 진정한 메시아는 예수님이니, 그 분에게로 가세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요한의 제자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요한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의 위대함은 그가 빈들에서 성장한 것,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은 것, 능력의 말씀을 전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그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준 것 등이 아닙니다. 요한의 진정한 위대함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알고만 있었던 게 아니라, 본인의 입으로, 그리고 자기 제자들의 입으로 온 세상에 공표했습니다. 이것은 요한의 위대함이며, 동시에 요한이 후세에 끼친 최고의 공로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구주가 아닌 이를 구주로 혼돈하여 잘못 믿는 것을 방지하고, 올바른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바르게 믿도록 인도한 것입니다. 그가 침묵했다면, 사람들은 요한을 메시아로 믿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본질적인 것보다 비본질적인 것에 매달릴 때가 많습니다. 초기교회 성도들은 예배당 건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배당을 짓는데, 물질, 마음, 시간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예배당 유지 보수에 열을 올리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예수님을 믿는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예배당 유지 보수 위원회를 만들고, 운영규정을 만들고, 인선을 해서 조직을 갖춥니다. 그 과정에서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고, 예수님을 믿는 기쁨과 감사는 사라집니다. 열심히 회의를 모이고, 일을 하지만, 구원받은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주변의 변두리적인 것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재정과 시설물 관리, 선교와 봉사를 위한 조직 운영, 노회와 총회 조직 운영 등은 예수님을 믿는 본질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이심과 우리의 구주되심과 왕이심을 믿고, 천국의 백성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만 집중하길 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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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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