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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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JMS 2인자 정조은, 항소심도 징역 7년형
    JMS 2인자로 알려진 정조은(본명 김지선)이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은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12일 대전고법 제1형사부는 준유사강간 등의 혐으로 기소된 정조은과 JMS 민원국장 A씨에게 1심과 같은 징역 7년과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조은씨가 피해자를 관리해 오며 반항이 곤란한 상태임을 알고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봄이 타당하고, 행위에 동조한 점을 보면 정명석씨와 공동 범행 의사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정명석의 범행을 방조한 혐의로 1심에서 각각 1년 6개월과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던 수행비서 2명에 대해선 혐의가 충분히 입증 되지 않았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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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4-04-19
  • 두 섬 사람이 기획한 ‘한반도 세계 평화의 날’ 제정 추진 운동
    인류역사의 평화와 전쟁은 평화의 낙원 에덴에서 가인의 동생 아벨을 죽이는 형제전쟁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 인류는 마치 평화와 전쟁의 연속과 공존의 소용돌이로 이어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남 통영 한산도 섬과 욕지도 섬에서 출생하고 자란 두 노인네가 1953년 7월 27일 한반도 판문점에서 6.25 동족 전쟁 3년 1개월을 종식한 휴전협정일로 제정하고 다시는 한국과 UN이 세계 3차 전쟁 같은 한국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판문점 휴전협정의 그날(7월 27일)을 한반도 세계 평화의 날로 세계 속에 공포하는 추진 운동 본부를 두고 전개하는 노인들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한 분은 욕지 섬 노대 출신으로 고신 교단 역대 총회장을 역임한 조긍천 목사(92세)요, 다른 한 분은 한산도 섬 출신 KPWP(공익 사단법인 문화제단) 이사장 김형대 목사(88세)가 화제의 중심 인물이다. 조긍천 목사는 고신 총회 산하 법통 헌법과 법률에 능통한 학자 출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공익 법인 JRP문화재단 대표 고문이다. 김형대 목사는 법인 이사장으로서 한반도 세계평화의 날(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휴전협정일)로 여러 세계 나라에 공포하고 보은문화 및 평화문화 창달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지난 3월 26일 오전 11시 영도에 소재한 금성교회당에서 6.25 제74주년 국군 참전 국가 유공자회 부산시 지부, 영도구, 중구, 동구, 서구 지회 국가 유공자들 35여명을 초청하여 위로 문화 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6.25 메시지를 김병호 금성교회 담임목사가 전하고 영도구 김기재 구청장과 양준모 부산시의회 의원이 와서 축사를 했다. 또한 참전 국가 유공자들에게 선물을 증정하고 금성교회에서 마련한 오찬으로 대접했다. 김형대 이사장은 1차대전, 2차대전을 통한 인류의 처참한 죽음과 참상의 역사를 보면서 전쟁방지와 평화 수호를 위하여 창립된 UN연합국이 한국 전쟁 휴전 협정의 그날 7월 27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공포하고 다양한 보은 문화 행사와 사명을 다하고자 거의 90세 가까운 나이에도 국가와 세계 평화를 위해 온 몸을 받쳐 뛰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김 목사를 칭하여 부산교계 인사들은 “이 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행사를 펼치는 데는 그 어느 누구도 감당 못하는 교계의 1인자”라고 칭송하고 있다. 작사 김형대 “평화 통일 아리랑” 작사에 민요 아리랑에 곡을 붙여 부르기도 하는 팔방 인사로 유명하다. 아마도 국가에서 김 목사를 국가 문화 훈장 하나는 주고도 남음이 충분하다는 한국 교계 여론이다. 이렇게 섬 출신 인물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인사들이 한국 역사를 움직였던 과거사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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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24-04-19
  • [목회자칼럼] 사람을 찾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사노페에서 추방되어 그리스로 망명하였다. 아테네에서 거지처럼 구걸하면서 삶을 이어가던 그가 어느 날 대낮에 등불을 들고 아테네 번화가를 누비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런 디오게네스에게 무엇을 찾느냐고 제자들이 물었다.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 아테네에 사람은 많아도 쓸만한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정말 요즘 시대 상황과 세대들의 삶을 보면서 디오게네스의 마음을 자주 느낀다. 담임목사들은 쓸만한 부교역자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하고, 부교역자들은 가고 싶은 교회나 존경하는 담임목사가 없다고 말한다. 성도들은 신실하고 경건한 목사님들을 만나기 어렵다고 말하고 목회자들은 좋은 교회나 순종하는 성도들을 만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교역자가 절대 부족해서 청빙하기가 힘들다고 말하면서 자기 자녀들이 목회자가 되기를 원하는 교회 리더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 대우에는 인색하면서 좋은 목회자들을 찾고, 대우는 요구하면서 영성이 풍성한 교역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율배반적이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진 채 모두가 다 좋은 사람들을 찾고 있다. 사울은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들을 죽이는 자였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음성을 들었다. 눈이 멀었으나 밝아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 후에 그는 완전히 변화되었다. 성경을 기록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설립하고, 일꾼을 양성했다. 바울이 없는 신약성경, 초대교회, 기독교 역사는 생각할 수도 없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위대한 출애굽의 여정에는 부름 받은 사명자, 모세의 헌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역사는 대단하지도, 유명하지도 않는 산파 십브라와 부아로부터 시작되었다. 지혜와 용기를 가진 자들에 의해 200만명이 자유를 얻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겼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다 진멸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간절하게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뜻을 바꾸셨다.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 백성들이 다 살았다. 한 사람의 기도가 민족의 역사를 바꾸었다. 엘리야가 기도했다. 850:1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자신이 하나님의 종인 것을 거짓 선지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다시 기도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멈추었던 땅에 비가 내렸다. 모든 백성들과 생물들에게 생명을 주었다. 깨어 있는 한 사람이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다. 선거의 결과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나라가 남북, 동서, 좌우, 진보보수, 남녀, 노소로 완전히 분열되었다. 코로나 19의 시대를 지나면서 교회의 부흥은 멈추었고 다음세대는 소멸 직전에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의인 10명만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의인 10명이 도시의 생명줄이다. 10명만 있으면 가정, 교회, 도시가 산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탄식하시며 우셨다. 예레미야는 무너져 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미친 듯이 기도했고 말씀을 선포했다. 우리도 도시와 자녀와 교회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진정한 기도의 사람이 필요하다. 15년 전에 6명 여성이 부산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여성기도국 마마클럽의 시작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30개 도시에 지회가 세워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역하고 있다. 성도는 은혜를 사모하고 풍성하게 받아야 한다.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은혜를 받으면 변화 된다. 한 사람이 변화되면 위대한 역사가 일어난다. 요셉은 민족을,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했고, 마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은 시작되었다. 이런 은혜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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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목회자칼럼
    2024-04-19
  • [남일재 교수] 4.10, 22대 총선의 결과가 남긴 숙제
    중요하지 않은 총선이 어디 있을까만 이번 4·10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하였다. 야권은 임기가 3년도 더 남은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며 정권심판론을 내세웠고 여당은 일하는 대통령을 만들자고 야당심판론과 정권안정론을 폈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야당의 손을 들어 주었다. 국민의 선택은 언제나 옳다고 하지만 보수정치를 지지하는 사람들로서는 아쉬움이 크다. 허나 겸허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이번 총선이 남긴 숙제를 몇가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바꾸는 노력을 더 하여야 한다. 비록 정책방향이 옳아도 접근 방법이 국민에게 부담스러우면 외면당한다. 그동안 안보외교 및 노동 개혁 등 국민들이 지지한 정책도 적지 않지만 대통령의 소통 부재와 독선의 이미지가 유권자의 외면을 받았다. 조속히 당정의 인적쇄신과 더불어 야당과의 대화와 소통을 해나가야 한다. 192석 거대 야당군이 된 민주당과 야당들도 막중한 책무를 느껴야 한다. 국회의 입법 지원 없이 윤석열 대통령 혼자 임기 3년을 끌어 갈 수가 없다. 야당의 도움이 절실하다. 민주당과 야당들도 협조할 것은 해야 한다. 더 이상 국회를 특정인의 방탄과 특검 등 정쟁으로 일삼고 대통령이 거부할 수밖에 없는 법안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부쳐서는 안된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대한민국을 위한 정책은 수용하고 협치하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그렇다면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어선 안 된다. 작은 흠집이나 도덕적 흠결도 안 된다는 게 국민의 눈높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범죄혐의자나 재판 중인 범법자가 당을 만들고 총선에 출마해 국민의 대표가 되어버린 황당한 일이 실제로 나타났다. 불법 부동산 투기꾼 및 윤리적으로 파탄난 자들까지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회가 이런 자들의 놀이터요 도피처가 되어버린 셈이다. 여기에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한 역할을 했다. 비례대표제는 원래 지역구에 출마하기 어려운 소외층이나 전문가층을 배려한 전국구로 출발하였는데, 지난 정부 때 느닷없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만들어 제대로 검증도 안 된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문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앞으로 이 잘못된 선거제도를 바로 잡아야 한다. 거대 다수당이 된 민주당과 야권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쉽사리 고치지는 않겠지만, 선거전에 이미 종래의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는 여야간 논의도 있었으니 이제 국민들이 나서서 다음 선거전에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압박하여야 한다. 국가적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경제도, 외교도, 안보도 모두 벅차고 중요한 과제다. 지금 세계는 국가이익을 둘러싼 무한 경쟁이 진행중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접근하거나 단순 덧셈과 뺄셈으로는 대응이 안 된다. 예컨대 돈 풀어 경제 살리는 표퓰리즘이나 “셰셰(謝謝)” 하면서 외교하고, 평화 타령하면서 안보를 대충 다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 수준까지 올라온 바탕은 우리 국민의 땀과 피와 눈물이었다. 이 좋은 나라를 결코 후퇴시킬 수는 없다. 국가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은 국민의 노력과 역량이지만 그것을 극대화 하여 경제, 사회, 복지, 외교 등 제도와 정책으로 끌어 가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이번에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이 정치의 사명을 잘 인식하여 대한민국을 글로벌 중심국가로 탄탄하게 이끌어 주기를 강하게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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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4-04-19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소록도에서 일생을 헌신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öger), 한국명 고지선)와 마가렛 피사렉(Margaritha Pissarek, 한국명 백수선)의 아름다운 생애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가련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봉사했다. 마리안느 스퇴거는 1934년 4월 24일, 2남 5녀 중 셋째로 오스트리아 마트라이에서 출생했고, 마가렛 피사렉은 1935년 6월 9일, 2남 2녀 중 셋째로 폴란드 출생했는데, 1945년 부모를 따라 오스트리아로 이주하였다. 마가렛은 1950년부터 의사인 아버지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간호 견습생으로 일하게 되는데 이때 마리안느와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간호 견습생으로 만난 이들은 간호사로 남을 섬기는 삶을 다짐하고 1952년에는 인스부르크 간호학교에 입학했다. 수학 기간인 1954년에는 가톨릭 평신도 재속회 ‘그리스도왕 시녀회’에서 종신서원을 했다. ‘재속회’(在俗會)는 고유한 의미의 수도회는 아니지만, 사제나 평신도로서 속세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회헌에 따라 일상적인 조건에서 생활하는 수도 공동체를 말한다. ‘종신서원’(終身誓願)이란 일단 한 번 서원하면 그 효력이 일생 동안 미치는 서원을 의미하는데, 일생 동안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가톨릭 의식에 따라 종신서원을 한 마리안느는 광주대교구장 헨리(Harold Henry) 대주교의 초청으로 1962년 2월 24일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28세 때였다. 첫 임무는 소록도 영아원에서 0~3세 사이 영아들을 보살피는 보모 역할이었다. 반면 마가렛은 프랑스 한센인 정착촌에서 6개월 봉사하고 1959년 12월 경북 왜관 한센인 정착촌에서, 그리고 1961년에는 한센인 병원인 동해원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1966년에는 이 두 간호사가 한센병 전문 구호단체인 다미안 재단의 지원으로 인도에서 6개월 간 한센병 간호교육을 받았다. 그해 10월부터는 다시 소록도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한세인들을 보살피고 치료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 두 이국 여성들은 환자들을 맨손으로 치료하고 같이 음식을 먹고, 환자들의 상처를 맨손으로 만졌고, 자신의 무릎 위에 환부(팔, 다리)를 올려두고 치료했다고 한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랑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보살폈다. 이들은 상한 몸만 치료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치료해주는 고결한 인간애를 보여주었다. 다미안 재단은 5년의 계약기간 후 철수하였으나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남아 2005년까지 변함없이 봉사했다. 이렇게 볼 때 이 두 사람은 1950년 이후 일생동안 함께 지내며 소록도의 가련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한결같은 마음으로 헌신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소록도에서의 자기희생적인 봉사로 1994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을 수상했고, 1996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이름 없이 섬기고 봉사하고자 했으나 이들의 헌신이 알려지게 되자 이런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43년간 헌신했던 이 두 간호사는 2005년 11월 22일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조용히 한국을 떠났다. 마리안느가 71세, 마가렛이 70세 때였다. 자신이 늙어 다른 이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 한국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한국으로 올 때 들고 왔던 가방 하나만 들고 평생을 몸담아왔던 소록도를 떠난 것이다. 이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결코 자기를 드러내거나 그것을 희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뿐, 남에게 알려지는 것도 원치 않았다. 소록도를 방문하기도 했고, 이들의 활동을 듣고 있던 나는 1997년 말 마리안느에게 편지를 보내 이들의 활동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개신교의 손양원 목사 이상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봉사한 이들의 사적을 정리하고 싶었기때문이다. 약 2주일이 지난 후 마리안느 스퇴거는 1998년 1월 12일자로 나에게 이렇게 회신했다. 그것도 예쁜 한글로. “주님의 평화.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것 같아 감사하는 마음 전하며 복된 새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뜻은 잘 알겠습니다마는 저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고 싶기에 선생님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하느님의 사랑만이 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도록 힘써 주시고 함께 기도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갑시다. 감사합니다. 1998. 1, 12. 마리안느.” 하나님의 사랑만이 드러나도록 무명의 의지로 살았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의 고결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아낌없는 봉사를 잊지 않고 2016년 이들에게 명예국민증을 수여했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지내던 중 마가렛 피사렉은 오랜 투병을 끝내고 2023년 9월 29일 선종했고, 마리안느는 생애 마지막 부분을 살고 있다. 주님의 평화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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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4-04-19
  • [서임중칼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밤이 깊어갈수록 새벽도 가까워 온다. 나라 안팎은 최근 들어 더욱 어둠이 짙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무엇보다 빛으로 충만해야 할 종교계와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안방에 전달되는 정치권 소식에서는 밝은 내용을 접할 수가 없다. 백화점이든 재래시장이든 경제상황도 여전히 시린 겨울 소리를 내고 있어 우리의 몸과 마음이 봄을 맞아 펴는 기지개를 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눈과 귀에 잡히는 상황이 아무리 어두움이 깊어진 것 같지만 기어코 어두움이 빛으로 전환되는 부활의 아침은 오고 있다. 사순절의 절정인 고난주간은 영적으로 깊은 어두움의 시간이다. 동시에 부활의 아침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경험하는 카이로스의 은총을 체득하는 깊은 영성의 크로노스다. 부활신앙이란 부활절 중심의 몇 날 동안 하는 축하가 아니다. 오히려 1년 365일을 부활의 은총을 연주하는 삶이 곧 부활신앙이다. 바로 세상에 살면서 빛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주님은 부활의 은총을 입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다. 빛은 비췸으로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주님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며 그리스도인의 본래적 사명을 살펴보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과 봉사를 통하여 생명이며 빛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이웃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소금과 빛의 차이점을 보면 소금은 음식물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극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며, 빛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한복음 9:5절).” 여기서 ‘세상’에 해당되는 Cosmo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바올람’이다. 원래 이 단어는 ‘영원’ ‘불변’ 등의 의미를 나타냈지만 후대에 이르러서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게 되었다. 특히 관사와 함께 사용되어 고통의 현세를 가리키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고통의 세상에 오심으로 이 세상은 구원 역사의 무대가 되었고 하나님의 능력이 펼쳐지는 빛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빛의 의미는 3가지로 조명할 수 있다. 첫째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생명체를 의미한다. 둘째 윤리적인 관계에서는 善을 의미한다. 셋째는 영적인 관계에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빛의 반대인 어두움의 3가지 의미로는 첫째, 자연계와의 관계에서 생명이 상실된 죽음이다. 둘째 윤리적인 관계에서는 악을 의미한다. 셋째 영적인 관계에서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 있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어두움에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다는 것이다(요1:5). 그것이 부활의 은총이고 부활의 은총을 입은 사람은 세상에서 빛으로서 삶을 연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고, 이 사실을 깨닫고 그 의미를 역설하면서 삶으로 이를 증거한 사도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에베소서 5:8-9).” 바로 이것이 ‘어두움에서 빛으로’의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전에는 어두움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제 어두움이 아니라 빛이 되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 한다.’ 이것이 부활신앙의 삶이다. 이 말씀에는 아주 중요한 본질적인 의미가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즉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Doing이 아니라 Being, 다시 말하면 무엇을 행하느냐 보다는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인식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되어 있지 못하면서 되려고 하는 것을 ‘행동주의적 기독교(behavioristic Christianity)’라 한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21:23).” 하고 책망하신 일이 있었다. 전형적인 Being이 아닌 Doing의 사건이다. 카오스현상이 되어가는 교회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개인의 기쁨을 위해 많은 사람이 아파하는 일을 행하는 것을 정당하고 의롭다고 항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를 공동체에 맞추는 삶을 살아가는 Being의 사람이 아닌, 나에게 모든 사람이 맞추어 주기를 바람하는 Doing의 사람이다. Being의 사람은 무엇이 되었다고 다르지 않다. 변함없이 항상 그대로 주를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그런데 Doing의 사람은 무엇이 되고 나면 변한다. 어제와 동일하지 않다. 모든 기준이 자기가 되어 간다. 중요한 것은 “주여 나는 빛입니다.”라고 할 때 그는 이미 어두움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의인입니다.”라고 할 때 그는 이미 죄인의 교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빛이 아닙니다.”라고 고백할 때 실제는 빛이 되어지는 것이며,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할 때 그 순간 이미 그는 의인으로 칭함받는(Justification) 은총을 입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빛이 되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높이려는 것이 아닌 자신을 높이려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좀 어려운 말 같지만 참 빛은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 빛을 받아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의 도구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무엇이 되겠습니다.”의 삶을 살아야 한다. 무엇이 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거기에 맞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부활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Doing이 아닌 Being의 의미를 깨달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부활 신앙인의 삶이다. “잘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의롭게 하시는 주님을 앙망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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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성서연구] 부활이 주는 자유
    <“어이, 훌륭해!”촌장이 외쳤다.“많은 땅을 차지했군!”빠홈의 일꾼이 달려와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빠홈은 입에서 피를 쏟으며 엎드러져 죽었다. 바시끼르인은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했다. 일꾼은 삽을 들고 빠홈의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빠홈은 정확하게 머리에서 다리까지 들어갈 수 있는 2미터가량의 무덤에 묻혔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단편『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중에 나오는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의 맨 마지막 부분입니다. 빠홈은 작은 무덤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며 기쁨에 겨워 달리기 시작하던 그 날 아침에 이미 그의 영혼은 땅에 대한 욕심에 갇혀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족하지 못하고 <조금만 더>라는 감옥에 갇혀 삽니다. 무덤은 죽은 후에만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욕망을 품는 그 순간 이미 갇혀버립니다. 그래서 무덤이라 불리는 좁은 욕망의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생 최대의 과제가 됩니다. <알프레드 에더스하임>은 19세기에 살았던 유대교 출신의 기독교 학자이며, 목사로서 당대 비견할 인물이 없을 정도의 성경학자요, 교회사가였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 『유대인 스케치』(1867년)가 있는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의 삶과 환경에 대해 1차 사료에 입각해 저술한 탁월한 저서입니다. 그는 팔레스틴 땅을 <그 땅>이라 부르면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얼마나 그 땅에 집착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래된 히브리 문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어느 날 랍비 요나단이 제자들과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그런데 위쪽에 달려 있던 농익은 열매가 갑자기 터지더니 달콤한 즙이 바닥으로 주르르 쏟아졌다. 또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암염소의 불대로 분 젖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 두 줄기가 하나로 섞이는 것을 지켜 보던 랍비가 외쳤다. ‘보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약속이 말 그대로 이루어졌구나!’> 유대인들이 얼마나 광적으로 팔레스틴 땅에 집착했는지를 보여주는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쉐키나(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는 오직 팔레스틴에만 있다’‘팔레스틴의 공기가 사람을 지혜롭게 한다’ ‘팔레스틴에 사는 것만으로도 모든 계명을 준수하는 것과 맞먹는다’‘팔레스틴에 사는 자에게는 죄가 없다’‘이스라엘 땅에 묻힌 자는 제단 아래 묻힌 것과 같다’ 그런데 지금 그 땅에서는 평화와 행복의 웃음소리 대신 참혹한 전쟁 소식만 들려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마스에 의해 무참하게 폭행당하고 살육되었는지 듣고 있습니다. 또 그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된 전쟁이 벌써 여러 달이 지나도 멈출 기색 없이 확전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로 떠나려던 성지 순례는 모두 중단되었습니다. 이미 그 땅은 성지가 아닙니다. 폭력과 전쟁의 땅으로 전락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히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욕망 때문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갇히셨습니다. 그랬기에 무덤은 예수님께 갇힌 곳이 아니라, 위대한 부활을 위한 전초기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흘 후 무덤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순간, 무덤은 예수님을 가둘 수 없었습니다. 부활은 자유 그 자체였습니다. 무엇에도 매이지 않으셨습니다. 문이 잠겨 있는 다락방에도 나타나셨고, 시공을 초월하는 완전한 자유를 보이셨습니다. 부활은 자유입니다. 얽매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자신도 부활할 것을 믿는 성도는 예수님께서 보이신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우선 욕망 때문에 갇히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갇힌다면 사랑 때문에 갇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바울 사도처럼, 선배들처럼 사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 안에서 무덤 같은 감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 훨훨 날아야 합니다. 그 자유가 나중에는 육체의 부활과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인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의 터전이야말로 성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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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시사칼럼] 부활을 둘러싼 부활들
    예나 지금이나 “부활”이란 종교와 학문과 일상을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올해에도 서구와 한국 기독교계에서 지키는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쩍 “부활”이란 말이 각 영역에서 등장하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부활절 특수를 노리기라도 하듯 부활주일 이틀 전에는 「7인의 부활」이라는 드라마 방영이 시작됩니다(SBS). 덧붙인 제목들도 상당히 종교적(?)입니다. “욕망의 진화인가 참회인가?” “악인들은 속죄할 수 있을까?” 세속적인 이 드라마가 과연 얼마만큼의 부활절 프리미엄을 누릴지 궁금합니다. 종교적인 작품이라 해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2021년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부활」도 당시 부활절을 며칠 앞두고 개봉되어 상당한 반향을 불러온 바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2월에 개봉되었던 미국 영화 「예수 혁명」도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거치면서 엄청난 화제몰이와 흥행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부활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인 개념입니다. 썩 좋지 못한 관례나 전통이 부활한다면 반길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반대로 되살아난다면 좋을 제도나 현상이 부활한다면 많은 이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겠습니까? 경제계로부터도 이번 부활주일을 둘러싸고 두 가지 부활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나는 ‘K-방산의 부활’입니다. 1971년 북한은 화포에 탱크까지 생산하는데 한국은 소총 한 자루 만들 능력이 없는 나라였던 사실을 감안하면 최근 한국 방위산업의 발전은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미국의 한 방송(CNN)은 “한국 방위산업이 이미 메이저리그(defense major league)에 진입했고 미국과 NATO를 대신해 ‘자유민주주의의 무기고’(arsenal of democracy)’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2022. 8. 17).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급변하는 정치 상황 탓으로 한국 방산업계가 위기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으나 최근 들어 다시 기술 혁신을 이루어낸 몇몇 업체의 분발로 ‘K-방산의 부활’을 꿈꾸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일본 발 경제계 뉴스도 하나 있습니다. 지난 달 일본 정부는 규슈의 양배추밭이었던 곳에 세워지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업체) TSMC의 제2공장 건설에 6조 5천억을 투자한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미 구마모토에 위치한 제1공장에도 4조 이상을 투자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본 정부는 한 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위해 다양한 업체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반도체 산업만큼 경쟁이 치열한 분야도 드문데, 일본 반도체 산업의 부활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는 그리 반가운 소식만은 아닐 테지요. 물론 협력하는 분야도 많고 또 저마다 경제가 살아나야 동아시아 및 세계경제의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래도 윈-윈(win-win) 게임이나 다름없는 살벌한 경제 전쟁의 한복판에서 일본의 부활은 한국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지금 거의 전쟁 같은 의료 대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진료권 부활”이라는 개념이 간혹 지면에 다시 등장하곤 합니다.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 및 고속철도 도입으로 인한 전국 일일생활권화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있기 때문에 풀어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의료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제기되어 왔던 대안의 하나인데 일정 지역을 벗어나서 진료를 받고자 하는 경우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함으로써 일부 지역을 향한 의료 과잉 수요를 줄여보고자 하는 방안입니다. 단순히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어서 복잡한 국면입니다만, 진료권의 부활이나 어떤 식으로든 국민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번 논쟁이 서로 간 협의와 조정으로 인해 조속한 시간 내에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기왕 정치 이야기를 꺼냈으니 지금 모든 화제의 초점이 되어 있는 선거에 관한 부활 소식을 하나 더 전합니다. 작년부터 ‘지구당의 부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해방 후 수십 년 존속했으나 불법적 정치자금의 온상으로 퇴출되어 버린 지구당 시스템의 부활을 현재 소위 ‘팬덤 정치’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둘러싸고 혹은 추후 과연 지구당은 부활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부활을 둘러싼 몇 가지 부활들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진짜 부활은 무언가의 가치 추구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고, 이익이나 특수와 거리가 먼 그 자체로 진정한 목적이요 역사적 사실입니다. 부활은 그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신앙적 논쟁은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는 죽음에서 부활이란 기쁨을 모든 이들에게 선사하는 좋은 가치를 지닌 소식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앙숙과 원수를 오히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윈-윈(win-wim)의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의 몸의 부활 소식은 질병이나 고통이나 우울이나 심지어 사망까지도 초월하게 만드는 가장 건강한 소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부활이란 모든 부패와 타락을 씻어 정결하게 만드는 지극히 순수한 정치적 메시지라 하겠습니다. 부활을 둘러싼 부활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부활을 더욱 사모합니다. 그리고 그 진짜 부활을 닮아 모든 영역에서도 참된 부활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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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43회 동기회 내에서 무슨일...?
    고신총회는 최근 몇 년간 신대원 기수별로 부총회장을 당선시켜 왔다. 전임 총회장 권오헌 목사가 40회, 총회장 김홍석 목사가 41회, 부총회장 정태진 목사가 42회 출신이기 때문이다. 교단 안에서도 신대원 기수별로 부총회장을 맡자는 정서가 강하게 흐르고 있고, 대부분 동기회 안에서 출마에 관심이 있는 인사들에 대해 교통정리 등을 통해 후보를 추천하고 있다. 그런데 금년 차례라고 할 수 있는 43회가 최근 ‘후보를 추천하지 않기로 했다’는 대외적 선언을 했다. 모 언론사 두 곳에 ‘43회 동기회는 금년 부총회장 후보를 추천하지 않기로 했다’와 ‘그러나 개인이 출마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광고를 게재했다. 지금까지 동기회가 동기 중에서 특정인을 추천하거나, 지지하는 모습 등은 비춰왔지만 ‘추천하지 않기로 했다’고 대외적으로 선언(광고)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다. 문제는 이 내용이 동기회 결의없이 진행되었다는 것. 43회 A 목사는 “이 내용은 동기회 결의없이, 회장이 독단적으로 광고를 한 내용이다. 동기들이 문제제기를 했지만, 아직 아무런 해명이나 사과가 없다.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B 목사도 “(43회)임원회 자체적인 결의가 있었는지 몰라도, 이런 사안은 전체 동기회의 결의가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그런 결의가 없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또한 동기회 회장의 선언과 달리 43회 동기회는 2년 전 ‘차기 부총회장 후보로 43기를 대표하여 정00 목사를 추대한다’는 결의를 한 바 있다. A 목사는 “2년 전 정00 목사를 우리 동기를 대표해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대한다는 결의를 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와서 회장의 독단적인 선언(광고)은 동기회를 무시하는 처사이고, 모종의 정치적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43회 동기회는 동기 48인의 이름으로 ‘임시총회 소집 요청’을 한 바 있다. 안건으로는 ‘기존의 임원 해임의 건’과 ‘차기 부총회장 후보로 43기를 대표하여 기존 결의대로 정00 목사를 추대하는데 대한 재확인 건’이다. 만약 현 임원회가 임시총회 소집을 불응할 경우, 비상총회를 열어 새로운 동기회 임원을 구성하겠다는 의지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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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신천지 이만희 건강 이상설 확산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건강이상설이 붉어지고 있다. 지난 3월 9일 열린 전국 신천지 담임강사 대상 교육에서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모습을 보여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이만희는 연설 도중 “그런데......”라고 말을 한 뒤 약 20초 정도 말을 잇지 못하거나, “누가복음 32장을 봐 줘야 돼”라고 말하자, 누군가가 속삭이는 말투로 “누가복음은 32장이 없습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또 자신이 쓴 글을 읽다가 “내가 쓴 게 아닌 것 같은데....”라며 자신이 쓰고 읽은 글을 잊어버리는 모습을 비추기도 했고, 천지창조를 설명하던 중 느닷없이 천지일보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이날 교주의 돌발 행동에 신천지 지파장들과 강사들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비춰지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신천지 측은 이만희 교주의 실언이 계속 이어지자 온라인 실시간 방송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이단전문가들은 “고령으로 인한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장면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며 “최근 신천지 내부에서 이만희 사후를 대비하는 모습들이 포착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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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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