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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칼럼] 타락한 지도자들, 빛과 같은 백성들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방이 어려운 국면에 빠져 타개할 길이 보이지 않고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하마스와 전쟁 중에 있는 예루살렘을 보십시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옛날도 예루살렘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평화의 도성인 동시에 하나님의 성전이 자리 잡고 있던 거룩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이 전하는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십시오.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습 3:1). 패역이란 하나님을 향한 교만과 불순종을, 더럽다는 말은 도덕적 타락을, 포학하다 함은 정의와 인자의 실종을 의미합니다. 한 개인의 편견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도 “그 성중에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렘 6:6)라고 증언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결정적인 이유가 등장합니다. “방백들은 사자요, 재판장들은 이리요, 선지자들은 간사하며, 제사장들은 성소와 율법을 범했다”(3-4절)고 합니다. 한 마디로, 당시 지도자들이 완전히 부패하고 타락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도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하여 내 집에서도 악이 가득하구나”라는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렘 23:11). 역시 동시대에 활동했던 에스겔 또한 “제사장들이 불법을 범하고 사람들의 눈을 가리워 하나님께서 더럽힘을 당한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겔 22:26). 결국 예루살렘에 “화 있을진저”라는 신탁(Woe Oracle)이 붙었습니다. 선지서에 자주 등장하는 이 문구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대적하는 이민족을 향해 주께서 분노에 차서 선포하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총체적 난국 가운데 한 줄기 빛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습 3:5). 그렇습니다. 사방이 캄캄한 어둠뿐이라 해도 언제나 한 줄기 빛이 존재합니다. “아침마다 비추시는 하나님의 빛”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도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총체적 난국에 처했더라도 우리는 이사야처럼 이 빛을 기다리고 바라봐야 합니다(사 8:17). <바보 예수>로 유명한 서울대 명예교수요 가좌대 석좌교수인 ‘김병종’ 화백이란 분이 있습니다. 서초동 사랑의교회 지하 4층 예배당 벽면에는 그가 그린 55미터의 대형 그림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원래 작품 이름은 “바람이 임의로 불 때-송화분분”이지만 교회 측에서는 그림을 ‘기도와 묵상의 길’이라 부릅니다. 김 교수의 고백입니다.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 우르르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창조주를 예배하러 가기 위해 옷깃을 여밀만한 준비와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옛날 어머니와 손잡고 들길을 걸어 교회에 갔던 일을 떠올리며 제작했습니다.” 성경은 주께서 아침마다 빛을 어김없이 비추신다 말합니다. 하지만 끝내 외면하는 자들이 존재합니다. 반면 그 빛을 찾아가는 그림 속 모자(母子) 같은 이들도 있습니다. 선지자는 그들을 “겸손한 자들”(2:3) 혹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2:7)나 “나의 남은 백성”(2:9) 내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3:12) 또는 “시온의 딸, 예루살렘의 딸”(3:14)이라고 불렀습니다. 지도자들이 타락하고 그 때문에 한 사회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도, 결국은 이런 사람들이 빛이 되는 법입니다. 최근 한 지역방송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한 편이 뒤늦게 입소문을 타며 화제몰이 중에 있습니다. 진주에서 평생 한약방을 운영하던 분 이야기인데, 그분 이름을 딴 제목이 “어른 김장하”입니다. 그는 모은 재산으로 학교를 세우고 사회에 기증했고 장학금을 주며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살폈습니다. 젊은 감독은 선생의 모습을 취재하며 감탄한 나머지 “살아 움직이는 사회보장제도”라는 격찬을 남깁니다. 하지만 본인은 소문내지 않고 너무나 검소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후원 받은 사람들 중에 헌법재판관도 나오고 의사도 나오고 했다 합니다. 그런데 방송 중에 한 사람이 “선생님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때 어른의 대답에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그리고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 우리 지도자들을 보면 한숨만 나올 때가 많습니다. 정치인들만큼이나 성직자들도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거룩함을 소중히 여기고 겸손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기다리며 묵묵하게 살아가는, 온통 혼탁하고 세속적인 분위기 가운데에서도 신을 경외하며 그 교훈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비록 유명하지 않아도 영향력이 없어 보여도 한 줄기 빛과 같은 평범한 인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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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은혜의말씀] 무화과 나무가 마르다(막 11:12-14)
    베다니에서 하룻밤을 보내신 예수님은 이른 아침,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런데 배가 좀 고프셨나 봅니다. 멀리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풍성한 것을 보시고는, 열매를 얻을까 하여 가까이 가십니다. 그런데 잎사귀만 무성하지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이제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오늘 본문은 좀 이해하기 힘지요? 이 본문은, 이스라엘의 대표적 나무인 무화과나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본격적인 수확기는 6월에서 7월입니다. 그러나 나무에 따라서는 좀 이른 시기인 3-4월에 열매를 맺기도 하고, 반대로 좀 늦은 시기인 9-10월에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먼저 맺히고, 잎은 나중에 무성해집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구하러 다가가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무를 저주까지 할 필요는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나무를 저주하시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바로 허울뿐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신앙이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하나도 없는 껍데기 신앙과 같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배워야되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1.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껍데기 신앙 – 종교 외형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바리새인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면 대단했습니다. 종교적 열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했습니다. 자,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쓰고, 사람들의 시선에는 집중하지만,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멀어져 있다면,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신앙입니다.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는데, 행동은 도무지 주님의 뜻과는 관련이 없다면, 그게 열매 없는 허울뿐인 신앙, 종교의 외형주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혹시 바깥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의 신앙이, 외형이 아닌 내면이 단단하고 꽉 차 있는 진짜 신앙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은 - 예수님은 우리 삶에 열매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꼭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바로 열매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삶에 정직과 신실함과 의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삶이 예수 향기를 나타내는 거룩한 열매가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열매를 맺습니까? 아니, 왜? 열매를 맺지 못할까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주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고,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믿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기도가 없기 때문이다. 기도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엎드리는 순간, 기도하는 순간, 살아계신 주님의 능력이 임할 줄 믿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데도, 기도 응답의 경험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기도가 막혔는지도 모릅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입니다. 내 마음속에 이웃을 향해서 미움이 있다면, 그것이 기도를 막는 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중요한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주셨습니다. 복음의 한가운데는 용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한없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세상 속에서 날마다의 삶이 거룩한 예배가 되도록 하시길 축복합니다.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살므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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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교회음악칼럼] 찬송(예배)하며 사는 사람들 9
    미국에서 살 때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런닝머신을 들여 놓았다. 그것만 있으면 살을 뺄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살도 못 빼고 머신은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운동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억지로라도 운동을 하기 위해 머신에 올라갔을 때 제일 힘든 점은 지루함이다. 절박함이나 목표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좁은 실내공간에서의 운동은 답답하기까지 했다. 비겁한 변명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30분정도 걸으니까 몸이 데워지고 근육과 관절이 부드러워 지면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지루한 30분이 문제였다. 이것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지속적인 운동이 가능하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무엇인가는 시작하면 얼마가지 않아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있다. 나의 전공인 음악분야를 예를 들면 아이들이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면 바이엘이라는 교본으로 시작을 하는데 반쯤 진도가 나가면 힘들어 하면서 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름 힘든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포기하게 된다. 상당한 수준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어렵고 힘든 고비를 수도 없이 견디고 넘어야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겨내야만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성악도 가르쳐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결과를 얻고자 한다. 바꾸어 말하면 길게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오래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열매도 지난한 고난의 시간을 견뎌내지 않고 얻을 수 없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여정가운데 이것은 늘 경험해 온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즉 지속적이고 꾸준함이란 참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봐도 능히 느낄 수 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푯대를 향한 우리의 걸음이 바르고 꾸준하였는지, 어렵고 힘들어서 주저앉아 걷기를 포기한 적은 없었는지, 또 지금 나는 인내하고 참으며 지속적으로 푯대를 향한 걸음을 계속하고 있는지, 아니면 안개 속에 길을 읽고 헤매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돌아보며 점검해 봤으면 좋겠다. 시대의, 세월의 흐름에 맡기고 살아도 될 만한 세상이 아닌 거 같다. 찬송과 예배가 강력하게 살아나서 힘들고, 악하고, 유혹이 많은 이 땅위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소망하는 푯대를 향한 걸음에 멈춤이 없고 변함없는 꾸준함으로 쉼 없이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하루하루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노래가 우리 입술을 통해 끊임없이 고백되고 선포되어지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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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책맹인류 시대에 책 읽는 아이들로 양육하기(2)
    “얘들아, 각자 읽을 책 한 권씩 가지고 와” 엄마의 말이 끝나자 마자 저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집어옵니다. 집에 있는 책이 정해져있기에 그 책이 그 책이고, 어제 읽은 책이 오늘 읽을 그 책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뭐든 골라서 자리에 앉습니다. 한 손에는 맛있는 간식을 입으로 넣고, 또 한 손으로는 책장을 넘기며 눈을 책에서 떼지 못하고 흥미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어느날 저녁, 저희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제법 책읽기의 즐거움, 글 속에서 만나는 신나는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듯 보입니다. 여전히 “엄마, 나는 만화책 보고 싶어요. 만화책 딱 한 권만 보면 안될까요?”라며 글이 많은 책보다는 그림 위주의 책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만화책 비율보다 글 책을 고르는 비율이 계속 늘고 있는 것을 보면 희망적입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처음부터 아주 원활하고 즐겁게 저녁 시간을 책으로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었고, 아이들과 함께 매일 매일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과 친근해지기 위해 서점에도 자주 가는 등 시간을 쏟고, 의지를 들여서 이제 조금 자연스럽게 책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먼저, 우리집에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텔레비전과 아이들 소유의 스마트기기입니다(큰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인데,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핸드폰을 사주었습니다). 텔레비전과 스마트기기가 없다는 것은 요즘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놀 게 없다. 할 일이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때로는 자기들끼리 놀고 싸우고 먹고 울고 그러다 또 놀고 싸우고를 반복하고, 또 때로는 뒹굴뒹굴 거리며 엄마가 주는 간식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 게 없으니 집에 있는 것으로 뭐라도 해야겠지요? 그래서 거실 한 편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을 펴고 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차츰 배웠습니다. 아이들이 심심하다 그러고, 학교 친구들이 대부분 유튜브를 보니까 자기들도 보여달라고 항의하는 등 고비가 있었지만, 영상물에 대한 원칙, 핸드폰에 대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에 우리집에서는 ‘텔레비전과 스마트기기는 없다’고 필요할 때마다 설명했고, 오래 시간이 지나 가랑비에 옷이 젖듯, 아이들은 받아들이며 심심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책을 통해 어떤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지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 서점가요” “온라인서점에서 이 책 사주세요” 등 책을 사고 읽는 것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텔레비전과 스마트기기를 버리고 책 읽기의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대신, 우리집에는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독서 후 나눔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무슨 책을 읽는 지 거의 다 압니다. 왜냐하면, 제가 읽어보고(혹은 줄거리를 보고) 괜찮은 책을 사주거나 아니면 아이들 책을 사준 후 나도 꼭 읽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한 후 그 책 내용을 엄마가 모르고 있다면 독후 이야기 및 활동을 할 수 없기에 저도 아이들과 책을 꼭 읽습니다.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이들이 책 읽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엄마, 나는 이 책에서 이런 것을 새로 알았어요” 책을 통해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하는 법. “엄마, 이 책 주인공은 너무 불쌍해요. 친구들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책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법. “엄마, 이 책은 딱 내 이야기인 것 같아요. 진짜 웃겨요.” 책을 통해 공감하는 법. 굳이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아도 책을 읽는 순간, 뇌에서 모든 활동이 이뤄져 지식, 정서 등을 채워가는 것을 볼 때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책맹인류 시대에 책 읽는 아이들로 양육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엄마가 포기해야 할 것, 버려야 할 것이 있고 반면 세워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가르쳐야 할 것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이 농부가 1년 농사를 짓는 것처럼 시간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기에 부모가 먼저 책읽기의 중요성을 마음에 새기고 나의 자녀들과 함께 실천해 나가길 바랍니다. 부모가 책읽기의 즐거움을 보이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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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3-12-01
  • [신앙교육나침반] All Generation 복음놀이 리부트 50
    현대인들에게 세대 담론이 뜨겁습니다. 갈수록 세대와 세대 간에 선명한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출생 연도별로 세대를 지칭하는 이름들이 다양해진 것을 보면, 세대 간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합니다. 세대 간의 격차가 아무리 극명해도,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는 복음입니다. 더욱이 온 세대를 향한 복음이 “놀이”를 통해 경험된다면, 복음은 조금의 틈새도 없이 전 세대를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향기나무 사람들은 이러한 비전을 품고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3년 동안 “온 세대를 위한 복음놀이”를 쉼 없이 개발하였습니다. 목마르고 배고픈 자녀를 배부르게 하고픈 부모의 마음으로 고립된 곳, 소외된 곳, 아픈 곳에 복음놀이를 열심히 전파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현재 많은 교회와 가정이 성경 놀이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마주하며 놀이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리부트(reboot)란 컴퓨터에서 사용자의 실수나 프로그램의 오류로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을 경우에, 실행중인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다시 시작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모든 세대를 위한 《복음놀이 리부트 50》은 지금까지의 언어적이고 인지 중심적인 복음 전달 방식에서 탈피해, 온 세대 놀이를 통해 복음을 경험하는 새로운 교육 방식으로 교회와 가정의 신앙교육 현장을 재가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복음놀이 리부트 50》은 가정예배를 리부트합니다. 이 책을 만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복음을 일방적으로 주입하지 않고, 자녀와 함께 복음놀이를 통해 복음을 즐겁고 역동적으로 경험하면서 신앙을 전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지루하고 힘들었을 가정예배가 온 세대의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매력적이며 실제적인 복음으로 경험될 것입니다. 《복음놀이 리부트 50》은 세대통합 사역을 리부트합니다. 이 책을 통해 교회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를 분리하는 사역을 본질로 삼는 것을 멈추고, 온 세대가 한 몸이 되어 예배하고 복음을 경험하는 사역이 본질이 되도록 세워갈 것입니다. 온 세대가 함께 복음을 받아들이고 경험하면서, 부모로부터 자녀 세대로의 신앙의 전수가 활성화되며 교회와 가정이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특히 이 책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1세대들의 내면에 숨겨진 불꽃이 다시 뜨겁게 살아나도록 도울 것입니다. 《복음놀이 리부트 50》은 선교 사역을 리부트합니다. 이 책을 만난 디아스포라 한인교회와 선교지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민족에게 다양한 복음놀이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 모든 열방이 복음놀이를 통해 복음을 훨씬 더 매력적이고 강력히 경험할 것입니다. 본서는 올해 연말에 교회와 가정을 리부트할 수 있는 귀한 복음의 도구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도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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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3-12-01
  • [다음세대칼럼] 사랑하다가 지치지 맙시다
    어제 카톡에 익숙한 이름이 생일이라는 알림이 있었습니다. 바로 둥지청소년회복센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 아영(가명)이였습니다. “생일 축하”라는 간단한 톡을 남겼는데 조금 뒤 그 아영이로부터 이른 아침 출근하고 있다며 전화가 왔습니다. 너무 기특하여 작은 선물을 해줄테니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자 한참 생각하더니 아웃백쿠폰을 원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아영이와 저는 아웃백과 관련한 사연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각 청소년회복센터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식사와 멘토링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느 여자청소년회복센터를 방문하여 함께 시간을 가지던 중 많은 아이들 가운데 유독 밝은 얼굴로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는데 바로 아영이입니다. 중학교 3학년 나이였던 아영이는 워낙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학업을 중단한 채 가출을 반복하다가 재판을 받아 그 센터에서 생활 중이었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쓰였습니다. 마침 그때도 아영이의 생일이라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고 하여 근처 아웃백에서 특별한 식사로 함께 했습니다. “너 스테이크 좋아하니?” “아니요”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며..” “저 오늘 스테이크 처음 먹어요” “........” “근데 대패삽겹살이 더 맛있는 것 같아요 ㅎㅎㅎ” “어쨌든 남은 센터 생활 잘 하거라” “예. 당연하죠” 그렇게 약속했던 아영이는 그 길로 센터에 복귀하지 않고 이탈하여 저의 마음이 무너지게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복귀하여 센터를 퇴소했지만, 결국 가정환경의 문제로 다시 길거리를 방황하던 아영이는 보호관찰 위반으로 다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딱한 상황에 판사님의 배려로 아영이를 위한 임시거처를 마련하였습니다. 한 지인이 자신 소유의 아파트를 임대로 세입자를 찾고 있어 비어 있는 기간에 임시로 사용키로 한 것입니다. 매월 관리비와 운영비의 부담을 느끼던 차에 아이는 다시 사고를 치는 반복된 문제로 결국 10호 처분을 받고 2년간 소년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들이 결국 재판을 받고 소년원을 갈 수 밖에 없는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청소년회복센터를 운영하기로 하고 둥지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너 이제 몇 살이냐?” “27살요” “정말???” “저 요즘 피부미용샵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래. 올해 안에 꼭 보자” “예. 꼭 놀러갈게요” “근데 아웃백은 왜? 나는 너 때문에 아웃백 트라우마가 있는데 ㅎㅎ. 또 먹고 어디 도망가려고?” “저 사실 그 날 이후로 스테이크 먹어본 적 없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스테이크?” “그냥요” 그리고 우리의 대회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제게는 누군가의 ‘잘해줘봐야 소용없다’는 말처럼 트라우마가 될 스테이크지만, 아영이에게는 추억의 그리움이 있는 음식이고 단어인가 봅니다. 이렇게 한 번의 베풂과 사랑이 아이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을 확인하며 힘을 얻는 날이었습니다. “야영아! 잘 살아라. 네가 잘 살아야 내가 살아온 날들이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 의미가 있지. 알겠지?” “당연하죠. 저 그때 생각하면서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 고맙다” 계속 아이들을 위한 든든한 나무가 되어야겠습니다. 힘든 아이들의 나무그늘 같은 존재이고 싶습니다. 비바람치고 태풍이 몰아쳐서 버텨내는 나무가 되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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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세대 칼럼
    2023-12-01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다음세대가 반응하는 교회
    현대목회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교회는 ‘다음세대가 반응하는 교회’입니다. 다음세대가 반응하는 교회란 다음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먼저 반응하려고 노력하는 교회라는 뜻도 됩니다. 저희 교회에 가족단위로 등록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하시는 얘기가 “목사님, 우리 아이가 이 교회를 정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 제일 감동적인 이야기가 얼마 전에 등록하신 분인데요. 제가 “어떻게 우리 교회에 오셨어요?”라고 여쭤봤더니 그 성도분 말씀이 “우리 고1 짜리 딸이 다솔이예요. 다솔이가 여러 교회들 홈페이지를 보다가 성민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교회학교 애들 사진을 보더니 이렇게 말하지 뭐에요.”하시는 겁니다. 궁금해진 제가 다시 여쭤봤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솔이가 말했답니다. “아빠! 교회를 가려면 이런 교회를 가야 해!” 그래서 그 성도분이 “왜?” 라고 물었더니 “애들 표정을 봐! 살아 있잖아! 이런 아이들 키우는 부모들은 얼마나 좋겠어? 이런 아이들 키우는 선생님들은 또 얼마나 행복하겠어? 이렇게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행복한 교회를 가야 해, 아빠! 우리 이 교회 가자.” 그리고는 다솔이네 가족 모두가 우리 교회로 정하고 나왔다는 거예요. 다솔이는 제가 너무 너무 사랑하는 아이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이런 교회, 다음세대가 반응하는 교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유명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한 말입니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이다.” 너무 충격적인 말인가요?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이 말은 절대로 심한 말이 아닙니다. 많은 교회가 작년과 똑같은 예산, 똑같은 분위기, 똑같은 인력으로 올해에는 부흥할 거래요. 어떻게요? 아무것도 안 달라졌는데 무슨 수로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어쩌다 세미나 한두 번 열고는 그걸로 다 되지는 않는단 말이에요. 분명히 달라져야 해요. 뭐가 달라져야 할까요? 이 지면에 연재되고 있는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를 참고하셔도 좋고, 제가 쓴 『분홍목사의 교회교육 레시피』나 이승연 목사님의 『코로나시대 기독교교육으로 묻고 답하다』 등의 책들을 보셔도 좋습니다. 또는 유튜브나 각종 미디어에서 소개되고 있는 다음세대 목회의 노하우들을 관심있게 지켜보셔도 좋습니다. 오늘날은 정보의 홍수입니다. 정보가 없어서 기갈이 아니라 그 정보들을 붙잡아서 우리 교회의 장점으로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그중에서 나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엄마로서, 교사로서, 아빠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두 번째는 내가 반 담임으로서 우리 반이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세 번째는 우리 학년이, 네 번째는 우리 부서가, 그리고 다섯 번째는 우리 교회 학교가 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는 우리 교회가 전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겁니다. 이런 내용들을 체크해 보셔서 여러분들이 그 일 하나하나를 한번 시도하고 도전하고 바꿔 나가보시면 반드시 2024년 여러분의 교회학교는 하나님의 부흥케 하시는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해봤거든요. 하고 있거든요.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지만 저희 교회의 실예를 하나씩 들어서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그중 첫 번째는 “다음세대표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교회입니다. 어떻게 이름을 불러줄까요? 바로 본당 앞에 다음세대표가 있어요. 모든 부서 다음세대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록한 그리고 기도 제목을 기록한 표가 저희 본당 바로 앞에 있습니다. 이런 판이 많은 교회에 대부분 어디 있을까요? 부서실에 붙어 있어요. 그런데 그러면 소용없습니다. 본당 앞에 있어야 해요.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자리잖아요. 보통 거기가 역사가 중요한 교회는 역대 교회 사진이나 교역자분들 사진 붙어있는 자리입니다. 선교 열심히 하는 교회는 세계 선교 지도가 붙어 있고, 출석이 중요한 교회에는 주보꽂이가 있습니다. 근데 저희 교회는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붙어 있어요. 그리고 이름 불러주기 운동을 하는 거예요. 그냥 “얘!”가 아니라 “원준아!”라고 불러주면 애들이 눈빛이 달라져요. 처음 아이를 부르고 해주는 말이 있거든요. 좀 긴데 “얘야! 너 참 예쁘다. 얘! 정말 멋지다. 참 귀하다. 네가 있어서 우리 교회는 너무너무 행복해. 혹시 배고프니? 뭐 사줄까? 뭐 먹을래?” 여기까지거든요. 조금 길죠? 그런데 이거를 저희 교회는 다 해요. 여러분, 이거를 애들 입장에서 들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처음 들으면 간지러워 합니다. 어색하고 닭살이 막 돋아요. 그런데 세 번 정도 계속 들으면 “이게 뭐지? 어른들이 안 하던 걸 하네?”하구요, 10번 듣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아이스크림!”, “돈까스!” 이렇게 나온다니까요. 이게 희한해요. 10번 들으면 진심이 다가와요. 믿어지는 거예요. 이게 진짜구나. 우리 교회 어른들은 정말 날 사랑하는구나. 그때부터 입을 열기 시작하면 교회는 달라집니다. 다음세대가 반응하는 교회가 됩니다. 꼭 한 번 시도해 보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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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12-01
  • [목회자칼럼]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1397년 5월 15일, 지구의 한 곳에 한 생명,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 후 약 150년이 흐른 후 1545 4월 28일, 지구의 한 곳에 한 생명,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이 두 사람은 현재 ‘경제규모 13위 부유국가, 7위 소비국가’인 대한민국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첫 번째 한 생명, 아기는 잘 자라서 훌륭한 공무원이 되고, 두 번째 한 생명, 아기는 잘 자라서 군인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다들, 눈치를 채셨겠지요? 아니면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예상을 못하고 있는지요? 첫 번째 한 생명, 어린 아기는 자라서 훗날 한글을 창제한 조선 4대 왕인 세종대왕이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한 생명, 어린 아기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할 때, 바다를 지키며 임진왜란을 승리를 이끌고 23전 23승이라는 기적같은 전직을 세운 이순신 장군입니다. 만약, 이 두 생명, 두 어린 아기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면서, 훗날 조선을 넘어 대한민국의 후손들이 한글을 자랑스러워하며 민족의 정신이 담긴 글로 받아들이며 잘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만들었을까요? 이순신 장군 역시, 50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후 지긋지긋한 일본의 괴롭힘 속에 벗어나 이제는 일본과 경제, 문화 분야에 어쩌면 더 뛰어난 성장을 이룰 것을 알고 치열하게 싸운 것이었을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모두, 100년 후 혹은 500년 후를 미리 알고 그 일들을 한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의미를 찾아내서 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중국의 눈치를 보며 한글을 창조한 이유는 ‘백성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오자병법과 손자병법을 뛰어 넘는 전술로 전쟁을 했습니다. 이순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적의 숫자가 아군보다 더 많으면 절대로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순신은 13척의 배를 갖고 명량해전을 치루었습니다. 오자병법, 손자병법을 넘어서는 결정을 하며 해전을 치룬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로 어려움을 겪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이었습니다. 이제 시선을 돌려 나를 향하여 바라봅시다.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요? 혹,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결과가 나오지 않고, 별다른 성과가 없어 힘들어 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연말을 맞이해 일년을 결산하면서 날씨도 춥고 경제도 추운데 이뤄놓은 것도 없어 마음까지 추운 분은 없는지요?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곳에서 이름도 없이 묵묵히 자기의 일을 감당하며 뚜벅뚜벅 걷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빛도 없고, 이름도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다가서는 그 자리에 100년 후, 500년 후에 대한민국과 하나님 나라가 있을 것입니다. 2000년 전, 1월 1일에 태어난 한 생명 예수가 오늘날 전세계 75억 가운데 30억의 가슴 속에 하늘 나라의 사랑을 심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바로 나이고, 나같은 사람을 그분의 사랑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뉴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사랑이라는 바다에 한 발 조차 담그지 못한, 모래 밭에서 놀고 있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바다를 눈과 가슴에 품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내 눈동자와 가슴 속에는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나는 그 바다에 나 자신을 내던질 것입니다. 나 스스로를 사라이랑는 바다에 던지려는 순간, 무수히 많은 사람이 곁에 있지 않을까요?” 사랑으로 시작했는데 지쳐버린 영혼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이 미래와 하나님 나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바로 미래의 출발점임을 아는 것, 지금 내가 섬기고 있는 단 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2023년을 보내며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나의 태도와 자세일 것입니다. 2023년, 마지막 한달을 남겨 놓고 있는 이 시점, 다시 사랑에 물들고 싶고 사랑으로 견디고 싶고 사랑으로 승리하고 싶습니다. 지쳐버린 영혼이 있다면 다시 사랑으로 일어나길, 다시 하나님의 소망으로 세워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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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엑스포 유치 실패에 부산교계 충격
    부산이 2030엑스포 유치에 실패했다. 발표 이전만 하더라도 부산교계는 엑스포 유치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예상처럼 접전을 벌이다, 2차 투표에서 역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큰 득표차이로 실패하자 실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한 상황. 그도 그럴것이 그동안 부산교계는 엑스포 유치에 한 목소리를 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선교협의회, 2030 기독교 봉사단 등을 조직해 엑스포 유치를 위해 기도회, 발대식, 축제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왔다. 모 관계자는 “(결과에)실망스럽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큰 후회는 없다. 다만 모처럼 교계가 한 목소리를 내고, 힘을 모았다는 점에서 (결과가)아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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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징역 30년 구형받은 JMS 정명석
    한국교회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바 있는 JMS 정명석이 검찰로부터 징역 30년을 구형받았다. 정명석은 과거 예장고신(1991년), 예장통합(2002년), 예장합동(2008년) 기독교감리회(2014)등에서 ‘이단’으로 규정 받은 바 있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나상훈)는 준강간, 준유사강간, 준강제추행,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JMS 정명석에 대한 결심 공판을 지난 11월 21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검찰은 “종교 단체 교주인 피고인이 스스로 메시아 행세하며 JMS 조직을 이용해 다수의 여신도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등 매우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피고인과 JMS 내 여성 간부들은 피해자들에게 피고인을 메시아로 믿도록 세뇌한 뒤 피해자들의 신뢰를 악용해 성범죄를 저질렀으며 피해자들이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라며 정명석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정명석의 1심 선고는 오는 12월 22일 오후 2시에 내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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