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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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교사들이 신나서 가르치는 교회
    교회학교 부흥에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있는데, 바로 교사들이 먼저 신나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요? 아니, 현재 각 교회에서는 어떤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을까요? 대부분 일년에 한 차례 교사헌신예배를 드리는 것이 고작입니다. 하지만 교사헌신예배는 이름에 교사라는 말만 들어갔지 또 교사들에게 헌신하라는 자리 아닙니까? 결국 교사들이 헌신을 덜 해서 우리 교회학교가 아직 이 모양이니 너희가 더 헌신해서 좀 잘 해보라는 식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사헌신예배는 이제 사라져야 할 유물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교사들만큼 헌신하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씨름하며 교재 만들고 교육장 청소하는 교사들에게 무엇을 더 헌신하라는 말입니까? 이제는 교사들이 교회학교에서 마음껏 봉사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희 성민교회에서는 본당 입구에 커다랗게 교사표를 붙였습니다. 제 키보다 훨씬 큰 현수막으로 제작되어 벽 하나를 가득 채우고 붙여집니다. 여기에는 매년 저희 교회 부서별 교사들의 얼굴과 이름을 1년 내내 게시합니다. 이걸 왜 하냐면 어느 교회나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다 교회 곳곳의 지하에서, 숨겨진 데서 곰팡내 맡으면서 고생하시거든요. 그래서 유일하게 교회에서 봉사직분 중에 교회학교 선생님만 근속 상을 줍니다. 10년, 15년 근속을 왜 주는 줄 아십니까? 도망갈까 봐 줍니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면 당연히 이런 환경에서 도망쳐야죠. 왜 사서 고생을 합니까? 알아주지도 않는데요. 교인들이 우리 교회에 어느 교사가 다니는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10년, 20년 근속을 주는 거예요. 도망갈까 봐. 그래서 저희 교회는 이분들을 현수막에 붙여서 온 교인들 앞에서 자랑하고 기리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전 교인이 매주 저 사진을 보면서 선생님들을 기억하고 존중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저렇게 하니까 항존직 투표를 했더니 그동안 잘 안 뽑히던 교사들이 줄줄이 되는 거예요.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그래서 오죽하면 성민교회에서 사람 대접받으려면 교사를 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투표가 끝난 후에 어떤 분이 너무너무 오래 직분이 안 되어서 얼굴이 막 울상이 돼 있더랍니다. 그래서 교회학교 봉사하시는 권사님이 찾아와서 그랬답니다. “우리 어린이부 와서 봉사해봐요.” 여러분, 희한한 교회죠? 교사가 되면 인정받는 교회. 교사가 되면 사랑받는 교회. 그래야 교사들이 신나서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겠습니까? 저희 교회는 또 훈련 학교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담임 목사가 직접 말씀묵상 훈련학교 12주, 그다음 기도훈련학교 12주, 복음훈련학교 12주, 모두 36주를 강사로 나서서 직접 가르치는데 저희 교사들 대부분이 이 과정을 모두 수료했습니다. 이게 만만한 공부가 아닙니다. 매주 과제가 있고 매주 발표해야 하고 매주 깨져야 합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는 그걸 해야 안수 집사가 될 수 있고, 권사 될 수 있고, 그걸 해야 장로가 될 수 있고, 그걸 해야 교사가 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니까 교사가 더 존중받고, 더 높임 받고, 더 존경받고 줄을 쓰는 거예요. 저희는요. 청년부 뒤에 앉은 아이 끌어와서 교사시키지 않아요. 그럼 애들 다 망하게요. 그래서 담임목사가 직접 말씀 묵상, 기도, 복음. 철저하게 훈련시켜서 교사를 세우니까 그 교사를 교인들이 믿고 맡기는 거예요. 그리고 저희 교회 전 교인 중에 4분의 1이 교사입니다. 교사를 해야 사람 대접받는 교회, 교사들은 항상 최고로 우대해서 세미나 열어주고 최고로 리트릿 보내주고, 최고로 대우하는 교회가 저희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이제 대세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교사들 기살려주는 또 하나의 방법은 교회 달력에 월별로 다음세대 행사 사진을 넣는 겁니다. 여러분, 달력에 어떤 그림이 들어가면 좋겠습니까? 아무리 멋진 그림이라도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세대 행사 사진이 들어가면 전 교인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이번 달에 뭐가 있는지 알게 돼요. 1월이 되면 “우리 어린이부가 성경학교 가겠네!” 라고 온 교인이 알고 “그럼 나는 뭘 해야 하지? 어떤 걸 후원할까? 어떤 봉사를 할까?” 고민하게 되는 거예요. 2월이 되면 “우리 청소년부가 동계 수련회를 하겠네. 내가 가서 간식해줘야지. 내가 가서 기도해 줘야지. 내가 가서 함께 해야지.”라고 되는 거죠. 3월 되면 “연탄봉사 가겠네.” 4월에는 “소풍 가겠네”, 5월이 되면 유치부가 앞에 나와서 공연을 하는데 그 아이들이 공연하면 내려갈 때 아이돌처럼 선물을 받아 갑니다. 온 교인이 선물을 다 가져와요. 왜? 달력을 봤으니까. 이 아이들이 공연하겠구나, 한 달 동안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는 거죠. 그리고 6월이 되면 교사 강습회가 있죠. “내가 그럼 교사 강습회를 하니까 저 아래에 있는 저 아이들 보러 가야지. 저 아이들을 내가 봐줘야지. 간식해야지. 후원해야지.” 교인들이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7월이 되면 “성경학교가 있겠구나. 내가 당연히 가서 설거지를 해주고 밥해줘야지.” 이런 식으로 1년 내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달력에 있는 아이들의 사진이 항상 끊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눈에 보여야 사랑하게 돼요. 눈에 보여야 후원하게 돼요. 그렇게 교사들은 더욱 뿌듯해지고 교인들의 마음은 자랑스럽게 한 곳으로 움직여 가는 것입니다. 저희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다음세대 부흥의 자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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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4-01-15
  • 장로총연도 둘로 나뉘나?
    부산지역 5천여 장로들의 연합기관인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이하 장로총연)가 차기대표회장 선출 문제로 혼란스럽다. 매년 1월중 정기총회를 개최해야 하는데, 현재 총회 날짜도 잡지 못한 상황이다. 금년 장로총연 대표회장은 군소교단 차례인데, 군소교단 증경회장단에서 추천한 인물에 대해 현재 문제제기가 된 상황이다. 문제제기를 한 측에서는 “회칙에 위배된다”는 것이고, 추천한 쪽에서는 “전례에 따라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양측이 대립중이다. 장로총연 회칙 제4장(선거) 제10조에는 “본회 임원은 정기총회에서 선출하되, 대표회장은 차기대표회장이 추대되며, 차기대표회장은 교단별 안배를 원칙으로 하고, 공동회장 및 임원을 역임한 자 중에서 선출한다. 다만 본회 증경회장과 명예대표회장으로 구성되는 전형위원회에서 선출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문제제기 쪽에서는 “‘공동회장 및 임원을 역임한 자’라고 회칙에 나와 있기 때문에 공동회장이 아니면 차기대표회장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추천한 쪽에서는 “그동안 대표회장을 역임한 분들 중에는 공동회장이 아닌 분들이 다수 있다. 임원을 역임했기 때문에 그동안 추천을 했었고,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었는데, 유독 이번회기에만 지적을 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문제제기 쪽에서는 ‘공동회장 및 임원을 역임한 자’를 ‘공동회장’과 ‘임원’ 둘 다 역임한자로 해석했고, 반대쪽은 ‘공동회장’이나 혹은 ‘임원’을 역임한 자 중(어느 한쪽만 해도 된다는 해석)에서 차기대표회장을 추천할 수 있다고 해석했기 때문에 양쪽의 의견이 대립중이다. 특히 추천인쪽에서는 “현 대표회장도 공동회장을 하지 않고 임원을 한 뒤 추천받았고, 역대 대표회장들 중에서도 공동회장을 거치지 않은 분들이 3-4명 정도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현 임원진은 금번 총회에서 관련 회칙을 ‘공동회장 또는 임원을 역임한 자’로 개정을 준비중이다. 문제는 이번 양측의 대립으로 인해 장로총연이 분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회장을 역임한 모 장로는 “작년 총회에서 이 문제가 발단됐다. 지난 1년 동안 차기대표회장이 공석이었는데, 서로가 양보를 하지 않아 이 문제로 감정싸움이 커진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증경회장들 중에서는 이 문제 때문에 몸싸움까지 간 상황이다. 대표회장을 역임한 다른 모 장로도 “현재로서는 장로총연이 쪼개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하지 않을 경우 부기총과 부교총이 나눠진 것처럼 장로총연도 두 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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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4-01-15
  • 서울은 벌써 준비하는데 부산은...?
    2024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가 9일 출범예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부활절연합예배는 오는 3월 31일 명성교회(김하나 목사)에서 ‘부활, 생명의 복음 민족의 희망’이라는 주제로 드리며, 설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이철 감독회장이 맡는다. 이날 예배에서 대회장 장종현 목사(한국교회총연합회 대표회장)는 “한국교회가 2024년 부활절 연합예배를 통해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을 회복하고 우리 대한민국의 소망으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며 “이를 위해 모두 무릎 꿇고 기도하며 부활절 연합예배를 준비하자”고 강조했다. 한편, 부산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강안실 목사)와 부산교회총연합회(대표회장 문동현 목사)로 나눠져 수년째 부활절연합예배를 따로 드리고 있는 부산교계가 금년에는 함께 연합하여 예배를 드릴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표면적으로 하나되어 연합예배를 드리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다. 문제는 두 기관(부기총과 부교총)이다. 부기총의 경우 부교총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고, 부교총도 부기총과 연합예배를 함께 드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두 기관을 제외하고는 함께 드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기 때문에 양측이 준비과정에서 만남을 가질 가능성이 높고, 이 자리에서 어떤 대화를 나눌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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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5
  • 은퇴목사들을 35년 동안 섬겨 온 부산 수영로교회의 자랑스런 모습
    부산교계에 은퇴하신 목회자들을 초청하여 35년 동안 신년하례회를 베풀어 준 교회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수영로교회 원로목사이신 고 정필도 목사가 살아 생전에 후임 담임목사 이규현 목사에게 꼭 은퇴목사님들을 교파를 초월하여 신년 벽두에 초청해 신년하례회를 마련하여 식사를 제공하고, 교통비를 주도록 극진히 대접하라는 간곡한 당부를 하셨다고 한다. 이규현 현 담임목사는 은퇴목사님 부부들과 홀 사모들을 초청하여 2024년 새해에도 어김없이 제35회 새해 신년하례회를 2024년 신년 벽두 1월 18일 오전 11시 수영로교회당 맞은편 교육관에서 ‘새해 신년 감사예배’를 드린다. 15개 교단 180~200여 은퇴목사 부부와 홀 사모들이 모인 부산목사원로회 회장은 합동측 박인수 목사와 총무는 통합측 최순길 목사, 서기는 2023년 연말에 하늘 나라에 간 고신측 총회장을 역임한 고 김성천 목사이며 회계는 합동측 홍종국 목사이다. 이때 오신 은퇴목사님과 홀 사모들에게 맛있는 점심 대접과 더불어 교통비로 개인당 100,000씩 드린다. 이뿐만 아니라 6월 현충일 때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들을 위해 6.25 기념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배야 말로 ‘나라가 있어야 교회도 있다’는 애국심과 순국선열들과 그 가족들을 위하고 이 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드리는 예배야 말로 뜻있는 행사라고 회장 박인수 목사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총무인 최순길 목사(올해 나이 81세)는 “토인비가 말한 고통과 도전을 하여 거친 파도를 견디어 낸 자만이 유능한 사공을 만든다”라고 하면서 “이때마다 부산 1800여 교회들이 성찬식을 거행하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특히 수영로교회 행정요원들이 손수 나와서 연 2번씩이나 부산 교계 초교파 은퇴목사 부부들과 홀 사모들을 대접하고 섬기는 헌신이 오늘날 부산 교계 최고의 성도들이 모여 최대의 교회 ‘수영로교회’로 자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아름다운 숨은 헌신과 섬김이었다는 것을 오늘날 한번도 알리지 않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마저 모르게 한 섬김 그 자체였다고 부산교계에 자랑과 으뜸거리라고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2023년 12월에도 열심히 참여한 합동측 남부산교회 원로이자 부기총 대표회장을 역임하신 고 염원식 목사님도 이곳 모임에도 반드시 참석하는 회원이었다고 한다. 연간 두차례식 모임을 하면서 소요되는 경비는 무려 1천만원이 넘는 부담을 하는 수영로교회는 “이렇게 섬기는 것만이라도 너무 감사하다”라고 이규현 담임목사는 겸손히 말하고 있다. 꼭 6월 중순이 되면 총회를 열고 새 임원을 선출하는 부산 교계 초교파 은퇴목사 모임인 부산목사원로회는 최대의 모임이자 화합과 연합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부산 교계의 분열된 기관들에 비해 은퇴목사들의 연합공동체는 명예나 다툼이 없는, 마음을 비우며 서로 격려하고 남은 여생을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연합 공동체들이다. 고 정필도 목사의 살아 생전 유훈에 따라 실천해 온 과업을 수영로교회는 알게 모르게 숨은 봉사를 하면서 부활절, 성탄절 절기 때마다 부산지역 중요 일간지에 대형광고를 게재하여 기독교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러므로 은퇴장로, 목사들이 주일날이면 참석하여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데 동조하고 있다. 수영로교회를 위해, 축복과 은혜의 강물이 넘치게 기도하는 것을 알고 정필도 담임목사 시절부터 은퇴 목사들을 섬기며 봉사해왔다. 이 뿐아니라 성시화운동본부야 말로 일치단결하여 행동으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의 쌀을 전달하고, 약한 이웃들에게 사랑의 봉사 실천을 하는 생활의 공동체로 활동하기 때문에 오늘날 부산 최고의 교회로 일인자의 위치를 양보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웬만한 은퇴목사나 은퇴장로들은 본 교회를 두고 이곳에 출석을 40-50명 이상하게 되니 이름을 붙여 타장로로 부르기도 한다. 하늘나라에서도 정필도 목사님이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실 것으로 느껴진다.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누가복음 10:27)” ▲지난해 열린 수영로교회 초청 부산목사원로회 신년하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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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24-01-15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Louis Henry Severance, 1838-1913). 세브란스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오늘의 연세대학교 의료원인 세브란스 병원은 사실상 세브란스의 후원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기여와 공헌을 기리며 의료시설이나 병원에서 세브란스라는 이름은 널리 원용되었고 부산에도 세브란스라는 이름이 포함된 의료 기관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세브란스가 걸어갔던 거룩한 여정에 대해서는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이런 현실에서 경제학자인 김학은 교수에 이해 세브란스의 전기가 출판된 것은 경하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글의 중요한 정보는 이 책에서 얻은 것이다. 세브란스는 석유 산업가였고 자선가로 일생을 살았고, 특히 선교를 위해 통 큰 기부를 했기에 그는 ‘선교 자선가’(missionary philanthropist)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자선의 정신은 당대로 끝나지 않고 그후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아들 존 롱 세브란스(John Long Severance, 1863-1936)는 선대의 정신을 계승하였고 ‘세브란스 존 엘 기금’은 지금도 매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이자를 송금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통 큰 기부의 주인공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를 기억하는 일종의 도덕적 의무에 속한다. 세브란스 씨는 1838년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서 출생했다. 그와 석유산업에 이름을 떨쳐 석유왕으로 불린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 1839-1937)와는 친구사이였고 함께 일한 일도 있다. 세브란스씨가 석유산업을 시작한 것은 1864년인데, 당시 링컨 대통령 통치기였다. 그는 친구인 록펠러와 함께 1870년 스탠다드석유회사(Standard Oil Company)를 설립했고, 26년 뒤인 1896년 스탠다드석유회사에서 사실상 은퇴하게 되는데, 그는 사업가로 성공했고 그는 자신의 재물을 공공의 익을 위해 기꺼이 기부하는 자선사업가로 명성을 얻었다. 널리 알려진 바처럼 그는 1900년 서울에 현대식 종합병원을 건립할 수 있도록 2만5천달러의 거금을 기부하여 1904년 병원을 준공하였는데, 이 병원은 한국 최초의 현대식 종합병원이었다. 여기서 시작된 세브란스 의과대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의과대학이었다. 그는 또 3만 달러의 의과대학 건물을 기증하여 1913년 준공할 수 있게 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한국을 위해 기부하고 있지만 이를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그의 좌우명이 “내가 주는 기쁨이 여러분이 받는 기쁨보다 더 크다”(You are no happier to receive it than I am to give it)는 것인데,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의미 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후원은 한국뿐일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 세브란스 씨는 한국을 포함하여 만주, 중국, 일본, 태국, 버마, 인도, 필리핀 등 아시아 전 대륙으로 확산되었고, 그가 사망했을 때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수첩에는 후원을 약속하고 미처 이행하지 못한 미지급자선 명세표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면 그의 자선이 얼마나 광범위 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고 김학인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1900년 전 후 미국북장로교(PCUSA)선교본부가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어 한국선교부의 절실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적절이 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세브란스 씨가 앞장서 거금을 기부하여 한국 선교사업의 물줄기를 트는데 기여하였고, 한국에서의 의료사업을 크게 신장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번 한국을 방문했다. 그 때가 1907년 8월이었다. 그는 8월 26일 만주를 거쳐 서울에 도착했는데, 그의 나이 70세였다. 이때 세브란스 씨는 32세의 젊은 주치의 알프레드 어빙 러들러 의사와 동행했는데, 1907년 1월 28일 고향인 오하이오 클리버런드를 떠나 세계일주여행을 떠난 지 7개월 되던 때였다. 한국에서는 서울, 평양, 선천, 재령을 거쳐 서울 인근을 거쳐 대구 부산을 방문하였다. 한국에서 3개월간 체류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는 한국을 방문한 이후에야 새로 건축된 병원이 자신의 이름으로 기념되고 있다는 서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세브란스 씨는 한국 방문을 통하여 다시 전염병환자 격리병동, 외래병동, 의과대학 교사를 기증하였다. 그 외에도 남대문교회에 예배당을, 새문안교회에 오르간을 기증했고, 당시 부산에 어을빈 부인이 관장하던 규범학교가 있었는데 이 학교 교사도 세브란스 씨가 기증했다고 한다. 부산지방 교회사를 연구하는 필자가 김학은 교수 덕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세브란스 씨의 신념, 확신, 혹은 행동양식을 결정했던 기초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기 기독교 신앙이었다. 2대에 걸친 자선은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되다”(행20:35)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이었다. 그러했기에 자신의 주치의 러들러 박사를 한국 선교사로 파송하고 그의 선교활동을 지원하기까지 이웃 사랑을 실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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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4-01-15
  • [목회자칼럼] 새해를 맞이해서 파스칼의 말을 기억하며...
    파스칼의 팡세에 보면 “인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이 계셔야 할 절대공간이 있다. 그 속에 하나님이 계셔야지만 평화(샬롬)를 누릴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이 말이 생각납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나는 내 속에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려 했는지 돌아보니, 아주 익숙한 성경 이야기에 생각이 다다랐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입니다. 평생 물고기 잡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았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잡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가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해 빈 배로 돌아와야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뜻밖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으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고, 그 말씀에 순종하니 그물은 물고기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베드로가 원하는대로 되었으니, 이제 베드로는 물고기를 팔러가면 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빈 배는 고기로 채울 수 있었지만, 베드로의 마음은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를 탈 때, 베드로의 빈 배만 채워주고 싶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빈 마음에 생명을 채워주고 싶었습니다. 창조 이후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버린 인간의 마음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 빈 공간을 돈으로, 성공으로, 편리로 채우길 원합니다.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한 마리도 못잡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인해 고기를 가득 잡았을 때, 엄청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했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심을 보고 그 앞에 엎드리며 “선생님”이 아닌 “주여”라고 부르며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자신의 죄인됨을 발견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매번 발견하는 것이 바로 나의 죄인됨입니다. 난 마음 속 빈 공간을 부흥이라는 미명 아래 나의 욕망으로 채우려 하지는 않았는지... 혹은 나의 성공을 채우려 하지 않았는지... 나의 편안함을 채우려 하지는 않았는지... 고기만으로 만족하는 인생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사명자로 만족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오늘도 수많은 영혼들이 빈 마음을 채우지 못해 온 울음, 싸움, 경쟁으로 소리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경제 문제, 직장 문제, 관계 문제로 참 행복이 점점 사라지며, 인간은 고단함 속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은 지금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지난 한 해, 내 마음 속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너무 많은 일들을 하지는 않았나요? 새해가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떠오르는 희망의 태양을 바라보듯, 올해는 분주한 일들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날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빈 마음을 다시 한 번 채워봅시다. 나의 마음 속 빈 공간을 말씀으로 채울 때, 파스칼의 말처럼, 참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2024년 사람을 세우는 사명자로, 참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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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5
  • 더 이상의 분열은 안된다
    새해 초부터 우려스러운 소식이 들려온다. 부산지역 5천여 장로들의 연합기관인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의 내분소식이다. 지난 해 제26회 정기총회에서 차기대표회장 선출 문제로 1년 동안 갈등을 빚어왔고, 최근 갈등이 최고조에 올라 기관이 양분될 위기라는 것이다. 문제는 회칙 제4장(선거) 제10조에 대한 부분이다. “본회 임원은 정기총회에서 선출하되, 대표회장은 차기대표회장이 추대되며, 차기대표회장은 교단별 안배를 원칙으로 하고, 공동회장 및 임원을 역임한 자 중에서 선출한다. 다만 본회 증경회장과 명예대표회장으로 구성되는 전형위원회에서 선출할 수 있다”고 나와 있는데, 이 부분에서 차기대표회장에 대한 ‘공동회장 및 임원을 역임한 자’를 한쪽에서는 ‘공동회장이나 혹은 임원을 한 자’로 해석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동회장과 임원을 역임한 자(양쪽 둘 다)’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해석상으로는 후자가 맞다고 할 수 있다. 금년 27회 정기총회에 ‘공동회장 또는 임원을 역임한 자’로 회칙개정안이 상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전례도 무시할 수 없다. 현 대표회장도 공동회장이 아닌 임원을 역임하다 차기대표회장이 된 바 있고, 3-4명의 대표회장을 역임한 분들이 공동회장을 거치지 않고 임원 경력만으로 차기대표회장에 추대됐기 때문이다. ‘그때는 할 수 있고, 지금은 안된다’는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본보가 파악한 바로는 현재 양쪽의 감정싸움이 극에 달해 있다. 물리적인 몸싸움까지 벌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연합기관은 개인의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서로가 한발씩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부산은 대표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기독교총연합회가 지난 2018년 부기총과 부교총으로 분열됐다. 그리고 6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두 개의 기관으로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유야 어떠하듯 교회지도자들의 잘못으로 그 부끄러움은 부산지역 교회와 성도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부디 장로총연합회가 이 같은 길을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로의 감정을 내려놓고, 한발씩 양보하는 교회지도자 다운 모습을 보이기를 소망한다. 끝으로 장로총연합회 회직 제1장(총칙) 제2조에는 ‘목적’이 나와 있다. ‘본회는 회원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신앙증진 및 교회일치 운동과 부산기독교 연합사업을 전개하며, 교회와 사회의 봉사에 앞장 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개인의 사적 감정보다 부산교계를 먼저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가 명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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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5
  • 2024년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잘 감당하자
    2024년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비록 코로나 팬데믹은 끝이 났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과 기근, 기후변화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출산율과 어려운 경제상황, 북한의 도발이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희망이 되어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오히려 이런 상황이 우리 교회의 신뢰회복에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교회가 사회적 약자에게 힘이 되고 용기를 불어 넣어 주면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고 사회문제를 관심을 가지며, 국민들에게 삶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고민하기 이전에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잘 감당했는지 한번쯤 반성해야 한다. 교회 스스로의 몸짓만 키우기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그들을 위했는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2024년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해가 되길 간절히 소원한다. 낮은자로 오신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교회 스스로 낮아지는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외형보다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해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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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4-01-15
  • [송길원 목사] 새해, 젊음을 나누어 갖자!
    유엔은 1956년, 노인의 기준을 65세로 정했다.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이 기준을 따랐다. 벌써 반세기를 넘고도 2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장수혁명과 함께 호모 헌드레드, 백세시대가 다가왔다. 표준 키가 25센티가 늘었는데 옛날 옷을 입으라면 어떻게 될까? 일본 의학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2007년의 87세는 1977년의 70세에 해당했다. 지금의 65세는 한 세대 전, 45세의 몸과 건강으로 산다. 우리는 45세를 팔팔한 청년이라 말하지 노인네라 하지 않는다. 마침 미국의 AARP(시니어 권익 보호 단체)를 모델로 한국형 <시니어 파트너스>가 출범했다. <시니어 파트너스>가 첫 작업으로 노년에 대한 호칭 변화와 함께 100세 시대에 걸맞는 <100세 시대, 세대구분 표준>을 발표했다. 어제의 지도로 오늘의 길을 찾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노년(老年)의 ‘노(老)’가 들어가는 단어는 죄다 부정적이다. 노망(老妄), 노쇠(老衰), 노욕(老慾), 노파(老婆).... 심지어 ‘No人’(사람이 아닌)으로 부르기까지 한다. 불쾌함을 넘어 인권의 문제가 된다. <시니어 파트너스>는 우리 인생의 ‘길(路)’이 된 사람이란 의미에서 ‘노인(路人)’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존중과 공경을 담아낸 호칭은 널리 사회적 공감을 얻어냈다. 이와 함께 100세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세대 구분이 제안되었다. 봄: 0세~7세→ ‘유년’/ 8세~18세→ ‘청소년’/ 19세~40세→ ‘청년’ 여름: 41세~55세→ ‘중년’ 가을: 56세~79세→ ‘장청년(壯靑年)’ 겨울: 80세~99세→ ‘노년(路年)’, 100세 이상을 ‘완년(完年)’이라 불러 인생 완주를 축복할 수 있게 했다. ‘로고스’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말’ ‘계산’ ‘이성’을 뜻하지만, 이성이 관계하는 ‘척도’ ‘비율’ ‘원리’ ‘법칙’ ‘근거’ ‘좌표’를 뜻하기도 한다. 드디어 로고스의 세상이 다가온 것이다. 여기에 ‘인생 4계, 봄-여름-가을-겨울’의 의미를 보탰다. 겨울을 살면서도 봄을 그리고 가을을 살게 되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가? 이전의 노인이 장청년(壯靑年)으로 등장했다. 알베르 카뮈가 말했던 ‘모든 잎이 꽃과 같은 두 번째 봄’이 된다. 청년의 가치를 부여함으로 인생 2모작을 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이 젊어졌다. 다이나믹 코리아가 구현된 셈이다. 이 또한 전 세계가 공유해야 할 K-세대 구분법이 아닌가?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여성초혼 연령이 1998년 기준 26.1세였다. 2023년에는 31.3세로 5년이 늘어났다. 출산 엄마의 평균연령이 26.0에서 2023년 33.0세로 바뀌었다. 7년의 차이가 있다. 여기에다 건강수명이 2000년 기준 67.4세였던 것이 2019년 73.1세로 늘었다. 기대수명은 1950년대 47.9세에서 83.6세(2023년)으로 늘었다. 평균수명은 1960년 약 52세에서 현재 약 83세(남 81세, 여 87세)로 껑충뛰었다. 중위연령이 45.6세다. 1956년 중위연령 20세보다 25년이 길어졌다. 노년의 연령 기준이 바뀌어야 중요한 지표다. 더 이상 고장 난 음주측정기로 모든 운전자를 음주 운전자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으면서 ‘나이를 먹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나 어른들을 향한 덕담은 ‘갈수록 나이를 거꾸로 드신다’는 말이었다. 2024년은 정말로 전 국민이 나이를 거꾸로 먹어볼 수 없을까? <시니어 파트너스>의 이런 운동이 오랜만에 세상과 교회에 푸르고 젊은 생기를 불어넣었다. 아직도 우리는 젊다. 아니 더 젊어져야 한다. 새해, 젊음을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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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4-01-15
  • [서임중칼럼] 오늘의 산타클로스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성탄절이다. 또한 함께 따라오는 단어는 당연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다.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 주교의 선행에서 기원된 산타클로스(Santa Claus)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전설이 되었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겨울을 따뜻한 소망을 품게 하는 사랑과 나눔의 시절로 데려간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왜 유독 성탄절에만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주제가 되어야 할까? 교회는 365일 성탄절이 되어야 하고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일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는 매일의 성탄절과 오늘의 산타클로스를 생각하면서 목회를 했다. 그것이 내 신앙과 삶이 되고 목회가 되기를 힘쓰며 살아왔다. 2023년도 이렇게 한 해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반추해보니 좋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렇지 못하기도 하고, 실패였다고 생각되던 것들이 오히려 더 좋은 것들도 많다. 매일을 성탄 신앙의 삶으로 살아왔다면 누구나 후회 없는 한 해를 마무리 해가리라. 오늘의 성탄절 신앙의 삶이란 무엇일까?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인 미우라 아야꼬의 소설 ‘빙점(氷點)’을 읽고는 보다 더 넓게 관용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던 젊은 날이 있었다. 특히 빙점의 마지막 부분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사생아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은 심한 충격에 휩싸여 이를 비관하며 친모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된다. 삶의 의욕마저 상실한 그는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단하고 추운 겨울날 눈 덮인 언덕길을 오른다. 높은 언덕에 도착한 주인공은 돌아서서 하얀 눈길 위로 걸어온 자신의 발자국을 바라본다. 순간 놀라운 사실에 전율한다. 분명 자신은 앞만 보고 똑바로 걸어왔건만 눈길 위에 새겨진 선명한 발자국은 비뚤어지고 흐트러져 있었다. 이 일로 인하여 주인공은 그동안 도무지 용서할 수 없었던 어머니를 완전히 용서하게 된다. 그렇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고 걸어온 날들이 돌아보면 옳지 않았던 것이 있다. 의롭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오히려 불의한 것들로 발견 된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지난 한 해의 삶의 발자국을 돌아보면 아쉬움도 있고 뉘우침이 앞서는 것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만과 시기 질투, 게으름과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비뚤어지고 흐트러진 발자국을 남기면서도 우리는 마냥 자신이 걷는 인생길이 바르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남을 위하여,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 했다’는 페스탈로치 묘비명을 생각하며 ‘너의 유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나의 삶’을 살고자 가히 몸부림을 쳤다. 그렇게 걸어 나온 切磋琢磨(절차탁마)의 삶과 목회를 뒤돌아보면서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을 다시 생각한다. 지나온 삶의 발자국이 비록 온전한 일직선만이 아닌 삐뚤빼뚤 남은 것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돌아보는 혜안으로 오늘은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된 삶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매월 1일이 되면 커피와 함께 작은 케잌의 카카오 선물을 보내주는 오늘의 산타클로스가 있다. 1만 5천 원 가량의 그 선물은 굴뚝을 타고 내려와 성탄트리에 걸어놓은 양말에 담아놓은 옛 산타클로스의 선물 방식이 아니라 내 휴대폰에 담겨 있는 상자로 들어오는 매 월초 산타클로스 선물이다. 그 신비로운 작은 선물은 한 달 내내 보내준 이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기도하게 만든다. 어디 그뿐이랴. 매년 추수감사주일을 지나고 나면 과일 한 상자와 선물 봉투를 들고 찾아오는 자식 같은 목사 부부도 있다. 가을이면 햅쌀을 보내오는 장로님도 있고 집사님도 있다. 어촌마을에서 교회를 섬기면서 직접 잡은 고기를 얼음상자에 넣어 택배로 보내는 장로님도 있다. 지역특산품이라며 명절이면 어김없이 보내오는 선물들, 이 모든 이들이 나에겐 오늘의 산타클로스이다. 그 선물들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대천 김, 고흥 굴, 영양 고춧가루, 제주 감귤, 안동 참기름, 이천 쌀, 심지어는 영월파전도 있다. 여름 내내 비지땀 흘리면서 가을에 거둔 밀양 얼음골 사과도 있고, 여수 갓김치, 영광굴비, 거제 멸치도 있다. 완도 전복도 있고, 해남 고구마, 포항 과메기, 경주 빵, 진주 참마도 있다. 1년 내내 오늘의 산타클로스가 보내오는 선물들이다. 선물을 받으면 성탄트리에 걸어놓은 양말에 담긴 선물을 받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된다. 감동과 기쁨에 눈물짓고 이래 울고 저래 운다. “그 아픈 몸으로 자비량 집회를 하신 시간을 잊을 수 없고, 그 사랑 그 은혜를 이렇게라도 가르쳐 주신대로 내 분수에 맞는 작은 것이라도 보내고 싶었습니다.” 어느 산타클로스가 보낸 선물과 함께 도착한 메시지는 가슴을 적셨고 울컥 눈물을 쏟게 했다. 뇌 신경암과 투병하면서 은퇴 후 해마다 60여 교회 넘게 농어촌산골 개척교회를 섬긴 그 시간은 또 다른 섬김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오늘의 산타클로스가 보내온 것들을 1년 내내 그들의 이름으로 또 이웃에 나누고 섬긴다. 그것은 나 자신 또한 오늘의 산타클로스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을 위한 나의 고민이며 행복이다. 행복한 고민!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내딛기 벅찬 하루를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어딘가에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은 곳이 있다면 내가 그곳이 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사랑의 고민이다. 추위에 떨고 있는 너에게 따뜻한 아랫목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의 고민이다. 그 사랑의 고민은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충만할 때 오늘의 산타클로스가 되면서 풀려진다. “성장이란 자기 결정 능력의 증대”라고 갈파했던 토인비의 말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여전히 사랑하고 이해하고 관용하고 용서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무엇보다 성탄절을 맞으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12월의 성탄이 아니라 매일의 성탄과 기쁨과 감동으로 오늘의 산타클로스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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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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