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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세대칼럼] 대림절은 기다림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급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을 못 견딥니다. 특별히 ‘빨리 빨리 병’에 걸린 우리는 기다리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필자가 만나는 청소년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잠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못합니다. 패스트푸드 문화와 인스턴트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내일의 희망이요 꿈입니다. 기다림은 우리 인생을 성숙시킵니다. 기다림은 오늘의 현실을 넘어 내일로 다가가게 하는 힘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절기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 절기는 크게 대림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오순절)입니다. 대림절은 대강절 또는 강림절이라고도 합니다. 성탄절이 오기 전 4주간을 대림절이라고 부릅니다. 대림절의 의미는 2000년 전에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삶의 현장에 주님께서 능력으로 임재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영광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대림절 기간은 자신을 돌이켜 보며 회개하고, 깨어 기도하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때입니다. 대림절 기간은 들뜬 분위기가 아닙니다. 차분하게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는 기간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과 봉사의 삶을 실천하는 중요한 절기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아직’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는 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성화가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의 성도들이 모여 있기에 교회는 여전히 ‘공사중’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보편적 교회 가운데 완성된 교회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로 그 교회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어제의 은혜를 기억하고,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오늘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누리고 있는 현재의 삶에 빠져서, 우리의 모든 삶이 결산되는 ‘그날’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기다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조급함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치는 것을 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언약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만 인간적인 생각으로 첩 하갈을 취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은 약속의 씨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조급함이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 후손은 이삭의 자손과 끊임없이 싸우는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울왕도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제단에 분향했습니다. 결국, 하나님 보시기에 망령된 행동을 한 사울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기다림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기다리지 못함으로 일을 그르친 경우는 없습니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분별할 줄 아는 것이 지혜요 능력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기다림의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 기다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 완성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의 싸움이 있습니다. 많은 부족함과 결핍이 있습니다. 반목과 질시가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이 있습니다. 수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하나님 나라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대림절 기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간직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소망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려야 합니다. 근신하고 깨어서 언제 주님이 오셔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세상의 쾌락에 사로잡히거나, 현실의 삶에 안주하며 살아가면 안됩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 내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준비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준비된 다음 세대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대림절을 보내면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므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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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0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기적의 성탄 양초를 아십니까?
    영국의 시골마을인 글래드스톤에는 한 가지 전통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이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천사는 정확히 25년마다 한번 양초장이 해딩턴 가문의 집에 찾아와서 단 하나만을 만지고 가는데, 그 양초가 기적의 양초가 되어 여기에 불을 붙여 기도하면 어떤 문제든 해결된다는 기적이었습니다. 어느덧 운명의 25년째 성탄절이 점점 다가옵니다. 대강절이 시작되자 양초장이 해딩턴 가문의 에드워드 부부에게 마을 사람들은 찾아와 자기에게 기적의 양초를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들어보니 모두들 딱한 사정들입니다. 마음 좋은 양초장이 부부는 딱 잘라 거절도 못하고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드디어 대강절의 어느 깊은 밤 천사가 나타나 양초 하나를 만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양초를 집으려던 에드워드가 그만 다리가 풀려 넘어지는 바람에 선반 위에 있던 양초들이 다 바닥에 쏟아진 것입니다. 어떤 것이 천사가 만진 양초인지 알 도리가 없게 된 양초장이 부부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사정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다 절박하고 애틋한 사연들입니다. 마음씨 좋은 이 양초장이 부부는 양초를 하나씩 꺼내 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것이 진짜입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마시고 당신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에드워드 부부는 찾아오는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기적의 양초를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은 무거워집니다. 사실이 드러나면 한 사람 외에는 다 자기를 사기꾼이라고 돌을 던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해딩턴 가문의 명예에도 먹칠을 하게 되고 글래드스톤의 평화로운 마을에 씻을 수 없는 큰 혼란을 주게 될 것이 뻔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고 나니 마지막으로 초가 하나 남았습니다. 에드워드 부부는 남은 초 하나를 켜고 자신들의 소원도 빌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탄절 예배를 드리러 가게 됩니다. 이 부부는 두려운 마음으로 예배당에 갔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은 기적을 체험했겠지만 나머지 마을 사람들은 다 실망하고 자기를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예배 중에 ‘기적의 양초’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혹시 양초를 켜서 기도하고 응답받은 간증을 할 사람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순간 에드워드 부부는 눈을 감았습니다. 온 교회가 술렁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 다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다 일어난 것입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적적인 기도 응답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대인공포증으로 사람들을 두려워하던 한 소년이 모두의 앞에서 이젠 하나님이 주신 용기로 말할 수 있다고 간증했습니다. 아이가 아파서 희망이 없던 젊은 부부는 비록 아픈 아이지만 우리 가정에 아이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서로를 미워하고 비난하던 부부는 이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좋은 남편과 아내를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이웃과 다투던 한 가정은 그 가정의 아주머니가 떠준 털장갑을 아이들이 끼고 왔다면서 아이들을 일으켜서 간증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아마도 양초장이 에드워드가 마지막으로 양초를 켜고 기도했던 것은 양초를 받고서 기도한 이 마을 사람들의 모든 기도가 다 응답받게 해달라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것은 미국에서 가장 복음적인 설교가요 소설가와 동화작가로도 유명한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쓴 “크리스마스 캔들”이라는 책의 줄거리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요? 기적일까요? 양초를 하나씩 사라는 걸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우리는 설교를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그렇게 듣고 보고 접하지만, 정작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고 어려움이 많아도 제대로 기도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기적의 양초를 받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들은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이 소설의 모티브로 양초를 떠올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양초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4주간의 대강절 기간 동안 교회에 밝혀놓는 대강절의 상징입니다. 이 양초가 조금씩 불에 타서 줄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이 오실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기뻐합니다. 양초는 또한 자신의 몸을 태워서 빛을 냅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고 우리를 구원하는 생명의 빛이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 이 양초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성탄절에 우리 아이들에게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적의 양초이심을 알려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직 예수님께 기도할 때 우리의 죄가 용서받고 우리의 연약함이 강건함으로 바뀌는 것을 확신하는 믿음을 물려줍시다. 그렇게 우리도 이 시대를 밝히는 양초가 되고, 우리의 다음세대도 미래를 밝히는 희생과 화평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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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12-20
  • [목회자칼럼] 하나님의 선한 손길
    꿈자리가 사나울 때는 어떻게 해야될까? 속 시끄러울 때는 무엇을 해야할까? 꿈자리가 사납고, 일이 종잡을 수가 없을 때, 그 때 주께서 간섭하신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이 다할 때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역사하신다. 숨 쉴 수 없을 만큼 코너에 몰리고, 힘겨울 때 주께서 숨통을 틔워주신다. 구약성경에는 이방 왕들의 꿈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손길을 볼 수 있다. 바벨론 포로시절에 개인적으로는 출세하여 수산궁의 술 맡은 관원이 되었던 느헤미야는 고향 예루살렘이 황폐해진 것과 무너진 성벽소식을 듣고는 수일을 슬퍼하며 금식 기도하는 중에 아닥사스다 왕이 그의 소원을 묻고 느헤미야는 왕 앞에 황망한 중에도 막간 기도를 하며 왕께 아뢰니 하나님의 도움의 손이 역사하셔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도록 총독으로 파송 받고, 건축 자재를 얻고, 특별조서까지 받았다. 나라의 결재권자는 왕이지만 역사의 최종 결정권자는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에스더는 민족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아하수에로 왕의 눈을 열어 왕에게 부름 받지 못한지 30일이 지난 에스더를 예쁘게 보게 하였고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만큼 사랑하는 마음을 주었다. 다급한 가운데 마침내 절호의 기회가 왔지만 에스더는 내일 잔치에 오라고하는 여유를 부릴 때는 그 믿음의 배짱이 대단하다. 어느 날 밤,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역대일기를 읽는 중에 모르드개가 암살음모에서 왕을 구한 것을 알게 되고 대반전이 일어나서 하만을 물리치고 나라와 민족을 구했는데 위기의 때에 이방왕의 마음을 움직인 분은 하나님이시다. 요셉은 꿈꾸는 아이였다. 그러나 현실은 꿈과는 반대로 돌아갔다. 살아서 나오기 힘들다는 왕실의 감옥에 갇힌 요셉이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총리가 되어서 가족과 민족을 보호하였다. 바로 왕은 요셉을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받은 사람으로 인정을 하였다. 다니엘은 그 시대에 최강 제국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쓰임 받게 되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어린 시절 이국 만리 포로로 끌려간 아이가 다니엘이다. 패배감, 절망감, 열등감, 수치감에 살아갈 팔자였지만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를 거절하고, 멀고도 험한 고향땅을 그리워하며 집에 가서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의 루틴을 가진 사람이었다. 기도할 때마다 더 어려워졌다. 왕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사자 굴에 투옥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기에 모든 지혜자들과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마저 죽을 위기에 빠졌지만 다니엘의 꿈 해석으로 친구들도 살고 뜻밖에 그는 총리가 되어서 정권이 바뀌는데도 세 번이나 총리가 되었다. 모두들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과부와 부흥되지 않는 교회의 공통점은 영감이 없다는 것이다. 남편, 영감이 없고, 성령의 영감(Inspiration)이 없다는 공통점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의 지혜가 생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주께서는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 주께서는 꿈을 통해서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꿈이라도 꾸어지면 언젠가 실제상황이 된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사람은 꿈이라도 빵실하게 꾸지만 믿음이 없는 자들은 꿈도 없고, 소원도 없고 “냅둬 이래 살다 죽을란다” 성도는 긍정, 낭만, 진취, 발전, 소망의 꿈을 꿔야 된다. 잠꼬대라도 믿음의 언어를 사용해야 된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100%, 사람100%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부간에 존경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도시를 사랑하라. 성경 곳곳에는 이름도 없고 힘도 없는 여인들의 믿음 찬 모습이 나온다. 이방 모압 여인 룻의 신앙과 하나님의 우연한 인도로 재혼 후 다윗 왕통 출생, 여리고의 기생 라합의 결단으로 인한 온 가족 구원, 자식이 없음으로 통곡하며 오래 기도한 한나에게 이스라엘 최고 멘토 사무엘 주심, 군대 장관 시스라를 죽인 외딴집에 살던 헤벨의 아내 야엘... 신앙생활에는 5기가 있다. 언약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대하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쉬지 말고 기도하면 기념비적인 기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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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0
  • 한신대, 유학생 강제출국 논란
    한신대가 한국어를 배우러 들어온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수십 명을 강제로 출국시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한신대는 지난달 27일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23명을 대형버스에 태워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강제 출국 과정에서 교직원과 경비용역 직원들을 비행기 탑승구까지 동행시킨 사실도 확인됐다. 학교측은 건강문제를 호소한 1명을 제외하고 유학생 22명을 미리 예매한 비행기로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시켰다. 이 학생들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지난 9월 말 어학연수 비자를 발급받아 들어온 유학생들. 학교측은 1천만원 이상의 통장 잔고를 유지해야 하는 국내 체류조건을 맞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강제추방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한신대 측은 입장문을 통해 "학생 대다수는 출입국 사무소가 사전에 공지한 잔고 증명 유지 규정을 지키지 못해서 조건부로 받았던 비자 취소가 명확한 상태였다"며 "학생들이 불법체류자가 되어 한국 재입국을 못 하는 등의 불이익을 받기 전에 선제적으로 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강제 추방을 당한 학생들은 “버스를 태울 때 행선지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고, 사설경비업체까지 동원한 것은 선제적 조치가 아닌, 강제출국”이라고 반발하면서 지난 1일 국민신문고에 신고했고, 현재 오산경찰서가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신대 재학생들도 지난 13일 학교 당국을 규탄하는 시국기도회를 개최했다. 약 70여명이 참석한 기도회에서 학생들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중심 대학이었던 한신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탄식과 분노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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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12-20
  • 붉게 물든 저녁 노을처럼 한 해를 떠나 보내면서
    도종환 시인의 ‘겨울 나무’ 시가 생각난다. “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 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하는가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 저 헐벗은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 내지 않았는가 …(중략)… 끝났다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실패하였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이웃 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걸 보면서도 지킬 자리가 더 많다고 믿으며 물러서지 않고 버텨온 청춘 아프고 눈물겹게 지켜 온 한 시대를 빼놓고.” 이제 내 팔순 나이에 참 어울리는 시고 딱 알맞은 내용이 머리를 스친다. 잘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자라는 것 이리 보태고 저리 보태어 아웅다웅 피가 터지도록 모질게도 살아왔지 아니했던가. 그렇게 남들처럼 부하게도 아주 가난뱅이처럼 살지는 아니 했지만 겨우 겨우 밥이나 굶지는 않고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그때 마다 주셔서 하루살이처럼 살았다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한량없는 은혜라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내가 아내와 바꿔 살았다면 골 백번 이혼하고 살았을 것이다. 용케도 그 놈의 삶의 인연과 부부의 끈이 하나님께서 마음 상하고 성질 날 때마다 참아서 살게 하시고 자식들 때문도 있겠지만 어리숙한 나이 어린 아내를 데리고 와서 모진 풍파 헤치고 따라 살아 온 아내의 착한 심덕 때문에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왔지 아니 했던가. 그래서 아내가 74세 노인이 돼서부터 척추협착증 수술이며 천신 등 종합병원 신세가 되고, 병들고 아픈 병치레를 도맡아 하는데도 옆에 있는 배후자라 늦게 서라도 사회복지사 2급을 공부하여 국가자격증을 따고 또다시 병간호를 위해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1달 가량 수업과 강의를 받아 첫 번째 합격을 했다는 보람을 갖고 늙고 병든 아내를 케어 하는데 조금이라도 빚진자의 보람을 느끼고 살아 가고 있으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요. 이제는 사는 날 까지 아내를 위해 헌신하다가 하나님 부르시면 소풍 가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이 나의 마지막 풀어야 할 과제이자 들어야 할 수업이다. 그렇기 위해 나는 날마다 미리 20년 전 부터 체력을 단련하기위해 가까운 헬스장에 가서 30분가량 러닝 하고 근육운동을 하고 있다. 벤치 60kg를 드는 것 보고 젊은 50십대 헬스장 운동하는 동료들이 놀랐을 정도로 말한다. “어르신 그만한 무게 들면 너무 많이 드는 것 아닙니까?”라고 늙은 나이에 장사라고 과찬을 한다 마는 나는 시니어 바디 대회를 나가기 위해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아내의 돌보미 케어를 위해 하루 같이 생활하며 밥짓고 설거지는 기본이고 실력이고 청소, 빨래 등 요양보호사가 하는 가정방문 요양 훈련은 모두 내가 할 수 있도록 실습 훈련을 받았다. 이 일이 매일 반복하며 4급 요양 체크를 하는 것이 하루 내 사명이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이라고 느껴진다. 이렇게 하기위해 일찍이 체력만은 단련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계획이 나로 하여금 준비해 두시고 사용하도록 예비해 두셨다. “네 놈은 이렇게 해서라도 나이 어린 아내 데려다가 오십평생 고생만 짠득 시켜 먹인 죄를 이것으로 되갚아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 아내를 위해 매일 나는 죽노라 노력한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본 교회에도 출석하면서도 2부 예배는 집 가까운 이웃 개척교회에 출석하면서 조금씩 나눠 헌금을 하는 보람도 느끼며 남은 여생 살아가고 있으니 이것 역시 감사하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특별히 한국교회와 부산 교계 기관 단체 여러 교회들 목사, 장로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싶다. 이렇게 살아 온 삶을 연명해 온 것도 그때마다 필요한 축하 광고이며 기관 단체들이 보내 준 일반 광고료로 생활을 연명하였다고 장담하며 너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일평생 근 60년 가까이 교계 언론계 기자로 생활해 오면서 감사하며 살아 왔다. 마음의 빚 청산을 갚을 길이 없어 어찌해야 하는지. 그러나 늘 글을 언제까지 쓸지는 모르나 교회와 목회자들과 여러 교계 기관 특히 고신대학교와 고신대 복음병원, 동서대학교, 부산장신대학교, 특히 본보 이사장 강봉식 장로와 그의 사모 박 권사. 그 외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 호산나교회와 동서대 대학교회, 서울 명성교회, 부천 참빛교회. 부산영락교회(윤성진목사)와 새에덴교회, 서울 영락교회(김운성 목사), 포항중앙교회(서임중 원로목사, 손병렬 담임목사), 21세기포럼 직전 회장이신 홍순모 장로, 백양로교회, 땅끝교회, 거제 고현교회 멀리는 나의 동료이자 친구 필리핀 두마게티에서 선교하는 이문선 이사장. 역대 본보 초대 이사장 박선제 목사. 그리고 온천제일교회 정동만 장로, 남부산교회 원로이신 김상권 장로, 부이사장 이송학 장로 (부산영락교회 원로이자 이약국)와 여러 이사님들. 그 외 경북 대구, 거제, 창원, 마산, 양산, 김해 등에서 활동하시는 지사장들 여러 독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송년과 더불어 지상으로 감사의 인사를 한국기독신문사를 대표하여 정중히 고개 숙인채 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문사를 위해 불철주야로 기사로 활동한 여러관계 직원과 편집하여 온 김희정 대표와 인쇄 매체관계자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우리 신문 인터넷 독자와 인연으로 관계하고 있는 부산 교계 청십자신협(이대길 이사장), 고신 교단 고려학원 이사장과 여러 이사, 고신교단 총회 산하 관계자들과 부기총, 부교총, 부산자유기독연합회 대표회장 박선제 목사와 여러 임원들,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신세와 은덕을 입고 살아 왔다. 너무 너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도 이 인사가 제 인생애 마직막이 될 것 같아 2023년 한 해가 가기 전 뒷 자락에서 붉게 물든 저녁 노을처럼 어느 때 조용히 살아질지 몰라서 이렇게나마 지면으로 마지막 인사를 올리게 됨을 널리 이해와 양해를 먼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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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23-12-20
  • [최병학 목사] 견리망의 시대, 절대적 환대 요청
    “환대란 시(詩)적인 행위이다.”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입니다. 데리다는 손님의 이름도 묻지 않고, 보답도 바라지 않으며, 모든 것을 주는 환대를 ‘절대적 환대’라고 불렀습니다. 절대적 환대는 주인이 주체가 되는 ‘초대의 환대’가 아니라, 예상치 않은 방문과 기대치 않은 방문자를 아무 조건 없이 맞이하고 환영하는 ‘방문의 환대’입니다. 데리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절대적 환대는 도래자(방문자)에게, 마치 그가 구원자나 해방자라도 되듯, 나를 점령하고 내 안에 자리를 잡으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환대(hospitality)는 라틴어 ‘hospes’에는 주인(host)과 손님(guest), 두 뜻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주인이 손님이고, 손님이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주인과 손님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데리다는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의(敵意)’가 판을 치기 때문입니다. 데리다는 결국 환대로 충만한 세상을 갈망하다, 환대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영원한 환대가 가능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지금 시(詩)적인 행위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시인(詩人)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환대가 사라지고 각자도생이 판을 칩니다. 전국의 교수들이 선택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이익을 보자 의로움을 망각하다.”라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입니다. 「교수신문」은 전국의 대학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견리망의가 396표(30.1%)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견리망의는 논어 「헌문편(憲問篇)」에 처음 등장한 견리사의(見利思義)에서 유래합니다.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라는 말인데, 견리망의는 반대의 뜻입니다. 이러한 견리망의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 있습니다. 19세기 말 러시아 최고의 ‘리얼리즘화가’로 러시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시초를 연 선구적인 작가 일리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 1844-1930)의 <쿠르스크 지방의 종교 행렬>(1880~1883)이라는 그림입니다. 레핀은 톨스토이와 더불어 러시아 국민들이 국보로 여기는 예술가입니다. 세밀화, 인상주의, 성화(聖畵) 등의 다양한 장르로 작품을 남겼습니다. 레핀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표현된 세밀한 표정과 찰라의 순간 등을 역동적인 구조로 표현한 작품들을 보면 디지털시대인 현대 화가들이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그려도 쉽지 않을 만큼 뛰어난 작품입니다. 상황은 ‘쿠르스크의 성모’라는 이콘화를 코레나야 수도원에서 쿠르스크 시내로 옮기는 행사 모습입니다. 행렬에는 이콘화가 실린 화려하게 장식된 꽃가마를 어깨에 얹은 수도사들을 선두로, 농민들, 거지, 장애인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뒤를 따르고 있고, 경찰부터 군인, 귀족 등 중요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평론가는 이 그림을 “다양한 러시아 사회의 구성원들이 먼지가 풀풀나는 헐벗은 풍경을 가로질러 불편하게, 하지만 끊임없이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아무도, 심지어는 화가 자신도 볼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평합니다. 꽃가마를 진 수도사들은 마치 술 취한 사람들같이 무심하고 흐리멍텅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림의 한 가운데는 화려한 예복을 입은 사제가 혼자 걸어가는데, 시선은 그림을 보는 관중을 힐끗 바라보면서 손으로 자신의 금발을 넘기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엄숙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행사가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입니다. 왼쪽에 말을 타고 있는 경찰 앞으로 수도사들이 손을 마주 잡고 군중들이 가마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맨 앞 수도사는 목발을 집고 있는 장애인이 가마 쪽으로 가는 것을 지팡이로 막고 있습니다. 행렬 중간 중간 꽃가마 뒤쪽에 하얀 유니폼을 입은 기마 군인 하나가 행렬을 방해하는 듯한 사람에게 회초리를 크게 휘두르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상황을, 아니 이 시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환대가 사라지고, 시인들이 죽어가고, 이익을 보자 의로움을 망각한 종교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아기 예수께서 오시는 이 계절에 다시 절대적 환대가 시인들을 부활시키고 참종교인을 회복시키며 견리사의하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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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3-12-20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호주선교부의 미우라 고아원 출신 김순복 여사2
    호주 장로교의 커를 의사를 따라 진주로 이주하게 된 박순복은 남편 박성애 조사와 함께 커를 의사가 준비한 진주면 성내4동 정경철 씨 소유의 초가에서 거주하게 된다. 이곳이 호주선교부의 첫 거점이 되었고, 바로 이곳에서 교회와 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처음에는 거주지에 주택 한 켠에 서적고를 설치하고 성경 보급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시작이 되어 1905년 10월 22일 진주교회가 탄생했다. 이 교회가 진주지방 첫 교회이자 서부경남지방 첫 교회가 된다. 1906년에는 대안면 2동에 8칸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이동하였고, 1916년에는 도동면 옥봉리 비봉산 아래에 예배당을 신축하고 이전했는데, 이때부터 옥봉리교회라고 불리게 된다. 이곳에서 커를 의사를 도와 진주지방 첫 근대학교를 설립하게 되는데, 개교식은 1906년 4월 15일 거행되었고, 첫 입학생은 21명이었다. 학교 이름은 안동남학교였다. 설립자 겸 교장은 커를 선교사, 교감은 김경숙, 학감은 박성애, 교사는 안헌이었다. 안헌(安憲, 1886-1946)은 후에 안확(安廓)으로 개명하는데, 후일 그는 마산 창신학교 교사가 된다. 일본에서 유학 한 이후 독립운동에 관여하고, 문명개화론을 주창했던 인물이었다. 또 그는 국문학자이자 역사가로 명성을 얻었다. 이 학교의 교과는 성경, 국어, 산수, 역사, 지리, 한문, 습자, 체조, 창가, 그리고 영어였다. 남학교가 설립된 지 4개월 후인 그해 8월, 커를 선교사 부인 에셀 커를의 주도로 사립 정숙학교라는 이름의 여자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때 김순복은 교사기 되었다. 정식 개교식은 9월 3일 거행되었는데 교과목은 성경과 국어, 산수, 역사, 지리, 한문, 습자, 침공(바느질) 등이었다. 학비가 면제되었기 때문에 진주지역 뿐 만 아니라 인근 고성, 산청, 하동 지역에서 오는 학생도 있었다. 이렇게 설립된 안동남학교와 정숙학교는 1909년 2월 통합되어 사립광림학교가 된다. 각종학교로 인가를 받기 위한 조치였다. 비록 학교는 통합하였으나 남자부와 여자부로 나누어 수업했는데, 학급은 심상과(尋常科) 4년, 고등과(高等科) 2년으로 편성하였다. ‘심상 尋常’이라는 말은 평범한 것, 보통의 것이라는 의미인데 일본의 교육제도의 소학교, 곧 초등학교 과정을 의미했다. 1910년 당시 이 광림학교의 교직원은 6명이었고, 학생 정원은 40명이었으나 실제로는 80명 이상 재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자부 사립 광림학교는 재정 문제로 1929년 폐교되고, 여자부는 1921년 시원여학교로 개칭되는데 이 학교는 신사참배 문제로 1939년 7월 31일자로 폐교되고 만다. 진주에서 첫 근대의료 기관인 배도병원이 설립된다. 호주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는 1906년 6월 병원 설립 기금으로 825 파운드를 진주로 보냈고, 커를 의사는 1907년 12월 병원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렇게 되어 현재의 진주교회 뒤편 삼전아파트 자리에 임시 진료소를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진주지방에서의 병원 설립의 시작이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커를의 조사였던 박성애와 부인 김순복 여사가 동역하였다. 1910년 10월에는 병원 건축을 시작하였고, 1913년 11월에는 50개 병상을 갖춘 병원을 설립하게 된다. 이런 학교와 병원 설립의 뒷바라지를 한 이가 김순복 여사였다. 남편 박성애 조사는 1911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15년에는 진주교회 장로가 된다. 1917년에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1월 목사 안수를 받고 진주교회 첫 담임목사가 된다. 따라서 김순복은 남편을 도와 목회자의 아내로 살게 된다. 그런데 광림학교 교사로 일하던 김순복은 평양을 다녀온 남편 박성애 목사의 주선으로 김 마리아 등이 조직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대한적십자회’에 가입하여 진주지부 초대 지부장으로 추대되었다. 김순복은 진주지방의 여성동지를 규합하고,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자금 모금과 항일광복운동과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1919년 11월 28일 서울에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이 발각되어 전국 조직 지도자들이 모두 체포, 수감되었는데 진주의 김순복도 박보렴, 박덕실(朴德實)꽈 함께 체포되어 대구 지방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이 때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에 대해서는 「매일신보」 1919년 12월 19일자 등에 보도된 바 있다. 박순복 여사는 목사의 아내로서 민족과 애국, 독립운동에도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남편 박성애 목사가 1920년 창원교회로 이동하게 되자 박손복 또한 창원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창원여자야학교’를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 이바지하였다. 이때의 헌신이 널리 알려져 1922년 8월 8일자 「동아일보」는 ‘박순복 여사의 열정’이라는 기사를 게재하여 그의 봉사를 기념하였다. 이상과 같이 독립운동과 애국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김순복 여사는 2021년 3월 1일에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이 처럼 고아 소녀로 성장했으나 호주선교부의 사랑으로 양육을 받았고, 부산과 진주에서 개척자의 길을 가며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김순복 여사는 55세를 일기로 1942년 10월 6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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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12-20
  • [소강석칼럼] 국기원에서 태권도를 재발견하다
    얼마 전에, 우리교회에 출석하시는 최규옥 회장님이 점심을 초대하여 갔습니다. 거기는 이수성 전 총리님이나 백성학 회장님 등 여러 고명하신 분들이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함께 자리를 했던 우리교회 협동장로이자 국기원 원장이신 이동섭 장로님이 국기원이 이곳에서 가까우니 잠시 방문을 해 줄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사실 국기원은 세계 태권도의 메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인들에게는 바티칸이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예루살렘과도 같은 곳이죠. 차를 타고 정문인 일주문을 지나는데 태권도의 위엄이 벌써부터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국기원은 김운용 초대 원장에 의해 1971년 겨울 강남의 언덕배기에 기공식으로 시작된 곳인데요. 본관은 한옥의 멋과 풍류를 고스란히 반영한 건물이었습니다. 특별히 청와대를 본떠서 지붕이 청기와로 덮여 있었습니다. 본관 앞에 도착하니 210개국의 국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210개국의 2억 명이 넘게 태권도 수련을 하였고, 1100만 명 이상의 유단자와 20만 명 이상의 사범이 배출되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태권도를 통해서 210여개국 이상에 정신적, 무도적 영향을 미치고 지배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섭 국기원 원장님의 안내로 박물관 관람부터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2천 6백여 점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국내와 세계의 주요 대회에서 시상한 우승컵, 상장, 메달, 우승기 등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동섭 장로님은 “목사님이 지금까지 몰라서 그렇지, 국기원 원장 자리는 가톨릭으로 말하자면 교황과 같은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저야말로 태권도의 교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저는 교회에서 늘상 보던 장로님과 국기원에서의 장로님이 사뭇 다르게 보였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거인 앞에 제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장로님은 국기원 원장실로 저를 안내하시더니 먼저 기도부터 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저의 기도가 마치자, 장로님께서는 태권도의 C.I.를 비롯해 수련의 목적을 설명하였습니다. “태권도는 단순히 무술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신 수련과 인성교육에 더 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쌓이는 정신 수양은 인의와 예의, 관용과 생명, 인격, 인내력과 의협심을 가져다주고 덕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인격을 완성하게 해줍니다.” 이런 태권도의 황제인 이동섭 장로님이 20대 국회의원으로 계실 적에 국회의원 225명의 서명을 받아 태권도를 대한민국의 국기로 지정하는 법을 만드셨습니다. 한마디로 국기 태권도를 법제화한 것이죠.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면, 중국이 태권도의 동북공정을 할 뿐만 아니라 일본은 올림픽 경기에서 태권도를 제외시키고 가라테로 교체하려고 하는 시점에서 국기 태권도법을 입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위대한 거인을 옆에 두고도 저는 이제야 거인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아, 내가 왜 국기원을 방문하지 않았던가. 진작 국기원을 방문하였을 걸...” 국기원 수련장을 둘러보니 전국에서 모인 수련생들이 대련(시합)을 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저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워낙 시골 깡촌에서 자라서 태권도 도장에는 한 번도 못 가보고 학교 운동장에서 태권도를 배웠습니다. 빨간 띠까지는 읍내에 있는 관장님이 학교로 오셔서 심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품새도 잘했을 뿐만 아니라 대련에서 누구에게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검은 띠를 딸 때가 되었습니다. 사범님으로부터 예비심사에 합격을 하고 읍내에 가서 관장님 앞에 심사만 받으면 검은 띠를 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단자가 되려면 그때 당시 심사비를 꽤 많이 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 어머니가 절대로 유단증을 못 받게 하였습니다. “검은띠는 큰 형으로도 족하다. 너는 어딜 가나 누구에게도 안 맞고 다니지 않느냐. 태권도만 잘하면 되지 검은띠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너까지 검은 띠를 따게 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저는 실질적으로는 유단자였지만 심사를 못 봐서 검은띠를 못 땄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죽기 살기로 도전을 했더라면 뭘 못했겠습니까? 제가 마당에 엎어져서 뒹굴고 엉엉 울어댔으면 어머니도 어찌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태권도 말고도 돈이 들어가지 않는 백일장 대회나 웅변대회에 가서 상을 받아오는 것으로만 만족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제가 국기원에서 공인 9단이요, 세계 태권도의 교황 앞에 서서 제 자신을 바라보니 너무나 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특별히 옛날에는 안 맞고 다니고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만 배우려고 했던 태권도가 심신 수련과 인성교육, 덕과 인격 완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의 국기인 태권도가 새삼스럽게 위대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태권V 이동섭 국기원 원장님이 더 거인으로 보였고, 이제는 옛날에 배웠던 태권도를 복습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심신 수련과 덕과 인격 완성의 과정을 삼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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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성서연구] 혼란 시대의 그리스도인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요즘 우리 기독교인들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현실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만 겪어보지 못한 일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현실 또한 겪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교세가 감소하고, 신학생이 줄어들고, 한국교회의 목소리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먹혀들지 않고, 소수로 전락하는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급성장했고, 대형교회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힘이 있었고, 대한민국 사회의 여론 지도층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런 데 익숙한 우리에게 오늘의 찬 바람 부는 현실은 겪어보지 못한 어색하고 힘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리는 먼저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와 성도는 본래 소수였음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겨우 열두 제자를 부르신 이후 예수님을 따르는 참 성도는 늘 소수였습니다. 기독교 국가이던 중세 유럽에서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중생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소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복음이 들어온 초기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독교가 다수였던 적은 없었습니다. 단지 힘이 좀 있다 보니 다수인 듯 착각했을 뿐입니다. 본래 믿음의 선배들은 불신앙의 거대한 세상에 에워싸여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의 정절을 굽히지 않고 그리스도인답게 꿋꿋이 살았습니다. 그게 우리 선배들이 혼란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좋은 모델입니다. 누가복음 1장 5절은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고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유대 왕 헤롯 때에>라는 구절입니다. 이것을 각색한다면 <더 악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한 세상에서>라고 하겠습니다. 헤롯은 로마와의 인연으로 분봉왕이 되어 유대를 다스린 에돔 출신의 광포한 사람이었는데, 아내들과 친아들들을 죽였을 정도로 악했습니다. 헤롯에게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로마의 식민지요, 헤롯 같은 악한이 다스리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게다가 인간적으로 낙도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7절은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악해도 자녀가 있다면 낙이 있을 텐데, 이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놀라웠습니다. 누가복음 1장 6절은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고 되어있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헤롯 왕이라는 눈앞의 권력자가 아닌, 하나님께 맞춰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습니다. 더구나 주의 계명과 규례대로 고집스럽게 흠 없이 살았습니다. 세상이 악해도 그들은 그들의 믿음의 외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렇게 산 끝에 세례 요한을 낳았습니다. 앨런 크라이더는 『초기교회와 인내의 발효』에서 로마 시대의 초기교회가 로마 전역으로 확산된 비결은 어려운 핍박의 상황에서도 묵묵히 인내한 것과, 세상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고집한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해결책은 여기 있습니다. 세상의 편법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묵묵히 그리스도인답게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지켜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고독하고 힘들지만,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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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시사칼럼] 타락한 지도자들, 빛과 같은 백성들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방이 어려운 국면에 빠져 타개할 길이 보이지 않고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하마스와 전쟁 중에 있는 예루살렘을 보십시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옛날도 예루살렘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평화의 도성인 동시에 하나님의 성전이 자리 잡고 있던 거룩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이 전하는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십시오.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습 3:1). 패역이란 하나님을 향한 교만과 불순종을, 더럽다는 말은 도덕적 타락을, 포학하다 함은 정의와 인자의 실종을 의미합니다. 한 개인의 편견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도 “그 성중에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렘 6:6)라고 증언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결정적인 이유가 등장합니다. “방백들은 사자요, 재판장들은 이리요, 선지자들은 간사하며, 제사장들은 성소와 율법을 범했다”(3-4절)고 합니다. 한 마디로, 당시 지도자들이 완전히 부패하고 타락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도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하여 내 집에서도 악이 가득하구나”라는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렘 23:11). 역시 동시대에 활동했던 에스겔 또한 “제사장들이 불법을 범하고 사람들의 눈을 가리워 하나님께서 더럽힘을 당한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겔 22:26). 결국 예루살렘에 “화 있을진저”라는 신탁(Woe Oracle)이 붙었습니다. 선지서에 자주 등장하는 이 문구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대적하는 이민족을 향해 주께서 분노에 차서 선포하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총체적 난국 가운데 한 줄기 빛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습 3:5). 그렇습니다. 사방이 캄캄한 어둠뿐이라 해도 언제나 한 줄기 빛이 존재합니다. “아침마다 비추시는 하나님의 빛”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도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총체적 난국에 처했더라도 우리는 이사야처럼 이 빛을 기다리고 바라봐야 합니다(사 8:17). <바보 예수>로 유명한 서울대 명예교수요 가좌대 석좌교수인 ‘김병종’ 화백이란 분이 있습니다. 서초동 사랑의교회 지하 4층 예배당 벽면에는 그가 그린 55미터의 대형 그림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원래 작품 이름은 “바람이 임의로 불 때-송화분분”이지만 교회 측에서는 그림을 ‘기도와 묵상의 길’이라 부릅니다. 김 교수의 고백입니다.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 우르르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창조주를 예배하러 가기 위해 옷깃을 여밀만한 준비와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옛날 어머니와 손잡고 들길을 걸어 교회에 갔던 일을 떠올리며 제작했습니다.” 성경은 주께서 아침마다 빛을 어김없이 비추신다 말합니다. 하지만 끝내 외면하는 자들이 존재합니다. 반면 그 빛을 찾아가는 그림 속 모자(母子) 같은 이들도 있습니다. 선지자는 그들을 “겸손한 자들”(2:3) 혹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2:7)나 “나의 남은 백성”(2:9) 내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3:12) 또는 “시온의 딸, 예루살렘의 딸”(3:14)이라고 불렀습니다. 지도자들이 타락하고 그 때문에 한 사회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도, 결국은 이런 사람들이 빛이 되는 법입니다. 최근 한 지역방송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한 편이 뒤늦게 입소문을 타며 화제몰이 중에 있습니다. 진주에서 평생 한약방을 운영하던 분 이야기인데, 그분 이름을 딴 제목이 “어른 김장하”입니다. 그는 모은 재산으로 학교를 세우고 사회에 기증했고 장학금을 주며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살폈습니다. 젊은 감독은 선생의 모습을 취재하며 감탄한 나머지 “살아 움직이는 사회보장제도”라는 격찬을 남깁니다. 하지만 본인은 소문내지 않고 너무나 검소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후원 받은 사람들 중에 헌법재판관도 나오고 의사도 나오고 했다 합니다. 그런데 방송 중에 한 사람이 “선생님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때 어른의 대답에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그리고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 우리 지도자들을 보면 한숨만 나올 때가 많습니다. 정치인들만큼이나 성직자들도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거룩함을 소중히 여기고 겸손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기다리며 묵묵하게 살아가는, 온통 혼탁하고 세속적인 분위기 가운데에서도 신을 경외하며 그 교훈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비록 유명하지 않아도 영향력이 없어 보여도 한 줄기 빛과 같은 평범한 인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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