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2-0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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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방사능의 미래를 알지 못했던 위대한 여성 과학자
    위인전을 다루는 영화의 방식 어느 사회에서나 위인전은 두 가지의 특성을 갖는다. 하나는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교육적 성격을 고려하여 사회의 모범이 되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무흠한 인물을 위인전에 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전기작가는 편집과정에서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업적 위주로 기술한 결과 문제는 없고 위대함만을 부각하여 인물을 재창조하는 셈이다. 위인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위인전을 펴낸 사회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반공이 사회의 중요한 구호로 등장할 때는 6.25의 영웅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한국에서 펴낸 세계의 위인전집에 올랐는가 하면, 수출증대에 나라의 모든 것을 걸었을 때는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아동을 위한 위인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영화도 위인을 다루는 방식이 책과 다르지 않다. 21세기에 퀴리 부인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과학의 가치와 여성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교육적이며 시대적인 상황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업영화로서 관객을 모아야 하고 책과 경쟁해야 하는 구도가 명확해지면 영화는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장르(genre)의 특성을 갖는 일이다. 장르란 일종의 영화의 분류법으로 비슷한 내용이나 형식에 따라 영화들을 묶어 영화의 특성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역사적 위인들의 생을 조명하는 영화들은 드라마라는 장르 안에서 이해되며 주인공이 경험하는 사건을 다루는 가운데 인물의 성격을 조명하는 방식을 취하곤 한다. 이 과정에서 장르영화는 ‘반복과 변형’이라는 특유의 전개방식을 보여준다. 즉 관객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위인에 대한 내용을 영화는 ‘반복’한다. 이것은 관객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순신 장군의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은 임진왜란의 용맹스럽고 왜군을 물리치는 호쾌한 승전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온다는 사실을 상업영화는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관객이 알고 있는 것만을 묘사하는 영화는 새로울 게 없다는 판정을 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장르 영화는 ‘변형’이라는 전개방식을 따른다. ‘변형’은 관객이 미처 알지 못하거나 알았다 하더라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다룸으로써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방식이다. 관객은 뻔할 것 같은 영화로부터 새롭게 기대감을 갖게 되며 앞으로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호기심을 머금은 채 스크린을 응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링컨>(2012)은 장르영화의 성격을 명확히 보여준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위대한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한 관객의 기억들을 소환하여 스크린에 반복하여 펼치지만 똑같지는 않다. 스필버그는 링컨이 순수하고 정직하며 어떤 야망도 갖고 있지 않은 고결한 위인이라는 동화책에 나올 법한 이미지는 여지없이 깨뜨린다. 링컨은 의회에서 노예제를 완전히 폐지시키는 수정헌법 13조가 통과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기 위해 반대편인 남부연합 대표들이 워싱턴에 들어오는 여정을 지연시키고, 심지어 자신의 법안에 반대표를 던질 생각인 야당 의원에게 관직을 제공하는 댓가로 찬성표를 얻어낸다. 다시 말하면 술수를 부리고 야당 의원을 매수하는 셈이다. 분명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는 ‘변형’된 링컨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예폐지와 같은 숭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링컨의 행동이었음을 관객들은 깨달으며 링컨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며 극장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책으로는 알지 못했던 마리 퀴리 그렇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또 다른 위인 ‘마리 퀴리(Marie Skłodowska-Curie)’는 어떨까? 흔히 ‘퀴리 부인’으로 우리의 귀에 익숙하고 라듐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위대한 여성 과학자가 우리가 기억하는 위인전의 내용이지만, 그녀가 남성 중심의 학계에서 여성으로 치열하게 싸우는 한편으로 남자로부터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없었다. 이란 출신의 여성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의 <마리 퀴리>(Radioactive, 2019)는 위인전이 미처 언급하지 못한 퀴리 부인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담고 있는 영화를 연출함으로써 ‘반복과 변형’의 장르적 특성을 영화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위인전에서는 알지 못했던 퀴리 부인의 이미지는 세 가지의 ‘변형’을 이루며 관객의 예측을 넘나든다. 첫째는 자신의 일에 관한한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임을 영화는 제시했다. 마리 퀴리(로자먼드 파이크)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때 혈기를 부리는 모습은 다소 당황스럽다. 남성 중심의 위원들 앞에서 다소곳하게 앉아 있어야만 우리가 상상한 퀴리 부인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라면 남성들과 거침없이 맞붙는 투지는 위인전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시절임을 감안 한다면 혈기를 부리는 여성 과학자의 탄생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도 얼마간의 책임이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마리 퀴리는 연구실과 연구결과물을 독점하던 남성들에 대해 늘 경계심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었다. 1903년 자신의 연구 동료이자 남편인 피에르 퀴리(샘 라일리)와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직접 스웨덴에 가서 상을 받지 못하고 수상소감 또한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녀는 몹시 분노한다. 둘째는 우리가 아는 마리 퀴리가 있기까지 남편 피에르 퀴리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시킨 것도 영화가 제시한 새로운 점이었다. 연구실에서 쫓겨난 마리를 위해 새로운 연구실을 마련해주며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운 피에르가 없었다면 과연 퀴리 부인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사랑의 동반자로서 결혼하고 늘 마리 옆에서 함께했던 남편 피에르의 존재는 마리의 내면세계에 안정감과 사랑에 대한 충족을 가져옴으로써 위대한 여성 과학자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남편 피에르가 마차에 치여 죽은 후 마리 퀴리가 남편의 동료이자 연구원이었던 남성과 자신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 일은 아마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을 당황스럽게 만든 일이었다. 퀴리 부인의 어린 두 아이가 아빠 대신 낯선 남자와 침대에 함께 있는 엄마를 열린 문 사이로 지켜보는 장면은 정숙한 퀴리 부인의 이미지만을 갖고 있었던 관객의 예상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말기 때문이다. 유부남 연구원과 밀회를 즐겼지만 이내 그 아내로부터 욕을 들어야만 이 위대한 여성 과학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결국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개방적인 성의식을 가진 관객이라면 이 또한 마리 퀴리의 거침없는 성격과 성에 대한 주체적인 행동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남편이 죽은 후 사랑이 필요했다는 마담 퀴리의 고백은 자신의 성적 욕망에 대해서 솔직하고 담대한 현대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마리 퀴리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인이라기 보다는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욕망을 가진 인간으로서 묘사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일찍이 다윗과 같은 위대한 왕이 성적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밧세바와 같은 유부녀와 정을 통했던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의 결과일 뿐이다. 다만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시51:1)라며 회개의 기도를 한 반면 마리 퀴리는 기독교인이 아니란 점이 다를 뿐이다. 이 차이는 영원이라는 간격을 벌릴 수 있지만 말이다. 신앙없는 과학의 미래 영화는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되지 못한 과학자의 삶과 연구결과물이 가져올 허무함과 비극을 제시한다. 마리 퀴리는 남편 피에르가 죽은 후 정신적 혼란을 경험하며 그렇게도 강하게 자신을 떠받치고 있던 과학으로부터 이탈하는 경향도 보였다. 마리 퀴리는 죽은 남편을 만나기 위해 영매를 찾아 나선다. 남편의 손에 이끌리어 갔던 심령술 모임에서 영매는 베토벤의 혼령을 자신의 몸속으로 불러내어 피아노 연주를 했었다. 죽은 남편의 영혼을 불러내어 대화하려는 마리 퀴리의 행동은 결국 남편에 대한 진한 사랑과 더불어 아무리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라도 인생의 풀리지 않는 문제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얼마든지 사이비 심령술에도 빠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병원 복도에서 이동 침대 위에서 지나간 자신의 삶을 떠올리는 동일한 장면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다. 다만 끝맺음 부분에서 마리 퀴리는 자신의 방사능 연구가 가져올 미래의 방사능 유출과 관련된 비극적 사건의 예시를 함께 떠올린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투하와 1961년 네바다 사막에서의 공개된 핵실험, 그리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1986년 체르노빌 원전폭발의 장면들이 등장한다. 마리 퀴리 사후에 벌어진 핵과 방사능의 어두운 그림자는 그녀의 위대한 연구와 발견이 가져다 준 비극의 열매였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은 8만 명을 즉사시켰고, 방사선 피폭과 관련된 질병과 부상으로 14만 명이 이후에 죽었다. 인구 35만 명의 히로시마 시민 가운데 22만 명이 사라진 것이다. 네바다 사막의 핵실험장은 구경꾼을 불러 모으는 관광상품이 되었고,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로 방사능에 오염되어 사망한 사람이 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미국의 일간지 USA 투데이는 보도했다. 마리 퀴리는 자신의 연구업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부릅니다. 방사능”. 이 영화의 원제목은 ‘방사능(Radioactive)’이다. 열정있는 과학자가 발견한 이 수고의 결과는 인류를 구원했는가? 아니면 파멸로 이끌고 있는가? 마리 퀴리는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그래서 신앙이 없는 과학을 볼 때마다 물가에 뛰어노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과 같은 심정을 감출 수가 없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과학자들에게는 다윗의 기도가 필요한 때이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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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 현대인들의 ‘악’에 대한 치유백서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지옥 차관인 스크루테이프가 초보 사탄인 조카 웜우드에게 보내는 31개의 편지 모음집, 아니 서간체로 쓰여진 지령문이다.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떻게 하면 표적으로 삼은 기독교인인 환자를 원수(하나님)로부터 떼어내는 방법을 조언하는 형식의 ‘사탄 전략서’이다. 영문학 대가의 글이라 은유가 많아 얇은 책임에도 생각할 것이 의외로 많다. 읽다 보면 우리의 이중적인 신앙 모습이 떠올라 쓴웃음을 자아낸다. 일상에서 무심코 하는 우리의 행동들이 고도로 계산된 사탄의 전략이라니‥ 저자 자신이 이 책을 쓰는 동안 ‘사탄’적으로 생각하느라 매우 힘들었다는 고백처럼 역설적으로 하루하루 치열한 영적전투에서 사탄의 삶을 닮아가는 우리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는 성찰의 책이기도 하다. 어느 평자의 말처럼 ‘악’에 대한 현대인들의 잘못된 상상력을 치유하기 위한 해독제로서 이 책을 권한다. ∥저자소개 C.S.루이스: (1898~1963)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출생,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시인, 작가, 비평가의 생을 살다간 저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복음주의자. 1925년부터 옥스퍼드 모들린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다 1954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수로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무신론자였던 그는 1929년 회심 후 치밀하면서도 논리적인 정신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순전한 기독교》 《나니아 연대기》 등 뛰어난 저술들을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1쇄를 시작으로 2018년 통합 100쇄 돌파하였고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홍성사 간. 11,000원. ∥같이 읽으면 좋은 책 《C.S. 루이스, 기쁨의 하루》 / 월터 후퍼 엮음 / 홍성사 《스크루테이프 비밀보고서》 / 앤드류 팔리 / 터치북스 / 바른미디어 현대인들의 ‘악’에 대한 치유백서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20C 최고의 기독교변증가 “우리에게 흡수란 강한 자아가 약한 자아의 의지와 자유를 빨아들이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경쟁한다’는 뜻이야. <악마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김길구 이 책은 우리에게 《순전한 기독교》란 책으로 널리 알려진 20세기 최고의 기독교변증가이자 영문학자인 루이스의 작품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57년이 되었습니다.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자에 대해 알아보죠. 김현호 다재다능했던 루이스에 대한 일화는 너무 많아 다 다룰 수는 없지만 무신론자에서 기독교인으로 살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기에 현재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개종한 이어녕 선생님의 경우는 말년의 황혼기를 붉게 물들였다면, 루이스는 인생의 황금기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의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계 인물 중에 하나로 평가받고 있지요. 김형기 루이스의 특이한 점은 종교적 회심의 단계가 1회적이 아닌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더욱 성숙해 갔다는 점입니다.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그리고 당대의 거물이 기독교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도 흥미로워요. 지성에서 감성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이어지는 그의 여정이 신앙적 회의에 빠진 우리에게 많은 통찰을 줍니다. 김길구 그의 재능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요. 고전문학자인 그가 쓴 공상과학소설은 당시 SF소설 최고의 3부작으로 평가받고 있고요. 《나니아연대기》는 3대 판타지 소설로 그를 개종시킨 친구, 21세기 가장 위대한 판타지 걸작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 J.R.R. 톨킨과의 문학과 신앙에 얽힌 우정도 빼놓을 수 없는 얘깃거리입니다. 이 책을 J.R.R.톨킨에게 헌정한 것만 봐도 그들의 우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신도였던 그가 《고통의 문제》를 통해 탁월한 기독교 변증론의 해설자로 인정받았죠. 기독교의 고전-스테디셀러 김길구 그의 대표작인 이 책을 논하기에 앞서 생애를 먼저 이야기한 것은 이러한 당대의 천재 지성인의 신앙적 회의가 역설적으로 악마의 입을 통하여 크리스천을 넘어뜨리는 전략으로 표현되고 있으니까요? 그럼 본문으로 들어가 보시죠. 김현호 성서의 욥의 등장인물과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를 연상시키는 이 책은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지옥의 차관인 화자인 스크루테이프와 조카 웜우드, 악마의 타켓이 된 환자, 그리고 악마의 입장에서 본 원수는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환자를 신앙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전략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요. 전쟁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던 1941년에 〈가디언지〉에 연재한 이 책은 크게 성공하였고, 2000년부터 발매된 우리나라도 스테디셀러로 10만 권이 넘게 판매되었습니다. 김형기 등장인물의 이름들도 상징성이 있어요. 타이틀 롤을 맡은 스크루테이프는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스크루지 할아버의 (Scrooge) + 관료적 형식주위의 상징인 빨간 끈(red tape)의 합성어고요, 신참악마이며 조카인 웜우드(Wormwood)는 쑥이란 뜻의 쓴맛, 고난, 고뇌를 뜻한다고 그래요. 슬럽갑(Slubgob)은 얼간이(slob) + 입에 가득한 침(gob) 등의 합성어로 저자의 의도를 아는데 도움을 주지요. 서문에서 그는 악마에 대한 두 가지 오류를 지적하고 합니다.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부정하고 믿지 않는 것이고, 또하나는 악마를 믿되 지나치게 과도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논증과 이성을 피하라, 교회는 우리의 가장 큰 협력자이니 교회에 실망토록 하라, 사랑을 변질시켜라 등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직장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와 영적인 문제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이 31장의 편지에 수록되어있습니다. 일상을 통해 본 사탄의 전략 김길구 1961년도판 서문에서 그는 단테와 러스킨 그리고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타난 악마의 유형을 비교하면서 그가 상상한 지옥은 무서운 불구덩이와 지저분한 범죄의 소굴이 아닌 스마트한 사무실에서 말쑥한 차림으로 음모를 꾸미는 두려움과 탐욕으로만 똘똘 뭉친 관료사회 같은 곳으로 묘사했어요. 그들의 음모 속으로 들어가 보죠. 우선 가족 간의 갈등을 이용하는 방법인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등한시한 채, 내면의 영적인 구원만을 구하게 하는 전략으로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어 관계를 어렵게 하라는 거예요. 김현호 저는 두 번째 편지에서 실망감이란 자신이 꿈꿨던 것에 대한 좌절의 표시로 교회에 희망을 버리도록 실망시키라는 조언인데, 요즘 교회 안팎에서 실망하는 교인들이 많잖아요. 스물다섯 번째 신앙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무언가 기독교 색채를 띤 유행을 들어 ‘불변하다’는 기술적 형용사를 ‘정체되다’라는 좀 더 감정적인 형용사로 바꾸어 버리고, 미래란 선택받은 영웅만이 얻을 수 있는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하도록 부추키라는 것입니다. 김형기 열여섯 번째 편지에서 자기한테 맞는 교회를 찾아 주변을 헤매며 ‘교회감정사’ 혹은 ‘감별사’가 되는 방법인데, 교인들을 교회 밖으로 끌어내지 못하면 교회 안에 있는 분파를 만들어 혼란케 하라는 것입니다. 스물한 번째 내가 주인이라는 의식을 주입하여 자신이 청지기임을 잊게 하는 전략입니다. ‘내 시간은 나의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교만과 혼동으로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게하라는 것입니다. 스물두 번째 방법은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여 예수를 단순한 스승으로 만들어 버린 후 그의 가르침과 다른 위대한 도덕적 스승들의 가르침이 궁극적으로 같다고 함으로써 그의 헌신의 삶을 무너뜨리라는 것이지요. 영적상태를 점검하는 지침서 김길구 그럼 이 책을 읽으신 소감 한 말씀씩 해주시죠. 김형기 악마들이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공략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글이라고 봐요. 매 편지 서두에 그들이 대상으로 삼는 신자의 영적상태를 분석한 글들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점검해 보는 데에 매우 유익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김현호 지옥의 원칙은 자아는 독립적이라는 대목입니다. 내가 좋으면 당신이 안 좋고, 당신이 좋으면 내가 안 좋은 일종의 제로섬게임 같은 거지죠. 나는 나, 너는 너니까요. 천국은 이와는 반대로 당신에게 좋은 것은 내게도 좋은 것이 아닐까요? 세상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곳은 교회이고, 믿으의 공동체를 통해 형제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요, 형제의 슬픔은 곧 나의 슬픔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김길구 저는 이 책을 통해서 평범한 일상의 하루하루가 치열한 영적 전쟁터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루이스가 1941년에 이 책의 서문을 썼으니 1939년부터 시작된 4천만 명에서 5천만 명의 사망자를 낸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이라는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연재한 대가의 작품치고는 시대의 전쟁이라는 거대 악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쉬움이 듭니다. 이것조차 악마의 전략이라면 모르겠지만… 김현호 무신론자였던 루이스를 일깨운 것은 의외로 인문학이었습니다. 인문학에 심취하다 그는 어느새 유신론자가 되어 있었고, 망설이는 그를 믿음의 세계로 인도한 것은 돌킨과의 각별한 우정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믿음의 동반자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김형기 반어법으로 이 말이 떠오르네요. ‘인간을 영원과 현재로부터 떠나 살게 하라. 미래 속에 살게 하여 희망과 두려움으로 붙들게 하고, 모든 의무와 은혜와 지식과 쾌락의 유일한 거처인 현재에 몸담고 살지 못하게 하라. 거의 모든 악은 미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는 과거를 바라보고, 사랑은 현재를 바라보지만 두려움과 탐욕과 정욕과 야망은 앞을 바라본다. 현재를 살고 있다면 ‘자기만족’을 위해서 살게 하라’ 김길구 장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코로나19의 창궐로 세계가 공포의 도가니에 빠진 상황인데 미국의 화이자와 독일의 바이오엔텍에서 중간 임상실험 결과 90% 완치율을 가진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과연 코로나팬더믹이 끝날 것인지 일상을 잃어버린 세계는 지금 되묻고 있습니다. 다음 읽을 책은 두란노에서 펴낸 김형석 교수의 저서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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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20-11-20
  • [영화] 약자의 연대가 만든 성장과 정의를 바라보다
    웃으면서 화내는 법을 아는 영화 20세기가 저물고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면서 유럽의 영화전문가들은 지난 한 세기를 빛낸 영화를 꼽기 시작했다. 영화의 역사가 1895년 12월에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인 만큼 이제 막 100년을 넘긴 영화의 여정에서 한 세기를 빛낸 영화를 뽑는 일은 곧 세상 최고의 영화를 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최고의 영예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1936)에게 돌아갔다. 나중에 채플린의 세 번째 부인이 된 여배우 플레트 고다르(Paulette Goddard)와 함께 열연한 <모던 타임즈>는 채플린의 사회 비판적 시각과 인간애 그리고 예술성이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적절한 조화를 이룬 완벽한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커다란 톱니바퀴 속으로 들어가 나사를 조이는 주인공의 모습으로도 유명한 이 영화는 대공황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와 기계의 부속품처럼 전락한 인간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현대문명을 비판한 영화로 널리 알려졌다. 이 때문에 찰리 채플린은 사회주의자로 몰렸고 매카시즘( (McCarthyism)의 희생자가 되어 한동안 미국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인뿐만 아니라 당시 소련을 포함한 전세계인들은 그의 영화에 열광했고 현대 기계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어떠한 위기에 처할 수 있는지를 깨닫는 한편 주인공이 걷는 희망의 길에서 위로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찰리 채플린과 <모던 타임즈>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뛰어난 사회문제 제기 능력 때문이다. 이기적인 부자와 절망스러울 만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인간을 기계 부속품처럼 취급하는 심각한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전혀 거부감없이 스크린에 올려놓을 뿐만 아니라 유쾌하고 재미있는 코미디적 발상을 통해 관객들을 몰입시키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문제를 성찰케 하는 그의 뛰어난 영화 제작 기술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종필 감독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오랜만에 만나는 사회비판 의식을 갖춘 코미디 영화로써 만일 찰리 채플린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다뤘을 법한 내용과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여상 출신의 고졸 여사원에 대한 심각한 인사차별과 대기업 공장에서 독극물을 방류하는 바람에 피부병에 시달리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한국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비싸게 되팔려는 다국적 투자회사의 횡포 등은 <모던 타임즈>에는 없지만 현대사회의 약소국 국민들이라면 경험했을 만한 심각한 내용들을 코믹하게 다루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웃으면서 화를 낼 줄도 아는 이중 커뮤니케이션의 화법을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엄청 화를 낼 일임에도 불구하고 목청 높이고 핏대 울리면서 싸우지 않고 웃으면서 유쾌하게 관객에게 문제를 각인시키며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게 만들 수 있다면 채플린이 좋아할 만한 영화가 아닐까? 영어토익반 상고 졸업 여사원들의 빛나는 연대의식 IMF가 오기 전인 1995년, 대기업 삼진그룹에서 일하는 여상(女商) 출신의 입사 8년 차인 이자영(고아성)은 탁월한 업무 능력에도 불구하고 입사 동기인 정유나(이솜), 심보람(박혜수)과 함께 잔심부름과 인스턴트커피 타기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졸 사원이란 이유만으로 근무복을 입히고 승진에 차별을 두고 있는 회사는 마침내 여상 졸업 사원들에게 토익 600점을 넘기면 대리로 승진시킨다는 새로운 지침을 발표한다. 회사 내 여상 출신들이 강의실을 가득 채우며 토익 공부에 매진할 무렵 이자영은 회사 임원의 물건을 정리하러 간 공장에서 페놀을 방출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회사에 보고를 하고 시정조치를 지켜보면서 지영은 페놀 방류가 사고가 아닌 회사의 의도적이란 사실에 심증을 굳히면서 유나와 보람과 함께 결정적 증거를 찾기 위한 탐색을 시작한다. 이야기의 전개 상황을 보면 영화는 대기업의 환경오염 실태를 사회에 알리는 전형적인 내부 고발의 형식을 갖고 있다. 회사는 페놀을 무단 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에게는 마치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적당히 보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여기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할리우드 영화가 내부고발자를 다루는 방식과 다른 점이 발견할 수 있다. 미국 국방부 정보기관 NS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을 내세워 NSA가 각국 정상들에서 민간인에 이르기까지 통신 감청 시스템 프리즘(PRISM)을 사용해 감시하고 있음을 밝힌 사건을 그린 영화 <스노든>(2017)에서 주인공들은 매우 큰 갈등과 회유, 압박 등을 견디며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데 온 힘을 쏟는 모양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주인공들은 다르다. 자신이 속한 회사가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는 페놀을 유출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리기 위해 노심초사하거나 심각한 심리적 갈등을 스크린 위에 펼치기보다는 영어토익을 함께 공부하는 고졸 여직원들이 힘을 모아 진실을 밝히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즉 그것은 위기의 상황에 대처하는 한국인의 연대의식이 할리우드와는 다르게 이 영화를 가치 있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영어토익반의 고졸 여사원들은 페놀 방류사건의 뒤에 다국적 투자회사가 기업가치를 떨어트린 뒤에 헐값에 매수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밝히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영어를 못하는 바람에 영어를 배우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영어토익반 여사원들은 엄청난 분량의 영어 서류들을 나누어 번역하면서 기업매각의 증거들을 찾아낸다. 회사에서 가장 힘없고 급여도 적으며 남성 상사들의 편견에 시달려 온 고졸 여사원들이 궁극적으로 기업사냥꾼의 손에 회사가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이 연대의식을 통해 나라를 구한 역사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운 의병들이나 외세의 칩입에 항거한 동학농민들, 6.25 때의 학도병들과 4.19혁명 당시의 어린 학생들이 대거 참가한 일 등은 우리 민족이 약자의 연대를 통해 역사의 위기를 극복해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약자의 연대는 강자의 일방적 횡포를 멈추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코로나 시대의 건강한 영화를 마주하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건강한 영화다. 약간의 욕설과 호프집 장면이 나오는 바람에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지만 부조리한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성장을 위해 노력하며 불의한 일에 항거하는 용기있는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어서 나이 어린 사람에게조차 기독교의 선한 가치관을 제공해줄 수 있다. 첫째, 약자와 병자를 향한 감정이입에 성공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육체적 건강의 가치가 공유되어야 함을 느낄 수 있다. 공장에서 방류된 페놀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피부병과 괴질 그리고 흉작의 고통 속에 있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이자영의 캐릭터는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성격의 원형과도 같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5)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마음을 얻는 비결이다. 갈등의 사회에서 고소와 고발, 폭력사태에 이르지 않는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로마서 12장 5절을 실천하는 일이다. 감정의 공유는 마음을 하나로 만들고 문제의 원인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 해결점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만든다. 영화 속 이자영은 회사의 말단 사원으로 회사가 시키는 대로 오염에 따른 마을 주민들의 실태를 파악을 하고 보고하는 것으로 끝나면 되지만 주민들의 끝나지 않은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주민의 고통이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감정이입을 이루었던 까닭이다. 둘째, 상고출신의 여사원이라는 신분에 따른 차별을 극복하려는 사회적 건강이 영화 속에 존재한다. 고졸 사원들은 남들보다 일찌감치 사무실에 출근하여 청소하는 것으로 하루 일을 시작한다. 담배꽁초가 가득한 재떨이를 비우거나 상사의 담배 심부름도 그들의 몫이다. 대졸사원과 구분하기 위해 그들만의 유니폼을 입고 10년을 일해도 대리 승진을 할 수 없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토익공부에 나서기도 한다. 영화의 배경이 1995년이라서 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2020년의 현실에서도 적용되는 사항이다. 성경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신앙 안에서 인종 간의 차이도 남녀 성별의 차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교회는 현실에 존재하는 집단 가운데 사회적으로 가장 건강한 집단이 되어야 한다. 셋째, 불의(不義) 앞에서 오래 고민하지 않고 용기를 갖고 도전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정신적 건강이 어떤 것인지 영화는 보여준다. 학력이 정신적 건강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사회생활에서 정신적으로 건강함 사람의 특징은 자기 분야에 전문적 지식을 갖고 도덕적 행동을 통해 남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영화 속에서 이자영은 커피만 잘 타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속한 생산관리 3부의 서류철을 꿰뚫고 있다. 정유나는 자존감 높은 달변가로서 마케팅에 필요한 문구를 만드는데 재능을 발휘한다. 그리고 영화 속 3총사의 마지막 심보람은 비록 가짜 영수증을 메꾸는 회계부에서 일하지만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에 빛나는 실력을 갖고 아무도 회계부정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영수증 처리 자동화 시스템을 계획하고 있다. 이 세 사람의 행동에 전문성이 돋보이는 한편으로 불의가 없고 도덕이 더 해질 때 사회적 두려움은 사라지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이르게 됨을 볼 수 있다. 넷째 영적인 건강은 관객의 몫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세상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접촉점으로 훌륭하다. 그런데 영화 속 주인공들의 행동 속에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들이 제법 많다.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영화의 배경에 나타난 사회의 문제들이 기독교 안에서 잘 해결되고 있음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교리공부는이해되기 어렵지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신분의 차별을 극복하는 일이나 연약한 자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지혜를 따라 연대활동을 하거나 불의한 권력자와 맞서는 일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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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03
  • [기독교인문학] 이단은 역사처럼 스스로 반복한다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놓은 코로나19 대유행은 모든 면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물밑에 숨어있던 이단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신천지와 전광훈 효과다. 복음주의계의 석학 알리스터 맥그라드는 1~4세기 초기기독교 역사에서 일어난 논쟁을 통하여 이단의 기원과 본질을 탐구하며 이단은 ‘역사적 싸움에서 패배한 정통’이 아니라 신학적 탐구 과정에서 생긴 ‘신학적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이들이다. 이단은 속성상 역사처럼 반복하여 되풀이 되니 수렁에 빠지지 않으려면, 과거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정통이 박제화된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G.K. 체스터튼이 말한 ‘정통신앙의 로맨스’를 재발견하여 교회 스스로 그 매력을 증명함으로써 이단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소개 알리스터 맥그라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21세기를 대표하는 복음주의 신학자.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물리, 화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을 섭렵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여 스물다섯살에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 한때 자유주의에 심취하기도 하였으나 리처드 백스터, 존 오웬, 조나단 에드워드 등의 영향으로 복음주의신학자가 되었다. 지금은 옥스퍼드 대학교 과학과 종교분과의 안드레아스 이드레어스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기독교의 역사》 《도킨스의 망상》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 등이 있다. 포이에마, 2011년. 15,000원.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교회와 이단》 / 탁지일 / 두란노 《이단백서》 / 조믿음 / CUP / 바른미디어 이단은 역사처럼 스스로 반복한다 - ‘정통신앙의 로맨스’를 재발견해야 -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한국은 이단들의 천국 김길구 코로나19의 여파는 우리사회 곳곳에 전방위적인 상흔을 남기고 있지만 교계에서는 뜻밖에 신천지 등 ‘이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이단·사이비 교세는 얼마나 되지요? 김형기 이단의 특성상 정확지는 않지만 기독교를 빙자한 이단·사이비가 기독교인 대여섯 명당 1명 꼴이라는 추정이 있어요. 통계청이 10년 단위로 실시하는 센서스의 2015년 통계를 보면 총 인구의 19.7%인 967만 6천 명이 교인이니. 대략 160만 명에서 20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심각한 수준이지요. 김현호 유독 기독교계가 많은 것은 미국 기독교의 영향으로 군소교파의 난립과 기존 교회의 70~80%가 미자립상태로 개교회주의가 강해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요? 김길구 이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이 책을 선정했는데 2011년 번역된 이래 올 9월에 6쇄가 나왔으니 꾸준히 읽히는 편이네요. 김형기 저자의 이름 값 때문이 아닐까요. 주제도 그렇거니와 400쪽에 가까워 읽기도 부담스런 책인데‥ 김현호 다양한 분야의 학위가 다섯 개일 정도로 박학다식해 읽는 재미도 있어 독자층이 두터운 편입니다. 김형기 이 책은 1~4세기까지의 정통과 이단의 관계에 머물러 있어, 지금 우리 주변에서 발호하는 이단들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답은 주지 못하지만 ‘역사와 이단은 스스로 반복하는 습관이 있’으니이단들의 기원과 본질을 알고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김현호 총 4부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새 장에 들어가기 전 친절하게도 본문 내용을 미리 요약해둬 독서에 도움이 됩니다. 이단,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오인 김길구 저술 동기가 점증하는 이단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했는데, 서구 유럽의 기독교 쇠퇴와도 무관치 않겠죠? 김형기 획일화를 꺼리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포스터모던니즘의 영향도 있구요. 김현호 기존권위에 대한 거부감도 요인이겠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죠. 김길구 2003년 교계와 출판계를 흔들었던 댄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와 〈유다복음〉 발견 등에서 보듯 초기기독교의 다양성과 정경의 채택 등의 과정에서 권력이 개입하여 정통과 이단의 판단에 영향을 끼쳤다는 일종의 음모설에 열광하는 현대인들 정서가 있어, 신뢰를 잃은 정통보다는 듣기에 솔깃한 이단들에게 현혹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 것도 사실입니다. 김형기 이에 대해 저자는 정통적 신앙이 권력을 남용해서 얻은 정치적 산물은 아니며, 도리어 톰 라이트의 주장처럼 《유다복음》의 경우 당시에 유행한 영지주의를 배척하고 더 혁신적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정통이 되었다는 주장을 지지합니다. 김현호 이단과 정통의 개념이 출현한 배경에는 기독교의 정체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확실한 핵심교리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이단이란 의미가 점차 부정적인 의미를 띄며 바꿔가게 되었어요. 시대별 이단 논쟁 김길구 각 시대별 논쟁을 다 소개할 수도 없고 목사님께서 짧게 정리해 주시죠. 김형기 고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 이단이 많이 생겨났고, 중세에는 교황권의 권위에 도전, 교회의 통일성이 깨뜨려 이와 관련한 이들이 정죄 되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었고, 현대에 와서는 종말론과 관련 이단들이 많아졌는데,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극우파들의 출연으로 교회와 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 김현호 저자는 이 책에서 점잖게 신앙의 신비를 잘 설명하기 위한 선의의 견해 차이 정도로 이단을 설명하고 있으나 이단·사이비의 경우 그렇지않은 경우가 더 많아, 탁지일교수의 지적처럼 ‘이단문제는 날카로운 교리적 분석의 눈이 아닌 애통해하는 피해자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가요. 이단발생의 문화적 동인과 지적 동기 김길구 저자는 이단 발생 요인을 5가지로 간추려 제시했는데 하나씩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김현호 첫째는 문화적 규범입니다. 동시대의 문화적 가치관과 기독교적 가치관이 다르면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압박이죠. 둘째는 합리적 규범입니다. 기독교의 관념이 올바른 이성과 판이하게 다를 경우 합리적 기준에 맞춰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요. 셋째는 사회적 정체성입니다. 모든 사회집단은 나름의 정체성을 가져야 유지됩니다. 정체성을 확립할 수단으로 종교적 관념을 이용하려는 유혹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입니다. 김형기 넷째는 종교적 타협입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집단이 공존할 때는 공존을 촉진시키기 위하거나 믿을만한 변증을 개발하기 위해 기독교 신앙의 일부를 수정하려는 태도입니다. 끝으로 윤리적 관심입니다. 종교적 정통파가 도덕적으로 너무 관대하거나 무정부상태에 가까울 때와 너무 억압적이라고 생각이 들 때 이단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교회사에서 일어난 풍부한 사례를 들어 설명했는데, 이러한 요인은 과거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압박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등지고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매력적인 기독교를 위하여 김길구 끝으로 점점 박제화되고 있는 기독교의 정통성을 매력 있게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김형기 ‘매력적이라’ 정통신앙이 구원의 복음인 기독교 진리를 진정성 있게 올바르게 표방하면 되겠지요. 저자의 말대로 ‘교회가 당면한 진정한 도전은 정통이야말로 강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정서적으로 매력 있고, 심리적 감각을 증진하고, 개인적으로 해방감을 주는 것임을 증명하는 일이다’고 생각합니다. 김현호 저는 쓴소리를 해야겠어요. 지금 한국교회는 ‘고상한 신학’이 아니라 ‘상식적인 신앙’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금 상태로는 시시비비를 가릴 능력이 없어요. 사회적 위상과 공신력이 심각히 훼손된 상황에서 공정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말대로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를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진리를 찾기 위함이라고 말에 귀기우릴 때입니다. 김길구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다음달 책은 루이스의 명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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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03
  • [영화]전쟁 영화 속에서 발견한 ‘선한 목자’
    U보트와 코로나19는 닮았다 영화는 항상 그 영화를 경험한 시대적 상황 가운데서 읽힌다. 과거 역사를 다룬 사극을 보느냐 혹은 미래의 공상과학 영화를 보느냐와 상관없이 영화는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현재적 의미를 전달하며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데 관여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공통의 적을 만나 싸우고 있는 현실에서 대중에게 주목받는 영화들은 그 장르나 내용에 상관없이 이 전염병으로 둘러싸인 현실을 인식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좀비 영화 <반도>를 볼 때는 좀비처럼 급속히 번져가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를 반영한다고 생각했고, 디즈니의 실사영화 <뮬란>을 볼 때는 오랑캐와 싸우는 여성 주인공 뮬란에게서 코로나 방역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나라의 방역청장을 보는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19의 현실을 영화 속 배경에 대입시키는가 하면 난세의 위기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영웅을 영화는 고대하게 만들고 있다. 톰 행크스가 이차대전 중 미해군의 함장으로 나오는 영화 <그레이 하운드>는 비록 그 배경이 78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 코로나19의 위기 속의 현대인들이 동의할 수 있는 현재적 의미 안에서 읽혀질 수 있다. 1942년 겨울, 손이 얼어붙을 것 같은 대서양 한복판에서 독일의 잠수함 U보트로부터 연합군 물자를 실은 37척의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크라우제 함장(톰 행크스)은 호위함 그레이 하운드의 지휘를 맡아 대서양을 횡단하여 영국으로 출항하게 된다. 북대서양의 위험지역(블랙 피트)은 독일군의 잠수함을 탐지해서 격침시키는 초계기의 보호지역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까닭에 오직 호위함의 음파탐지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직면하고 만다. 영화 초반부에서 크라우제 함장은 U보트를 탐지하여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려 병사들의 사기를 올렸지만, 이내 어둠 속에서 U보트의 공격으로 불타는 아군의 수송선을 목격할 수밖에 없는 두려움의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U보트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의 실체를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첫째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 숨어 있다가 갑자기 공격하여 생명의 위협을 준다는 점에서 이 둘은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U보트는 잠수함 탐기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2차대전 중 연합군 함대와 상선단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했다. 영화 속에도 등장하지만 독일은 U보트를 이용해 이른바 울프팩(wolfpack·이리떼) 작전을 펼쳤다. 바닷속에서 숨어서 기회를 엿보다가 연합군의 상선단이 나타나면 자기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며 동시에 공격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당시 영국은 2330만 톤의 선박을 잃어버렸는데 이는 영국 경제를 몰락시킬만한 규모의 피해였다. 둘째, 연합군은 U보트의 기만전 때문에 그 위치와 정체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도 코로나19와 비슷하다. 연합군의 구축함이 음파탐지기로 탐색한 U보트는 실제가 아니라 아이스박스만 한 크기의 기만체로 스크루처럼 작동하는 바람에 연합군 함정은 이를 U보트로 착각하여 엄청난 폭탄을 투하하게 되고 끝내는 탄약고를 비우게 하고는 엉뚱한 곳에서 상선을 공격하곤 했다. 자신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전략인 셈이다. 현대의학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약을 개발할 때 경험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이러스의 변이가 활발할 때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완성을 코앞에 둘 때면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이전에 연구한 결과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바이러스의 기만전술인 셈이다. 셋째는 U보트는 야간에 호위함과 수송선단 사이로 침투하여 피아식별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혼란전술을 펼치는데 이는 코로나19에서 겪는 사회갈등을 보는 듯하다. 즉 영화 속에서 호위함 그레이 하운드는 U보트를 공격하다 오히려 아군의 오인사격을 받고 만다. 아군이 아군을 공격하는 꼴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국민이 코로나19와 싸우는 모양새 같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코로나19의 대책을 두고 정치인과 국민들이 분열되어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작 싸워야할 상대는 잊어버리고 아군끼리 싸우다 결국 코로나19가 퍼져가는데 좋은 일을 시켜주는 셈이다. 기도와 성경 인용이 자연스러운 할리우드 전쟁영화 <그레이 하운드>는 일반 전쟁영화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의 자부심을 느끼게 만드는 수작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전쟁터로 향한 지휘관의 마음가짐과 전쟁에 임하는 기독교인의 자세가 기도와 성경 말씀을 통해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크라우제 함장의 기도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거친 파도를 가르며 전장으로 나가는 호위함의 함장실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한다. “주여! 악이 저를 지배할 수 없게 주의 천사를 제게 보내시어 저와 함께하소서. 아멘.” 목숨을 건 전쟁의 상황인 동시에 아직까지는 기독교신앙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던 시대인 것을 감안하면 영화제작자는 시대적 배경을 염두해 두고 함장의 기도를 소품처럼 처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레이 하운드> 함장이 가진 신앙적 면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세밀히 그리고 확대해서 보여준다. 함장실 방안 거울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는 성경 구절이 꽂혀있다. 또한 함장은 식사 때마다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함장이 식사 기도를 할 때 음식을 가져온 흑인 조리장도 함께 기도하며 ‘아멘’으로 화답하는 점이다. 그 누구도 이 상황 속에서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함장의 신앙은 점점 함정 내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부하 장교인 부장 마저 함정의 전기관 고장을 보고할 때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함장님,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입니다”(요9:4) 전기관이 고장나는 바람에 어둠 속에서 있어야 함을 설명할 때 부장은 그가 평소에 기억하던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역시 처음 장면을 반복하며 함장의 기독교 세계관이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영화의 주제와 맥락을 같이함을 나타낸다. 함장은 고된 전투가 끝나고 호위 임무를 벗어나자 함장실에 들어가 침상 앞에 성경책을 놓고는 무릎 꿇고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이날을 영광스럽게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손에 제 영혼과 몸을 맡깁니다. 아멘.” 영화는 이어서 시작 부분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서 13장 8절의 성경 구절이 새겨진 메모를 비춘다. 기도와 성경으로 시작해서 동일한 장면으로 끝을 맺는 수미쌍관(首尾雙關)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완벽하게 기독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톰 행크스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걸까? 톰 행크스와 성경적 영웅을 말하다 <그레이 하우드>에서 톰 행크스는 단지 개런티를 받는 주인공의 역할에 머문 것은 아니었다. 톰 행크스는 이 영화의 각본을 썼다. 주연 배우가 자신이 나올 영화의 각본을 썼다는 뜻이다. 영화가 제작되기 7년 전 톰은 우연히 C. S. 포레스터의 소설 ‘굿 셰퍼드(선한 목자)’를 읽고 영화화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정성을 다해 썼고 쓰는 내내 각본의 내용이 영화 장면처럼 머리에 떠올랐음을 밝히기도 했다. 철저한 기독교 신앙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4천만 달러짜리 전쟁영화의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각본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톰 행크스의 삶에 기독교 세계관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볼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전조는 이미 나타난 적이 있다. 톰 행크스가 <그레이 하운드>를 찍기 직전의 영화는 미국의 공영방송 PBS의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 프레드 로저스(Fred Rogers) 목사의 인간미 넘치는 삶을 보여주는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 2019)였다. 로저스 목사는 TV쇼 <로저스 아저씨의 이웃>(Mister Roger's Neighborhood)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어린이들에게 음악과 인형극 그리고 놀이로 가르친 사람이었다. 톰 행크스는 로저스 목사 역을 맡으면서 상처 입은 사람을 돌보고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하는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톰 행크스가 과연 기독교 신앙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인터넷에 소개된 톰 행크스의 공식적인 종교는 그리스 정교회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88년 지금의 부인인 리타 윌슨과 재혼하며 아내의 가족들이 모두 믿고 있었던 그리스 정교회로 개종했다. 톰 행크스의 최근 영화들과 그의 신앙이 그리스 정교회와 연계되었다는 사실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그가 생각하는 기독교 영웅의 이미지는 ‘선한 목자’로 귀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만큼 사랑과 돌봄 그리고 희생하는 존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들 가운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밀러 대위나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2016)의 설런버거 기장, 그리고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2019)의 로저스 목사와 <그레이 하운드>의 크라우제 함장은 모두 ‘선한 목자’의 이미지를 가진 기독교적 영웅의 모습을 갖고 있다. 늑대처럼 달려드는 악으로부터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돌보는 모습은 힘자랑하는 ‘어벤져스’의 영웅 보다는 성경에 나타난 ‘선한 목자’의 이미지에 가깝다. U보트가 넘나드는 죽음의 바다를 항해할 때 당시 수송선들이 호송함 그레이 하운드를 보며 의지하고 안심했을 모습을 생각하면 코로나19 가운데 대한민국 국민을 지켜줄 선한 목자를 찾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선한 목자는 있는가? 만일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당신이 선한 목자 역을 맡는 것은 어떨까? 코로나 시대에 성경적인 영웅의 등장을 우리는 간절히 바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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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02
  • 북소물리에 김현호 대표(기쁨의집)가 추천하는 가을 책 모음
    공동의 번영을 위한 아름다움의 비전 컬처 케어 마코토 후지무라 지음/백지윤 역/IVP 기독교의 오랜 사역으로 ‘영혼 돌봄’이 있고, 환경을 돌보는 ‘창조 세계 돌봄’ 운동개념이 곳곳에서 발아되어 꿈틀거리고 있듯, 문화적 창조를 전문으로 부름 받은 이들, 분화적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이해와 화해, 치유를 위해 마코토 후지무라 작가는 문화돌봄(culture care)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저자는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갈망한다면 절대로 ‘그렇다’이다.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은 아름다움의 원천이시다. 우리가 믿는 복음의 실재는 우리가 교회안에서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모든 모든 인간의 창조성안에 이미 분명히 드러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도 말한다. 교회가 어두운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저 주일신앙을 지키면서 마치 그리스도께서 일주일의 나머지 시간에는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수는 없다. 우리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께 숨기고 싶은 영역에서도 은혜의 임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음악가, 화가, 건축가들은 ‘아름다움’이라는 ‘쓸모없음’이 뜻밖에도 실용성을 강조하는 우리의 삶을 살아 있게 만드는 생명력임을 알 것이다. 회의와 도발, 전위의 현대 미술 한복판에서, 마코토 후지무라는 화가로서 아름다움의 순수성을 선명하게 증명하고자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문화가 생성적 현장이 되도록 ‘돌보아야’ 하는 청지기적 소명을 인식하고, ‘돌봄’을 위한 실천적 대안을 망설임 없이 제안한다. 신앙과 작업, 예술의 현장에서 ‘영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책은 생각을 자극하는 기댈 언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시대의 예술이 교회로부터 ‘아름다움’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때에, 한 그리스도인 예술가가 던진 ‘예술’과 ‘아름다움’이라는 주제가 참으로 반갑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라는 말씀을 폭력적으로만 해석하여 모든 사물을 정복하고 착취해 온 역사에, 새로운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다스리라’로 번역된 히브리 동사 ‘라다’에는 ‘돌보다’라는 목자적 의미가 있다. 이 다스림은 착취나 정복이 아니라 샬롬의 세계를 향한 돌봄(Care)인 것이다. 문화를 돌봄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이제 문화는 경쟁과 전쟁이 아니라 공동체의 영혼을 가꾸는 즐거운 정원으로 바뀐다. 우리는 이 책에서 에밀리 디킨슨과 빈센트 반 고흐가 예시하는 주변부와 소수자 문화의 중요성을 만나기도 한다. 꽃으로 시작하여 꽃으로 마무리하는 20개의 이야기, 상처 많은 이 시대에 삶의 균열을 돌보고 치료해 줄 아름답고 친절한 책이다. 기독교가 걸어온 길 앞으로 걸어갈 길 세계화 시대의 그리스도교 배덕만 지음/홍성사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우한에서 시작되어 두 달이 되기 전에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가듯 서구에서 유입된 기독교는 거대하고 극적인 변화를 일으켜왔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전파된 복음 은 20세기를 거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가져왔고 이제는 탈 서양화시대를 맞고 있다. 이 책에서 배덕만 교수는 20세기에 기독교는 어떤 모습으로 부흥과 변화를 경험해왔는지를 한국 역사신학자의 눈으로 평가하고 그 특징들을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라도 알기 쉽게 정리하였다. 18세기 계몽주의를 거치고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의 팽창과 정치적 이념의 급속한 생성기간에 기독교에도 엄청난 영향이 미쳤고 제국주의 확산이 선교의 부흥을 가져왔지만 명암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 20세기의 기독교역사를 통해 금세기 기독교의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을 역설한다. 근대 선교는 미국의 주도하에 제3세계를 중심으로 역동적으로 확장되어 마침내 세계종교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고, 이런 변화는 오순절운동을 중심으로 한 성령운동과 복음주의 선교사들의 헌신적 사역, 운송 및 통신시설의 발달과 확장,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과 지원 때문에 가능했다고 진단한다. 유럽 교회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컬 진영에서는 19세기 선교활동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토대로, ‘하나님 선교’라는 새로운 선교 개념을 도입했다. 또한 현재 오순절운동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역동적으로 성장, 변모하는 그리스도교운동이 되었는데 선교통계학자 데이비드 바렛과 토드 존슨에 따르면, 1970년 오순절 신자들은 6,700만 명이었으나 2010년 6억 1,400만 명으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8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리스도교의 중심축이 유럽에서 제3세계로 이동하면서 오순절운동의 중심무대도 같은 경로를 따라 이동했다. 20세기 특징 중 하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끝없는 반전과 변화의 기록이다. 자유주의 등장과 19세기에 출현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하에 반교회주의, 반성직주의 운동이 거세지면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가톨릭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한 내적 변화와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그동안 서방 중심의 다른 그리스도교들로부터 분리된 채 고립되어 왔던 동방 정교회가 세계교회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환경에 편입되어온 과정도 잘 설명해준다. 아울러 현대에 선을 넘는 종교적 실험들이 다양한 형태의 분파주의 형태로 발흥하고 있음을 주목하고 이런 현상에 대한 평가와 전망도 아우르고 있다. 배덕만 교수는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전임연구원이며 백향나무교회 담임목사이다. 우리는 ‘오늘’로 부름받았다! 오늘을 사는 이유 카르페 디엠, 시간의 의미를 기억하라 오스 기니스 지음/IVP 카르페 디엠, ‘오늘 여기서 행복하기를 바란다’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로마의 시인인 호라티우스가 사용한 문장이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을 최소한만 믿고’ 한번뿐인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하루를 충실히 살려고 노력한다. 우리 삶은 연속적인듯 하지만 근시안적이라서 과거를 잊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지도 못하고, 아울러 현재 자신들이 부여 받은 소명을 단단히 붙잡지도 못한다.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 참여하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그분의 나라에 충성하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이 땅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다. 유일한, 의미심장한, 특별한 그것이 나에게 언약적 시간이 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인생은 짧지만, 우리는 우리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인생을 최대한 선용하고, 하루하루를 붙잡도록 부름 받았다. 우리가 시간과 역사를 바라보는 성경의 관점을 따른다면, 인생은 의미를 제공하고 그 의미심장함이 인생의 짧음을 훨씬 능가하는 미래를 열어 준다. 시간은 순환적인 것 이상이고, 그 직선적 진행이 구성하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중요하고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가 가장원하지만 가장 엉성하게 쓰는 것이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거류 외국인”이다. 망명자라는 인식을 늘 품고 우리의 궁극적 본향을 갈망하는 마음은 세속화에 대한 면역력의 중요한 부분이고, 앞으로 전진하는 소망과 함께 그리스도인다운 독특성과 신실함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 책은 오늘하루를 생생하게 누리며 시간의 순례자로 걸어가는 희망찬 여정으로 독자들을 안내해 준다. 예수가 보여준 사랑의 공동체에서 길을 찾다! 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 천종호 지음/두란노 법이 정의가 되고 정의가 사랑이 되는 공동체를 꿈꾸는 호통판사 천종호. 우리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잘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용기를 내어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성품이 사회구성원들에게 뿌리 내리는 것이 중요다. 오랫동안 소년범들을 재판해온 저자는 소년범을 설득하고 갱생할 수 있도록 새로운 대안을 실천해온 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약자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한다는 것은 인간을 그의 능력과 역량에 관계없이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대우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대우의 방식은 바로 존중과 배려다. 존중이란 인간을 그 능력이나 역량에 관계없이 그 존엄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배려란 인간마다 능력과 역량에서 차이를 보이므로 능력과 역량의 부족이나 결여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그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배려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 실현에 부족함이 없게 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신뢰와 정직이라는 정의는 우리사회의 자본이라고 말한다. 판사초임시절 부부관계인 A가 B를 고소했고 이유는 B가 C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위자료 청구를 했다는 것. 천 판사는 그들을 각각 소환하여 신문한 뒤 부정행위의 증거가 없다고 다독였다. 그날 귀가하는 늦은 밤 전철역 근처에서 두 사람이 팔짱을 끽고 걸어 가더라나...진실을 가려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나 신뢰와 정직지수를 높여 주는 것이 판사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성품(덕)으로서의 정의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실현할 수 있는 내면의 성품 상태라고 할 것이다. 존중과 배려를 기반으로 하는 정의는 자기희생과 용서를 통해 완성되는 사랑의 출발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의의 공동체’에 발을 붙이고,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생활방식은 어떠했을까? 회복력 있는 신앙 제럴드 L.싯처 지음/성서유니온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신앙이 가능할까? 코로나 이후에 과연 지금까지의 역동적인 교회모습이 가능할까? 신자들이 복음의 능력을 발휘해서 코로나 뒷수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와 민족에게 희망과 대안을 갖고 제대로 섬기는 모습을 보일 것인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스태디셀러 반열에 오른 책 ‘하나님의 뜻’을 쓴 제랄드 싯처 교수의 최근작이다. 영성 작가인 동시에 탁월한 역사학자로서 저자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고립(유대교)과 순응(로마 종교)이라는 양극단에서 ‘제3의 길’을 택하여, 로마제국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전 우주를 총괄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구현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것, 그러나 주후 313년 이전 로마 시대의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은 다시 기독교가 세상의 주류 문화와 정신으로부터 이격되어 버린 탈기독교 시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새 한국사회에서 기독교는 기득권 종교가 되었고 큰소리치고 영향을 극대화하려고 몸부림치는 기득권 종교가 되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저자는 서구교회들을 연구하여 다시금 회복 있는 신앙을 요청하지만 정작 한국교회가 초대교회가 보여 준 이 역설의 원리를 다시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그리스도인과 로마인의 대조가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키프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돌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편 사람들만 필요한 사랑의 관심을 받는다면 놀라울 게 없다. 선으로 악을 갚고 신과 같은 관용을 베풀며 원수를 사랑하는 것처럼, 세리나 이교도보다는 낫게 행동할 때에야 비로소 사람은 완벽해질 수 있다”라고 선언했다. 이 책에 나오는 초기 기독교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신앙이 우리와 세상과 극명한 실천적 차이를 통해 진짜 제자들의 모습을 증명하는 신앙이 필요하다. 마을목회를 통해 세상을 살리는 교회 마을을일구는 농촌교회들 강기원 외 28인 공저/동연 우리나라의 농촌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것 중에 하나는 동네마다 마을을 품고 있는 듯한 교회모습이다. 어린 시절 농촌을 경험한 사람들은 시골교회와 애틋한 추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농촌교회들이 텅 비어가고 노인들만 교회를 지켜가고 있는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이 교회들을 지켜나가는 헌신된 목회자들이 있다. 이들은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만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마을을 품어내는 목회를 지향한다. 이들은 마을을 교회로, 주민을 교우들로 여긴다. 마을과 교회는 물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들교회의 섬김의 사역을 통해 마을이 되살아나는 현장에는 새로운 희망의 싹들이 뜨고 이미 열매가 무성하기도 하다. 이 책속에는 마을목회의 사례 스물여덟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각 마을의 형편에 맞는 다양한 목회는 생명농업, 문화지킴이, 노인복지, 역사와 전통을 지켜가는 부분까지 다양하다. 대 자본들이 마을을 잠식하는 것을 막아내고 마을 도서관, 고통받는 이웃들을 부둥켜 앉는 자리까지 함께 한다. 그야말로 마을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복원하고, 복지를 세워가는 현장에 목회사역이 빛나고 있다. 마을목회이야기를 통해 농촌목회현장에서 기도하며 씨름하는 목회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만나 보자. 사랑의 모조품들을 버리고 사고를 회복하는 참 모델 생각, 하나님 설계의 비밀 티머시 R. 제닝스 지음/CUP 우리가 믿는 복음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뿐 아니라 한 인간을 총체적으로 회복하는 과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린 사람은 자신이 쓸모없다는 느낌, 낮은 자존감, 막연한 죄책감, 원한과 적개심, 의존 상태등 이런 부정적 생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쉼을 누릴 수 있다. 제닝스 박사는 레지던트 2차년도에 만난 그녀 때문에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아주 슬프고 외로워 보였고 얼굴이 시름에 겨워 초췌했던 47세의 그녀는 자살방지를 위해 정신과 직원이 배치된 병동에 갇혀 지냈는데 보수적 기독교가정에서 자라오면서 성폭행과 강요된 회개를 종용받으며 불안과 욱하는 성질과 분노로 고통하고 있었다. 더 괴로운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그녀는 하나님이 두려워서 힘들어 했었다고 한다. 내가 학대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이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며 정신과 교수에게 보고하곤 했는데 어느 시점에서 이 교수는 이 사례는 정신과 영역을 벗어난 것이라는 것, 원목을 만나게 해주어도 회복되지 않는 그녀를 돕고 싶어 답을 찾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고 이 책은 그 연구의 산물이다. 이 책의 집필과정에 다양한 예화들이 등장하는데 모두 실화이다. 이름과 상황을 약간 섞거나 바꾸었을 뿐 실제 치료한 환자들의 사례를 담았기에 신뢰할 만하며, 성경과 정신의학과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의 치열한 연구로 일구어진 열정의 열매다.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도 설계하셨다고 믿는다. 이미 <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과 <마음, 하나님 설계의 비밀>로 널리 알려진 저자의 명저를 통해 사고와 뇌와 마음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고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새롭게 만나는 성경속 여성들의 히스토리 교회 밖 인문학 수업 구미정 지음/옥당 우리 사회는 센 언니들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나라를 빛내고 사회를 당당히 이끌어 오는 여성들의 파워는 요즘 정치계에서도 돋보인다. 그러나 아직 기독교계에서는 발아에서 성장까지 긴 여정의 과정속에 머물고 있다. 이 책은 고대 성경속에 담긴 여성들의 흔적을 찾아 책속에서 끄집어내어 화려하게 부활시킨 구미정 선생의 역작이다. 신화에서 역사 속으로 걸어 나온 여인들, 대개의 역사 기술이 그렇듯, 성경 역시 남성 중심적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여성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 묻혀 있다. 이 때문에 성경 속 여성들은 감춰지고, 왜곡되고, 사라졌다. 저자는 가부장제 사회 문화 아래의 편파적인 역사 속에 감춰지고 왜곡되고 사라진 여성들을 찾아 그들의 삶을 현대의 시선으로 새롭게 조명한다. 성경 속 여성들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수동적이지 않다. 억압적인 현실 앞에서 때론 복종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불의에 침묵하지도 않았다. 거리에서 몸을 파는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살려준 라합, 모압 출신의 가난한 이주노동자였으나 다윗의 조상이 된 룻, 가나안에서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사사 드보라, 한낱 고아 소녀에 불과했으나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가 되어 자기 민족을 구했던 에스더 등이 그들이다. 전통 신학에서는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기 때문에 아담의 종속물 내지는 아담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더하여 어리석음으로 선악과 사건을 일으켜 원죄를 짓게 한 지탄의 대상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이브는 오랜 동안 아담에게 예속된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존재, 다음에는 아담을 꼬여낸 죄인의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이브는 정말 순종적이고 겸손한 부창부수(夫唱婦隨), 여필종부(女必從夫)의 기원일까? 그리고 이브는 정말 아담을 꼬여낸 죄인일까?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바탕한 남성 중심의 신학에서, 아담의 갈비뼈는 오랫동안 여성을 아담에게 봉사하도록 지어진 부수적인 존재로 해석하게 만든 근원 재료였다. 그러나 저자는 갈비뼈를 주었다는 것만으로 곧 아담이 이브 생명의 기원은 아니며, 따라서 그의 종속물이어야 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브 역시 하나님의 신비로 지어졌고, 갈비뼈는 오히려 아담과 이브 간의 연대성과 동등성을 의미하는 재료로 볼 수 있다고 새롭게 해석한다. 이 책속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억압받으면서도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했던, 평범한 할머니, 어머니, 아주머니, 언니들, 다시 말해 ‘우리’의 이야기이며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책읽기에 힘을 불어 넣어주는 친절한 안내서 서양 고전 읽기 특강 안정진 지음/좋은씨앗 현대인들은 ‘사색’은 하지 않고 ‘검색’하는 인종들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젠 생각하는 것까지도 컴퓨터에 맡기고 있다. 사고력 결핍은 고스란히 공동체의 질을 저하시키는 심각한 원인이 된다. 효율성이나 유용성이나 실용성만 강조하는 세상은 깊은 대화를 상실하고 비인간화를 가속시킬 뿐이며 이런 미래는 상상하기도 싫어진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인문학 읽기가 살아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인문학은의 핵심은 고전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시대에 필요한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오늘날 일어나는 문제들의 상당수는 과거의 역사속에서 배울 지혜를 전수받지 못할 결과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학교나 기독모임들에서 인문학의 부흥을 기대한다.` 이 책은 그동안 기독대안학교와 홈 스쿨 코업 등에서 어린이들과 청소년에게 서양의 인문 고전을 가르쳐 왔던 저자가 서양고전을 기독교세계관으로 읽어내고자 시도한 책이다. 길가메쉬 서사시, 함무라비 법전, 오뒷세이아등 고대 문서들과 맥베스, 신곡, 반지의 제왕, C.S.루이스의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비교적 근대 작품까지 14편을 다룬다. 이미 청소년 공부방에서 나눠 본 경험 속에서 태어난 이 글들은 훌륭한 과거의 유산을 통해 광대한 숲에서 불어오는 진녹색의 공기를 마시도록 가슴을 열어준다. 실용서에 밀려 서양인문고전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은 이 책의 안내를 받으며 서툴고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독서를 시작할 수 있다. 독서는 해석하는 능력을 통해 깊어지는 것. 새해엔 고전읽기를 시작해보자. 불혹의 나이를 지나는 아담과 하와를 위로 하는 시 너를 보듬고 나를 보듬고 서성환 지음/홍림 제주 시인 서성환 목사가 시집 한권을 들고 세상살이 흔들리는 현장으로 찾아왔다. 치열한 사회와 교회 안에서 중추적인 책임이 지워졌으나 어디서도 변변한 위로나 격려를 받지 못한 채 그저 버텨내는 중년 남자들, 나이 들어가면서 껍데기만 남고 헛헛한 허깨비 아담들에게 시인은 수퍼맨의 비애를 위무하고 호주머니도 없었던 그분을 따라 자유를 만끽하자고 한다. 아울러 같은 상처, 같은 외로움에 놓인 이 시대 불혹과 지천명의 하와들에게 상상사랑에 설레이기 보다 조금씩 행복에 익숙해지자고 낮은 목소리로 위무한다. 승패가 불분명한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아릿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문득, 항상 거기 있어 말을 거는 산처럼 어느새 나의 마음 만져 다독이시는 그분의 손을 건네준다. 온갖 요구서만 가득한 중년에 뜻을 이루긴 고사하고 상처와 외로움을 공감해 주는 목자가 있다니 참 다행이다. “오로지 하나 뿐인 단 한 번뿐인/너도 너를 보듬고/나도 나를 보듬고/마침내 서로를 모두 보듬는/흥그러운 아름다운 세상으로...” 서상환 목사를 만나면 그 특유한 낮고 느린 어투 속에 시어를 함유한 마법의 언어들에 빨려들어 간다. 손안에 가득한 열쇠꾸러미는 있지만 앞만 보고 여기가지 달려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 진다면, 나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지만 진짜 하와이고 싶은 때가 지금이라면 시인을 만나보시라. 나는 믿고 있다. 시가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것을 현재 제주시에서 ‘사랑하는교회’를 담임하는 시인은 그동안 두 권의 시집과 유럽선교사로 파송되었을 시기에 유럽영성공동체를 탐방하며 쓴 탐방기‘사랑이 피워낸 꽃’과 CCM가수인 강명식의 앨범에 수록된 ‘승리’등 여러 곡의 작시가 있다. 신앙언어, 바르게 사용함으로 교양을 높이자 의미는 알고나 사용합시다 최성수 지음/예영커뮤니케이션 언어는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생각과 행동의 패턴이 달라지기도 한다. SNS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잘못된 언어 사용으로 인해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하고 평판에 치명적인 오점이 되기도 한다. 공동체마다 통용되는 특별한 언어가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교인들끼리만 통하는 언어를 ‘신앙 언어’로 규정했다. 하지만 신앙언어가 지닌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습관에 기대 사용하는 이들이 많다. 본래 뜻과 다르게 사용할 때도 있다. 바른 신앙언어는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첩경이다. 이 책에는 본질에 충실한 언어선택을 위해 60개의 신앙언어를 표본으로 삼아 바른 언어사용으로 안내한다. 흔히 교회 안에서 표어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나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저자는 태클을 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현실로 나타나는 곳이다. 사람의 힘으로 확장할 수도 없고 또 세울 수도 없다. 혹여 하나님 나라를 빌미로 인간의 나라를 공고히 하려는 욕망은 아닐까? 교회 구성과 운영에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키려는 숨은 의도는 없을까? 제국주의적인 신앙관이 우리 신앙에 침투한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관용적인 표현이라고만 여길 수 없다. 신학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많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욕망을 드러내는 언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야 할 것을 주문한다. ‘예배는 드리는 걸까, 하는 걸까’같은 질문이 줄을 잇는다. ‘예배를 디자인하고 기획한다’는 언어에도 제동을 걸었다. “디자인하다 혹은 기획한다는 말을 (예배에) 사용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인간의 행위 안에 (예배를) 제한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당일까, 성전일까’란 질문에 대한 해답도 이렇다. “만일 교회당을 성전이라 말하고 믿는다면 이는 오해에서 비롯한 결과다. 교회당과 성전을 동일시하면 교회당에서의 일만 거룩하고 그 밖에서의 일은 세속적이라 간주하게 된다. 또 목회자의 권위가 부당하게 커진다”고 우려를 했다. 하나님도 근심하는가? 왜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가? 인공지능 혹은 초지능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가?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인가 예수님의 어머니인가? 등등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공부해봄직한 주제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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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6
  • [영화] 세상은 목회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돈과 신앙 사이에서의 갈등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인 강동헌 감독의 <기도하는 남자>는 개척교회 목회자의 금전적 어려움과 이에 따른 파격적인 상상과 행동을 보여주는 바람에 화제를 모은 영화다. 금년 2월에는 극장 개봉에 성공했지만 1,661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친 것은 당초 기대에 어긋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한국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노출되었던 까닭에 적은 관객이 본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다만 6월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 재조명 받으며 개척교회 목회자의 현실을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은 그나마 의미 있었던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기독교 영화로서의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든지 아니면 일반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대중성을 인정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영화 같으면서도 뭔가 아닌 것 같고, 일반 영화라 하기에는 교회를 배경으로 목회자의 신앙관이 영화의 줄기를 형성하는 까닭에 기독교인이 봐야 하는 영화처럼 느껴져서 교회와 세상 가운데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아리송하기만 한 까닭이다. 기독교 영화라면 어떤 갈등 속에서도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의 가치관이 드러나야 하지만 이 영화는 갈수록 우리가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신앙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가는 바람에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적 관점을 제기하여 회개와 회복을 촉구했던 신연식 감독의 <로마서 8:37>과 같은 부류의 영화에 속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기도하는 남자>는 장모의 수술비를 마련하려는 목적이지만 돈에 집착한 개척교회 목회자가 일으킨 파국과 왜곡된 욕망을 그린 일반 영화로 볼 수 밖에 없다. 즉 이 영화는 목사 대신 다른 어떤 종류의 직업에 속한 사람을 대입해도 비숫한 그림이 나올 수 있는 영화란 사실이다. 태욱(박혁권)은 주일 예배 출석 성도가 5명에 불과한 개척교회 목사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을 기도로 감당하며 하루 하루 견뎌내지만 밀린 월세에다 장모(남기애)의 간이식 수술비용이 당장 필요한 현실은 그를 대리운전 기사로 내몰았다. 5천만 원에 이르는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밤새 대리운전을 하고 교회에 와서 잠깐 눈을 붙이는 생활을 반복한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내 정인(류현경) 또한 어떻게든 자신의 간을 어머니께 이식하는 수술이 진행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지만 5천만 원은 고사하고 당장 2백만 원이 드는 검사비가 부담스러운 현실이다. 여기까지는 드라마의 전개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독교 영화 쪽으로 방향을 돌려 개척교회 목회자가 겪을 수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의 현실을 조망하고 신앙과의 갈등을 묘사하며 이것이 자신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목회철학을 새롭게 정립하는 방향으로 설정된다면 훌륭한 기독교 영화로 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와 목회에 대한 이해의 부족 강동헌 감독은 두 가지의 치명적인 부족함을 안고 있다. 하나는 기독교 신앙 및 교회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없는 점이다. 그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어릴 때 여름성경학교에 몇 번 가본 게 교회 경험의 전부임을 밝혔고, 다만 영화감독의 삶이 개척교회 목사의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대형교회가 아닌 개척교회 목회자와 영화감독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만을 갖고 돈에 대한 유혹과 갈등을 다루었던 셈이다. 그래도 영화에 나타난 개척교회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신앙의 정황에 대한 이해는 신학대학 출신의 제작부장의 도움을 받았음을 언급했다. 이것은 개척교회 목회자라면 한 번쯤 겪었을 법한 돈과 신앙 사이의 갈등을 목회에 대한 소명 가운데서 깊이 다루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하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한 가지의 부족함은 처음 장편영화를 제작하는 데서 오는 창작에 대한 부담감이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의 가치를 비켜가게 만들었다. 누구든지 처음 극장용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관객들이 많이 찾는 영화를 만들어서 대중성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한편으로 영화의 메시지나 완결성에서 비평가로부터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에 작품에 대한 욕심을 내게 마련이다. 이때 초보 감독이 저지르는 실수는 여기저기 여러 영화의 인상 깊은 장면이나 이야기를 가져다 뒤섞는 일이다. <기도하는 남자>의 전반부는 이미 전윤수 감독의 <베사메무초>(2001)에서 본듯한 장면들이 전개되었다.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을 날리게 될 처지가 된 남편(전광열)은 개인 투자자의 아내로부터 성적 유혹을 받는 한편, 1억을 빌리는 조건으로 아내(이미숙)는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대학 선배로부터 잠자리를 요구받았었다. 아이들이 줄줄이 있는 가정에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가정의 부부라면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음이 분명하다. <기도하는 남자>의 감독은 5천만 원을 구하기 위해 성적 유혹을 받는 대상을 목사의 아내로 설정한 대신 목사는 유혹을 넘어 범죄를 도모하는 악인의 캐릭터로 자신만의 영화적 독창성을 구현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돈 때문에 성직자가 얼마나 야비하고 비인간적인 범죄자로 변신할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돈과 성에 사로잡힌 목회자의 정체성 <기도하는 남자>의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태욱이 대리운전을 하다 술 취한 커플을 태우게 되는데 그들이 다름 아닌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신학교 후배와 그의 내연녀였던 것. 아버지로부터 대형교회를 물려받은 후배 목사 동현은 태욱을 알아보고 애들 과자라도 사주라며 돈을 더 얹어주지만 손과 달리 입은 신학교 때 잘나가고 존경스러웠던 선배가 겨우 개척교회나 하면서 대리운전이나 하고 있느냐는 모멸감 섞인 말을 내뱉는 바람에 태욱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불륜의 현장을 들킨 동현은 거액의 현금을 제안하고 태욱은 상한 자존감과 장모의 수술비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때부터 영화는 멋을 부린 조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태욱은 캠코더로 동현의 불륜현장을 담아 장모 수술비에 필요한 5천만 원과 맞바꾸려다 동현이 고용한 일당들에게 납치되어 얻어맞고는 속옷 차림으로 인적이 드문 길에 버려진다. 태욱은 나중에 동현에게 자신이 당했던 방식 그대로 되돌려주는 한편으로 지금까지 문제의 발단이 된 장모를 청부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실행 직전까지 가게 된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줄거리나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행위를 스포일러( spoiler)라 한다. 스포일러는 무단 복제 만큼이나 영화의 세계에서는 금지된 사항이다. 영화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려서 관람을 회피하게 만드는 까닭에 예비관객이나 제작자에게 손해를 입힐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스포일러는 오히려 한국의 기독교인과 목회자들에게 어떤 영화인지를 보고 싶게 만드는 역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개척교회 목사로서 숨기고 살았던 감정을 토해내는 한편으로 못마땅한 일이 많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도 못한 채 억지 웃음을 지으며 살았던 평소 볼 수 없었던 목회자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목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 기독교 영화도 아니고 작품성 높은 세상 영화도 아닌데 굳이 <기도하는 남자>에 대한 글을 지면에 실은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는 영화 속의 목회자들의 이미지는 세상이 기독교 성직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사회의 믿음을 져버리고 방역을 소홀히 여기다 확진자를 배출시킨 몇몇 교회와 목회자의 모습이 영화 중간중간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바탕을 둔 상상력이며, 영화적 상상력은 개연성, 즉 그럴듯하다고 여겨질 때 관객의 이해를 기대할 수 있다. 즉 <기도하는 남자>에 등장한 두 목회자의 이미지는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이라는 바탕 위에서 창작된 인물이다. 이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목사는 부자교회의 목사와 가난한 교회의 목사로 양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교회 목사는 아버지를 잘 만난 덕에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지만, 가난한 교회의 목사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남의 차를 운전하는 대리기사를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라 생각한다. 마치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큰 결점인 양극화 현상을 교회에도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는 큰 교회 목사와 작은 교회 목사 모두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점이다. 대형교회 목사 동현은 성적으로 타락했고 개척교회 목사 태욱은 돈 때문에 범죄 저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동현은 선배 목사인 태욱에게 “나는 형을 동경했다”며 타락한 자신과 달리 이상적인 성직자가 한 사람쯤은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속 목회자는 세상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잘못된 목회자를 등장시킨 영화는 극장 밖을 나오면 잊어버릴 수나 있지만, 코로나 19의 전염지가 되어버린 교회와 세상의 걱정거리로 남은 목회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지금의 현실은 어쩌란 말인가! 한국교회는 과거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아니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말하며 전도하는 일이 앞으로 가능하기나 할까? 영화를 보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멸망을 앞에 둔 ‘소돔과 고모라’와 같다는 생각을 한 건 지나친 비약일까? 성경이 말하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유는 의인 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창18:32).
    • 문화
    • 영화
    2020-09-15
  • 박경철 집사 출간
    ‘말씀묵상(QT)’은 읽기, 관찰과 해석, 묵상, 적용, 기록, 나눔으로 구분한다. 성경을 읽으며 본문을 관찰하고 이를 해석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깊이 있는 묵상의 자리로 나아간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부족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아가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돕기 위해 박경철 장립집사(사직동교회)는 신간 <말씀묵상(QT/관찰) 성경읽기>를 출간했다. <말씀묵상(QT/관찰) 성경읽기>(푸른별출판사)는 전체의 줄거리와 성경 흐름(관찰)을 연대별로 대제목 소제목별로 분류, QT를 할 때 앞 본문과 뒷 본문을 연결하고, 성경을 읽을 때는 줄거리를 먼저 읽고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박경철 집사는 “믿음의 성도들과 큐티 이론과 나눔을 함께 하며 개인적으로 말씀을 관찰하고 묵상했다. 이 과정은 나 스스로의 부족을 끝없이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면서 “이 책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삶과 성경 읽기를 하시는 성도님들의 신앙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길 소원한다”고 말했다.
    • 문화
    • 도서
    2020-08-18
  • [영화] 영화 ‘반도’와 좀비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한국영화계를 살리는 좀비 연상호 감독의 영화 <반도>가 개봉 일주일 만에 2백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코로나19가 전국을 휩쓴 이후로 2백만 명의 스코어를 기록한 영화는 <반도>가 처음이다. 평소 같았다면 여름방학용 특수를 노린 블록버스터 영화 정도로 여겨졌을 법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한국영화계가 심각한 침체 상태를 겪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라 극장가는 심폐소생술이라도 받은 듯 영화산업의 회생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2020년 상반기 전체 관객 수가 지난해 대비 무려 70.3%나 감소한 데다 그나마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기 전 영화들이 거둔 성적이 대부분이라서 <반도>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두 가지 면에서 한국의 극장가는 <반도>를 주목하고 있다. 첫째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극장 내에서의 전염에 대한 관객의 두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는가에 일차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의 예방책으로 ‘밀집, 밀접, 밀폐’ 등 ‘3밀’ 환경을 피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는 상황에서 일반 영화관들은 바로 ‘3밀’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극장을 매개로 한 집단감염의 사례가 보고되고 있지 않지만 블록버스터 영화에 관객이 몰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도>는 앞으로 코로나 시대에도 천만 관객 동원이 가능한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스트리밍 서비스(OTT)로 몰려간 관객의 입맛을 극장으로 되돌릴 수 있는지 여부가 <반도>에 달려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만 갇혀 있던 영화 관객들을 위로한 것은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이었다.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토종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왓챠만 하더라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용 온라인 상영관을 개설하여 9천여 건의 유료결제 티켓을 판매함으로써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관을 찾지 못한 영화제 관객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국제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관객들이 과연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극장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 여부가 <반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좀비와 액션의 결합체, ‘반도’ <반도>는 연상호 감독이 만든 <부산행>(2016)과 <서울역>(2016)에 이어 좀비를 소재로 삼은 세 번째 영화다. <부산행>이 1157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형 좀비라 일컬어지는 K-좀비를 탄생시킨 중심에 서 있다면, <서울역>은 애니메이션으로 <부산행>에 앞선 시점을 보여주는 프리퀄(Prequel)이 되고, <반도>는 <부산행>의 4년 뒤 모습을 보여주는 속편으로 시퀄(sequel)이 되는 셈이다. <반도>는 좀비의 세상으로 변한 서울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과 욕망을 담았다. 한반도가 좀비로 뒤덮이는 것을 피해서 홍콩으로 도피했던 정석(강동원)은 일행과 함께 달러가 잔뜩 들어있는 트럭을 회수하기 위해 서울에 잠입하게 된다. 그러나 정석 일행은 조직화 된 집단을 이루며 살아가는 631부대를 이끄는 서 대위(구교환)와 황중사(김민재) 일행과 부딪히게 되면서 좀비와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집단 양쪽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마침 두 딸의 어머니이자 좀비는 물론 야만적 생존자들과도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여전사 민정(이정현)의 가족들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반도>는 인간과 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다룬 종말적 세상의 모습을 그린 영화다. 좀비를 내세워 이목을 집중시켰던 <부산행>과는 달리 <반도>는 강동원을 내세워 액션으로 승부를 걸고 있는 점도 다르다. <반도>를 보며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다룬 이전 영화들인 <매드맥스-분노의 도로>(2015)나 <일라이>(2010)를 비롯한 많은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할리우드가 만들어 낸 미래의 종말적 이미지로 부터 벗어나 독창적인 상상을 하기 보다는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안전한 장르의 특성에 기대는 모습이다. 이미 K-좀비를 통해 한국형 좀비영화의 특징을 세상에 보여준 만큼 이번에는 세계화를 겨냥하여 사람들이 예측 가능한 종말적 세상의 모습들을 그림으로써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세계인들을 이해시키려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난다. <반도>가 개봉 전에 이미 185개국에 선판매되었고 개봉 당일 대만과 싱가폴, 베트남 등 아시아 주요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좀비가 등장하는 액션물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반영한 까닭이다. 코로나 시대와 닮은 좀비 영화 <반도>는 코로나19로 인해 웃을 수 있는 영화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좀비는 비슷한 면이 적지 않은 까닭에 관객의 현실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는 좀비의 집단적 공격성과 빠르게 전파되는 특성은 코로나19의 전염력을 닮아 공포감을 현실화 시킨다. 한 두 명의 좀비가 아니라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7월의 경우 신규 확진자가 하루 23만 명을 넘는 등 역대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영화나 좀비가 처음 물어뜯은 대상은 가족과 이웃들이다. 늘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은 가슴 아픈 일인 동시에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시킨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경로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위기의 상황에서 위로와 힘이 되어줄 존재가 언제든 가장 무서운 존재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종말적 상황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둘째는 코로나19에 희생당하는 사람들과 권력자들의 면모는 좀비 영화에서처럼 극단적 대비를 이룬다. 넷플렉스를 통해 K-좀비 신드롬을 불러일킨 영화 <킹덤>시리즈에서 좀비가 된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인육을 먹다가 역병에 걸린 사람 가난한 양민들이다. 이들을 돌보고 이끌어야 할 권력자들은 도망을 가거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양민들을 사지로 내몰아 버린다. <킹덤>을 쓴 김은희 작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굶주림에 사체를 먹기 시작한 백성들을 이야기 전면에 세워 권력층의 부조리를 넘어 계급적 폐해를 그리는 데까지 나아갔다고 밝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셋째는 좀비는 퇴치되지 못한 채 함께 생존해야 하는 코로나19의 현실과 닯았다. 코로나19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은 좀비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절망적인 모습으로 끝을 맺는 좀비 영화와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좀비 영화도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일은 없다. <반도>의 사람들은 좀비와 싸우거나 좀비를 피해 달아날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좀비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좀비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를 형상화한 이미지란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현실 세계에서 좀비는 존재하지 않지만, 좀비같이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잔혹한 자본의 논리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좀비보다 무서운 것이 인간이며, 돈에 눈이 먼 인간은 다른 인간들을 물어뜯고 자신처럼 돈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한국 최초의 좀비 관련 석사학위 논문인 이희수의 ‘현대사회의 초상으로서의 좀비’에서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집착하고 돈을 끊임없이 소비함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란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뜯어 먹고,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 좀비에 비유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적인 탐욕이 무서운 것은 영화 속 좀비처럼 그들의 속성을 지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전파시킨다는 점에 있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똑 같은 좀비가 되어 인육을 찾아 나선다. 전파와 감염이 주는 공포는 좀비가 은유하는 인간 탐욕의 결과가 결국에는 인간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다는 종말에 대한 이해로 발전시키고 있다. 좀비로 가득찬 세상을 향해 성경 말씀을 들려주는 일은 또 다른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좀비가 상징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탐욕과 소비 그리고 그 속에서 불안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을 돌보는 일에는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이 죄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으며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불안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음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종말적 상황을 다룬 영화 <일라이>(2010)에서처럼 성경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문명개화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먼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하는 탐욕스런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 자족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갈 때 좀비 같은 행태로부터 멀어지는 비결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자족이란 개인의 만족만을 의미하는 것이 하니라 내 인생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탁하는데서 오는 영적 위로를 동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평안에 거하는 삶은 좀비가 판치는 세상으로부터 불안감을 불식시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영화 속에서 좀비는 어둠에 거하다가 빛과 소리에 공격적 반응을 보이며 언제 어디서든 부지불식간에 나타난다. 진리의 빛과 복음의 소리가 들리면 사정없이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무신론이 팽배한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일은 두려울 수 밖 없는 인생인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릴 때 나타나는 현상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 좀비로부터 도망다니거나 아니면 좀비가 될 수밖에 없는 영화 같은 세상에서의 참 평안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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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7
  • [기독교인문학] 이웃을 거부하는 제국의 신들인가?
    월터 브루그만의 《하나님, 이웃, 제국》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공동선 창조 교양 있는 그리스도인의 서재에 한 권쯤 꽂혀 있을 법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기독교명저 100선에 오른 《예언자적 상상력》의 저자 월터 브루그만의 풀러신학교 초청강연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평생 성경본문을 붙들고 씨름한 저명한 노 성서학자이자 설교가인 저자의 신학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 무한경쟁의 소비사회에서 번영신학에 물든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고대 중동사막의 먼지바람 속에서 외치는 예언자들의 거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예언자적 상상력에서 시적 상상력과 애통의 파토스로, 무감각한 이 세대에 희망을 선포한 그는, 이 책에서 신실한 하나님과 관계맺음으로 구약을 관통하는 정의, 은혜, 율법이 어떻게 하나 되는지를 보여준다. 현 시대를 향한 예언자의 예리한 통찰이 녹아있다. ◈ 저자소개 ∥월터 브루그만 Walter Brueggemann: 1933년 미국에서 출생, 엘머스트대학을 졸업하고 에덴신학교와 유니언신학교에서 신학박사, 세인트루이스대학교에서 철학박사를 받았다. 세계적인 구약신학자이자, 탁월한 설교가. 에덴신학교와 컬럼비아신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쳤고, 지금은 은퇴하여 명예교수로 활발한 언론활동과 반 바로협회를 통해 미국사회에 만연한 소비주의문화에 저항하는 기독교사회운동에도 열심인 행동하는 지성이다. 성서유니온 간 / 2020. 4. / 16,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하나님 편에 서라》 / 짐 월리스 지음 / IVP 《칼뱅과 공공선》 / 송요원 / 2020 / IVP 《공공선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컨맨 웡, 스콧 래 공저 / 2020 / 아비서원 이웃을 거부하는 제국의 신들인가? 해방과 언약의 하나님인가?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끊임없이 들으라, 지키라“이웃을 거부하는 제국의 신들인가, 해방과 언약의 하나님인가? 우리는 그들의 추종자요 착취와 상품화 이데올로기의 하수인인가 아니면 이웃의 위상을 복원하는 하나님께 속한 자유인인가?” 김길구 무례한 기독교란 말들이 이 땅에 회자될 때 시작한 본 시리즈 ‘기독교교양읽기’의 코너 이름을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기독교인문학으로 바꿨습니다. 오늘은 예고한대로 월터 브루그만의 「하나님, 이웃, 제국」입니다. 읽으신 소감이 어땠어요?김형기 저자가 33년생이니 올해로 87살이 되었네요. 그 연세에 여전히 거인다운 풍모를 잃지 않아 좋았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들이 접하기에는 이 책이 다소 지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김현호 풀러신학교에서 행한 브루그만을 위한 맞춤형 초청강연의 주제라 그럴 거예요. 요즘처럼 강단에서 거시담론이 사라진 때에, 모래바람 이는 고대 중동지역의 광야에서 들음직한 말씀의 생생함이 있잖아요.김형기 브루그만의 매력은 고대 중동을 연구하면서 그 말씀의 적용을 화석화된 과거에 머물게 하지 않고 21세기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삶의 영역에서 기독교적 대안을 모색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은퇴 뒤에도 반 바로협회란 조직에서 기독운동체로서 사회적 액션(social action)을 쉬지 않는 노익장이죠. 대표작 《예언자적 상상력》김길구 브루그만 하면 떠오르는 것이 1978년 출판되어 크리스천 투데이에서 선정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기독교도서 100선에 오른 대표작 「예언자적 상상력」일 것입니다. 이 책은 이례적으로 2000년 개정판을 내어 달라진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는데, 우선 이 책부터 얘기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김형기 저자는 미국의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교회가 순응하게 된 원인을 성서의 예언자 신앙전통을 저버린 결과로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려면 지배문화의 의식과 인식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의식을 끌어내고 키우고 발전시키는 예언자적 목회를 제안했는데 그 대안의식이 바로 예언자적 상상력의 롤 모델로 모세의 대항공동체와 특히 예언자 예레미야 등의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김현호 이 이유가 근원적 비판을 넘어 창조적인 희망을 선포하였기 때문이예요. 그 희망의 정점에 예수의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김길구 ‘예언자적 상상력?’ 브루그만 다운 표현입니다. 예수 사역의 핵심은 기존질서의 단순한 해체가 아니라 절망의 세상 속에서 온전히 이루시는 새로운 하나님나라의 희망으로 오늘의 주제인 「하나님, 이웃, 제국」도 이 책의 예언자적 상상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정의, 은혜, 율법김형기 브루크만은 이 책에서 정의, 은혜, 율법이라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논쟁적 주제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정의는 애굽의 바로와 같이 위로부터의 제국의 왕으로 상징되는 정의와, 모세와 같이 통제와 독점, 폭력에 맞서 하나님의 결단과 인간의 행함이 연대하는 이웃을 향한 해방공동체인 아래로부터의 정의가 있는데 물론 브루그만은 후자를 참 정의라고 주장합니다.김현호 은혜에 있어서도 당시 고대 중동의 만연한 인과응보의 ‘공통신학’처럼.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가혹한 언약을 넘어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신 사랑의 은혜의 윤리가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였다는 것입니다.김길구 이런 점은 구약의 율법에 있어서도 드러나는데 제국의 법은 절대적이라 고칠 수 없고, 철회할 수 없으나, 야웨의 법은 자신이 세운 법마저도 긍휼과 환대라는 회복적 정의로 법을 너머서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을 향해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순간 이웃의 외침에 귀기우려야 하며, 그들과 함께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신학적 급진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김현호 저자는 분배의 맥락에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안전과 존엄과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보장한다는 뜻으로 정의justice를 정의하면서 “공동선은 사라지고 마거릿 대처가 촉발한 공동체 해체는 점점 만연해지며, 민영화라는 전염병이 우리 주위에 창궐한다”며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시킴으로 한계에 이른 신자유주의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김형기 우리사회도 이런 극심한 소득의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의 양극화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저명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정의란, 한 사회에서 구성원 전체가 기본재화인 의료, 교육, 주거 등에 소외 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오늘 우리사회의 문제를 성찰해 봐야겠지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김길구 지금도 방송과 반바로협회 활동 등을 통하여 미국사회의 소비문화에 대하여 예언자적 상상력을 가지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기독교대항운동을 펼치는 그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의 불평등과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에 대하여 일갈한다면 어떤 주장을 할까 궁금합니다. 아마 싱가포르처럼 고세율정책이나, 토지공개념개념 같은 주장을 펼칠지 모르겠네요? 김형기 재미있는 것은 그의 책 예언자적 상상력의 실천 후기편에 “예언자적 상상력”을 한낯 “멋진 생각”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며, “예언적 상상력은 애통과 희망이 지배문화의 굴레를 깨뜨린다는 확신을 지닌 참된 신앙인들이 행하는 구체적인 실천이다”이라고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김현호 그러한 사례로 도시가정상담목회, 음식과 숙박을 제공하면서 예배와 돌봄을 함께 베푸는 교회, 지미카터의 퇴임 후 사랑의 집짓기운동 등의 여러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여 한 때 많은 목회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그의 상상력이, 성장이 멈춰버린 한국교계의 사역자들에게 다시금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네요.김길구 마지막으로 각자가 느낀 인상적이었던 대목들을 소개해 주시죠? 저는 서론에 있는 “구약성경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제국의 한 가운데서 옛 이스라엘을 위한 ‘대항 텍스트’countertext가 되었다”란 대목인데, 신앙적 고민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경쟁을 부추기며 이웃을 배제하는 우리의 소비문화와 구약을 단지 물질적 축복의 책으로 호도하는 요즘 세태에 경종을 주는 대목 같아 좋았습니다.김현호 혐오와 배제가 일상화된 우리를 돌아볼 때 “이제 구약 저 너머를 바라보자 우리는 교회가 베드로의 환상체험과 바울의 증언에 자극받아 이방인들을 향해 과감히 문을 연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가 스스로를 ‘타자화’othering한 가장 극적인 사례다”라는 대목인데 좀 더 열린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김형기 저는 “이스라엘에서 율법은 곧 대화다. 은혜와 정의의 하나님이 사람과 나누시는 대화다. 이 대화가 이끌어 내는 순종에는 청신함과 기쁨과 자유가 충만하게 깃든다”는 구절이 마음에 들어요. 율법을 굴레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죠. 김길구 장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장마철에 무거운 얘기로 독서를 하신다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학생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구약의 본문이 성큼 우리에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음 호에는 여름 휴가철이라 여러분들의 독서부담을 덜어드리고자 문학평론가이신 남송우 前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모시고 2회에 걸쳐 고진아 시인의 시세계를 중심으로 기독교시의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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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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