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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교양읽기]“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 서 있습니다”
    김응교의《손 모 아》 -시련 앞에서의 시 이야기- 기도하는 손의 모습을 책 제목으로 하였다. 저자 김응교 시인 겸 평론가는 활발한 매스컴 활동으로 대중에게 친근한 문학인이다. 기독교문학을 포함하여 문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그가 2016년 겨울 KBS국제부 라디오에서 북한에 보내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된 시편과 2017년 《월간 목회와 신학》 세계기도시에 연재한 내용 중 팬데믹 시대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수정 보완하여 엮은 시 해설서이다. 츠빙글리로부터 기형도, 칼 바르트, 릴케, 까뮈, 윤동주, 디킨스, 톨스토이 등 국내외의 유명 문학인과 종교인 등 50여 편의 시편들이 수록되었다. 중학교 졸업식 때 저금통을 깨 기타를 사줬던 저자의 누이가 팬데믹 기간 중에 죽은 개인사도 있어 질병과 슬픔 앞에서란 부제가 더 공감이 간다. 늦가을, 시가 그리운 교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 저자소개 ∥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문학과 종교는 본래 하나로 출발했다고 믿고 있는 저자는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분단시대에 시 발표를 시작으로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 《풍자시, 약자의 리얼리즘》을 실천문학에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1996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하였고, 1998년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10년간 강의하였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로 있으며, 트위터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 저서∥ 《씨앗/통조림과 평론집 한일쿨투라》, 《한국시와 사회적 상상력》,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등 많은 저술이 있으며,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비아토르 간 / 2021. 5.25. / 16,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그늘-문학과 숨은 신》 / 김응교 / 새물결플러스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 / 김응교 / 문학동네 《곁으로- 문학의 공간》 / 김응교 / 새물결플러스 #기도는? “기도(祈禱)는 첫째 ‘나’를 잘라내는 영적인 도끼질이다. 내 정욕과 욕망과 고집을 쳐내는 대화의 시간이다. 둘째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깨닫게 해 달라는 말씀을 듣는 시간이다. 셋째 그 힘으로 노력하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고백하는 시간이다.” 김길구 휴가가 예상보다 길어졌네요. 그 사이 박 관장께서는 제8대 부산복지개발원장에 취임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공직에 있어 바쁘실 텐데 이 코너를 계속하기로 하셨습니다. 참가자들의 자원하는 마음이 이 코너가 장수하는 비결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인사 한마디~ 박영규 복지개발원은 부산광역시의 사회복지정책개발과 시민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증진시키는 일을 하는 기관입니다. 시민들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만큼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현호 3개월을 쉬었다 다시 시작하려니 새로운 느낌이네요. 심기일전해서 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팬데믹 시대의 성찰과 위로의 메시지 김길구 오늘은 계절에 어울리는 가벼운 주제로 정했습니다. 흔히들 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이번 호에는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김응교의 《손모아》로 정했습니다. 이 책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죠? 김현호 요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매스컴들이 팬데믹 소식을 우선해서 다루잖아요?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저명한 분들의 기도문과 시편 등 50여 편을 묶어 해설한 책입니다. 박영규 그동안 코로나19는 많은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코로나 블루’는 우울한 일상을 표현하며, ‘코로나 레드’는 장기화에 따른 분노를, 그리고 분노를 넘어 폭발해 버린 현대인들의 심리상태를 ‘코로나 블랙’이라고 한다더군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데요. ‘질병과 슬픔 앞에서’라는 부제가 상징하듯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고난에 대한 깊은 성찰과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김길구 저도 다양한 저자의 이력 그리고 시에 대한 해제까지 있어 한편 한편이 많은 것을 생각게 하여 오랜만에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월별로 4~5편씩 구성되어 있는 50여 편의 전 작품을 다 다룰 순 없고 오늘은 가을 편을 중심으로 몇 편만 소개해 보지요. 저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마지막 시가 여운에 남습니다. 「(중략) 아버지여, 생명의 근원이시여, 우주의 영이시여, 생명의 근원이시여, 날 도와주소서. 내 인생의 마지막 며칠, 마지막 몇 시간이라도 당신에게 봉사하며 당신만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날 도와주소서」 이 시를 읊조리다 보면 생의 마지막을 시골의 작은 역에서 객사한 노 사상가가 떠오릅니다. 그 무엇이 이 거인을 거리에서 헤매게 하였을까? 기성교회를 거부하고, 그가 배회하며 그토록 찾으려고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는데, 이 시를 보고 깨닫게 되었어요. 우리 교계도 거목들의 마지막 모습이 구도자로 보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마지막 며칠, 몇 시간이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봉사하겠다는 거인의 간절함이 우리를 숙연케 합니다. 김현호 그의 일대기를 보면 유서 깊은 백작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군복무 중인 24살에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는데, 당시만 해도 그는 권위와 폭력에 길들여 있었고, 40대까지 방탕한 생활을 했어요. 결혼 후 그의 대표작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등을 통해서 명성도 얻었지만, 그의 인생관이 바뀐 것은 그의 나이 42세 때 시작해 50세에 마친 안나 카레리라 집필 시기인 8년여의 기간이라고 해요. 국가와 권력과 종교에 대한 깊은 회의로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의 고뇌 끝에 50대에 이르러 그는 회심하게 되었고 58세 때 ≪바보 이반≫이란 작품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박영규 이 단편에서 톨스토이의 분신인 바보 이반은 톨스토이의 좌우명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영리한 사람들은 손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악마의 유혹에 “손과 등은 일하라고 주어진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반처럼 우직한 바보들이 모인 나라야말로 누구도 정복할 수 없는 건강한 나라라고 말합니다. 농노해방운동에도 기여한 그는 기독교인의 실천적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 주고 있어요. 김길구 저자의 전작인 ≪그늘≫을 보면 톨스토이는 헨리 조지가 쓴 베스트셀러 ≪진보와 빈곤≫이란 책을 읽고 큰 영감을 받습니다. 그 결과 당시의 농노제도에 가까운 토지제도를 신랄히 비판합니다. 헨리 조지의 토지 사상을 건너뛰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대표작 ≪부활≫에 서 “땅은 사람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것을 보면서 이 시대 젊은이들의 좌절과 ‘대장동 사건’으로 시끄러운 우리나라를 보면서 톨스토이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요? #선한 힘들에 관하여 김현호 지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제일 많이 읽힌 책은 알베르트 카뮈의 <페스트 La Peste>라는 소설이라고 하는데, 저는 기도문에 실린 네 명의 인물에 주목하는데 도그마에 싸인 교리의 기독교와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 예수의 삶과 변혁적 기독교에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던 인물들이죠. 의사 리유, 반항하는 인물 장타루, 성실한 임시직 공무원 그랑, 참혹한 현실 속에서 새롭게 깨달은 인물, 기자 랑베르를 통해 이상적인 ‘선한 사마리아인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김길구 책에는 널리 알려진 곡들의 일화를 소개 하고 있는데, 디트리히 본회퍼의 기도문 <그 선한 힘들에 관하여>이 가스펠 <선한 능력으로>로 번안되어 교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독재자 히틀러 암살운동에 가담한 죄목으로 체포된 후 수감, 종전을 코앞에 두고 1945년 4월 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죽음을 예감하고 그의 약혼자에게 전한 편지에 쓰인 기도문으로 그의 마지막 유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0년 작곡가 지그프리 트피치가 곡을 붙인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마틴 루터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가 못지않은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전편에 흐르는 신앙의 확신과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잔혹한 낙관주의’가 가슴을 여미게 합니다. 박영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슈렉>에 삽입되어 화제가 된 곡이며, 200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과 2010년에는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던 2016년 82세로 작고한 캐나다의 다재다능한 시인이자 싱어송 라이터, 배우인 레너드 코헨의 중독성이 강한 노래 <할렐루야>에 대한 얘기도 흥미로운데, 다윗과 밧세바의 금지된 사랑을 노래한 곡인데, 가사가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중략) 사랑은 승리의 행진이 아니야 사랑은 차가운 것 사랑이란 부서진 할렐루야~」나 「그래서 내가 사랑으로부터 배운 것은 그대보다 총을 빨리 뽑는 사람을 먼저 쏘는 방법이었죠」라는 노랫말이 부서질 줄 알면서도 사랑하고 욕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와 성서기자의 한 인간의 실수를 눈감지 않고 굳이 다윗의 아내가 아닌 우리아의 아내로 표현한 강직한 역사관, 그리고 부정한 가계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예수의 피할 수 없는 운명 등의 얘기가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김길구 50여 편을 다 들려드리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한편 한편이 다 귀한 글들 입니다. 이 짧은 가을날 독서삼매경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호에는 도서출판 엠마우스에서 펴낸 홍석진 목사의 세상을 향한 따뜻한 통찰 《시선》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1-10-22
  • 기독교인이 인문학 공부를 해야 하나요?
    디아코니아부산 제2회 기독교인문학 포럼 우선 귀한 시간을 주신 백양로교회와 이를 주관하시는 (사)디아코니아부산 이사장 김태영 목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사역과 관련하여 기독교인들이 왜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지 묻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로 묻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죠. 교단의 선배 목사님 한 분이 교회에서 그런 공부를 왜 하느냐고 해서 제가 ‘종교개혁자 중에는 인문학자들이 많았다’고 했더니, ‘그래서 종교개혁이 엉망인 거야’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예’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분들의 인식 속에는 인문학이 기독교의 적으로 교회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논쟁은 초기 교회사에도 많았습니다. 실제로 터툴리안의 경우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이 있으며 ‘아카데미아와 에클레시아(교회)는 무슨 관계가 있으냐?며 적대감을 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터툴리안이 유명한 법학자이기 때문에 몰라서 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한국의 기독교인 중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 이 시간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크게 역사적 맥락과 개념적인 측면에서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실제 인문학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우선 동양적 개념에서 인문학이란 말을 더 잘 이해하려면 그 말의 반대말을 알아보면 됩니다. 동양에서는 인문(人文)의 반대 말이 천문(天文)입니다. 천문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별의 움직임이잖습니까? 하늘에 대한 연구가 천문학입니다. 그래서 천문지리라고 했고 혹은 인문지리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하늘 天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무늬 문자라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별의 움직임의 무늬, 자취, 흔적을 조사하는 것을 천문학이라고 한다면, 인문학은 사람의 자취입니다. 뱀이 지나가면 흔적을 남기듯, 사람의 자취를 통하여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연구하는 것을 인문(人文)이라고 하였습니다. 동양에서는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로 천, 지. 인(天地人)을 말하는데 지는 지리 즉 땅의 원리 같은 것이지요. 여러분들이 학교를 다니실 때 문·사·철이란 말을 들어보셨지요? 일반적으로 동양의 인문학은 보통 문학,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이 쓰는 인문학은 서양적 개념입니다. 인문학은 인문과학, 자연과학, 사회과학과는 다릅니다. 영어로 보면 인문학(Humanities)이란 단어가 humanity 와 liberal arts(교양과목)의 의미로 쓰입니다. 인문과학이란 인간이 무엇인가를 묻는 학문으로 추상적이고 보통적인 인간, 개별적 인간을 다룬다면, 사회과학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으로 사회학과 역사학처럼 공동체 속에서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개념이 확대돼 이러한 것을 다 아우르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자연과학의 도움 없이 - 생물학, 빅뱅이라든지 상대성이론, 불확실성의 원리 등과 신경과학, 뇌과학 같은 것을 안 다루고는 - 인간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석, 박사 등이 연구하는 humanity가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영역이라면 우리가 말하는 인문학은 liberal arts 즉 시민교양으로서의 대중인문학 입니다. ‘한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인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런 것을 교양으로 가르치는 학문으로서의 인문학’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매스컴이나 유튜브 등을 통하여 플라톤아카데미 등 인문학 강좌 등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 헤브라이즘 VS 헬레니즘 신학(Theology)이란 단어는 신을 나타내는 theos 와 학(學), 이성, 언어, 논리 등을 나타내는 logos의 결합, 즉 인간을 신의 눈으로 이해하는 헤브라이즘과 인간을 인간의 눈으로 이해하는 헬레니즘이라는 어떻게 보면 서로 상반되는 구조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독일의 여성신학자 도르테 죌레가 예루살렘에 있는 <나와 너>로 유명한 마틴 부버(Martin Buber)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입니다. 그녀가 신학을 한다고 하자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부버가 하는 말이 “신학이라…그걸 어떻게 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죌레는 이때 비로소 히브리사상과 그리스사상의 차이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습니다. 학문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서 경험하는 인격적 하나님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부버가 신학을 왜 모르겠습니까? 몰라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겠죠. 신학이란 뜻이 가능하냐는 반어적 표현이겠죠. 헤브라이즘은 하나님 중심의, 인간을 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면 헬레니즘은 인간을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고신대학교 입구의 비석에 코람데오(Coram Deus) ‘하나님 앞에서’ 처럼,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상이 항상 신을 인식하며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또 사람을 만나는 일 등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창조론에서 본 기독교는 어떠한 존재입니까? 성경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대로 창조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왕만이 신의 형상이던 시절에 하비루 같은 하찮은 민중들에게 맹자의 말을 빌리면 왕후장상 따로 없다는 놀라운 선언을 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을 인간의 최대치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기독교는 인간을 보잘 것 없는 벌레같은 존재로 낮춰 보지 않습니까? 교회만 오면 죄인, 죄인하며 인간을 폄훼합니다. 구속론으로 보더라도 기독교만큼 인간을 높게 평가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차이점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별난 점은 신이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다른 종교는 인간이 신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라면 기독교는 신이 인간을 위하여 희생된 종교라는 것입니다. ■ 신학과 인문학의 관계는? 리챠드 니이버의 「그리스도와 문화」에 나타난 다섯 모델을 중심으로 1) 대립: 문화에 대항하는 그리스도 2) 일치: 문화의 그리스도 3) 종합: 문화 위의 그리스도 4) 역설: 문화와 역설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 5) 변혁: 문화를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다섯 유형이 있는데 비판적 수용과 거리 확보를 통해 문화를 변화시키는 변혁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사 측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기독교 신학과 인문학과의 관계를 시간이 없어 짧게 말씀드리면, 고대에는 정통신학과 플라톤 주의가 결합했으며, 중세에는 중세신학과 신플라톤주의가 결합하였고, 근대를 연 종교개혁기에는 마르틴 루터, 훌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 등 핵심 종교개혁자들은 모두 인문학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중세가 몰락하고 새로운 질서 도래를 앞둔 과도기적 상황에서 다시 ‘근원으로(Ad Fontes)’ 돌아가자는 운동들이 전개되었는데 남유럽은 그리스와 플라톤 다시보기의 르네상스로, 북유럽은 성서와 어거스틴 연구의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원전을 원어로!’ 읽는 독서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왜 고전읽기운동인가? 한 예로 라틴어로 번역된 불가타역본에는 회개하라를 고해하라로 잘못 번역하여 카톨릭에서는 고해성사가 일상화 되었는데, 헬라어 원어를 대조해 본 결과 오역을 발견하고는 종교개혁자들은 고해성사를 폐지했습니다. 이처럼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각 나라의 민족주의 대두로 자국어 성경이 보급되면서 종교개혁의 열풍은 전 유럽을 강타하자 혹자는 종교개혁을 독서혁명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 인문학을 하는 이유 그러므로 인문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사람답게 살기 위함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인문학이란 ‘인간다움’입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을 캐묻는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고, 톨스토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찰하지 않는 삶은 짐승과 같다고 했다. G.O.D의 노래 ‘길’의 가사처럼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를 묻고 또 묻는 작업입니다. 살기 위해서, 잘 살기 위해서, 살아도 산 것 같이 살기 위해서 우리는 인문학을 읽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자신과 시대를 성찰하기 위함입니다. 인문학은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알 수도, 볼 수도 없습니다. 현재의 나와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의 작업이 인문학입니다. 그렇기에 그 책에는 나, 남 없는 우리 모두의 얼굴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들여다보는 데는 인문학 만한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시대를 비판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찰하는 학문인 인문학은 비판하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성가시게 예언자처럼 쓴소리, 잔소리를 여과 없이 해대는 것이 인문학의 본령이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해석하기도 하고, 시대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은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 인문학을 비판하기 위해서 인문학을 읽어야 합니다. 앞서 신학과 인문학의 관계를 말하면서, 신학이 바라본 인간은 결국 하나님 앞에 선 인간(Coram Deo)입니다. 인간다움이란 창조자 하나님을 제외하고,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젖혀두고는 설명하기 어려우며, 그것 없이는 참다운 인간을 해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신학과 신자는 당대의 인문학적 결과물을 유심히 따라가며 세심하게 읽어야 시대를 통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신학은 인문학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인문학 없이 신학은 절름발이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인문학을 더 진지하게, 즐겁게 읽어야 합니다. "학생 때 들은 허혁교수의 강의가 생각난다. ‘독일 교인들은 일상에서도 칸트나 하이데거와 같은 담론을 즐기는데, 우리는 명품, 부동산 얘기 밖에 없다. 그런 인문학적 소양의 부재가 지금의 기독교 위기를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 "문학, 예술 등을 아우르는 인문학은 우리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한다. 그리스도의 정신이 이 땅에 충만하려면 콘텍스트인 인문학적 시각으로 텍스트인 성경을 바라볼 때 더 많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신학은 그 시대의 물음에 대한 기독교적 응답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과 인문학은 서로에게 상호보완적 관계로 발전해 왔다. 물론 한계가 모호한 지점이 있기는 하다. 최근 인문학의 붐은 상호 소통의 도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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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2021-07-22
  • [기독교인문학]‘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존중
    박 양 규 《인문학은 성경을 어떻게 만나는가》 한국의 대형교회의 교육현장에 있던 그의 고민은 하나님의 말씀이 정작 필요한 갈급한 이들에게 성경은 왜 생동감 없이 격리된 언어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모세와 함께 출애급한 200만명의 히브리인, 베드로가 전도한 3,000명의 결신자, 오병이어의 기적과 5,000명의 군중처럼 ‘영웅’만 기억하고, 그 뒤에 감춰져 숫자로만 기억되는 ‘아무개’들의 재발견이다. 이를 위하여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의 인문학을 끌어드린다. 인문학의 정신이 ‘영웅’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존중이라 믿기 때문이다. 지적 과시가 아닌 밀레와 고흐의 시선처럼 아래로의 관심과 환대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 저자소개 박 양 규∥ 총신대와 동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헬레니즘 분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영국 에버딘대학교에서 중간사 분야로 박사 과정을 수료, 삼일교회에서 교회학교를 총괄했다. 목회자로서 저자의 오랜 고민은 목회와 교육현장에서 왜 성경이 현실에 와 닿지 않는가, 왜 성경은 격리된 언어로 존재하는가였다는 그는 현재 대형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성경과 인문학을 연결한 교회교육 콘텐츠를 제시하기 위하여 유튜브 채널 <교회교육연구소>와 <큐리랜드TV>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유럽비전트립》, 《청소년들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중세교회의 뒷골목 풍경》 등이 있다. 샘솟는 기쁨 / 2021. 1. 21. / 16,5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인문학으로 읽는 성경》 김주철 / CLC / 《설교자는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김도인 / 글과 길 / ‘ 지식’이 아닌 ‘시선’ “한국의 기독교 집단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인문학과 관련해서 대담하게 던지는 질문이다, 성경적이지 않다면 인문학으로 성경을 읽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인간을 향한 ‘시선’이지 인문학 ‘지식’이 아니다.” 바르게 믿기 위하여 인문학 필요 김길구 우리 코너 이름이 기독교+인문학입니다. 서로 앙숙 같은 신본주의냐 인본주의냐를 가르는데 익숙한 우리 풍토에서 용어에 대한 오해가 꽤 있는 것 같아요? 김현호 그것은 오해지요. 중세는 물론 종교개혁을 선도한 이들의 학문적 배경에는 인본주의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보수적이라는 미국도 1980년대부터 기계문명의 발달로 인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반성으로 대부분의 기독교 학교들이 고전교육 등 인문학을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박영규 말씀하셨듯이 원래 인문학은 기독교 세계 속에서 성경을 뿌리에 두고 태어났어요. 하나님이 주신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었으니까요. 김길구 인문학 Humanities 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런 인문학이 성경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오늘의 주제입니다. 김현호 ‘수십 년간 기독교인으로 살아오면서 안타까운 점은 여전히 한국 교회에는 질문과 토론이 없고 자구 하나에 집착하며 바벨탑 같은 성경 지식만 쌓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허한 설교와 맹목적 아멘만 넘쳐나는 것도 여전하다. 이를 극복하려면 관성으로 굳어진 시각의 틀을 깨고 성경을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향신문 기자인 저자의 누나가 쓴 추천사의 일부입니다. 우리 교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지요. 박영규 저자는 학문과 일상, 성경과 삶이 분리되고, 교회 교육의 안팎이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습관과 관성의 틀을 깨는 인문학적 시각으로 성경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김길구 최근 출판계의 흐름 중에 하나는 인문학을 주제로 한 출간이 꾸준히 느는 현상이 아닌가 싶은데, 기독출판계 역시 이러한 흐름에 예외가 아니죠? 어때요? 김현호 그렇지요. 저희 모임에서도 이정일 교수의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란 책으로 독서 나눔을 가진 적이 있는데 참가자들이 성경을 인문학적 배경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하려는 것을 보고 저도 놀랐습니다. 교인들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봐야 하나요? 박영규 성경도 잘 모르는데 인문학까지? 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고요. 자칫 19세기의 ‘살롱문화’처럼 신분과 계급, 지적 허영을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귀족적 문화’로 변질 될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김길구 책으로 들어가 보죠.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의 주제 의식과 명작이 된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예를 들고 있지요? 김현호 「데미안」에서 묘사된 인생의 고뇌, 「걸리버 여행기」에서 말하는 부조리한 현실, 밀레와 고흐의 작품이 전하는 ‘한 인간에 대한 연민’ 같은 투철한 주제 의식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로, 러시아 정교회의 극심한 타락과 프랑스 사회의 가득한 부조리가 톨스토이와 까뮈를, 영국사회의 부도덕과 스페인의 부패한 사회상이 톨스토이와 돈키호테라는 캐릭터를 창조한 시대적 배경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박영규 한마디로 시대를 꿰뚫어 보는 작가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을 얘기하고 있어요. 예를 든 작품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기독교가 지배했던 유럽의 얘기들이잖아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우리 교계 기독교인의 삶도 점점 ‘살롱문화화’ 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 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작품들은 우리에게 많은 통찰을 주고 있지요. 이것이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겠죠. 주인공이 아니 보통 사람들에 주목해야 김길구 이제 이 책의 주제로 들어왔어요. 먼저 성경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이 책의 또 하나의 주제는 성경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닌 이 책에서 ‘아무개’라고 불려지는 이름 없는 작은 이들에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김현호 인문학이 신학을 전달하는 통로라면 그것을 잘 아우를 수 있는 장르가 문학 같아요. 서점에 있으면 신학책들이 많이 들어와요. 자칫 과잉교리와 신학의 전달로 성경 말씀이 실생활과 괴리된 공허한 설교가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박영규 저자는 성경의 주인공들의 스토리에 가려진 동시대의 ‘아무개’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말씀을 적용할 때 말씀에 생명력이 생겨 아무개들이 살아갈 지혜와 영감을 얻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 아무개들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김길구 이 책은 270쪽에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등 흥미로운 12개의 주제로 나눠 각 주제마다 벤치마킹, 공감하기, 인문학적 성경읽기라는 3단계 과정을 두어 성경공부의 깊이를 더하는데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장면을 다룬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를 통하여 인문학과 성경이 어떻게 만나는가를 알아보죠. 김현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이해하려면 우선 「우르」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르는 세계사에 등장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도시죠.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나 성문법 함무라비 법전은 우르를 중심으로 꽃을 피웠던 이 메트로폴리스를 고려치 않으면 그의 ‘순종과 결단’의 의미가 빛이 바래죠. 당시 우르는 문명과 법 제도가 완비된 완벽한 주거공간이었습니다. 저자는 주인공의 아브라함의 결단에 주목합니다. 공감하기, 그리고 인문학적 성경읽기 박영규 1단계인 벤치마킹하기에서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들어가 ‘영웅’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직접 듣지 못하고 전언을 듣고 그의 명령에 따라야 했던 그 많은 주변부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 말씀을 재해석하고, 고심 끝에 따라나서야 했던 이들의 처지를 되돌아보고 그들의 결단에 우리도 공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매일 매일을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수많은 ‘아무개’ 속에 한 명인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김현호 다음 단계인 공감하기 단계에 이르면 사걀의 <이삭의 희생>을 보면서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사라의 입장이 되어 보고, 고심 끝에 내린 그녀의 믿음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롯이 나그네를 환대하는 장면에 이르면 ‘선한 영향력’이란 고지를 점령해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설정된 태도에서 나옴을 상기시킵니다. 3단계인 인문학적 성경읽기에서는 창세기 12장1절의 야웨께서 명령하셨다. ‘너 자신을 위해서’ 네 고향, 즉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창12:1, 히브리어 원본)의 성경본문을 통해 번역본에 빠진 ‘너 자신을 위해서’란 부분을 통해 아브라함과 함께했던 아무개들을 살펴보면서 우르를 떠난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아무개들 자신을 위한 것인가?란 물음에 우리가 스스로 답하도록 인도합니다. 박영규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문학이 하나님과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길구 정리하자면 저자의 인문학적 성경읽기의 특징은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 중 몇 사람으로 기억되는 ‘영웅’들의 위인전이 아니라 주변부의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관심과 배려, 그리고 존중의 시선으로 잃지 않는 따뜻함이 있다는 점이고, 저자는 이것이 인문학의 정신이라고 합니다. 이를 위하여 시대를 넘나드는 해박한 문학, 역사, 예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텍스트인 성경이 고대 중동의 케케묵은 박제화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삶의 현장인 바로 지금 여기의 콘텍스트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감동을 느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호인 7, 8월에는 여름휴가 관계로 연재를 쉽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코로나19 시대 독자 여러분의 건강한 여름나기를 성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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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2021-06-25
  • [기독교인문학]4차 산업혁명시대, 스마트 선교가 시작되다
    이동영의 《4차 산업혁명과 그리스도인의 삶》 - 교회, 플렛폼 경쟁에 놓이다 -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이래 일반화된 이 말은 기존의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 위에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결합하여 IoT, CPS, 인공지능 등의 기술혁신의 쓰나미를 통해 만들어질 사회시스템 전반적인 대변혁을 일컫는 것으로 이에 대한 교회의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영학자 출신으로 조직신학자가 된 저자는 가까운 미래 패러다임을 바꿀 혁명의 실체와 그리스도인의 대응을 풀어내고 있다. 총 11장 120 쪽의 이 책에는 각 장별로 토론을 위한 자료가 있어 스타디 그룹용으로 유용하다. 인간이 드디어 자신의 형상을 창조하는 호모데우스의 시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명을 준비하는 이에게 권하는 필독서 ◇ 저자소개 이 윤 석∥ KAIST에서 경영학 석, 박사 후 삼성SDS와 포스코 경영연구소에서 근무. 30대 중반에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총신대에서 조직신학 전공으로 신학석, 박사 등을 마치고 충남 아산에서 아산시민교회를 개척 담임목회를 하였다. 현재는 독수리기독학교에서 연구소장으로 사역 중이다. 저서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관점으로 본 조나단 에드워드의 성화론》, 《성도의 삶에 나타나는 미덕의 특징에 대한 연구》, 《4차산업혁명 시대 코딩 기술과 교회교육》 등이 있다. CLC 간 / 2018.9. / 10,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기술의 불안한 미래》 에그버트스 휴르만 / 비아토르 / 2019 《기술체계》 자크엘륄 / 대장간 / 2013 4차 산업혁명의 문화적 사명 “ 저자는 교회라는 플랫폼에 스마트한 선교/목회/연합을 도입함으로써 기술을 축복으로 변혁시키는 문화적 소명을 신학과 경영학이라는 양날의 검으로 그 누구보다 탁월하게 열 어간다. ”(추천사에서 김준성) 성큼 다가온 4차 산업혁명 김길구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 뒤 세계적으로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박영규 사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그 실체에 대한 논쟁이죠. 기존의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3차 산업혁명인 지식정보혁명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견해도 있으니까요. 김현호 세기의 대결이라는 이세돌과 딥 런닝으로 학습된 인공지능인 ‘알파고’와의 대결이 4대1로 인간이 일방적으로 패하자 멀게만 느껴졌던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을 전 세계인이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김길구 제4차 산업혁명을 정리하면 IoT, CPS, 인공지능 기반의 만물초지능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에 대한 교계의 대처는 어떤가요? 김현호 우리교계도 활발치는 않지만 4차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들이 꾸준히 있어 왔어요. 「Be Connected-4차산업혁명과 선교」 (FMnC선교회), 「4차 산업혁명과 기독교학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4차 산업혁명과 기독교 포럼」, 「4차 산업혁명 이해와 대응전략」 (새세대아카데미) 와 「4차 산업혁명과 교회」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등이 개최되었습니다. 박영규 사실 우리 교계 현실은 거창한 4차 산업혁명이란 이슈보다는 당면한 교인 감소와 대사회적 이미지의 실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등에 대한 현안이 더 시급한 실정이지만,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특징 중에 하나인 초연결, 비대면으로 인한 극단적 개인화 등이 코로나19 영향으로 더 빨리 촉진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비정상이 일상화 된 뉴노멀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인간은 신이 된 동물 김길구 그럼 책의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이 책은 4차 산업혁명의 특징과 함께 베스트셀러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후속작 《호머 데우스》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김현호 그도 그럴 것이 사피엔스에서는 과거 인류의 조상이 영장류의 일원으로 유인원으로부터 진화되어 오던 여러 종 중에서 유일하게 사피엔스종이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 이 능력으로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는데 이 ‘인지혁명’의 시기가 대략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라는 주장입니다. 박영규 그의 후속작인 호모 데우스는 미래 인류 진화에 대해 전망하면서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업 로드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즉 인간은 신이 된 동물로 단어의 뜻 그대로 호모 속에 속하지만 신과 같은 종의 출현을 예고합니다. 김길구 여기서 유발 하라리는 현재 인류가 추구할 핵심 의제로 ‘불멸’, ‘행복’, ‘신성’이라는 세가지를 제시하는데 이를 추구하는 방법이 종전의 종교나 철학의 영역이 아닌 고도로 발전된 현대의 첨단과학기술에 의존할 것으로 보고 있어요. 김현호 작년에 번역된 하버드의대 수명혁명 프로젝트팀의 싱클레이박사가 저술한 ‘노화의 종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노화는 질병으로 치료할 수 있으며 앞으로 생명과학의 발달로 생명연장을 넘어 ‘불멸’을 추구한다는 주장이지요. 2013년 구글의 벤처투자회사인 구글벤처스 같은 회사는 생명연장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어요. 박영규 두 번째 의제는 ‘행복’ 추구인데 종전의 명상이나 종교적 행위, 또는 철학적 숙고가 아닌 생명공학, 사이보그공학, 인간이 갖고 있는 유기체 부분이 아예 없는 비유기적 존재를 설계하고 이 존재에 인간의 의식과 지능을 이식하는 것으로 인공지능과 신경과학의 획기적 발달로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미래 인류의 핵심의제 불멸, 행복, 신성 김길구 마지막 의제인 ‘신성’인데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은 아니어도 그리스 신들처럼 초능력을 가진 일종의 신성을 획득하는 존재의 출현이죠. 유발 하라리가 말한 데이터교의 출현 같은 것이죠. 김현호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인공지능의 발전과 사물인터넷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으로 온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막강한 지능과 거대한 데이터를 가진 강력한 권력의 출현이 가능하니까요. 박영규 저자는 이런 입장에 대하여 4차 산업혁명의 주요기술들이 인간의 모습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준 것은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창조질서을 거스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별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김길구 교회도 일종의 플랫폼으로 플랫폼 경쟁에 놓여있다는 주장이 재미있네요. ‘플랫폼’(platform) 비즈니스는 어떤 형태의 비즈니스 모형을 구상하고 그 모형이 돌아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 놓고 그 안에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수익을 내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최근의 세계 10대 기업 안에 새로운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대거 약진하고 있잖아요. 김현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에이비엔비 등이 이에 속합니다. 박영규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다른 모든 신자는 그 몸의 지체가 되어 전체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네트워크 에 속해 있는데, 이러한 영적 연합 외에도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들을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플랫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교회와 문화와의 관계 김길구 로버트 베버의 문화를 보는 관점 3가지 구분에 중에 아미쉬처럼 분리모형의 입장을 취한다면 산업혁명의 기술 수용에 소극적이면서 선교 또는 전도를 위해서만 기술을 활용하게 될 것이고, 루터처럼 교회와 세상을 동일시 하는 모형이라면 각 기술분야에 그리스도인들은 탁월성을 추구해야 하며, 하나님나라와 세상의 나라가 중첩되면서도 구분되는 경우 어거스틴의 신국론처럼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세상 나라의 각 영역에 침투하여 문화전체를 변혁시켜야 하겠죠. 박영규 긍정과 부정의 양날의 검처럼 양면성을 가진 4차 산업혁명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고 저임금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서로 내몰려 야기되는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의 현상에 대한 균형된 문제의식이 필요하고, 로봇과 인공지능의 경우 기독교 윤리적 입장에서 숙고한 후 개발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며, 사물인터넷의 경우 사람을 돈벌이 수단과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엄격한 도덕적 기준이 필요하고, 의·생물학 분야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치 않도록 신앙적 분별력이 있는 선한 창조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충고합고 있습니다. 김현호 4차 산업혁명이라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회를 맞게 되는 기술혁명의 쓰나미 앞에 모두가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나 세상에 대해 두려워 말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되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김길구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호에는 멈출 듯 멈추지 않는 코로나19를 보면서 일상으로의 회귀를 생각해 보는 CLC에서 펴낸 박동식 저 《코로나 일상 속 신앙, 교회, 삶》을 주제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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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2021-05-21
  • [기독교인문학] 공동체의 정의는 하나님의 선을 통해서 온전해 진다
    ‘호통판사’ 천종호의 《선, 정의, 법》 - 정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 - 소년범의 대부로 호통판사의 애칭이 더 어울리는 저자가 그리스도인들이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위기의 때에 《선, 정의, 법》이란 책으로 찾아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작년에 출판한 이래 1년이 안 돼 6쇄를 넘어섰다. 각주만 봐도 12장에 달하는 공들인 책이다. 저자가 윤리학, 정치철학, 법철학은 물론 신학도 넘나들며 법문제에 천작했다. 우리의 생활과 떨래야 뗄 수 없는 법, 가깝고도 먼 법 이야기를 통하여 기독교적 시각에서 친절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풀어놓았다. 법의 목적인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하여 정의로운 공동체를 넘어 예수가 보여준 사랑의 공동체를 제안한다. 그의 결론은 ‘도덕성의 회복은 선의 회복이며, 선의 회복은 정의로운 신의 귀환’이라는 것. ◇ 저자소개 천 종 호∥ 부산에서 흙수저로 태어나 부산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를 마쳤다.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97년 부산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24년간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고, 현재는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다. 가정의 문제로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들에게 대안가정인 ‘청소년지원센터’를 제공하여 재비행을 줄이는데 기여한 공로로 2020년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이 아이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등이 있다. 두란노 간 / 2020.5. / 16,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덕의 상실》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 문예출판사 /1997 《정의론》 존 롤스 / 서광사 / 2010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 / 김영사 / 2010 《회복적 정의는 무엇인가》 하워드 제어 / KAP / 2015 사랑은 정의의 최대화 “그리스도인들은 ‘정의의 공동체’에 발붙이고,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정의의 공동체를 무시한 채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할 수 없다. 정의는 사랑의 최소화이고, 사랑은 정의의 최대화이다.” 김길구 오늘은 ‘호통판사’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선, 정의, 법》의 저자 천종호 판사님을 모셨습니다. 작년에 펴낸 책이 이 불황 속에서도 6쇄를 거듭했어요. 내용이 쉬운 책도 아닌데… 박영규 대중적 인기도 한몫했을 거예요. 요즘처럼 도덕적으로 교계가 비난받던 때도 없었잖아요?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현호 이 책에서도 언급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당시 영미권에서는 10만부밖에 안 팔렸는데 우리나라에선 200만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법조인으로서 마이클 샌델의 견해에 어떤 입장이신가요? 우리 국민들은 왜 이 ‘정의’ 문제에 그토록 예민할까요? 천종호 우리 사회는 선이 없는 정의론인 ‘자유주의적 정의론’에 크게 치우쳐 있어 ‘공동체주의’를 주장하는 마이클 샌델이 인기가 많다는 것이 저에겐 의외였어요. 우리 사회가 공정과 공평을 다루는 ‘정의’ 문제에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현호 ‘사회가 불공정합니까?’란 물음에 미국인들은 30%, 한국인들은 70%가 그렇다고 답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조국 딸 입시 특혜, 인천공항 비정규직 전환, 의대생 국시 재응시 문제, LH 사태 등에서 보여준 공정성에 불신이 지지율뿐만 아니라 이번 선거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천종호 공정성 여부는 객관적 데이터보다 국민의 정서와 관련이 깊겠죠. 우리 사회 정의의 수준이 국민의 정서를 어루만져 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죠. 언급한 사례들은 이런 감정을 증폭시킨 예라고 봅니다. ’같은 것은 같게‘라는 공평과 ’다른 것을 다르게‘라는 공정이 우리 사회에 빨리 뿌리 내려야겠습니다. 정의와 공의 김현호 정의의 문제에 성서의 예를 드셨어요? 천종호 사회나 학계에서는 정의라는 단어 하나만 쓰는데 비해 성경에서는 공의(체다카)와 정의(미쉬파트)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공의와 정의를 묶어 ‘정의’라는 한 단어를 활용하여 정의의 개념을 말해보죠. 정의는 동태적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근로를 제공하여 급여를 받았습니다. 이를 ‘분배적 정의’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휴대폰을 사서 자녀에게 준다고 해도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를 ‘향유적 정의’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 자녀가 휴대폰을 이른바 일진에게 빼앗겼다면, 이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되고 돌려받아야겠지요. 이를 ‘시정적 정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휴대폰을 빼앗은 아이에게는 형사법상의 조치(형벌 또는 소년보호처분)가 이루어집니다. 이것도 시정적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 아이의 딱한 사정이 밝혀졌는데, 주위에 아무도 휴대폰을 사 줄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이런 경우 그 아이로 하여금 재범을 방지하려면 그 아이에게 휴대폰을 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재분배적 정의’라고 합니다. 이 네 가지 정의를 다시 두 가지로 압축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배분적 정의(분배와 재분배)’와 ‘시정적 정의(향유와 시정)’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배분적 정의를 이루려면 사회제도가 구축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개인이라도 선의(호의)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렇게 국가나 사회가 하지 않는 일을 개인이 선의를 다해 정의를 이루는 것을 성경에서는 ‘공의(체다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정의(미쉬파트)는 주로 법정에서 어긋난 정의를 시정하는 것을 의미하죠. 김길구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은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예언서에는 정의와 공의라는 단어를 쌍으로 같이 쓰고 있다는 거예요. 이를 두고 어떤 분은 ‘정의의 무자비함과 정의 없는 사랑의 무력함을 극복하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공감이 가더군요.. 박영규 판사님도 비행청소년들의 아버지로 명성이 높으신데 1900년 캐나다에서 비행청소년들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교정복지 프로그램으로 ‘회복적 정의운동’을 시작하여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하시는 사역과 비교해 보면? 천종호 회복적 정의는 크게 세 가지로 접근해야 합니다. 피해자와의 관계 회복, 재비행을 막기 위한 공동체(가정)의 회복, 전과자라는 낙인효과 방지를 위한 사회와의 회복입니다. 제가 주로 활동하고 있는 바는 두 번째로, 가정의 문제로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에게 대안가정인 ‘청소년회복센터’를 제공한 다음 재비행을 막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있어서는 회복적 정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세 번째의 것은 저 혼자만으로는 벅차요.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지요. 기독교공동체는 성품의 공동체 김현호 순서가 바꿨습니다만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한데 ‘선’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어요? 천종호 줄여 얘기 드리면 기독교에서 선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선이고, 본래적 선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선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저는 로마서 8장 28-30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선을 이루느니라’는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셨으니,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다’와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최종적으로 영화롭게 되기까지의 단계{미리 아심, 미리 정하심, 부르심, (중생) (회심) 칭의, (성화) (견인) 영화}를 보여줍니다. 그 중 ‘미리 아심에서 칭의’까지의 단계는 잃었던 생명을 회복하는 구속(속량)의 성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성화에서 영화에까지 이르는 단계는 성품과 인격의 완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을 이룬다는 것은, 생명을 구원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선은 구속의 확신을 나날이 더해 가는 것과 하나님과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기독교 공동체를 ‘성품의 공동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품의 공동체가 이루어 내는 선을 ‘공동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이 없는 정의론’에서는 ‘공동선’이라는 개념보다는 ‘공익’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정의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정의로운 성품이 필요합니다. 김길구 수고 많으셨습니다. 천판사님의 매력에 폭 빠진 시간이었습니다. 격무로 알려진 판사직을 수행하시면서 그 바쁜 와중에서도 전문가 못지않은 다방면의 독서와 그 해박한 식견, 그리고 무엇보다 뜨거운 열정이 돋보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호에는 멈출 듯 멈추지 않는 코로나19를 보면서 일상으로의 회귀를 생각해 보는 CLC에서 펴낸 박동식 저 《코로나 일상 속 신앙, 교회, 삶》을 주제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1-04-26
  • [기독교인문학] 예수의 영성은 예언자의 영성
    차준희교수의 《열두 예언자의 영성》 -정의, 긍휼, 신실에 대한 치유 메시지- 구약학자인 차준희 한세대학교 교수의 역작이다. 「목회와 신학」에 12회에 걸쳐 호세아부터 말라기까지 12명의 소예언자들에 관한 글을 모아 2014년에 출간했다. 서로 다른 배경과 메시지의 다영성이 현재 6쇄를 거듭하며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비결이다. 저자는 출간한 그 해에 일어난 세월호 사태를 빗대 한국교회의 침몰을 논하며, 정의와 긍휼, 신실의 회복을 통하여 치유의 해법을 찾고 있다. 교인들의 외면으로 오래전에 우리의 강대상에서 쫓겨난 예언자들의 거친 숨소리를 저자는 현대의 감성에 맞게 되살렸다. ‘상식이 예배보다 우선이다’(호세아), ‘성령을 받으면 목소리가 아니라 지갑이 열린다’(요엘), ‘무능이 전능을 이긴다.’(스가랴) 등 제목부터 이채로워 눈길을 끈다. ◇ 저자소개 차 준 희∥ 서울신학대학교, 연세대학교 대학원, 독일 본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한세대학교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에는 한국구약학연구소를 설립해 한국교회 강단을 섬기며, 목회자들의 구약설교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새물결플러스 간 / 2019. 2. / 13,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예언자들》 아브라함 J 해셀 / 삼인 / 2004 《예언자적 상상력》 월터 브루그만 / 복 있는 사람 / 2015 (개정판) 《소예언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김근주 / 한국성서유니온 / 2015. 《키워드로 읽는 예언서》 성기문 / 세움북스 / 2015 예언자 영성=예수의 영성 “예수는 구약의 핵심으로 예언자의 영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의 영성은 다름 아닌 예언자의 영성이다. 한국교회는 예수의 영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김길구 오늘은 차춘희 교수의 《열두예언자의 영성》 입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LH공사 직원의 내부정보를 이용한 부동산투기가 여권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집권 내내 부동산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여권으로서는 큰 위기를 맞아 철옹성 같던 콘크리트 지지가 흔들릴 지경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박영규 우리만 아니라 전 세계가 불평등의 문제로 야단입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이 작년에 발표한 2019년도 불평등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수퍼리치 2,153명 46억명보다 더 부유하다는 통계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더욱 부의 쏠림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지요. 김현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의 수평이동이 일상화된 요즘도 대형교회들은 그동안 의 교회성장론을 바탕으로 더욱 대형화되고 작은교회들은 유지가 어려워 문을 닫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잖아요. 김길구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계에서 이러한 사회부정의의 문제를 얘기하는 분들이 별로 없어요. 오늘 열두예언자의 영성은 구약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사회정의의 문제와 약자의 돌봄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박영규 예언자들의 높은 도덕성과 윤리성이 변방 중동의 종교를 세계의 종교로 발돋음 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저자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위기를 구약 예언자 정신의 실종에서 찾고 있어요. 김현호 히브리 예언자의 사회정의는 서양문명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의 이성과 철학, 로마의 법과 질서와 함께 3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독교적 정의의 정신이 우리사회 저변까지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사회정의가 서구의 3대 주류 이뤄 김길구 원래 이 책의 편집이 월간지의 연재 형식이어서 서론 없이 열두 명의 독립된 얘기들로 구성되었어요. 다행히 유튜브에 서론격인 강의도 있어 참조하시면 좋겠네요. 그럼 예언자는 누구죠? 김현호 히브리의 예언자는 단순히 미래만을 점치는 점장이나 마술사와는 다르죠. 미래의 예언도 하지만 하나님께 받은 지금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언자의 ‘예’자가 과거 한자로 미리 예(豫)를 썼는데, 요즘은 ‘미리’라는 의미도 포함된 ‘맡길’ 예(預)를 쓰고 있더군요. 역할에 있어서도 제사장은 토라 즉 말씀을 가르치고 제사를 집례하는 일을 주로 하는데,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대신 기도해 주는 중보자의 일은 제사장이 아닌 예언자의 몫입니다. 물론 사회비판은 기본이고요. 박영규 책을 흥미롭게 봤는데요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단지 확성기로만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각기 다른 기질과 성격과 개성들도 함께 사용하신 것 같아요. 같은 듯 조금씩 결이 다른 그들만의 색깔이 성서를 더욱 다양하고 풍요롭게 한다고 느꼈습니다. 예수, 히브리 예언자 전통따라 김길구 저자의 주장은 예수의 영성은 예언자의 영성이니 그를 따르는 우리도 예수처럼 예언자의 삶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까요? 박영규 그 논리의 출발점은 대표적인 성구인 마 23:23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 말씀에 언급된 정의, 긍휼, 믿음이 구약 예언자들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김현호 아시다시피 이러한 예언자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난 것 곳이 ‘정의’는 아모스, ‘긍휼’은 호세아, ‘믿음’은 이사야서들인데, 예수도 이러한 구약신앙의 핵심 사상인 예언자들의 전통을 따라 압축한 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나타난다고 봐요. 현재 위기의 한국교회를 구하는 길은 예수처럼 예언자 정신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김길구 그러면 지면관계상 다할 수 는 없겠고 12인 12색 중 세 분의 본문 속으로 들어가 책의 매력에 빠져봅시다. 박영규 순서대로 호세아는 문서예언자 중에 유일한 분단시대 북왕국 이스라엘 출신 예언자입니다. BC 8세기 대제국 앗시리아의 부상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시기에 활동했어요. 신실하지 못한 믿음과 하나님과 바알신을 겸하여 섬긴 혼합주의를 부부관계의 불륜인 간음행위로 질타합니다. 김현호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고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 는 것이 핵심 메시지입니다. 소제목이 ‘상식이 예배보다 우선이다’로 단 것은 교인들은 이중생활, 예배 당 밖의 일상에서 인간도리를 잘하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행동과 처신으로 신뢰를 회복하라는 이 메시지는 요즘 신뢰를 잃어 교계에 싸늘한 시민들의 시선 앞에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말씀입니다.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 박영규 아모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 국제적 문제로 떠오른 미얀마 사태를 보면서 과거 광주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경찰의 차단벽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수녀의 사진이 전 세계인에게 큰 울림을 주었죠. 부정의 앞에 저항하지 않고 그 이익을 누린 자들을 비판한 아모스의 소제목이 “공동체 의식이 없는 자들의 예배는 하나님과 무관하다”였는데, 우리가 분개하는 LH사태나 부동산 폭등 사태 등에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나?를 자문하게 됩니다. 김현호 아모스가 활약한 시대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잘 나가던 때였어요.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곪아가고 있었지요. 양극화가 심화 되고 약자들의 삶은 사회적 불의와 도덕적 타락으로 피폐해가기만 했어요. 게다가 예배도 변질되어서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을 섬기는 예배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자, 하나님은 이런 제사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그 유명한 말씀 ’오직 정의(미쉬파트)를 물같이, 공의(체다카)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공동체 혹은 공공의식 없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지 않나요? 김길구 하나님의 영이 특별한 이들에게만 독점되지 않고 중재자 없이 이스라엘 백성 모든 사람에게 물처럼 부어질 날을 노래한 요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이를 ’하나님 영의 민주화‘라고 했어요. 차별 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근대를 연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만인제사장설’을 너머 이미 오래전에 ‘만인예언자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성령공동체 안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소외도 없다는 선언은 교회 안에서 직분이 계급이 된 지 이미 오래고, 그 어느 곳보다도 돈이 위세를 떨치는 오늘날 우리 교회의 현실과 너무 다르죠. 문제는 이것이 교회 안에서는 안 보여요. 이미 체질화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예언자의 영성으로 거듭나 교회가 새로워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다음 호에는 하나님의 선은 어떻게 인간 공동체에 구현되는가를 생각해 보는 두란노 刊 《선, 정의, 법》의 저자 천종호 판사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1-03-26
  • [기독교인문학] 코로나 시대, 집에서도 나는 신자인가요?
    C. S. 루이스 《신자의 자리로》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세기 교회를 움직인 100권의 책에 3권이나 선정된 저명한 작가 C. S. 루이스의 작품 중 믿음의 실천과 관련된 글들을 발췌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편저자는 하퍼원 출판사 편집장인 마이클 G. 모들린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 책 《신자의 자리로》는 루이스의 책과 에세이와 편지와 강연 등 폭넓은 저작에서, 어떻게 믿을 것인가만 아니라 어떻게 믿음을 잘 실천한 것인가와 관계되는 부분을 엄선하여 모은 것이다” 인용한 작품은 《순전한 기독교》, 《영광의 무게》, 《피고석의 하나님》, 《세상의 마지막 밤》, 《기독교적 숙고》 등이다. 그리스도인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그의 해박한 지식과 번쩍이는 재치로 풀어준다. 그가 왜 20C 최고의 변증가인지를 엿볼 수 있는 실용지침서. ◇ 저자소개 C. S. 루이스∥영국의 옥스포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에서 중세문학과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치며 소설, 평론, 동화 등을 썼다. 지성적이며 논리적인 신학자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 등이 있으며, 전세계 1억 부 이상을 판매한 판타지 소설의 바이블 《나니아 연대기》 등이 있다. 두란노 간 / 2020. 11.18. / 11,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기도의 자리로》 / C. S, 루이스 / 두란노 《루이스의 서재》 제임스 스튜어트벨 / 홍성사 / 코로나 시대, 집에서도 나는 신자인가요? 기독교란? “기독교는 그저 자연적 삶을 새로운 삶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소재를 초자연적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새로운 질서다.” 김길구 그동안 수고하셨던 경주의 김형기 목사님이 개인사정으로 그만 두시고, 산정현교회 장로인 박영규 모라복지관 관장께서 함께합니다. 대학 졸업 후 장기려 박사님의 부름을 받고 청십자병원의 근무를 시작으로 현재 사회복지법인 청십자 이사장을 겸임하고 계신 청십자맨 입니다. 부산대 대학원(기술사업정책학 박사)을 졸업했습니다. 박영규 평소 이 코너의 팬이었는데,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좋은 프로그램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현호 부산광역시 사회복지협의회 회장으로 사회복지운동에 헌신하셨는데 이 코너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옥스퍼드의 명사, 루이스에 대하여 김길구 김대표께서 루이스의 광팬이신 모양인지 얼마 전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이어 또 추천을 하셨어요? 루이스의 매력이 어디에 있나요? 김현호 케임브리지 교수이자. 옥스퍼드의 명사인 루이스는 두 세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기독교 신앙의 탁월한 길벗이자 위기의 시대에 저희들에게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주죠. 빛나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 인문학의 지평을 한껏 넓힐 수 있어 제가 존경하는 작가입니다. 박영규 C. S. 루이스하면 떠오르는 것은 지난 반세기가 넘도록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나니아연대기》를 떠올리실 겁니다. 판타지 소설 J.R.톨킨의 《반지의 제왕》, 《호빗》과 더불어 판타지 동화 나니아연대기는 우리 안방 TV에서 자주 재방영하는 영화이기도 한데, 상상력과 유머,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간결하고 품위 있는 아름다운 문장은 동화작가와 종교사상가로서의 그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는 평입니다. 20C 교회를 움직인 명저 100선에 《순전한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와 같이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김길구 작년에 우리나라에도 《루이스와 톨킨의 판타지문학클럽》이란 책이 번역돼서 나왔어요. 영국판타지문학의 황금기를 이끈 두 거인이 포함된 「잉클리스클럽」의 얘기인데, 멤버들이 쟁쟁해요. 작가들인 이들은 서로의 글쓰기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문학클럽이었는데, 루이스는 이 모임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합니다. 일종의 관계전도라고 할까요? 여담이지만 거장은 거장을 알아본다고 할까? 여기에 큰 영향을 준 이가 가톨릭 신자인 《반지의 제왕》 톨킨인데 소통이 너무 나갔나요? 나중에 나니아연대기가 출간되자 톨킨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루이스가 표절했다며 둘의 관계가 틀어지기도 해요. 박영규 재미있는 것은 톨킨의 판타지는 은유가 많아 나니아연대기 처럼 기독교적 메시지를 들어내지 않는데 비해 루이스는 노골적으로 들어내죠. 이 점을 톨킨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아마 나니아연대기가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서 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전한 기독교〉〈영광의 무게〉〈피고석의 하나님〉 김현호 너무 몰입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그럼 본분으로 들어가 볼까요? 책의 성격이 그의 명저 중 엑기스만 뽑아 놓은 북 다이제스트 형식이라 작가 특유의 재치와 유머을 곁들인 모든 글들이 좋기는 한데, 주제도 광범위해 요약해서 정리하기가 어려웠어요. 김길구 책 선정을 한 뒤 저도 후회를 했어요. 글들은 다 좋은데 어떻게 마무리할까?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발췌한 글 중에 복수로 인용된 글이 〈순전한 기독교〉 3편, 〈영광의 무게〉 4편, 〈피고석의 하나님〉 4편이더군요. 우선 이 세 권을 한 분이 한 작품씩 간략히 소개해 주시고, 발췌본 중 은혜로웠던 대목들을 추려보면 어떨까요? 비 표준어 입니다만, 엑기스 중에 엑기스라고 해야 하나요? 김현호 루이스를 20C 가장 영향력 있는 변증가로 만든 작품이라면 단연 《순전한 기독교》라고 해야겠지요.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BBC 라디오에서 전한 메시지 시리즈물을 1952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입니다. 당시 미국과 영국 기독교의 주된 적은 ‘현대성의 결여’ 였는데 옥스퍼드의 학감으로 설득력 있게 기독교가 더 합리적임을 주장함으로써 많은 지성인들을 돌아오게 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입니다. 박영규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류되어 수감된 닉슨의 특별보좌관이었던 찰스 콜슨의 마음을 돌이키게 한 책으로 알려졌지요. 《영광의 무게》는 조사해 보니 1941년 6월 8일에 세인트메리 교회에서 행한 설교로 교부들의 글에 비견된다는 찬사를 받은 설교의 백미로 이 설교문 외에 8편의 설교와 강연을 묶은 책입니다. 김길구 제목부터 도발적입니다. 《피고석의 하나님》 이 책은 신학적, 윤리적 주제 48편의 에세이 중의 한편을 책 제목으로 했는데. 고대의 피고인이 재판을 받으려면 우리가 재판장에게 가듯 하나님이나 신께 갔는데 지금은 거꾸로 인간이 재판장이 되어 하나님을 피고석에 앉혀버린 현대인들을 향한 ‘지적 공략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잠언들 김길구 엮은이가 인용한 루이스의 고백처럼 들리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기나긴 여정이며, 나와 가장 가깝기에 내 부족한 모습에 가장 큰 영향을 입을 사람들이 곧 정화의 과정에서 하나님이 주로 쓰실 교실임을 일깨워 주었다. 김현호 이 책 첫 꼭지에서 신자들이 천국에 가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 혹은 선행 때문일까?에 대해 루이스는 이 질문은 가위의 어느 쪽 날이 더 요긴하냐 라는 질문과 같은 것이어서 그분을 믿으면 선행은 반드시 따른다고 말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빌립보서 말씀으로 양쪽을 묶어 매조집니다. 박영규 C.S.루이스는 하나님의 통치안에 있는 모든 질서를 성속으로 구분짓는 것을 무척 경계합니다. 영어단어 스피리추얼 (Spiritual)을 독일어 단어 가이스트리히(geistlich)처럼 좁은 의미의 “영적”이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을 기독교의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베토벤 같은 작곡가의 일도 파출부의 일도 정확히 똑같은 조건에서만 영적이라는 것이지요. 주께 하듯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재미있는 표현도 사용하는데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두더지는 땅을 파고 수탉은 울어야 한다.’ 소명에 분업은 있지만 더 영적인가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김길구 용서에 대하여, ‘우리가 믿거니와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지만 그 용서에는 남이 우리에게 지은 죄를 우리도 용서한다는 전제가 달려있다.’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 까먹고 싶어하는 것. 김현호 제2차 세계대전에 출전했던 경험을 가진 루이스는 종교와 전쟁은 유사점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늘 긴장 속의 현장이지만 그곳에서도 인생살이가 존재하는 일상이므로 24시간 군사연습만 할 수 없듯이 24시간 종교적인 일에만 몰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은 목숨을 버릴만한 의무는 되지만 삶의 목적으로 삼을 정도는 아니며 사람이 조국을 위해 죽을 수는 있으나 배타적 의미로 조국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 국가나 정당이나 이념을 위해 한시적으로 헌신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소유인 자신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행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충고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영규 ‘진정한 용서란 모든 정상이 참작되고도 변명의 여지없이 남아있는 죄를 그 속의 모든 섬뜩함과 더러움과 비열함과 악의까지 똑바로 응시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와 온전히 화해한다는 뜻’ 김현호 재밌는 주제가 있어요. ‘아직 사랑하지 않는데도 사랑하듯 행동하면 위선인가? 자연스런 호감이나 정이 있으면 상대를 사랑하기가 더 쉬워지지요. 그래서 평소에 정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지만 호감 자체가 사랑은 아니지요. 루이스는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신경쓰느라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하듯 행동하라. 마치 사랑하듯 행동하면 금새 사랑하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싫어하는 대상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 사람이 더 싫어 지지만 친절하게 대하면 어느새 그가 덜 싫어진다는 일반적 법칙을 따라 선과 악은 둘 다 복리로 불어나는 법이니 선과 악 둘 다 날마다 내가 내리는 결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조언해 주네요. 김길구 장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호에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현 위기는 예언자 영성이 없어서라며, 이를 회복하려면 예언자의 영성을 수혈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구약학자 차준희 교수의 뜨거운 외침, 《열두 예언자의 영성》 새물결플러스 刊 입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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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2021-03-05
  • [기독교인문학] 인체로 본 유기체로서의 교회
    폴 브랜드, 필립얀시 《몸이라는 선물》 -몸에 새겨진 복음의 경의와 한몸의 의미- 이 책은 지난 30여 년간 사랑받았던 저명한 의사 폴 브랜드와 필립얀시가 쓴 Fearfully and Wounderfully Made(심히 기묘하게 지음받은)와 속편 In His Image(그의 형상을 따라) 두 권의 내용을 압축 합본하고, 그동안 발전한 의학과 과학의 정보를 반영하여 ‘몸이라는 선물’ 제목으로 재 단장한 책이다. 2003년에 타계한 폴 브랜드 박사의 생전의 육성 녹음분을 토대로 함께 만들었다. 시편 139편 13~14절의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는 말씀과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라는 관점에서 우리 몸의 영적 의미를 찾고 있다. 저자와 함께 인체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다 보면 창조주의 놀라운 섭리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산다는 일상의 경의로움에 압도하게 된다. ◇저자소개 폴 브랜드∥1914~2003년 인도에서 선교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영국에서 의학을 전공한 뒤 인도와 미국을 오가며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했다. 특히 혁신적인 한센병 치료술로 수 많은 환자들에게 새 삶을 열어주고, 재활로 사회로의 복귀를 도왔다. 《Clinical Mechanics of the Hand》(손의 임상역학)이라는 책은 지금도 손수술 분야의 고전으로 불린다. 이책 외에 필립 얀 시와 함깨 한 작품으로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선물》, 《하나님의 영원한 잔치》 등이 있다. 필립 얀시∥ 1949~ 휘튼칼리지와 시카고대학교에서 영어와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 주제에 천착해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내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셨습니까?》,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 등 우리에게는 친숙한 저명한 작가이다. 두란노 간 / 2020. 12.16. / 23,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아무도 원하지 않는 선물》 폴 브랜드 / 비아토르 《그들이 나를 살렸네》 필립얀시 / 포이에마 기독교인문학 〈18〉 인체로 본 유기체로서의 교회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하나님의 형상을 품은 그릇 “내 환자들은 단지 힘줄과 근육과 모낭과 신경세포와 피부세포의 총합이 아니다. 아무리 외형이 일그러지고 몸에 상처를 입었어도 저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품은 그릇이다. 신앙에 말을, 말에 신앙을 입히다 김길구 읽는다고 수고하셨습니다. 두권을 합권한 책이라서 그런지 430여쪽의 두꺼운 책인데 다행히 글이 커서 시원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팀 켈러의 《죽음에 관하여》로 번역상을 받은 바 있는 전문 번역가 윤종석씨의 작품입니다. 그럼 이 책의 특징에 대해서 말해볼까요? 저자가 둘인데‥ 김현호 우선 나이 35살이나 차이가 나요. 그리고 이 책은 한센병의 권위자인 폴 브랜드 박사 사후에 출간되었어요. 의학인과 작가의 만남, 그렇게 보면 특이한 조합이네요. 김형기 그리고 한번 출간되었던 두 권의 책을 합본 형식으로 묶고, 그동안의 의학적 발전을 반영하여 내용의 일부를 수정 · 보완하고 책의 제목도 바꾸어 출간했으니 흔한 일은 아니네요. 저명한 언론인 필립 얀시가 이 책에 얼마나 애착을 갖고 있는지 알 것 같아요. 김길구 책도 그렇지만 필립 얀시가 느끼는 폴 브랜브 박사에 대한 존경심도 대단한 것 같아요. 서문에 적힌 그의 표현이 이래요. 하나님께서 ‘너는 최악의 교회들을 여럿 보았으니 이제 내가 최선의 모습을 하나 보여주마’라고 ‘떠미신 것 같았다’는 표현과 둘의 작업을 빗대 필립 얀시가 폴 브랜드 박사의 ‘신앙에 말을 입혀 준 대신, 폴 브랜드는 필립 얀시의 말에 신앙을 입혀’주었다는 표현을 보면 요즘 말로 하면 둘의 ‘캐미’가 솔솔해요. 사람들로 인해 실망으로 믿음에 회의가 들때 제대로 된 멘토를 만난거예요. 김현호 인도선교사의 아들로 정형욋과 박사인 폴 브랜드는 한센병 전문가였고 감각을 잃은 신경세포로 인해 몸의 통각을 잃은 이들을 위해 선구적인 연구로 한센병뿐 아니라 당뇨병 환자들의 다리 절단을 막은 탁월한 치료법 개발로 해마다 수만 명의 환자들을 구한 명의이지요. 이 공로로 영국의 훈장도 받았습니다. 김형기 이 책의 구성도 이러한 폴 박사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몸에 새겨진 복음의 경이로움과 한 몸의 의미를 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라는 관점에서 얘기하고 있어요. 인체에 대한 신비로운 ‘깨알지식’과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로서의 교회의 신앙적 단상이 어우러져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다를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한 예로 손바닥으로 귀를 댔을 때 들려오는 소리가 무엇인지 모를 때와 이 책을 통해 우리 머릿속 모세혈관에서 혈구가 흐르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난 뒤의 우리 몸에 대한 이해와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요? 「콰시모도」 콤플렉스 김길구 본문에 콰시모도 콤플렉스라는 것이 있는데 달라진 얼굴로 달라진 삶이랄까? 1967년 영국 두 의사가 살인, 매매춘, 강간 등 중죄를 지은 재소자 11,000명을 상대로 한 연구결과를 인용했는데 몸의 기형이 정서적 고통을 낳아 범죄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김형기 콰시모도는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 주인공의 이름을 딴 것으로 재소자 중 얼굴이 기형인 사람과 그렇치 않은 사람을 비교해 봤더니 기형인 사람이 60%를 차지하여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았다는 통계입니다. 이를 근거로 두 연구자는 재소자들의 성형을 제안하기도 했지요. 김현호 우리나라가 외모에 대한 관심이 유독 높은데,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있는 우리가 외모의 아름다움을 선으로, 외모의 추함을 곧 악과 동일시하지는 않는지 성찰해 봐야겠네요. 이 책은 하나님이 보시는 우리의 모습이 우리의 신체적 자아상에 가려 있지 않은지를 묻고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데도 이 땅에 사셨는데, 그 경험 덕분에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에 공감하지 않을까요? 한 몸이라는 선물 김길구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무수한 혈관과 신경세포를 통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인체가 어떻게 하나의 유기체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김현호 몸이 전체를 위해 어떻게 수많은 세포를 연합시키는지를 의학계에서는 ‘생체의 향상성’으로 설명하는데. 월터 캐논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몸이란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상태를 추구하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의 세포는 끊임없이 요구사항을 알리고 몸은 일일이 반응해서 건강한 내부환경을 유지한다는 것이죠. 김형기 인체의 소속감도 이중으로 이루어지죠. 각 세포는 뇌의 지시를 따를 뿐 아니라 체내에 있는 다른 모든 세포와도 결속되어 있듯이 영적인 몸도 같지 않을까요? 우리는 몸에 소속되어 있을뿐 아니라 그 몸이 우리를 다른 다양한 세포와 결속시키듯이 “범사에 그에게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로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5~16). 김길구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저자들의 ‘작은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한센병이 무서운 것은 병균이 신체 부위를 파먹는 세균처럼 퍼져서가 아니라 딱 한 종류의 신경세포만을 공격하여 통증을 못느끼게 해 참담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설명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김현호 저자는 시종일관 인간의 몸에는 매혹적인 신비가 있다는 것, 피부의 복원력, 뼈의 힘과 구조, 근육의 역학적 귲형을 볼 때 몸의 각 기능이 저마다 쓰임새에 맞게 신비하게 빚어졌다는 생명에 대한 환희와 감탄입니다. 김형기 우리 몸에서 일정한 용도로 쓰이는 다양한 세포 가운데 전체 몸을 닮은 것은 하나도 없어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몸인 교회도 실망스럽게 그럴 듯 하지 않은 인체의 세포만큼이나 잡다한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공동체든 연합의 기초는 유사성이 아닌 다양성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다양성을 하나로 묶는 것은 역시 사랑이지요. 다름에서 오는 깊음과 풍성함을 이루는 것은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섬김 곧 사랑입니다. ‘통증’이라는 선물 김길구 지면 관계상 다 다룰 수는 없고 후반부로 들어가죠. 제5부 고통이 들려주는 고마운 신호들의 부제가 –통증이라는 선물인데요? 아픔을 느끼는 것이 선물이라? 무슨 사연일까요. 김형기 폴 브랜드 일화 중에 하나인데요. 영국에 출장을 가서 여러 지방을 돌며 업무를 본 뒤 런던에 도착하여 숙소인 호텔에서 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벗는데 갑자기 발뒤꿈치에 감각이 없더랍니다. 직업이 한센병 환우들과 함께하는 일인지라 혹시나 하고 감염여부를 확인하러 핀으로 복숭아뼈 아래를 찔러 보았더니 아무런 감각이 없어 더 깊이 찔러보니 피는 나는데 감각이 없더랍니다. 감염된 것이 확신한 그는 잠 한숨 못자고 뜬눈으로 날을 지새우며 절망하다 아침에 핀으로 확인하니 통증으로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답니다. 통증은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장 헌신적으로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는 감각인 셈이죠. 김현호 이 책에서 두 사람은 갈라지고 찟기고 상한 이 시대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인들이 그 몸의 지체들이라면 고난과 빈곤으로 한센병 환우들처럼 연약하고 이들을 품고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그 모델은 나사렛 출신 예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빛과 소금으로서 폴 브랜드 박사처럼 시대의 치유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김길구 장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신비로운 인체여행을 통해 우리 몸의 영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호는 C.S루이스의 전작 중에서 엄선한 《신자의 자리로》를 읽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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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0
  • [기독교인문학] 하나님 나라는 기독교보다 더 넓은 세계에서 성취되어야…
    김형석의 《기독교,(아직)희망이 있는가?》 - 한국교회의 희망찾기 - 올해로 100수를 누리고 있는 노철학자는 한국의 기독교가 처한 오늘의 위기사항을 잘 극복하여 100년 후에도 희망을 주는 기독교가 되기 위한 해법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의 진단에 의하면 지금의 기독교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상실한데서 찾는다. 그 원인으로 성직자의 권위주의와 교회주의, 그리고 교권주의를 극복해야 함을 역설한다. 기독교는 진리와 사랑의 종교이니 이성의 합리성으로 교리주의나 맹목적인 신앙을 극복하고 사랑의 실천을 통한 정서적 윤리성을 강조한다. 60~70년대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국민을 위로한 바 있는 노철학자는 한국교회가 사랑의 회복을 통하여 회의에 빠져 동력 을 잃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며 희망을 얘기한다. ◇저자소개 김형석∥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났으니 꿈의 100수를 누리고 인간의 한계수명에 도전하고 있는 저자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시카고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의 연구교수를 역임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은 노철학자이다. 60~70년대 철학에세이로 한 시대를 풍미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기억되고 있는 저자는 《백년을 살다보니》로 장수시대의 롤모델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듯 기독교 관련 저술과 강연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서는 《고독이라는 병》, 《영혼과 사랑의 대화》, 《예수》,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 등 여러 권이 있다. 두란노 간 / 2020. 10.14. / 12,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우리는 교회인가?》 배덕만 지음/대장간 발행 《행동하는 기독교》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IVP 《왜 교회일까?》 김기승 지음/샘솟는기쁨 기독교인문학 〈21〉 하나나나라는 기독교보다 더 넓은 세계에서 성취되어야… 기독교, 진리와 사랑의 종교 “기독교는 처음부터 진리와 사랑의 종교로 출발했다. 진리는 이성의 합리성을, 사랑은 정서적 윤리성을 포함한다.” 김길구 이번 호는 송년특집입니다. 올 한해는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여파로 국내외가 직면한 전방위적인 위기와 대선을 앞둔 국내의 극심한 분열 상황 등 어느 때보다도 다사다난했던 한해였습니다. 한 해를 보내는 소회가 어떠신지?. 김현호 교회절기를 보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대림절 기간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교회를 못가는 지금의 현실이 말해주듯 인간의 한계를 절감한 한 해였습니다. 김형기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로 돌아갈 수도, 가서도 안 되는 새로운 기준, 뉴노멀(New normal)을 강요당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뉴노멀의 시대, 스스로 달라져야 김길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제목이 자극적인데요.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저자는 왜 ‘(아직)’이란 표현을 하였을까요? 긍정보다는 부정에 방점을 두지 않았나 생각하는데요? 김현호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저자는 ‘종교인, 크리스천이 더 많아지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양심적인 지성인이 더 늘기를 원하는가?’를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단언하며, 우리나라의 초창기 기독교는 그렇지 않았다고 회고합니다.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백수를 앞둔 노교수는 지금이 위기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형기 저는 위기임에는 분명한데 여러 면에서 볼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합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이 위기를 잘 극복하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봐요. 일부 매스컴에 나타난 부정적 이미지는 극히 일부이고 그래도 우리교계의 다수는 아직 건강하다고 믿고 싶어요. 이 책의 지향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김길구 우리나라 기독교의 약진은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짧은 기간동안 최대 종교로 부상했습니다. 이 시점이 불과 얼마 되지 않은데 벌써 위기라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민족은 외래종교를 잘 받아들이는 심성이 있는 것 같아요. 김현호 불교, 유교, 조선말기, 천도교 등 민족종교가 잠시 등장하더니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지요. 이것도 다른 나라에는 흔한 큰 종교전쟁이나 갈등 없이…그 밑바탕에는 무속신앙이 자리잡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김형기 주로 정치적 고려에 의하여 전략적으로 어느 종교든지 상황에 따라 잘 받아들였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버리기도 잘할 수 있다는 뜻이니 현재에 자만해 내부 갱신을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요? 기독교의 세상화가 아닌 세상의 그리스도화로 김길구 노철학자는 기독교가 교회에 머물면서 그들만의 교회의 의식이나 제도에 갇혀서 교회주의와 교리주의에 빠진다면 안식일 논쟁처럼 복음의 역동성을 잃어버린다고 우려하면서 복음의 인간성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김형기 제도화된 교회는 어느 정도 질서를 위한 제도나 교리를 필요로 하지요. 그렇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더 크겠죠. 그렇다고 교회와 교리란 말 뒤에 주의가 붙어서는 안 되지요. 본말이 뒤바뀌니까요. 본래의 의미를 되찾자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겠어요. 김현호 저자는 철학자답게 세속화가 아닌 ‘인간화’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교회주의를 걱정하는 것은 교회를 떠나자는 뜻이 아닌 교회의 존재 목적을 높여서 세계와 인류에 희망을 주자는 의미로 쓰고 있어요. 김길구 기독교의 사회참여 및 역사참여를 주장하면서도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속화’되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어요.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김형기 예수는 세례요한이 속했던 탈사회, 탈현실종교운동을 주장한 에세네파운동을 반대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그들과 함께 머물지도 않았지요. 최근의 극단적인 종교의 정치 관여는 그런 의미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김현호 그가 말하는 기독교의 근본정신은 인간애와 인간 목적관 - 즉 인간이 정치나 경제적 목적에 이용되는 수단이 아닌 – 에 근거하여 인권을 존중하며, 생명과 개성 및 인격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기독교적 경제관의 중견층이 부의 양극화 막아 김길구 본문 내용 중에 영국과 프랑스 혁명의 예를 들고 있어요. 부의 양극화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이때 한 번쯤 생각해 봐야할 주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또 하나는 우리사회의 첨예화된 보수와 진보에 대한 시각도 눈길을 끄는데? 김현호 교수님의 시각은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한 나무에서 자란 두 줄기와 같고, 한국의 진보는 좌익적인 뿌리에 기반을 든 반면 보수는 우파에서 성장하여 근본적으로 밑동과 뿌리가 다른 연유에서 찾았는데요, 제 생각에는 해방 이후 국제역학관계에 따른 이해관계와 한국전쟁, 그리고 친일청산 등 더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있어 단순화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흑백논리와 자기절대화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방식이 아닌, 대화와 타협을 통한 열린사회로 나아야 한다는 원로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형기 유럽의 영국과 프랑스의 혁명의 예를 드셨는데 저자는 둘 다 역사가들이 위대한 혁명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영국은 프랑스에 비해 더 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도 그런 비극을 극복할 수 있었던데 반해 프랑스의 경우는 결과적으로 개인의 차원에서 너무 비참한 혁명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이들을 가른 요인 중에 하나가 프랑스는 기득권과 피지배층의 양극화가 심했던 반면, 영국은 중산층과 두터운 중견층이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사이의 완충 역할을 했는데 감리교 등의 종교운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죠. 우리도 건전한 크리스천 중견층들이 많아져 섬김과 나눔으로 극한의 대립을 극복하는 완충 역할을 하여 극단적인 흑백논리를 이겨내야 합니다. 김길구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드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가 자랑하는 교회의 위대한 유산, 이를테면 당시에 소외됐던 가난하고 병들고 힘없는 작은이들과 어린이와 여성, 심지어 오네시모처럼 노예들과 천민 백정과 함께 떡을 떼던 아름다운 유산을 현재 우리교회가 지금 이 순간에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있는가? 교회개혁의 불씨인 교권주의에 대응하여 평신도운동이 개교회에서 만개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지요. 기존의 기득권을 내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한 또 하나의 기득권들이 교회의 울타리에서 교권주의와 교회주의로 그들만의 천국을 유지하려든다면 그야말로 ‘복음’의 역동성은 사라지고 노철학가의 우려처럼 100년 후의 기독교 존속은 가능할까? 하는 회의적 의문이 듭니다. 김형기 교회가 인간 중심이 되면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본래 사명을 다하기 어려워집니다. 우리 기독교가 100년 후에도 여전히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 기독교는 교회보다 더 큰 틀에서 하나님 나라를 넓혀가야 합니다. 김현호 김형석교수는 참된 크리스천은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합리성, 진실성, 개방성 등이죠. 기독교가 인류에게 영원히 희망이 될 수 있는 길은 ‘사랑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나라를 꿈꾸는 열린사회로 김길구 “하늘나라의 현관에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들어선다. 그리고 정의의 현관을 통해 들어서는 곳은 사랑의 집이다”는 대목이 가슴에 와닿네요. 여러분이 선택한 글은? 김현호 저는 이 대목을 뽑았어요. “어떤 명목으로도 인간이 행복해질 권리와 자유를 향한 노력이 제약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고 노력하는 역사적 사명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게 본다면 크리스천은 진보와 보수의 벽을 넘어 하늘나라를 꿈꾸는 열린사회로 나아가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대목입니다.” 김형기 “양심과 신앙이 충돌을 일으킨다면 그것을 해결하는 기준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되어야 한다. 신앙이 인간애를 통해 양심과 도덕을 더 높일 수 있다면 신앙은 현대사회에서도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김길구 장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백신의 보급과 치료제의 개발로 끝이 보이는 듯하던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세계가 격찬했던 K-방역이 한계를 보이며 3단계 발령을 눈앞에 둔 어려운 시점입니다. 다시 한번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올 한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0-12-28
  • 현대인들의 ‘악’에 대한 치유백서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지옥 차관인 스크루테이프가 초보 사탄인 조카 웜우드에게 보내는 31개의 편지 모음집, 아니 서간체로 쓰여진 지령문이다.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떻게 하면 표적으로 삼은 기독교인인 환자를 원수(하나님)로부터 떼어내는 방법을 조언하는 형식의 ‘사탄 전략서’이다. 영문학 대가의 글이라 은유가 많아 얇은 책임에도 생각할 것이 의외로 많다. 읽다 보면 우리의 이중적인 신앙 모습이 떠올라 쓴웃음을 자아낸다. 일상에서 무심코 하는 우리의 행동들이 고도로 계산된 사탄의 전략이라니‥ 저자 자신이 이 책을 쓰는 동안 ‘사탄’적으로 생각하느라 매우 힘들었다는 고백처럼 역설적으로 하루하루 치열한 영적전투에서 사탄의 삶을 닮아가는 우리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는 성찰의 책이기도 하다. 어느 평자의 말처럼 ‘악’에 대한 현대인들의 잘못된 상상력을 치유하기 위한 해독제로서 이 책을 권한다. ∥저자소개 C.S.루이스: (1898~1963)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출생,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시인, 작가, 비평가의 생을 살다간 저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복음주의자. 1925년부터 옥스퍼드 모들린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다 1954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수로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무신론자였던 그는 1929년 회심 후 치밀하면서도 논리적인 정신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순전한 기독교》 《나니아 연대기》 등 뛰어난 저술들을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1쇄를 시작으로 2018년 통합 100쇄 돌파하였고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홍성사 간. 11,000원. ∥같이 읽으면 좋은 책 《C.S. 루이스, 기쁨의 하루》 / 월터 후퍼 엮음 / 홍성사 《스크루테이프 비밀보고서》 / 앤드류 팔리 / 터치북스 / 바른미디어 현대인들의 ‘악’에 대한 치유백서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20C 최고의 기독교변증가 “우리에게 흡수란 강한 자아가 약한 자아의 의지와 자유를 빨아들이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경쟁한다’는 뜻이야. <악마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김길구 이 책은 우리에게 《순전한 기독교》란 책으로 널리 알려진 20세기 최고의 기독교변증가이자 영문학자인 루이스의 작품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57년이 되었습니다.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자에 대해 알아보죠. 김현호 다재다능했던 루이스에 대한 일화는 너무 많아 다 다룰 수는 없지만 무신론자에서 기독교인으로 살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기에 현재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개종한 이어녕 선생님의 경우는 말년의 황혼기를 붉게 물들였다면, 루이스는 인생의 황금기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의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계 인물 중에 하나로 평가받고 있지요. 김형기 루이스의 특이한 점은 종교적 회심의 단계가 1회적이 아닌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더욱 성숙해 갔다는 점입니다.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그리고 당대의 거물이 기독교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도 흥미로워요. 지성에서 감성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이어지는 그의 여정이 신앙적 회의에 빠진 우리에게 많은 통찰을 줍니다. 김길구 그의 재능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요. 고전문학자인 그가 쓴 공상과학소설은 당시 SF소설 최고의 3부작으로 평가받고 있고요. 《나니아연대기》는 3대 판타지 소설로 그를 개종시킨 친구, 21세기 가장 위대한 판타지 걸작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 J.R.R. 톨킨과의 문학과 신앙에 얽힌 우정도 빼놓을 수 없는 얘깃거리입니다. 이 책을 J.R.R.톨킨에게 헌정한 것만 봐도 그들의 우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신도였던 그가 《고통의 문제》를 통해 탁월한 기독교 변증론의 해설자로 인정받았죠. 기독교의 고전-스테디셀러 김길구 그의 대표작인 이 책을 논하기에 앞서 생애를 먼저 이야기한 것은 이러한 당대의 천재 지성인의 신앙적 회의가 역설적으로 악마의 입을 통하여 크리스천을 넘어뜨리는 전략으로 표현되고 있으니까요? 그럼 본문으로 들어가 보시죠. 김현호 성서의 욥의 등장인물과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를 연상시키는 이 책은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지옥의 차관인 화자인 스크루테이프와 조카 웜우드, 악마의 타켓이 된 환자, 그리고 악마의 입장에서 본 원수는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환자를 신앙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전략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요. 전쟁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던 1941년에 〈가디언지〉에 연재한 이 책은 크게 성공하였고, 2000년부터 발매된 우리나라도 스테디셀러로 10만 권이 넘게 판매되었습니다. 김형기 등장인물의 이름들도 상징성이 있어요. 타이틀 롤을 맡은 스크루테이프는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스크루지 할아버의 (Scrooge) + 관료적 형식주위의 상징인 빨간 끈(red tape)의 합성어고요, 신참악마이며 조카인 웜우드(Wormwood)는 쑥이란 뜻의 쓴맛, 고난, 고뇌를 뜻한다고 그래요. 슬럽갑(Slubgob)은 얼간이(slob) + 입에 가득한 침(gob) 등의 합성어로 저자의 의도를 아는데 도움을 주지요. 서문에서 그는 악마에 대한 두 가지 오류를 지적하고 합니다.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부정하고 믿지 않는 것이고, 또하나는 악마를 믿되 지나치게 과도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논증과 이성을 피하라, 교회는 우리의 가장 큰 협력자이니 교회에 실망토록 하라, 사랑을 변질시켜라 등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직장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와 영적인 문제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이 31장의 편지에 수록되어있습니다. 일상을 통해 본 사탄의 전략 김길구 1961년도판 서문에서 그는 단테와 러스킨 그리고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타난 악마의 유형을 비교하면서 그가 상상한 지옥은 무서운 불구덩이와 지저분한 범죄의 소굴이 아닌 스마트한 사무실에서 말쑥한 차림으로 음모를 꾸미는 두려움과 탐욕으로만 똘똘 뭉친 관료사회 같은 곳으로 묘사했어요. 그들의 음모 속으로 들어가 보죠. 우선 가족 간의 갈등을 이용하는 방법인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등한시한 채, 내면의 영적인 구원만을 구하게 하는 전략으로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어 관계를 어렵게 하라는 거예요. 김현호 저는 두 번째 편지에서 실망감이란 자신이 꿈꿨던 것에 대한 좌절의 표시로 교회에 희망을 버리도록 실망시키라는 조언인데, 요즘 교회 안팎에서 실망하는 교인들이 많잖아요. 스물다섯 번째 신앙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무언가 기독교 색채를 띤 유행을 들어 ‘불변하다’는 기술적 형용사를 ‘정체되다’라는 좀 더 감정적인 형용사로 바꾸어 버리고, 미래란 선택받은 영웅만이 얻을 수 있는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하도록 부추키라는 것입니다. 김형기 열여섯 번째 편지에서 자기한테 맞는 교회를 찾아 주변을 헤매며 ‘교회감정사’ 혹은 ‘감별사’가 되는 방법인데, 교인들을 교회 밖으로 끌어내지 못하면 교회 안에 있는 분파를 만들어 혼란케 하라는 것입니다. 스물한 번째 내가 주인이라는 의식을 주입하여 자신이 청지기임을 잊게 하는 전략입니다. ‘내 시간은 나의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교만과 혼동으로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게하라는 것입니다. 스물두 번째 방법은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여 예수를 단순한 스승으로 만들어 버린 후 그의 가르침과 다른 위대한 도덕적 스승들의 가르침이 궁극적으로 같다고 함으로써 그의 헌신의 삶을 무너뜨리라는 것이지요. 영적상태를 점검하는 지침서 김길구 그럼 이 책을 읽으신 소감 한 말씀씩 해주시죠. 김형기 악마들이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공략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글이라고 봐요. 매 편지 서두에 그들이 대상으로 삼는 신자의 영적상태를 분석한 글들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점검해 보는 데에 매우 유익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김현호 지옥의 원칙은 자아는 독립적이라는 대목입니다. 내가 좋으면 당신이 안 좋고, 당신이 좋으면 내가 안 좋은 일종의 제로섬게임 같은 거지죠. 나는 나, 너는 너니까요. 천국은 이와는 반대로 당신에게 좋은 것은 내게도 좋은 것이 아닐까요? 세상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곳은 교회이고, 믿으의 공동체를 통해 형제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요, 형제의 슬픔은 곧 나의 슬픔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김길구 저는 이 책을 통해서 평범한 일상의 하루하루가 치열한 영적 전쟁터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루이스가 1941년에 이 책의 서문을 썼으니 1939년부터 시작된 4천만 명에서 5천만 명의 사망자를 낸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이라는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연재한 대가의 작품치고는 시대의 전쟁이라는 거대 악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쉬움이 듭니다. 이것조차 악마의 전략이라면 모르겠지만… 김현호 무신론자였던 루이스를 일깨운 것은 의외로 인문학이었습니다. 인문학에 심취하다 그는 어느새 유신론자가 되어 있었고, 망설이는 그를 믿음의 세계로 인도한 것은 돌킨과의 각별한 우정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믿음의 동반자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김형기 반어법으로 이 말이 떠오르네요. ‘인간을 영원과 현재로부터 떠나 살게 하라. 미래 속에 살게 하여 희망과 두려움으로 붙들게 하고, 모든 의무와 은혜와 지식과 쾌락의 유일한 거처인 현재에 몸담고 살지 못하게 하라. 거의 모든 악은 미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는 과거를 바라보고, 사랑은 현재를 바라보지만 두려움과 탐욕과 정욕과 야망은 앞을 바라본다. 현재를 살고 있다면 ‘자기만족’을 위해서 살게 하라’ 김길구 장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코로나19의 창궐로 세계가 공포의 도가니에 빠진 상황인데 미국의 화이자와 독일의 바이오엔텍에서 중간 임상실험 결과 90% 완치율을 가진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과연 코로나팬더믹이 끝날 것인지 일상을 잃어버린 세계는 지금 되묻고 있습니다. 다음 읽을 책은 두란노에서 펴낸 김형석 교수의 저서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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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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