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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2 : 게임
    ‘바츠해방전쟁’ 10주년을 기념하는 고객 행사를 지난 2014년 5월 20일 NCSOFT 판교R&D 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바츠해방전쟁’에 직접 참여한 유저들과 미디어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으며, 특히 ‘바츠해방전쟁’ DK혈맹 총군주인 ‘아키러스’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1. 신화와 반복 신화(Myth)를 뜻하는 그리스어 ‘미토스(mythos)’는 이야기를 뜻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mythology(신화학)’를 만들었을 때 그 의미는 ‘가공의 인물을 다룬 이야기’를 뜻했다. 이 말은 신화가 진실을 표현할지라도 정교한 픽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하여 신화가 사람을 타락시킨다고 비난했으며 『국가』(Republic)에서 이상적인 폴리스는 시인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추방한다고 했던 것이다. 반면 플라톤은 비유(allegory, 어떤 것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기)는 가르침의 도구로 생각했다. 그의 이상향인 ‘아틀란티스 이야기’나 ‘동굴의 비유’는 알레고리로 보편적인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가르침에 있어서 유용한 방식으로 본 것이다.플라톤의 추방령에도 불구하고, 시인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두꺼비를 보면서 항아 이야기를, 까치를 보면서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호랑이를 보면서 곶감 이야기 등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잘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신화는 그들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에 나타난 무수한 상상력이 암호처럼 현대 문화와 사상에 녹아들어 있다. 아니 우리 삶의 곳곳에 신화가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사실 서양 언어권에서 요일과 달의 이름은, 곧 달력에서부터 태양계 행성 이름(지구를 제외한 모든 행성은 로마의 신 이름에서 가져왔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리스나 로마, 북유럽 신화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프로이트(S. Freud)가 신화를 인간 무의식의 일부로, 곧 인간 내부에 깊이 뿌리박힌 심리적 갈등을 반영하는 것으로써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공유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이나, 융(C. G. Jung)처럼 신화를 인간의 ‘집단 무의식’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는 것 역시 이러한 신화의 반복이 그저 한 순간의 흐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신화학자 조셉 캠벨(J. Campbell)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종교와 철학, 예술,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에 존재한 인류의 사회 형태, 과학과 기술의 주요 발견, 잠에서 생겨나는 바로 그 꿈들은 신화라고 하는 원형적인 마술 반지에서 끓어오른다.”라는 말은 신화의 반복, 그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2. 신화와 게임; 서사학에서 게임학으로 오늘날에는 이러한 신화의 반복이 온라인 게임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화적인 서사학(narratology)이 게임 자체의 게임학(ludology)으로 패러다임 전환한 것이다. 또한 매체 중의 매체라고 하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삶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면서 ‘인터랙티브 인간’(interactivity human)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로 표시되던 종래의 ‘지혜로운 인간’에서 ‘상호작용성’을 통한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컴퓨터 게임이 그 대표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게임은 언제나 현실을 모방해왔고, 현실을 비틀고 재창조하면서 스스로의 영역을 확대해왔다. 현실과 가장 관련이 먼 것처럼 보이는 SF 소재의 게임이나 중세 판타지 풍의 MMORPG(Massive Multi-user Online Role Playing Game, 대규모 다중접속 온라인 역할놀이 게임, RPG는 각 유저가 역할을 분담해 게임을 하는 방식이다. RPG 중에서도 MMORPG는 온라인 상에서 여러 명이 RPG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게임이다.)도 현실을 은유적인 형태로 재해석해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게임은 단순히 현실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게임 속 리얼리티가 극대화되는 순간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리니지2>에서 발생한 바츠해방 전쟁은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가상공간에서 얼마나 강렬한 형태로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3. 바츠해방 전쟁 바츠해방 전쟁은 2004년 6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약 4년간 <리니지2>의 바츠 서버에서 발생한 인터넷 전쟁을 말한다. (독재자로 유비되는) 드래곤 나이츠(Dragon Knights: 일명 DK) 혈맹의 철권통치로 사냥터라는 생존의 터전을 봉쇄당하고 척살의 공포에 떨던 피지배계급 민중들이 일으킨 전쟁이다. 전투력이 낮은 저레벨의 민중들은 ‘바츠 연합군’을 형성하여 DK 혈맹을 중심으로 한 지배계급 동맹군의 화살받이가 되어 무수히 죽어가면서 유일한 대응 방법인 인해전술로 싸웠다. 이 전쟁에 참여한 사용자는 연인원 20만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마치 『일리아드』나 『삼국지』, 혹은 성경 「여호수아」와 「사사기」를 보는 듯, 바츠해방 전쟁 안에는 현실세계가 그대로 옮겨져 있다. 신분 차별과 권력의 횡포, 혁명과 좌절, 전쟁과 독재, 사랑과 죽음, 기만과 배신, 전술과 희생, 정의와 자유, 영웅의 탄생과 죽음, 숭고한 희생과 가치, 그리고 동지애와 감격의 눈물 등 수많은 참여자들에 의해서 쓰여진 한 편의 웅대한 서사시이다. 비록 현실에서의 움직임은 아니지만 그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적 경험들은 사용자가 만나는 일생일대의 체험이 된다. <리니지2>의 내복단(저레벨 캐릭터로 내복만 겨우 걸치고 값싼 뼈 단검 하나만을 장비한 이들을 프랑스 혁명의 상퀼로드, 즉 ‘긴바지를 입는 빈민층’ 집단에 비유해 ‘내복단’ 혹은 ‘뼈단’이라 부른다. 내복단의 주류는 하루 이틀 정도 육성한 레벨 10 전후의 캐릭터이다. 이들의 공격력은 5-10 포인트-한번 공격할 때 상대가 입는 데미지-이다.)으로 가상현실을 현실의 시공간적인 제약을 넘어 ‘정의와 자유, 그리고 동지애’라는 고귀한 가치에 연대하는, 현실보다 더 숭고하고 더 인간화된 공간으로 변모시킬 수 있음을 깨달은 다음의 내복단의 글은 감동스럽다. “바츠 서버의 이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 바츠 연합군이 패배할 것입니다. 단 1렙 짜리 캐릭이라도 수십 명이 모여서 DK혈맹에게 공격을 가하면 물리적으로만이 아닌 심리적으로도 큰 위축을 가져올 것입니다. (중략)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떤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 지금 이 순간 바로 바츠 서버에 캐릭을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제 가슴 속에 끓어오른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 서버 해방 전쟁에 내복단의 일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겸댕이대왕, ‘호소문-전 서버 유저들이여 궐기하라’, <리니지2> 게임 자유게시판 2004년 6월 16일.) 물론 게임의 데이터베이스 위를 이동하는 사용자들의 움직임은 가상적이며 그가 꿈꾸는 혁명은 다운받은 프로그램 속의 상상이다. 그러나 현실 공간의 체험이 사용자의 인생이듯 가상공간의 체험도 사용자의 인생이 된다. 비록 현실에서의 움직임은 아니지만 그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의 경험들은 사용자가 만나는 일생일대의 체험이 된다. <리니지>에서 작은 혈의 군주로 있다 사소한 문제로 거대혈의 공격을 받게 되어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고 정식 혈전을 요청한 후 처절하게 전사한 경험이 있는 한 내복단은 이렇게 말한다. “혹자는 그럽니다. 이건 게임일 뿐이라고 현실과 착각하지 말라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유저들이 이렇게까지 그러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면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온라인 게임은 가상현실의 세계입니다. (중략) 전 아직도 그때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정의를 위해 질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싸우다 죽어간 혈원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행동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바츠 해방 전쟁에서도 그렇게 자랑스럽게 싸울 것입니다. 비록 제 자신 한 명은 큰 힘이 되지 못할지라도 작은 힘이 모이면 어떠한 것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습니다.” 결국 바츠 연합군이 <리니지2>의 중추인 DK혈맹의 아덴성을 집단 지성과 공성전을 통하여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바츠해방 전선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혁명 성공 후 바츠 연합군이 이익을 가지고 서로 분열하면서 결국은 DK혈맹이 한 행동과 똑같은 행동을 벌이게 되고, 그 틈을 타 DK혈맹이 다시 세력을 잡게 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간 아쉬운 전쟁이었다. 4. 게임, 기만인가? 혹은 해방의 도구인가? 이 시대는 발터 벤야민(W. Benjamin, 1892~1940)과 테오도르 아도르노(T. Adorno, 1903~1969)가 여전히 유효한 시대이다. 암울했던 20세기 초 대중문화와 상업주의가 결합한 문화산업의 근원을 추적하고, 통렬한 비판과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던 벤야민과 아도르노는 ‘대중문화가 자유를 향한 출구인가, 억압과 기만의 도구인가?’,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대중매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상품처럼 동일한 것이 무한 반복되는 현대 사회의 대중문화는 현대 인물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기술적 복제로 현대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온 대중예술은 예술의 민주화를 가져온 이 시대 예술의 희망인가, 대중을 기만하는 수단인가?’를 묻고 있다. 대중문화를 기만적이며 억압적이라 보는 아도르노와 대중문화의 발달된 기술에서 해방의 가능성을 보는 베냐민의 관점은 각을 세운다. 『계몽의 변증법』(1944)에서 라디오와 영화, 재즈 등에 대해 분석하며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문화산업은 위로부터 아래로, 일방적으로 허위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지배의 도구가 되었다. … 대중문화가 주는 즐거움이란 결국은 도피에 불과하며 즐김이 주는 도피는 사실상 현실의 억압과 모순에 대한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대중문화에 대한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에서 영화 ‘몽타주 효과’를 통해 대중에게 충격과 각성을 선사하는 해방의 가능성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기술에 잠재된 혁명적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 아도르노가 지나치게 비관적이었다면, 베냐민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던 것이다. 곧, 벤야민에게서는 ‘해방’인 대중문화가 아도르노에게서는 ‘기만’이 되어버렸다. 동일한 맥락에서 게임은 해방일까?, 기만일까? <리니지2>처럼 온라인 상에서 혁명은 불가능했다. 왜일까? 그것은 인간의 원죄(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는) 때문이 아닐까? 성서는 그것을 정확히 지적한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세기 3: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가 ‘바츠’(로 은유되는 이 대한민국)가 해방될 날이 올 것을 믿는다. 메시야인 평화의 왕,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믿음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문화
    2016-12-22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Friends of God(주의 친구)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다음세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뚜렷한 방향도 실행도 옮기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기껏 1년에 한 번 정도의 연합집회가 그 대안인 경우가 많고, 부산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부산에서도 기장지역에서는 기독문화 및 청소년, 청년 예배가 더욱 열악하고, 소외된 곳이기도 합니다. 부산 기장에서 태어나 신앙성장을 해왔던 최정일 목사는 이에 대한 고민으로 서울에서의 사역을 접고, 고향인 기장으로 돌아와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청년, 젊은 직장인들을 위한 정기모임을 연결해주고자 하는 여건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그런 모임을 찾기도 힘들었고 지역의 거리특성상 찾아가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나에게, 우리에게 하라고 명하시는 것이다!’는 마음을 주셨고, 시골교회를 섬기고 있는 젊은 김용현 집사와 함께 매주 목요일 찬양모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어느덧 시골의 작은 서너 교회와 사역자들이 청소년, 청년, 젊은 직장인들과 정기적임 모임을 가지면서 예배와 교제하는 부산목요찬양모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시골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예배를 사모하는 젊은이들이 매주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다보니, 하나님은 이 모임을 통해서 더 큰 비전도 주셨습니다. 작은 교회나 시골교회 혹은 개척교회의 예배지원 및 찬양인도 등의 찾아가는 협력사역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2016년 ‘Friends of God’(주의 친구)이라는 worship Band 팀을 결성하게 됐습니다. 매주 목요모임과 주일 저녁에 부산기장순복음교회에서 모여 위와 같은 사역들을 위해 준비하고, 녹음도 하고 있습니다. ‘Friends fo God’ worship band팀은 복음의 사각지대,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그곳이야 말로 우리를 가라고 명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여기며 어디든 그분의 기뻐하시는 도구로 쓰임 받고자 합니다. ‘Friends of God’ worship Band는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부산기장순복음교회에서 기장지역 연합 청소년, 청년, 직장인들을 위한 목요찬양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기장지역 연합청소년 찬양집회 RUN’(1월 21일/토. 오후5시, 기장교회) 예배지원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사역문의. 최정일 목사(010-4814-3690)팀 참여문의. 안효상 집사(010-9053-2572) ◇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2월24일~1월7일) 1.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12월24일(토) 오후7시 : 배산역로비. 성탄축하음악회 12월25일(주일) 오전11시 : (청도) 별빛교회 성탄찬양예배 2. 디아코너스(연극팀, 윤은대실장 010-2840-4834) 12월24일(토) 오전11시, 오후2시 : 부산진구육아종합지원센터, 어린이들을 위한 성탄공연 12월25일(주일) 오후3시 : 동서남북교회 2017년 1월4일(수) 오후3시30분 :오륜정보산업고등학교 1월5일(목) 오후2시 : 진주지방 SFC 겨울수련회 3. 우미나(찬양사역자 : 010-6608-6203) 12월25일(주일) 오후 2시30분 : 울산 신복교회 크리스마스 콘서트 4. 변용세(찬양사역자 : 010-9986-4098) 12월25일(주일) 오전11시 : 언양평리교회 12월27일(화) 오전11시30분 : 천안교도소 2017년 1월1일(주일) 오전11시 : (부산)왕성한교회 1월6일(금) 오후1시 : 울주세광병원 5. 제2회 사상크리스마스 아트 페스티벌 (장소 : 사상 인디스테인션) 12월24일(토) 오후2시 : 사상 창작캐롤송대회 12월25일(주일) 오후3시 : 외국인과 함께하는 국제 성탄축하 6. Friends of God (연합찬양예배팀, 최정일목사 : 010-4814-3690) 12월29일(목) 오후8시 : 부산기장순복음교회
    • 문화
    2016-12-22
  • [기독교 교양 읽기 21] 이제는 정교유착의 고리 끊어야…
    “모두 사람의 탐욕 때문에 일어난 일” 유가족들의 인터뷰 내용을 읽는 내내 부끄러워 어딘가에 숨고 싶었다. 이들이 하는 말에 우리의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흥분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모른 척했던 우리가 아닌가.“피 흘리고 싸워주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손만 잡아주면 될 것을, 손을 뻗지도 않으면서 자식 잃은 사람 앞에서 입바른 말로 기도만 하고 있어요.” 우리의 폐부를 그대로 파고드는 지적이다. 어설픈 위로에 몇 푼의 돈으로 이들을 위로하려는 교회, 이제는 그만 잊고 용서하라는 등 구두선만 남발하는 교회에 실망을 넘어 비참함을 느껴야 했던 유가족들의 말에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실상이 세월호 참사를 통해 여지없이 드러났다.이유는 간단하다. 목숨보다 경제적 발전을 더 중하게 여기는 정치 지도자, 이에 적극 호응하여 돈벌기에만 몰두하는 경제계,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득바득 애쓰는 국민에 더하여, 교회마저도 ‘번영 신앙’을 추구함으로써, 이 땅 어디에서도 목숨의 소중함을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희망을 묻다》 ||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아 〈뉴스앤조이〉가 유가족 6명을 인터뷰한 내용과,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백소영 이화여대 교수, 김형국 나들목교회 목사, 오세택 두레교회 목사, 강호숙 총신대 교수, 박득훈 새맘교회 목사가 인터뷰한 유가족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글을 쓴 것을 모은 책이다. 뉴스앤조이, 2015. 8,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가 다시 대두되었다. 그런 가운데 기독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하는 자성의 소리도 높아간다. 우리의 치부를 한번 드러내보자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어설픈 말과 기도로만 위로하는 교회김길구 : 현 시국과 관련하여 이번에 읽을 책을 《세월호, 희망을 묻다》로 바꾸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사고였습니다. 아니 ‘사고’라기보다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참사는 우리 사회에 신앙적으로도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독교계도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관련되어 있고, 교회가 함부로 내뱉은 말이 유가족의 가슴에 못을 박기도 했기 때문입니다.김현호 : 겉으로 드러난 문제점만 나열해도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여객선이 전복되었음에도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물론, 적극적인 구조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수많은 학생과 시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실종자 수습과정에서 상당수 교회지도자들이 보여준 물질주의도 비판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교회에 발길을 끊은 유가족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김수성 : 유가족들의 입을 통해서 드러났듯이, 많은 교회는 이 참사를 ‘목숨을 잃은 사건’으로 보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사고’로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말고 빨리 수습했으면 하는 말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몇몇 교회 지도자들이 앞서서 이에 호응하였습니다.김현호 : 사실 대부분의 교회가 했던 것을 보면, 참사에 대해 처음에는 절절이 애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모금 등을 통해 유가족을 위로하고 기도하고는 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니 하는 상투적인 말에 더해 ‘이제는 생활로 돌아가라’는 어설픈 위로의 말로 유가족의 상처를 더 헤집어놓기도 했습니다.김길구 : 정부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조차 하지 않고 문제를 덮으려고만 한 것에 대해, 교회가 분연히 일어나 잘못을 지적하지도 않았습니다. 졸지에 자식을 잃어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가족들을 진정으로 안아주지도 못하면서, 정부의 무마 작업에 슬며시 동참한 것이죠.김수성 : 이런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없었던 것처럼’ 묻어버리려 합니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느니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느니 하는 구실을 내세우고서. 문제는 이런 일에 많은 교회가 오히려 앞장서는 것입니다. ▲ 2014년 8월 23일 진도 팽목항의 모습.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넉 달이 지나자 찾는 발걸음이 대폭 줄었다. 그러나 팽목항에는 무거운 침묵 가운데 절규하는 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김수성 사진] #기독교인 관료와 정치인의 문제점은?김길구 : 세월호와 같은 노후 선박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였습니다. 돈 앞에 생명을 내 준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교계는 정교분리란 이름 아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회피하면서, 오히려 기득권과 유착하는 이중성을 보여주진 않았는지 반문해 봐야합니다. 이 참사 앞에 사회적 위로도, 제도적 개선 의지도 보여 주지 못했어요.김현호 : 이 역시 물질주의에 물든 현실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요? 상당수 교회가 아직도 외형적인 성장에 치중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이나 순수성보다는 결과에만 집중합니다. 이런 교회에서 성장하거나 교육받은 이들이 정권이나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니, 경제적 성장만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죠.김수성 : 최근 몇몇 철학자들이 이야기했듯이, 한국은 모든 시스템이 생산성 위주로 바뀌고 있습니다. ‘생산성’을 앞세우면 그 앞에서 견뎌낼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마저도 한낱 도구에 불과해지고 맙니다. 정부와 기업은 물론, 우리 교회마저도 생산성을 앞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번영 신학’에 매몰된 것이죠.김길구 : 이 책에서 강호숙 교수가 했던 지적은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잘 드러냅니다. 첫째, 한국 교회가 교인들에게 믿음의 삶이 아니라 교회생활만 가르쳐왔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국 교회의 복음이 힘 있는 자들인, 소위 ‘갑(甲)’의 복음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만 잘하면 되고, 어떻게 하든 물질적 부만 축적하면 복을 받은 것이라 여기게 되는 것이죠.김현호 : 대림절 기간입니다. 교회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할 때죠. 이 땅의 낮고 약하고 아프고 핍박받는 자를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갑이 아니라 을(乙)이나 병(丙)을 위해서 오신 메시아입니다. 대림절을 맞아 한국 교회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합니다.김수성 : 세월호 유가족이 했던 말입니다. “기도가 최선이라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땐 직접 행동으로 나서야 할 부분이 있어요. 불의와 맞닥뜨렸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기도만 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은 아직도 ‘봉건적 자본주의’ 국가김길구 : 그런 의미에서 대다수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보수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그러한 정권을 위해 기도하고 빌붙는 행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최태민의 구국십자군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종교가 정치의 시녀로 역할하고서,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형태입니다.김현호 :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모습에서도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많은 사람들이 불법을 저지른 대통령을 오히려 옹호하고, 심지어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을 가룟 유다에 비유하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적 가치보다는 정치적 득실만을 따지는 결과에 다름 아닙니다.김수성 : 저는 백소영 교수가 이야기한 ‘봉건적 자본주의’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우리나라는 천민자본주의에 더하여 통치시스템은 아직도 봉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을 조선시대의 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국민 스스로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한국 교회도 일조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김길구 :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이번에야말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정교유착’의 고리도 끊어야 합니다. 교회가 정치에 빌붙어 시녀 노릇하는 잘못을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김현호 : 주말마다 촛불 집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시민들이 깨어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도 이제 부화뇌동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소리쳐야 합니다. 만약 이에 대해 계속 침묵한다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다른 것으로라도 소리치게 할 것입니다.김길구 : 이 책에서 한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는 악의 세력이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깊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우리 교회도 성경의 토대 위에 실천적 모습으로 개혁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두란노, 2016)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세월호와 역사의 고통에 신학이 답하다》 / 조석민 외 / 대장간《예수, 한국사회에 답하다》 / 차정식 / 새물결플러스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16-12-08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가스펠 보컬그룹 “MOIN"(모인)
    2015년 창단된 신생찬양팀 <MOIN(모인)>의 뜻은 독일어에서 따온 것으로 가까운 사이에서 인사하는 말이며, 사역자들이 함께 모여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다양한 찬양 문화가 생겨나고 그에 따른 여러 목적을 지닌 예배와 무대가 생겨나면서 곳곳에서 찬양 사역자를 필요로 하고 있어서, MOIN과 같이 보컬로만 구성된 사역팀이 다양한 찬양 문화의 일부분을 채우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기도 합니다.그리고 지방에서 사역하고 있는 실력 있는 음악 사역자들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 사역의 지경이 넓어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런 실력 있는 사역자들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더욱 지역의 예배에 활기를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가스펠 보컬 그룹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개인 사역자들이 한데 모여 결성한 MOIN은 최근 연산동 소재의 작은 교회를 방문하고 그 교회 담임목사님의 정성과 열정과 간절함에 많은 감동을 받고, 한 영혼을 살려내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힘써 나아가야 하는지, 또 이번 음악회를 통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달려 나가야 할지 깨닫는 귀한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MOIN은 현재, 찬미워십에서 사역하고 있는 박홍식 찬양사역자, 2017년 1월 중 정규1집 발매 및 싱글 출시를 앞두고 창원시립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인희 찬양사역자, 부산 남성교회를 섬기는 김효익 전도사, 트롬본 연주자이며 대구중앙교회를 섬기는 장재진 형제가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팀이 결성된 지 1년 만에 팀원들이 솔로 앨범을 준비해서 발매를 앞두고 있으며, 개인적인 음악 활동이 더욱 많아져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습니다. 모인<MOIN>이라는 이름처럼 가는 곳마다 찬양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평안의 인사를 나누며 복음을 전하고, 소망과 위로의 도구로 쓰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사역문의 : 박홍식 사역자 (010-4414-7658), 김인희 사역자(010-2843-3872) ◇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2월13일~ 31일) 1.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12월13일(화) 오후6시30분 : (부산)산성교회, 밀알송년의 밤 찬양인도 12월24일(토) 오후7시 : 배산역로비. 성탄축하음악회 12월25일(주일) 오전11시 : (청도) 별빛교회 성탄찬양예배 2. 디아코너스(연극팀, 윤은대실장 010-2840-4834) 12월15일(목) 오후1시30분 : 동산정보산업고등학교, <Are you happy?>공연 12월17일(토) 오전11시 : 부산시 동구도서관, <초록구슬>공연 12월18일(주일) 오전11시 : 부산제일교회, 십대들 행복하십쇼. 공연 12월22일(목) 오후2시 : 양산청소년상담복지센터. <심心풀이>공연 12월23일(금) 저녁7시 : 김해중앙교회 12월24일(토) 오전11시, 오후2시 : 부산진구육아종합지원센터, 어린이들을 위한 성탄공연 12월25일(주일) 오후3시 : 동서남북교회 3. 약속의 땅 찬양 팀(이창주 집사 : 010-8516-2594) 12월17일(토) 오후5시 : 진주차없는거리 크리스마스축제 12월18일(주일) 오후5시 : 사랑의쌀나누기 크리스마스콘서트 4. J-piE(찬양팀, 이은호전도사 010-8033-0062) 12월15일(목), 22일(목) 저녁7시30분 : 삼남연회 본부 감리교회관. 목요찬양예배 5. 우미나(찬양사역자 : 010-6608-6203) 12월17일(토) 오후7시 : 프라미스랜드, 기타치는 로로 노래부르는 우미나 콘서트 12월25일(주일) 오후 2시30분 : 울산 신복교회 크리스마스 콘서트 6. 변용세(찬양사역자 : 010-9986-4098) 12월15일(목) 한국국제대학교 12월15일(목) 진주 트리축제 12월18일(주일) (부산)기쁨찬교회 12월25일(주일) 언양평리교회 7. 프라미스랜드(기독교문화공간운영, 박후진 : 010-2828-6836) 12월17일(토) 오후4시 : 부산크리스마스 트리문화축제 성탄가족영화 상영 12월23일(금) 오후7시 : 프라미스랜드 콘서트(김재운, 김훈희 출연) 8. 제2회 사상크리스마스 아트 페스티벌 (장소 : 사상 인디스테인션) 12월20일(화) 오후7시 : 개막실 12월21일(수) 오후7시30분 : 연합축제 12월24일(토) 오후2시 : 사상 창작캐롤송대회 12월25일(주일) 오후3시 : 외국인과 함께하는 국제 성탄축하 9. 기장연합목요찬양모임 (최정일목사 : 010-4814-3690) 12월15일(목), 22일(목) 오후8시 : 부산기장순복음교회
    • 문화
    2016-12-08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1 : 종교와 국가
    “16~17세기, 국제 문제에 대한 대처법으로 무엇보다 먼저 종교와 전쟁이 이용되었다. 잉글랜드와 그 후의 영국연방, 그리고 미국의 내셔널리즘 성립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6세기에 프로테스탄티즘이 생겨난 이후,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사람들은 다른 서양의 국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자기 나라가 ‘신의 나라’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 영국인은 새로운 ‘선택된 민족’이었다. 그리고 18세기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은, 보스턴의 설교자에서 버지니아의 담배 농장주에 이르기까지 자신감에 넘쳐 이렇게 예언했다. 우리들의 ‘새로운 이스라엘’은 미시시피 강까지, 그리고 그 너머 태평양까지 넓혀질 것이라고.” (케빈 필립스, 『사촌들의 전쟁』에서) 1. 어거스틴의 두 도성론과 루터의 두 왕국론 일찍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은 필연적인 것(반드시 일어날 일)을 말하고, 역사는 현실적인 것(이미 일어난 것)을 기록하고, 극시(劇詩)는 개연적인 것(일어날 법한 일)을 모방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이 ‘어순실한’ 정황 속에서 철학은 난무하지만, 역사는 지워지고, 극시가 코미디로 판을 깔고 있다. 이는 정치의 문제로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국가와의 관계, 종교와 국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지닐 네 가지 기본적인 관계에 관해 말한 이후(하나님-자기 자신-서로-원수), 13장에서는 ‘국가-율법-시대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특히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있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권위는 다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권위를 거역하면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을 거스르는 자가 되고 거스르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공동번역 로마서 13:1-2).” 정말 그럴까?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은 410년 8월 24일 서고트족이 로마를 침략하자 이방세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자는 뜻으로 『신의 도성(De civitas Dei)』을 저술한다. 여기에서 어거스틴은 신의 도성과 세상도성(civitas terrena)은 인간 역사상 언제나 대립적인 관계를 유지해왔고, 불신자는 인간들의 방법으로 신자는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하며 살도록 예정되었으며 이 두 세력이 두 도성으로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세상 왕국의 할 일은 땅의 평화(Pax terrena)를 실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자들은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행동양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거스틴이 말하는 도성(나라)은 상징적이고 신비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차이점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세상에 대한 사랑, 자기를 경멸하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영을 사랑하는 것’, 즉 두 도성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전자는 의로운 자의 나라요, 후자는 악한 자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따라서 인간들 가운데 확립된 이 두 도성은 마지막 심판 때에는 서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하나는 선한 천사들과 연합하여 그 왕과 함께 영생을 향유하고, 다른 하나는 악한 천사들과 함께 연합하여 그 왕과 함께 영벌에 던져질 것이다. 두 도성론은 그 본질상 신비적이며 초자연적인데, 전자는 ‘진리-선-질서-평화의 나라’이며 참된 사회이고, 후자는 전자를 거부하는 사회로 ‘오류-악-무질서-혼란’의 나라인 것이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영향 하에 영적 왕국과 세속적 왕국을 구별하며(분리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 권력(1522년)’이라는 설교에서 ‘세상 왕국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에 관해 마르틴 루터는 (선별하고 축약하여 정리해 본다면) 이렇게 말한다. “첫째, 이 세상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통치방법(세상적, 영적)을 쓰시는데, 세상권력은 세상을 통치하는 군주들의 몫이다. 둘째, 세상통치권이 존재하는 이유는 악을 징벌하고 경건한 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즉 검을 지닌다는 말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면 타인을 지키고 섬기는데 만 검을 사용한다. 셋째,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세상 통치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롬13장).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그 권세를 통하여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군주는 또한 신실한 보좌관을 선택해야 하며, 악인과 선인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백성의 실수를 눈감아 줄줄 모르는 군주는 다스릴 자격이 없다.” 이러한 생각에 근거하여 루터(M. Luther)의 두 왕국론은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한 나라-하늘의 나라-영적 정부’이며 세상의 왕국은 ‘시간의 나라-잠정적인 나라-지상의 정부’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복음과 말씀, 사랑으로 내면적인 영역을 다스린다면, 세상 왕국은 율법과 강제력으로 외면적 영역을 통치한다.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은 구원을 목표로 하고, 세상 왕국은 유지와 보존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왕국론을 이해하는 근간이 되는 ‘세상권세에 대하여, 세상 권세에 어디까지 복종해야하는가?(1523년)’라는 글을 통해 마르틴 루터는 “첫째, 세상 인간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자와 세상 왕국에 속한 자로 구별할 수 있는데, 만약 모든 세상 사람들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만 있으면 검이나 권력 따위는 필요치 않다. 따라서 의로운 자들을 다스리려고 법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불의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듯이 율법 아래에서는 죄가 드러날 뿐이다. 따라서 세상 권세는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세워졌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세속 권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루터는 “세속 권력이 다스리는 영역은 외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적인 영역의 문제들은 오직 하나님 말씀의 통제만 받는다. 따라서 비록 로마서 13장에서 세상 권세에 복종할 것을 명령하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의 외적 질서에 해당되는 말씀이지 이것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신앙 문제에까지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군주는 어떠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시에 군주로서의 책임을 완수해야하는가? 루터는 “하나님을 향하여는 올바른 신뢰와 진심으로 기도해야 하고 백성들에게는 사랑과 그리스도적인 다스림으로 대해야 하며 신하에게는 이성적으로 맹신하지 않는 이해심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불의에 대하여는 날카로운 엄격함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세속 왕국은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검을 사용하여 악을 벌하고 경건한 이들을 보호하며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이룩해야할 목표를 지니지만, 하나님의 영적 왕국은 말씀으로 통치하여 경건한 자들을 종말적인 구원을 향하여 이끈다는 것이다. 나아가 세속 왕국은 성경에 언급된 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지만(롬13:1, 벧전2:13), 결코 영적인 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루터는 “세속 왕국과 영적인 왕국, 이 두 가지의 통치영역은 절대로 혼합되어서도 안되고 완전히 따로 떼어서도 생각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이 두 통치영역의 지배를 받는 시민이다. 그들이 군주든 소시민이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권력이 있다 해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인내와 고난당함으로 대처해야 한다. 세상 권력은 오직 이웃의 문제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이웃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사랑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윤리임을 가르치려했던 루터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2. 국가와 교회의 4가지 모델 두 왕국론의 시작은 이러했으나, 그 결과는 근대국가의 군주적 통치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오용된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념의 순수성이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서 잘못 왜곡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근대 들어 종교개혁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선한 복음적 의도를 넘어 선 강력한 군주들의 교회 개입에 반대하지 않았던 이유(가령 예를 들면, 루터의 서한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서한」(1520)에서 교권분립의 대전제가 유사시에는 유보될 수 있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비상주교(Notbischof)’론이 선포되었다.)는 그들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현실적 고려였다. 가톨릭 교회를 지지하는 세속군주들에게 맞서 개혁운동을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 대안은 개혁교회를 지지하는 정치권과의 결탁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교권 장악을 통해 자신들의 통치권을 강화하려는 군주들의 욕구를 암묵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루터파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회의가 채택한 으뜸 원리는 ‘한 지역의 종교는 그 지역의 통치자가 결정(cuius regio, eius religio)’한다는 것이었다. 종교개혁가들에 따르면 군주의 직위와 권한은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늘이 제정한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군주에 대한 복종은 민중의 당연한 의무라는 ‘왕권신수설’에 대한 당연한 보증이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결과적으로 국가의 교회장악을 가속시키는 기제로 작동하였고 통치자에 대한 민중의 순응을 강조함으로써 곧이어 유럽사회에 등장하게 되는 절대주의 체제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엥겔스(F. Engels)의 “루터는 절대군주정의 대단한 아첨꾼”이나, 휘기스(J. N. Figgis)의 “만일 루터파가 없었다면 루이 14세도 없었을 것”, 혹은 윌리엄 맥거번(W. McGovern)의 말처럼, “나치의 뿌리가 루터의 정치사상에 있다.”는 말에 쉽게 동조하기는 어렵더라도 일면 역사적으로 타당한 면이 있다. 루터가 폭군에 대해 민중이 취할 수 있는 대항은 고난을 감수하고 탄압을 인내하는 소극적 저항뿐이며, 불의한 군주는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인내의 대상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그의 시대적 한계(혹은 어거스틴을 이어 이후 실존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에 이르는 서구신학의 실존적 한계?)를 엿볼 수 있다. 아무튼 국가와 교회의 관계는 존 스토트(John Stott)에 의하면 4가지 모델로 정리할 수 있다. 곧 국가가 교회를 통제한다는 ‘국가 만능론’, 교회가 국가를 통제한다는 ‘신정’, 국가가 교회에게 호의를 베풀고 교회는 그 호의를 계속 받기 위해 국가의 편의를 도모해 주는 타협안인 ‘콘스탄틴 주의’, 그리고 교회와 국가가 건설적인 협력 정신으로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독특한 책임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동반자 관계’가 그것이다. 존 스토트는 로마서 13장 주석을 통해 “우리는 국가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유발하기 전까지만 굴복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명하거나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금하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명백한 의무는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는 것, 곧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국가에 불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국가의 법이 하나님의 율법과 반대되어 제정될 때마다 ‘시민 불복종’은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되는 것이다. 바로가 히브리인 산파들에게 갓난 사내아이들을 죽이라고 했을 때 순종하기를 거부하고(출 1:17), 느부갓네살 왕이 모든 신하에게 금신상에 엎드려 절하라는 포고를 내렸을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순종하기를 거부했으며(단 3장), 다리오 왕이 삼십 일 동안 아무도 자기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칙령을 내렸을 때, 다니엘도 순종하기를 거부했다(단 장6).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핍박하는 국가(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으로 묘사된)는 자신의 권세를 마귀(붉은 용으로 묘사된)에게 준 사탄의 동맹군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존 스토트는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국가의 권위에 굴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 권위는 특별한 목적 그리고 전체주의적이지 않은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 ‘복음은 폭군과 무정부주의자 모두에게 똑같이 적대적이다.’” 사무엘서는 왕을 세움으로 백성들이 입게 되는 여러 가지 불이익을 열거한다. “사무엘은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에게 야훼께서 하신 말씀을 낱낱이 일러주었다. 사무엘은 이렇게 일러주었다. ‘왕이 너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알려주겠다. 그는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병거대나 기마대의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다.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을 시키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거나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보병의 무기와 기병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다. 또 너희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를 만들게도 하고 요리나 과자를 굽는 일도 시킬 것이다.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좋은 것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곡식과 포도에서도 십분의 일 세를 거두어 자기의 내시와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의 남종 여종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좋은 소와 나귀를 끌어다가 부려먹고 양떼에서도 십분의 일 세를 거두어갈 것이며 너희들마저 종으로 삼으리라. 때에 가서야 너희는 너희들이 스스로 뽑아 세운 왕에게 등을 돌리고 울부짖겠지만, 그 날에 야훼께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공동번역 사무엘상 8:10-18)” 오늘날, 고대의 왕과 민주정의 대통령(president)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대통령은 라틴어 ‘주재하다(praesidere)’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그의 지위가 ‘법 위’인지, ‘법 아래’인지를 통해 왕인지, 대통령인지를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10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 시국을 바라보며 우리는 아직 왕정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게 된다. 120여년 전 1894년 동학혁명 당시 “갑오세(甲午歲)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 거리다, 병신(丙申)되면 못 가리”라는 민요가 유행했었다. 갑오년(1894년)에 제대로 개혁을 하지 못하면, 을미년(1895년)에 허송세월만 보내다가 병신년(1896년)이 되면 결국 나라와 백성이 큰일을 당한다는 뜻이다. 2014년 개혁의 실패로 2015년 을미적 거렸고, 2016년은 120년 전 병신년과 같이 역사는 반복되었다. 한문 왕(王)자에 관해 중국 전한 시대의 유학자 동중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 개의 가로획은 하늘, 땅, 사람을 뜻하며,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왕이다.” 애초에 왕은 지도자가 아닌 지배자였다. 너무 무서워서 신성한 존재였다. 무력의 독점과 잘 조직된 감시기구, 역모에 대한 가혹한 처벌은 왕권에 대한 도전의 싹을 자른다. 중세시대는 교황권이 황제의 권력보다 더 거대했다.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에게 카노사의 굴욕을 안겼던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교황은 성령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바 있다. 이른바 ‘교황 무오류설’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동양 역시 중국 왕조시대에 황제가 아무리 잘못을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것은, 황제는 하늘이 내린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대 왕들의 ‘무오류에 대한 자기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 확신이 오늘 세계를, 아니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한비자』는 역린(逆鱗)에 관해 이렇게 말한바 있다. “용은 사람이 길들여 능히 올라탈 수도 있지만, 목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를 죽인다.” 용이 ‘이명박근혜라는 권력’인지? ‘대한민국 국민’인지? 2016년이 다 가기 전에 결정될 것이다. 3. 인터레그넘 시대의 교회의 역할 현재를 가리켜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 Bauman)은 “지금 세계화 시대는 인터레그넘(interregnum)의 시대”라고 한다. 로마법에서 사용된 용어로 일종의 권력 이양기로 ‘지금까지 통치하던 왕이 사망했는데 아직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이전의 기간’을 의미한다. 사실 세계화는 영토, 국민, 주권에 기반을 둔 국민국가 중심의 질서를 해체했다. 따라서 세계시장과 자본권력이 개인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국민국가의 정치적 제도와 국민의 주권적 힘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인터레그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다. 따라서 바우만은 “권력을 잃은 국가의 대안으로 도시를 제안”한다. 국가는 애초에 영토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성립된 단위이므로 국가보다 빠르고 쉽게 대처할 수 있는 작은 정치단위인 도시가 대안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럽은 도시를 기반으로 한 사회 운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가능하나, 오랫동안 국가 중심의 삶을 살아온 우리에게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가령, 축구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국가대항 경기에 관심이 많은 반면, 유럽은 도시 단위의 클럽 경기에 열광한다. 어쨌든 국가의 신용이 무너진 이때, 지역이나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살리려는 노력들이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시국에 대한 촛불집회가 수도 서울 광화문에서 시작되었지만, 지역별 촛불로 분화되어 지역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교회가 그 지역 마을 공동체의 음성을 듣고 그 마을을 살리는 일에 헌신할 때,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 교회가 제 기능을 할 것이며, 인터레그넘 시대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V. Woolf)는 “여성에게 조국은 없다.”라고 말한바 있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K. Marx)와 엥겔스도 “프롤레타리아에게 조국은 없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참다운 그리스도인에게는 조국은 있을까?’라는 국가와 종교에 관한 4차 방정식에 지역 공동체가 ‘정답 아닌 대답’이라고 말해도 될는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문화
    2016-11-24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말씀과 타악기-천지창조 이만식 전도사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창 1:1) 이만식 전도사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타악기란 그릇에 담아 전하는 사역자입니다. 부산에서는 드물게 수많은 타악기로 다양한 연주와 퍼포먼스로 관중을 사로잡습니다. 때로는 심벌 한 장과 작은북 하나로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며 찬양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대의 3면을 온갖 타악기로 채워 창세기의 말씀을 선포하며 연주하며 그야말로 천지창조의 웅장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만식 전도사는 원래 1970년대 김치스, 우두스탁, 텔레파시 등의 그룹에서 드러머로써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1989년 갑자기 단기성 기억 상실을 경험하고, 세상 방법으로 회복하려 갖은 노력을 했으나 오히려 증상이 더욱 악화돼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술이 없이는 잠을 못자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더욱 어려운 흑암과 혼돈의 지경에 빠지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권유로 주례동 소재의 교회에 처음 출석하게 되었습니다.교회에서는 중보기도로, 자신은 성경 암송을 하며 치유를 간구한 끝에 기억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세상 문화를 전하던 자가 세례 받고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음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타악기 부분에서는 국내최고의 연주자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낮은 곳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이 전도사는 부산정신의료원등에서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당하는 환우들을 위해 오랫동안 찬양과 말씀으로 봉사를 하기도 하고, 노숙인을 위한 캠프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등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고통을 통하여 연단하시고, 주께로 이끌어 치유의 역사를 주심으로써 영의 눈을 깨우사 진리를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님의 힘찬 구령의 북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지길 소원합니다. (말씀과 타악기 천지창조 이만식 HP. 010-7148-9106 / 홈페이지 http://percuss.co.kr) ◇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1월29일~ 12월12일) 1.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12월4일(주일) 오전11시 : (고흥)오취교회 찬양집회 12월4일(주일) 오후2시 : (고흥)금산교회 찬양집회 12월11일(주일) 오전11시 : (창녕)주민교회 찬양예배 2. J-piE(찬양팀, 이은호전도사 010-8033-0062) 12월1일(목), 8일(목) 저녁7시30분 : 삼남연회 본부 감리교회관. 목요찬양예배 3. 디아코너스(연극팀, 윤은대실장 010-2840-4834) 12월1일(목),2일(금) 오전10시, 오후2시 : (서울)종로아이들극장, 청소년을 위한 공연예술축제참가 12월4일(주일) 오전11시 : 연제도서관, 가족이 함께 하는 도서관 공연 12월5일(월) 오후1시50분 : (창원)CGV 더시티세븐점3층6관, 학교폭력예방 공감 토크콘서트 12월10일(토) 오전11시, 14시30분 : 정관도서관, 가족이 함께 하는 도서관 공연 4. 약속의 땅 찬양 팀(이창주 집사 : 010-8516-2594) 12월11일(주일) 오전 11시 : 경주안강열린교회 5. 천지창조(드럼 퍼포먼스, 이만식 전도사 : 010-7148-9106) 12월5일~7일 : MMF 수련장, 사랑나라 노숙인 캠프 공연. 6. 변용세(찬양사역자 : 010-9986-4098) 12월2일(금) 울주 세광병원 12월4일(주일) 안양장로연합회 12월6일(화)~7(수) 부산외국어대학 12월8일(목) 합천예벤에셀요양원 12월10일(토) 밀양별빛교회 12월11일(주일) 김해베데스다교회 7. 기장연합목요찬양모임 (최정일목사 : 010-4814-3690) 12월1일(목), 8일(목) 오후8시 : 부산기장순복음교회
    • 문화
    2016-11-24
  • [기독교 교양 읽기 20] “이유없이 남을 위해 겪는 고통, 그게 십자가!”
    “고통은 하나님 안에서 노래가 된다!” 살아가면서 고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의 고통은 이중적이다. 자칫 불신앙으로 비칠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걸까 ‘의심’이 들지만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소위 말하는 ‘착한 신자 콤플렉스’다.이에 대해 저자는 하나님에 대해 거침없이 ‘항의하라’고 말한다. 이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분이 치밀 때는 그냥 분노하라”고 말한다. 많은 성경의 인물이 그렇게 했고,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항의의 다른 면을 슬쩍 끄집어낸다. 항의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라고. 즉,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이 책은 하박국서를 통해 고난을 철저하게 분석한다. 고난을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명제로 올려놓고,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응원했다가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연결시킨다. ‘고난’이라는 까다로운 주제에다가, 글의 흐름도 반전을 거듭한다. 금방 이것이 옳다고 해놓고는, 곧이어 신학적으로 깊이 있는 의미를 새롭게 제시한다. 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가도 어느새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하박국을 통해 고난에 천착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저자 자신이 겪었던 고통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니 진정으로 용서하기 위해 책의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통을 통해서만 다른 이의 고통에 참여할 수 있음을 고백하며, “고통은 하나님 안에서 노래가 된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 특별손님 : 김기현 목사 ▲ 이번에는 저자인 김기현 목사를 특별초청하여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왼쪽에서부터 김현호, 김기현 목사, 김길구, 김수성] # 읽기 쉬운 책과 어려운 책의 중간 지향김길구 : 이번에는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의 저자인 김기현 목사님을 특별손님으로 모셨습니다(박수). 목사님은 문화적 토대가 약한 부산에서 꿋꿋하게 사역하면서 전국적으로 보급되는 책을 계속 펴내고 계십니다. 어째 이번에 개정판을 내셨는데 많이 팔렸습니까(웃음)?김기현 : 8년 전에 초판을 썼을 때는 책이 전체적으로 거칠고 무거웠습니다. 게다가 개인의 고난을 제대로 밝히지도 못했습니다. 자칫 ‘복수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스토리 연결이 안 된다는 지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와 의논하여 개정판을 준비했습니다.김현호 : 저는 초판을 읽었던 독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에 대한 내용이 절대적으로 빈약한 상태에서 이 책이 나와 무척이나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목회자들은 한 두 구절로 하박국을 설교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하박국의 고난에 대해 신학적 지평을 연 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김수성 : 신학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지만, 저는 읽으면서 어렵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다양한 신학적 해설 때문에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았습니다.김기현 ; 저는 기본적으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 중간, 학자와 평신도 중간 입장에서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기독교 서적은 읽기 편한 책과 까다로운 학문적인 책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 지점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책은 ‘고난’이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다루다보니 조금 더 무거워진 것 같습니다.김길구 : 성경에 고난을 이야기하는 책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하박국을 선택했는가요? 또 책에 보면 죽이고 싶을 만큼,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고난을 겪었다고 하는데,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기 바랍니다.김기현 : 우선 내용의 부피를 고려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나의 고통 문제를 해결하는데 하박국이 가장 적합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겪은 고통은 하박국에 비하면 별개 아닐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나에게 직접 가해진 고난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다툼이 있어 뛰쳐나왔던 분들이 교회를 개척하면서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떠나 개척하고 싶은 마음이 있던 차에 잘됐다하고 그리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은 자기들이 개척한 교회를 ‘자기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내가 낸 십일조로 먹고사는 당신이 왜 내 말을 듣지 않느냐?”는 막말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 입을 믿지 않고 손발이 하는 것을 본다김수성 : 그 부분을 읽으면서 갑갑했습니다. 죽고 싶을 정도였다면, 그곳에서 벗어나는 게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김기현 : 벗어나려고 노력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서울의 한 교회에서 좋은 조건으로 청빙이 들어왔죠. 주위 분들이 말리던군요. 특히 옆에 계신 김현호 대표가 적극적으로 말렸습니다[웃음]. 그런 가운데 하박국이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났는가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고나니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김현호 : 하박국 당시와 지금 우리의 시대 상황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권력이나 악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김기현 : 먼저 외쳐야 합니다. 불의와 권력의 폭력에 대해 침묵하지 말고 외쳐야 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을 전달하는 대언자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말을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한탄하고 대답을 듣고는 또 묻고 따지고….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하박국 3장의 찬양으로 바로 넘어가는 게 우리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의심의 골짜기에서 찬양으로 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김길구 : 의심의 진정성이 있고 저항의 급진성이 있기에, 포용의 신비성도 있다고 하셨는데?김기현 : 의심이 필요하지만, 모든 의심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의심의 진정성이란 사랑이 내포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가끔 내가 잘못하면 아내가 대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목사 맞아?” 당연히 섭섭하고 화도 나죠. 그러나 아내가 내게 하는 것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입을 믿지 않고 손발이 하는 것을 봅니다. 포용의 신비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김수성 : 읽다보니 고난과 ‘자유의지’의 연결이 껄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김기현 : 사실 기독교 신정론이 이론적으로나 실존적으로 명쾌하게 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고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언급해야 하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에 신정론이 필요한 것입니다. 회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김현호 : 고난 중에 독서를 많이 하셨다고 하는데.김기현 : 물론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도 책을 읽지 않고서는 안 될 처지였습니다. 당시 교인들이 날 쫓아내려고 했기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설교였습니다. 그래서 책을 부지런히 읽고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서가 내게 여유를 가지게 해주었고[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며, 고난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갈 [길]도 보여주었습니다. # 독서가 쉼과 힘을 주고, 눈과 길을 열어줘김길구 : 고통이 고통을 치유한다는 말은?김기현 :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고통의 현장, 바로 거기에 계십니다. 뚝 떨어져서 방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 고통을 찬양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응원하십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즉, 고난 받는 하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십자가를 도외시하는 기독교는 변질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 그동안 교회는 하박국의 찬양만을 많이 강조했습니다.김기현 : 하박국의 찬양은, 곧 고통이 닥쳐올 것을 알면서도 먼 미래의 희망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찬양했다기보다, 절규하는 마음으로 노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이 찬양시를 읽어야 합니다.김길구 : 끝으로 용서에 대해 이야기할까요?김기현 : 용서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것이 나를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무조건 남을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이유 없이 남 때문에 겪는 고통이어야 진정한 고통이라 할 수 있고, 그 가운데서 용서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김길구 : 이 책은 고난이라는 무거운 주제의 신학적 아젠다를 하박국서를 통해 우리가 새롭게 성찰하도록 도와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신 김기현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두란노, 2016)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자살은 죄인가요?》 / 김기현 / 죠이선교회《예배, 인생 최고의 가치》 / 김기현 / 죠이선교회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16-11-10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0 : 뇌
    1. 하나님의 고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고민하셨던 부위는 인간의 뇌가 아닐까? 너무 완벽하게 만들면 하나님을 넘어설 것이고, 너무 뒤쳐지게 만들면 인간 종이 멸종당할 터, 그래서 뇌라는 복잡한 것을 만들어 그 뇌의 기능을 다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드셨는데, 이제 뇌의 기능을 확장시킨 인간들은 자유의지를 통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들 인간만의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이 우리 문명사가 아닐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소설『뇌』에서 인간의 뇌에는 파충류의 뇌와 관련된 동기유발 부분과 포유류의 뇌와 관련된 동기유발 부분,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최후의 비밀(소설의 원제가 L’Ultime Secret, 최후의 비밀)’이라는 부분을 통해서 미래의 인간이 도달하게 될 뇌의 한 부분을 말하고 있다. 자아의 확장,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는 개별자아의 확장이 인류가 미래에 도달하게 되는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고 역설하고 있다. 사실 인간의 뇌는 각각의 부위마다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것을 통합하고 조합하여 사고라는 과정을 만들어내는 부분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마치 호수에 물이 여기저기서 파동을 만들어 내는 것은 확인되나 그것들이 전체적으로 조합이 되어 (사고라는) 큰 그림을 역어내는 부분은 찾지 못한 것과 같다. 2. 뇌의 고민: 스키마, 선입견과 고정관념 “니 아버지 뭐하시노?”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Friend, 2001)>에서 선생님이 동수(장동건 분)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이것은 우리 뇌가 고정관념이라는 편리한 판단기준을 통해 사람을 미리 재단하기 때문에 가능한 질문이다. 성별, 인종, 출신 지역, 가정환경 등을 통해 쉽게 대상을 일반화하려는 것이다. 뇌작용의 이런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스키마(Schema)’라고 한다.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들을 토대로 새로운 경험을 친숙하게 받아드리는 것’이다. 뇌가 정보를 여러 범주로 조직화할 때 이용하는 기록체계의 일종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정보들 속에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실 정글에서 생활하는 원시인들은 사람의 얼굴을 판단하는 데 그들의 뇌에 필요한 시간은 약 0.4~0.6초이다. 또한 그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겨우 0.2초이다. 원시시대에 유용한 이러한 스키마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종종 잘못된 판단을 야기하기도 한다. 뇌의 태생적 고민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우리의 뇌는 ‘여성은 모성적이고, 흑인 남성은 공격적이며, 유대인은 지갑을 절대 열지 않을 것’이라는 성적,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아줌마는 억척스럽고 아저씨는 뻔뻔하며 요즘 애들은 버릇없고 나이든 노인은 성욕을 잘 다스린다’는 선입견도 갖고 있다. 직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술가는 섬세하고, 정치가는 권모술수가 능하며, 교수는 논리적으로 따지고, 사업가는 통이 크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우리 뇌는 이런 고정 관념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성격의 문제를 넘어 뇌의 문제로 뇌의 고민인 것이다. 3. 중년의 고민: : 절정의 뇌 젊은 시절 약 2만종의 맛을 구별하던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중년이 되면) 1만종의 맛을 구별하기도 버거워진다. 중년의 기억력 감퇴는 제일 먼저 이름과 얼굴을 잊어버리는 데서 시작한다. 신경과학자들이 정의한 ‘인생의 중년’은 나이 45살부터 68살까지인데, 중년의 뇌는 어떨까? 중년의 고민으로 남을 것인가? 최근 경영학과 신경과학이 융합된 ‘뉴로리더십(Neuroleadership)’이라는 분야는 리더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뇌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 시애틀 세로연구소의 ‘뇌 인지능력 검사’ 결과는 중년의 뇌에 대한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어휘능력, 언어기억능력, 계산능력, 공간지각능력(공간 정향 능력), 반응속도, 귀납적 추리 능력 등 6가지 능력이 가장 초절정의 성과를 내는 나이대가 45~53살 사이의 중년의 뇌로 나왔다는 것이다. 중년의 뇌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순발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복잡한 상황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 글을 읽고 주제를 파악하는 능력은 매우 뛰어나며,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 또한 우수하다는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단기 기억력은 떨어지지만,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는 장기 기억 능력이 오히려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나이가 들수록 더 지혜롭고 현명해진다는 말은 뇌과학적으로 사실인 것이다!). 4. 신은 뇌 속에? 신을 영접하는 순간(혹은 명상을 하는 동안)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학자와 철학자, 종교학자가 질문한 신의 문제에 물리학자, 심리학자들이 가세한 이후 이제 신경과학자들이 합류하여 “신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우리는 신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왜 우리는 항상 우리보다 더 큰 어떤 존재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개입하였다. 그리고 신경과학자들의 결론은 ‘인간의 뇌는 종교를 추구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며 ‘종교적 체험을 하는 동안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며, 종교적 체험이 우리의 뇌에 유익하기 때문에 인간이 종교활동을 영위한다’고 결론짓는다(뇌의 생물학적 구조와 기능이 존재하지 않은 신을 만들어냈을까?, 아니면 신이 자신을 숭배하도록 인간들의 뇌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20세기 말 펜실베니아 대학의 핵의학과 앤드루 뉴버그(A. Newberg) 교수는 종교적 체험을 하는 동안 인간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관해 6년간 실험을 반복했다. 종교인들이 종교적 체험을 하는 동안 뇌활동에는 비정상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자신들의 초월적인 종교적 경험을 아주 생생한 현실처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실제로 현실에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그들은 마치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한 각성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신경과학적으로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는 전두엽(Frontal lobe)과 사고 기능을 조절하는 하두정엽(inferior parietal lobe)이 나란히 활성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어떤 종교를 믿느냐에 관계없이 영적 체험을 하는 사람의 뇌활동 상태는 거의 비슷한 변화를 보였다. 따라서 뉴버그는 2001년, “신은 인간의 뇌 속에 들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뉴버그 교수가 기독교인이 영어로 기도할 때와 방언으로 기도할 때의 뇌 스캔을 통하여 어떤 차이가 나는지도 실험한 것이다. 영어로 기도할 때는 언어를 관장하는 전두엽의 활동이 활발하게 나타났지만 방언으로 기도할 때는 활동이 감소되고 조용했다. 즉 방언으로 기도할 때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개신교적으로는 ‘성령’)가 나의 기도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수도승이 명상할 때와 프란체스코회 수녀가 기도할 때는 전두엽이 활발하게 작용했지만 개신교인이 방언을 말할 때는 전두엽 활동이 감소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즉 방언기도 할 때는 나의 생각이 아닌 나의 영이 직접 기도하기 때문에 두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신은 전두엽과 하두정엽에 있을까? 뇌에 전기자극을 가함으로 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 인류의 원형적인 종교적 기억들은 미리 실현된 전기자극인가? 5. 엔그램: 기억의 장소 기억은 뇌 신경세포와 시냅스에 저장된다. 뇌에는 엄청나게 많은 신경세포(뉴런)가 있다. 대략 860억개 정도인데, 다른 체세포와 달리 신경세포에는 많은 가지(축삭과 가지돌기)들이 뻗어 나와 서로 연결되는데, 신경세포 하나에 무려 수천, 수만이나 된다. 신경세포들의 가지와 가지를 이어주어 신호를 주고받는 부위가 바로 시냅스이다. 사람의 뇌에는 무려 수십조 내지 100조개의 시냅스가 존재한다. 현대 뇌과학은 신경세포와 세포들 사이 시냅스의 전기적 신호로 만들어진 시공간적 패턴을 통해 기억이 만들어지고 저장된다고 가설한다. 따라서 신경세포들의 전기적 패턴을 지우거나 방해하면 기억을 지울 수 있고, 패턴을 재생하면 기억을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억의 메커니즘은 이런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작용을 통해 일어난다. 신경세포들은 기본적으로 전기적 방법으로 소통하지만, 세포들끼리의 신호 전달은 시냅스에서 물질을 교환해서 이뤄진다.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민산염, 도파민, 세로토닌 물질이 신경세포의 활성을 ‘흥분시키거나 억제(스위치를 켜고(+, 흥분성), 끄는(-, 억제성)’시킨다. 이것이 바로 기억의 메커니즘이다. 곧 기억의 메커니즘은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작용을 통해 일어나는데, 그것은 신경세포와 시냅스 분자들에 나타나는 변화이기도 하다. 또한 세포간 연결 패턴의 변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억이란 어떤 생물학적 현상이라고 말해주는 단 하나의 답은 아직까지는 없다고 한다. 기억이 저장된 분자, 세포, 연결망 수준의 흔적, 즉 ‘기억 흔적’ 또는 ‘기억 장소’를 일컬어 과학자들은 엔그램(engram)이라고 부른다. 기억의 장소인 엔그램이야말로 신이 창조했거나, 혹은 신이 깃들어 있는 장소가 아닐까? 6. 고향 뇌과학적으로 고향이 편한 이유는 어릴 적 경험한 음식, 소리, 얼굴과 풍경,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뇌를 완성시킨 바로 그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나란 존재를 만든 고향, 그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나란 존재의 원인과 이유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인간은 고향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 1000억개 신경세포들 간의 수많은 시냅스(연결고리)들의 위치와 구조를 유전적으로 물려받기는 불가능하기에 뇌는 미완성 상태로 태어난다. 대신 뇌는 약 10년간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는 것을 갖고 있다. 결정적 시기 동안 자주 쓰이는 시냅스들은 살아남고 사용되지 않는 시냅스들은 사라진다. 따라서 결정적 시기의 뇌는 찰흙같이 주변 환경에 의해 주물러지고 모양이 바뀔 수 있다. 어쩌면 조기 인성 교육이 조기 어학 공부 및 선행 학습보다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우리 속담에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문학적으로(아니 신학적, 종교적으로까지!) 우리는 고향으로 향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출애굽한 이스라엘, 혹은 오디세우스의 후손들이다. 키르케 섬에서 탈출한 오디세우스는 지옥 하데스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만나서 그에게 물어본다.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고, 그러자 예언자는 말한다. “그래, 오디세우스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넌 결국 이타카로 돌아갈 것이다. 사랑스러운 아내를 품에 안을 것이고, 멋진 청년으로 자란 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야,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네가 아는 고향에 도착한 넌 다시 네가 아는 고향을 떠나야만 너의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단다. ……”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하늘나라이기에 이 땅에서의 고향은 잠시 머무는 것임을 호메로스도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고향은 뇌가 형성된 어린시절, 혹은 창조의 때인가? 기억의 장소인 엔그램은 이 땅에 진정한 고향이 없음을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통해 잘 보여준다. 7. 영화 <루시>: ‘신화적 예수’의 ‘과학적 구현’? 뤽 베송(Luc Besson) 감독이 오랜만에 복귀하여 만든 액션 영화 <루시 (Lucy, 2014)>에서 주인공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는 평범한 삶을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두뇌와 육체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게 된다. 영문도 모른 채 지하세계의 절대 악 미스터 장(최민식 분)과 만나게 되었다가 결국 신종약물(C.P.H.4로 임산부가 임신 중 자신의 신체에서 만드는 것으로 아기의 뼈 구성에 필요한 에너지를 주며, 힘을 갖게 만드는 물질)을 다른 나라로 운반해야 되는 전달자로 이용당하게 된다. 하지만 루시를 겁탈하려는 부하의 폭력에 의해 뱃속에 든 약물이 루시의 몸 안에서 퍼지게 되고, 이로 인해 몸 속의 모든 세포와 감각이 깨어나게 된다. 이후 뇌의 활용도가 점점 높아져 가는 루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인간의 역사를 경험하고, 최초의 인류인 루시를 만나기도 한다. 루시는 자신의 뇌 기능을 100%까지 사용하게 되었을 때, 인간의 신체성을 벗어버리고,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는(ubiquitous)’ 신적 존재로 변화된다. 그리고 루시는 노먼 박사에게 자신의 모든 지식을 USB에 담아 전달해 준다. 인간의 신체성을 벗어버리고, 인류의 시작(원시인 루시)과 현재(노먼 박사)에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이 지식은 인류의 기원과 미래의 비밀이 담긴 지식으로 인류 구원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이것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신 예수의 길이라 할 수 있다. 태초에 계셨으며, 마지막에도 계실 분,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 시간의 처음과 나중이며, 시간을 넘어서 계신 분! 우리는 루시에게서 ‘신화적 예수’의 ‘과학적 구현’을 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은 인간의 뇌 속에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의 뇌관련 정보와 예시는 정재승 교수의 ‘영혼공작소’ 및, 정재승, 김대식 교수의 저서와 번역된 앤드류 뉴버그 교수의 저서 등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문화
    2016-10-27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늘소리 국악선교단
    늘소리 국악선교단은 우리 부산ㆍ경남지역뿐 아니라 우리나라 교계 전체에서도 보물과 같은 사역팀입니다. 바로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 국악으로 복음을 전하는 팀이기 때문이죠.1980년대 주찬양으로 시작된 교회 찬양의 열풍은 많은 찬양팀을 탄생시켰고, 이로 인해 각 지역과 교회마다 많은 찬양팀이 생겨났지만 막상 국악으로 찬양하며 복음을 전하는 팀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전문 국악인들로 구성된 이 팀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과 기독교문화에 새로운 모델을 만든 팀이기도 합니다. 1989년에 창단된 늘소리 국악선교단은 '사람을 살리고 세우며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다양한 문화적인 접근을 통해 이 땅에 사랑과 희망, 봉사를 실천하며 복음적인 선교를 꿈꾼다'라는 취지로 한국 전통음악을 전공한 단원들로 구성된 자비량 선교문화예술단체입니다. 이 팀은 교회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행사에 초대되어 집회를 하지만, 특히 큰 은혜와 의미를 가지는 집회는 단연코 복음을 전하는 전도 집회입니다. 시골교회 어르신들 전도축제, 노인교실 전도축제 같은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집회에 국악으로 접근해 갈 때 다른 어느 문화적 접근보다 더 큰 효과가 나타납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신 어르신들이 민요와 전통음악을 들으며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간증과 이어지는 국악찬양을 듣고 부르시면서 춤을 추시기도하고 “예수 모시고 가시는 님은 영원 생명을 누리겠네~” 라며 아리랑을 개사한 찬양을 따라 부르시면서 복음을 받아들이실 때 천국잔치가 이와 같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은혜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각 교회마다 전도축제가 많이 열리는 이 가을에 국악의 향기로 복음을 전하는 늘소리 국악선교단이 더욱 더 많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리가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집회문의 : 단장 서한나 010-7720-6876)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1월1일~ 13일) 1. 그리스도의 편지(찬양팀:문지희단장. 010-4570-2803) 11월6일(주일) 오후7시30분 : (경남)진례영은교회 찬양집회 2. 킹덤드림(예배?찬양인도팀:최미라간사. 010-9811-9601) 11월1일(화), 8일(화) 오후3시, 4시 : 경성대학교 비전홀. 경성대학교 채플 찬양인도 11월5일(토) 오후2시 : (부산)하나로장로교회, G1319연합예배 11월7일(월) 저녁7시30분 : 부산역광장, 통일광장기도회 찬양인도 3.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11월6일(주일) 오전11시 : (부산)세광교회 찬양집회 11월8일(화) 오후6시20분 : 부산밀알화요모임 찬양인도 11월13일(주일) 오후2시 : (통영)영접교회 찬양집회 4. 늘소리 국악선교단(국악찬양팀: 서한나 단장 010-7720-6876) 11월6일(주일) 오전10시30분 : 물금제일교회 새신자초청집회 5. J-piE(찬양팀, 이은호전도사 010-8033-0062) 11월3일, 10일(목) 저녁7시30분 : 삼남연회 본부 감리교회관. 목요찬양예배 6. 디아코너스(연극팀, 윤은대실장 010-2840-4834) 11월2일(수) : (부산)경남산업고등학교 11월3일(목) : 부산시민도서관 11월5일(토) : 디아코너스 소극장 11월6일(주일) : (부산)문현제일교회 11월9일(수) : 연제구청 구민홀 11월11일(금) : 거제시청소년수련관 11월12일(토) : (부산)비전교회 11월13일(주일) : (부산)익투스교회 7. 이창주 집사(찬양사역자 : 010-8516-2594) 11월5일(토) : (부산)사랑샘침례교회 찬양집회
    • 문화
    2016-10-27
  • [기독교 교양 읽기 19] 종교개혁은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다
    종교개혁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 앞에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 등에 대한 95개조의 반박문을 게시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듬해 6월,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가 보낸 파문을 경고하는 교서를 비텐베르크대학 교수들과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불태워버림으로써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했다.루터보다 102년 앞선 1415년 7월 6일,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던 얀 후스는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되어 체코의 콘스탄츠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러나 그가 뿌린 종교개혁의 씨앗은 유럽 곳곳에서 서서히 열매를 맺었다.루터와 비슷한 시기에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가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고 교황제도에 대해 성서적 근거가 빈약하다고 주장하는 등 입바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522년부터 본격적으로 종교개혁 투쟁에 나섰다. 츠빙글리는 1531년 가톨릭 진영과의 카펠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결국 전사하였다.이들 선배가 목숨을 바쳐가며 전개한 종교개혁은 장 칼뱅에 이르러 프로테스탄트의 깃발을 역사 속에 우뚝 세웠다. 16세기 당시의 상황은 프랑스의 위그노 탄압 등 아직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오직 성서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홀로서기는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있게 만들었다.이 책은 대학원생들과 이들 종교개혁의 발자취를 따라 체코, 독일, 스위스, 프랑스의 도시들을 방문한 기록이다. 후스, 루터, 츠빙글리, 칼뱅이 머무르며 말씀을 전파하고 몸으로 저항했던 그곳을 살펴본다. 내년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종교개혁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임을 깨닫게 한다.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기독교계는 내년에 맞이할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국 교회에 위기감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종교개혁’이라는 말이 던지는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 우리 모두 무릎 꿇고 겸손하게 그 의미를 되새기고 나아갈 바를 찾아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인가, ‘종교혁명’인가?김길구 :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의문부터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얀 후스로부터 따지면 600여년 전부터 시작된 ‘종교개혁(reformation)’은 오히려 ‘종교혁명(revolution)’이었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종교개혁가들은 처음에는 가톨릭교회의 면죄부에 관한 문제점 등을 지적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 부문에 걸쳐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혁명이라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김현호 :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개인적이긴 하지만, 철학이나 사회학 쪽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종교혁명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분이 여럿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종교개혁이 단순히 교회의 문제점만을 고치고자 한 것이 아니고, 당시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고자 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김수성 : 후대 사람들이 종교개혁을 당시 사회에 몰아쳤던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보지 않고, 루터에게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종교개혁을 거대한 역사적 흐름으로 본다면, 루터의 주장과 행동은 혁명이라고 명명하기에는 한정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일어났던 독일의 농민전쟁에 대해 취한 입장도 그러하고.김길구 : 일반적으로 ‘종교개혁’ 하면 우선 1517년의 루터(Martin Luther)를 생각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4명의 선각자들을 포함한 다양한 종교개혁의 흐름은 얀 후스로부터 1750년경까지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방대한 운동입니다. 후스 외에도 루터에 의한 독일 루터교회, 칼뱅주의로 일컬어지는 개혁주의운동, 독특한 영국의 성공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내부에서 일어난 제2차 종교개혁과 재세례파 등 급진 종교개혁은 물론, 여기에 맞선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운동까지도 포함됩니다.김현호 : 체코의 얀 후스(Jan Hus)는 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을 이끌다가 화형을 당했습니다. 후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영국의 위클리프(John Wycliffe)는 1370년대에 이미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고, 영국이 교황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등 적극적으로 저항하였습니다. ▲ 종교개혁은 단순히 가톨릭교회의 변화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혁을 추구한 운동이었다. 그림은 Diebold Schilling(1485)의 ‘얀 후스의 화형 모습’. [출처: en.wikipedia.org]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김길구 : 츠빙글리의 경우는 시의회와 손잡고 기독교적 공화정을 만들려고 하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이로 인해 재세례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내부적으로 분열되는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만,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단순히 ‘종교개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수성 : 실제로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었던 선각자들은 목숨을 바치기도 하고,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도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기도 하고, 죽은 후에 시체가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목숨을 잃지는 않은 분들도, 항상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서 운동을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단순히 개혁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김길구 : 루터의 종교개혁을 거론할 때 당시 가톨릭교회 내의 자정운동 노력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즉, 가톨릭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 내의 분위기와 시대적 환경 등, 시대적 여건이 절묘하게 들어맞은 부분도 있습니다. 김현호 : 종교개혁을 기독교문화라는 측면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상황은 가톨릭교회의 독점적 문화였습니다.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은 성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피력하였죠. 가장 대표적으로 만인제사장설을 들 수 있습니다.김수성 : 종교개혁을 추구한 분들이 역점을 두고 주장했던 것 중 하나가 ‘오직 성서’였습니다. 즉, 성서에 기준해야 함을 천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라틴어 성서를 자기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여 보급하였습니다. 문화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조치였습니다.김길구 : ‘오직 성경’을 비롯하여 ‘오직 은혜’ ‘오직 믿음’ 등과 함께 만인제사장, 성만찬 등은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했던 핵심적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핵심적 요소의 본래적 의미는 자유 평등 민주 등 근대정신의 기독교적 고백이라고 보아야합니다. 즉, 교황이나 가톨릭교회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을 주장한 것입니다.김현호 : 종교개혁에 있어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국어로 성서를 번역했지만, 이들 성서가 인쇄되어 대량 보급되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도 성서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라틴어 성서는 대부분 필사본이었기 때문에 라틴어를 읽을 줄 안다고 하더라도 성서를 구하기조차 어려웠었죠.김수성 : 1999년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미국의 ‘라이프’지가 학자와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무엇인가를 설문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꼽았던 사건이 바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었습니다. 활자인쇄술은 근대사회로의 변혁을 가져온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회개, 청빈, 희생의 정신 되살려야김현호 : 현시점 우리에게 있어 종교개혁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한국 교회의 위기 상황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회개와 개혁, 청빈과 순종, 희생과 성결을 추구한 그 정신이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 청교도정신으로 대표되는 칼뱅의 개혁교회 전통이 장로교회로 이어져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우리나라의 프로테스탄트교회도 장로교회가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일까요? 이제 개혁교회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개혁하지 못한 것이 오늘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근원입니다.김현호 : 이 책은 신학교 대학원생들이 종교개혁지를 순례한 기록입니다. 예루살렘 성지순례 못지않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종교개혁지 순례가 봇물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김수성 : 대학원생들의 필수과목 중 하나로 ‘종교개혁지 순례’를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단과 교회의 지원이 당연히 있어야겠죠. 공부할 때부터 현장에서 종교개혁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졸업 후 목회할 때 그 정신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김길구 : 종교개혁은 반동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교황권을 중심으로 권력과 문화를 장악하고 있던 구세계에 대한 반동이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이르는 삶의 모든 부문에 폭발성을 가졌으나, 오늘 우리는 종교개혁을 교회 안에만 국한하여 개인의 신앙에서 사회적 성화로 이어지지 못함으로써 기독교의 위기를 자초하였습니다.다음에는 김기현 목사의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복있는사람, 2016 개정판)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종교개혁 이야기》 / 사토 마사루 / 바다출판사《역사를 바꾼 종교개혁가들》 / 이동희 / 넥서스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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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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