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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김승욱 지음/ 규장출판사 / 2015.08.17. / 15,000원 할렐루야교회 김승욱 목사의 깊고 풍성한 사도신경 강해를 담은 『나는 믿습니다』. 성경적이고, 힘이 있는 김승욱 목사의 강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과연 무엇을 믿고 있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신경 외우는 것을 그저 예배 순서 중 하나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얼른 외구고 끝내버린다. 그러나 믿음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 자체가 예배이다.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아무 생각 없이 입으로만 외우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신앙고백 그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 문화
    • 도서
    2015-08-27
  •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 리 스트로벨 지음 / 두란노서원 / 2015.08.18. / 14,000원 은혜는 종교 언어에 불과한가? 은혜란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 은혜가 진정 사람들의 삶을 새롭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는 저널리스트 출신의 리 스트로벨 목사가 하나님 은혜의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자신의 신앙 여정을 담은 책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구체적인 은혜 사건들을 통해 은혜의 개념을 정의해 간다. 리 스트로벨은 우리 시대 실재하는 은혜의 현장을 인터뷰하며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를 만났다. 내 인생에 이미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 준다.
    • 문화
    • 도서
    2015-08-27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⑦
    1. 셰프 전성시대바야흐로 셰프 전성시대이다. 요리 강좌에 남성 수강생들이 몰리고, 여성들은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을 이상형 1위로 꼽고 있으며 하다못해 귀신도 셰프를 좋아한다(tvN 16부작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상처 입은 우리들에게 먹을거리 하나로 위로를 베풀고 바쁘고 슬프고 힘겨운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셰프야 말로 이 시대 생명의 전도자이다. 예능의 대세도 ‘먹방(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 방송)’에서 ‘쿡방(음식을 조리하는 요리 프로그램)과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 곧 먹는 것과 요리사로 바뀌었다. 입고 살 만해졌기 때문에 먹는 것이 중요해졌을까? 먹방은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대리만족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그 먹방의 지루함을 해결한 것이 바로 쿡방이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 혹은 먹고 살기 힘든 우리네 이웃의 일상을 방송 화면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야흐로 셰프 전성시대이다. 요리 강좌에 남성 수강생들이 몰리고, 여성들은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을 이상형 1위로 꼽고 있으며 하다못해 귀신도 셰프를 좋아한다(tvN 16부작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상처 입은 우리들에게 먹을거리 하나로 위로를 베풀고 바쁘고 슬프고 힘겨운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셰프야 말로 이 시대 생명의 전도자이다. 예능의 대세도 ‘먹방(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 방송)’에서 ‘쿡방(음식을 조리하는 요리 프로그램)과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 곧 먹는 것과 요리사로 바뀌었다. 입고 살 만해졌기 때문에 먹는 것이 중요해졌을까? 먹방은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대리만족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그 먹방의 지루함을 해결한 것이 바로 쿡방이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 혹은 먹고 살기 힘든 우리네 이웃의 일상을 방송 화면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야훼의 마지막 날 잔치모든 종교는 의식(예배 혹은 제사)과 먹는 것(밥)이 연결되어 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에게 바치는 제물은 곡식, 떡, 양, 염소, 소, 비둘기 등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번제와 희생제, 감사제와 요제를 드리게 된다. 그리고 제사 이후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함께 제사 음식을 먹는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출18:12).”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맺고 나서도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 이스라엘의 축제일인 유월절, 무교절, 추수절, 초막절 역시 모두 먹는 것과 관련이 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애굽의 종살이에게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축일로 제물고기와 누룩 없는 떡을 먹었으며 추수절과 초막절은 밭 곡식과 포도의 추수에 관련된 축일로 가난한 이들(노비, 레위인, 떠돌이, 고아, 과부)까지도 함께 즐겨야 했다(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신16:14).이사야가 선포하는 야훼의 마지막 날의 모습도 먹고 마시는 잔치이다. 시온 산에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씻어 주고 죽음을 영원히 없애고 모든 민족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사25:6)”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먹는 잔치로 묘사된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모습인 초대 교회 공동체는 어떤가?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생활상을 다음과 같이 그려준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행2:44-47). 그러나 고린도교회에서는 이러한 밥상 공동체가 깨어졌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고전11:20-21)”고 전한다. 곧 부자들은 취하도록 배불리 먹고 가난한 자들은 굶주린 상태에서 에배와 성찬에 참여하게 되었다. 따라서 바울은 해결책으로 공동식사인 애찬과 성찬을 분리시켰고 결국은 성찬만 남게 되었다(“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고전11:34a). 사실 사회적 신분(주인과 노예)의 차이와 빈부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 교회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예수의 밥상 공동체의 본질적인 모습은 아닌 것이다. 이후 요한복음은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예수의 삶으로 이끌고자 종교적 의식 행위에서 오늘의 현실 속에 예수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6:56).”이를 구현한 이가 교회사에 등장한다. 지난 2015년 7월 6일은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의 화형 6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후스는 성찬식을 개혁했는데, 성찬식은 실제로 굶주린 사람들과 함께 먹을 것을 나누는 밥상공동체 운동이다. 이러한 후스의 개혁운동을 더욱 확산시켰던 후스파 운동은 ‘이종성찬(빵과 잔 둘 다 허용)’을 진행했는데, 이는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당시 성찬 집례시 잔은 사제들에게만 주어졌다. 그러나 후스파는 평신도들에게까지 잔을 베풂으로 평등 공동체를 구현했다. 성찬을 통해 사제계급의 특권을 파괴한 것이며 성찬을 공동식사(애찬)로 바꾸어 굶주린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잔치가 되었다. 3. ‘멋, 맛, 못’의 말씀 요리사인 설교자설교자는 말씀의 셰프이다. 최현석 셰프와 같이 요리하는데 멋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선포하기에 대행자로서 멋이 있어야 한다. 개그맨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설교자는 그의 설교에 맛이 있어야 한다. 백주부(백종원 셰프)의 솜씨와 같이 지식인이든 어린 아이든, 여자든 남자든 누구나 할 것 없이 맛있게 먹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감칠 나게 요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설교자의 설교에는 못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의 손맛과 같은 그리움이 있어야 한다. 찔림이 있어야 한다. 본향에 대한 그리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만난 첫사랑에 대한 찔림, 미래의 희망에 대한 저 내면 깊숙한 곳에서의 외침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거든 요리를 배워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함께 더불어 먹기라도 해야 한다. 부활한 예수도 이념이나 정신 속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말씀 요리와 밥을 나눠 먹는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하는 것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눅24:28-35).”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담임, 경성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 문화
    2015-08-27
  • [기독교 교양 읽기 ⑥] 광복 70주년, 교회공동체가 화해 사역에 앞장서야
    “화해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저자는 이 책 《화해의 제자도》 머리말에서 “화해는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며, “이 책은 당신을 위한 책이다”라고 선언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는 누구나 화해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화해가 전문가 영역이 아니라는 말은, 화해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전문가들은 분쟁이나 분열의 현장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급한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에 그친다.진정한 화해는 새로운 창조라는 하나님의 선물에 토대를 둔, 기독교적 비전에서 출발하는 긴 여정이다. 일상적인 모임에서, 일상의 공동체에서, 가장 분열이 심한 바로 그곳에서, 보통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이다. 그렇기에 화해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우리가 먼저 변화된 백성이 되어야 한다.히브리서 11장에 믿음으로 살았던 많은 이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의 비전을 믿고 오늘 비합리적인 삶을 살았다. 성경은 이런 믿음의 증인들을 통해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의 소망이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그렇기에 심각하게 깨어진 세상에서 교회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 즉 탄식의 기도이다. 그래야 진정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현실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상을 우리 삶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이방인과 적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저자인 에마뉘엘 카통골레는 우간다 출신 사제로서 듀크대 신학대학원의 연구교수, 크리스 라이스는 〈어반 패밀리〉 편집자면서 ‘화해자협회’ 공동 설립자이다. IVP, 2013. 10,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 책 끝 부분에 ‘하나님의 선교로 화해를 회복하기 위한 10가지’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내용을 10가지로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첫 번째는 이렇다. ‘화해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주시는 선물이다. 세상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행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새로운 창조라는 그분의 선물에서 시작된다.’ #갈수록 심화되는 우리 사회의 갈등김길구 :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사회 갈등이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최대 240조원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종교 분쟁으로 인한 터키를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김현호 :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저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생각했습니다. 교회, 사회, 그리고 남북관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갈등이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었고,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김길구 : 사회 갈등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아도 세대간, 지역간, 빈부간 갈등을 들 수 있죠. 여기에 더하여 최근 들어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과 핵발전소, 세월호 문제 등 정부정책 등과 관련한 갈등이 심각하게 표면화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기독교적 해결방안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에서 가장 공감했던 바는 ‘화해는 전문가 또는 운동가의 영역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사역이다’라는 전제입니다. 전문가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화해 노력은 급한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죠.김길구 : 화해의 여정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일상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화해에 관한 기독교적인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 먼저 화해가 ‘하나님의 선물’ 또는 ‘하나님의 비전’이라는데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회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그 해결과정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편향적이었고, 어떤 때는 극단적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드러냈습니다.김수성 : 지난번에 이 자리에서 논의했던 ‘슬로처치’가 생각납니다. 화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일상생활 속에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하고, 새로운 창조를 향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해의 여정은 회개로부터 시작해야김길구 : 이 책의 강점은 사회적 고통을 외면하는 도피처로 전락한 일부 교회뿐 아니라 다른 사회단체나 NGO 활동이 기독교적 화해와 무엇이 다른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제시한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김현호 :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화해의 사역에 나서야 합니다. 이 책에서 사례로 제시했듯이 르완다에서 인종 학살이 일어났을 때, 자기가 근무하는 호텔에 피신한 투치 족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 호텔의 매니저인 폴 루세사바기나가 목숨을 걸고 민병대와 협상하는 모습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은 근본적으로 인종갈등과 그에 따른 빈부갈등을 기본으로 하여, 화해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각종 이데올로기에 따른 갈등, 정부 정책과 관련한 갈등이 유독 심각합니다. 교회 내에서조차 입장을 정리할 수 없는 갈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 그럴지라도 교회가 방관할 수는 없겠죠. 독일 통일의 씨앗이 되었던 것은 서독 교회연합회의 동독 교회 지원과 그에 따른 청소년 교류 등이었다고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화해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인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겠죠.김현호 : 기독교 선교의 잘못된 비전 중 하나가 과거를 배제한 화해, 값싼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화해를 위해서는 모두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진리를 드러내는 표지이자 누룩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화해의 여정이 시작될 것입니다.김수성 : 우리나라에서 갈등이 심화되는 근본적인 이유의 하나로 물질만능주의의 팽배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비 성향이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빈부격차가 커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물질적·심적 여유가 점차 사라짐으로써 갈등이 더욱 첨예화되기도 합니다. ▲ 화해의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고 앞장서 나갈 때, 평화는 새로운 창조로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림은 John A. Swanson의 ‘Celebration’〉 #교회는 진정한 평화, ‘샬롬’ 추구해야김길구 : 기독교적인 입장에서의 화해, 여기서 언급하는 평화는 상대적 평화,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에서 평화, 샬롬(Shalom)을 의미합니다. 전쟁이 잠시 멈춘다고 평화라고 할 수 없고, 억압된 분위기에서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평화롭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김현호 : 요즘 교회에서는 ‘평화’보다는 ‘평안’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단순한 뉘앙스 차이가 아닌 근본적인 차이로 볼 수도 있습니다. 평안은 상대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 만족적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의 ‘평안’이란 단어는 대부분 ‘평화’로 번역해야 할 단어입니다.김수성 : 저널리즘에서는 시민을 속이는 완곡한 표현에 유의하라고 강조합니다. 즉, ‘가격 인상’을 ‘가격 현실화’로, ‘경찰병력 투입’을 ‘공권력 투입’으로 말로 바꿔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기름 저장탱크를 ‘오일농장’이라는 말로 미화했던 기업도 있었습니다.김현호 : 평화의 반대는 폭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등도 물리적·언어적 폭력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간의 평화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했다는 사실을 신앙고백하는 사람들인 만큼,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부터 화해를 일궈내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에 앞장섰던 송강호 박사가 생각나더군요. 밀양과 마찬가지로, 같은 마을주민들이 서로 반목하면서 원수 대하듯 하는 현실이 두렵기만 합니다.김현호 : 송강호 박사는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하다가 구속되기를 수차례 반복하였는데, 지금은 마을주민들의 화해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화해의 제자도는 자신을 이처럼 화해의 제물로 드릴 때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크리스천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세상의 피스메이커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김길구 : 이 책에서는 화해를 위해 교회 공동체가 나서야 함을 강조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였지만, 일본에 대한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갑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분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의 사례를 본받아, 한국 교회도 일본 교회를 적극 지원하면서 양국 국민이 화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다음 달에는 요르그 리거가 쓴 《여행, 관광인가 순례인가》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건강에 더욱 유의하기 바랍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종교의 두 얼굴-평화와 폭력》 / 박충구 / 홍성사《화해와 평화의 좁은 길》 / 홍정길 외 공저 / 홍성사《크리스천의 화해와 일치》 / 오야마 레이지 / 쿰란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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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2015-08-13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⑥
    1. 사실의 사진: 교리 주입 사진-신학(Photheology)이라는 말은 생소하지만 매력적이다. 사진에도 신학이 있을까? 그렇다면 사진에 담긴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만약 사진에 신학과 신앙이 없다면 그저 한 장의 종이 쪼가리에 다름 아닐 것이다. 사진에 신앙과 신학이 있다는 것은 사진 한장에 한 사람의 숨결이나 한 세대의 생명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떻게 신학적 의미를 부여받고, 신앙적 생명을 얻고, 창조적인 힘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사진의 신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백승균 교수는『사진 철학을 만나다』(북길드, 2014)에서 사진과 사람의 관계, 나아가 인간 의식과 사진의 관계에 관해 ‘사실의 사진’, ‘의미의 사진’, ‘의식의 사진’으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다(26-37). ▲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 여기 사진이 있다.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라는 연작 사진이다. 사랑하는 딸의 패션쇼를 아빠가 찍은 사진이다. 이것은 단순한 사실의 사진이다. 그리고 이 사실에는 패션쇼를 가능하도록 만든(옷을 입혀준) 언니 희주가 있고, 또 이 모습을 찍은 아빠가 있을 것이다.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언니와 아빠 모두가 이 사진의 완성자가 될 것이다. 이처럼 사진은 사실의 기능을 한다. 사진-신학의 지평도 마찬가지다. 사실의 사진은 사실의 신학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단순한 교리를 주입하는 신앙에 다름 아니다. 교리에 그 교리를 가능하게 한 사람들, 그리고 그 교리를 완성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성령의 역사 하에서. 따라서 사람들의 이해 지평(곧, 의미)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연스럽게 사실의 사진은 의미의 사진으로 넘어가고, 사실의 신학은 의미의 신학으로 진행해야 될 것이다. 2. 의미의 사진: 해석학적 신학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라는 사진의 의미는 무엇일까? 해석의 지평은 어떻게 가능할까? 희진이의 패션쇼는 아빠의 사랑이, 언니의 정성이, 그리고 주인공 희진이의 애교가 의미놓여져 있다. 이것은 배고파도,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의미의 차원이다. 세계 최초로 유치원을 창설한 프뢰벨(F.W.A. Fr?bel, 1782~1852)은 아동의 내적인 신성이 자연물과의 친근함을 통해 발현된다고 말한다. 가령,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목각기차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향으로 달려간다면, 프로벨은 그 기차를 그저 장남감으로만 여기지 말고 실제 기차로 간주할 것을 주장했다(백승균, 32). 그렇다. 사람은 사실만으로 살지 않고(그리고 이 사실은 경제와 정치, 현실의 모든 인간 삶의 물질적 조건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로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잘 알았고, 마귀의 시험을 지혜롭게 대처하셨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4장 1-4절) 따라서 의미의 신학은 해석학적 신학의 지평을 열어준다. 사실의 신학이 단순한 교리 주입이라면, 의미의 신학은 성서 말씀을 인간학적으로 해석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다. 사진 한 장을 통해 사실을 넘어 해석학적 의미의 지평 융합을 이룬 것처럼. 3. 의식의 사진과 신학의 사명: 김아타를 중심으로 사진은 불가능한 순간(가령 1/125초~1/15초의 순간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기술이며, 한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여 영원으로 잇게 하는 예술이다. 사진의 특별한 기법에는(물론 디지털 카메라에 해당되지만) ‘연장노출(extended exposures)’과 ‘다중노출(multiple layering)’이 있다. 연장노출은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수십 시간까지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어두고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으로 움직이는 것들의 형체를 모두 사라지게 만든다. 반면 다중노출은 이미지를 수십 번 중첩하는 것으로 사물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다. 따라서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처음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 뉴욕을 촬영한 1만컷 이미지를 단 하나로 중첩시킨 작품 앞에 선 김아타 <뉴욕 타임스>가 “철학적 사고가 지극히 참신한 작가”라 극찬한 박박 민 머리, 동그란 안경, 검정 인민복의 사진작가 김아타는 연장노출과 다중노출 기법을 통해 작품을 창작했는데, 뉴욕의 모습을 찍은 1만장의 사진을 겹쳐 한 장으로 만든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약간의 채도 차이가 있을 뿐 희뿌연 사각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노자『도덕경』5290자,『논어』1만5817자,『반야심경』260자를 한자한자 촬영해 각각 한 장으로 포개는 작업도 했는데(성경은 분량이 많으니 ‘요한복음’이나 ‘창세기’만을 한 글자 한글자 찍어서 촬영하기를 추천한다), 이러한 작업 가운데 김아타는 “자신을 구속하던 경전이 솜사탕이 되더라”고 말한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을 얻고, 없애버림으로써 있음을 드러내는 구도자의 깨달음이다. 예수께서도 깨달은 바 천하 만국의 영광이 결국 사라짐을, 아쉽지만 지금 사랑하는 딸의 모습도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 속에 사라져 감을 깨닫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아셨고, 마귀의 시험을 극복하는 답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셨다. 의미를 넘어 의식의 변화가 새로운 존재를 창출하는 것이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4장 4-8절) ▲ (2004) 사진에서 의식의 변화를 이룬 김아타의 ‘아이스 모놀로그(Ice Monologue, 얼음 이야기)’인 ‘ON-AIR Project’ 시리즈는 영원함을 상징하면서 역사적 의미도 지닌 파르테논 신전, 부처, 마오쩌둥, 피라미드 등의 조형물들을 얼음조각으로 만들고, 그 조각이 점점 녹아 사라지는 과정을 촬영한 작품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경우 3개월 동안 실제 크기의 15분의 1로 얼음조각을 만든 뒤 녹아 없어지는 1개월의 과정을 사진에 담아냈다. “모든 존재는 생멸하고 이 우주에 생멸하는 법을 거스를 존재는 없다”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가령, 스틸 사진 3장으로 표현한 <마오의 초상>은 권력의 무상함을 떠올린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 문화
    2015-07-23
  • [기독교 교양 읽기 ⑤] 가나안 성도 줄이려면 교회가 건강성 회복해야
    “가나안 신앙은 길 위의 신앙이다”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은 교회를 ‘안 나가’는 성도들에 관한 책이다. 1부 ‘가나안의 현상학’에서는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분석한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회는 2013년 1월에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힌 사람들 가운데 100만 명 정도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했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일찍 영국의 ‘포스트에반젤리칼 운동’ 미국의 ‘이머징 교회’ 등이 나타났다. 2부 ‘가나안의 사회학’에서는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로 교회에서의 숨 막힘, 위선, 그리고 분쟁을 든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의 문제점과 함께 대안을 모색한다. 특히 지속적으로 시행되는 많은 제자교육이 성도들을 계속 어린아이로 만들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성인용 기독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3부 ‘가나안의 신학’에서는 ‘교회론’을 다룬다.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의 맥락을 설명하고, 신약에서 교회로 번역했던 에클레시아(ekklesia)를 살핀다. 에클레시아는 그 자체가 영속적 가치나 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에클레시아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들과 관련된다. 그렇기에 ‘가나안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가나안 신앙은 ‘길 위의 신앙’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미지의 신앙이다. 그리고 ‘타자지향성’을 배우는 신앙이라고 정의한다. 저자인 양희송은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로서, 영국신학교 등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복음과 상황〉 편집장을 역임했다. 포이에마, 2014. 11,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 책에서 ‘가나안’은 ‘(교회에) 안 나가’를 거꾸로 쓴 것이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최소한 100만 명 이상 될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제도 밖으로 나가 ‘길 위의 신앙’을 유지한다. 가끔 신앙을 포기하기도 하고 다른 ‘영성’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갈수록 40, 50대 중장년층도 늘어나김길구 : 먼저 가나안 성도의 현상부터 살펴보도록 합시다.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지속적으로 가나안 성도가 늘어나고, 이것이 한국 교회에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김현호 : 이 책에서는 주로 20, 30대 젊은이들의 교회 이탈을 다루고 있지만, 이 같은 생각을 가진 40, 50대 중장년들도 기독교서점에서 상당수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려 하는 성도, 가족 때문에 억지로 교회에 나간다는 사람도 의외로 많습니다.김수성 :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2013년 1월에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교회를 떠나기 전 평균 14.2년 정도 교회를 다녔고, 최소한 6개월 이상 고민했다고 합니다. 즉, 교회의 중심부에서 일하던 핵심층들이 많다는 것입니다.김길구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한국 교회가 이제는 이런 문제를 쉬쉬하지 말고 공론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교회의 변화 없이는 가나안의 귀환도 없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습니다. 그동안 ‘불편한 진실’로 취급하여 언급하지 않았던 것을 드러내자는 것이죠.김현호 : 가나안 또는 잠재적인 가나안 성도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왜 교회 밖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교회가 적극적으로 그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가 간과한 부분이 있다며 그런 것을 철저하게 찾아내야 합니다.김길구 :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 앞서 미국 등지에서 먼저 나타났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머징 교회(emerging church)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나와 있듯 이머징 교회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미국에서는 뚜렷한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김수성 : 책에도 나오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실험교회’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도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적지 않다. ‘가나안 성도 현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하는 신학적·실천적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림은 Nakedpastor David Hayward의 Leaving the Church. 2014〉 #“잘못했습니다” 시인하는 자세 필요김길구 : 그렇다면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김현호 : 기본적으로 한국 교회가 우리 시대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요? 글로벌화와 다원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맹목적인 ‘신앙’만 이야기하고, ‘기도’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김수성 :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원인을 들고 있죠. 첫째는 ‘숨 막힘’으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의 분위기나 관행입니다. 둘째는 ‘위선’을 듭니다. 특히 지도자들의 위선을 목격하고 나면 쉽게 이탈한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교회의 분쟁입니다. 이 세 가지는 쉽게 들을 수 있는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김현호 : 교회 지도자들이 건강한 교회나 공동체에서 다양성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평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70, 80년대에는 대학부나 청년부가 거의 자치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선배들을 통해 교육을 받았죠. 그런데 교회가 효율화를 위해 간사제를 도입하면서 이런 자치 능력이 상실된 건 아닐까요?김길구 : 잘 믿기 위하여 교회를 떠난다는 가나안 성도들의 증가는 성장론에 가려진 교회론과 구원론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김현호 : 한국 교회가 성도들을 우민화한 결과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스스로 탁월하다고 여겼던 한국 교회의 설교나 교육 시스템이 성도들을 진리에 이르게 하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김길구 : 저자가 ‘성인용 기독교’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이유일 것입니다. 성도들에 대한 교육과 양육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죠. 성도들의 의식은 높아가는 데, 지도자들은 기존의 인식 틀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갭(gap)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김수성 : 지금은 누구든지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사회입니다. 최근 메르스 정보 공개 여부로 논란이 있었듯이, 교회와 관련한 사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불리한 것은 숨기려 하거나 덮어두려고만 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냅니다. 정보가 공개되는 시대에는 오히려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시인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회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김길구 : 어렵기는 하지만,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자는 신학적으로 접근했으나 우리는 실천적으로 접근하도록 합시다. 역사적 경험으로 본다면, 교회가 사회의 변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회에서도 아노미(anomie)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현실적으로 가나안 성도를 적극적으로 두둔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교회를 떠났다면,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그 책임의 일부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더 이상 소외받지 않도록 열린 마음으로 소통해야 합니다.김수성 : 나는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뿐만 아니라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모두가 불안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3포’니 ‘5포’니 하는 말로 대표되듯이 젊은이들은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중장년층은 앞으로 수입 없이 살아가야 할 날들이 너무 길어 불안합니다. 이런 심리상태에서는 교회 문제가 더 크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김길구 :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성도들을 더욱 따뜻하게 안아주고 위로해줘야 합니다.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불만도 줄어들겠죠.김현호 : 가나안 성도들에게도 한마디하고 싶습니다. 바깥에서 너무 오래 방황하지 말고 참다운 교회를 찾는 순례의 길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 부탁합니다. 진심으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섬김의 현장에 동참하여 함께 신앙생활을 할 때, 한국 교회의 문제도 하나씩 풀 수 있을 것입니다.김수성 : 이단이 득세하는 이유 중 하나도 교회를 등지는 성도들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선택에 어려움을 겪다보면 나중에 포기하게 됩니다. 교회가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김길구 : ‘추수꾼’ 등은 그런 약점을 파고드는 데는 뛰어나죠. 책에서도 언급했듯 교회 바깥으로 나온 성도들이 오히려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혼자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자유로부터의 도피처’로 이단을 택해, 피동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 교회가 건강한 지역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다음 달에는 에마뉘엘 카통골레와 크리스 라이스 공저 《화해의 제자도》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청년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가?》 / 데이비드 키네먼 / 이선숙 역 / 국제제자훈련원《이슈&미래》 / 미래목회포럼 편 / 예영커뮤니케이션 도/서/제/공 기쁨의 집 기독교서점초량 일본영사관 맞은편 051-464-1734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15-07-09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⑤
    1. 빛을 쓰기 사진(photography)은 어원적으로 빛(photo)을 쓰는(graphy) 것이다. 따라서 사진작가는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세상을 쓰는 사람이다. 1944년 브라질의 작은 마을 아이모레스(Aimores)에서 태어난 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ao Salgado)는 젊은 시절 활동가로 브라질 군부 독재에 저항하다 결국 프랑스로 건너간다. 이후 파리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은행(WorldBank)의 아프리카 커피 산업에 대한 조사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다. 그러다 아내 렐리아에게 선물 받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아프리카 출장 후 “경제리포트를 작성하는 것보다 사진 찍는 일이 더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진작가로 새 출발을 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이었다. 처음엔 뉴스 에이전시에서 작업을 할당 받기도 하고, 잡지 사진이며 누드 사진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요청받아 사진을 찍는 대신 스스로 주제를 정해 작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이후 10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하며 곳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 눈먼 투아레그족 여인 살가두에 따르면 사진은 ‘구도’와 ‘배경’, 그리고 ‘생동감’이 있어야 하는데, 생동감이란 피사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며 하나의 감동 있는 이야기가 살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롤랑 바르트(R. Barthes)가 말한 풍크툼이다. <눈먼 투아레그족 여인>을 통해 살가두와 인연을 맺은 빔 벤더스 감독 역시 그의 작품에서 그 어떤 ‘화살처럼 꽂혀오는 강렬함’을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살가두의 작품에서 인간 존재의 심연과 고통, 그리고 마침내 구원을 향한 절규와 그 응답인 빛을 보게 된다. 2. 인간이라는 흉악하고 끔찍한 짐승 ▲ 세라 펠라다 금광(1986) ‘사람을 아끼는 사진작가’라고 평가받는 살가두는 인간의 ‘욕망’과 ‘기아 문제’, ‘노동자의 치열한 삶’, ‘이주민들의 고통’ 등을 자신만의 뛰어난 관찰력으로 포착해냈는데, 그가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품은 브라질의 세라 펠라다(Serra Pelada) 금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에 대한 작품이다.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쓴 인부들, 황금을 찾고자 하는 욕망의 구렁텅이에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탐욕과 원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전쟁으로 인한 기아와 이주 문제 역시 인간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임을 고발하는 증거이다. 따라서 살가두의 사진은 이러한 인간 존재의 죄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우리들은 인간이라는 흉악하고 끔찍한 짐승”이라고 말하는 살가두의 담담하지만 비애에 찬 목소리와 표정은 보는 이들의 가슴에 무겁고 깊은 울림을 전한다.따라서 지구촌 고통의 현장을 다니며 잔혹한 정치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의 모습 등을 렌즈에 담으며 마침내 증오가 증오를 낳는 인간 존재의 본성을 촬영하는 일에 회의를 느낀 살가두는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3. ‘나無의 신앙’과 신의 사도 살가두 고향에 돌아간 살가두는 부인 렐리아의 제안으로 브라질의 도체강 유역 아이모레스에 대지 연구소(Instituto Terra)를 세워 지역 생태계 복원작업을 주도하게 된다. 무분별한 벌목과 철광석 탄광 개발로 인해 황폐해진 지역에 나무를 심어 생태계를 복원한 것이다. “천국에서 태어났으니 이곳을 다시 천국으로 만들자”는 그의 말은 사진 작업에 있어서도 새로운 계기가 된다. 치유된 살가두는 이제 자연의 경이를 카메라로 포착한다. 지구의 경이로움에 헌사를 바치는 프로젝트 ‘제네시스’(천지창조)를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며 치유가 되고 순환하는 삶의 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자란 이 땅에서 나는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냅니다. 내가 죽은 다음 이 숲은 내가 태어났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죠. 내 인생을 담은 순환의 고리가 완성되는 겁니다.” 인간은 대자연(신앙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나無) 자각이 있을 때 참된 신앙의 깊이에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 케노시스 기독론(자기비움의 그리스도)은 그것을 잘 말해준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6-11) 사람들은 사진기를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찍는 살가두를 보고 신께서 천국에 갈 인물을 찾는 일을 그에게 맡겼다고 생각한다. 곧 신의 사도인 살가두를 이 땅에 보내어 사진을 통해 천국 갈 사람을 찾게 한다는 것이다. 끝없는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한줌 세상의 소금으로 내어주는 사람들을 신의 사도인 살가두는 자신의 사진 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스도와 같이 자신을 타자를 위해 비운 자만이 신의 사도가 될 수 있으며 그때 참다운 빛은 보여지고, 쓰여지고, 찍힐 것이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 문화
    2015-06-26
  • [기독교 교양 읽기 ④] ‘파라오 시스템’에서 벗어나 진정한 쉼을 누리자
    “안식일은 물질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이 책 《안식일은 저항이다》는 하나님의 안식일이 물질주의에 대한 ‘강력한 저항’임과 동시에 ‘확실한 대안’임을 강조한다.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자본주의가 심화하면서 갈수록 생산성만 추구하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온통 더 생산하고 더 소비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사회에서 ‘쉼’이란 있을 수 없다. 마치 이집트의 파라오 치하에서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다.저자는 서문에서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무거운 짐을 진” 이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사람들이 이런 짐을 짊어지게 된 것은 끝없는 생산과 만족을 모르는 무한 생산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자기 착취’로 치달음으로써 영혼마저 피폐해져 가는 것이 현실이다.저자는 이제 진정한 안식을 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십계명에 나타난 안식일의 본래 모습을 하나씩 보여준다. 안식일은 십계명의 모든 계명과 연결되는 ‘중요한 다리’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물질주의 추구에 따른 불안과 강요, 배타주의, 과중한 일에 대한 저항임을 밝힌다.안식일은 자기만 쉬는 날이 아니라, 이웃도 반드시 함께 쉬어야 하는 날이다. 평등한 쉼의 날이다. 더 나아가 안식일은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돌보는 계기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안식일은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하는 날이다.저자인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예언자적 상상력》으로 널리 알려진 성경학자이자 구약학자이다. 원제 Sabbath as Resistance. 복있는사람, 2015. 10,000원. [좌담: 김길구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 책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구약학자인 월터 브루그만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예언자적 상상력》에서 주장했던 내용의 연장선상에 있다. 저자는 《예언자적 상상력》에서 현 교회의 정체성 상실은 소비주의와 문화에 순응한 결과라고 진단하고, 인간정신을 획일화하고 노예화하는 이런 ‘맘몬’의 지배에 맞서 교회공동체가 근원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 내용이 조금은 까다로운 부분도 있었지만, 오늘날 점점 퇴색해가는 안식일의 본래적인 의미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가자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었다. ▲ 안식일은 말 그대로 ‘쉼의 날’이다. 모두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안식하는 날이다. 갈수록 쉼이 사라지는 현대의 삶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더욱 소중해지고 있다. 〈그림은 제인 레이의 그림책 ‘세상은 이렇게 시작되었단다’에서 일곱째 날의 모습.[마루벌, 2001]〉 김길구 : 저자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불안, 강요, 배타주의 등에 대한 저항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책 제목에 ‘저항’이라는 낱말을 사용했습니다. 약간 자극적인 제목을 내세움으로써 안식일의 중요성을 드러낸 것 같습니다.김현호 : 여기서는 (신학적인 논란은 있지만) 안식일과 주일을 동일한 개념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안식일의 전통을 잃어버린 것은 근본적으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교회공동체의 약화,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주일이 예배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김길구 : 저자는 더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의 안식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오늘날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시스템은 옛 애굽의 파라오 치하나 다름없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무한 경쟁 시스템은 결국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니, 거기서 벗어나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라는 것입니다.김현호 : 구약의 안식일 전통이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다는 의미겠죠.김수성 : 그래서 안식일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이 더욱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오늘날 세상에서 진정한 의미로서의 ‘쉼’이란 실현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 드는데, 저자는 그럴수록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합니다.김길구 : 파라오 치하의 애굽도 현재 사회나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노예로 전락하여 살인적인 노동을 견뎌야 했습니다. 당시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안식일 계명은 정말 획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 안식일의 본래적 목적이 사회적 약자들도 반드시 쉬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종 되었을 때를 기억하라”고 누누이 강조한 의미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김길구 : 안식일은 그냥 대충 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구체적인 쉼을 요구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주일에 교회 가서 예배만 드리면 ‘주일 성수’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이죠. ‘성도의 교제’ ‘이웃에 대한 배려’ 등 모두 함께 쉼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김현호 : 주일은 교회가 사회공동체라는 본래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이웃을 위한 ‘베풂의 날’김길구 : 안식일은 강요에 대한 저항이라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는 끝없이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표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이러한 강요를 깨부수고, 다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을 읽으면서 재독(在獨) 철학자인 한병철 교수의 책 《피로사회》가 생각났습니다. 한 교수는 오늘날 우리 사회 시스템은 ‘자기 착취’를 강요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인은 끝없이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다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소진함으로써(burn out) 우울증 등에 시달리는 존재로 전락한다고 경고하였습니다.김현호 : 교회의 역할이 더욱 막중하다는 방증이겠죠. 교회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김수성 : 특히 컴퓨터와 인터넷을 비롯, 스마트폰이 급격하게 보급되면서 우리는 쉴 틈이 없는 생활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법적으로 근로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이러한 디지털 기기로 인해 365일 24시간 일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식일에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방인과 과부, 고아로 대변되는 가난한 이웃이죠. 안식일의 본래적인 의미가 경제활동에서 벗어나 쉼을 가지라는 것인데, 이들은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형편입니다.김현호 : 안식일은 이웃을 위해 베푸는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도 안식일의 본래 의미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신명기에 나타난 안식일의 의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김길구 : 안식일의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주일에 예배만 드리면 된다는 인식을 넘어서, 안식일 본래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십계명에 나타난 하나님의 요구사항은 심오합니다. 물신(物神) 숭배로 인한 불안, 강요에 대해 저항하라고 합니다. 물질을 탐내는 것은 곧 이웃을 탐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김현호 : 물질주의에 함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쇼핑하고 소비하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나 영화를 보러 가고, 야외로 나들이 가는 단순한 쉼에서 벗어나, 내 이웃의 약자들과 함께 하는 안식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김길구 : 지난번에 ‘슬로처치’에서 언급했듯이, 교회가 지역공동체의 중심이 되고 이웃을 ‘환대’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이는 너희가 종에서 해방되었으니 마찬가지로 이웃을 환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교회가 대안공동체 역할 감당해야김수성 : 그러기 위해서 교회에서 디지털 안식일 운동을 전개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일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스마트폰을 비롯해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아야,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고 또한 코이노니아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김현호 : 목회자를 비롯해 교회에서 유급으로 일하는 분들의 안식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주일에 일을 하는 대신 이들은 월요일을 안식일로 대신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철저히 쉼을 누릴 수 있도록 교인들이 협조해야 합니다.김수성 : 저자는 안식일을 안식년, 희년으로 확장시켜 언급합니다. 빚을 탕감해주는 등 가난한 이웃을 위한 안식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정신은 철저히 약자에 대한 배려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김현호 : 축제로서의 안식일과 관련된 사항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교회공동체가 주일을 중심으로 안식의 의미를 실현하는 등 정체성을 찾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이웃과 함께 떡을 나누고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쉼을 찾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김길구 : 앞으로 우리 사회는 빈부격차가 20대 80을 넘어 10대 90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대안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교회가 주일만큼은 모두가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달에는 양희송의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줘서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안식일이냐 주일이냐》 / 김근주 외 지음 / 대장간《예수님과 안식일 그리고 주일》 / 양용의 지음 / 이레서원《안식》 / 마르바 던 지음 / IVP《안식》 / 아브라함 헤셸 지음 / 복있는사람 도/서/제/공 기쁨의 집 기독교서점초량 일본영사관 맞은편 051-464-1734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15-06-11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④
    1. 사진의 도전: 회화가 근본으로 돌아가다. 미학의 역사에서 칸트(I. kant)는 고전주의를 벗어나 근대를 연 사상가이다. 고전주의는 미란 ‘본질을 현시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정한 규칙(본질, 혹은 진리)을 정해놓고 그것과 예술 작품이 1:1로 대응하면(혹은 잘 묘사하면) 아름다운 것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은 파르테논 신전과 같이 수치 비례적으로 완벽에 가까워야 하며, 예술은 진리와 도덕과 종교에 종속되어야한다. 나아가 모든 사물과 사건은 ‘진’리→-‘선’함→‘미’의 순서로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다. 미스코리아의 순위처럼. 그러나 근대가 열리면서 예술은 본질로부터 탈피하여 물질을 통한 감성의 창출, 대상의 상실, 현실의 주체적 해석, 상상 공간의 창조, 의미의 배제 등으로 새롭게 변화된다. 그 시작에 칸트의 미학이 놓여 있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미는 개인적인 느낌을 따르는 것이다. 미란 인식이 아니라, 쾌감이다. 따라서 예술의 본질은 진리의 내용에 있지 않고, 예술의 형식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가는 스스로 규칙을 세워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천재’이지, 고전주의 예술가처럼 일정한 규칙을 따라 자연을 모방하는 ‘장인’이 아니다. 이제 ‘미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예술은 더 이상 윤리적인 가치를 가질 필요가 없다. 오로지 고유의 미적 자율성만 필요로 하게 되었다. ‘순수한 형식의 조합과 상상력의 놀이’로 예술이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술의 발명¹은 위기이기도 했지만, 회화가 자신의 근본으로 돌아가 형식의 자유로운 유희를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사진은 풍경화와 인물화, 정물화 등 회화가 재현 대상으로 삼았던 모든 것들을 더 잘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고전주의에 입각한 사람들에게 사진은 회화보다 더 수치 비례적으로 대상과 완벽에 가까운 것이기에 회화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 회화는 선과 색, 곧 형태와 채색이라는 회화의 근본으로 돌아가며 위기를 극복한다. 차가운 추상의 몬드리안의 작품이나 뜨거운 추상의 칸딘스키의 작품. 그리고 추상표현주의 잭슨 폴록의 작품은 바로 회화가 그 자신의 근본인 ‘형’과 ‘색’으로 돌아갔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때 회화는 폭발적으로 부활하게 된다. 현대 미술이 탄생된 것이다. 2. 사진-신학의 도전: 신학이 근본으로 돌아가야!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분이며 신약성서에서 신은 직접 사람이 되어 힘없고 억압당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려면 교회는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회는 가난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가난한 사람을 살리기 보다는 교회 자체의 존재를 우선시 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 사라진 종교는 없으며 돈이 많아서 망하지 않은 종교도 없다. 번영신학을 통해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한국교회의 분위기 속에, ‘목회’가 아니라, 교회라는 단체를 ‘경영’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저 찬란한 정교분리를 통한 내세축복을 바라는 기복신앙과 현실적 맘몬에 가치를 둔 실용주의가 그 근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회화가 사진을 만나 자신의 정체성의 위기의 때에 근본으로 돌아가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것처럼 신학도 교회도 위기의 때에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류대영 교수의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푸른역사, 2009)를 보면 한국 개신교의 정치성을 역사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 이 땅에 첫 개종자를 배출한 이래 개신교는 줄곧 문명과 야만, 중화와 서방,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격돌하는 이데올로기 전쟁의 최일선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개화기의 개신교는 ‘진보의 전도사’였다. 한글 보급과 출판을 통해 민중을 계몽하고 축첩, 조혼, 신분제 같은 전근대적 구습과 대결하는가 하면, 인권을 신장하고 민족의식을 불어넣어 지식인과 민중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계기로 한국 개신교는 뚜렷한 탈정치화 경향을 띠면서 내세지향적인 감성 종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후 1920년대 유입된 ‘사회주의와의 충돌’은 뿌리 깊은 반공주의의 기원이 되었고, ‘반공의 신학화’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월남한 교계 지도자들에 의해 더욱 견고해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보수 개신교의 정치적 세력화’는 마니교적 선악이원론과 종말론적 위기의식, 80년 광주를 지나면서 시작된 친미주의 세계관의 균열에 대한 불안 등이 정치적 보수주의와 유착되어 일부 교회의 정치적 행동주의를 추동했다는 것이다. 다시금 전근대적인 구습이 한국사회를 드리운 이때 ‘한국 교회사의 아드 폰테스(ad fontes, 근본으로 돌아가라)’인 개화기의 개신교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 몬드리안의 작품 활용 ▲ 칸딘스키<원속의 원> ▲ 잭슨 폴록의 작업 모습 <각주1> 사진은 공식적으로 1839년 8월 19일 프랑스인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 J. M. Daguerre, 1789~1851)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러나 이미 최초의 사진은 그보다 10여년이 앞선 1820년대 중반 역시 프랑스 사람 조셉 니세프르 니엡스(J. N. Niepce, 1765~1833)에 의해 만들어졌다. 물론 사진영상에 대한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자각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1500년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부터 시작되었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 문화
    2015-05-29
  • [기독교 교양 읽기 ③] 아파하는 자와 함께 눈물 흘리는 교회 절실
    “아픔은 아픔으로써만 치유할 수 있다” ‘오두막에서 만난 상처와 치유 그리고 하나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듯이, 이 책은 윌리엄 폴 영(William Paul Young)의 소설 《오두막》을 소재로 설교했던 것들을 묶은 것이다.저자는 머리말에서 《오두막》에 대해 ‘이야기로 푼 조직신학’이라고 언급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상처, 아픔, 치유, 용서, 회복 등을 주제로 설교하면서 조직신학적인 문제를 많이 다루었다. 선악과와 자유의지, 삼위일체 하나님, 죄악과 구원 등. 이들 문제를 열린 마음으로 풀어낸 글에 집중하다보면, 책을 읽는 내내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 상처 때문에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입힌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상처로 인한 아픔은 아픔으로써만 치유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고난을 피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겪었다. 아픔을 끌어안고 그 쓴물을 빨아들일 때, 아픔은 사랑과 결합하여 성숙한 열매로 변모한다. 상처를 입힌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엄청난 아픔을 동반한다. 그러나 용서함으로써 자유를 얻는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용서와 치유는 ‘과정’이다.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의 과정이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 때까지 치유와 회복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하나의 길이다.저자인 김영봉 목사는 현재 미국 버지니아 소재 와싱톤한인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IVP), 2011. 10,000원. 《오두막》 윌리엄 폴 영의 장편소설. 캠프를 갔다가 막내딸을 연쇄살인범에게 잃고 ‘거대한 슬픔’에 빠진 매켄지(맥)에게 편지 한 통이 전달된다. 막내딸이 살해된 오두막으로 오라는 내용이다. ‘파파’가 보냈다. 파파는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오두막을 찾은 맥은 신경이 곤두선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지쳐 잠든 꿈속에서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난다. 그동안 억눌렸던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고, 하나님께 화를 내며 부당함을 항의한다.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치유를 받고, 성령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나님의 절대 사랑을 신뢰하게 된다.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 곧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임을 체험한다. 그런 가운데 다양한 신학적 문제가 거론된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2009년 세계사에서 번역본을 출간했다. 신학적인 문제에 있어 번역상 문제가 좀 있다고 김영봉 목사는 지적한다.[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192쪽 참조] [좌담: 김길구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 책은 저자의 ‘문화영성’ 네 번째 프로젝트이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시작으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선택해 연속 설교를 해 왔다고 한다. 이번에는 《오두막》을 소재로 열두 차례 설교를 하고 책으로 발간하였다. 그렇다면 설교집인데, 단순히 설교집이라 하기에는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진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 우리 교회가 ‘치유받은 치유자’ 되어야김길구 : 요즘 정호승 시인의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 시(詩)가 자주 생각납니다. 어차피 우리 삶은 상처입기 마련이지만, 세월호 사건과 네팔의 지진 참사를 접하면서 아픔이 더욱 짙어집니다. 상처와 치유, 그리고 용서를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김수성 :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가 받는 상처는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교인들이 자식들에게 상처되는 말을 함부로 한다든지, 위로한다며 찾아온 교우들이 한 말이 오히려 상처로 남았다는 고백 등이죠.김현호 : 교회에서 상처를 받는다는 말은, 상처를 제대로 치유받지 못한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치유의 메시지를 남발하기 때문이 아닐까요?김수성 : 우리 교회는 오히려 상처를 숨기려 하죠. “은혜가 안 된다”며 쉬쉬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죠. 그로 인해 상처받은 교인은 더 큰 상처를 받고.김길구 : 소설 《오두막》에서는 하나님과 마주쳐야만 치유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헨리 나우웬의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그러면서 더 나아가 상처받은 상태로 머물러서는 결코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없으므로, ‘치유받은 치유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김현호 : 세월호 사건 후 보여준 교회의 태도에서도 아직 치유받지 못한 치유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족들과 함께 고통과 상처를 나누기는커녕, 모금 한 번 하고는 할 일을 다했다는 듯 관심을 꺼버린 교회,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한 교회에 사람들은 실망하였습니다. # 치유와 회복은 평생 계속해야 할 과정김길구 : 기독교에서는 죄와 불안의 문제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오만과 과대평가로 인한 결과라고 봅니다. 반면 인본주의 심리학에서는 자기멸시, 증오, 그로 인한 자존감 상실에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은 한줌의 흙과 하나님의 형상의 결합체입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균형 잡힌 인간관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상처받은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죠.김현호 :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과 마주할 수 있는 ‘오두막’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살아가면서 입었던 자기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치유받을 수 있는 곳, 서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그동안 교회가 맥도날드화되었기 때문에 치유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 아닐까요?김길구 : 우리 교회는 구원과 성화를 개인의 실존문제로만 제한하는 경향이 있어요. 지난날 대도(大盜) 조세형, 폭력조직배 김태촌 등의 사례에서 보듯, 회개가 너무 추상적으로 이루어지는 문제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진정한 치유와 회복에 대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그래서 저자는 치유와 회복은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한순간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이죠.김현호 : 네덜란드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신학이 아니라 신앙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회개와 관련하여서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역할에 있어, 치유가 가장 큰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치유를 단순히 하나의 수단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김길구 : 하나님을 어설프게 변호해서는 안 됩니다. 어정쩡한 신학이 오히려 하나님과 직면할 수 없게 만듭니다. 신학을 내세워 고통 문제를 회피하게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직접 대면해야 합니다.김현호 : 우리나라 교회가 그동안 회피해왔던 이혼자에 대한 문제, 자살 문제 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혼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큰 상처를 받습니다. 자살한 사람의 유가족은 평생 상처 속에서 살아갑니다. 교회가 이렇게 상처 입은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가 교회에 던지는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김길구 : 영화 〈밀양〉에서처럼 ‘값싼 은혜’가 남발되기 때문이기도 하죠. 치유의 과정에는 성경의 욥처럼 하나님 앞에 나가 마주서는 용기가 요구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교회 시스템이 이런 진정한 구원을 가로막지는 않는지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신뢰는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열매죠.” 《오두막》에서 성령께서 매켄지에게 한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인류를 향한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의 관계 속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야 진정한 치유가 이루어진다. 〈그림은 샤갈의 ‘하얀 십자가’(1938)〉 # 교회가 상처입은 사람 외면해서는 안돼김현호 :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부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을 더욱 철저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자들이 신자들의 상담 내용을 예로 들어 설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을 당한 경우라면 상담했던 신자에게 오히려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김수성 : 그로 인해 교회를 떠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의 치유 상담에 관한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죠. 설사 교육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총회나 노회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보수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습니다.김길구 : 방황하는 성도들의 영적 치유를 위한 ‘치유목회’도 필요합니다. 구원은 한 개인에서 출발하여 성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웃 등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도 치유와 용서 등을 돕는 상담사나 복지사 등의 자격을 갖춘 전문 사역자들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봅니다.김수성 :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만 주어도 상당한 치유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설픈 위로나 조언보다는 그들과 함께 아파해주는 마음이 상담의 기본이라 할 것입니다.김현호 : 목회자든 교인이든, 교회가 상대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보다는 자기 기준으로 결론을 내리고,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상담자 스스로가 심판자가 되는 것이 문제라 할 수 있겠죠.김수성 : 이 책에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우상’을 이야기합니다. 읽다가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참된 하나님은 늘 낯설게 다가온다는 말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고정관념의 틀에 끼워 넣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요?김현호 :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은 《오두막》의 매켄지처럼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가?”하고 묻습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은 당신들 곁에서 함께 눈물 흘리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치유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김길구 : 《오두막》은 기독교를 소재로 한 소설로,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80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책은 다소 논쟁적인 신학적 문제들에 대한 소개와 해명, 오역으로 인한 오해 등도 있어 소설 이외의 관심거리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상처와 치유에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에는 월터 브루그만의 《안식일은 저항이다》(복있는사람, 2015)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그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 박영식 지음 / 새물결플러스《숨어계신 하나님》 / 김영봉 지음 / Ivp《크리스천 감정수업》 / 찰스 스텐리 지음 / 아드폰테스 도/서/제/공 기쁨의 집 기독교서점초량 일본영사관 맞은편 051-464-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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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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