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기고/강연
Home >  기고/강연

실시간 기고/강연 기사

  • [기고]차별금지법의 문제
    고영일변호사(법무법인추양가을햇살대표변호사) 최근 김부겸 의원에 의해 ‘(의안11936) 혐오표현규제법안’이 발의되었다가 기독교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며 철회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제정이 시도 되어 왔던 ‘차별금지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 더욱 반발이 거셌는데요. 새롭게 발의 될 때마다 그 강도가 심해지고, 그 표현이 반기독교적 성향을 띄고 있는 이 법안에 무엇이 문제가 되길래 기독교계가 강력히 반발하였을까요? 우리사회가 특정인을 대상으로 혐오스러운 표현을 한다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라는 데에는 모든 기독교가 찬성을 표합니다. 그런데, 그 혐오표현이라는 것이 만약 이단이나 동성애자들에 대한 정당한 개인의견평가와 성경의 가르침에도 적용이 된다는 어떨까요? ‘혐오표현규제법안’의 혐오 표현의 정의에 “종교, 사상”을 포함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교회가 타 종교나 이단의 사람들을 이단이나 사이비라고 말을 했는데, 그것을 들은 이단이나 사이비의 사람이 혐오감을 느껴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으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혐오표현의 문제가 표현한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그것을 들은 사람의 기준이라는 겁니다. 만약 이단에 대해 심각한 표현을 강대상에서 했고, 그것은 들은 이단의 사람이 혐오스럽게 느꼈다면 - 지금까지 교회의 손을 들어준 적이 없는 인권위원회의 결정을 판례로 본다면 - 그것은 설교자가 혐오표현을 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지요. 교회 앞에 ‘신천지 추수꾼의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문고를 보고 신천지 측 사람이 그것을 혐오스럽게 느꼈다면, 그 교회는 그 문구를 제거하고 벌금을 물어야 될지도 모릅니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혐오표현”이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행해지는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前科),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의 특성에 따라 규정된 집단 또는 개인에 대한 행위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 “혐오표현”을 성별, 장애, 병력 등의 특성에 따라 규정된 집단 또는 개인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다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로 규정함(안 제2조). 4) 개인 또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유로 해당 개인 또는 집단에게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 등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마. 국가인권위원회는 혐오표현으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4조의 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 피해자의 신청에 의하여 또는 직권으로 그 시정을 명할 수 있음(안 제10조). 바. 국가인권위원회는 시정명령을 받고 그 정한 기간 내에 시정명령의 내용을 이행하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 3천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함(안 제11조). 자. 혐오표현을 한 자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안 제18조). 차별금지법이란 차별금지법이란 표면적으로는 모든 생활영역 특히 성적지향 및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3년 민주통합당 김한길, 통합진보당 김재연, 민주통합당 최원식 의원의 발의로 제안되었고, 2018년에는 더불어민주당 김부겸의원이 혐오표현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남인순 의원이 젠더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안된 법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실질적으로는 성적지향 특히 동성애 및 종교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 구별, 제한, 배제, 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도록 하는 법안으로 학문의 자유, 종교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며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위헌적 요소로 가득한 법안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이 법안은 폐기되어야 하는 법안입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있는 해외 국가의 수와 전세계적인 추세 각 국의 차별금지법 등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네덜란드, 스웨덴, 프랑스, 독일 등의 서유럽 국가를 들 수 있고 아시아에는 홍콩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서유럽국가 등의 차별금지법의 내용은 대한민국에서 발의되고 있는 법안과 그 내용이 동일한 것도 아닙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내의 차별금지법안의 경우는 서유럽 국가의 차별금지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논란이 되었던 것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국에서 드러나고 있는 현실적 문제들 미국의 경우 미국의 경우에는 민권법에서 성적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지 않고 남녀의 성별에 따른 고용 등에 있어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을 뿐이고 우리나라에서 제안된 차별금지법과는 전혀 다른 취지로 제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민권법(Civil Right Acts 1964,1991), 미국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고용상연령차별금지법(The Age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 of 1967), 평등임금법(The Equal Pay Act of 1963) 등은 인종, 피부색, 성별 및 출신국가를 근거로 한 고용상의 차별 및 불평등한 임금의 지급을 금지하는 것일 뿐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이는 우리나라에서 제안된 차별금지법안의 차별의 범위(김한길 및 김재연 법안 제3조, 최원식 법안 제4조)에 규정된 것과 같은 모호한 내용의 차별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나라의 차별금지 법안에 따르면 성별, 학력, 지역, 종교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 구별, 제한, 배제, 거부 등 불리한 대우하는 행위와 같이 그 개념이 광범위하고 모호하게 차별을 규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며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죄형법정주의 등에 반하는 위헌적인 법률이 되는 것입니다. 제3조(차별의 범위) ① 이 법에서 차별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 또는 경우를 말한다. 1.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기혼ㆍ미혼ㆍ별거ㆍ이혼ㆍ사별ㆍ재혼ㆍ사실혼 등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前科), 성적지향, 성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그 밖의 사유(이하 “성별등”이라 한다)를 이유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영역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의 경우 출신, 성별, 가족상황 임신, 외관, 성, 건강상태, 장애, 유전적 특징, 품행, 성적지향, 연령, 정치적 견해, 노조활동, 회원 또는 비회원, 진정한 또는 추측되는 민족성, 국가, 인종, 종교를 이유로 개인 또는 법인의 구성원 또는 법인 사이에 생기는 모든 구별은 차별로 보고 이에 따른 재화 또는 용역 공급의 거부, 정상적 경제적 활동의 수행 방해, 고용거부, 징계 또는 해고를 형법을 통해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프랑스 헌법 제225조의 1내지 2). 또한 프랑스 형법 제222조의 33-2에서 권리와 존엄성의 훼손 또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악화시키거나 직업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기 쉬운 노동조건의 점진적 악화를 목적으로 하거나 효과로 하는 반복적인 활동에 의해 타인을 괴롭히는 것에 대하여도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의 경우 선교의 자유의 일환으로 타종교 또는 동성애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비판하는 등의 언급을 하는 경우 형법에 의하여 처벌될 여지가 있으므로 선교행위 또는 동성애에 대한 폐해를 교육하는 것에 상당한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실제로 프랑스는 칼뱅 등 기독교 지도자들을 배출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현재 프랑스의 기독교 세력은 자생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교회는 스스로 선교하는 행위를 포기한 상태이며 2013. 5. 말 동성결혼허용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일까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3.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의된 차별금지 법안의 문제점 발의자 등 2013년 민주통합당 김한길 및 최원식,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발의를 하였으나 김한길 법안과 최원식 법안은 기독교계와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따라 폐기되었으나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은 그 법안을 폐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유지하며 국회의 통과를 시도하였다가 자동 폐기된 바 있습니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혐오표현규제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이 중 대표적인 차별금지법안인 김재연 법안의 위헌적인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학문의 자유 및 교육의 자주성, 양심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 차별의 정의 법안 제3조의 차별의 정의에서 “성별, 장애, 병력(病歷),…..,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기혼……사실혼 등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前科), 성적지향, 성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그 밖의 사유(이하 “성별등”이라 한다)를 이유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영역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로 보고 있습니다. 법 조항으로 인하여 침해되는 기본권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보육시설, 초 중등학교, 대학교 등을 포함한 교육기관에서 동성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 폐해를 교육하는 경우 동성애 집단을 분리, 구별, 제한 배제하는 차별행위로 보게 되므로 이러한 교육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즉 교육의 자주성과 학문의 자유 및 양심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동성애의 문제점을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고 개인의 성적지향에 따라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동등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물론 동성애에 대하여 문제점을 지적하는 경우 성별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나 편견을 내용으로 편성하거나 이를 교육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교육내용에 있어서 동성애자를 차별한 행위가 되어 해당 교육기관과 교사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즉 동성애에 대한 폐해에 대하여 지적을 하지 못하고 이에 대하여 차별한 것이라고 오히려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고 이에 대하여 해명하여 하는 것은 물론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등 형사처벌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서울시 교육청 소속 중학교 교사가 국어시간에 동성결혼과 관련하여 찬반토론 수업을 진행한 것을 가지로 동성애자를 차별하였다는 이유로 교육청에서 조례위반을 이유로 처벌을 시도한 바 있고, 지방의 한 어린이 집에서 봉사활동을 온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동성애의 폐해와 관련된 동영상을 시청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사례도 습니다. 더욱이 고등교육기관인 대학교에서 마저 동성애의 문제점에 대한 교육을 하지 못하다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대학의 자치와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입니다. 종교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 둘째로 이 법안은 또한 헌법상 국민에게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안입니다. 종교의 자유는 정신적 자유권으로 양심의 자유와 함께 절대적으로 보호를 받는 자유권적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예컨대 기독교 집회뿐만 아니라 불교 집회 등에서 타 종교비판을 통하여 자신들의 종교에 대하여 선전 내지 포교활동을 하는 경우 이는 종교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 구별 제한 배제하는 행위가 되어 이 법을 위반하는 것이 됩니다. 실제로 제주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이단종교에 출석하고 있는 학생에게 출석하고 있는 종교 집단이 이단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에 대하여 이단인 단체가 교육청과 학교장에게 그 교사를 처벌할 것을 요청하는 등의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의 내용으로 선교의 자유 내지 포교의 자유에는 자신의 신앙에 대한 동조자를 규합하기 위한 적극적인 신앙의 실천행위이고 여기에는 교리적인 방법으로 타 종교를 비판하고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을 개종시키는 자유도 당연히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종교상의 이유로 다른 종교를 분리, 구별하는 등 차별한 것으로 보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종교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안입니다. 죄형법정주의 및 평등원칙에 대한 심각한 침해 셋째로 이 법안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며 달리 동성애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문제점을 들 수 있습니다. 즉 종교상의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 구별, 제한, 배제, 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포괄하여 차별로 보고 있고 차별을 당한 자에게 불이익 조치를 하는 경우 2년이하의 징역 등에 처하게 됩니다(제43조). 여기서 집단을 “분리, 구별, 제한, 배제 거부하는 등 불리하게 대우하는 경우”의 용어는 너무 광의적인 용어이며 이는 금지의 필요성 여부의 판단기준이 명백하지 아니하며 법률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어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43조(벌칙) 사용자등이 제42조를 위반하여 불이익 조치를 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한 성적지향에 따라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동성애자들을 정상적인 이성애자에 비하여 과도하게 보호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일반적인 민사소송에 있어서의 입증책임의 분배 문제를 변경하여 피고에게 입증책임을 지우고(제39조 제1항, 제40조), 손해배상과 관련하여 손해액에 대한 입증을 완화하고 있습니다. 차별의 금지 및 예방을 위한 국가의 계획과 예산의 편성을 요구하며(제7조),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하여 긴급구제조치 등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등 동성애자들에 대한 특혜법안인 것입니다. 헌법상의 평등의 원칙은 기회의 균등을 부여한 것이지 성적 소수자에 대하여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오히려 대다수의 국민을 차별하는 결과가 되므로 헌법상의 평등의 원칙에 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차별금지법안이 국회를 통과되는 경우 예상되는 심각한 폐해 가. 교육현장에서의 동성애 교사의 채용과 동성애 교육 및 동성결혼의 허용 만일 위 법안이 통과되면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대학교를 포함한 모든 기관에서 동성애의 폐해를 지적할 수 없게 되고 동성애를 동일하게 교육해야만 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동성애자 교사를 고용하여 우리 자녀에게 동성애를 교육시키는 것을 눈 뜨고 보아야 합니다. 이는 추 후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것으로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종교기관에서도 타종교 등을 비판하거나 자신들의 교리에 배치되는 동성애 등을 구별 및 분리하지 못하게 됨 또한 절이나 교회에서 다른 종교를 비판하는 설법이나 설교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션스쿨에서 다른 종교를 비판하는 종교수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되고, 또한 자신들의 교리와 어긋나는 동성애를 반대하고 이러한 동성애자들을 종교집단에서 분리 구별하여 신앙적인 교리를 고수하는 신앙생활조차도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하는 것으로 보아 처벌까지 받게 되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즉 동성애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동성애자를 구별하고 분리하였다는 이유로 사실상 처벌하는 입법이 되는 것입니다(동법안 제43조). 즉 동성애자인 것을 확인하고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채용하지 않거나 채용된 직원에 대하여 해고하는 경우에 불이익조치로 보아 동성애를 원하지 않는 시민들을 처벌하게 되는 것입니다. 군대 내에서의 심각한 성폭력 조장 군형법 제92조의 6에 규정된 추행죄에 대한 위헌논란이 이미 불거진 상황이며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가 마치 동성애 행위로 간주되어 상급자에 의하여 성폭력이 이루어지는 경우 이를 막을 수 없게 되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위헌적인 요소로 인하여 헌법재판소를 통한 위헌 무효의 법률로 판단 및 시민의 불복종 운동 유발 이러한 법안이 통과되면 궁극적으로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통하여 위헌판단을 받을 수 밖에 없으므로 위 법안은 설사 통과되더라도 우리나라의 헌법질서에 반하여 그 효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위 법이 효력을 계속 가진다고 한다면 시민불복종 운동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녀를 둔 부모님들, 군대에 자녀를 입대시킨 부모들이 학교에서 동성애를 정상적이라고 교육하는 것과 군대의 상관에 의하여 자신들의 자녀가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것을 눈 뜨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5. 결 어 따라서 그 동안 계속하여 제기된 차별금지법안은 죄형법정주의, 평등권에 배치되는 위헌적인 법안일 뿐만 아니라 교육현장에서 학문의 자유, 교육의 자주성 및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종교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며 군대 내에서의 심각한 성폭력을 조장하는 위헌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성애를 교리적으로 반대하는 종교에 있어서는 동성애를 당연히 원하지 않고 반대함으로 인하여 종교기관이 직원을 선발할 때에 자신들의 교리 즉 동성애 반대하고 동성애를 원하지 않는 종교적 교리와 배치되는 사람을 교리적인 이유로 채용하지 않거나, 이미 채용된 직원을 해고하는 경우에는 위 법안에서 규정하는 차별행위에 따른 불리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로 파악하여 처벌함으로써 사실상 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해치는 위헌적인 법안이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법안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018. 5. 1. (사) 애드보켓 코리아 사무총장 자유와 인권연구소 소 장 변호사 고 영 일
    • 기고/강연
    • 기고
    2018-05-28
  • [기고] 꼭 권하고 싶은 책
    책 제목만 들어도 도전이 된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내가 아는 박 장로님에게는 가능한 제목이라고 본다. 오늘날 기도가 메마른 한국교회의 영적 가뭄에 장대 같은 굵은 소낙비가 쏟아지는 느낌이다. 박 장로님은 내가 존경하는 분 중에 한 분으로 이 책은 평신도는 물론 목회자나 신학생들도 꼭 읽었으면 하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의 특징을 다섯 가지 정도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째, 그는 새벽기도에 목숨을 걸었다. 특별히 해외나 먼 지역의 출장을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 3:30분에 기상하여 4시부터 6시까지 본 제단에서 새벽기도를 했다. 이는 1961년 초등학교 5학년인 12세 때부터 지금까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산성산교회 강대상 맨 앞자리를 지키며 실천해 오고 있다.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생활 동안 매일같이 시온을 향하여 기도했던 모습과 동일하다. 그는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록펠러 어머니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기도에 자신의 삶을 걸었다. 둘째, 날마다 말씀을 상고했다. 그는 지금까지 구약을 168독 하고, 신약을 473독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 가운데 기도는 하지만 성경을 읽지 않는 자들 중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처럼 성경을 잃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행위이다. 그러나 박 장로님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했다. 다윗 같이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셋째, 열심히 전도했다. 성도가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지만 전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박 장로님 내외는 기도하고 말씀을 읽을 뿐만 아니라 전도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을 재현하고 있다. 부인 강향숙 권사는 부산성산교회에서 수년간 전도 왕을 하셨고, 그의 기업은 전도의 장이었다. 목회자에게 이 같은 장로가 있는 교회는 정말 복 받은 교회이다. 넷째, 전국 교회 80여 교회 이상 간증집회를 가졌다. 성도의 삶은 간증거리가 되어야 한다. 간증이 없는 삶은 영적으로 죽은 삶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윤리의식이 부재하여 세인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기도한대로 살지 못하니 간증이 상실된 시대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신앙의 대물림이다. 오늘날 기성세대가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박 장로님은 자신을 세우는 것에 거치지 않고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영적 대물림인 믿음의 가문을 이어 가고 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가정이 허물어지고 있는 이때에 다음세대를 위한 믿음의 가문을 세워 간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그는 날마다 믿음의 명문 가문을 세우도록 기도하고 있다. 주님이 바리새인들을 책망할 때 그들이 말하는 바는 들으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그러하다. 많은 설교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신학 이론과 사상이 난무하나 윤리적인 삶과 실천이 부재한 현실에 『새벽기도가 끝나는 날 내 인생도 끝난다』는 박 장로님의 간증집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이때 우리에게 엄청난 도전이 되는 책으로 기꺼이 추천하는 바이다.
    • 기고/강연
    • 기고
    2017-10-17
  • [기고] 故 유은(唯恩) 박영훈 長老님
    ▲ 故 박영훈 장로 1981년 고신대 의과대학 설립을 주도하신 고인을 고신의대의 교목이기 때문에 가까이서 뵐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고, 고인을 뵐 때 마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고인을 처음 뵌 것은 1995년 10월 하순경이었다. 고신대 의학부 교목으로 부임하여 업무 파악을 하던 때였는데 교목실 전화 벨이 울렸다. “예 교목실 황수섭입니다.” “황수섭 교목님이지요? 박영훈 원장입니다. 지금 어디 계세요?” “예 교목실에 있습니다.” “목사님. 그대로 계세요. 바로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러실랍니까? 연구실이 2동에 있습니다.” 연구실 위치를 확인한 후 2동으로 갔다. 그런데 2동 현관 밖에서 박원장님이 기다리시고 계시는 거 아닌가. 노타이 흰 셔츠 팔을 걷어 붙이시고 웃으시면서 악수로 반겨 주셨다. 솥두껑만한 손인데 보들보들한 촉감과 온기를 느꼈었다. 연구실로 들어 가자 말자 작은 냉장고에서 쥬스를 꺼내 주셨다. 쥬스를 마시기는 했지만 내심 많이 놀랐었다. 그 당시 소문으로 듣던 박원장님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비서도 없는 작은 연구실, 꾸밈 없는 소박한 장식장. 천진난만한 느낌의 웃으시는 표정, 비음이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 자리에 앉으신 박원장님께서는, '복음병원과 고신대 의학부(의대. 간대)가 고신교단이나 우리 나라에서 참 중요하니까 학생들 신앙으로 잘 지도해 주시고, 교직원들 주님의 사랑으로 목회 잘 하시라.'는 덕담을 해 주셨다. 연구실을 나서는데도 현관까지 배웅을 해 주시면서, “고맙습니다.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만납시다.” 신임 교목을 환영해 주신 것 같았다. 그 당시 고인께서는 의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하셨던 해였지만 고신의료원(복음병원과 의학부)의 어른이셨는데 40세 채 안된 교목에게 관심을 주신 것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더 놀랍고 존경하는 것은 그 이후에 공사간 많이 뵈었었지만 1995년 그 날 처음 뵙던 그 모습이 변함없으셨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으시든 전화를 하시든 첫 마디 말씀은 항상 “목사님 어디 계십니까? 바로 그리로 갈게요.” 헤어질 때는, “고맙습니다.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만납시다.” 돌아 가시기 전 병석에 누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셨지만 역시 비음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인의 신앙과 삶을 다 기록할 수 없지만 몇가지만 쓰고자 한다. 고인은 목사를 귀하게 여기시고 예우하신 분이셨다. 한상동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명동 목사님,... 고신 교단의 초창기 많은 목사님들을 진심 존경하고 귀하게 여기셨다. 송도제일교회를 세우실 때 목적 중 하나가 목사님을 최고로 대우하는 교회를 만들자고 하셨단다. 훌륭한 목회자 양성을 위하여 신학대학원을 지원해야 한다는 부담을 늘 가지셨다. 아들 연배인 저를 한번도 '오라' '가라' 하시지 않으신 것도 목사로 예우하셨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고인은 감사의 마음이 충만하신 분이셨다. 약간의 도움만 드려도 ‘고맙습니다.’ 푸른 산, 하얀 구름을 보시면서도 ‘주님 고맙습니다.’ 항만, 뻥 뚫린 도로, 달리는 자동차를 보시면서 연신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불과 4,50년 전만해도 벌거숭이 산이었고 먹을 게 없어서 굶주렸는데 이렇게 우리 나라가 부요해졌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복을 얼마나 많이 주셨는지 참 감사한 일이죠.’ 고인은 낭만적인 분이셨다. 드라이브를 하다가 좋은 경관이 보이면 ‘잠간 내렸다가 갑시다. 참 멋진 곳이네요.’ 젊은 시절엔 교회 성가대 지휘를 하셨고 피아노로 찬송가 반주를 하실 정도였다. 한번은 강당을 열어 달라고 하시더니 혼자서 피아노로 찬송을 연주하며 콧노래를 부르셨다. 헤어질 때의 인사말씀은, ‘즐거웠습니다.’ 식사든 드라이브하셨든지 간에 즐거웠다고 표현하시는 낭만적인 분이셨다. 고인은 주님의 은혜를 고백하신 분이셨다. 고신의료원(복음병원, 고신의대, 간호대)의 역사와 발전상을 말씀하실 때나 ‘원장님 정말 큰 일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으실 때에 늘 하시는 말씀은, ‘내가 뭐 압니까? 저는 벅수, 바보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아이디어도 생기고 좋은 협력자들을 주셨고 교단 지도자들이 믿고 적극 도와 주셔서 맡은 일 한 것 뿐입니다. 모든 게 다 주님의 은혜 뿐입니다.’(*그래서 號가 唯恩. 오직 恩惠) 고인은 소박하고 검소하게 사신 분이셨다. 화려한 옷차림이나 명품을 본 적이 없었다. 콤비를 입으시고 시내버스를 타시고, 무슨 음식이든지 잘 드셨다. 검소한 삶이 몸에 베여 있었다. 그렇게 사시면서 저축한 거금을 2013년에는 후학을 위하여 기부하셔서 고신의대 <유은홀>이 만들어졌다. 그런 삶을 배운 자녀들도 고인의 장례식을 거창하지 않게 가족장으로 치뤘다. 부고도 별로 하지 않고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고인은 참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세상으로 나아 가는 개혁주의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시며 실천하시면서 사신 분이셨다. 고인의 생애에서 부산 송도를 뺄 수 있을까? 암남동 34번지에서 고인의 업적을 뺄 수 있을까?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의과대학 간호대학에 고인의 손길 가지 않은 곳, 눈길 머물지 않은 곳 있을까? 모든 직을 내려 놓으신 뒤에도 홀로 병원 구석 구석 의대 간대 층층에 쌓인 추억을 더듬으시면서 기도하셨던 고인의 소원이 응답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고신의료원은 주님의 뜻이 담겨 있고, 고신 교단 어르신들의 눈물이 있고, 여러 사람의 수고로 이만큼 일궈진 병원과 대학입니다. 더 발전하여 고신 교단과 이 나라에 크게 쓰임 받으면 참 좋겠습니다.’
    • 기고/강연
    • 기고
    2017-09-25
  • 시한부 종말을 주장하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이 글은 6월 21일(수) 번영로교회에서 개최된 제2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 전문입니다.) 시한부 종말을 주장하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탁지일교수(부산장신대학교/월간현대종교 이사장겸 편집장) 1. 성령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은 한국사람 하나님의교회는 한국인 남녀를 각각 ‘성령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으로 신격화한다. 설립자인 안상홍(安商洪)을 ‘재림 예수’, ‘재림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으로, 그리고 1985년 안상홍 사후 후계자로 등장한 장길자(張吉子)를 ‘어머니 하나님’, ‘새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 ‘성령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로 믿고 있다. 이 글은 『교회와 이단』(두란노, 2016)에 게재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교회 건물 급격히 증가”(「현대종교」, 2016.12), “법원, 하나님의교회가 가정파괴 야기한 사실 인정”(「현대종교」, 2017.2), “하나님의교회 비판 가이드라인”(「현대종교」, 2016.1) 등의 기사 내용을 추가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송을 ‘안상홍님 지으신 모든 세계’로 바꿔 부르고, ‘안상홍 하나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포교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안상홍님’에게 기도하고 ‘아버지 안상홍님 이름’으로 기도를 마무리한다. 어린이들에게는 “십자가를 세우지 마세요. 일요일도 거짓말예요. 우리는 이 세상 교회 없는 어머니도 있죠. 우리의 구원자 안상홍님도 계신답니다. 안상홍님 믿어야 하늘나라에 가죠”라는 노래를 가르친다. 안상홍과 장길자 두 사람이 하나님으로 등장한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교회는 창세기 1장 26절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 나오는 ‘우리’라는 복수형 단어를 성경적 근거로 들고 있다. 즉 여기서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히브리어 ‘엘로힘’은 복수 명사며,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으니, 따라서 하나님은 복수인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엘로힘’(אֱלֹהִים)은 ‘엘로아’(אֱל֫וֹהַּ)의 복수(gods)로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한 분 하나님(the supreme God)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다. 하나님의교회는 부정확한 성경 원어 해석을 근거로 한국인 남녀를 하나님으로 신격화하고 합리화하는 데 이르게 된 것이다. 주목할 점은, 표면적으로는 안상홍과 장길자에 대한 신격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교회 실세는 김주철(金湊哲) 총회장이다. 하나님의교회 정관 제28조에 따르면, “총회장은 성령 안상홍 하나님께서 세우신 김주철님이시며, 영구직이다”라고 명시 하고, 총회장의 직무에 대해, “모든 회의의 의장이고, 진리를 전수하여 반포하는 책임자이며, 자산에 대한 최고 책임자로 총회 재정을 감독하고, 정관 및 규정의 최종 해석권자이며, 권징의 최고결정권자이고, 총회 운영 부서 및 지역 교회를 통괄하는 책임자”라고 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안상홍과 장길자는 겉으로만 신격화된 인물들일뿐, 막강한 절대 권력을 가진 김주철 총회장이 바로 하나님의교회 실세라고 할 수 있다. 2. 반복되는 시한부 종말 주장 하나님의교회 설립자 안상홍의 교리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곳은 장길자와 김주철의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www.watv.org)가 아니라, 안상홍의 아들이 이끌고 있는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 교회(www.ncpcog.co.kr)다.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안상홍의 교리를 계속 변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와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면서, “근본 뿌리와 진리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 세계복음선교협회(증인회)는 1985년도 이후에 안상홍님의 가르침에도 없고 성경에 모든 선지자들이 증거하신 적도 없는 어머니 하나님을 세우고 또한 시대별 구원자와 새 이름이라는 교리의 바탕으로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안상홍님의 함자로 기도를 올리고 … 현재는 살아생전 안상홍님의 책자와 육성 말씀의 가르침보다는 그곳에서 만든 교리를 바탕으로 책자를 만들어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하는 데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는 자신들이 안상홍의 가르침을 그대로 준수하고 있는 정통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홈페이지에는 안상홍의 모든 저서, 친필로 기록된 설교문과 교회연혁, 육성 설교, 유품, 사진 등을 전자책 및 그림파일 형태로 게시하고 있어, 가장 정확한 안상홍의 원래 교리 연구를 가능하게 해 준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하나님의교회 교리는 시한부 종말론에 기초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교회는 ‘1988년은 세상 종말’이라고 주장하는 전단지를 배포했다. 또한 1988년뿐만 아니라 2012년도 종말의 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988년과 2012년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오히려 하나님의교회는 2012년 한 해 동안, 전국 29개 지역에 건물을 신축하거나 부동산을 매입해, 그들의 시한부종말 주장이 허구였음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교회는 시한부 종말론 주장을 줄곧 부인해 왔지만, 최근 수원지방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안상홍 사망 이후 1988년 종말이 온다는 취지의 전도서를 만든 바 있고, 1999년에는 신도들에게 Y2K나 1999년 지구 멸망 예언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였으며, 하나님의교회 내에서 2012년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주장 또한 제기되었던 점”을 이유로 들어 하나님의교회 시한부 종말론이 허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와 관련해서, 안상홍은 교회 내에서 여성을 신격화하거나 여성이 지도력을 갖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983년 측근 엄모 여 전도사로 인한 분란에 대해, “예루살렘을 한 여자로 해석한다는 것은 정신환자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설교를 통해 경고하고, 신부는 한 여성이 아니라 144,000 성도들이라고 단언했다. 1985년 안상홍 사후, 서울과 부산 세력으로 교회가 분열되는 과정에서 김주철 총회장이 직접 작성한 글에 따르면, “장길자 전도사 본인 자신도 우상화하는 것을 원치 않고 우리도 우상화할 수 없다 … 144,000 성도들이 신부이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은 결코 지켜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교회는 설립자 안상홍의 교리 중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취사선택하여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필자가 방문했던 양산 통도사 인근 공원묘지에 있는 안상홍의 무덤은 하나님의교회가 주장하는 내용과는 격이 맞지 않는 규모로, 벌초조차 되지 않고 방치된 모습이었다. 3. 종말은 실패해도 교세는 오히려 성장 하나님의교회 시한부 종말 주장에는 종말이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한부 종말 주장은 계속 실패했지만 교세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신격화된 안상홍이 사망하고 시한부 종말 주장이 실패하면 신도들이 하나님의교회를 떠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국내외 이단들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상식의 눈’이 아니라 ‘신도들의 눈’을 통해서 바라볼 때 이해할 수 있다. 즉 신격화된 교주의 죽음과 시한부 종말 주장의 실패를 받아들이는 순간 신도 자신은 정체성의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된다. 게다가 그 단체에 몸담고 헌신했던 지난날들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은 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이러한 현실은 교주의 죽음과 시한부 종말 주장의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그 이유는, 자신의 선택을 반대했던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받을 비난과 동정이 두렵기 때문이다. 결국 신도들은 스스로를 위해 교주의 죽음을 미화하거나 업그레이드된 신격화 과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또한 교리 변개를 통해 새롭게 설정된 또 다른 종말의 때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변개된 교리를 근거로 배수진을 치고 재무장한 신도들은, 외부적으로는 공격적인 포교 활동을 통해 새로운 신도들을 영입하고, 내부적으로는 2세대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교세의 확장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하나님의교회는 자신들의 신도 수가 수백만에 이른다고 주장하지만, 대략 20~30만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단연 국내 최대 이단 조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주력 연령층이 30~40대라는 사실이다. 특히 주된 포교 대상은 30~40 주부들이다. 이들 주부들을 미혹하면, 그들의 자녀들이 함께 오게 되어있고, 만약 나중에 남편이 알게 되더라도, 하나님의교회에 가는 것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편들이 반대할 경우, 이혼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아내가 하나님의교회에 가는 것을 용납하거나, 혹은 자신도 따라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해외에도 다수의 외국인 신도들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해외 선교사들 및 현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교회는 이미 복음 전도의 장해물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 해외 교회 설립 현황을 분석하면 세계 곳곳에 수많은 모임처들이 세워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구 반대편 페루에도,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도 수십 개의 하나님의교회가 짧은 시간 내에 세워져 운영 중이다. 현지 선교사들에 따르면, 하나님의교회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건물을 세우고 신도들을 미혹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하나님의교회 피해자들이 인터넷사이트(www.examiningthewmscog.com 혹은 encountering-ahnsahnghong.blogspot.kr)를 통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공동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교회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의 재산이 3~4조에 이른다고 한다. 통일교처럼 사업을 하지 않는 하나님의교회가 어떻게 이런 거대한 자산을 가지게 되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분명한 점은, 탁월한 사업 아이템인 시한부 종말론의 실패와 재설정을 거듭하는 동안, 하나님의교회 교세는 성장하고 재산을 지속적으로 증식해 왔다는 사실이다. 4. 오른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왼손이 알게 하는 홍보 전략 하나님의교회의 홍보 방식이 특이하다. 한편으로는 가가호호 방문과 거리 포교 등의 직접적인 포교 전략을 구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 성격을 감춘 채 지역 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노출을 시도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장길자가 대표로 있는 ‘국제위 러브유 운동본부’(www.weloveu.or.kr)와 ‘새생명 복지회’(www.newlifewf.org)가 그 전위 조직들이다. 성경은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 6:3)라고 가르치며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하나님의교회의 경우는 정반대다. 오히려 오른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왼손이 알게 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 하나님의교회 홍보 패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 사회 봉사활동을 한 후, 그 내용을 상대적으로 통제가 용이한 지역 언론을 통해 기사화한다. 둘째, 해당 기사를 가지고 지역 공공기관을 찾아가 상장 수여를 요청한다. 주민 선거로 구성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를 거절할 명분을 갖기 어렵다는 것을 하나님의교회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수상 내용을 보도 자료로 배포하여 다시 기사화하거나, 자신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나 신도들의 블로그에 올려 선전한다. 넷째, 이를 밖으로는 포교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안으로는 반대하는 신도들의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설득하는 데 사용한다. 이 과정을 국내외에서 반복하며 주변 사회에 성공적인 정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신흥 종교 단체의 사회적 노출 정도와 효과는 그 성패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통일교를 비롯한 1세대 이단들이 네거티브 홍보(negative promotion)를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사회에 알렸다면, 최근 신세대 이단들은 포지티브 홍보(positive promotion)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사회에 각인시킨다. 즉 자신들이 사회적 역기능을 수행하는 위험한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 친사회적인 평범한 종교 단체인 것을 알리는 전략이다. 물론 이들의 최종 목적은 명백히 반기독교적이다. 즉 안상홍과 장길자를 하나님으로 세상에 알리며, 하나님의교회가 기독교의 대안 세력으로 사회에 자리 잡기 위함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교회 홍보 전략은 일면 성공적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성공이 기독교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하나님의교회는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기독교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타락한 기독교의 대안 세력으로 세상에 내세우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개혁은 이단 대처에 필수적이다. 개혁된 교회만이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이단들의 도전에 응전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교회의 이단 대처 현장에 사리사욕과 정적 제거의 목적을 가지고 이단 문제를 악용하는 교회 정치 세력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 기득권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이들 정치 세력들이 바로 이단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이단 대처를 위한 연합 활동을 방해하는 반교회적 세력들이기 때문이다. 이단과 주변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영적 신호를 읽을 줄 아는 교회만이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는 동력을 가질 수 있다. 5. 부산울산경남지역 하나님의교회 현황 하나님의 교회가 발흥한 부산지역은 국내 다른 지역에 비해, 사회봉사 및 거리와 가가호호방문 포교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교회 및 교육관 건물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어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다음은 부산울산경남지역 하나님의교회 현황이다. 2016년 12월 현재, 부산광역시 9곳, 울산광역시 5곳, 경상남도 11곳으로 나타난다. 6. 하나님의교회 대처 가이드라인 시한부 종말 주장으로 사회와 가정에 혼란을 야기하는 하나님의교회는 사회봉사 단체라는 복면을 쓴 채 친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이들의 포교 전략은 조직적이고 집요하다. 청소년들과 청년·대학생들은 물론이고, 어린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젊은 가정주부들에게까지 집중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거리에서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에게 미혹된 청소년들이 하나님의교회로 자의 반 타의 반 이끌려 들어가 교리 교육과 침례까지 받는 피해 사례들이 발생하는가 하면, 집요한 가가호호 방문 포교를 통해 미혹된 주부들로 인해 가정불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봉사라는 복면을 쓰고 정체를 감춘 채 친근하게 접근하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예방과 대처 없이 한국 교회의 복음 전도와 이단 대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나님의교회에 대처하기 위한 합법적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 첫째,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은 길거리 혹은 집을 방문해 집요한 포교를 진행한다. 거절에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을 길에서 미혹해 교리 교육을 시킨 후 침례를 주기도 하고, 집을 방문해 교리 교육을 시킨 후 집안 화장실에서 샤워기로 침례를 준 사례도 있다. 성경은,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하고 멀리하고(딛 3:10),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요이 1:10) 권면한다.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의 접근을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에게 집요하게 접근하는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을 만나면 주변 사람들이나 공권력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도록 자녀들에게 경계 예방 교육을 해야 한다. 둘째, 교회 밖 봉사활동에 신중해야 한다. 다양하게 진행되는 하나님의교회 봉사활동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자녀들이 사회봉사학점 이수를 위해 봉사활동을 해야 될 경우, 혹시라도 하나님의교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물론 다른 이단들도 최근 사회봉사활동에 집중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각 지역 자원봉사 단체에도 하나님의교회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고 있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단체에 대해 미리 확인한 후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셋째, 가면을 벗겨야 한다. 대통령표창 등을 수상했다고 선전하는 하나님의교회 정체를 주변 이웃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즉 하나님의교회는 한국인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으로 신격화하는 단체며, 반복적으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해 왔고, 이로 인해 재산 갈취와 가출과 이혼을 조장한다는 사실이 재판을 통해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 (아래의 참고자료 1~3). 이를 통해 하나님의교회를 경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 하나님의교회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하기 위해서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 교회가 다시 사회봉사의 아이콘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아가는 교회만이 시한부 종말의 위기를 조장하며 ‘참된 하나님의 교회’를 오염시키는 ‘이단 하나님의교회’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7-06-23
  • 이단 신천지의 실체
    (이 글은 6월 21일(수) 번영로교회에서 개최된 제2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 전문입니다.) 이단 신천지의 실체 권남궤실장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단상담실) 1. 교주 이만희의 약력 및 신천지의 태동 교주 이만희는 1931년 9월 15일 경북 청도군 풍각면 현리 702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7세 때 서울에 상경하여 건축업에 종사하다가 1948년 외국 선교사에게 이끌려 경복궁 앞 천막교회에서 침례를 받았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와 풍각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고 다시 서울로 상경해 1957년 박태선의 전도관에 입교하여 신앙촌에 머물다가, 이어서 유재열의 장막성전에 가입한다. 이후 이만희는 장막성전의 아류로 분류된 자칭 보혜사라고 주장했던 백만봉의 재창조교회를 섬기다가 이탈하여 장막성전 동료인 홍종효와 함께 1980년 3월 14일 경기도 안양에서 신천지교회를 시작한다. 신천지 포교의 동력이 되었던 센터는 1990년 6월 12일 서울 서초구 방배 2동에 신학교육원을 설립하고 8월에 제 1기 수강생을 모집한 것이 무료성경신학원의 출발이다. 1991년 1월, 부산에 신학 교육원을 설립하였고, 동년 5월에 광주에 신학 교육원을 설립하였다. 1992년에는 영등포, 동해, 천안, 대전, 대구, 제주도, 성남, 인천, 안양, 불광, 구의, 신설, 신촌에 교육원을 설립하여 전국으로 확장시켜 현재는 12지파 본부 교회와 산하 지교회 55개소, 전국 266개의 센터(교육원)와 801개의 복음방, 위장교회, 위장 문화센터가 신천지 교육장소라는 것을 숨긴 채 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해외에는 31개국에 교회와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유럽 8곳, 오세아니아 2곳, 아프리카 5곳, 아시아 9곳, 북아메리카 2곳, 남아메리카 5곳) 2. 신천지 조직구성 및 추수꾼 훈련 시스템 신천지의 조직구성은 총회장 이만희를 중심으로 7교육장, 12지파장, 24장로들이 핵심 인물들이다. 12지파별로 지파장, 교회장, 총무, 부서장, 부장, 지역장, 구역장, 구역원으로 직책이 구성되며, 직분은 강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문도가 있다. 신천지는 철저한 상하구조의 체제로서 절대 복종의 위계질서를 강조한다. 신천지가 전도에 특심한 이유는 144,000의 수를 채우면 순교자의 영혼들과 신천지인들이 신인합일함으로 육체가 변화되어 이 땅에서 육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영생관 때문이다. 그래서 전 교인의 추수꾼화, 전 교인의 특전대화(특별 전도대원)를 완성하기 위해 신천지 12지파가 경쟁적으로 추수꾼 훈련 시스템을 구축하여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신천지 교인들을 전도기계로 세뇌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훈련시키는 것이 복음방 교사 교육이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면서 섭외방법, 유도멘트, 정신무장, 스피치훈련을 반복적으로 훈련시켜 시험과 실적에 따라 정교사 자격증을 부여한다. 신천지에서는 전도의 실력자들을 특전대로 분류해 운영하고 있으며, 그 명칭은 총회 특전대, 지파 특전대, 지교회 특전대, 부서 특전대 등으로 구분한다. 3. 포교단계 및 방법 4. 포교 접근 멘트 ✤ 혹시 이런 질문을 받아보셨습니까? 성도님은 이단 신천지를 만나셨습니다. 1) “고아원 아이들에게 보낼 사랑의 메시지를 적어주세요.” 신천지가 만든 위장 봉사단체로는 (사)만남, HWPL(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IPYG(국제청년평화그룹), IWPG(세계여성평화그룹), 그루터기, 열린 이웃, 굿 프렌즈 등이 있고 불우이웃돕기, 독거 노인 돕기, 김치나누기, 사랑의 쌀 나누기, 벽화봉사, 고아원 아이들에게 편지쓰기 등의 봉사활동으로 접근한다. 2) “저희 교회에서 건강 세미나해요.” 신천지로 넘어간 기존의 목회자들을 앞세워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을 걸고 위장교회를 만들어 미혹하며, 또한 찬양집회나 성경세미나, 아버지학교, 제자훈련, 품성학교, 문화강좌, 건강세미나 등을 마련하여 포섭한다. 3) “동화구연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문화센터가 있는데 같이 가요.” 신천지가 위장 문화 센터를 만들어서 자기개발특강, 연애특강, 힐링콘서트에 초대하며 오카리나, 종이공예, 꽃꽂이, 발마사지, 컴퓨터, 리본공예, 영어회화, 비누공예, 십자수, 가야금, 고전무용, 장구춤, 민요, 요가, 삭스돌, 캘리그라피, POP, 동화구연, 악기, 수지침 등 전문영역을 가르치면서 접근한다. 4) “선후배 멘토링 해요.” 어플(예그리나, 맛집투어, 밥한끼와 토크, 여행, 피아노, 독서, 스포츠 동호회 등)을 이용해 회원을 모집하거나 대학 캠퍼스 강당을 빌려 예비대학생들과 대학 선배들을 일대일로 연결시켜서 예비 대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위장으로 만들어 접근한다. 5) “영어스터디 함께 해요.” 대학 캠퍼스 내에서 위장 영어 스터디 및 농구 동호회, 스피치 동아리 등을 만들어 모임을 통해 접근한다. 6) “설문지 하나만 해주세요.” 버스정류장, 학교 캠퍼스, 지하철, 공원, 길거리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접근한다. 설문지 내용은 신앙적인 색채를 띠지 않으며 연락처를 기록하도록 한다. 주로 힐링상담, 진학상담, 다문화가정 및 탈북자 상담, 유대인학습법, 자녀양육법, ST club 재능 나눔 신청, 심리검사, 성격유형검사, 한국형기질검사(사군자), 애니어그램, MBTI, 미술치료, 스트레스 검사 등의 설문 이후 검사 결과를 알려준다고 유도하여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접근한다. 7) “어제 밤 꿈에 OO님을 보았는데 흰 세마포를 입고 계셨어요.”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거짓으로 만든 꿈이나 환상으로 주님이 보여 주셨다고 하면서 접근한다. 8)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라는 데 무슨 의미인지 아세요?” 신천지는 성경에 대한 궁금한 내용을 담은 ‘궁금증 유발멘트’를 통한 전략도 쓰고 있다. ‘궁금증 유발멘트’는 성경 내용의 의문을 풀어주기 보다는 포교 대상자에게 궁금증을 유발시켜 다음 약속을 잡고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한 수단이다. ‘궁금증 유발멘트’ 로는 아래와 같다. “요한계시록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 세상 종말이 어떻게 될 것 같아?” “열 처녀 비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등과 기름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야?” “아담 이전에도 사람이 있었다는 것 알아?” 9) “좋은 말씀을 전해주는 선교사님과 함께하는 모임이 있어요.” 큐티(QT)나 성경공부를 하면서 천국보화 비유(마 13:44-46)를 예로 들고 교회, 목회자, 성도 및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면 섬기는 교회 목사님과 꼭 상담한다. 10) “잡지사에서 나왔습니다. 청년들의 트렌드에 관련한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잡지사 기자를 사칭한 인터뷰 요청은 대학생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관심사에 맞는 접근방법으로 다양하게 진행된다. ■ 이단신천지 전국 신도수 (2016년 12월 기준) 2015년 161,691명 → 2016년 12월 기준 172,775명, 11,084명 증가 6.90%증가 ■ 이단신천지 전국 센터 등록수 (2016년 한 해 동안) 5. 신천지의 핵심 교리 신천지의 3대 핵심교리는 실상교리, 육체영생교리, 성경공부교리이다. 이 중 성경공부교리는 일명 비유풀이라고도 하며, 일종의 미혹교리로서 실상교리와 육체영생교리로 이끌기 위한 미끼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실상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시대별 구원자론 (배도-멸망-구원) 교리이다. 1) 실상교리 ① 신천지에서 말하는 ‘실상’의 의미 ‘실상’이라는 단어의 원뜻은 ‘실제 모양이나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 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천지에서 말하는 실상은 예언이 성취되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나타났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계시록의 각종 상징, 인물, 사건을 모두 신천지의 역사에 대입해서 해석한다. 즉 신천지 창립부터 일어난 모든 사건과 이만희씨에 관계된 사건들이 계시록 성취의 사건으로 이해한다. 계시록의 예언이 실상으로 성취되는 때에 실상의 주인공인 이만희씨가 유일한 계시받은 자임으로 그를 믿고 신천지에 와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논리이다. 신흥 이단 교회였던 과천의 장막성전이 정통 교회로 개혁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요 한 계시록의 예언에 꿰어 맞춰 실상이라 한다. 경기도 과천 소재의 장막성전의 교주였던 유재열씨는 계시록 12장의 해를 입은 여자이며, 초림 때 길 예비사자 세례 요한의 입장으로 온 사람이며, 유씨 부자 등 일곱 사람은 배도자로서 예수님의 손에서 떨어진 일곱 별. 개혁의 주제였던 오○○ 목사는 멸망의 아들, 이방 사람의 아내 밧세바에게 나서 이방신을 섬긴 솔로몬과 같은 자, 또한 땅에서 올라온 666 짐승, 뱀, 일곱 머리에 속한 여덟째 왕. 이만희와 홍종효씨, 이 두 사람이 옥고를 치른 사건은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이 짐승에 죽임을 당한 것. ◆ 이만희씨는 이를 배경으로 자신을 다음과 같이 증거 한다. - 계시록의 실상을 사건 현장에서 보고 들은 증인, - 계시록 1-4장의 예언대로 예수님의 성령이 임해서 7별에게 편지하고 하늘에 올라간 사도 요한 같은 자, - 6장과 19장의 예수님께서 타신 백마, - 10장 말씀과 같이 하늘에서 온 열린 책을 받아먹고 가르치는 약속한 목자, - 12장의 여자가 낳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 - 19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영이 임하는 어린양의 신부, - 2장-3장에서 니골라당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거룩한 성이 함께하는 이긴 자, - 12장, 13장, 15장, 17장의 예언대로 7머리와 10뿔 가진 짐승과 싸워 이긴 자, - 마24:45-47의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 - 요14: 15: 16: 다른 보혜사. ◆ 이만희씨는 신천지인들에게는 : 말세에 약속한 목자, 계시록의 사도요한과 같은 사명자, 말세의 구원자, 보혜사, 오늘날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메시야, 그리스도인 셈이다. 그리고 신천지 교회는 계15:5에 약속된 증거장막성전이고, 계14:1에 144,000명이 서 있는 시온산의 실상이며, 이곳이 말세에 약속된 성전과 구원의 처소라고 주장한다. ② 노정순리 즉 시대별 구원자론 신천지의 배도-멸망-구원(줄여서 ‘배멸구’ 라고도 부른다)의 교리는 살후2:1-3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한 목자를 선택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창조하셨지만 택한 목자의 배도와 이방 멸망자의 출현으로 창조세계가 멸망하고 그 후 하나님이 새 목자를 구원자로 택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신다는 교리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아담의 세계가 부패하고 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세우시고 아담의 세계를 홍수로 멸하셨다. 노아의 세계도 부패하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가서 장래 일을 알리시고, 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족장들 중 10족장(여호수아와 갈렙 제외)이 불신하고 불순종하므로 모세를 비롯한 출애굽 세대는 광야에서 죽게 되고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워 후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언약(모세를 통해 세우신)대로 살아가게 하셨다. 그러나 솔로몬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자 이스라엘이 멸망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 장래의 이룰 일을 예언하셨으니 이 약속이 구약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 하나님은 약속대로 예수님에게 오셔서 구약을 성취하셨고, 예수님을 통해 장래 일을 약속하신 것이 신약이라는 것이다. 이 신약은 주의 재림 때에 성취된다는 것이다. 그 성취된 일을 사도요한에게 알렸으니 이것이 계시록이다. 그런데 이 계시록은 봉인된 책이라서 아무도 펴거나 볼 자가 없고(계5:1-3) 오직 계시록 사건 전체가 어떻게 성취되는지 본 자만이 알 수 있는데 그 사람이 신천지 집단을 세운 ‘이만희’라는 것이다. 즉 아담세계 → 노아의 세계 → 아브라함의 세계 → 모세의 세계 → 예수님을 통해 ‘영적 이스라엘’ 세계창조 → 새로운 약속의 목자를 통해 ‘영적 새 이스라엘’인 신천지 시대 창조, 이런 과정(노정)을 거쳐 신천지를 마지막으로 영원한 세계가 펼쳐진다는 주장이다. 위와 같이 신천지의 역사관에 의하면 각 시대마다 다 배도하고 부패했으니 결론적으로 거룩한 신천지 집단에 와야만 구원을 받게 되며, 기성교회마저도 부패한 영적 이스라엘에 해당하므로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천지에서는 기성교회를 격렬하게 매도하고 비난하여 바벨론이라고 치부한다. 이와 같은 신천지의 시대별 구원자 교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성경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첫째, 시대별로 구원자가 따로 있다는 것은 성경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원자로 말씀하셨다(창3:15, 요1:1-5).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주신 제사 제도, 절기, 의식, 규례 등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모형이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8:5)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 무엇보다도 구원의 본질은 무엇인가? 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이다. 구원자의 조건은 죄 문제를 해결하셔야 한다. 인간은 죄로 인해 부패하여 가망이 없으므로 아예 구원자 후보에도 오를 수 없다(롬3:10-12). 그러므로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이 구원자가 될 수 없다.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유일한 구원자로 증거한다(행4:11-12). 둘째, 기성교회를 전면 부정하고 새로운 교회를 주장하는 신천지의 가르침은 교회의 연속성을 부인하는 이단 사설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3:14)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딤전1:18) 디모데가 어릴 때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그리고 바울에게서 교육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조상 대대로 물려온 참된 믿음의 교훈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통하여 배우는 가르침도 교회 역사를 통하여 대대로 전해져 온 것이다. 2,000년 동안 예수님은 교회를 그의 영이신 성령을 통하여 지도해 오시고 지켜오셨다(마16:18, 딤전3:15). 그런데 뜬금없이 지금까지의 교회와 그 가르침을 부정하고 새로운 집단인 신천지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기성교회가 부패하여 구원이 없으므로 자기들에게로 와야 구원이 있다고 하는 말은 지금까지 교회를 세우시고 이끌어 오신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과 역사의 중심에 계셨던 성령님을 모독하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신천지에서 시대별 구원자론을 주장하고 기성교회를 부정하는 것은 신천지를 부각시켜 신천지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려는 억지일 뿐 성경의 흐름이나 가르침과는 맞지 않는다. ③ 위와 같은 실상교리의 문제점 실상교리 자체의 구도가 잘못되었다. 구약과 신약을 나누어 구약의 예언은 초림 때에 성취되고, 신약의 예언은 재림 때에 성취되므로 최종 성취자인 이만희씨가 최종구원자라는 것은 성경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원자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심판자와 구원자를 구분하는 것도 성경과 맞지 않는다. 초림 때 예수님이 구원자로서 오셨고, 재림 때에도 예수님은 구원자이면서 심판자로서 오신다고 성경은 이야기 한다. 그래서 계6:-11:에서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의 재앙(심판), 계15:에서는 일곱 대접의 심판을 이야기하며, 계20:에서는 최후 심판으로서의 백보좌 심판을 묘사하고 있으며 심판의 주체는 어린양이시며,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로 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 맨 마지막 부분도 최종 구원자요 심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22:20-21) 즉 계시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구원자도 예수 그리스도, 심판자도 예수 그리스도, 역사의 종결자도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1:8) 이러한 구도 속에 이만희씨가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 2) 육체 영생교리 ① 신천지의 영생교리와 계7:의 144,000명 신천지에서는 계7:의 144,000명과 큰 흰 무리를 구분하고 있다. 즉 144,000명은 제사장의 수이며, 계7:의 후반부에 나오는 흰 옷을 입은 큰 무리는 일반 성도들이 라고 가르친다. 144,000명은 계20:4의 목 베임을 받은 ‘순교자의 영들’로서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왕 노릇할 자들이며, 큰 흰 무리는 그들의 백성으로서 144,000명을 섬기게 된다는 주장이다. 자세히 말하면 144,000명이 차면 예수님의 영은 이만희씨의 육체와 결합하고, 144,000명 ‘순교자의 영들’은 신천지인 144,000명의 육체와 결합하여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그들이 말하는 육체 영생교리이다. ② 144,000명은 실제 수인가, 상징적인 숫자인가? 먼저 144,000명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 숫자는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계7:4에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4,000’ 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지구상의 실제 나라인 이스라엘 사람들만 구원받는 것이 되어서 성경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당연히 여기서의 ‘이스라엘 12지파’는 영적인 이스라엘을 뜻한다. 계시록의 모든 단어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신천지가 숫자만큼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일관성 없이 자기 편리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③ 신천지의 육체 영생교리의 문제점 신천지에서는 구원받는 무리들을 144,000명과 흰 무리로 구분하였다. 그렇다면 구원받는 사람들 사이에 차별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 성경 어디를 봐도 구원받는 사람들 사이에 단계나 차별이 있다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차별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10:12). 그리고 구원받는 모든 사람들을 제사장 무리와 기타 무리로 구분하는 것은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이 성경에서는 구원 얻는 성도들을 모두 영적인 제사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벧전2:5,9) 3) 성경공부교리(말씀의 짝, 비유풀이, 영적해석) ① 신천지의 성경공부교리 즉 비유풀이의 목적 신천지에서는 성경에서 말씀하신 예언적인 내용 특히 천국비밀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감추었기 때문에 비유를 풀어야만 천국을 깨닫고 천국이 허락된다고 주장한다. 신천지 집단만이 이 천국비밀 즉 비유를 올바로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첫째, 교주를 재림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재림 주는 하늘로부터 구름을 타고 호령과 천사장의 나팔 소리 가운데 오시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여인에게서 태어난 자신들의 교주를 재림주로 내세울 수 없다. 그래서 구름, 하늘, 나팔소리 등을 비유라고 하여 자기들 방식대로 풀어서 교주를 재림 주로 끼워 맞추는 것이다. 둘째로, 성경을 자신들이 만든 교리에 맞추기 위해서이다. 결국 이단 신천지를 비롯한 여러 이단들이 성경 해석을 비유풀이로 하는 것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핵심교리를 믿게 하고 교주를 신격화하기 위함이다. ② 신천지에서 성경을 비유로만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 및 비판 마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34절) 그러나 이 본문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수님의 말씀이 다 비유라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의 비유는 마13:의 비유를 뜻한다. 더구나 마13:의 내용도 모두 비유라고는 말할 수 없다. 마13:에서 예수님은 비유를 제자들에게 직접 해석하여 풀어주신다. 이어서 마13:35을 보자.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것은 시78:2을 인용하는 것으로서 신천지에서는 비밀을 감추인 그대로 발표한다고 해석하지만 시78:2의 뜻은 비밀을 감추인 그대로 발표한다는 것이 아니라,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을 밝히고 드러낸다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13:34-35은 “모든 성경은 비유로 되어 있으니 비유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구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성경은 비유로 기록되어 감추어져 있다’는 신천지 측의 주장은 억지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비유를 던져만 놓으신 것이 아니라 상당수를 직접 풀이해 주셨다. ‘비유’라는 단어는 성경(헬라어)에 ‘파라볼레’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어떤 사물의 옆에 나란히 던져 놓음으로서 서로 비교하게 하여 그 의미를 깨닫게 함”이라는 뜻이다. 즉 비유의 원래 목적은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알게 하는 것에 있다. 또한 마13:51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를 깨달았느냐고 물으시니 제자들이 깨달았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막4:33에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더라도 예수님이 천국의 비밀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고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③ 신천지식 비유풀이 방식 ⓐ 공식화해서 획일적으로 푼다.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자기들만의 비유공식을 만들었다. 실제로 신천지에서는 <씨 = 말씀>, <밭 = 사람의 마음 혹은 교회>, <나무 = 사람>, <가지 = 제자>, <잎=전도자>, <열매 = 말씀과 성도>, <새 = 영>, <양식 = 말씀>, <누룩 = 교훈>, <그릇 = 사람의 마음>, <물=말씀>, <샘=목자>, <강=전도자>, <구름=성령>, <하늘=장막 혹은 목자>, <땅=육체 혹은 성도>, <해=목자>, <달=전도자>, <별=성도>, <바다=비진리의 세상>, <어부=목자 혹은 전도자>, <그물=말씀>, <고기=성도>, <배=교회>, <산=교회>, <머리=목자>, <뿔=권세자>, <꼬리=거짓선지자>, <우상=거짓목자>등으로 가르친다. 단어와 성구를 중심으로 해석하여 마치 수학문제를 풀듯이 이 공식에 따라서 획일적으로 성경을 풀이한다. 그러나 이 방식이 잘못된 것은 성경이 그러한 공식에 따라서 획일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씨’라는 낱말의 경우 신천지에서는 공식에 의해 무조건 ‘말씀’으로 풀이하는데 ‘씨’가 ‘말씀’이라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렘31:27의 경우 신천지에서는 ‘씨=말씀’이라는 공식에 의해 거기에 나오는 ‘사람의 씨’는 진리, ‘짐승의 씨’는 비진리를 풀이한다. 그러나 렘31:23-28을 문맥으로 보면 ‘사람의 씨’는 사람의 자식, ‘짐승의 씨’는 짐승의 새끼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씨’가 눅17:6에서는 ‘믿음’이라는 뜻으로 고후9:10-11에서는 ‘연보(헌금)’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볼 때 비유는 문맥을 중심으로 보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기에 획일적으로 공식화하는 것은 아전인수 격인 오류이다. 또한 신천지에서는 ‘물’ 역시 ‘말씀’으로 공식화해서 성경을 푸는데 요7:37에서는 ‘성령의 역사’, 시22:14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 시88:17에서는 ‘원수의 핍박’등의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의 낱말들을 획일화, 공식화해서 성경에 대입해서 푸는 것은 엉터리 해석법이 될 수밖에 없다. ⓑ. 성경에서 짝이 있다고 하면서 성경구절끼리 연결하면서 푼다. 신천지에서 성경 구절에 짝이 있어 짝으로 풀어야 한다고 하면서 성경 구절을 연결해서 비유풀이를 한다. 그 근거로 인용하는 구절은 사34:16이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그러나 이 구절은 문맥상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 예언은 사34:11-15까지 기록되어 있다. “당아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 거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에돔에 베푸실 것인즉(12절 생략) 그 궁궐에서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시랑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숫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 거하여 쉬는 처소를 삼으며 부엉이가 거기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 거기 모이리라” 에돔이 심판을 받아 땅이 황폐화되어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되며, 그 땅에는 레위기에서 언급한 부정한 짐승들이 짝을 이루며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래서 나중에 실제로 심판이 임했을 때 그 땅에 사는 짐승들을 보면서 여호와의 책, 즉 11-15절의 예언과 비교해보면 그 예언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사34:16절은 예언의 성취에 관련된 구절일 뿐 성경에 짝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구절이 아니다. 신천지 비유풀이는 성경구절을 그럴 듯하게 연결시켜 가며 마치 성경으로 성경을 풀어간다고 착각을 하지만, 그러나 성경을 연결해가며 인용한다고 해도 성경을 정확히 해석하여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④ 신천지식 비유풀이의 근본적인 문제점 성경에서 명백히 비유로 하고 있지 않는 것을 무리하게 비유로 풀게 되면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엉뚱하게 해석하게 된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문맥적인 상황,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종교적 상황, 언어적 상황 등을 고려해서 본문의 의미를 해석해야 하며, 성경이 기록된 원래 의도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신천지식의 비유풀이는 문맥과 성경이 기록된 의도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성경을 끼워 맞추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6. 신천지 미혹에 대한 대책 1)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이단대책의 최선은 예방교육이다. 정기적인 이단 예방 세미나를(년1회) 통해 성도들이 일시적 경계가 아닌 지속적으로 이단에 대한 경각심과 건강한 면역력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부서별, 구역별로 소그룹 모임들을 통해 이단들을 만났던 경험들을 나누며 서로 조사하여 발표하거나 교회에서는 주기별로 최근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단들의 동향을 전시회 형식으로 본당입구나 가능한 공간에 게시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2) 성경공부에 대한 갈급함을 교회 안에서 해소시켜 주라. 신천지의 특징은 성경공부를 통해서 미혹한다는 것이다. 다른 각도에게 보면 성도들이 그만큼 성경 중심의 설교에 굶주려 있고, 성경을 알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천지에 대한 우선적인 대책은 성경 중심의 설교와 함께 성경 자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평소 교인들이 성경에 대해 가지고 있는 궁금증을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해소해 주어야 한다. 교회 성경공부 및 교리교육의 강화를 통해 올바른 성경관, 신앙관, 믿음관을 심어주며, 구원론, 기독론, 성령론 등을 통해 기초를 튼튼하게 하며 사이비 이단의 교리가 구체적으로 성경을 어떻게 왜곡 시켜서 가르치는지를 객관적으로 분별할 수 있도록 실례를 들어주어야 한다. 3) 교회 새신자 교육과 관리 프로그램을 체계화 하여야 한다. 새신자가 등록하면 새가족 교육기간 중에 반드시 기독교를 사칭한 사이비 이단들 특히 신천지의 미혹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믿는 자들에게 진행되는지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관리자를 통한 심방과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다. 신천지는 자기 신분(직장, 가정, 학교 등) 노출을 꺼린다. 새가족이 교회를 방문하면 혹시 신천지가 아닐까 의심하고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신천지가 위장하여 추수꾼으로 잠입하여도 성도 개개인이 분별할 수 있는 지각을 갖게 되면 미혹이 통하지 않으므로 교회 안에서의 위장 활동이 쉽지 않게 된다. 당회는 교회의 중심기구로서 모범적인 중직자들을 중심으로 이단 대책 위원회를 구성하여 정관과 매뉴얼을 만들어 문제 발생시 당황하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대처해야 한다. 4) 교주 사후를 준비하자. 교회는 교역자나 중직자 중 이단 전문 상담사를 양성하여 성도들이 항시 이단 문제나 궁금증을 문의하면 신속한 대응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신천지 교주 사후에 큰 충격을 받을 미혹된 영혼들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신천지에 미혹된 영혼들은 교회가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해서 잃어버린 양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정죄와 출교가 대안이 아니라 불쌍한 영혼들을 찾아서 상담을 통해 이단교리의 허구성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복음으로 회복시켜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5) 지역별 연합 대처와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신천지는 급성장하면서 체계적, 공격적인 포교를 하기 때문에 한 교회의 힘만으로는 대처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각 지역별로 연합해서 신천지 센터와 복음방 위치파악, 포스터와 전단지 현수막 제작, 스티커 부착, 센터 앞 1인 및 집단 시위, 피해자 파악 후 지역교회와 나누기, 이단의 심각성을 사회에 알리기(불신자도 미혹의 대상), 연합 세미나 개최 등의 협력이 필요하다. 6) 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건강함이 제일 중요하다. 교회가 교회답지 않고 목회자가 목회자답지 않고 성도가 성도답지 않으면 이단은 암적 존재로 우리의 약점을 빌미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교회를 갈등과 혼란에 빠뜨리며 미혹의 동력을 얻게 된다. 복음 앞에 바로 선 교회와 복음으로 건강한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미혹이 통할 수 없음을 기억하자.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7-06-23
  • 난민 선교
    ▲ 이병수 교수(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국제다문화사회연구소 소장)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그들을 위해 이론과 실천의 모범적 삶을 사셨던 손봉호 고신대 석좌 교수는‘난민’에 대한 한국사회와 교회의 입장을“난민에 대해서 세상에서 가장 인색한 우리나라와 이에 대해서 아무 감각도 없는 한국교회”라고 질타 한 적이 있다. 그는 또“만약 우리나라에 미국이나 영국처럼 노동자들과 난민들이 대거 몰려왔다면 아마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극렬하게 국수주의적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난민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바꾸어 놓는‘유쾌한 오보’들이 중동과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다. 필자는 금년 파리 난민포럼(2월 8-11일)에 참가해서 중동과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난민사역에 종사하는 많은 한국 선교사들의 보고를 통해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일이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 그것은 한국과 세계 여러 나라의 선교사들의 난민선교에 의해 수많은 시리아 및 기타 지역의 무슬림 난민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 학술 동역회 잡지 2017 년 월드뷰 2 월호 내용이다. 글쓴이는 금년 1 월에 한국을 방문한 네덜란드 라브리 공동체 대표이며 국제 라브리 회장을 역임했던 리트께르크(Wim Rietkerk) 목사이다. 그는 유럽에 몰려드는 시리아를 포함한 기타 난민을 하나님께서 유럽 교회에 보내 주신 '뜻밖의 선물'로 본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고국과 종교적 전통으로 부터 단절된 수많은 무슬림들은 새로 정착한 땅에서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하고, 유럽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환영해주자 놀랄만한 많은 숫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2015 년부터 독일에 약 100 만 명의 난민이 몰려든 현재까지 무려 3,000 명 이상이 세례를 받았고 그가 살던 네덜란드 동네 교회에서도 70 명의 무슬림들이 새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이슬람국가를 찾아간 어떤 선교사도 이런 엄청난 결과를 얻어 낸 적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난민 사태로 그 나라에서는 이슬람 때문에 복음을 듣지 못했던 무슬림들이 난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복음에 매우 쉽게 노출되고, 인간적으로 처한 힘들고 갈급한 상황 때문에 복음에 매우 수용적이라 선교의 열매와 결과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의 작가 루이스(C. S. Lewis, 1898-1963)가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통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는‘확성기’라고 말한 것처럼 시리아 난민들이 겪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확성기’를 통해 듣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에 주신 선교의 수확 및 추수의 기회라는 것이다. 유럽과 중동의 한국인 및 유럽의 선교사들의 헌신과 수고로 많은 중동의 난민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앞으로 잘 훈련되어 본국으로 돌아가 같은 민족 무슬림들을 복음화 하는데 선교적 도구로 쓰임 받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선교사들이 예상하고 있다. 그리스 지역에 있는 시리아 난민을 위한 한인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 미국 선교부는 이런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서 난민선교의 중요성과 효과를 깨닫고 매우 발 빠르게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유럽의 난민사태를 통해 하나님께서 잠자고 있고 쇠락해 가는 유럽교회를 깨우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네덜란드 리뜨께르크 목사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는 그의 글 결론에서 이런 질문을 제시하면서 마친다. '혹시 하나님은 유럽을 기독교적 뿌리로 돌려보내시기 위해 난민들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교회도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포착해서 난민 선교의 파도의 물결에 타야 하지 않을까? 유엔난민기구(UNHCR)에 의하면 전 세계에 6,700만 명의 난민이 존재하고 있으며, 시리아 인구 2,200만 명 중 난민은 1,100만 명이다. 그들 가운데 자국 내에 거주하는 난민은 600만 명이고, 해외에 5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에 대한 복음의 선교적 접근과 그 열매와 효과를 위해서 한국교회가 매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타나는 강도 만난 사람은 오늘날 시리아 독재자에 의해 발생된 시리아 난민이고, 그들을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로 본다. 그 비유에서 예수님의 ‘누가 네 이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두 부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강도 만난 가운데 고통당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통당하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다. 따라서 ‘이웃’은 가까이 있고 멀리 있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랑의 필요자와 공급자가 공간적 개념을 뛰어 넘는 이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이 일에 참여한다면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난민들에게 진정한 그들의 이웃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다 아니다. 때로는 물이 피보다 더 진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는‘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는 원초적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꿈과 이상을 가지고 ‘물이 피보다 더 진하게 사는’ 사람에 의해 발전하고 진보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피가 물보다 더 진하다’는 이 원초적 본능과‘물이 피보다 더 진할 수 있다’는 일반은총을 뛰어 넘어 시리아 난민사역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특별은총의 하나님의 사랑이 근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익히 잘 아는 대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럽으로 가는 수많은 난민의 행렬 가운데 지중해에서 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언론에서“지중해, 난민들의 공동묘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인류적 재앙을 우리 모두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보편적 인류애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진정한 해결책이다.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에 의하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타인을 돕는 손, 가난한자에게 달려가는 발, 불행을 보는 눈, 한숨과 슬픔을 듣는 귀를 가진 것이야 말로 사랑의 참모습이다”라고 갈파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는 시리안 난민 사역을 위해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실천해야 한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7-04-13
  • [기고] 참된봉사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교회 안에는 많은 분야에 사람들이 자기의 맡은 달란트, 주님께서 주신 은사가 다 주어져 있다. 우리는 받은 은사를, 달란트를, 받은 것을 가지고 참된 봉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교회 안에도 모든 곳에 돈을 받고 봉사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교역자, 관리집사, 사무간사 등 유급자 직원외에는 돈을 받지않고 봉사를 해야한다. 특히 교회 안에 항존직 중직자, 목사, 장로 자녀들이 매월 돈을 받는 것은 참된 봉사가 아니다. 이것은 당회가 그 사람들에게 참된 봉사의 길을 막는 것이다. 사례금, 월급, 연구비, 교통비의 명목이란 이름으로 매월 돈을 받는 것은 개혁되어야 한다. 각자 자기의 재질, 은사, 달란트를 주님을 위해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직장에, 사업에 하는 일과 손길 위에 크신 은혜와 복을 주신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교회일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 필요한 분야에 전문 은사나 전문 지식이나 이런 분이 교회안에 없을 때 공채로 신문에 광고하여 전문 지식인을 모셔올 때는 좀 다르게 그 사람들에게는 장학금이나 특별지원을 할 수 있겠지만 이 세대를 본받아서 모든 곳에서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참 안타깝고 변질되고 교회가 타락되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참 염려스럽고 마음이 무겁다. 찬양대원이 없는 지휘자는 필요한가? 찬양대원이 없는 반주자는 필요한가? 우리는 다 한 지체이다. 각자의 받은 은사대로 열심히 봉사할 때, 무료로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실 것을 확실히 믿는다. 오히려 일년동안 봉사하고 연말에 가서 작은 선물이나 소액의 상품권 한 장이라도 봉사한 자들을 모아놓고 주고 담임목사님의 축복기도를 한 번 해주는 것이 참된 봉사가 아닐까 생각한다.우리 모두는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돈의 액수가 적든지 많든지 돈을 받고 봉사하는 것은 참된 봉사가 아니고 섬김이 아니라 유급 봉사자라 할 수 있다. 좋은 달란트, 좋은 은사를, 하나님께로 받은 것을 그냥 기쁘게 봉사하면 주님께서 더 많이 채워주시고 복주시고 은혜로 베풀어 주실 것이다. 우리 모두 참된 봉사자가 되자. 주님의 주시는 힘으로 하는 참된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에서 돈을 받고 봉사하는 것은 개혁되어야 하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없는 참된 봉사자가 다 되시길 소원드립니다. 부산성산교회 박창제 원로장로
    • 기고/강연
    • 기고
    2017-01-05
  • 2016 10대 이슈 및 사회인식조사(종교분야)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사장 김지철)은 지난 8일 ‘한국기독교 선정 2016 10대 이슈’를 발표했다. 포럼은 종교, 정치, 통일, 경영경제, 사회문화, 교육, 언론 등 7개 분야별로 전문가그룹에 의뢰해 10대 이슈를 선정, 발표했다. 종교분야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김경원 목사)에서 맡았다. 다음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선정한 종교분야 2016년 10대 이슈다. 2016 10대 이슈 및 사회인식조사 종교분야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이 상 화 목사 | 사무총장 1. 종교개혁 500주년 준비를 고뇌하다 2016년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2017년을 준비하기 위해 바쁜 한 해를 보냈다. 현재 루터회를 비롯하여 예장고신, 예장통합, 예장합동, 기장 교단에서 종교개혁500주년기념사업위원회가 설치되어 있고, REFO500 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또한, CBS와 국민일보가 공동으로 한국교회 24개 교단과 5개 연합기관, 기독교대학 및 신학교 등 주요 기관이 참여한 슬로건인 ‘나부터 □’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각 교단의 기념사업을 비교해 보면 거의 교단과 교회 내에 국한되어 있어서 종교개혁의 정신을 사회에까지 광범위하게 이어가기 위한 노력으로는 너무 제한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김경원 목사)는 다섯 차례의 ‘열린대화마당’과 전국수련회를 열면서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의 종교개혁 500주년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깊이 있는 논의와 대안을 모색해 왔다. 그 결과로 10월 27일 중앙루터교회에서 가진 한목협 주최 종교개혁 499주년 기념예배를 통해 모인 각 교단 임원과 종교개혁 500주년 준비위원, 한목협 운영위원들은 2017년 한국교회가 공동으로 추진할 과제에 대해 마음을 모으고 구체적인 준비를 위한 논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하 한기언)의 조사결과는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개혁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 복음의 본질 회복’을 가장 많이 꼽았고, 다음으로 ‘목회자들의 윤리 회복’이락 응답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지금의 한국사회 분위기 속에서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사회에 불고 있는 거센 개혁의 바람이 도리어 한국교회에 회개와 변화의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시작되는 2017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실제적인 변화의 열매를 세상 사람들이 발견하게 될 때 종교개혁 500주년의 울림의 깊이와 영향력은 지속적인 반향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다. 2. 이단사이비로 인해 자중지란이 일어나다 2016년 한국교회는 이단 문제로 자중지란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예장통합 교단은 올해 9월 12일 특별사면 형식으로 ‘이단 해제’를 결정했다가 총회 현장에서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지만,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공교단이 ‘이단 해제’를 결정했다는 것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와중에 이단사이비들은 대규모의 집회와 시위를 통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는 등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이에 맞서 대전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 같은 경우에는 신천지를 상대로 집회금지가처분을 냈고, 지난 8월 8일 대전지방법원 제21민사부(재판장: 문보경 판사)는 이를 인용하는 결정을 내려 이단사이비 집단이 무기로 삼던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막아내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가장 큰 사건은 역시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교계에서 중요한 담론으로 등장한 온갖 기독교 이단 관련 이슈들이다. 한국교회는 최순실 씨의 아버지 최태민의 ‘목사’라는 호칭에 대해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였지만, 최 씨가 예장종합총회에서 신학 교육 없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보도 이후 힘을 잃고 있다. 이번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하 한기언)의 조사결과를 보면 이단사이비에 대응하기 위해 목회자들은 교계 연합의 대책기구와 입장발표에 방점을 둔 반면, 성도들은 이단사이비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응답했다. 이는 이단사이비들의 포교대상이 일반성도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한국교회가 여러 이단들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결과로 지금의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게 되었다. 2017년은 한국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논리로 공교회성을 회복하고 교파의 벽을 넘어 서로 협력해서 이단사이비의 침투를 막고 삶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3. 목회자 윤리문제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올해도 목회자의 성추행 소식은, 사람과 공간만 새로울 뿐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상적인 일이라는 사람들의 다소간의 편견에 확신을 심어주는 꼴이 되었다. 특히 청소년사역단체 대표 목사의 성추문뿐만이 아니라 선교사의 성적 비리, 그리고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재정 비리는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하고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목회자의 윤리문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의 대사회적 이미지 추락, 그리고 사회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하 한기언)의 조사결과에서 일반성도들은 목회자 윤리문제 발생시 해결 방안으로 ‘모든 직임을 내려놓고 교회의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50.8%)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으로 ‘문제 발생 즉시 사과하고 교회를 떠나야 한다’(33.3%), ‘충분한 회개의 시간을 갖게 하고 용서해야 한다’(8.1%), ‘사실 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사역을 지속해야 한다’(5.2%)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는 교단, 연령, 성별, 지역, 경제수준, 교회 크기 등 응답자특성별 전 분야를 불문하고 지도자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교회가 보여준 일련의 문제 해결 과정들은 정치권이나 일반사회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아니 더욱 견고하다는 좌절감을 주고 있으며, 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영적 권위를 약화시키고 있다. 결국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목회자의 윤리의식 정립에서 찾아야 한다. 목회자들은 뼈를 깎는 자기갱신과 거룩성 회복을 통해 더욱 낮아진 자세로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바르게 수행해야만 비로서 이 세대와 복음으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슬람의 거센 도전 앞에 서다 2017년의 한국교회는 교회 밖에서는 이단사이비와 싸우고 교회 안에서는 윤리 문제로 내홍을 겪으며 약점이 노출된 상태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이슬람과 맞닥뜨리고 있다. 교계 언론과 공교회의 대표자들은 하나같이 잘못하다 보면 유럽처럼 될 수 있기에 이슬람이 한국에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슬람에 대한 전문성 있는 연구자를 미처 길러내지 못한 한국교회는 확인할 수 없는 괴담 수준의 정보들로 성도들에게 공포감만 조성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대상에 대한 정보 부족은 막연한 두려움을 낳는다. 이슬람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이때에, 한국교회는 이슬람의 교리와 제도, 문화 전반에 걸친 정확한 정보를 성도들에게 제공하고, 설득력 있게 이슬람을 바라볼 수 있는 기독교인 전문가들을 길러내어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5. 인공지능(AI) 시대에 신학적 담론을 요구받다 2016년 3월,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하면서 한국사회에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았던 한 해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목회현장과 목회자들에게는 AI는 큰 관심의 주제가 되었다. AI와 관련한 논의의 초점은 AI에게 감성, 창조성, 예술성이 가능한가의 수준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가진 AI가 과연 자유의지나 양심이나 도덕성까지도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한 윤리적 담론으로 옮겨갔다. 특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AI 프로젝트의 최종 지향점이 인공지능을 통한 영생하는 신으로서의 AI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담론을 형성시킬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는 분명 신학적 담론이기에 한국교회는 어떻게 응답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인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한 해 였다. 6. 목회자 공급 과잉은 한국교회가 공동으로 풀어야 한다 금년 총회에서 각 교단의 교세 현황이 보고되었다. 교단마다 교회와 교인은 감소하는데 목회자는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수요와 공급이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 신학교 구조조정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하 한기언)의 조사결과에서도 개신교인과 목회자들은 한국교회의 목회자 수급에 대해 ‘각 교단에서 구조적으로 조정하여 목회자 수를 줄여야 한다’를 각각 57.8%, 60.0%의 비율로 가장 많이 꼽았다. 예장통합 교단에서 장로회신학대학교 박상진, 이만식 교수에게 2015년 목회자 수급 문제 연구를 의뢰한 결과 교인은 감소하고 교회와 목사는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목회자 증가의 배경에는 신학교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문제는 한국교회가 공동으로 풀어야 한다고 보고서에서 지적하고 있다. 또한 ‘비인가 신학교’에서 자질과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목회자들이 배출되고 있는데, 이들로 인해 전체 기독교 명예가 훼손되고, 전도의 문이 막힌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반면에 신대원 지원자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는 신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교육의 질을 저하시켜 목회자 윤리 문제와 일탈 행위를 발생시킬 것이며, 한국교회 신뢰도는 계속해서 하락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끊기 위해서는 한국교회 전체가 뼈를 깎는 아픔을 각오하고 먼저 수술대에 오르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7. 한국교회 연합, 실질적 방안을 고민하다 교단장회의는 올해 7월 26일 한기총과 한교연 대표회장을 배석시킨 가운데 ‘한기총과 한교연 통합협의회’를 출범시키기로 결의하고 ‘선 통합 선언, 후 추진’의 원칙을 세우고 통합절차를 밟기로 했다. “대외적으로 이단, 동성애, 이슬람, 종교인 과세 등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내적 일치와 연합이 강하게 요구된다”고 밝히면서 이후에 출범한 ‘한국교회연합추진위원회’는 각 교단 총회에 이를 상정하고, 10월과 11월에 통합 정관 등을 협의한 뒤 12월에 통합총회를 갖기로 결의한 바 있다. 했다. 하지만 이단 문제와 내부 반발로 통합 논의가 진통을 겪으면서 11월 30일 통합 선언의 시기를 넘겼다. 또 다시 12월 5일에 회의를 열고 금년 성탄절에 한국교회에 연합이라는 선물을 내 놓겠다고 약속한 상황인데 이후의 상황은 지켜 볼 일이다. 이번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하 한기언)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서도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중심단체를 묻는 질문에 대해 ‘한기총’(23.0%)를 가장 많이 꼽았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연합기구의 영향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교회 연합의 당위성에 대해 많은 목회자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2017년으로 넘어가게 된 연합논의가 어느 정도의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8. 노년세대 증가가 교회 사역에 새로운 방향성을 묻다 통계청에서 실시했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2010년과 비교한 결과 유소년인구는 97만 명이 감소했고, 65세이상 고령인구는 121만 명이 증가했다. 1인 가구는 520만 가구(27.2%)로 대폭 증가했고, 모든 시도에서 고령인구 비율이 7%를 넘어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고 한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해에 60대에 진입한 6.25 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유년 시절 한국교회 부흥을 이끌었고, 중장년 시기에는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을 견인했던 이들이다. 이들이 중장년층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부요하고 건강한 교회의 핵심활동 연령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에 출산율의 저하로 인한 인구절벽 현상과 맞물린 전국적인 교회학교의 감소는 다음세대를 낙관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다음세대를 살리기 위한 각 교단의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다가오는 새해에도 교회의 미래를 위해 다음세대를 향한 집중력만큼은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가족에 대한 책임 못지않게 개인적 욕구에 충실한 역사상 첫 세대인 노년세대를 향한 이해와 목회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더욱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되었다. 9. 통일에 대한 관심 부족을 보이다 지난해 광복 70년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통일 논의가 활발했지만 올해 2월 충분한 절차와 합의 없이 감행된 개성공단의 폐쇄와 함께 남북 대화의 돌파구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견제와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생존과 번영을 고민해야 할 중대한 시점에 국정 농단의 혼돈에 놓인 국내 정치 상황은 통일 문제를 입에 담기에도 부족한 상황이다. 한반도평화연구원에서 2015년 11월에서 12월까지 일반인 300명, 목회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국교회 목회자 통일인식 조사”를 실시하고 올해 2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결과를 보면 남북한의 통일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약점(Weakness)으로 일반인은 ‘젊은 세대의 무관심’(54.3%)을, 목회자는 ‘남남갈등’(60.7%)을 가장 많이 꼽았다.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 부족’도 일반인의 45%, 목회자의 59%가 ‘그렇다’고 응답해 통일 의지가 부족하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문제와 탈북자들에 대해 선교적인 마인드로 접근하는 목회자들에 비해 일반인은 남북간 단절로 인한 괴리와 일상의 삶과 ‘통일’ 담론에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북한에 대한 입장은 무관심과 의지의 부족 가운데 정치 상황과 맞물려 냉온탕을 넘나들며 진행되어 왔다. 29,830명(2016년 9월 기준, 통일부)의 탈북민들도 제대로 품지 못하는 한국교회가 분단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북한 동포를 위한 평화의 사도가 되어 통일의 최선봉에 나설 수 있을지는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10. 한국교회의 정치 참여는 대개 헛발질이었다 과거 한국교회는 구국기도회나 집회, 조찬모임을 통해 사회적 안정과 질서 유지에는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정치참여를 했으나, 때로는 그런 정치적 행보가 보편적 가치와 인권이 유린된 관료적 권위주의 정권을 지속시킨 힘으로 작용해서 정치적 민주화를 지연시킨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사)한국기독교언론포럼 이번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하 한기언) 조사에서 개신교인들은 한국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해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65.7%)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으로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는 말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다’(31.0%)를 꼽았다. 목회자의 정치 참여를 묻는 질문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58.3%)를 가장 많이 꼽았고,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는 말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다’(26.2%)를 꼽았다. 개신교인들은 교회나 목회자의 정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이며 학생(48.8%)보다 기성세대(68.9%~72.6%)가 더욱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광장에 나타난 상처받은 민심을 위로하고 한국사회가 당면한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는 물론 평화 통일의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예언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12-30
  • 다문화 사회, 한국사회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 국제다문화사회연구소 소장 이병수 교수(고신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라”(신10:18-19). 국제 다문화 사회연구소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국제 이주민 즉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국제결혼 부부, 다문화 가정 청소년 및 새터민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나그네’, ‘손님’, 그리고 ‘형제, 자매와 자녀’로 맞아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겨 ‘하나님의 가족’으로 초대하기 위한 성경적·신학적·철학적·정책적·선교적·실천적 연구소입니다. 1. 본 연구소는 하나님의 형상교리를 기초로 해서 신학적 및 선교학적 의미를 추구합니다. 성경적으로 본다면 국제 이주민들도 기독교인인 우리와 같이 창세기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형상(Immago Dei)’입니다. 본 연구소는 국제 이주자의 한 축을 이루는 무슬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이 성경적 가르침이라고 믿습니다. 만약 유교도, 불교도, 그리고 힌두교도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한다면 무슬림도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개혁주의 조직신학자인 앤서니 후크마는 그의 책 「개혁주의 인간론」에서 ‘하나님의 형상’ 교리로 인간론을 설명합니다. 후크마는 타락한 죄인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에 의하면 “성경은 인간이 죄에 빠진 사실이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향상을 심각하게 왜곡시켰다고 가르치지만 또한 타락한 인간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간주해야 한다고도 가르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이므로 우리는 그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되며(약3:9)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후크마는 이런 ‘하나님의 형상’의 교리를 칼빈에게서 배웠습니다. 후크마에 의하면 “어느 누구 못지않게 인간의 죄악성과 무가치함에 대해 깊이 알고 있었던 존 칼빈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죄인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놀랍게 표현했다”하면서 그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우리는 사람들 자신이 어떤 자격이 있는지 고려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 형상에 모든 영예와 사랑을 바쳐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 사람을 돕기를 거절할 어떤 이유도 없다. 가령 ‘그 사람은 경멸받을 만하고 무가치 하다’고 하자. 그러나 주님은 곧 주님이 자신의 형상의 아름다움을 아끼지 않고 주신 자가 그 사람임을 알려주신다. 가령 그 사람이 당신의 최소한의 노력조차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자. 그러나 당신에게 그 사람을 천거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당신이 당신 자신과 당신의 모든 소유를 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설파합니다. 후크마는 이 하나님의 형상의 교리가 가지는 선교적 함의를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교회는 복음전파 내지 선교사역을 할 때 이 땅위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확신을 고수해야”하고 “하나님의 형상교리는 교회의 복음전파의 사명에 있어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조직신학의 장점은 조직신학과 선교학을 통섭(統攝)적으로 보려는 시도와 노력이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그는 칼빈의 신학에 기초한 여러 신앙고백서들을 선교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선교적 함의를 제안했습니다. 조직신학자 후크마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화란의 교의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의 「개혁교의학」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 책은 최근 고려신학대학원 출신의 박태현 교수가 4권으로 한국어 번역본으로 완성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 책을 최근에 번역한 것으로 볼 때 이 번역이 한국 신학계에 끼친 공헌은 참으로 귀하고 큰 것입니다. 4권 분량이 약 3,500 쪽에 가깝습니다. 바빙크는 그의 책에서 교의학의 실천적 성격을 여러 곳에서 매우 강조합니다. 정말 귀하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의 책 4권중에 신학의 실천적 성격이 가장 잘 나타야 할 선교에 대해서 책 전반과 관련하여 선교적 함의와 또는 4권에 포함되는 교회론의 부분에서도 교회의 선교적 역할을 언급한 것을 거의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칼빈의「기독교 강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강요 4권에 해당하는 교회론 에서도 칼빈의 선교에 대한 언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회의 중요한 역할 중 예배, 교제, 봉사, 그리고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아니라면 교회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조직신학자 에밀 부르너는 “불이 탐으로써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함으로써 존재한다.”고했습니다. 독일의 조직신학자 마틴 켈러는 “선교는 신학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마틴 켈러의 주장은 교회와 신학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은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였기 때문에 신학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의 증거하는 공동체의 요소, 증인의 공동체를 누구보다도 강조한 신학자가 보수신학에서 비판한 독일계 스위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였습니다. 화란 선교학자 요하네스 베르카일은 그의「현대선교신학 개론」에서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특히 III:2권 과 IV: 3권은 선교학에 매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이들 항목에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선교를 논의 하면서 교회의 소명은 ‘하나님의 선교의 연속(missio Dei Continuata)’으로서 교회는 하나님의 지상 증거자라.”고 주장합니다. 바르트는 “교회의 선택, 화해, 영적 약속, 소명, 명령 그리고 봉사 등의 배경에 반하여 교회의 소명에 대한 그의 사상을 전개” 하면서 마침내 “만일 교회가 선교의 의무를 실패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혹자는 칼 바르트를 위대한 신학자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선교학자 심지어 “선교사”라고까지 평가했습니다. 내가 최근에 만난 화란 선교학자가 헤르만 바빙크의 이런 면을 지적하면서 그에 비하면 아브라함 카이퍼는 모든 부분에서 기여한 바가 지대하지만 그는 또한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도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신학의 전통에서 자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차이들이 생기는가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복음전도의 연구의 영국의 대표적 신학자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그의 책 「초대교회의 전도」에서 “대부분의 전도자들은 신학에 관심이 거의 없는 반면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전도에 거의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후크마가 하나님의 형상의 교리를 단순히 조직신학적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교리가 가지는 선교적 함의를 심도 있게 다룬 것을 통해서 모든 학문이 가지는 이론과 실천의 조화와 신학의 통합적 접근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유는 신학은 방법론적으로 이론적이지만 목적은 실천적이고 이것이 성경적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함이라.”(딤후3:16-7) 2. 모든 인류는 평등합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평등사상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혹자는 모든 인류는 성경이 제시하는 세 가지 신학적 측면에서 평등하다고 주장합니다. 첫째, 우리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둘째,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이요 죄인입니다. 셋째, 따라서 모든 인류는 하나님에게 의존적이고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인간의 능력 여하에 따라 불평등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한 곳도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인간 평등사상을 구체적으로 찾기도 쉽지 않지만 또한 인간 불평등 사상을 찾기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인간 불평등 사상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단 한 곳도 없고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평등사상을 찾아본다면 사도행전 17:26 절일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곳에서 모든 인류가 “한 혈통으로” 만들어진 존재로 파악함으로 모든 인류가 같은 근원에서 나왔고 따라서 인류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이 주장을 할 그 당시의 문화적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지성의 중심이요 헬라인을 모든 인류보다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아덴에서 인간 평등사상을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가 서구사상에 끼친 긍정적 영향이 지대하지만 그의 인간 평등사상은 매우 부정적이고 실망스럽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야만인들’(그리스인이 아닌 사람), 특히 아시아인은 ‘타고난 노예’라고 가르쳤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이 땅에 태어나기 수 백 년부터 이런 사상이 편만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헬라인들은 유대인의 선민사상과 같이 자부심이 대단한 자민족 중심주의와 우월주의에 빠졌던 대표적 민족입니다. 신약학자 브루스(F. F. Bruce)는 이런 오만한 자부심을 사도행전 17장 26절 주석에서 이렇게 질타합니다. “그러나 이 자부심은 잘못된 근거에서 나온 것이었다. 모든 인류는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으니, 모두 하나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며, 모두 한사람의 공동시조에게서 흘러나왔다. 이 사실은 헬라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외국인들보다 우월하게 태어났다는 믿음을 정당화 시키려는 거짓된 모든 시도를 일소해 버리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그와 유사한 오늘날의 국수적 여러 가지 믿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연 안에서도 은혜 안에서도, 즉 옛 창조 안에서도 새 창조 안에서도, 인종우월주의가 들어설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제자 알렉산더 대왕(BC 356-323)은 동서양의 결합을 통해 하나 된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동양과 서양을 하나 되게 하고자 시도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위대성은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는 세계시민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알렉산더는 그리스인의 편견과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한계를 뛰어넘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제자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전쟁터 등의 장소에서 ‘야만인’들과 직접 접촉할 기회를 가지면서 그리스인이 과연 그들보다 우월한지 시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모든 사람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329년 힌두쿠시를 가로질러 박트리아로 진군할 때는 대규모의 아시아인을 원정 주력군으로 충원했습니다. 그는 아시아 여성 록사나와 결혼했고, 1만 명의 병사들에게도 아시아 출신 아내를 얻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복지로 가는 곳마다 수많은 국제결혼을 시도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나타나는 인간 평등사상의 가르침이 성경신학·조직신학적 의미의 영역에서만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선교의 대상이 되는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가르침에 근거한 선교적 함의를 생각해야합니다. 이 가르침은 선교사가 현지인보다 인종적·문화적으로 조금이라도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이 평등사상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은 이런 우월 사상을 ‘말살’할 것입니다. 이 평등사상에 근거한 본 연구소는 지배욕과 우월사상에 젖은 식민지 제국주의자들이 제 3세계에 저지른 오만과 교만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이런 만행에 치를 떨었던 한 국가와 국민으로서 이런 만행이 한국에 살고 있는 제 3세계 사람들에게 자행되지 않도록 평등과 진리의 파수꾼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프랑스 혁명의 3대정신은 자유·평등·박애입니다. 이 평등의 정신을 누구보다도 강조한 철학자가 영국의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성경보다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토마스 홉스는 그의 책 「리바이어던 Leviathan 」에서 성경적 인간관과 가깝게 설명한 책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잘 아는 대로 인간의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관계”로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와 늑대 같은 존재”로 보았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이러한 홉스의 주장을 “마키아벨리의 이론보다 더 근대적이다”라고 평했습니다. 러셀은 “리바이어던이 출간되었을 때,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평가의 이유는 홉스의 인간에 대한 진술이 너무 충격적일 정도로 인간의 죄악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의 인간관 못지않게 그가 끼친 현대적 사상은 인간의 평등에 대한 사상이었습니다. 홉스에 의하면 “자연은 인간이 육체적·정신적 능력의 측면에서 평등하도록 창조했다. 간혹 육체적 능력이 남보다 더 강한 사람도 있고, 정신적 능력이 남보다 뛰어난 경우도 있지만, 양쪽을 합하여 평가한다면, 인간들 사이에 능력 차이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이익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크지는 않다. 왜냐하면 체력이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음모를 꾸미거나, 혹은 같은 처지에 있는 약자들끼리 공모하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능력들의 경우에는 체력보다도 오히려 더 평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절대로 차이가 없습니다. 홉스는 이 “능력의 평등에서 희망의 평등이 생긴다.”고 주장했습니다. 본 연구소는 이 ‘희망의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능력의 평등을 열심히 가르치고 확산해 나가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 없이 단지 철학적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점만으로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하나 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것은 사도바울이 아덴에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고 고백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인류 조상의 근원이 같다는 것이요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는 것이며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한 가족이라는 표현이 좋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요 가족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근거한 믿음 안에서 진정한 평등사상일 때만 하나 된 세상이 가능한 것입니다. 똑 같이 우리는 ‘인류 조상의 근원이 같고 ‘모든 인류는 평등하고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이 평등사상은 그 어떤 인종차별도 허용하지도 않고 용납하지도 않습니다. 본 연구소는 그런 차별을 말살시키는데 앞장설 것입니다. 영국의 기독교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Edmond Burke)는 “악이 승리하려면 선한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악에 대해서 맞서서 싸워야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본연구소는 성경적 평등사상에 근거해서 외국인을 불평등하게 대하는 어떤 악과 제도와 조직과 싸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려움과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선한 사마리아인도 필요하고 악의 세력과 제도와 조직과 맞서고 싸우고 무너뜨리는 정의의 사람도 필요합니다. 제도와 조직은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에 언제나 부패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 왈츠(Michael Walzer)는 그의 책 「성도의 혁명 The Revolution of Saints: A Study in the Origins of Radical Politics」에서 인간의 모든 조직은 인간의지와 결정의 산물이기 때문에 언제든 잘못될 수 있고 따라서 잘못된 결정과 의지에 의한 잘못된 제도와 조직은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책에서 주장한 내용입니다. 이 마이클 왈츠의 입장을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roff)는 그의 책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때 까지 Until Justice and Peace Embrace」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책 서문에서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어느 기도문을 인용합니다. “오 하나님, 굶주리는 자들에게는 빵을 주시고, 빵을 가진 우리에게는 정의에 대한 굶주림을 주소서.” 이 정의의 굶주림으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빵을 제공하는 정책적 연구소가 되겠습니다. 3. 본 연구소는 인류학적 고찰을 배울 것입니다. 프랑스의 사상가요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는 「야생의 사고 La Pansee Sauvage」라는 책에서 어떤 문명이나 민족도 다른 집단 보다 우월한 것이 없다고 주장함으로, ‘우수한’ 서구 문명이 ‘미개한’ 원시문화를 지배한다는 서구 우월주의의 편견을 깨뜨렸습니다. 그 책은 이런 서구의 오만한 ‘환상에 대한 해체’를 선언한 책입니다. 그는 이런 인류학적 연구의 결과로 문명의 우열을 뛰어 넘어 상대방의 문화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존과 상생의 의식을 가지게 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국제이주자와 다문화가정이 겪는 어려움 중 가장 원초적인 것은 그들에 대한 내국인의 편견과 차별입니다. 국제다문화 사회연구소는 외국인과 “차별 없는 세상” “차별 없는 대한민국”을 꿈꿉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는 톨레랑스의 가치와 한계를 직시하면서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는 인간에 대한 진정성 있는 교육과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4.본연구소는 철학적 고찰을 배우고 사용할 것입니다. 철학적 단상 프랑스의 유태인 철학자 엠마뉴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서양철학을 모두 ‘존재론’이라 못 박고 그것을 한 마디로 ‘주체 중심’의 철학이고 주장했습니다. 이 철학은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인식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이’와 ‘다른 것’에 대한 관심과 배려 대신 그들을 자신의 욕망의 충족과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레비나스는 이 철학을 ‘전체주의적 철학’, ‘전쟁의 철학,’ 그리고 ‘이기주의적 철학’이라고 단죄합니다. 이런 주체 중심적 철학은 서구의 오래된 전통 즉 그리스 철학의 영향 이후 서구의 철학 예를 들면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의 “내가 곧 세계(소우주)다”라고 생각하는 구조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습니다. 레비나스가 이런 서양 철학을 비판하는 이유는 서구가 식민지 정복과 1, 2차 세계 대전이 ‘주체 중심’의 철학 즉 ‘전체주의’와 ‘전쟁의 철학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가 시도하고자 한 것은 “전체성의 철학, 또는 전쟁의 철학에 대항해서 어떤 무엇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의 인격적 가치와 타자에 대한 책임을 보여주는 평화의 철학”이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주체중심’의 철학에서 생겨나는 ‘전쟁의 철학’에서 ‘평화의 철학’으로 바꿀 수 있는 방안 중의 하나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자신이 중심인 ‘주체’ 중심이 아니라 ‘타자’에 초점을 둘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구심점을 ‘나’로부터 ‘다른 이’로 옮기려는 철학의 혁명적 변화의 시도이고 그의 철학에는 어떤 점에서 서구철학의 자아 중심적 인간 사상의 모습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레비나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인간의 주체성을 '타인을 받아들임(l'hospitalite)' 또는 '타인을 대신한 삶(la sustitution)' 등으로 정의하는 가운데 인간의 삶은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가지면서도 이 세계는 타인의 관계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대와 책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이 타자를 ‘다른 이의 얼굴’로 묘사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모든 “다른 이”는 마치 데카르트(Descates)에 있어서 신(神)과 같이 ‘다른 이’가 ‘영원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때 나타나는 ‘다른 이의 얼굴’은 단지 생물학적 물체가 아니라 자기중심적 우리를 꾸짖고 우리에게 호소하는 ‘고와와 과부’의 얼굴이요 ‘나그네와 이주자’의 얼굴이요 그 안에서 ‘여호와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Mother Terasa)가 고통 받고 있는 타인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진정한 주체성은 타인의 존재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고 이 타자에 중심을 두는 레비나스의 철학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강조하게 되는데 이것은 오늘날 소외된 ‘고아와 과부’ ‘장애인’ 뿐 만 아니라 ‘이주자’와 ‘다문화가정’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5. 본 연구소는 팔레스타인 출신 기독교 사상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의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의 책에 언급된 사상을 참고할 것입니다. 많은 학자의 서평에 의하면 이 책은 “서구인들이 말하는 동양의 이미지가 그들의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허상임을 체계적으로 비판한 명저”로 평가받습니다. 이 책의 저자 사이드에 의한 오리엔탈리즘의 정의는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이 동양에 관계하는 방식으로서, 유럽 서양인의 경험 속에 동양이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에 근거하는 것이다. 동양은 단지 인접되어 있다는 점만이 아니라, 유럽의 식민지 중에서도 가장 광대하고 풍요하며 오래된 식민지였던 토지였고 유럽의 문명과 언어의 원천이었으며, 유럽문화의 호적수였고, 또 유럽인의 마음속에 가장 깊은 곳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타자 이미지이기도 했다”고 묘사합니다. 이것은 서양이 가지는 동양에 대한 타자의 이미지를 지리적·문화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만으로는 서양이 동양에 대해 가지는 구체적 성격을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이드의 다음의 오리엔탈리즘이란 정의를 보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동양을 침략하면서 조작된 동양에 관한 모든 편견, 관념, 담론, 가치, 이미지 등을 말한다.” 오리엔탈리즘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습니다. “요컨대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이다.” 이런 오리엔탈리즘의 구체적 예를 유명한 유럽인 두 사람 크로머와 벨푸어의 언어에서 찾습니다. “동양인은 마치 (법정에서처럼) 재판을 받는 존재로 (교육과정에서처럼)학습되고 묘사되는 존재로, (학교나 감옥 에서처럼) 훈련받고 규율되는 존재로 또(동물도감에서처럼) 도해되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요컨대 동양인은 어떤 경우에도 지배의 틀 속에 포함되며 그 틀에 따라 표상되는 존재이다.” 우리는 이런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구체적 모습을 영국의 이집트 외교관 크로머 그의 책 「현대 이집트」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동양인이나 아랍인은 우둔하고, 활력과 자발성이 없으며 정도에 지나친 아부와 음모, 교활, 동물학대를 일삼는다. 동양인은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둔감하고 의심이 많으며 모든 점에서 앵글로 색슨 인종의 명석함, 솔직함, 고상함과 대조적이다.”「오리엔탈리즘」을 한국으로 번역한 박홍규 교수는 “이 책은 1911년 일본어로 번역되어 한국 침략을 위한 일본의 참고 문헌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본 연구소는 서양이 동양에 대한 우월 및 지배사상이 비성경적이며 역사적으로도 얼마나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비판하면서 이런 잘못된 오리엔탈리즘이 한국에 오는 제 3세계 국가의 국민들에게 반복하지 않도록 건강한 견제와 비판 기능을 수행할 것입니다. 6. 본 연구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도울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이론과 실천으로 몸소 모범적으로 살아왔던 손봉호 고신대 석좌 교수는 특히 ‘난민’에 대한 한국사회와 교회의 입장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난민에 대해서 세상에서 가장 인색한 우리나라와 이에 대해서 아무 감각도 없는 한국교회.”라고 질타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또 “만약 우리나라에 미국이나 영국처럼 노동자들과 난민들이 대거 몰려왔다면 아마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극렬하게 국수주의적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하였습니다. 필자는 손봉호 교수의 지적이 많은 부분에 옳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필자는 고신대학교에서 세계화와 다문화 이해라는 과목을 강의하는 가운데 매학기 200명씩 수강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이 밀려오는 외국인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놀라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국제이주자와 다문화 이해를 위한 관심과 그들을 돕고자 하는 열망을 보면서 한국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지만 난민 및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들도 곳곳에 있는 줄 압니다. 하지만 본 연구소는 이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유로 고국을 떠난 난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들을 섬기겠습니다. 우리는 이 나그네들을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었던 것처럼 강도만난 그 사람들을 진실로 도와주는 사마리아인이 진정한 이웃인 것처럼 또한 “이웃이란 우리가 잘 아는 주위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이니라.”(약2:26)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연구소가 되고자 합니다. 성경의 기록목적도 선한 일을 도모하기 위한 실천적 목적을 가진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7). 어거스틴에 의하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타인을 돕는 손, 가난한 자에게 달려가는 발, 불행을 보는 눈, 한숨과 슬픔을 듣는 귀를 가진 것이야 말고 사랑의 참모습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유 때문에 모든 이주민들에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7. 국제 이주자 및 외국인 근로자, 그들은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으로 왔습니다. 여러 통계들이 2018년을 정점으로 대한민국의 인구는 인구절벽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 출산, 고령화 및 젊은이의 3D 직종 기피로 이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한국사회가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급속한 다문화 사회로 나아 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런 시대적 흐름 가운데 혹자는 “다문화 사회, 득이냐 실이냐?”라는 실용적 질문을 제기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본 연구소는 이런 실용적 관점을 참고는 하되 인간을 단지 “효율”과 “기능”으로 보는 기능주의적 관점 등 어떤 비성경적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유는 스위스의 소설가, 극작가 및 건축가인 막스 프리슈(Max Rudolf Frish, 1911-1991)의 지적처럼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다. 그런데 사람들이 왔기 때문”입니다. 8. 본 연구소는 모든 문화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우리의 것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동화 주의적 접근을 반대합니다. 동화 주의적 사고방식 근저에는 타자를 나와 같아야 하는 존재로 상정하는 동일성 논리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유럽의 역사·예술사·인류학·철학·소통 이론들을 연구하며, 그 속에서 유럽이 낯선 이들을 어떻게 만나왔는지를 유형화한 독일의 선교학자 순더마이어(Theo Sundermeier)는 동일성 원리의 극단적 원형을 식민주의적 타자관 에서 찾습니다.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중남미 식민지 피지배인 들을 대하는 태도는 흔히 둘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을 가르치고 개화시켜 나처럼 인간이 되게 하든지 아니며, 인간이 아닌 사물로 분류하여, 사고 팔수 있는 노예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오직 A 만을 살아남게 하는 사회, A와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없는 사회는 다양성 아닌 획일성이 지배하는 사회이며, 주류의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입니다. 일제 식민지 정책으로서, 일본식 성명 강요, 조선어 금지 신사참배 강요 등이 이러한 동일성 논리에 입각한 것입니다. 이런 동일성 논리의 잘못을 역사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하고 그것을 저주했던 우리가 한국에 있는 외국인에게 우리가 당한 방식을 그대로 외국인들에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죄악입니다. 9. 본 연구소는 이런 동화 주의적 접근 대신에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할 것입니다. 문화 다양성을 꽃피우기 위해 동일성 논리에 입각한 사고방식을 청산하고 나와 다른 문화를 그것의 고유성 속에서 파악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인정할 것입니다. 유네스코도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 뿐 아니라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협약’을 통해 “문화 다양성이 인류의 중요한 특성이며” “인류의 공동유산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본 연구소는 이러한 입장을 지지합니다. 10. 본 연구소의 무슬림에 대한 이해 국내 모 대학의 교수처럼 무슬림에 대한 실체와 다르게 옹호하는 입장도 배격하고 이슬람에 대한 실체와 다른 왜곡된 생각도 교정하고자 합니다. 이슬람에 대한 실체적 접근을 하고자 합니다. 이슬람에 대한 지나친 호교론적 접근 보다는 객관적인 실체에 대한 진리적 접근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10.1. 최근 국내에서 다문화 선교 사역을 하는 선교사님이 저에게 보낸 문자에 “이슬람은 적그리스도이다.” “교회와 가정을 파괴시키는 사탄의 도구” 라는 내용이 왔습니다. 이와 유사한 입장의 학자도 있습니다. 그는「중동 짐승 (Mideast Beast)」이라는 책의 저자 조엘 리차드슨 입니다. 저자는 에스겔, 다니엘, 요한계시록을 토대로 성경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이슬람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토대로 이슬람이 적그리스도가 될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슬람국가(IS)의 출현과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발흥과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이 파급되고 있는 이때에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이슬람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줍니다. 하지만 조엘 리차드슨의 입장과 대척점의 위치에 있는 책이 조나단 E. 컬버의 「이스마엘」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을 향한 선교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하갈과 이스마엘에 대한 언급 가운데 부정적 언급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주장에 대해 구약학자 월트 브루거만은 그의 「창세기」주석에서 이 점에 대해 분명하게 동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6장을 보면 아직 이스마엘이 하갈의 복중에 있을 때를 묘사하고 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에게 나타나서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 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16:1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 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들으신다.’ 라는 의미를 가지며 그 이름은 여호와께서 하갈의 마음의 고통을 들으시고 그녀의 고통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이신다는 것을 항구적으로 상기시켜 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마엘 이 광야에서 갈증으로 죽어 갈 때에 창세기 21:17은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 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21:13).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창21:18). 이런 축복을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와 함께 하시니.” (창21:20b). 이 어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 곧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다윗, 예레미야 등에게 사용되었습니다. 구약학자 김의원 박사는 이 책이 기여하는 바는 “기독교인인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다시 읽어 보게 하고 이스마엘 을 향한 약속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게 해준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개입으로 이스마엘 의 후손들 사이에 엄청난 규모의 영혼들을 추수하게 될 것이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슬람 지역인 이란, 파키스탄과 이집트 등에서 일어나는 내부자 운동으로 수많은 무슬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있다고 선교현장의 사역자들이 전하는 것에서 증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2.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종교개혁 당시 개혁자들에게는 오스만 투르크는 무시무시한 대상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 대다수는 그 당시의 교황과 오스만 투르크를 “적그리스도”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칼빈의 저작을 볼 때 오스만 투르크에 대한 언급을 거의 발견할 수 가 없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그의 저작 「탁상담화」에서 ‘터키인들에 관하여’ 라는 장에서 오스만 투르크 이슬람에 대한 언급이 나타납니다. 루터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도 이슬람이 가지는 문화와 종교의 좋은 점을 긍정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루터는 이슬람의 행위에 의한 구원, 종교전쟁, 일부다처제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한편 이슬람 예배의 진지함, 이슬람 교사들의 엄격한 생활, 그들이 본 그대로의 진리에 대한 사랑, 터키 군의 엄격한 규율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이슬람에 대한 태도도 루터와 같은 균형 있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3. 본 연구소는 무슬림의 유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다문화 사회의 위험성을 직시하지만 그들 가운데 “옥석”과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면서 접근하고자 합니다. IS(Islamic State, 이슬람 국가)가 저지른 리비아 해안에서 21명의 콥트 교도들의 참수, 브뤼셀과 파리 테러는 천인공노할 행위입니다. 그것은 악마의 짓입니다. 그 사악함에 대해 우리는 치를 떨어야 하고 어떤 강력한 대응도 불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IS에 대한 생각과 분노 때문에 대다수의 선량한 외국인 유학생, 국제 결혼자 및 무슬림 외국인 근로자들을 IS와 같이 취급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더러운 물을 버리기 위해 목욕 물통 속에 있는 소중한 아이를 버리는 잘못과 같습니다. 제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 중 한명은 한국에 몰려오는 무슬림들이 마치 대한민국을 접수하러 오는 “침략군” 같이 여겨진다고 했습니다. IS의 만행과 이명박 정부의 수쿠크(Sukuk)법 통과 시도와 박근혜 정부의 익산의 할랄 식품단지 조성시도를 보면서 많은 대다수의 기독교인들과 일반인들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사랑하여 방문하는 대다수의 선량한 외국인 유학생, 국제결혼 가족들과 근로자들도 있다는 것도 현실입니다. 따라서 본 연구소는 이러한 사실을 많은 국민들에게 알리고 그들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개선하고 관점을 변화시켜 성경적 가르침에 따라 그들을 “나그네” 와 “손님”으로 섬기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이 학술대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1. 본 국제학술대회는 유럽의 경우처럼 다문화 사회가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파괴적·혼돈적 측면을 간과하지 않되 다문화 사회가 가져다 줄 긍정적·창조적·역동적 측면도 보고자 합니다. 많은 문화 연구자들은 “한 사회 속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상생할 때, 그 사회는 엄청난 창조적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문화적 다양성은 그 사회의 문화적 자산을 풍부하게 해 줄 뿐더러 차이를 껴안고 함께 사는 것을 배우게 함으로써 사회를 성숙시키는 것으로 봅니다.”, “유네스코의 문화 다양성 선언에서도, “창조는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서 풍성해 진다고 봅니다.” 많은 학자들은 문화의 다양성을 “창의성과 발전의 원천‘으로 봅니다. 따라서 “각각의 문화전통은 창의성의 원천으로서 보존되어 후대에 전달되어야함”을 강조합니다. 유네스코의 내용 중 “문화 다양성은 발전을 위한 원천의 하나로서, 발전이란 단지 경제 성장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지적·감성적·윤리적·정신적으로 좀 더 만족스러운 삶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영국의 선교학자 레슬리 뉴비긴(L. Newbigin)은 다원주의를 문화적 다원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로 구분합니다. 우리는 종교적 다원주의를 수용할 수 없지만 문화적 다원주의는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그에 의하면 문화적 다원주의는 “한 사회 안에 있는 다양한 문화와 생활 방식을 환영하고 그것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유는 문화적 다원주의는 우리의 삶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름의 평화’와 ‘차이의 공존’을 강조할 것입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 절반도 이민자라고 합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 총 11명 중 6명(물리학상 3명·경제학상 2명·화학상 1명)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미국 대학에 소속된 이민자 출신입니다. 1901-2015년 까지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의 31%는 미국이외 국가에서 태어난 이민자 출신이라고 합니다. 금년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인 노벨화학상 수상자 프레이저 스토더트는 “미국이 지금 같은 최강국이 된 이유는 미국의 국경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답니다. 12. 본 연구소는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불평등과 인권유린 같은 중요한 이슈에 대해 내부 고발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이 이슈로 세계적 관심을 유발시킨 「막스 하벨라르 Max Havelaar」(1860) 소설을 참고할 것입니다. 이 작품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노예제 폐지에 끼친 영향에 비견될 만큼 그의 조국 네덜란드와 수많은 식민지 국가 정책에 많은 변화를 촉발시켰습니다. 「막스 하벨라르」는 많은 서평자 들에 의해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중의 한권으로 언급됩니다. 정신분석학을 개척한 프로이트는 ‘10권의 책을 추천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주저 없이 이 책을 첫 번째로 올렸다고 합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소설가입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에서 지방관과 부이사관을 지냈으며, 대표작 「막스 하벨라르」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내용은 본국의 식민지 통치의 기만성과 학정을 풍자하였으며, 그의 정열적 이상주의는 근대 네덜란드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본명은 데케르(Eduard Douwes Dekker) 필명은 물타툴리(Multatuli 많이 고생했다는 뜻의 라틴어)이며 암스테르담에서 출생했습니다. 18세 때 네덜란드 통치하의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자바 ·수마트라 ·셀레베스 등지의 지방관을 거쳐 1855년 자바의 레박 지구 부이사관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러나 가혹한 식민지정책에 시달리는 원주민을 동정하여 상관과 충돌한 끝에 사직하고 1857년 귀국하였으며, 네덜란드 ·벨기에 · 독일 등의 각지를 방랑하면서 저작 ·강연 ·기부 등에서 얻은 수입으로 생활하였습니다. 그의 대표작 「막스 하벨라르 Max Havelaar」(1860)는 인도네시아 체류 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원주민에 대한 착취 ·억압의 생생한 정경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여 본국의 식민지 통치의 기만성과 학정을 풍자적으로 폭로하고 탄핵한 것으로, 그의 정열적 이상주의는 근대 네덜란드 문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책 한권으로 19세기 네덜란드의 정책을 흔든 필명이 물타툴리 (Multatuli)를 가진 데케르는 스스로 고생의 삶을 살면서 그 책을 통해서 네덜란드의 풍족한 삶 뒤에 식민지 인도네시아 민중의 피와 눈물이 있음을 폭로하고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오슬로 국립대 박노자 교수는 그를 “해적국가의 양심”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필명으로 유럽 전역에서 문명(文名)을 얻은 에두아르드 데커(Eduard Douwes Dekker)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즐길 것을 두루 즐기고 규율적이면서도 편한 생활을 보내는 선량한 소시민을 모범으로 내세우는 유럽의 가장 부르주아적 국가인 네덜란드 대다수 국민과는 달리 데커는 본인이 의식적으로 고생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강물에 빠진 개를 위해서 주저 없이 강에 뛰어내리고 극장에서 배우를 험담하는 지체 높은 부르주아 손님의 뺨을 갈기기도 하는 괴짜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 책을 통해서 돈독한 신앙심과 빈틈없는 법질서, 합리적 사업정신을 자랑하는 네덜란드가 부유하게 된 것이 결코 근검절약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박노자 교수에 의하면 네덜란드 사회의 깨끗함과 조용함, 예절과 매너 뒤에는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착취를 당하는 식민지 인도네시아 민중의 피와 눈물이 있었던 것입니다. 부르주아 사회의 자본축적 과정의 약탈성을 데커가 과감하게 누설한 것입니다. 데커는 어떻게 해서 네덜란드 식민지 착취 체제의 내부 고발자가 된 것일까. 유럽의 ‘모범 문명국’의 ‘모범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에서 그가 본 것은 소위 ‘강제재배 체제’아래서 강제 노동수용소의 죄수처럼 당국의 지시대로 특정 작물만 파종했다가 수확이 좋지 않을 때는 아무런 구휼도 없이 그저 대량으로 굶어죽어야만 하는 원주민들과 ‘공식적’ 착취에다가 개인의 치부를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온갖 부정부패 가렴주구를 다 저지르고도 처벌되지 않는 네덜란드의 탐관오리들, 네덜란드 당국과의 유착 덕분에 살인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토착지주들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의 국고와 상인들의 주머니들을 해마다 살찌우는 인도네시아의 커피와 사탕에서는 말 그대로 피비린내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순진하게도 지역 관료들의 비리를 인도네시아 총독에게 고발했다가 결국 생트집 잡혀 정직·직위해제 처분을 몇 번씩 당해본 데커는 이 체제 안에서의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는 퇴직을 자청하고 유럽으로 돌아와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한 호텔에서 인도네시아에서의 식민지배 체제라는 살인기구를 폭로·단죄하는 소설의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 네덜란드 19세기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막스 하벨라르」였습니다. 그의 필명 ‘물타툴리(Multatuli)는 라틴어 이름 그대로, 혹자는 “모질었던 그의 삶을 빼닮았다.”고 합니다. 작품 때문에 조국으로부터 불온주의자로 찍혀 각국을 방랑하던 그는 1887년 2월 19일 67세의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불온주의자로 찍혀 직업을 얻지 못한 데커는 각국을 방랑하며 집필과 연설로 생계를 꾸리다 1887년 2월19일 67세로 가난하게 죽었지만 ‘해적국가의 양심’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혹자는「막스 하벨라르」를 “식민주의를 말살”한 작품으로 추앙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설로 평가합니다. 우리는 그가 남긴 명언을 기억합니다.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악, 범죄, 죄악만이 있다. 그것은 심장의 부재이다(There is only one evil, one crime, one sin: lack of heart).”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에 대한 이 심장의 부재가 있는 곳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와 사랑 안에서 일깨우는 연구소가 되겠습니다. 13. 하나 된 세상을 꿈꿉니다. 본 연구소는 거스를 수 없는 다문화 시대에 다문화 가족과 한국인이 차별 없는 하나 된 세상 대한민국을 꿈꾸어 봅니다. 서구사회가 이루지 못한 하나 된 세상을 복음 안에서 이루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저력과 경험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의 경계를 뛰어 넘어 하나 되는 세상이 대한민국에서 성취되어 오만하고 콧대 높은 유럽에 역수출 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복음 안에서 선진화를 이루는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교회가 앞장 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선진화는 고아, 과부, 나그네와 장애인등 세상에서 가장 힘없고 소외받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관심을 우리가 대변 해 줄 때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에 교회가 가장 앞장서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이 교회가 룻과 보아스의 다문화 가정의 결혼을 통해 사사시대의 칠흑과 같이 캄캄하고 어두운 시대에 빛처럼 밝은 가정을 이루는 모범을 보이는 것처럼 그런 가정을 만드는데 본 연구소와 교회가 협력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이방 나라의 모압 여인이었던 룻이 유대 남자 보아스를 만나 다윗의 조상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수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시어머니 나오미의 신앙으로 룻이 신앙을 가지고 어머니의 하나님을 믿고 따랐던 것처럼 그들이 한국의 룻과 보아스와 같은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도록 저희 연구소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룻·보아스 프로젝트’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본 연구소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다문화 가정의 역할 모델로 캐나다 총리 트뤼도의 개혁을 참고하고자 합니다. 첫째,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오바마 프로젝트’입니다. 몇 해 전 매일경제신문에서 다문화 가정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오바마 프로젝트를 구상했습니다. 그 후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본 연구소는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k Obama)는 국제 결혼한 다문화가정의 자녀였습니다. 아프리카 케냐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출신 백인 어머니 가운데 출생했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그의 삶을 조명하는 가운데 미국 시사저널 뉴스위크지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는 흑인 아버지와 이혼 한 뒤 외롭고 힘들게 사는 가운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전락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어릴 때 급식권(Food Stamp)으로 어린 시절을 영위했다고 합니다. 그의 고생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의 어머니가 인도네시아 남자와 재혼함으로 의붓아버지를 따라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다른 인도네시아 여동생은 중국계 캐나다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오바마는 “우리 가족이 다 모이면 유엔 같을 것”이라 했습니다. 어머니가 또 이혼 한 뒤 오바마는 외조부모들이 살고 있는 하와이로 보내졌습니다. 거기서 그는 백인들의 인종차별 가운데 심지어 ‘깜둥이’라는 말도 여러 번 들으면서 상처 많은 청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런 아픔과 상처 가운데 그는 마약도 손에 대기도 해서 한때 ‘문제아’로 낙인찍히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외할머니의 교육의 힘으로 오늘의 그가 되었다고 합니다. 교육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교육의 힘으로 다문화 가정 자녀 중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교육의 힘으로 오늘날 수많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교육기관, 중앙정부, 지방정부와 기업과 교회와 연대와 협력을 통해 그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연구소가 되고자 합니다. 둘째, 얼마 전 취임한 캐나다 트뤼도 총리는 내각 장관 30명중 절반인 15명을 여성으로 임명했고, 청년, 난민 또는 이민자, 원주민, 장애인 출신을 두루 기용했습니다. 그 중 난민과 이민자를 각료로 영입했습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발상입니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이런 획기적 발상을 먼저 시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셉의 예입니다. 그의 탁월한 예지의 능력과 국가 경영능력을 인정함으로 그가 어느 나라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를 사용하였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그의 책 「역사」에서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국가들이 다양한 인재를 받아들이는 문호를 개방하는 장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애굽, 바벨론과 바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집트와 바벨론에서 국제적 인재로 쓰임 받은 요셉과 다니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은 남의 나라에 노예로 팔려왔지만 그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개방된 세상을 만드는데 본 연구소가 도움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규모가 전 세계에서 상위권에 해당되는 국가입니다. 세계에서 인구 5천 만 명 이상에 개인국민소득 2만 5천불이 넘는 국가가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그리고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국은 자동차·선박·전자 등에서 세계최고의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미국·일본·독일에 이어 네 번째로 특허를 많이 받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규모의 선진국만 아니라 다른 문화와 민족에 대해서도 배려하는 명실상부한 선진국 수준에 이르는 품격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의 위대성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개방성’에 두었습니다. 그 개방성 때문에 로마가 가장 위대한 제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더 강점이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과 장인정신에서는 뒤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타민족과 타문화에 대한 개방성에 있어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개방성이 가장 잘 나타나야 하는 곳이 국제 이주자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태도입니다. 다문화 가정 문제를 다루는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부정적 요소로 다문화 가정이 직면한 문제들을 우리가 소홀히 할 때 서구사회가 오늘날 직면한 문제들을 동일하게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브뤼셀 테러처럼 국내에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잘못될 경우 IS와 언제든지 연계될 수 있는 ‘자생적 늑대’들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현재 피부색 편견, 빈곤과 교육 격차의 악순환으로 심각한 소외 계층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청년 연령에 도달해서 실업 및 그 동안 겪었던 인종 차별로 분노와 적개심 가운데 사회 불만이 고조될 경우 우리에게 걷잡을 수 없는 무서운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아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 (Ulrich Beck)의 지적처럼 우리 사회가 그렇게 방치될 때 대한민국이 ‘위험 사회'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긍정적 측면으로 이들이 다양한 문화와 언어 그리고 인구 증가와 함께 가져다 줄 노동력은 한국여성의 출산율 저하로 치닫는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을 해결 할 수 있고 나아가 다문화 가정의 부모 나라와 대한민국 그리고 국제사회의 가교역할을 담당하는 국제적 인재로 기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국제이주자와 다문화 가정을 ‘그들’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데는 ‘2%’가 부족합니다. 이유는 레비스트로스의 나라 프랑스에서 최근 이런 철학에 기초한 다문화 정책을 포기하는 가운데 그들이 주장한 톨레랑스(Tolerance, 관용)의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톨레랑스는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화두(話頭)입니다. 모더니즘이 강조하는 보편성과 획일성 대신 포스트모더니즘이 강조하는 ‘다름’과 ‘차이’를 포괄하는 가장 매력적인 용어입니다. 이 사상에 기초한 것이 유럽의 다문화정책입니다. 몇 해 전 노르웨이 사건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 영국의 캐머런 총리와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다문화주의 정책 포기와 궤를 같이 하는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이들의 ‘다문화주의 포기’ 발언은 1970년대 그것을 처음 도입한 호주와 캐나다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유럽의 다문화주의 포기를 한국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국제이주자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톨레랑스 및 다문화정책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피상성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다문화주의 포기는 그들이 주장하는 톨레랑스의 사상적 피상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이 피상성은 캐머런과 사르코지의 우파정권이 인권 보다는 국익 때문에 다문화주의를 포기하는 것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문화정책과 톨레랑스를 전유물로 삼고 있는 유럽 좌파는 우파의 다문화 정책 포기를 비판하지만 그것이 실천 없는 수사(修辭)에만 그친다면 그 피상성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한 달 전 한국을 방문한 유럽의 학자와 함께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중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유럽인들 ‘톨레랑스’라는 단어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톨레랑스’를 그렇게 열심히 부르짖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결정적 순간에 가장 ‘톨레랑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것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위선적입니다. 해결책은 진정성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국제이주자와 다문화가정이 겪는 어려움 중 가장 원초적인 것은 그들에 대한 내국인의 편견과 차별입니다. 국제다문화 사회연구소는 외국인과 “차별 없는 세상” “차별 없는 대한민국”을 꿈꿉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는 톨레랑스의 가치와 한계를 직시하면서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는 인간에 대한 진정성 있는 교육과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이 교육과 실천에 앞장서는 연구소가 되겠습니다. 국제다문화 사회 연구소 소개 1. 시작 및 경과 국제 다문화 사회 연구소는 2015년 부산지역의 다문화 사역에 관심을 가진 몇 분의 기독인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월 1일 창립총회를 가지고 3월 24일에 국내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는 11월 11일 금요일 오전 9:00-오후 6:00까지 고신대 손양원 홀(4강의동 4401호)에서 국제학술 대회를 개최합니다. 2. 구성 한국에 이주해 살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국제결혼 가정 및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돕는 학술 중심의 국제 연구소입니다. 국외 및 국내 전국 75개 대학에 171 명의 각 영역의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외 학자 6명, 수도권에 약 50명의 교수 그 중 서울대 8명, 고려대 5명, 연세대 2명, 이화여대 2명, 한국외대 2명, 서강대 2명, 부산대 7명, 동아대 6명, 한동대 7명 호남지역 3명 기타지역의 교수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문은 김형오 전국회의장,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정근두 목사, 허남식 전 부산시장, 신정택 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현장과 다문화 사역의 현장에서 일하는 30여명의 사역자들과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소는 전문분야와 실무분야 중 약 200명의 인원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3. 협력사역 학문적 이론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 청소년들을 위한 (사단법인) 다문화 청소년 협의회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청소년들 가운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젊은이들도 많지만 다문화 청소년들 가운데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젊은이는 훨씬 더 많습니다. 또한 긍정적으로 본다면 그들이 앞으로 한국사회와 그들 어머니의 나라를 연결할 수 있는 국제적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이것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4. 저희 연구소는 정책적으로 건강한 성경적 다문화 가정을 세우는데 앞장서 나갈 것 입니다. 본 연구소는 “다문화 가정, 선교의 땅 끝”으로 생각합니다. 다문화 가정의 요셉 가정, 룻과 보아스와 같은 건강한 성경적 다문화 가정을 세우기 위해 성경적·신학적·선교적·실천적 노력들을 수행할 것입니다. 특히 다문화 시대에 직면한 한국사회와 교회가 다문화 선교사역을 위해 서로 돕고 협력할 것입니다. 교회, 전문가, 현장사역자 및 정책 기관을 함께 엮을 수 있는 겸손과 섬김의 협력체가 되고자 합니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연대와 협력의 고리 역할을 하겠습니다. 현대는 Network의 시대입니다. 첫째도 연대와 협력, 둘째도 연대와 협력, 셋째도 연대와 협력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전4:12). 4.1. 입법기관 즉 국회, 행정기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교육과학 기술부, 법무부에 정책 제안 및 입안을 하고자 합니다. 4.2. 광역지자체인 부산광역시, 부산시 교육청, 경상남도, 김해, 울산, 양산시와 부산지역의 16개 구군에 속한 다문화 가족을 정책적으로 돕고자 합니다. 국제다문화사회 연구소 소장 고신대이병수 교수(010-6566-7176) 사무처장 송태운 (010-9686-2262) 홈페이지 http:irim.or.kr/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11-18
  • 토마스 선교사의 입국, 활동 그리고 죽음
    이 글은 2016년 8월 31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에 위치한 부전교회에서 행한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순교 150주년 기념 예배 및 심포지엄’에서 행한 강연을 요약한 것임, 이 글에서 고무송, 『토마스와 함께 떠나는 순례여행』(쿰란출판사, 2004),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1』(생명의 말씀사. 2004), 오문환, 『토마스 목사전』(평양, 1928), 프라이스 스텔라, 『조선에 부르심을 받다』(Korea. com. 2016)와 Hamilton, Moffett, Rhodes 등의 자료를 참고하였으나 각주로 처리 못한점에 대하여 양해를 구한다. 토마스 선교사의 입국, 활동 그리고 죽음 ▲ 이상규(고신대학교, 교회사학) 시작하면서 부산지역의 부전교회를 비롯하여 주변의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150주년을 기념하여 함께 이를 기념하게 된 것은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추진하여 주신 한국기독교사연구소의 박용규 소장님과 이 뜻에 공감하여 기꺼이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부전교회와 박성규 담임목사님, 그리고 당회와 성도들에게 감사한다. 부전교회는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건강하고 건실한 교회이고 박성규 담임목사는 부산의 영적 갱신과 부흥을 위해 헌신하시는 영적 지도자라는 점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오늘 모임에 토마스 선교사에 대해 깊이 연구하신 박용규 교수님이나 토마스 목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수득하신 고무송 목사님과 같은 학자가 강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양했으나 부산에 살고 있다는 이유에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송구하게 생각한다. 오늘 필자는 토마스 선교사가 걸어갔던 26년의 삶의 여정을 뒤돌아보고 오늘 우리들과 우리 교회에 주는 가르침이 어떤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16세기 독일의 위대한 화가였던 알브레히트 뒬러(Albrecht Durer, 1471-1528)는 ‘그림’(painting)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첫째는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고, 둘째는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초상화를 그렸다. 오늘 우리의 ‘기림’(commemorate)도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고, 둘째는 토마스 목사가 걸어갔던 믿음의 길을 기리는 일이다. 이 목적을 위해 우선 토마스 목사가 살아갔던 삶의 여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들의 신앙과 삶, 그리고 오늘의 교회 현실을 성찰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1. 출생과 가정 배경, 학교교육 로버트 저마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는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 1810-1884)와 메리 윌리암스(Mary L. Williams, 1817-1895)의 6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로버트 토마스는 당시 웨일즈의 위대한 설교가이자 웨일즈 부흥을 주도한 윌리엄 윌리엄스의 제자인데, 중부 웨일즈에 있는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1837년 4월 18일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1839년 여름 라야더(Rhayader)의 터바나클 교회 부임했는데, 바로 이곳에서 둘째 아들 저마인 토마스가 출생했다. 로버트 토마스 목사가 이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강력한 성령의 역사 일어났고 교회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였다. 이곳에서 목회하면서 1795년에 창립된 런던선교회에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하는데, 후에 그의 아들이 런던선교회의 파송으로 중국으로 향하게 된 것은 흥미로운 관련이 아닐 수 없다.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1848년에는 몬머스셔(Monmouthshire)의 하노버교회로 이동하게 된다. 이때 저마인 토마스는 8살이었다. 토마스는 이곳 하노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토마스의 교육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최초의 공교육이 이루어 진 곳은 란도버리(Landovery) 칼리지에 3년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그는 헬라어와 라틴어, 그리고 프랑스어를 공부했는데 이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언어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그가 언어에 재능이 있었다는 점은 그 이후의 다른 기록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후 토마스는 오스포드대학교 지저스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나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입학이 보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는 도제식 의학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스텔라 프라이스(Stella Price)에 의하며 토마스는 외과의사가 되는 교육을 받으라는 주변의 권고를 받고 워터만(Waterman) 의사 휘하에서 2년간 의학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왕실의사면허 시험 제도가 있어 공인된 의사 밑에서 훈련을 받고 시험에 합격하면 의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2년여 이런 교육을 받았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고, 육신의 치료자보다는 영혼의 치유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든 중 잉글랜드 노스헴톤 지역 온들(Oundle)에 있는 알프레드 뉴스 학교(Alfred Newth’s school) 보조교사로 부름을 받고 약 1년간 일하게 된다. 이 학교 교장 알프레드 뉴스는 중국선교를 준비했던 사람으로 로버트 모리슨에게 중국어를 배운 인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는 알프레드 뉴스를 통해 중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토마스는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캐를라인 갓프리(Caroline Godfrey)였다. 토마스는 주일에는 온들 회중교회에 다녔는데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던 중 존 갓프리의 외동딸 캐를라인 갓프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여성은 토마스보다 2살 연상으로 후일 아내가 된다. 일 년 간의 교사생활을 마감한 토마스는 고향 하노버로 돌아갔고, 이때 아버지 청으로 교회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것이 히브리서 13장 8절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본문의 설교였다. 아마도 이것은 자신의 신앙고백이었을 것이다. 토마스는 1857년에는 런던대학교 뉴칼리지에 입학했다. 온들에 있을 때 교장이었던 알프레드 뉴스의 친형인 새무엘 뉴스가 당시 학장이었다. 이곳에서 2년만에 학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3년간 최고의 금액인 밀스장학금을 받았다. 이 시기가 웨일즈의 영적 부흥기였는데 토마스는 교수드르이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 년 간 휴학했는데, 휴학기간동안 지역교회에서 설교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복학한 그는 중국선교에 대한 조바심으로 학교에 조기 졸업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가 선교의 이상을 갖게 된 데는 귀츨라프의 영향 또한 없지 않았다. 토마스는 1832년 충청남도 보령시의 고대도와 조선 해안을 방문했던 귀츨라프의 항해기를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귀츨라프가 서해안을 따라 여행하면서 성경을 보급했듯이 후일 토마스도 동일한 방법을 선택했다. 1859년 10월 토마스는 런던선교회 소속의 록하르트(Lockhart) 선교사의 설교 듣고 큰 감명을 받는데, 그의 설교 또한 선교사의 길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록하르트는 1861년에는 영국공사관의 공의로 베이징에서 활동하게 된다. 2. 선교사로의 길 토마스는 1863년 5월 뉴칼리지 졸업했다, 휴학기간을 포함하여 6년이 소요되었다. 졸업 후인 5월 29일에는 런던의 회중교회에서 온들에서 만난 캐롤라인 갓프리와 결혼했다. 이때 토미스는 23세, 아내는 25세였다. 결혼 6일 후인 6월 4일에는 목사안수 및 선교사 파송식이 거행되었다. 이로부터 7주 후인 7월 21일 토마스 부부는 그레이브센드(Gravesend) 항구 떠나 상해로 출발했다. 그가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몇 가지 연쇄적 영향도 없지 않았지만 당시 중궁은 인도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선교지였고, 가장 많은 선교사가 파송된 지역이었다. 토마스는 영국을 떠난지 4개월 만인 1863년 12월 첫주 상하이(上海)에 도착했다. 런던선교회 상하이 지부장 무어헤드(William Muirhead)의 충심의 영접을 받았으나 두 사람 간의 친밀한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상하이 도착 2개월 후인 1864년 2월 4일 자로 부모님께 보낸 편지가 남아 있는데 이 문서에는 당시 정황을 헤아리게 해 주는 중요한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도착 4개월 후인 1864년 3월 11일 런던선교회의 그리피스 존(Griffith John)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한커우(漢口)로 갔는데 그 기간동안 임신 중이던 부인은 유산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1864년 3월 24일 2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토마스는 타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맞게 되었고, 이 일로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사별의 아픔이치유되기도 전에 토마스는 또 다른 고뇌에 빠졌는데, 상하이지부장 무어헤드와의 갈등이었다. 선교관의 차이에서 유래한 갈등은 토마스에게는 심각한 현실이었다. 상하이에 주제하는 영국인을 위해 목회했던 무어헤드는 상하이가 선교 중심이어야 한다고 보았으나 토마스는 자국민보다 중국인 선교가 우선해야 된다고 보았고, 한커우로 가고 싶어 했다. 토마스에게 신설되는 학교 교장직 요청을 받았으나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음으로 이 사역은 그에게 매력적이지 못했다. 결국 토마스는 런던선교회를 사임하게 된다. 1864년 12월 7일이었다. 곧 이 일을 경솔한 행동이었다고 후회하게 되지만 토마스에게는 성급함과 무모함이 없지 않았다. 고무송 박사는 토마스에게는 모험정신, 강한 의무감, 무모함, 성급함, 엘리트 의식 등 몇 가지 기질 혹은 특징이 있다고 보았는데,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런던 선교회를 사임한 그는 현제 엔타이(煙臺)라고 불리는 지푸(Chefoo)로 이동하여 이곳 세관의 통역 및 감독관으로 일했다. 이때부터 1865년 8월 31일까지 약 8, 9개월간 일했다. 3. 제1차 조선 방문 지푸는 산동성 북부의 해안도시로서 조선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당시로 볼 때 외국과의 무역을 허용한 유일한 항구였다. 이곳에서 토마스는 두 사람의 한국인을 만나게 된다. 이곳의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소속 알렉산더 윌리암슨(Alexander Williamson)은 두 한국인을 만나게 되는데, 김양선에 의하며 그 두 조선사람 김자평(金子平)과 최선일이라고 한다. 윌리암슨은 이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토마스도 함께 초대되었고, 이들을 통해 한국의 상황을 듣게 뙨다. 즉 한국의 로마가톨릭 신자는 5만명이 이르고, 11명의 신부들이 비밀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이런 접촉을 통해 토마스는 조선 선교를 자원하게 되고, 스코틀랜드성서공회 대리인 자격으로 1865년 9월 4일 ‘허락되지 않는 땅’(terra incognito) 조선으로 향하게 된다. 이것이 제1차 조선방문인데, 윌리암슨으로부터 한문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보급 받았고 또 약간의 경비 지원도 받았다. 이대 김자평이 동행했고, 중국인 우웬타이가 항해를 맡았다. 그 달 13일에는 황해도 해안에 도착했는데, 이곳이 황해도 옹진 자라리(紫羅里) 근포(近浦)였다. 이곳에서 성경을 나누어 주며 전도했고 한양까지 가려했으나 배가 파선되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을 떠난 그는 만주의 피쯔워 항구를 거쳐 도보와 말을 타고 여행하여1866년 1월 4일 혹은 5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지푸를 떠난지 4개월 만이었다. 조선에 체류한 기간은 2달 반 정도였고, 체류한 곳은 서해안, 곧 황해도나 평안도에 속한 도서지방이었다. 김양선 교수의 지적처럼 토마스를 인도했던 김자평이 황해도의 ‘육도’였기 때문에 자기가 잘 아는 지역으로 안내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서 성경책과 기독교 문서를 배포했다. 이점은 토마스가 두 번째 조선으로 향하기 일주일 전에 런던선교회 지부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베이징으로 돌아온 토마스는 런던선교회 선교사로 재가입 되었고 근무지는 베이징 지부로 결정되었음을 통보 받았다. 즉 재가입된 것은 1865년 9월에서 11월 사이로 판단되는데 이 점은 토마스가 런던선교회 소속으로 조선을 방문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토마스가 런던 선교회 티드만 회장에게 보낸 조선방문 보고는 당시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소중한 정보를 제공한다(스텔라, 100). 4. 제2차 조선 방문 고종 3년인 1866년은 우리나라 최대의 천주교 박해인 병인박해가 있었던 해였고 이때 대원군은 천주교를 금압했을 뿐 아니라 약 8천명의 천주교인이 죽임을 당했다. 이 때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던 베르뇌(Berneux) 주교를 비롯하여 9명의 프랑스 주교들이 참수되었다. 천주교도를 색출하기 위해 오가작통법으로 감시했고 해안은 봉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는 두 번째 조선을 방문하게 된다. 토마스는 조선에서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선행을 시도했다. 그러든 중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 제독으로부터 통역관으로 조선으로의 동행을 요청했다. 로즈 제독은 베이징의 프랑스 대사관을 방문했는데, 프랑스 대리공사 벨로네(Bellonet)에게 조선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소식, 특히 프랑스인의 처형 소식 알려주었다. 벨로네는 로즈에게 조선 진격을 요구했고, 약간의 조선어를 알고 있는 토마스에게 로즈 제독의 통역관으로 조선 동행을 요청한 것이다. 주저되는 바가 없지 않았으나 토마스는 조선으로 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서 텬진에서 로즈 제독과 합류하여 지푸를 거쳐 조선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로즈 제독은 베트남 사이공에서 일어난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그리로 가게 됨으로 원래 계획이 취소되었다. 토마스는 조선으로 갈 길을 찾기 위해 일단 지푸로 갔다. 여기서 필요한 경비도 마련할 계획이었다. 여기서 다시 윌리암슨과 한국인 김자평을 만났는데 이들을 통해 조선방문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든 중 1884년 7월 29일 지푸에 커다란 선박이 나타났다. 그것이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였다. 원래 이 배는 1861년 영국에서 건조한 범선으로 ‘프린세스 로얄’호로 불렸으나 1863년 1월 미국으로 넘겨져 미 해군에서 사용하였고, 1865년에는 경매에 넘겨져 상선으로 개조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위력을 떨친 남군의 장군 셔먼으로 이름을 따 제너럴 셔먼으로 개칭되었으나 더 이상 해군 함정이 아니라 영국의 메도우 사(Meadows Company) 소속 상선이었다. 이 배는 조선에서 팔릴만한 비단, 유리그릇, 천리경, 자명종 등을 싣고 텬진항을 거쳐 지푸로 온 선박이었다. 토마스가 어떻게 이 배에 승선하게 되었는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행을 의도했던 토마스에게는 조선행의 호기였다. 그 배가 어떤 성격의 배인지, 조선 방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따질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토마스는 베이징을 떠난지 26일 만인 1866년 8월 9일 제너럴 셔먼호에 승선했고, 이날 셔먼호는 조선으로 향했다. 알렉산더 윌리엄슨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양의 한문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공급받았다. 제너럴 셔먼 호는 무장한 상선으로 승선인은 선주 미국인 프레스턴(W. Preston)을 비롯하여 항해사 윌슨(Wilson), 선장 페이지(Page), 화물관리인 영국인 호가스(G. Hogarth), 토마스 선교사, 두 사람의 중국인 이팔행 등 항해안내원, 그리고 중국인과 말레시아인 선원 등 24명으로 파악된다. 후의 일이지만 고종실록에는 프레스톤을 보래돈(普來敦)으로, 페이지를 파사(巴使)로, 호가스를 하갈특(何噶特)으로, 토마스를 최란헌(崔蘭軒)으로 표기했다. 물론 최란헌이라는 표기가 토마스를 표기한 것이 맞느냐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다. 지푸를 떠난 제너럴 셔먼호의 첫 경유지는 백령도의 두무진 항이었다. 이곳에서 토마스는 성경을 나눠주었고, 이때 제너럴 셔먼호를 목격했던 한 조선인의 목격담이 스텔라 프라이스는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124쪽). 곧 백령도를 떠나 돛섬으로 향했는데, 여기서 중국인 선장 우웬타이(Yu-Wen-Tai) 만나게 된다. 그는 여러 차례 조선의 해안을 왕래하며 장사했던 중국인이었다. 다시 배는 대동강 안쪽으로 행진했다. 외국선박의 입항이나 접촉을 금지했던 조선의 사정을 알고 있던 선원들은 안전을 위해 더 이상 진출 우려했으나 선장과 선주는 우웬타이의 경고를 무시했다. 조선 사정이 밝은 우웬타이는 더 이상 안내할 수 없다며 지푸로 돌아갔다. 그러나 셔먼호는 자만했다. 5. 대치상황과 제너럴 셔먼호의 최후 8월 16일에는 용강면 다미면 주용포항에, 8월 17일 금요일에는 황주 송산에 정박했다. 예상되는 바이지만 강둑에는 이양선을 보기 위해 조선인들이 몰려들었고, 조선관리는 긴급 회합하여 선박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셔먼호는 입항을 고집했다. 고종 3년, 곧 1866년 음력 7월 15일자 고종실록에는 당시의 상황이 언급되어 있다. 배는 더 진행하여 8월 20일에는 평양 초리방 사포구에 이르렀다. 이곳에서도 서양 선막은 구경꺼리였다. 많은 이들이 구경하러 몰려왔다. 오문환에 의하면 홍신길이라는 소년도 작은 배로 셔먼호 근처로 접근했고, 토마스는 갑판에서 그를 맞이하여 방으로 데리고 기독교 문서를 주고 그에게 케이크를 맛보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감자를 보았다고 한다. 또 그날 밤에는 인근 쑥개마을에서 장인국 지달수 지달체 지택구 지택붕 지택주 장용국 지달해 표명보 등 아홉 사람이 토마스를 찾아갔다고 한다. 이 들 중 장용국 외에는 천주교 신자들인데 천주교 신자들을 보호해 줄 프랑스 선박을 기다리고 있던 중 셔먼호로 찾아간 것이다. 토마스는 자기는 천주교 신자도 프랑스 함대도 아니라고 말하고 개신교 선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성경과 기독교 문서, 그리고 빅토링여왕 얼굴이 새겨진 동전까지 주었는데, 천주교신자들은 성모 마리아상으로로 오인했다고 한다. 오문환 장로 기록의 정확성은 확인할 수 없으나 조선인과의 접촉의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얼마 후 지달수와 지달해는 서양인 접촉했다는 이유로 참수되었다고 한다. 다음날 조선관리가 선박의 철수를 요구했을 때 셔먼호는 교역을 원한다며 비단, 유리, 망원경, 자명종을 조선의 쌀, 인삼, 종이, 호랑이 가죽 등과 교환하자고 했다. 그러나 교역을 금하는 정책에 따라 이를 거절했다. 거듭된 경고를 무시한 것은 제너널 셔먼호의 오만이었고 신중치 못한 처신이었다. 대치상황은 약 2주일간 계속되었다. 조선 관리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제너럴 셔먼호는 평양행을 고집하고 8월 21일에는 평양 신장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도 구경꾼들이 몰려오았고, 토마스는 성경책 나눠주었다. 토마스로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면 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성경 받은 김영섭은 후에 기독교신앙을 받아드렸고, 두 아들 김종권과 김성집은 후일 장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조선 관리 김낙수는 선박의 도래경위를 조사하고 철수를 요구했다. 8월 22일 셔먼호는 평양 만경대의 작은 선 두로도에 닻을 내렸다. 토마스 이곳에서 100권의 성경 배포했다고 한다. 평양감사 박규수는 셔먼호의 공격에 대비하여 만경대를 둘러싸는 방어선 구축 지시했다. 그럼에도 셔먼호 대동강으로 계속 진입했다. 8월 27일에는 보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났다. 셔먼호 승무원들이 순시대장 중군(中軍) 이현익을 억류한 것이다. 조선에 무단 침입했을 뿐 아니라 퇴거를 거부하고 조선관리를 억류한 일은 심각한 일이었다. 셔먼호의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혹은 물이나 식량, 연료를 공급받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없지 않으나 방자한 행동이었다. 선원 중 한 사람은 이현익의 관원 명찰을 빼앗은 일을 더욱 그러했다. 이현익의 억류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셔먼호에 돌을 던졌고, 석방을 요구했다. 관군은 사격을 가했다. 셔먼호 측에서도 발포했다. 이런 와중에서 박춘권(朴春權)이 혼자 배를 저어 가 이현익을 구출했다고 한다. 오문환에 의하면 그가 후에 평양의 장로교회 첫 인물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다. 셔먼호가 수세에 몰리자 더욱 낙폭하게 대응했다. 8월 28일 발포를 시작했고, 8월 31일에는 조선인 7명 사살되고 5사람 중경상을 입었다. 사태는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고종의 허락에 따라 평양감사 박규수는 셔먼호 공격을 지시했다. 9월 3일이었다. 박규수는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로서 개방론자였으나 셔먼호의 무단접근은 용인될 수 없었다. 곧 강 수위는 낳아졌고 배는 좌초되었다. 9월 4일 달빛도 없는 그믐밤이었다. 결국 선원은 쑥섬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작은 거룻배에 나무를 싣고 불을 붙여 셔먼호로 접근시켜 셔먼 호 불태웠다. 선원들 불길을 피해 강밖으로 헤엄쳐 나왔으나 강변에 정렬해 있는 군인들에 의해 창에 찔려 주임을 당했다. 토마스 목사도 남은 성경책을 안고 배에서 띄어 내렸다. 강가로 끌려나온 그는 모래사장에 머리를 숙이고 기도했다. 그리고는 마지막 성경을 관군에게 내밀었다. 관군의 칼은 토마스의 가슴을 내리쳤고 토마스는 9월 5일 대동강 쑥섬 모래사장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토마스의 시신은 대동강변에 묻혔다. 6. 토마스의 순교 이후 토마스의 최후에 대해서는 상이한 기록이 남아 있다. 배가 불타고 선원들이 죽임을 당할 때 토마스는 뱃머리에서 홀로 야소(耶蘇)를 외치고 남은 성경을 뿌렸다는 기록이 있는가하면, 한석진 목사는 토마수가 순교한지 26년이 지난 1892년 당시 목격자로부터 제널 셔먼호가 불탈 때 토마스가 성경을 던지며 ‘야소’를 외치는 것을 들었다는 증언을 남겨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백기를 흔들며 목숨을 외국인도 한 두명 있었다고 한다. 그 한 사람이 토마스였을 것으로 말하는 이도 있다. 기록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을 균형 있게 판단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토마스의 죽음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제너럴 셔먼을 구경하라 갔던 소년 최치량(崔致良, 1854-1930)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는 12살 때 숙부와 함께 1866년 9월 3일 토마스 순교장면을 목격하였고, 토마스 목사가 뿌린 한문성경 3권을 주었다고 한다. 책 소지자에 체포 명령이 내려 대부분 성경을 소각하거나 강변에 버렸다. 최지량도 이 성경을 집으로 가져 오지 못하고 영문주사(營門主事) 박영식(朴永植)에게 주었다고 한다. 박영식은 이 성경을 가져와 찢어 벽지로 사용했다. 오랜 후 최치량은 사업에 성공하여 물상객주(物商客主)가 되어 평양 대동문 안에 집을 사 여관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그 여관의 전 주인이 박영식이었다. 최치량은 이 벽지로 사용된 성경을 읽고 또 한석진의 전도로 회심하였고, 평양에서 최초로 마펫에게 세례를 받고 평양지역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널다리골의 홍종대(洪鐘大)의 집을 사서 예배처소로 사용했는데, 이것이 평양장대현교회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서구와의 불행한 접촉이었으나 그 이후 역사는 흥미롭게 전개되었다. 이 사건은 조선과 미국간의 외교문제로 발전하였고, 널리 알려진 바처럼 이 일이 신미양요(辛未洋擾, 1871. 6)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대결과 접촉이 후일에는 조미 양국 간의 통상조약(1882)으로 발전하여 외국인의 조선 거주를 보장 받게 된다. 결국 1884년에는 알렌이 입국하게 되는데, 토마스 순교 18년 후의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박용규 교수는 토마스의 순교는 한국교회의 보이지 않는 이정표가 되었다고 말한다. 오문환은, 토마스의 피가 뿌려진 대동강 물을 마신자마다 예수를 믿었고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만큼 한국교회의 거룩한 도성이 되었다고 했다. 7. 남은 문제: 토마스는 순교자인가 침략자인가? 토마스 목사는 오랫동안 잊혀진 인물로 남아 있었다. 그가 죽임을 당하고 60년이 지난 1926년 평양의 오문환 장로는 토마스 목사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소책자를 발간했다. 그것이 토마스의 생애와 조선 기독교사의 분수령이 되는 양란(洋亂)에 대한 기록이었다. 1927년에는 토마스 기념회가 조직되었고, 1927년 5월 8일 토마스 목사가 묻힌 쑥섬에서 토마스 목사 순교 60주년 기념예배가 거행되었는데, 이때 1천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1932년 9월 14일에는 대동강변에 토마스기념예배당을 건립했는데, 1933년 10월 14일 봉헌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10여년 이래로 토마스를 순교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그 의 죽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감리교의 존스(G. H. Jones) 이래로 초기 선교사들은 토마스 목사를 순교자로 이정해 왔고, 설사 게일의 경우처럼 순교자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복음을 위한 그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고 있고, 그를 정치적 희생자라든가 침략자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토마스를 순교자로 볼 수 없다거나 심지어는 침략자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토마스는 무장상선을 타고 입국했기 때문에 순교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에 와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순교자로 칭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그가 죽은 이유가 기독교 복음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제너럴 셔먼호의 부당한 처신과 횡포에 기인하는 정치적인 죽임이라고 주장하다. 일견 고려할 점이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1860년대 상황에서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토마스가 복음의 열정, 곧 조선 선교의 이상을 가진 점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로는 조선 입국 방법이나 경로를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설사 무장상선이라 할찌라도 셔먼호 승선이 조선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제너럴 셔먼호의 신중치 못한 점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셔먼호로 입국했기 때문에 순교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선교사가 내한 한 이후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토마스는 1863년 이래로 선교사 신분이었고, 이미 조선을 방문하바 있고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내한 즉시 죽임을 당했다고 해서 순교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그의 죽음이 복음전도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는 주장도 고려할 점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기독교가 금압된 당시 상황에서 서양인의 죽음, 특히 서양선교사의 죽음을 비종교적 행동으로만 취급할 수 없다. 1866년 병인양요 때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죽음은 정치적 성격이 강했고, 외세에 의한 침략세력으로 간주되었다. 그 누구도 프랑스 신부의 죽음을 순교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금지된 상태에서 ‘선교사의 현존’ 자제가 정치적 행위일 수 있고, 정치적 침략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토마스의 죽음을 순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토마스 목사가 제너럴셔먼호로 입국한 일이나 셔먼호의 부당한 혹은 불법적인 행위는 지탄받을 수 있지만 토마스 목사는 조선인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려는 선한 의지는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가 죽임을 당한 후 초기 선교사들을 시작으로 한국교회는 토마스를 순교자로 간주하고 그의 죽음의 의미를 기념해 왔다. 1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토마 목사의 삶과 죽음을 통해 오늘우리의 모습을 성찰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9-08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