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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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잘 시작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 “시작이 반”이라고 말해왔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잘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우리나라 모 프로농구 구단 감독의 푸념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푸념이란 “우리 팀은 늘 시작이 엉망이에요.”란 것이었습니다. 늘 1쿼터에서 죽을 쑤어 점수 차가 10점 이상 벌어지다보니, 그 후에 추월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시작을 잘 하면 이런 문제는 없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시작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생의 끝이 언제나 시작할 때의 모습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에 묘미를 느끼기도 합니다. 시작을 잘 하는 사람은 끄트머리에 가서도 잘 하길 기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작할 때 뛰어난 사람은 반드시 끄트머리도 뛰어나다는 것이 불변의 법칙이라면 시작을 잘 하는, 혹은 잘 할 수 있는 소수의 엘리트들에게는 다행이겠지만, 시작을 잘 못한 그 외의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 보다 더 비극적인 결정론은 없을 것입니다. 시작을 잘 못했다고 해서, 결론까지도 비극적이라면 굳이 그런 게임을 끝까지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감칠맛은 시작을 잘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다음에 잘 해서 마지막에 가서는 역전이 가능하다는 데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종종 결혼 주례를 부탁하러 온 젊은이들 중에 최상의 조건에서 시작하는 이들을 봅니다. 이미 멋진 아파트도 장만했고, 직장도 훌륭합니다. 필요한 것이 없이 다 갖추고 출발합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최상의 등산복과 장비로 꾸민 등산객과 같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월세를 내는 원룸에서 초라하게 출발하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등산화 하나 변변히 신지 못한 등산객과 같습니다. 그러나 등산에서 중요한 문제는 폐활량과 근육의 힘입니다. 제아무리 장비를 잘 갖추었다 하더라도 능선에도 오르기 전에 헐떡거리고 근육이 뭉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낡은 운동화를 신었더라도 정상에 서서 함성을 지를 수 있다면 그 모습이 더 멋지지 않을까요?
  잊지 마십시오. 시작이 반이지만, 시작이 전부는 아닙니다. 아직 반이 남았고, 그 반에 의하여 멋진 시작이 초라하게 바뀌기도 하고, 초라한 시작이 멋진 역전승을 가져오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기도 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기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런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라해 보이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시작이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가정 형편이나 주위 환경 때문에 최상의 여건에서 시작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제 때 진학을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라톤을 시작할 때 뒤에서 시작했어도 골인할 때 선두에서 들어오면 그만입니다. 멋지게 출발한 사람은 아직 반이 남았음을 기억하면서 절대로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작게, 초라하게 시작한 사람은 낙심하지 말고 아직 반이나 남았음을 기억하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종종 예전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전혀 존재감이 없이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앞에서 모든 일을 주도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친구들 중에 지금 멋진 일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반대도 많습니다.
  현재 많은 가지를 치고 많은 잎을 매달고 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폭풍우 속에서도 뽑히지 않을 수 있는 깊은 뿌리와 가을의 결실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마지막에 웃는 이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2015년 말에 우리 모두 풍성한 열매를 거두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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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시작보다 중요한 것(마태복음 20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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