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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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이슬람 제국(IS)’에 가담한다면서 터키에서 실종되어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고교생 김모군(18)은 인터넷 트위터에 ‘페미니스트가 싫어서 IS가 좋다, 이제는 남자가 차별 받는 시대’라는 취지의 글을 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이 시대의 차별과 평등에 관해 얼마만큼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2011년 77명의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노르웨이총기난사사건의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당시 32세) 역시 페미니즘을 증오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feminism)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당하는 부당한 차별을 철폐하고 실질적인 양성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운동이나 성향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때문에 거꾸로 남성들이 차별을 받는다면 이를 역차별(reverse discrimination)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차별을 주장하려면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동일한 사회적 영역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과되는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존재해야 합니다. 여성고용할당제와 같은 경우가 되겠습니다. 둘째는 이러한 구체적인 우대정책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당사자입니다. 여성 우선이라는 원칙 때문에 점수가 월등하게 높음에도 불구하고 탈락한 남성지원자가 이에 해당합니다. 터키에서 실종된 김군이나 노르웨이사건의 범인은 아무래도 이러한 원래적 의미의 역차별 사례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역차별 문제가 거론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소수자를 위한 적극적 우대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이제 페미니즘과 그로 인한 역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단계에 와 있을까요? 최근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국민들의 공분(公憤)을 사자 그 여파가 보육시스템 전반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핵심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직업활동을 위해서든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여전히 막중한 육아 부담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최근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 출산 기피 현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개인사를 넘어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부메랑 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출산과 육아의 문제를 개인에게 그것도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부담을 강요하는 현실 아래서 고도의 경제성장과 분배정의는 신기루 같은 구호에 불과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의 사례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생각해 보면 법적으로 여성에게 선거권이 보편적으로 인정된 것도 20세기에 이르러서입니다. 그 이전까지 수천 년 동안 인류사에서 여성의 지위라는 것은 참으로 보잘 것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본래 남성과 여성을 차별 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합니다(창 1:27). 뿐만 아니라 일찍이 욥은 세 딸에게 재산을 물려주었고(욥 42:15), 가나안 땅을 배분할 때 슬로브핫의 딸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상속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도 했습니다(민 27:1-11). 정치지도자로서도(삿 4장 드보라), 예언자로서도(왕하 22장 훌다 여선지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한 훌륭한 성경 속 여성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여성을 하나님 나라를 함께 이루어 갈 돕는 배필이요 선한 동역자로 인정합니다.
  우리는 지금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현상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3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니 5포(3포에 취업, 주택 포기)니 하는 현상 말입니다. 기존의 페미니즘과 역차별 이론으로 포섭되지 않는 이 새로운 현상 앞에 기존의 패러다임과 시스템은 무력합니다. 21세기 교회에 주어진 또 하나의 중요한 예언자적 선지자적 소명이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1930년대 이미 저출산의 해법을 제시해 스웨덴을 살린 그리스도인 경제학자 뮈르달(Myrdal) 부부와 같은 선각자들이 한국 교회를 통해서도 나타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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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페미니즘과 역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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