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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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화가 고야(Goya, 1746 ~
1828)의 그림 중에 ‘이빨 사냥‘이란 작품이 있다. 이 그림을 보면 한 여인이(교수형을 받은 사내의 이빨에는 마법의 힘이 있다는 그 당시의 미신을 믿고) 시체 곁에서 결사적으로 이빨을 뽑으려는 극적인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린 채 공포에 떨면서 팔을 뻗어 굳어진 시체의 입 속으로 자기 손을 넣고 있다. 귀중하고 탐나는 목적물을 향하여 움직이는 자기 자신과 비참한 심정으로 자기의 행동으로부터 얼굴을 돌리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를 고야는 참으로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나는 문득 이 ‘이빨 사냥‘이란 고야의 그림을 연상하게 되었다. ‘귀중한 한 표‘를 얻기 위해 말쑥하게 차려입은 국회의원 입후보자가 땅바닥에 엎디어 있고, 그 앞에는 허름한 차림의 농군이 당황한 몸짓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서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죽은 조상 묘 앞에서라면 모르되 산 사람 앞에서 저렇게까지 땅바닥에 엎디어 머리를 조아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야, 저게 바로 민주주의라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저렇게 백성을 섬기는 자세로 모든 정치인들이 정치를 했더라면 세상은 지금쯤 많이 달라졌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왠지 씁쓸한 감회에 젖어 들고 마는 것은 사진에 나타난 대조적인 두 사람의 관계가 지극히 형식적이란 점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서로 엇갈린 시선이 너무나 멀고 깊은 소외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보장을 위한 비정규직 철폐문제와, 관계노동법 개정 문제, 밀양송전탑 문제, 쌍용노동자 강제해고 사태에 따른 문제, 농수산물 전면개방에 따른 향후 농촌문제, 빚더미 위에 앉은 농민들의 관심과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의 관심 사이에 작용되는 괴리감이 오늘 우리나라의 정치 풍토가 아닐까.
자기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굳어진 시체의 입에서 마법의 이빨을 구하려는 고야의 그림에 나타난 그 여인과 오직 한 표를 얻기 위해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는 입후보자들, 이 두 사건의 상황은 서로 다르다 해도 전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후자는 자기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바로 이러한 소외 현상이 오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현상이 어디 우리나라 정치 풍토뿐이겠는가. 남을 도와 줄 때는 생색을 내서는 안 된다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고도 교회 안에서 생색이 나야지만 돈을 내놓는 신도들, 그리고 교회당을 시장바닥으로 만들어 놓아야만 남을 도와 줄 수도 있고 교회 건축도 가능한 오늘 우리 교회의 분위기는 또 어떠한가. 그리고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다‘는 성서의 말씀을 곧잘 인용하면서도 조금만 섭섭해도 마음의 상처(?)를 쉽게 받는 목회자, 신도들. 이같이 만연한 소외현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바로 이 문제가 오늘 우리 신앙인들의 숙제가 아닐는지….
부버의 말을 하나 인용해본다. “모든 참된 삶이 ‘만남‘에서 이루어지듯 우리 눈을 가리는 모든 장애물, 그 장애물을 걷어치우고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매개물‘이 무너진 곳에서 진정한 만남과 인간회복이 가능하다“ 참으로 어려운 신앙인들의 숙제이다. 어렵다고 안 해도 되는 숙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해야 할 숙제이다. 이 땅에서 숙제를 잘 마치고 가야할 텐데 하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 까닭은, 시방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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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철 목사]신앙인들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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