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2-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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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둘째 형과 함께 시냇가에서 고기를 잡다가 모래밭에 앉아서 집을 짓고 즐기던 생각이 난다.  형은 형 방식대로, 나는 내 방식대로 모래집을 지어 가다가 형이 실수하여 내가 잘 지어 놓은 집을 발로 뭉개버렸고 나는 앙앙거리면서 울었었다.  미안해하는 형이 “내가 다시 지어줄게.”라고 하면서 나를 달래 보지만 막무가내로 울어대는 나에게 형이 화가 나서 외친 말이 있었다. “부서졌으면 새로 지으면 될 것 아니냐. 새로 짓는 집은 더 좋게 지을 수 있는 거야” 그러면서 형은 울고 있는 나를 그냥 두고 형이 지은 모래집을 발로 휘휘 뭉개 버리고 먼저 일어서 가 버렸다.  뒤따라가면서 “형아! 내가 잘못했어.”라고 어리광을 부리는 내 머리를 툭 치면서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하면서 씩 웃어 주던 형의 얼굴과 그때 하신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인생을 설계한다. 그리고 그 설계대로 자기 인생의 집을 만들어간다. 그러다가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며 만들어 가던 집이 부서질 때를 경험한다. 이때 무너지는 사람이 있고 일어서는 사람이 있다.
  종종 언론에 보도되는 연예인 자살사건을 보면서 자괴감에 마음이 닫히는 내용을 접하게 된다. 유명 연예인의 자살 이후 장례식 장면이 보도되는 것을 보면 영정 앞에 ‘성도’, ‘집사’ 아무개라는 위패를 볼 수 있다. 자살은 죄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 이르렀을지라도 그리스도인의 마지막은 결코 자살로 마감될 수 없다. 소위 죽을 각오로 살려고 마음먹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없는 이치를 앞세우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할 수 없다. 그것은 한 마디로 헛된 신앙의 옷을 입고 살았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모리스 프랭크(Morris Frank)는 미국 권투계 유망주였다. 그런 그가 시합에서 눈을 심하게 다쳐서 실명(失明)하게 되었다. 의사 두 명이 모두 그에게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선언을 했다.  프랭크의 인생에 있어서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프랭크에게 있어서 인생의 최후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와 같은 처지의 맹인들을 위하여 “the seeing eye” (보는 눈)이란 별명을 가진 안내견(案內犬)을 훈련시켜 맹인들의 길잡이 친구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프랭크는 눈을 잃었지만 거기서 자기의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눈을 열어 보다 나은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창출한 것이었다.
 “신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옛 히브리 격언이 있다.  흙이 부서져서 곡식을 낸다. 곡식이 부서져 빵이 된다.  빵이 부서져 우리 몸의 에너지가 된다.  포도가 부서지고 장미 꽃잎이 부서져서 극상 포도주와 샤넬넘버 5 같은 최고의 향수도 만들어진다.  사람도 원숙한 인격을 갖추려면 충분히 부서지는 과정을 밟아야 함을 깨닫게 해 준다.
  예수님은 날마다 부서지는 생활을 하셨다. 바리새인들과 유대 지도자들에게 모진 말을 들으면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호산나를 외치던 무리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슬픈 현장의 중앙에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살과 뼈를 부서뜨리면서 날마다 부서지는 날들을 사시면서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가 되었다. 
  주님의 부요함이 부서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서 해방되었고(고후8:9), 주님의 육체가 부서지면서 많은 병든 자들이 건강함을 입었고(벧전2:24), 그의 축복이 부서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저주에서 해방되었고(갈3:13), 그의 생명이 부서지면서 많은 사람이 살게 되었다.(막10:45, 갈2:20)
  이와 같은 진리를 알게 된 바울이 자기를 부서뜨리면서 이방 선교의 장을 열었다. 인류 역사에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이 자기를 부서뜨리면서 만들어 낸 결과가 모든 이들의 평화와 축복이었다.
  부활이 무엇인가? 죽고 다시 사는 것이다. 부활신앙이 무엇인가? 절망에서 희망이다. 부활신앙인의 삶이 무엇인가? 부서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 소중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이 부서질 때 우리는 절망할 것이 아니라 부서지면 또 다른 좋은 것을 지을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열어야 한다. 새로 짓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내 편견과 아집, 교만이 부서지고 모두의 삶이 아름다움으로 연주될 때 그것이 부활신앙인의 삶이다. 이기주의가 부서지고 이타주의가 꽃피워지는 것이 부활신앙인의 삶이다.
  은퇴 후 요즈음의 나의 삶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하나, 둘씩 부서지고 있음을 경험한다. 그러나 부서지는 것은 절망이 아니다. 부서진다고 끝이 아니다. “부서졌으면 새로 지으면 될 것 아니냐. 새로 짓는 집은 더 좋게 지을 수 있는 거야.” 어김없이 맞게 되는 2015년의 부활절에 어릴 때 형의 말이 새삼 주님의 말씀으로 들려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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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 칼럼] 부서지는 것은 절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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