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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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꽃들이 피어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강물이 얼어붙던 겨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1년 사시사철을 하루도 쉼 없이 달리는 삶이기에 겨울과 봄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문득 서재에서 창밖을 본 순간 앙상한 버드나무 가지에서 푸른 싹이 터 오르는 것을 보았다. 싹만 나온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가 봄바람 결에 흔들렸다. 그 순간 나의 마음도 흔들렸다. 아니, 하나의 공간, 우주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가녀린 나뭇가지의 흔들림 속에 광활한 우주의 질서와 생명이 숨 쉬고 있었다. 겨울나무도 생명이 있기에 봄 햇살 아래 새싹을 피운다. 생명은 감출 수 없다. 꿈과 열정은 무엇도 막을 수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속에서 절박한 꿈의 몸부림을 본다. 허공을 향한 생명의 절규를 듣는다. “나, 여기 살아 있어요. 보세요. 마침내 긴긴 겨울을 견디고 다시 살아나 새싹을 피웠잖아요.”
 나도 저 푸른 버드나무 잎사귀처럼 꿈꿀 수 없을까. 꿈이 잠든 시대다. 겨울 버드나무처럼 말이 없다. 버려진 주검처럼 차갑다. 청년 실업과 자살, 사이코패스 범죄,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한 성적타락, 이념, 지역, 계층갈등, 경제침체 등 암울한 현실 속에 꿈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메마른 겨울 버드나무처럼 보인다. 겉으로 볼 때는 죽은 나무 같다. 차가운 눈보라에 껍질이 벗겨져 나가고 상처투성이다.
그러나 난 보았다. 봄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 끝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새싹을.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었고, 꺼져 있는 것 같았으나 그 속에는 붉은 불덩이가 타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절망과 상실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니다. 그 속에는 분명 생명의 씨앗이 있다. 희망의 노래가 숨겨져 있다. 푸른 버드나무는 차가운 새벽바람과 이슬을 맞으면서도 끝끝내 새싹을 피워 올리지 않는가.
 창가로 다가가 봄날 오후의 버드나무를 바라본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싹을 낸 버드나무…. 그건 춥고 가난하고 외로웠던 내 젊은 날의 모습이었다. 버드나무를 바라보며 아주 오래된 반가운 벗이 찾아온 것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버드나무가 내 삶을 투사해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덧 나는 혼자 이렇게 고백하였다. “버드나무야, 살아줘서 고맙다. 네가 겨울을 이기고 살아줘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거야. 겨울 끝에서 피어나는 너의 절박한 꿈이 많은 사람들을 살려 낼 거야. 봄날을 향해 달려가는 너의 희망과 생명의 질주가 겨울 들판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서 다시 심장이 뛰게 할 거야. 푸른 버드나무야, 넌 겨울은 봄을 결코 이길 수 없음을 보여주는 한편의 시가 되었구나.”
 우리의 새로운 삶, 제2막의 인생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불행한 상황 앞에 절망하지 말고 내 안에 숨겨진 역동적 희망, 꿈의 푸른 에너지를 펌프질해보면 어떨까. 내 안에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생의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다시 푸른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저 봄날 오후의 버드나무처럼 나 여기 살아 있다고 손짓하며 웃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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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칼럼] 푸른 버드나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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