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안동철목사.jpg▲ 안동철 목사
텔레비전 사극(史劇)에서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거적 같은 것을 깔고 왕이 용서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장면을 볼 때가 있다. 사자성어로 석고대죄(席藁待罪)라고 한다. 때로는 왕이 잘못한 것인데도 신하들이 왕을 잘못 모셨다고 하여 석고대죄를 하는 장면도 본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2017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가 시작되기 전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500년 전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이제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많은 행사와 다짐들이 잘 실천되었는지를 반성할 시간이다. 정말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때의 그 정신을 한국교회는 올해 잘 회복하고 실천했는가? 하나님 앞에서 죄송하게도 ‘예’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럽다.
개혁자들이 외쳤던 다섯 가지 ‘오직’이 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이다. 특별히 이 다섯 가지 ‘오직’ 중 ‘오직 성경’이 가장 먼저 나오는 이유가 있다. 개혁자들의 종교개혁은 교황을 포함한 모든 인간과 전통의 가치를 상대화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절대화 하였다. 말씀의 빛 아래 다른 모든 것은 비판받아야만 했다.
올 한 해 우리의 모습은 이러한 종교개혁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했는가? 서울의 모 대형교회에서 있었던 담임목사 부자세습은 한국교계를 넘어 한국사회의 지탄을 지금도 받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언론 중 하나라는 한 방송사는 이 교회의 세습 문제를 연일 다루고 있다. 그 결과 소위 ‘가나안 교회’ 교인은 또 얼마나 많이 늘어났는가? 한국교회의 미래인 청년들은 교회에 대해 얼마나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갔을까?
이 외에도 목회자 세금납부 문제에 대한 대처는 정말 성경적이었는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한 투쟁이었는가, 아니면 우리의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투쟁이었는가? 북한의 안보 위협속에서 한국교회는 정치 이데올로기적 접근이 아닌 주님의 눈으로 접근했는가? 교회의 지도자인 목회자는 성적으로, 그리고 재정적으로 투명했는가? 인권을 빙자한 동성애와 낙태 등의 문제에 대해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말해왔던가? 교회가 세상과 너무 비슷해 혹시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모습은 꼭 요나 시대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욥바 항구로 내려갔을 때 요나가 마주친 현실은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였다. 그리고 요나는 배의 가장 밑층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큰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선장이 요나에게 뭐라고 했는가?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욘 1:6).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를 책망했던 사람이 누구였던가? 선지자였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불신 선장이었다! 마치 하나님의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니 불신 세상이 교회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쏟아붓는 것 같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큰 폭풍은 어떻게 할 때 사라졌는가?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욘 1:12).
비록 요나서 후반부의 말씀을 보면 요나가 이 순간 하나님 앞에 완전히 회개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 위기의 순간, 요나는 하나님 앞에 석고대죄(席藁待罪)했다. 그리고 물고기 뱃속에서 3일간 이런 석고대죄는 더욱 깊어졌다. 비록 불순종한 선지자였지만, 그는 자신이 바로 문제의 근원에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한국교회, 아니 좀 더 좁혀 작은 교회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리할 때 세상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 앞에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욘1:16). 지금은 하나님 앞에 석고대죄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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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철 목사] 석고대죄(席藁待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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