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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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서울대학교에서 치러진 중간고사 중 일부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었습니다. 치기(稚氣)어린 해프닝으로 끝날 뻔 했던 이 사건은 해당 학교가 대한민국 지성의 정점이라는 서울대요(문화일보), 해당 과목이 윤리 강좌며, 해당 학과가 철학과여서 충격을 주었고, 그 파장이 지금까지도 만만치 않습니다. 
  ‘서울대생들이 뭐가 아쉬워서?’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조금은 시대 현실과 동떨어져 살고 계십니다. 한국교육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등교육기관 졸업자의 취업률 평균은 56.2%입니다. 그런데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서울대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61%로 전체 대학 순위 50위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을 알아야 서울대 재학생 절반이 A학점인 현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국 대학에 만연한 학점 인플레의 무풍지대는 없었습니다. 지난해 전국 176개 4년제 대학 재학생 중 69.8%가 평균 B학점 이상의 학점을 받았다고 합니다(한국대학신문). 요즘 청년들은 취직을 위해서 좋은 학점뿐만 아니라 각종 자격증, 수상 경력, 심지어는 다양한 봉사 활동 경험까지 요구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정이 학점 인플레와 컨닝 사태를 조장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때문에 이번 컨닝 사태를 합리화하거나 동정할 수는 없습니다. ‘컨닝’이라는 말은 ‘교활한’이라는 형용사로 한국에서만 시험 중 부정행위를 뜻하는 말로 쓰는데, 원래 영어로는 ‘cheating’이라고 합니다. ‘취팅(cheating)’은 부정직한 사술(詐術)로써 남을 속이는 ‘사기(詐欺), 협잡(挾雜), 불륜(不倫)’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행위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바로 시험 컨닝입니다. 컨닝은 스스로의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이며, 공정한 시험의 관리 감독이라는 고유의 업무를 침해하는 범죄 행위입니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부정행위에 가담한 학생들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학벌지상주의, 결과만능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도 근원적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의 조류(潮流)가 바뀌지 않는 이상, 조금이라도 더 좋은 학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학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스펙을 얻고자 하는 학생들의 몸부림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몸부림 가운데에는 이 정도 부정과 불법과 불의쯤은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바람직하지 않는 의지가 한두 가지 게재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문제는 그 누구도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관한 담론(談論)을 가르치지도 제시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다원주의 철학이기 때문에, 거기 함몰된 이 세상은 진리에 대한 해답을 제공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끊임없이 무엇이 옳은가, 즉 공의(미쉬파트)와 정의(체다카)를 말씀합니다. 그것도 추상적인 개념의 나열이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인 적시(摘示)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해롭게 하지 말라’(신 10장),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지 말라’(신 16장), ‘저울추를 속이지 말고 되나 말로 속이지 말라’(신 25장)와 같은 구절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아무리 부와 권력과 명예를 누려도 그것이 사회적 약자들을 압제하고 수탈하여 얻은 결과라면 하나님 앞에서 절대 의롭지 못합니다. 부정직하고 부당한 수단, 방법을 통해 무언가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하나님 앞에서 절대 떳떳하지 못한 독수독과(毒樹毒果)에 불과합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전도(顚倒)된 이 세상 앞에 교회가 외쳐야 할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미래를 책임질 이 시대의 후학(後學)들에게 교회가 가르쳐야 할 말씀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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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서울대 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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