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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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구 교회의 모습이 ‘후기 기독교 시대’(Post Christianity Times)와 같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이런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우리 시대의 사상과 문화 등을 관통하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서구의 문명은 기독교를 배제하고는 설명이 불가하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독교는 서구 문명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말하고, 성경과 신앙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을 하나의 장식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 목걸이를 목에 걸고는 있으나 전혀 복음과 상관없는 삶을 사는 사람과 같이 말이다. 그 결과 더 이상 교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거룩함이 가득해야 할 교계와 교회의 중직자들에게도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2018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발표회에서 손봉호 교수는 김진홍 목사의 지적을 언급하며 그의 말이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진홍 목사는 “한국교회 목회자의 약 10%는 절도요 강도와 같은 자들이고, 50-60%는 삯꾼들이며, 다만 30-40%만이 선한 목자이다”고 했다. 필자는 이 말을 계속해서 되씹으면서 최근 교계와 교회 지도자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이 혹시 강도와 절도, 삯꾼은 아닌지 돌아보고 있다.   
이런 중 출애굽기 1장에 등장하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보면서 큰 도전과 함께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와 성도가 살길을 찾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너무나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접근법이어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더 해야 하지 않느냐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답은 멀리 있지 않고 쉬운 곳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가 누군가? 학자들에 의하면 이들은 애굽의 바로 왕에 의해 고용된 이방인으로 히브리 여인의 출산을 도운 사람으로 본다. 처음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을 억제할 목적으로 고용된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친지는 확실치 않지만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이집트의 왕인 바로가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출 1:16)는 명령을 거부했다.   
“지금으로부터 3500여 년 전, 왕의 명령을 거부한다?” 사실 그것은 목숨을 건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 왕을 두려워하기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다(출 1:17, 21). 이런 그들의 용감한 선택은 결국 출애굽의 영웅인 모세를 이 땅에 태어날 수 있게 했으며, 또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오지 못하게 하려는 사탄의 계략을 박살나게 했다. 이 일에 십브라와 부아가 아름답게 사용된 것이다.  
하나님은 3,50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이런 사람을 찾고 있다고 믿는다. 종교인이 아닌 뼛속 깊은 곳까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에 목숨 거는 하나님의 사람이 지금 필요하다. 만약 교회가 이런 다음세대를 길러낼 수만 있다면 한국 교회는 소망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필자는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는 이 때 시원한 얼음냉수와 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 한 사람이 정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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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철 목사]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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