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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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신학’은 생명신학이다

이 책은 연탄은행전국협의회에서 편집하였다. 한마디로 연탄은행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연탄은행보다는 밥상공동체가 먼저였다. 즉, 1998년 4월 원주시 원동 쌍다리 아래서 외환위기로 갈 곳을 잃은 노숙자들을 위해 무료 급식을 하면서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2002년 12월부터 연탄 무료 나눔을 시작하면서 연탄은행도 시작하였고, ‘연탄신학’으로 성경적 해석을 덧붙였다.
이들에게 있어 연탄신학은 먼저 ‘작은 자의 신학’이다. 작은 자는 연탄 한 장에 의지하여 한 겨울을 보내는 춥고 외로운 우리 이웃이며, 날마다 따뜻한 밥상을 그리워하는 배고픈 우리 이웃이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신학’이다. 밥상과 연탄이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돌보고, 생명을 지켜준다. ‘타자(他者)를 위한 신학’으로서, 연탄처럼 오직 타자의 생명과 행복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는 신학이다. 그렇기에 연탄신학은 ‘눈물과 고난의 신학’이다. 연탄 한 장이 어려운 이웃에게 가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눈물이 있다. 연탄은행의 연탄은 눈물로 만들어진다. 또한 ‘소통의 신학’이다. 연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벽을 허물고 소통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
그리고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만약 예수께서 우리나라 이 땅에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아마도 밥상과 연탄을 통해 고난 받는 이들을 위로하는 모습으로 오셨을 것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연탄신학 이야기》 || 저자 정해창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원, 미국 리전트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현재 춘천제자교회 담임목사로서 오랫동안 춘천연탄은행과 밥상공동체를 사역하였다. 솔라피데, 2018. 18,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긍휼-예수님의 심장》 / 하재성 / SFC
《여리고 가는 길》 / 팀 켈러 / 비아토르

“연탄은 작은 자들을 위한 따뜻한 나눔!”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예수는 아마 오늘 이 땅에 오신다면 밥상과 연탄 활동가가 되어, 골목을 누비며 연탄을 배달하고 굶주린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드리는 일을 몸소 행하셨을 것이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불쌍한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 예수는 밥상과 연탄을 통해서 고난 받는 이들을 위로하며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셨을 것이다.” [본문 227쪽에서]

‘연탄’이 친근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김길구 
오늘은 시기적으로 가장 적절한 주제를 가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아 ‘연탄 나누기’를 이야기합니다. 최근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연탄을 때야만 겨울을 날 수 있는 가정이 너무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김현호  우리가 아파트에 살면서 도시가스로 편안하게 난방을 하면서 살다보니, 우리 주위에 아직도 연탄에 의지하며 살고 있고, 그것마저도 넉넉하게 사놓지 못해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고 산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하게 됩니다.
김수성  이 자리에 앉은 우리 모두 연탄에 관한 추억이 제법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탄’을 이야기하면 어렵고 힘든 생활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물론이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김길구  아무래도 ‘나눔’을 떠올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당시의 삶은 어렵고 궁핍했지만 이웃 간의 정은 아파트 생활과 비할 바가 아니죠. 연탄불에 고등어를 구우면 이웃집 아낙이 부르기도 전에 먼저 “이 집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네.”하면서 대문을 밀고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렇기에 연탄에 관한 추억은 항상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김현호  거기에 더하여 지금도 연탄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활활 타오르는 연탄불과 겹치면서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요? 겨울철에 연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연탄은행’인 것 같습니다.
김수성  이 책을 읽으면서 연탄은행에 관해 좀 더 공부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연탄은행의 ‘4C 가치’라는 것이 있더군요. ‘1) Christ-예수님을 중심으로, 2) Community-공동체를, 3) Care-섬기고, 4) Common welfare-모두를 위한 복지의 가치를 실현한다’입니다. 첫 번째가 바로 ‘예수님을 중심으로’입니다. 그래서 연탄은행 섬김이는 대부분 목사님입니다.
연탄나누기.jpg▲ ‘연탄신학’은 밥상공동체와 연탄은행을 통해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살리는 신학이다. 그렇기에 행동하는 신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연탄은행뿐 아니라 다양한 봉사활동
김길구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시는 이기주의적 인간에 대해 이타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죠. 연탄은 이렇듯 나눔은 물론이고, 여타 다른 면에서도 우리에게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김현호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겨울이 되면 연탄 나눔을 합니다. 그런데 그냥 물질적 후원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현장에 가서 연탄배달 봉사활동을 하고 온 교인들과 이야기해보면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김수성  부산에도 연탄은행이 있습니다. 2004년 12월에 개설했으니 벌써 14년이 되었습니다. 서구 감천2동에서 시작하여 아미동으로 확산되었고, 이어서 영도구, 동구, 남구 등으로 퍼져나갔습니다. 2008년에는 ‘사랑의 쌀’ 나눔과 함께 아궁이 교체작업을 하는 등 활동범위도 넓혔습니다. 지금은 연탄은행 외에도 무료 급식, 반찬 나눔, 집수리, 푸드 뱅크, 공부방 등을 운영하면서 1년 내내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길구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연탄 나눔에 신학을 붙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김현호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작은 자들을 위한 나눔신학’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도 캘커타에서 마더 데레사가 베풀었던 사랑의 손길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밥상공동체와 함께 운영하는 연탄은행에 대해 어느 누구도 단순한 베풂이라고 폄하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김수성  그렇기는 해도 이 책으로만 이야기한다면 신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체계화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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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교회’ 연대로 복지 향상시켜야
김길구 
이러한 논란을 의식한 듯, 필자는 신학은 곧 인간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변명(?)을 합니다. 즉, 신학은 곤궁한 처지에 놓인 우리의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의 현실은 연탄신학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갑질’로 대표되는 가진 자들의 횡포는 물론, 밑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는 현실 등을 볼 때, 작은 자를 돌아보고 그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신학적 노력이 당연히 있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서툴고 부족하기는 하지만 필요한 노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현호  이 책의 장점은 읽을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탄의 역사에서부터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글을 중간 중간 배치해 놓았습니다. 실천적인 면을 강조한 신학답게 실천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한 것입니다.
김수성  저는 ‘철사로 묶은 연탄’을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이거든요. 또한 신학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에는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음을 잘 보여줍니다.
김길구  이 사업을 처음에 시작한 허기복 목사님의 사례에서 이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담임하다가 결국에는 사임하고 나와서 밥상공동체와 연탄은행을 운영하였다고 합니다. 즉, 교회 안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서 이러한 사업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사업은 ‘운동’이 될 수밖에 없고, 교회나 교인은 후원자 또는 봉사자로서만 참여하게 됩니다.
김현호  교회가 이제부터라도 나서야 할 것입니다. 직접 도와줄 형편이 안 된다면, 교회 주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정을 파악하여 관청이나 지원단체와 연결해주는 일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결국에는 지역을 섬기는 교회로서의 모습 아닐까요?
김길구  그동안 기독교회가 기득권에 속함으로써 상당히 거칠어졌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무례한 기독교’라는 말이 회자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민관(民官)에 더하여 교회가 연대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더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목회’ 아니겠습니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크리스마스 맞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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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양읽기 44] “연탄은 작은 자들을 위한 따뜻한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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