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기독교이야기] 초기 부산지방 기독교 상황
사보담의 연례보고서를 통해 본 부산 북장교 선교부 상황
1902년 보고에 의하면, 이 해에 부산의 수세신자는 30명인데, 이 해에 세례 받은 자는 11명, 이해에 김해에서는 26명의 수세자, 22명의 예비신자가 있었는데 이중 7명은 이 해에 세례 받은 자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부산의 수세신자는 북장로교 관할을 말하고 있으므로 초량교회와 제일영도교회의 현황이라고 할 수 있다.
1903년 보고에 의하면, 북장로교 부산지부에는 시릴 로스 부부와 와 시더보탐 부부가 활동하고 있었는데, 사보담은 그의 보고서에서 이렇게 썼다. “부산교회는 희망을 폼게 하다가 낙심하게 하는 그런 교회이다. 지번 번의 부산지부 연례보고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 대해 썼고, 더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2월의 상황은 변한 것 같았다. 예배도 좋아지기 시작했고 기도회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졌고, 평화로운 신앙부흥집회가 열렸다. 이런 결과 6월 1일은 행복한 날이었다. 이날 5명이 세례를 받았고, 1명은 세례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10명의 학습신자가 추기되었다. 하지만 성장이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말하는 부산교회는 지금의 초량교회를 의미한다. 그런데 초량교회의 1903년 당시의 문서가 남아 있지 않으므로 당시 수세현황을 대조검토(cross check) 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1903년 부산지부에는 34명의 세례신자와 22명의 학습인이 있었다고 한다. 1903년부터 연초에 2주일 정도 기간동안 성경공부반(Bible Class)이 열리기 시작했다.
1904년 부산지부 보고에 의하면 부산에 기근이 심했다고 한다. 쌀 수확량이 크게 감소했고, 가격은 상승했으나 임금은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6월에 수확하는 보리농사에 기대했으나 보리 농사도 작물의 5분지 1정도의 수확에 그쳤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고 보고했다. 이 해에 3개의 교회 건물이 생겼고, 부산에서도 성령의 역사가 드러났다. 이 때 4개의 성경공부반, 여성들을 위한 성경공부반을 운영했는데 4일에서 11일 간 공부하는 과정이었다. 이 해에 건축가인 고든 씨의 설계로 사보담 부부를 위한 주택을 건립했고, 위팅진료소 여성부 건물이 지어졌고, 뉴저지의 몽ㅌ클레어장로교회가 후원하는 전킨기념병원도 규모가 확장되었고, 두 개 이상의 병실과 특별식 조리실과 욕실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1905년도 보고서는 소실되었고, 1906년도의 보고서에 의하면, 남자성경공부반이 4년째 연초에 개최되어 11일간 진행되었고, 호주선교부와 연합하여 개최되었는데, 등록자는 85명인데 북장로교 소속이 58명이었다. 지도자 교실은 김해에서 두 번째 개최되었고, 8월에는 대구와 부산 지부가 연합하여 호주선교부와 함께 조사 교실을 열었는데 조사들과 매서인들을 위한 강좌인데, 22명이 참가했고, 교육기간은 2주간이었다고 한다. 3번째 맞는 여성성경교실은 밀양에서 12월 27일부터 1월 4일까지 개최되었는데 60명이 등록했다고 한다. 등록자는 예년의 두배였다고 한다. 사보담은 부산 외에도 김해 밀양 영산 창녕 등지를 순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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