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18(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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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현지 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거행된 미국영화배우조합상(SAG) 시상식에서 뜻밖의 작품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한국영화 <기생충>의 배우 송강호는 수상 소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영화 제목은 ‘기생충’인데, 사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하는 공생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이미 이 영화는 프랑스의 칸 영화제 대상(황금종려상)을 위시해서 전세계의 크고 작은 영화 관련 각종 상을 휩쓸고 있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반지하방과 학생과외 등 지극히 한국적인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지구촌적 신드롬에 가까운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이유를 송 배우가 이번 수상 소감에서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어디 할 것 없이 날로 심화되어가는 대립과 차별 속에서 그 답은 적어도 ‘기생’이 아니라 ‘공생’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2019년 9월부터 시작된 호주 산불이 최근에야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번 산불은 한반도 절반의 면적을 상회하는 1,000만 헥타르 이상의 땅을 태웠고 이 과정에서 식물생태계는 말할 것도 없고 동물들도 무려 10억 마리 이상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피해는 호주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발생한 초미세먼지는 인근 뉴질랜드를 넘어 바다 저편 남미의 하늘까지 뒤덮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지구적이면서 비가시적인 피해는 추정조차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결과뿐만 아니라 원인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됩니다. 당장 이런 기사가 등장했습니다. “호주 산불에 한국도 책임” 무슨 말일까요? 이어지는 헤드라인 기사는, “석탄 발전 투자 멈춰라”였습니다. 화력 발전과 원자력 발전 얘기가 아닙니다. 그 원인에 전세계가 너나 할 것 없이 얽혀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공생”의 문제입니다.
  올해에는 한국에서 어떤 국면이 전개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만, 이른바 ‘차량공유서비스’의 일종인 우버(uber)나 타다 택시 문제도 역시 이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중의 공생 개념이 존재합니다. 각 개인간의 공생이라는 미시적 관점 및 택시 업계와의 공생이라는 거시적 관점의 둘 말입니다. 기존의 운수사업자 여럿의 분신이라고 하는 참담한 사건 앞에서 지난 해 정부와 관계자들은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탄생시켰고, 출퇴근 시간과 주말 및 휴일에는 카풀을 금지하는 합의를 도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신년 벽두부터 벌써 ‘타다 금지법을 금지하라’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또 택시업계가 발끈하겠지요. “타다 갈등은 이제 사회적 타협기구로는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업계 관계자의 진단입니다. 카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와 유사한 숱한 상황들 속에서,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인간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나아가 무언가의 도움 없이 생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을 <호모 파라시테스>(homo parasites)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1920년대 전남 땅에 윤치호라는 사람이 활동했습니다. 원래 목수였다가 마틴 여선교사를 만나 회심하고 피어선 신학교를 수료한 후 전도사가 되었지만, 나사렛 목공소를 차리고 이후에는 부랑자 고아들을 돌봤습니다. 전쟁 중에도 아이들을 떠나지 않았던 그가 행방불명 된 이후에도 아내 윤학자(일본인)가 끝까지 살폈던, 훗날 도민들로부터 “아, 인간을 사랑하는 것만을 생각하던, 두 분이여! 사랑의 샘이여!”라는 영광스런 칭송을 들게 했던 곳 이름이 <공생원>이었습니다. 민족, 계층 갈등을 초월해서 일평생 공생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귀족원 의원으로 호의호식하다가 해방 후 친일파로 지탄을 받으며 결국 자결한 동명이인 윤치호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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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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