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5-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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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봅시다’를 2000년 1월 15일부터 오늘까지 매주(근래엔 격주) 게재하였는데 어언 20년이 지났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셈이다. 그간 부족한 사람의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어떤 이는 ‘함께 생각해 봅시다’를 읽기 위해 신문이 오는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칼럼을 스크랩하여 간직한다는 말도 들었다. 목사님 한분은 칼럼을 크게 확대하여 교회 현관 게시판에 붙여 놓고 있는 것을 보았다. 또 어떤 분들은 ‘함께 생각해 봅시다’를 책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한다. 나는 그때마다 그건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간 부족한 사람의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은총이 가정과 교회에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짧은 글 한편을 게재한다. 제목은 ‘설교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글이다.
목회자는 설교원고 작성이 끝나면 설교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러면 설교는 원고대로만 전하면 은혜를 끼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설교내용이 좋고 준비한대로 전달이 잘 되어도 교인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왜 그런가? 설교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이의 설교는 내용이 알차고 적어둘만한 것이 많으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진 않는다. 왜 그런가? 설교는 강연이나 강의와는 달라서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교는 목사의 전 인격으로 하는 것이고 그의 생활로 하는 것이고 그의 품행으로 하는 것이다. 가령 어떤 목사가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의 설교를 듣고 교인들이 은혜를 받겠는가.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목사가 주일 아침에 사소한 일로 인해 부인에게 화를 내면서 분위기가 저기압이 되게 했다. 그날 목사의 설교가 공교롭게도 가정의 평화를 역설하는 것이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의 뜻을 아시죠?’ 실제로 가정이 화목해야만 일만가지가 다 잘 됩니다. 서로가 참고 화를 내지 말아야합니다” 하며 화평을 강조했다. 그때 듣고 있던 목사부인이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이사” 그랬다. 그래놓고는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이미 그 소리를 옆에 있는 교인들이 다 들었다. 후회한들 소용이 있겠는가.
설교는 절대로 말로서만 해선 안 된다. 설교자의 전 인격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생각해볼수록 설교 이상으로 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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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봅시다] 칼럼 연재를 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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