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19(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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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장로로부터 들은 것이 있다.
농사도 배워야 되니 알도록 배우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내리사랑 올리효도였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평생을 투자하고 사랑을 쏟아붓는다. 자식 키워봐야 부모마음을 아니까 그 자녀들이 자라서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게 된다.
사랑은 흐름이고 신앙도 흐름이다. 사랑은 자식에게로 내려가고 신앙은 위를 향한다.
주의 은혜는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은택을 이룬다(시103:2). 기도는 향연처럼 올라가(계8:4) 주께 상달되고, 찬송이 하늘에 사무친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 날개침 같이 올라간다(시103:5, 사40:31)
사랑은 물 흘러가듯이 마음이 흘러가는 것이다
물 특징은 아래로 흘러 내려가고, 무색무취하지만 물리지 않는다.
물은 아무리 틀어막아도 차오르면 흘러넘친다. 물은 흘러가면서 산천초목을 푸르게 한다. 사람이 밥은 안 먹어도 살지만 물을 못 마시면 죽는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
고인물은 반드시 썩는다. 그래서 흐름을 맑고 힘차게 해야한다.
건강한 사람은 혈행이 고르다. 피가 맑고 잘 흘러가는 것이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것은 그 힘이 아니라 잦음 때문이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쓴물을 흘리지마라. 흉보면서 배우고 싸우면서 정든다. 잡초는 안심어도 난다. 나쁜 것은 안 가르쳐도 잘한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인물난다. 공기가 좋은 곳에서는 코로나도 전염이 잘 안된다고 하니 환기와 환풍이 필요하다.
성도는 영을 흐리게 하는 곳에 가지말고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은 감정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피하는게 낫다. 모든건 기분이다. 기분이 상하고 흥이 안나면 한이 맺힌다.
이스라엘의 비극은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린것과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다(렘2:13).
광염교회 조현삼목사는 긴급 구호팀을 운영하면서 파이프 행복론을 외친다. 교회가 어려움 당한자를 찾아가서 사랑과 물질을 흘려보내는 교회가 복되다는 것이다.
필자의 교회는 10년이상 밑반찬 도시락을 독거노인과 조손가정에 나누었다. 이번에 부활의 기쁨을 어려움 당한 이웃에게 사랑의 나눔박스로 전달하였다.
작은교회 월세를 돕고, 고립된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통행금지와 폐쇄조치가 된 아프리카에 옥수수가루와 의료보호구세트를 보냈다.
우리나라 부자의 3대 특징은 식솔이 많아서 그릇이 많았다. 경주 최씨부자는 300년동안 오래 갔다. 그리고 진정한 부자는 난리때에 진가가 드러났다. 근동 백리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였다.
코로나 사태는 암울하지만 막힌 동굴이 아니라 지나가는 터널이다
사람은 인생막장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아야 된다. 쓰임받은 사람들의 특징중에 하나는 순수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을 쓰시는 것이다.
나쁜일은 속히 지나가고 좋은 일은 오래오래, 길게길게, 곱게곱게, 넓게넓게 되어야 된다.
주께서 고통의 때는 감해주시고, 은혜의 때는 지속 시켜주신다.
우리나라 4대강인 섬진강의 발원지는 데미샘이다. 그 산봉우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개울이 되고 강이 되어서 물길따라 꽃길따라 봄길따라 오백리 물길을 만들고 열두개 시군을 거쳐서 마침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저주는 삼사대까지, 축복은 수천대까지 이르른다(출20:5~6).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끊어질듯하나 도도히 이어진다. 끊임없이, 거침없이, 막힘없이, 중단없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아이야의 축복이라고 한다.
아브라함은 윗물은 더러워도 조상 탓하지 않고 그가 복의 근원이 되었기에 현재 아브라함의 자손은 세계에 37억이나 된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아들을 낳았고 이삭은 환갑에 아들을 낳았다.
늦었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삭은 번제단을 통과한 순종파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아들 이삭을 번제를 드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15세였고 이삭은 15세였다. 제법 건장한 청소년이었지만 아버지를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였다. 태생적인 연약함이 있었지만 이삭은 다투지 않고 쫓겨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우물을 팠기에 르호봇의 복을 받았다(창26:22).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지났으나(창47:9) 사랑하는 여인 라헬과 그의 소생인 요셉과 베냐민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 사랑의 샘터를 이룬 순정파다(창29:20).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49:22).
 
부부간의 사랑과 존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와 같다. 가정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모시고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따르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은 내리사랑 올리효도, 올리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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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내리 사랑 올리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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