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19(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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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1918-2018) 목사의 부산 방문은 특별한 행사였다. 그의 방문이 한국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의 한국과의 교류의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부근 농촌에서 1918년 11월 출생한 그래함 목사는 플로리다성서신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대중 전도자로 활동하게 되는데, 1949년 로스엔젤레스(LA) 전도집회에서 엄청난 청중을 동원하면서부터 대부흥운동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50년에는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를 조직하면서 북미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순회하면서 전도 집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평이하고도 단순한 설교,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분명한 강조, 그러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연설을 통해 영적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는데 그가 1952년 12월 전화(戰禍)에 지친 부산으로 왔고, 대구 서울 등지를 방문하고 그해 12월 25일 성탄절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면담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에게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았고 한국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싶어 했다. 그것은 한국에서 청소녀기를 보낸 아내와의 인연 때문만이 아니었으나 그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빌리 그래함은 일리노이주 휘튼대학 재학 중 미국남장로교의 중국 주재 의료선교사 딸인 루스 벨(Ruth Bell, 1919-2007)을 만나 1943년 8월 13일 결혼했는데, 루스는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평양외국인학교에서 중등학교 과정을 공부했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한국이 있는 장병들을 위로하며 전도집회를 개최하고 싶어서였다. 특히 전쟁에 지친 한국인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1952년 10월 하순부터 한국방문을 결심하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한국방문과 전도집회 개최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미국방성에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이런 시기에 한국의 2천 여 명의 목회자들은 한경직 목사를 필두로 한국에 와서 집회를 개최해 주도록 요청하고 있었다. 주한 선교사들도 동일한 요청을 하고 있었다. 특히 선명회의 창립자인 밥 피어스(Bob Pierce)의 간절한 요청이 있었다.

그런데 빌리 그래함이 한국으로 오기 전 전도집회를 개최했던 곳이 뉴멕시코주의 가장 큰 도시인 알버커키(Albuquerque)였다. 이곳에서의 집회는 11월 2일부터 4주간이었다. 이 집회 마지막 날인 11월 30일 한국을 위한 헌금을 실시했는데, 이것은 알버커키연합감리교회 이경화 장로의 지적처럼 한국 방문을 위한 준비였다. 그로부터 2주 후 한국에 도착하게 된다. 빌리 그래함은 알버커키에서 집회를 마치고 로스 엔젤레스로 갔는데 12월 2일 거기서 한국방문 허가를 받았다. 12월 5일에는 하와이로 향했다. 이때 한국으로 향하는 동료가 한경직 목사와 밥 피어스 목사였다. 12월 7일에는 호노룰루를 떠나 일본 동경으로 향했다. 일본에서는 일본 주제 선교사들과 전쟁을 피해 일본에 체류하던 선교사들을 만나고 한국전 부상병들이 치료받고 있는 육군병원 방문, 극동사령부 간부들과 군목 면담 등 일본에서 일 주간을 체류하고 14일 일본을 떠나 부산에 도착했다. 그날이 주일이었다. 미군장병들을 위한 예배를 인도했고, 이튿날 월요일에는 한경직 목사가 시작한 부산 부민동의 다비다 모자원을 방문하여 위로했다. 그날부터 4일간 대중집회를 개최했는데, 12월 17일 수요일에는 야외 집회를 열렀다. 세찬 바람이 이는 추운 날이었으나 이날 7천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함태영 부통령도 참석한 이날 회중은 길바닥에 멍석을 갈고 앉거나 서서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앞에서 지적했지만 그의 한국 방문은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한국인을 위한 전도 집회였다. 전쟁의 아픔을 안고 치열한 생존 위기에 처한 한국인들을 위로하되 영적인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미군들을 위로하고 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런데 부산 집회 때도 미군들도 참석했고, 결신자 초청(altar call)을 했을 때 한국인들과 함께 미군 백인과 흑인들도 앞으로 걸어 나왔다고 한다,

빌리 그래함의 첫 한국 방문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이 한국인들의 새벽기도였다고 한다. 빌리 그래함은 자신을 안내하고 사진사 역할을 했던 미북장로교의 부례문(Raymond Provost) 선교사의 안내로 새벽기도가 열리는 피난민 교회를 방문하였는데, 그 피난민 교회는 보수산 중턱에 임시로 설치된 예배당이었다. 지붕만 가린 채 사방이 개방된 추운 겨울, 새벽공기는 귀를 도려내는 듯한 매서운 날씨였으나 성도들은 거적때기 위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다. 자신의 죄와 민족의 죄악을 통회자복 하면서 전쟁의 승리와 회복을 기도하는 그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소망을 읽었다고 한다. 그 새벽기도회를 보면서 큰 감명을 받은 빌리 그래함은 한국에서 역사(役事)하실 하나님의 역사(歷史)를 기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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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빌리 그래함 목사의 부산에서의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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