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28(수)
 

김기현 목사.jpg

신모 변호사는 저랑 나이도 같고, 지적 욕구도 왕성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여 장애인 차별 금지 운동에 깊숙이 관여하는 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인간의 총체적 구원과 복음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장애인들의 영혼과 정신, 육체,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웰빙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요. 그분 덕분에 저도 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교제하며 많이 배웁니다. 새로 옮긴 교회에서 집사가 되었다고 판사가 아닌 집사로 불러달라고 할 만큼 순수하고 착한 분입니다.

그런 그분이 본인말로 “체질상 성령집회 같은 것은 내키지 않았지만 경험 삼아 한번쯤은 참석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참석을” 했답니다. 말씀을 마치고 목사님께 기도를 받는데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데 ‘픽픽 뒤로 넘어’ 지더랍니다. 손으로 머리를 미는 것인지, 하나님의 역사인지 호기심이 발동하여 앞으로 나아가 차례를 기다렸답니다. 이분을 위해 한참 기도하던 목사님 왈, “판단하지 말고 믿으세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절로 뒤로 넘어지고 날아갈 듯 가뿐했다 합니다.

신집사님은 평상시에도 저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많습니다. 때로는 묵직하고 고전적인 것에서부터 어떤 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특이한 질문을 해서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제 딴에도 제 스스로 질문이 많지만, 아무래도 목사인지라 정통이랄까 정해진 틀에 익숙해지기 십상인데, 이런 분들 때문에 ‘확’ 깨게 됩니다. 글감도 많이 제공해 주고, 아무튼 좋은 벗이자 주 안의 한 가족입니다.

그분의 글을 보면서 고전적이면서도 유치찬란한 주제인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생각해 봅니다. 신앙은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밀양」에도 전도하는 분이 그러지요. 하나님의 은총은 마치 태양빛과 같다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없다고 부인할 수 없이 명백히 존재한다고. 그러자 신애가 말하지요. ‘그것은 그냥 햇빛이에요.’ 과학 절대 만능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생각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비단 우리 당대의 사람들만의 행태는 아닙니다. 모든 신들의 형상을 갖고 있던 로마 시대에 하나님을 그 어떤 모양으로 만들기를 거부했던 그리스도인들을 지금 들어보면 참 아이러니한 비판인데, ‘무신론자’라고 했습니다. 신이라 할지라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머리로 계산할 수 있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만을 이야기하니 실로 희한한 무리였던 게지요.

신집사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법관답게, 지식인답게 눈에 보이는 것 밖의 세계에 머리를 갸우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인 멜 테리의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을 소개받은 한 분이 그분에게도 권했던 모양입니다. 대충 내용을 들은 신 판사님 말이 “그럼 신문 기사로 나왔겠네요?” 하더라나요. 사회적으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것만을 인정하려는 계몽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신문에 나온다고 공인된 사실이 되는 것 아닌데도 말입니다.

사실 신앙과 이성의 문제는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성이 제 아무리 발달해도, 이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판단할 깜냥이 아닙니다. 이성은 이성 자신에 대해서도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그걸 이성의 언어로 말하면 이성도 비이성적이고, 종교의 언어로 말하면 이성도 신앙적입니다. 하여 신앙도 이성적이고, 이성 또한 신앙적입니다. 그래서 칸트라는 철학자는 이성이 자기의 분수와 한계를 알아야 한다고 책을 썼는데, 「순수이성비판」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오래 된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이 “나는 알기 위해 믿는다”(credo ut intelligam)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면, 믿지 않고서는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믿어야 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지식, 심지어 과학도 교사와 학교, 교과서의 권위에 의거해 먼저 믿고 이해합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고서는 과학을 배울 수 없습니다.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것도, 이성적으로만 믿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에 어느 정도 이성적인 요소가 있고, 맹목적인 측면도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지식이나 앎도 믿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판단하지 말고 믿으세요’라는 말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입니다. 유한한 인간의 생각 틀 안에 무한한 하나님의 생각을 끼워 넣으려고 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하나님이 당신 크기로 밖에 안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것 밖에 안 된다고 착각하지는 마세요.

베뢰아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받은 말씀을 조사했습니다. 예수 이야기가 구약에서 약속한 그 메시아인지를 연구했다는 것이고, 바울의 설교대로 살아보아서 말씀의 진실성 여부를 검증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영이라도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요1 4:7). 그러니 믿지 않고 있다면 판단하려들지 말고 그냥 믿으세요. 그리고 한 마디 더하면, “신집사님, 믿었으니 판단해 보세요, 가차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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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목사] 판단하지 말고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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