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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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이 시작되면 어디에서도 성탄 케롤송이 들리는 세월이 있었다. 어쩌면 이젠 그 세월은 점점 추억이 되는 듯해서 씁쓸하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그 성탄절이 되면 나눔과 사랑의 따뜻함을 마음에 담는 행복함이 있었다. TV도 라디오도 안방에 전달하는 뉴스는 희망과 감동의 따뜻함이 많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방송의 뉴스를 듣지 않는 습관이 되었다. 뉴스시간이 되면 채널을 돌려버리고 만다. 딱히 무엇 때문이라고 표현할 수 없지만 나만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좋은 소식이 안방에 전달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소식은 고사하고 우울하고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들만 들려오는 뉴스를 듣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을 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법조계 수장들의 샅바싸움에 진절머리가 난다. 여의도 1번지에서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노래처럼 부르는 選良들의 의식에는 국민이 없다. 거대여당은 의석수의 힘을 믿고 온갖 법들을 밀어붙이기로 통과 통과 행진을 전개한다. 야당은 골리앗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속수무책인 사울의 형국이다. 그래도 밥값은 해야겠다는 명분으로 뻔한 수가 보이는데도 헛발질만 하고 있다. 차라리 성경을 읽고 골리앗을 대하는 다윗의 전법이라도 배웠으면 좋았을법하다. 코로나19가 대구에서 확산되었을 때 정부는 병상확보와 방역체계를 완비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했지만 1년이 지난 작금의 코로나19 확산상황에서 들여다보니 말뿐이었지 준비상황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정부 여당이 젊은 의학도들의 시위에 화난다고 의사시험을 묵살시키는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정책을 보면서 작금의 코로나19 방역체계를 위한 의료진 수급의 차질은 예견된 일이었다. 민주당 정권은 초기부터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해법은 고사하고 24전 24패를 하고 국토부장관이 해임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윤모 여당의원은 위안부 할머니 생일을 앞세워 공교롭게도 자기 생일날 노마스크로 와인파티를 하여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국민은 국태민안을 기대하고 거대여당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들의 생각에는 그들만이 있지 국민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굿 뉴스는 없는가?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굿 뉴스, 가정적인 굿 뉴스, 회사, 교회 국가적인 굿 뉴스도 있다. 진정한 굿 뉴스가 무엇일까?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진정한 굿 뉴스다. 그런데 소위 내편의 뜻대로 된 내편만의 좋은 소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뻐할 굿 뉴스가 있다. 그 소식이 무엇일까? 누가복음 2:10~11절에서 그 답을 찾는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렇다. 인류에게 굿 뉴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성탄 소식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Good News, 좋은 소식이다. 왜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심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성탄이 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첫째는 ‘인카네이션’의 기쁜 소식이다.  요한복음 1:14절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뜻은 ‘인카네이션’(Incarnation) 곧 成肉身이다다. 즉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뜻이다. 그것은 낮아짐의 교훈이다. 낮아짐이 왜 좋은 소식이 되는가? 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낮아진 모습으로 섬기고 대신 죽는 사역을 통해 평화와 생명의 구원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의 진정한 의미는 계급의 차이, 빈부의 차이가 없는 예수 안에 하나됨의 일치와 연합의 아름다움이 연출되는 것에서 찾는 것이다. 그것이 굿 뉴스, 성탄의 은총이다.

 둘째는 ‘소테리아’의 기쁜 소식이다. 누가복음 2:11절의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와 마태복음 1:21절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는 말씀이 굿뉴스다. ‘구원’이란 말의 히브리어는 '예수아' 이고, 헬라어는 '소테리아'다. 곧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성탄은 구원의 좋은 소식이다. 죄에서 환난에서 질병에서 멸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성탄이 굿 뉴스다.

 셋째는 ‘임마누엘’의 기쁜소식이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1:23)”라는 뜻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과 슬픔을 당할 때도 함께 하신다. 약할 때도, 힘들 때도, 병들었을 때도, 외로울 때도 곁에 함께 계셔서 위로해 주신다. 이것이 성탄의 굿 뉴스다. 그래서 성탄의 의미는 작은자들, 곧 지금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섬김과 나눔과 사랑으로 함께하는 것이다.

 넷째는 ‘에이레네’의 기쁜 소식이다. ‘에이레네’는 ‘평화’, 히브리어는 ‘샬롬’이다. 예수님의 성탄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사람들중에 평화가 된 것이다.(눅2:14) 현대인들의 마음에 참된 평화가 없지만 그런데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마음에는 평화가 충만하다 그것이 성탄, 굿뉴스다.

 세계민족의 인종갈등, 대한민국의 남북의 갈등, 국내정치의 여당과 야당의 갈등, 사회 계층의 갈등, 기업의 노사갈등, 한국교회의 갈등, 가족갈등의 관계가 성탄의 굿 뉴스를 통하여 화해와 연합과 평화의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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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Good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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