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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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은 거제도로 교역자수련회를 간 적이 있다. 오전엔 세미나를 하고 오후엔 유람선을 타고 외도 관광을 하였다. 그런데 외도로 가는 길에 보니 푸른 남해의 바람이 만들어낸 기암절벽이 한 폭의 유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푸른 파도와 섬의 도시 거제도, 해금강과 십자동굴, 100미터가 넘는 기암절벽은 경외감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롭다. 바람의 손자국, 파도의 거친 부딪침이 최고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그 중에서도 기암절벽 끝에 서 있는 낙랑장송의 고고한 자태는 심장이 멎을 듯 벅찬 감동을 주었다. 어찌 금강산에 그런 소나무가 없고, 설악산이나 지리산에 왜 멋진 나무가 없으랴만.
 오히려 바다 한 가운데서 거친 파도와 세찬 해풍 속에서도 기어이 기암절벽에 뿌리를 박고 낙랑장송으로 서 있는 자태는 어느 나무도 따라올 수 없는 절박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것은 위태로운 절경이며 상처 난 꿈의 조각이었다. 맞다. 아, 꿈에도 상처가 있다. 꿈은 화려하고 빛나는 것만 아니다. 조개의 상처에서 흐르는 눈물이 훗날 값진 진주가 된 것처럼 상처가 나야 꿈이 꽃핀다. 모든 꿈에는 상처의 흔적이 있다.
 나에게도 상처가 있다. 나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아무도 부목사로 불러주는 교회가 없어서 교회 개척을 해야 했다. 그러나 말이 개척준비이지 거룩한(?) 백수생활을 한다는 것이 한 가정의 가정으로서 얼마나 힘든 일인가. 시간도 여유가 있고 해서 개척준비의 일환으로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하고 시험을 보았는데 하루 만에 필기와 실기 코스 모두 합격을 하였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운전면허 합격증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자랑을 했다.
 그런데 아내가 아들을 품에 안고 하는 말이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아들아, 너희 아버지가 이제 운전면허를 땄으니 택시운전이라도 해서 너를 굶기지는 않겠구나...” 그 순간 내 자신이 너무나 처량해지고 인생이 서글퍼졌다. 불타는 소명감으로 충만하였던 나에게 아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는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그 말에 오히려 더 자극을 받아 이를 악물고 결심했다. “내가 보란 듯이 이 고난을 이겨내고 승리하리라, 세상의 차별과 불가능의 벽을 넘어 반드시 꿈의 승리를 보여 주리라.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반드시 나타내 보이리라.”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돈도 없고 학벌도 없고 후원자도 없는 시골 출신의 내가 개척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묘연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평가와 잣대이지 나의 꿈의 판단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꿈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불가능과 편견을 넘어서 기적 같은 교회 부흥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상처가 있었기에 자극이 되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릴 수 있었다.
 꿈을 생각하면, 해금강의 기암절벽이 떠오른다. 천년의 바람과 파도가 스치고 간 그 상처가 눈에 선하다. 꿈에는 상처가 있다. 마치 해금강 절벽에 서 있었던 낙랑장송이 바위틈에 피어난 난초들과 더불어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하여 이런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나를 보시오. 수천 년, 수만 년 해풍에 깎이고 다듬어지며 기암절벽을 만들었지 않소.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의 고독을 누가 알아주겠소. 꿈에도 상처가 있다오. 아니, 그 잔인한 상처를 견딘 자만이 위대한 꿈의 조각을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거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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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칼럼] 꿈에도 상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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