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5(화)
 

김운성 목사.jpg

 우리가 구원을 받고 천국에 이르는 과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이르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두 가지 태도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는 <극복>이요, 하나는 <순응>이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극복했습니다. 바로 왕, 홍해, 광야의 배고픔과 추위, 아말렉 등을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응도 배워야 했습니다. 사십 년이란 광야 생활이 단축되지 않았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는 게 지루했지만, 다른 음식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동해야 했습니다. 천막을 풀고 치고, 자리를 깔고 개는 일이 끝없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지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코로나를 극복해야 합니다만, 저는 이때를 통하여 순응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전능자이시지만, 받아들일 것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베들레헴에서의 초라한 탄생, 애굽까지의 고단한 피난 생활,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 것은 성육신과 십자가를 받아들이심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만약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더라면 구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도 순응의 모델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느보산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이 세운 신상에 절하지 않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떨어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건져주시지 않아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풀부불을 받아들여 거기서 순교할 각오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강해집니다. 순응을 배우면 나중에 아무리 기도하고 노력해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을 때, 아무리 애를 써도 무너진 일을 다시 일으킬 수 없게 될 때,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게 될 때도 담담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루마니아의 살아있는 순교자인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너무도 힘든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숱한 고문과 독방 생활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할 때, 기도했습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 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아마 저보다 더 사정이 급한 형제자매들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얼마든지 더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다른 이들을 먼저 도와주시고, 제게는 나중에 천천히 오십시오.>

 순응의 믿음을 가지려면 우리 안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자신을 극복해야 합니다. 자신을 극복하면 바깥의 상황이 어떠하든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가 순응의 믿음을 거지고 견딜 수 있는 근거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지금까지 함께 계셨고, 앞으로, 영원히 함께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예 세상 자체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눈앞의 재난으로부터의 구원뿐만 아니라. 아예 재난이 없는 영원한 천국으로 부르시는 큰 구원을 주실 것입니다. 그때야말로 모든 것이 극복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의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순응의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채찍질 당한 후에 오히려 능욕당함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은 것을 기뻐했던 사도들처럼 우리도 주님 뒤를 따를 수 있습니다. 순응은 결코 패배가 아니라,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요, 진정한 극복입니다. 순응의 믿음으로 코로나19도 견디면서 새해의 여러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가길 원합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성서연구] 또 하나의 극복, 순응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