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26(금)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손원일 장로(1909-1980)는 독립투사로 유명한 손정도 목사(1872-1931)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손 목사는 정동 제일감리교회를 담임했으며, 목회와 독립투쟁을 병행했던 인물이다. 유관순 열사가 정동제일교회를 다니던 시절 담임이 바로 손정도 목사였다.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냈고 한 평생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일한 이름난 애국지사였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손원일 장로는 해군과 해병대, 군종목사 제도를 창설한 ‘해군의 아버지’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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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장로는 해방 직후 대한민국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을 창설했고, 6·25전쟁 때는 해병대를 이끌고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는 등 국난 극복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6.25 당시 소련의 막강한 지원을 받았던 북은 한국 해군이 군함도 없고, 장비가 빈약한 것을 파악하고 3.8선 뿐 아니라 후방 부산을 일거에 점령하기 위해 1천 톤급 배에 600여 명에 달하는 특수부대를 태워 38선과 바다에서 수륙양면전을 편다. 하지만 이때 우리나라에는 작은 군함 한척이 있었다. 겨우 450톤 급의 해군 최초 군함 백두산함이였다. 이 배는 손원일 해군 참모총장이 1949년 6월 군함 구입을 위해 참모총장부터 말단 수병까지 월급의 10%를 모금하고 장교와 부사관 부인들이 빨래나 바느질 삯으로 모금운동에 보태고, 병사들도 고철을 모아 어렵게 구입한 군함이었다. 이 중고 군함이 6.25때 부산의 턱밑까지 침투해 내려오던 북의 군함을 극적으로 침몰시킨 백두산함. 낙동강 전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다에서 백두산함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 손 장로는 6.25 전후 복구기에는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국군의 날, 현충일 제정, 동작동 국립현충원 및 국방대학교 건립 등 군 현대화에 앞장섰다. 그리고 초대 서독 대사를 역임하며 외교적으로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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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진해 해군호텔 JK컨벤션홀에서 손원일 선교센터 기공 예식이 거행됐다. (재)손원일선교재단과 해군,해병대교회 총회 주관으로 개회예배와 설명회, 축하행사, 시삽행사 등이 진행됐다. 개회예배에서는 군선교연합회 이사장인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원로)가 말씀을 전했고, 김덕수 장로(손원일선교재단 이사장, 예비역 해군소장)가 ‘복음화전략 및 건축계획’이라는 제목으로 손원일 선교센터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박종희 목사(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준 장로(군선교연합회 이사), 강봉식 장로(군선교연합회경남지역후원이사장)의 축사와 허성무 시장(창원시), 권오성 장로(비전2030 본부장), 최영수 장로(해군해병대복음화 후원회장)의 격려사가 있었다. 또 선교센터가 건축될 공사현장(경남 창원시 진해구 태평로)에서 시삽행사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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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일 선교센터는 해군과 해병대를 복음화와 해군산하 200여 함정에 부대교회를 운영하기 위한 소그룹 리더를 양성 할 목적으로 해군의 영적 리더십 센터가 될 예정이다. 대지 520평에 예배실, 성경공부 및 소그룹 모임, 함정요원 수련실(20명), 식당, 휴게실, 개인 기도실, 창군 기독 역사관 등 다양한 부대시설 등이 들어선다. 이달 7월 착공해 내년 6월 준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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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일 선교센터’ 경남 창원에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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