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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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00명이 넘는 낯선 예멘인들이 제주도로 입국해서 난민 신청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난민수용에 대한 찬반토론이 격렬하게 일어나는 등 때 아닌 난민문제에 휩싸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난민에 대한 거부감이 컸지만, 특별히 이들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기독교인들 중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읽으면서 올해 미라클 작전으로 아프칸에서 구출된 391명에게 정부는 난민보다는 특별공로자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난민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두루의 김진 변호사는 외교부나 법무부가 국민을 의식하여 난민이라는 단어 자체를 피하고 있어 우려된다면서 “아프간인들이 국내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부분 등에서 난민에 준하거나, 난민 지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정식 선진국 지위를 얻은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그에 걸맞은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만큼, 난민문제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

난민을 반가워하고 좋아할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많은 세금을 써야한다는 재정적인 문제뿐 아니라,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문화적 정체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염려와 아울러 외국인 범죄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사회는 난민문제가 피할 수 없는 과제임을 직시하고 오래전부터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공존하는 것을 배워왔다.

독일생활 초기에 내가 다닌 사설 어학원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다. 나는 우리 반에 서글서글해 보이는 터키인 두 명과 친하게 지내면서 집으로 식사초대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터키인이 아니라, 터키 내의 박해받는 쿠르드족이고, 그중 하나는 전쟁터에서 직접 터키군인을 죽인 전사임을 알았다. 망명자로 받아들여진 이들의 어학공부를 위해 독일정부가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 또 친하게 지낸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유고내전 때에 애인과 함께 난민으로 온 안나였다. 안나는 크로아티아계이고 그녀의 애인 사올은 보스니아계였는데, 두 사람 다 착하고 정이 많아서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고 우리 교회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이처럼 독일에는 이미 많은 난민들, 망명자들이 살고 있었다. 본래 독일은 외국인에게 친절한 민족이 아니고 외국인이 발붙이고 살기 어려운 나라임을 히틀러 나치가 증명해주었다. 19세기 후반에서야 뒤늦게 얻은 식민지들도 1차 대전의 패전으로 다 상실했기에,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식민지인들의 유입도 적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폭발적인 경제부흥의 과정에서 터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많은 노동자들을 불렀고 이들이 정착하면서 외국인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른 유의 외국인 유입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난민이었다. 그동안도 꾸준히 정치 망명자들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난민의 시작은 유고내전부터였다. 1991년부터 시작된 유고내전은 120여만 명의 난민을 만들었는데, 그 중 32만 명을 독일이 수용했다. 안나와 사올도 그들 중 하나였다. 1990년 이후 독일도 통일로 인해 많은 재정적인 부담을 겪고 있었지만, 국제적인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이것은 정부만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라, 국민들의 합의가 뒷받침 되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특별히 독일개신교회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교회는 삶의 터전을 잃고 오갈 데 없었던 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이것을 실천하는데 앞장 선 것이다. 난민문제를 앞으로 좀 더 다루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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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난민의 나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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