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군산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때 당시 저의 모교는 전라북도에서 떠오르는 명문학교였습니다. 우리 동문들 중에는 국회의원을 비롯해서 유명 법조인, 중앙부처 공무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동창생들이 졸업 40주년 기념 행사를 하는데, 축사자 두 명을 선정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탤런트 김응수씨 이고 또 한 사람은 저입니다.
그런데 그 날이 마침 토요일입니다. 그날 오후에 최남수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의정부광명교회에서 고등학교 동창이 장로 장립을 받는데 저에게 예배 설교를 해 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그곳에 가게 되면 설교 끝나고 바로 군산으로 가야 합니다. 또 다음날 이 주일인데, 토요일 오후에 군산을 다녀 오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런데 저에게 동문회 축사를 미리 써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가는 게 무리수인데도 40 년 전 까까머리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낸 축사를 써서 보냈는데 일부만 소개 하겠습니다. “(상략)... 모교 2학년 시절,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할 때 저는 사감 선생님께 매를 맞으면서도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뭘 알았겠습니까? 그냥 예쁜 여학생들 만나러 간 것이죠.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목사가 되어 버렸네요. 목사도 그냥 목사가 아니라 맨손으로 개척해서 대형교회를 이룬 목사요, 교단의 총회장,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대표회장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상에서부터 각국의 많은 정상들을 만나봤는데, 결국 인생이란 다 바람처럼, 강물처럼 지나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인생을 계절로 비유한다면 가을의 어디쯤에 와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권우열씨가 쓴 ‘청춘일 때는 단풍 들지 않는다’는 책처럼 우리의 마음이 청춘으로 있는 한, 우리 삶의 잎사귀는 언제나 햇빛 찬란한 푸른 잎사귀로 빛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육체는 분명히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될 때가 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님을 만나도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그래서 저는 영생을 이야기하고 천국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한 친구요, 동문으로서 애틋한 마음을 갖고 제가 만난 예수님을 믿고 함께 영원한 천국에 같이 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온 천하에 생명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동문들이여, 100세 시대라는데, 이 땅에서도 건강 장수하시고 천국에서 영원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친구들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그날, 친구들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까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저는 목회 하느라 한 번도 동창 모임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재경동문회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모임을 꼭 금요일 저녁에 하니 철야기도 때문에 못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도들에게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저의 작년 사진과 지금 사진을 보면 4-5년 정도 차이가 납니다. 작년의 동영상과 사진을 보면 진짜 40후반이나 50초반 같습니다.
진짜 1년 만에 폭삭 늙어 버렸습니다. 왜 늙었냐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예배 회복, 반기독교 악법 저지, 생태계 보호, 연합사역 등을 하느라 제 힘과 에너지를 너무 쏟아 버린 것입니다. 오죽하면 제가 서재에서 교회 본당으로 내려가는 길에 낙엽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네 모양이나 내 모양이나 어쩌면 그렇게 똑같으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권우열씨가 쓴 ‘청춘일 때는 단풍 들지 않는다’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맞아, 지금도 내 마음은 영원한 청춘이다. 광주신학교를 다니던 때의 청춘, 백암교회를 개척하던 청춘은 아직도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니, 고등학교를 다니던 까까머리 소년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저는 누가 봐도 인생의 계절로 보면 가을이고 나무 잎사귀로 보면 낙엽은 아니지만 단풍 초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까까머리 청소년, 광주신학교와 백암교회, 가락동 개척시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폭풍의 질주를 하던 청춘은 내 안에 빛바랜 추억의 앨범이 아닌 여전히 눈부신 동영상으로 쉬지 않고 비춰지고 있습니다. 청춘은 단풍 들지 않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