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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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학수능시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관한 논란에 관한 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수험생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대상으로 제기한 정답결정취소소송에서 법원은 원고승소판결을 내렸고 이에 따라 평가원은 해당 문항을 ‘정답 없음’으로 정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험생 일부가 동 문제를 직접 번역해서 세계적인 권위자에게 보냈고, 이 분야의 석학 중 한 사람인 스탠포드 대학의 조나단 프리처드(Jonathan Pritchard) 교수가 이에 반응하여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문구를 남겨서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집단유전학, 대학입학시험, 수학적 역설(paradox), 법원의 가처분명령.. 이 문제가 우리 과학자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웠다.. 고등학교 시험에서 이렇게 어려운(hard) 문제가 출제된다는 점이 매우 놀랍고 인상적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토록 범세계적으로 똑똑해졌나 싶어서 뿌듯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대학교수마저 고개를 흔들 정도의 문제가 도대체 왜 대입시험에 나오는지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알고 보니 해당 과목은 의대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선택하기 때문에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그처럼 터무니없이 어려운 문제들이 곧잘 출제되곤 한답니다. 하지만 다른 과목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이미 나타났습니다. 인기 동영상 가운데 ‘한국 수능영어 풀어보기’라는 계정을 찾아보십시오. 영국인이나 미국인 학생들은 물론 성인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들마저 쩔쩔매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학문의 수준이 높아지는 일은 대단히 고무적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정과 형평’은 어느 정도 지켜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은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해서는 집중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은 물론 고교 교과 내용을 넘어서는 수준의 학습을 어느 정도는 받아야 합니다. 최근 공개된 한국장학재단 자료에 따르면 전국 39개교 의대 신입생 중 80.6%가 국가장학금 수혜대상에서 제외되는 소득 상위 20%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로스쿨’로 알려진 법학전문대학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말합니다. “개천에서 나는 용(개천용)은 이제 없다!”

바야흐로 대선이라고 하는 광풍이 휘몰아치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개천용”이 뜨거운 화두(話頭)가 되었습니다. 야권의 대통령 후보 선거전에 나왔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서민 자제가 공부만 열심히 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 스펙사회를 실력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 국립외교원 등 음서제도를 폐지하고 사법시험 등 고시도 부활시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당사자 자신이 바로 전형적인 “개천용”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과감한 선언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측면에서는 현재 여당 대통령 후보도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합니다. 안동 화전민 가정 출신인 그는 ‘흙수저 비주류’를 자칭하며 더 많은 “개천용”들이 우리 사회에서 배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일각에서는 “개천용”을 ‘철 지난 감성팔이’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타당한 측면이 있는 지적입니다. 국민의 대표는 철저하게 비전과 정책 위주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일종의 개천용처럼 이 땅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도 마땅히 주를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규모 있는 교회일수록 개천용 출신을 지도자로 받들 수는 없을까요? 보잘 것 없는 개천들만 골라가며 살펴서 그곳으로부터 숱한 인재들을 키워내는 일에 전력을 쏟을 수는 없는 걸까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가장 낮은 자가 가장 높은 자가 되고 높은 줄 알았던 자는 낮은 자임을 퍼뜩 깨닫는 그런 교회들이 될 수는 없는 걸까요? 권정생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니다. 벌써 기독교는 망해버렸고 죽어버렸다. 지금 우리가 거대하게 지어놓고 모이고 있는 교회는 망한 교회, 죽은 교회다. 오직 물질과 현실의 성공만이 있는 썩은 교회다.”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요즘 교회는 주가로 치면 바닥을 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낮아지지 못하니 주께서 강제적으로 낮아지게 하셨습니다. 다시 비상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우리는 더 낮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낮은 자와 함께 하고, 낮은 곳으로 임하는 낮은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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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개천용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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