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2(금)
 

홍융희 목사.jpg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저희 집은 꽃을 파는 꽃집이었습니다. 장미와 튤립, 아네모네, 프리지아, 백합... 학교 다녀오는 길에 가게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면 좁은 길 양쪽으로 형형색색의 꽃들이 온통 가득했습니다. 천장에는 색색의 리본이 다발로 매달려 있고 여기저기 바구니와 스티로폼이 쌓여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꽃집은 기본적인 꽃다발과 꽃바구니 뿐 아니라 결혼식 부케도 잘 만든다고 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집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아버지가 손수 만드신 신부용 결혼사진에 쓰이는 부케를 선전하는 어린이 부케 모델이 되었습니다. 모델은 튀어야 눈에 띈다며 초등학교 1학년짜리였던 제게 당시 흔치 않던 파마까지 해주셨던 아버지의 센스가 인정을 받았는지 부케는 찾는 이들이 참 많았고 꽃집은 나날이 번창했습니다. 하지만 한참 잘 되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나라에서 꽃집을 사치산업으로 지정해서 금지시키는 정책을 펴는 바람에 운영이 잘 되던 꽃집은 하루 아침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술을 드시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모아놓았던 돈도 모두 떨어지자 아버지는 당시 건설붐이 일던 중동의 리비아라는 나라로 돈을 벌러 가셨고 어머니는 조그마한 옷가게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이사를 다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 집에서 정이 좀 들라치면 또 이사를 가고, 그 동네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또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형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또 큰 길을 넘어 옆 동네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한 살 차이인 형과 제가 다른 초등학교를 들어가게 된 것은 지금까지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가난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살아가던 시절, 저는 집에 텔레비전도 없어서 길거리에 나와 혼자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던 날이 많았습니다. 그 날도 지나가는 개미떼를 지켜보며 여름방학의 오후를 보내고 있던 제가 삐에로 선생님의 북소리를 따라서 교회 여름성경학교에 가게 된 것은 어찌보면 기가 막힌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노방전도의 열매로 나가게 된 교회학교는 제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잘 해야 칭찬을 받지만 교회는 나오기만 해도 착한 어린이였습니다. 성적을 매기는 것도 아니고 집이 얼마나 잘 사는지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부장님은 못난 모습 투성이인 저를 늘상 예쁘다, 예쁘다 하시며 반겨 주셨고, 선생님들은 항상 맛있는 간식을 두둑이 챙겨주셨습니다. 이런 넉넉한 사랑은 저의 마음을 완전히 교회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때 제가 처음 나갔던 교회는 서울 후암동에 자리한 통합측 서울서노회 소속의 염천교회였습니다. 당시 염천교회의 아동부를 담당하시던 이춘수 전도사님은 훤칠한 키에 늘 호탕한 웃음으로 우리들을 무장 해제시키던 최고 멋쟁이셨습니다. 이춘수 전도사님은 후에 목사 안수를 받고 평택 동산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하시면서 동산교회를 경기지역의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키우셨고 은퇴 후에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큰 본을 보이시는 존경받는 사역자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처음 나간 교회에서 그런 훌륭한 전도사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전도사님은 설교시간마다 우리의 현실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에 대해서 늘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부족한 내 모습을 보고 실망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높여주시고 멋지게 사용하실 그 모습을 그려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부터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남들도 우리를 귀하게 여겨줄 거라고, 그러니 힘을 내라고, 어깨를 펴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저희들이 들으면서 다 이해는 못했지만 그래도 참 좋은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기죽지 말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늘 몇 번씩 하며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집에 가면 늘 춥고 배가 고픈 현실이 변함없이 저를 기다렸지만 그래도 교회만 오면 어린 제 어깨를 하나님이 꼭 붙잡아주시는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저를 다니엘처럼, 요셉처럼 멋지게 사용해주실 거라는 영화 같은 미래가 그려졌습니다. 오늘까지 다음세대 사역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그때 그 어린 시절, 저의 가난을 이기게 해준 복음, 바로 그 능력과 감격 때문일 것입니다. 저처럼 초라한 아이까지도 품어주셨던 전도사님의 품을 통해 만난 하나님의 사랑을 저도 분홍목사로서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언제까지나 힘차게 전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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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최고의 전도사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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