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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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 올림픽을 했다. 쇼트트랙에서 심판 판정의 문제로 모두들 한 소리를 한다. 간혹 심판은 선수들에게 오판을 내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오판하지 않는다.

 

목회에 성공과 실패를 나눌 수 있는 지점이 없지만, 가끔씩 난 과연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고 있는 ‘하나님 중심의 목회’를 잘하고 있는지 고민할 때가 있다.

물론, 오롯이 혼자 갈등을 하며 그 답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도 없지만 가끔은 스스로 나의 목회를 판단하며 괜스레 기분이 좋지 않기도 한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지금보다 더 잘하고픈 마음이 들고, 나의 약점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서 야박한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도 한다.

이런 나의 생각과 평가가 올바른 것일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역시 마음 한편에는 하나님의 평가가 바른 평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 사람은 나의 목회를 성도를 모은 숫자로 평가한다. 세상 사람은 나의 목회를 교회당 건축 크기로 평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다르다.

 

예레미야의 목회는 성공 했을까?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망해가는 나라를 바꾸지도 못하고 부흥시키지도 못했고 회복시키지도 못했다. 백성들, 지도자들을 회개시키지도 못했다. 오히려 자기의 설교 때문에 감옥에 갇혔고 포로로 잡혀갔다. 이쯤되면 실패 아닌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레미야를 실패자로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신실한 주의 종으로 여긴다. 결과가 없는데도 말이다.

 

모세는 과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는가? 비스가산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모세가 실패한 인생인가? 그렇지 않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결코 그를 실패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일까?

평가 기준이 세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모세는 자신의 사명대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꾸준히 인도하였기 때문에 성공한 삶이다. 그 힘든 광야 길을, 모래 바람 속에서, 모진 원망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이 성공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평가했다.

 

엘리야는 성공했을까? 엘리야는 불을 땅에 끌어내기도 한 능력의 선지자이지만 한 사람을 변화, 회개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실패자인가? 아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나타날 때 모세와 함께 보인 사람이 바로 엘리야이다.

 

비록 나의 세상적인 비전과 꿈은 좌절되어도 오히려 나를 변화시키고 자금도 사용하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다. 주님은 나의 작은 신음에 지금도 반응하고 계시지 않는가?

오늘도 말없이 주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오늘도 변함없이 주인공이 아닌 단역 배우라도 감당하며 사용되는 것, 쓰임 받는 것이 감사 아닌가?

영화의 주인공만 있다면 영화가 되겠는가? 많은 단역 배우와 엑스트라들이 함께 힘을 모으기에 영화가 만들어진다.

나는 인생의 영화에서 단역 배우이지만 혹은 엑스트라지만 나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나의 인생을 성공이라 부른다. 하나님은 지금도 날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오늘도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해 주어서 고마워!”

“오늘도 묵묵히 그 사역을 통해 나를 찾아 주어서 고마워!”

 

지금도 갈등하는 목회자를 향한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의 음성이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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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나의 목회 평가를 주님께 맡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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