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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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인이 집무실과 거처를 기존의 청와대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겠다고 발표하고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쟁이 야기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 지역이 우여곡절 끝에 “용산”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용산”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적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비교적 최근인 2009년에 일어났던 이른바 “용산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동반했던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억을 회피하고 싶어 합니다. 현재 각종 미디어에서 용산을 엄청나게 언급하지만 그때 일만큼은 거론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까? 하지만 당시 희생자의 가족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내 시계는 2009년 1월 20일에 멈췄다”고 할 만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입니다(고 양회성 씨의 부인 김영덕 씨의 말, 2019. 1. 20, 중앙일보). 푸코(Foucault)는 이런 경우를 ‘대항기억(counter-memory)’이라고 불렀습니다. 권력의 중심이 용산으로 이동한다면 역사에서조차 소외되어 가는 이런 존재들이 다시 주체성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편 용산 이전과 관련해서 당선인이 던진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슨 의미로 썼는지 알 길이 없으나, 이를 각각 건축의 측면이나 전통 사상의 맥락 혹은 공간과 마음의 상호작용에 관한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가지만은 분명합니다.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결코 경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분야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앙리 르페브르(Henry Lefebvre, 1901-1991)입니다. 그는 일찍부터 “공간”을 중시하여 현대사회는 공간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독특한 공간 구조(공간의 재현) 안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공간에 적응하거나 저항한다(재현된 공간)고 보았습니다(『공간의 생산』). 용산에 존재했던(하는) 군사기지와 빈민촌을 생각해 보십시오. 각각의 공간에 적응한 사람들도 있었던 반면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공간의 실천”을 통해 용산에는 눈물과 이윤과 축제와 비극이 교차해 왔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용산이 새로운 화해 공간으로 부활하기를 바랍니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국가 안보나 국민 소통의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용산과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 관심사는 오로지 한 곳에 몰려 있는 듯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 일간지가 내보낸 기사를 보십시오(매일경제, 4. 1).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서는.. 부동산 투자 가치도 올라가지 않을까요. 핵심 개발 프로젝트를 비롯해 재건축, 리모델링 사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됩니다”(서울 용산구 이촌동 주민 A씨), “아무래도 대통령 안보, 경호 문제로.. 청와대 주변처럼 용산도 부동산 개발 사업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됩니다”(원효로 B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그야말로 권력이 아니라 재산이 문제입니다! 십여 년 전 용산의 비극도 같은 원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빈곤에 저항하는 그리스도교”의 저자 탁장한은 용산의 ‘쪽방촌’ 같은 낙후 지역을 “역유토피아(Dystopia)”라 부르고 이를 둘러싼 재개발이 초래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원주민추방)”이 용산 비극의 주범이라는 취지의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제는 용산이 욕심을 못 박는 땅, 그래서 무욕의 십자가와 같은 상징적인 땅으로 부활하기를 원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 동안 현대의 도시는 “시민에게 도시를” 혹은 “인간과 함께 하는 도시”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1960년대 자동차가 지배하는 미국의 도로를 보고 충격 받은 콜롬비아의 한 청년이 시작한 운동이 “자전거도로(Ciclovia)”를 만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도로를 자동차와 자전거가 공유(share)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그 표지판 모양이 화살(arrow)을 닮았다 해서 미국의 덴버 시는 이를 “셰로우(Sharrow)”라 부르고 있습니다. “자동차 없는 도시(Carfree Cities)”를 주창하던 사람(J. H. Crawford)의 꿈은 오늘날 많은 곳에 “차 없는 도로”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도로를 일종의 ‘공유 공간’으로 만들어서 자동차와 자전거와 보행자와 동물(시낸스로프)까지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도로를 만들자는 시도가 생겨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모두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일체의 신호나 표지를 두지 않는다 해서 “아무것도 없는 도로(Naked Street)”라 하고, 이런 도로가 있는 곳을 “공간 공유 마을(Shared Space Village)”이라 부르기도 합니다(『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금번 “용산 이전”은 대단한 결단과 엄청난 역량이 필요한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용산이 부디 ‘시민과 인간의 도시’로 부활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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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용산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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