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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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기 부산에서 체류하는 기간 이승만은 주로 미8군 교회당으로 가 예배를 드렸으나, 감리교도였던 그는 보수감리교회당에서 예배드린 일도 있고 부산 초량교회에서 예배드린 일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지적했지만 한 가지 정리해 둘 것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화(戰禍)에 지친 피난민들을 만나고 격려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양성봉 경남지사의 건의에 따라 1951년 4월 마지막 주일인 29일 주일 낮 예배 때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 위치한 초량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양성봉 장로는 이 교회 시무 장로였기에 대통령을 초량교회로 모시고 온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 난을 통해 이미 소개한 바 있다.

 이날 한상동 목사는 신명기 11장 1절에서 9절까지 긴 본문을 읽었다.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 너희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이 모든 큰일을 너희의 눈으로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이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한상동 목사가 즐겨 봉독하던 본문이었다. 이 본문을 읽은 후 한상동 목사는 하나님 여호와의 법도와 규례를 지킬 때 축복을 받고 나라가 강성해지며 전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내용으로 설교했다. 설교 후 3장 찬송을 불렀다. “이 천지간 만물들아 복 주시는 주 여호와 전능 성부성자 성령 찬송하고 찬송하세.”라는 가사였다. 이어 담임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폐했다.

 예배를 폐한 후 이 대통령은 담임목사의 안내를 따라 인사하게 되었는데, 그가 강단으로 올라가려 하자 한상동 목사는 ‘아래 강단에서 인사하십시오.’라고 하여 대통령은 강단에 서지 못하고 강단 아래에서 인사했다고 알려져 있고, 이 일을 두고 한상동 목사는 대통령이라 할찌라도 강단에 세우지 않았던, 그래서 강단의 권위를 지켰던 목사로 널리 회자 되었다. 이 일은 한상동 목사의 미담으로 알려져 부흥사들의 예화로 원용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것이 사실일까? 이 점을 심각한 왜곡으로 본 이가 초량교회 김성태(金性太) 장로였다. 1905년 7월 29일 경남 충무의 문화동 80번지에서 출생하신 김성태 장로는 교회 인근의 부산 초량동 824번지로 이주하셨고, 1947년 2월 25일에는 일신여학교 출신인 구소명(具小命) 여사와 혼인했다. 그의 가족은 오랫동안 초량교회에 출석했는데, 특히 이승만 대통령의 초량교회 예배 참석시의 목격자였다. 그는 그때의 광경을 이렇게 기술했다. “한상동 목사는 종전과 같이 하나님의 장중에 든 군의 필승을 역설, 강조하였고, 이날 부른 찬송가는 필승과 북진통일을 염원하는 삼천만 겨레의 우렁찬 합창곡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는, 이승만 대통령을 한상동 목사가 강단에 세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 스스로 강단에 서지 않고 아래 강단에서 인사했다고 말한다. 한상동 목사는 이 대통령에게 강단에서 인사하도록 말했으나 이 대통령이 강단은 목회자가 서는 곳인데 감히 내가 설 수 없다며 사양하고 스스로 아래 강단에서 인사했다고 증언한다. 도서출판 광야를 운영하던 최수경 사장은 ‘한상동 목사의 생애와 신앙’에 대한 책을 편집하면서 『초량교회 80년사』를 집필했던 김성태 장로의 한상동 목사 관련 글을 전재(轉載)하기 위해 1986년 초에 김성태 장로를 만났을 때 그가 이 점을 증언한 것이다. 그는 최수경 사장에게 이렇게 증언했다.

 

“이 대통령은 미8군 군인교회 예배에 참석하시는 것이 상례였으나 종종 우리교회에 오셨지요. 당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6.25 동란이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맞아 통회와 승리를 구하는 애끓는 기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이 대통령께서 예배가 끝나고 자기 심중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한 목사님은 강대상에 이 대통령을 모시려고 하셨지요. 이때 대통령은, ‘주의 종이 말씀을 전하는 강단에 감히 설 수 없다’고 사양하여, 강단 아래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목사님이 강단에 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왜곡된 사실입니다.”

 당시 상황에 대한 목격자인 김성태 장로의 증언은 신뢰할 만하고, 그의 영애인 김성로 교수의 증언에 의하면 김 장로는 소천하기까지 기억력이 흐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김성태 장로는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일생동안 가르쳤던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신앙과 학자적 양심으로 사실을 증언함으로 왜곡을 바로잡으려고 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소소한 일화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진실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이런 점에서 로마인들은 “진실은 모든 것을 이긴다.”(Omnia vincit veritas)라고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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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한상동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을 강단 아래에서 인사하게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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