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황동한 목사.jpg

젊은 20대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십대 사역에 뛰어 들었고, 벌써 35년이 지났다. 35년이 지난 지금 가끔 난 내가 사업을 하고 있는지 사역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물을 때가 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열심히 사역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그러면서 다시 되묻는다.

“나는 청소년 사업을 하고 있나? 사역을 하고 있나?”

사업과 사역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업은 인간이 뜻을 갖고, 인간이 계획을 세우고, 인간의 노력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고, 사역은 하나님이 뜻을 세우고, 하나님이 인도하고, 하나님이 통치하며 인간이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사업과 사역의 의미가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체이다.

“일의 주체가 누구인가?”

사역을 하려고 할 때, 나의 죄성 때문에 사업을 하기도 했고, 사업을 하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사역의 중심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35년 간 부단히도 많은 노력을 해왔던 것 같다. 사업이 아닌 사역을 하고 싶어서… 진정한 사역자가 되고 싶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진정한 사역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쳤던 나의 작은 깨달음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나의 계획, 나의 뜻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 말이 쉬우면서도 어렵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지성과 경험을 사용하신다. 하지만 진정한 사역 속에서는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기 원하셨다. 이 한 문장을 깨닫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

둘째, 하나님과의 동행이 참 사역이 된다.

내 뜻이 얼마나 앞섰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이 얼마나 원했는가? 청소년의 우울, 청소년의 변화, 모두 좋다. 그러나 난 항상 주님보다 먼저였다.

셋째, 주님이 앞서고 난 동역할 때, 열매가 나타난다.

어떤 때는 그렇게 열심히 사업해도 열매가 없었다. 어느 때는 그렇게 내려놓아도 주님이 일하심에 열매가 풍성했다. 먼저, 과거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했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보아야 사역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교회를 예로 들어보자.

북한의 경우, 1907년에 평양 대부흥을 주셨다. 그러나 공산 정권으로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함께 우상이 득세했다. 누가 더 강한 우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고난의 행군을 통해 우상을 무너뜨렸다. 지금 북한은 하나님이 새롭게 일하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지하 속에서 순수성을 가진 성도를 세우며 다시 영혼을 살리고 계신다.

남한의 경우, 경제 부흥과 동시에 교회 부흥을 주셨다. 세계 10대 교회가 한국이 있을 정도로 한국 교회는 큰 부흥을 경험했다. 그러나 세속화로 인해 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하나님은 남한 교회에 남긴 순수한 사역자를 세우고, 찾아내고, 훈련시키고 있다.

나는 과연 교회 사업가인가? 교회 사역자인가?

말은 교회 사역자, 청소년 사역자라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청소년 사업가로 변질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십대의벗을 하다 20년 전부터 다음세대를 외쳤지만 지금까지 변한 것은 없다. 교회마다 다음세대란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16년 전에 개척을 했고, 교회를 통해 다음세대를 회복이라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만, 이 사역을 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 다음세대를 위해 주님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한국 교회의 청소년 사역자들이여! 같이 고민합시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목회자칼럼] 35년이 지난 지금, 난 사업가인가? 사역자인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