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0-05(수)
 


소강석 목사 복사.jpg

저는 우리 교회 건물을 준공한 이후부터 교회 안에 있는 서재 안 방에서 거해 왔습니다. 저희 집이 이사한 지도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 방은 동굴과 같습니다. 창문이 두 개가 있는데 둘 다 이중창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어지간한 천둥이 쳐도 천둥소리가 안 들릴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화장실 쪽에 있는 창문을 열어놓으면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반대쪽을 열면 환풍기가 있어 지하에서 뽑아 올린 좋지 않은 공기가 제 방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문을 닫고 환풍기로 강제 통풍을 시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끔 본당으로 가는 통로 쪽에 작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글을 쓰고 설교를 준비할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창문을 열면 뒷산의 맑은 공기가 그대로 들어오고 새 소리와 매미 소리도 들립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곳에서 여름수련회에서 할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요란하게 “웨엥~~”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밖을 보니 누군가가 교회 벽 위에서 잔디를 깎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히 비서까지 불러서 둘이 함께 소리를 쳤습니다. 그 이유는, 조금만 있으면 들꽃이 만발해 있는 곳까지 다 깎아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청을 다해 둘이 소리를 질렀더니 그제야 저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서부터는 풀을 깎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저렇게 예쁘게 피어있는 꽃들을 어떻게 잘라내려고 하십니까?” “저야 교회 요청에 따라 시킨 대로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담임목사이니까 제 말을 따라 주시면 고맙겠어요”. 그렇게 해서 다행히 들꽃들이 피어있는 곳은 깎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교회 담 위에 피어있는 꽃들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하얀 꽃이지만 손톱만 하게 피어있는 꽃이었거든요. 그러나 저 꽃들도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겠습니까? 그런데 애처롭게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들을 제초기로 깎아버리면 얼마나 무참하게 쓰러져버리겠습니까? 꽃이란 유명하고 화사한 꽃만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이름 모를 들꽃이라 하더라도 꽃망울을 여는 순간 그리움이 되고 연인이 되는 것입니다. 연모함을 찬사하는 사랑이 되고 순결한 고백과 같은 존재이지요. 그러니까 꽃은 바라보기만 해도 애처롭거나 행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저에게 사랑의 손짓을 하는 모습과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며칠 후 다시 와서 보니까 꽃은 어엿하게 서 있습니다. 아주 작은 꽃이지만 그 난폭한 여름의 폭우를 맞고도 끝까지 고고하고 순결한 자태로 서 있었습니다. 물론 얼마 있으면 저 꽃도 지게 되겠죠. 하지만, 아직은 곱고 순결한 자태로 오롯이 서 있었습니다. 저 손톱만 한 하얀 꽃을 보노라니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담벼락에 올라 깎여지지 않은 들꽃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리고 여린 개망초 꽃이었습니다. 이름 모를 작은 들꽃도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꽃들이 흔들리며 저에게 이런 소리 없는 외침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 때문에 무참히 꺾이지 않고 이렇게 작지만 지금까지 순결한 모습으로 피어있습니다.” 저 여리고 한없이 부드러운 꽃을 꺾지 못하게 한 것이 무척이나 다행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문득, 밤에 별빛을 사모하는 마음처럼, 아니 그 마음이 꽃잎에 어리는 듯했습니다. 갑자기 낮은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르고파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지구촌 속에 저 역시 너무나 작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동안 이름 모를 저 들꽃처럼 바람이 불면 흔들리다가 아침이면 이슬 한 모금 축이며 저녁이 올 때까지는 작은 향기라도 풍겨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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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칼럼] “낮은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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