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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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중 유대인 군목이 참전했고, 그 유대인이 부산에 왔고 일시 부산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과 유대인, 혹은 한국에서의 유대인의 존재는 흔치 않았다. 유대인 군목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국에 온 유대인 몇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에 온 첫 유대인은 오페르트였다. ‘오페르트도굴 사건’으로 알려진 에른스트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 1832-1903)는 독일계 유대인이었다.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유대인 상인이었던 오페르트는 1868년(고종 5년) 홍콩으로 건너가 사업을 하던 중 사업이 어렵게 되자 조선으로 관심을 돌리고 1866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에 통상을 요청했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상하이 미국 영사관에 근무한 바 있는 미국인 프레더릭 젠킨스(Frederick Henry Barry Jenkins)를 자본주로 하고, 프랑스인 선교사 페롱(Stanislas Féron, 1827-1903) 신부를 통역관으로 고용하고 차이나 호(號)에 백인 8명, 말레이인 20명, 조선 천주교도 몇 명, 청국인 승무원 약 100여 명을 태우고 상하이를 떠나 충청도 홍주목(洪州牧) 행담도(行擔島)에 와서 인접한 덕산군 가동(伽洞, 지금의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했으나 주민들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1868년의 일이었다. 이 도굴 사건의 오페르트는 우리나라에 온 첫 유대인이었다. 두 번째 우리니라에 온 유대인은 첫 개신교 선교사인 칼 귀츨라프(KarlGuetzlaff, 1803-1851)였다. 독일 루터교 배경의 화란선교회 소속 귀츨라프는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태국 중국 등에서 일했던 선교사인데, 그는 태국에서 일한 첫 개신교 선교사였다. 그가 중국에서 사역하는 기간인 1832년 7월 말 고대도에 상륙하여 최초로 한글 주기도문을 번역하였고, 한글의 우수성을 독일어와 영어로 서양에 소개했다. 또 최초로 서양 감자를 심고 재배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던 이가 귀츨라프였다.

한국에 온 3번째 유대인은 시편 번역으로 유명한 알렉산더 피터스(Alexander Albert Pieters 1871-1958)였다. 한국이름으로는 피득(彼得)으로 불렸다. 제정 러시아 시대인 1871년 우크라이나에서 정통파 유대인(Orthodox Jew)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히브리어 교육을 받고 성장하여 히브리어에 능통하였다. 그가 직장을 얻기 위해 24세 때인 1895년 일본 나가사키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화란 개혁교회의 영향을 받고 개신교도가 되었고,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한국 선교사가 되었다. 조선어를 공부한지 3년 만인 1898년 62편의 시편(저주시를 제외한)을 한글로 번역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시편촬요’였다. 우리나라 교회 역사상 최초의 구약성경 번역본이었다. 후에도 구약성경 번역에도 기여하여 최초의 구약 역본인 ‘구약젼셔(1911년)’의 출판에 도움을 주었고, 후에는 구약성경 개역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개역 구약성경(1938)’ 출간에도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다. 그가 지은 찬송이 지금의 찬송가 75장 ‘주여 우리 무리를’과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이다. 히브리어가 능통한 유대인을 통해 한국어 성경번역에 기여하게 하신 것이다. 그는 70세에 한국에서 은퇴한 이후 미국 LA 인근 파사데나 소재 은퇴 선교사 주거 시설에서 여생을 보내고 1958년 87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그곳의 공용묘지(Mountain View Cemetery)에 안장되었다.

그 외에도 한국과 유대인과의 교류가 없지 않았을 것이지만 6.25전 쟁기 정통 유대인 랍비 군목이 있었고 부산에서 활동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미군에 속했던 밀턴 로젠(Milton J. Rosen)이었다. 미국에서 군목 제도는 1775년 7월 29일 대륙의회가 군목협의회를 조직하고 미국성공회의 샤무엘 프로보스트(Samuel Provoost, 1742-1815)를 첫 군목으로 임명했는데, 이것이 군목 제도의 시작인데, 미국의 독립 이전 해였다. 유대인 랍비가 군목으로 복무하기 시작한 때는 남북전쟁기였다고 한다. 이때 유대인도 군목으로 근무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고, 여성군목과 흑인군목도 이때 처음으로 임관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거의 90년 만인 2019년부터 유대인 군목의 보무를 허락했다고 한다. 제1차 대전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을 위해 싸웠고, 수십명의 랍비들이 종군했는데, 1933년 히틀러의 집권 이후 모든 유대인들이 공공생활에서 배제되고 추방된지 90여 년 만에 다시 유대인 군목을 허용한 것이다. 배경 이야기가 길었다. 다음 호에 유대인 군목 밀턴 로젠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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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 교계: 부산에 온 유대인 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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