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7(금)
 


홍석진 목사.jpg

작년 연말 미국에서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이 개봉됩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블랙코미디 장르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별달리 재미를 보지 못한 작품이었습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방의 무명대학 천문학과 박사 과정의 디비아스키는(제니퍼 로렌스) 에베레스트 크기의 혜성을 하나 발견하는데, 궤도와 속도를 계산해보니 6개월 후 지구와 충돌할 예정입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랜들 민디 교수에게(무려 디카프리오), 박사는 정보기관과 대통령에게 그리고 나중에는 언론에까지, 이 사실을 알렸지만 재선에 목을 맨 대통령은(메릴 스티립!) 의도적으로 이들을 무시하면서 비밀리에 숨기기 바쁘고 언론도 기업도 교만과 잇속에 물들어 저마다의 이유로 진실을 외면합니다. 마침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상이 두 파의 사람들로 나뉩니다. “고개 들어”(look up)파와 “고개 들지 마(don't look up)”파로 말입니다. 누가 이겼을까요? 참고로 영화 제목은 ‘돈 룩 업’(Don't look up)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영화는 한국에서 흥행에 참패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내리고 난 후 약 6개월이 지난 현재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발단은 역시 앞선 영화가 개봉된 미국에서였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뉴욕을 방문해서 미국 대통령이 주관하는 글로벌펀드 재정회의에 참석했고, 나오는 길에 측근을 향해 무심결에 던진 한 마디가(정확하게 27글자로 이루어진 한 문장) 한 방송국 카메라에 잡히는 바람에 난리가 났습니다. 언론은 보도하고 당국은 반박하면서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여부가 전 국민의 관심사였습니다만, 며칠이 지나면서 반전이 일어나 보도자제요청을 어기면서까지 국익을 해치는 보도를 감행했다는 이유로 방송사에 대한 항의가 이어졌고 이 때문에 언론탄압 문제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말한 본인조차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이 문장의 뒷부분에 과연 현직 미합중국 대통령의 이름이 나오느냐 그렇지 않다면 일설에 따라 다른 말이 그렇게 들렸던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국 세상은 두 쪽이 나고 말았습니다. “바이든”파와 “날리면”파로 말입니다.

자, 이제 각각의 둘들을 비교하고 연결시켜 봅시다. 먼저 사실을 제기한 쪽은 “고개들어”파와 “바이든”파였고, 뒤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묵살하려고 한 쪽은 “고개들지마”파와 “날리면”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개들어-바이든”파와 “고개들지마-날리면”파의 짝을 만들어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흑백논리만으로 재단(裁斷)할 수 없는 곳이 세상입니다. “고개들어-날리면”파와 “고개들지마-바이든”파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순서대로 편의상 ‘가, 나, 다, 라’의 기호를 붙여보겠습니다. 먼저 “가”와 “나”파는 어떤 의미에서 순수한 사람들의 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이들의 입장에는 적어도 일관성이 존재합니다. 순수한 진보나 순수한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요? 다음 “다”와 “라”파는 사안마다 절묘하게 융통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볼 여지도 존재합니다. “다”와 비슷한 부류를 굳이 생각해 본다면 이른바 ‘태극기 보수’쯤 되지 않을까요? “라”와 비슷한 부류를 굳이 찾아본다면 이른바 ‘수박’쯤 되지 않을까요?

언어학자 소쉬르(1857-1913)에 따르면 기호(sign)는 기표(signifie)와 기의(signifian)의 결합입니다. 이러한 고전파 언어학에 따르면 바이든은 바이든이고 날리면은 날리면이지 바이든이 날리면이 되고 날리면이 바이든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크 데리다(1939-2004)는 이러한 구조를 “해체”(deconstuction)하면서 본질적으로 다르게 보이는 이면에도 유사한 동질성이 있다며 “차연”(defférrance) 이론을 주창하여 일대 혁신을 이뤘습니다. “차연”(差延)이란 ‘차이’와 ‘연기’를 의도적으로 합성한 개념입니다. 만일 데리다가 살아있다면 아마도 ‘조금 만 더 들어가 보면(들어 보면?) 바이든이 날리면이고 날리면이 바이든이며 바이든이든 날리면이든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 마디 날리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예수님은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그것을 사람들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눅 12:2-3) 하셨습니다. 이중으로 “감추”(칼립토)고 “숨긴”(크립토) 진실도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이제 소모적인 논쟁은 그만하고, 바이든이든 날리면이든 힘을 합쳐 산적한 현안들부터 해결해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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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바이든 고개 들어 날리면 고개 들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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