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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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熱砂)의 땅 카타르에서 열린 제22회 월드컵에는 처음부터 이변이 속출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강력한 우승후보인 아르헨티나를 개막전에서 2대 1로 격파한 경기가 그 시발점이었습니다. 며칠 후 아르헨티나는 경시할 수 없는 건넛마을의 호적수 멕시코와 일전을 치렀습니다. 이 경기에서마저 패배한다면 예선 탈락이라는 치명타를 맞을 수도 있었던 터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아르헨티나는 한 골과 도움 하나로 맹활약을 펼친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의 활약으로 이겼습니다. 그러자 당장 이런 제목의 기사가 떴습니다. “메시, 메시아가 되다”(중앙일보, 11. 28). 십여 년 전부터 이 선수는 유럽무대에 진출해서 소속팀을 우승시키고 최고선수상을 휩쓸면서 그 이름을 빗대어 “축구 메시아”라 불렸고 “메시가 곧 축구다”라거나 심지어 “메시는 예수와 축구를 하며 놀고 있다”(마라도나)는 말까지 듣곤 했습니다(시사인, 2010. 6. 10).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사상초유로 성탄절이 있는 12월까지 진행되는 바람에 “메시아”라는 말이 더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사실 “메시아”라는 말의 용례는 운동경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현대철학자들 사이에서 “메시아”는 한 세기 동안 군림하고 있는 인기 유행어에 해당합니다. 일찍이 독일의 유대 철학자 발터 벤야민(1892-1942)은 “(…) 행복의 관념 속에는 구원의 관념이 포기할 수 없게끔 함께 공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세대처럼 우리에게도 약한 메시아적 힘(schwache messianische Kraft)이 부여되어 있다”(“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중에서)라며 “메시아”라는 관념을 차용합니다. 이후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는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 것”(le messianique sans messianisme)으로 자신의 사상을 차별화해서 발표합니다. 신적인 간섭 내지 개입이 역사적 필연일 수는 없지만 메시아적 힘(운동)만은 수긍한다는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이탈리아의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역시 “메시아적 도래” 혹은 “메시아적 세계”라는 개념을 언급하는데 뜻밖에도 성경의 바울서신에서 그 근거를 도출하는 그의 사상을 “메시아 없는 메시아니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한보희). 사도 바울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도 했던 모로코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Allain Badiou) 또한 비슷한 메시아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메시아”라는 인상적인 개념을 불교계도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불교의 미륵(彌勒)이 기독교의 메시아와 같다’는 주장을 들어보셨습니까? “미륵”(彌勒)은 미륵보살이라고도 하고 미륵불이라고도 하는데, 도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도래한다는 존재라는 점에서 기독교의 메시아와 그 지위와 역할이 상당히 유사합니다. 게다가 단어 자체도 본래 같은 뿌리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자비나 우정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 ‘미트라’(Mitra)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마이트레야’(Maitrya)가 파생되었고, 이를 한자어로 번역하면 “미륵”이지만 히브리어로 번역하면서 “메시아”가 되었다고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입니다(민희식, 『법화경과 신약성서』, 42). 그러나 사실 그대로를 말하면 오히려 기독교의 메시아 개념이 불교의 미륵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해야 합니다. 하기야 주지스님이 누가 교회에 가서 이야기하고 오겠는가 하니 모두가 쭈뼛거리는 상황 속에서 동자승 하나가 손을 들고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라고 했다는 유머도 있지 않습니까?

구약성경의 앞부분부터 등장하는 ‘기름 붓다’라는 의미의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마쉬아흐’인데, 메시아라는 말은 이로부터 유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등장 시기는 불교의 미륵 사상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입니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는 기원전 5, 6세기 인물로 알려진 반면, 기름부음은 그보다 천 년 이전의 야곱(창 35:14)이나 모세의 시대에 이미 등장하고 있고(출 30:26), 그렇게 기름부음을 받은 존재인 제사장(출 30:30)이나 왕(삼상 10:1; 삼하 2:4)의 출현 또한 마찬가지로 불교의 미륵에 비해 훨씬 앞선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메시아”는 신령한 기름부음을 받을 자로 인류의 구원자요 대속자로 오실 존재로 여기게 되었고 그 표적을 이사야서(9:6)를 비롯해서 수많은 책들이 점점 더 또렷하게 예언하고 있었습니다(렘 23장, 겔 34장, 암 9장, 미 5장 등). 바로 그 진정한 메시아가 이 땅에 나신 성탄의 달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메시아 없는 메시아주의”를 지양합니다. “메시아적 세계”가 아니라 ‘메시아의 세계’를 수긍합니다. 이단에서 곧잘 도용(盜用)하듯 예수 이외에 그 누구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아니합니다. 우리의 메시아는 월드컵 우승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도탄에 빠진 이 세상 속에 참된 “평화”를 안겨다 줄 것입니다. 메시에겐 미안하지만, 오직 메시아 예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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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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