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홍석진 목사.jpg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 신 아버지가 /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시인 정지용이 쓴 <향수> 가운데 일부입니다. ‘충남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 40번지’, 시인이 태어난 생가가 있던 곳인데, 이제는 그 주소명이 ‘충남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시인의 향수는 고즈넉한 이 마을에 고스란히 내려앉게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상경해서 다닌 휘문고보가 위치했던 서울의 궁궐 서편(원서동)에서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다녔다던 도시샤(同志社)대학이 위치한 교토에서도, 시인은 게으른 듯 지즐대는 고향마을을 차마 꿈에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살았던가 봅니다.

 

오랫동안 잊혔던 시인 정지용과 그의 시가 세상 속에 꽃망울 터지듯 툭하고 등장한 때는 1989년입니다. 테너 박인수 씨와 가수 이동원 씨가 60년 이상의 세월을 묻혀 있던 동명의 가곡을 새롭게 편곡해서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가요계는 물론 문학계와 일반 세상까지 발칵 뒤집혔습니다. 클래식을 하는 동네도 마찬가지였는데, 이곳은 약간의 반전이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교수요 한국 성악계의 얼굴과도 같았던 테너 박인수는 대중가요를 부르고 활동했다는 이유로 오페라단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그는 꿋꿋하게 가는 곳마다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이 노래를 기꺼이 불렀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클래식과 가요는 물론 국악까지 조화를 이루어, 전통과 현대를 한데 어우르며 전 세계가 극찬하는 한국 음악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 출발점에 있던 박인수 씨가 지난 2월 28일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수>의 파트너였던 가수 이동원 씨는 그보다 열세 살 아래였으나 지난 2021년 11월 14일 먼저 먼 길을 떠났습니다. 암으로 투병 중이었는데, 그토록 자주 불렀던 노래의 배경과 너무나 흡사한 지리산 자락 한 마을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향수에서 이동원 씨가 담당했던 파트의 노랫말들입니다. 그는 1951년 전쟁통에 부산의 전포동, 유난히 별이 훤히 올려다 보이는 달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훗날 학교는 서울에 있는 보성고보를 다녔지만 그 역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어릴 적 도란도란 살았던 동네가 일평생 눈에 선하지 않았을까요?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옛 마을의 호젓한 굽이길 혹은 도시의 하늘 아래 어느 골목길 또는 낯선 땅을 가로지르는 강가에서 머물렀던 하숙방 어쩌면 달도 별도 곱기만 하던 동네 그 비슷한 어디쯤의 기억을 우리는 다들 가지고 있습니다. 돈도 벌고 학교도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건너간 일본 땅 나고야(名古屋, なごや)에서 종일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녹슨 군용기를 닦고 페인트칠을 하는 중노동을 감당하며 하릴없이 눈물짓던 열네 살 양금덕 소녀에게도 고향 마을 정든 집 그리운 부모형제가 꿈엔들 잊힐 리 있었을까요? 지난 삼십 년 동안 싸우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진정한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양관순’이라 불리는 올해 나이 아흔 다섯의 이 할머니를 포함해서 생존하는 몇 분 되지 않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탄식과 한숨과 절망의 시간들을 어찌 돈으로 환산해서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남화태도(사할린 남부)로 끌려가 결국 돌아오지 못한 채 죽는 날까지 ‘전남 나주군 세지면 오봉리’ 그 따뜻한 이름 속에 남겨두었던 아내와 갓난아기를 그리워하며 살았었을 김오남 씨 같은 분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정지용과 박인수와 이동원은 이제 다 떠나고 그 아련한 노래만이 남았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떠난 사람들, 지금도 향수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도 이 노래가 마음에 사무칩니다. 신령한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영원한 나그네들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간 이들이 먼저 가 기다리는 그곳,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문득 한 발 더 가까운 곳으로 느껴지는 그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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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꿈엔들 잊힐 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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