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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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을 생각하면 흔히 이신칭의 교리를 떠올립니다. 중세 교회의 율법적 공로주의에 맞서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함을 얻는 교리를 확립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진정한 주제는 교회론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종교개혁이 부패한 중세교회의 개혁을 주장하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종교개혁의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교회란 무엇인가>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진정한 교회를 드러내는 표지를 찾았는데,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제7조는 이렇습니다. <교회는 그 안에서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개혁자들은 말씀의 선포와 성례전의 집례라는 두 가지를 교회의 표지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것을 추가하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고난입니다. 루터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는 아우구스부르크의 신앙고백을 준비하면서 작성한 비망록 중에도 <교회는 복음을 위하여 박해받고 순교 당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고난 없는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고난이란 주제를 이야기하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수백 명의 성도가 있는 교회에서 교육지도사로 시작한 저의 사역은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고난이라고 할 게 없었습니다. 그저 목회자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반적인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고, 성도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니 고난을 입에 올리기도 부끄럽습니다. 그래서인지 농촌 지역의 목회자들이나 개척교회의 목회자를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분들을 만나노라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유익한 것은 고난이 부활의 전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죽지 않으셨다면, 부활도 없었습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고,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도 부활하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이라는 예고에 당황하여 가로막았는데,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훌륭한 신앙고백을 했지만, 죽음을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교회에 부임했을 때 교인 수는 184명이었습니다. 그는 교역자들과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2년 후에 교인이 6백여 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코카콜라 회사가 코카콜라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리더스 다이제스트 사가 잡지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너는 학교에서 배운 모든 술수를 쓰고 있다. 도대체 네가 하는 일들 가운데 나의 손길을 찾아보겠느냐? 너는 자라나고 있질 않다. 네 생각에 네가 교인 수를 200명에서 600명으로 늘렸다고 해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쪄 가는 것이다.>

 

우리는 살쪄서 비만해지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고난이 없이 온실의 화초처럼 약한 게 아닌가 합니다. 바울 사도는 십자가를 넘어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갈 2:20).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편안한 것을 복이라 해석하지 말고, 주님을 닮고, 주님을 따라 고난받는 것은 복으로 이해하는 한국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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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메시지] 고난, 부활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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