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1(수)
 


성상철 교수.jpg

오래전 미국에서 한 집사님께서 노래를 잘해보고자 레슨을 청하여서 가르친 적이 있다. 한두 번 정도 한 것 같은데 뭔가 표정이 이상하다. 이유인즉 레슨 두 번을 받았으니 자신이 기대한 놀라운 변화를 있어야 했는데 그것이 충족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성악이라는 예술에 대한 무지로 인한 해프닝이기는 했으나 나로서는 씁쓸했던 기억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빠른 것을 좋아한다. 나 역시 처음 미국 갔을 때를 생각하면 그들의 여유로움이 무척 답답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신앙생활 속에서도 급한 마음으로 인한 우리의 부족을 종종 보게 된다. 삶을 통하여 인내함으로 받은 주의 인도하심을 경험하였어도 늘 조급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재밌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서양에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도깨비 방망이가 있다. 어린 시절이긴 하겠으나 이것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한번쯤 상상을 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정말이라면 소원을 이루는데 참으로 좋은 도구들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서양 것 보다 우리 것이 사용하기에 훨씬 좋은 것 같다. 요술램프는 몇 가지 과정을 거치지만 도깨비 방망이는 뚝딱 두드리기만 하면 소원이 이뤄지니 말이다. 한국 사람들의 심리가 그대로 반영된 이야기다. 혹 우리가 신앙(기도)생활을 하면서 자주 겪는 일은 아닐까? 빠른 응답이 없을 때의 실망감이나 상실감으로 고민가운데 헤맬 때가 있었던 거 같다. 절박하였는데 무심하심에 분노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은 요술램프의 지니나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시다. 당연히 우리의 명령(기도)에 즉각 반응하시는 종은 더더욱 아니시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착각을 하며 살아갈 때가 많은 것 같다.

 

부활절이 지났다. 착각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묵상해 보자. 오래 참음과 기다림으로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신 주님을 다시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 공로 없이 죄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거저 주시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또 생각하기를 싫어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이 쉽지 않다면 생각하는 연습을 해서라도 날마다 생각하는, 기억하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작금의 시대를 돌아보라. 말도 안 되게 간악한 무리들이 세상을 현옥하며 어지럽히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때에 진실한 믿음의 강력한 부활의 예배(찬양)는 우리 자신을 날마다 돌아보며 끊임없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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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칼럼] 찬송(예배)하며 사는 사람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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