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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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를 하다 보면 종종 가슴 아픈 사연들을 만난다. 어제도 성도를 떠나보낸 선배 목사님의 아픈 이야기를 들으며,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오랫동안 열심히 영혼을 섬겼건만, 떠나면서는 “모두 목사님의 잘못이에요”란 원망만 돌아왔을 때 목사의 마음은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선배 목사님이 눈물을 머금고 말하는 이야기가 개척 목사는 충분히 공감이 되고 이해가 간다.

또 이렇게 목회의 한 페이지가 눈물로 쓰여진다.

 

우리의 삶은 평가를 받는다. 나 스스로에게 평가를 받기도 하고, 타인에게 평가를 받기도 한다. 또한,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직접 우리를 평가하시기도 한다.

 

먼저, 내 자신이 나를 평가할 때,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다. 때로는 교만이 또 때로는 자기연민이 나를 쉽게 유혹한다. 나의 죄와 연약함에는 한없이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는 반면 내가 타인을 평가할 때는 나에게 재던 기준과 원칙보다는 훨씬 더 엄격하게 적용한다. 내가 하면 괜찮고, 잘하며, 로맨스가 되고 타인이 하면 원망하고, 잘못하며, 스캔들이 되어 버린다. 죄인인 인간은 나를 평가할 때도 철저히 자기중심성을 고집한다. 그래서 사실 자신을 잘 보지 못하고, 평가하지 못한다.

 

둘째, 타인의 평가이다.

자신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항상 편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교사 혹은 친구 등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나를 볼 때는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본다. 타인이 오히려 나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고의 신학자, 최고의 목회자인 바울은 타인이 평가하는 것 또한 불완전하다고 한다(고전 4:3). 평가받는 것이 작은 일이라 말하면서.

 

목회자는 타인의 소리를 들을 때 수용성도 있어야하지만 동시에 맷집도 필요하다.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때는 기꺼이 미움을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예수님도 미움을 받았고, 제자들도 그러했다. 물론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맷집이 대단한 분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사도바울도 사람이기에 마찬가지이고, 목회자도 동일하게 교인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다. 그러나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를 향한 평가는 필요하지만, 불완전하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평가는 하나님의 평가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주님은 “얼마나 빨리”를 말하며 날 속도로 평가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얼마나 많이”를 말하며 날 양으로 평가하지 않으신다. 주님의 나의 삶을, 나의 삶의 방향을 인정해주시면서 그대로 평가해주신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성적은 ‘수우미양가’로 평가되었다. 그 때는 ‘수’와 ‘우’만 좋은 점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름다울)미도 나쁘지 않고. (양호할)양도 좋은 점수다. (가능할) 가는 희망을 말하기에 오히려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영혼은 오늘도 내일도 가능성을 본다.

 

요시아는 8세에 왕으로 올라 39세까지 31년 온 인생을 바쳐 종교개혁을 성실히 임했지만 므깃도에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을 보고 어떤 사람은 “허무하게 죽고, 종교개혁도 완성시키지 못했으니 무슨 의미가 있냐?”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시아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제대로 된 말씀을 가르칠 때, 그 말씀에 은혜를 입은 부모가 다니엘을 나았고, 또 에스겔이 그 시기에 태어났다. 당장은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때 태어난 다니엘과 에스겔에 의해 포로 귀환 이후 이스라엘은 성전을 다시 건축하고, 말씀을 다시 전하는 진짜 개혁을 맞이한다.

이렇게 보니, 요시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지 않는가?

 

사람은 지금 당장의 모습을 보고 평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평가는 사람과 다르다. 언약의 관점으로 얼마나 순종했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영혼을 위해 순종하며 다시 걷는다. 맷집을 기르며 동시에 순종의 자세도 다지며 역사의 주인이시자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의 평가를 기다리며 오늘도 묵묵히 이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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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목회에도 맷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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