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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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경 없는 기자회(Repoters Without Borders, RSF)가 발표한 ‘2023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180개국 중 47위였습니다. 지난해보다도 4계단 하락한 수치에 해당하지만 가장 높았을 때인 지난 2019년에도 41위에 불과했으니 크게 유의미한 결과는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결코 자랑스러워할만한 위상도 아닙니다. 티모르(10위)와 같은 태평양의 섬나라보다도, 대만(35위)과 같이 다소 권위적인 체제보다도 여전히 동떨어진 순위이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최근 언론과 관련된 기사들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한국기자협회 인용). “TV 조선 기자들, ‘언론 윤리 저버린 신동욱, 박정훈 부끄럽다”, “박민 KBS 사장, 임명동의제 무시하고 보도국장 임명 강행”, “공영방송 복구 불가능하게 만드는 게 이 정부의 목적”(2024. 1. 26). TBS 출연금 지원 중단,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연합뉴스 정부구독료 82% 삭감에 정부 지분 매각까지, 이런 흐름을 두고 정준희 교수는 현 정부의 언론관을 전근대를 넘어 초현실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언론의 자유만큼은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존중하고 보호하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금방 자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오바마 정부 시절 뉴욕포스트는 대통령을 총 맞아 죽은 침팬지로 묘사하며 경찰관 두 명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의 만평(Sean Delonas)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한 경찰관이 죽은 침팬지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다음번 경기부양법안에 서명할 누군가를 찾게 되겠군,” 읊조리는 장면을 두고 인권단체는 물론 많은 네티즌들은 인종차별적인 몰상식한 만평이라 비난하고 나섰고(Al Sharpton), 일부 시민들은 뉴욕포스트 구독중단과 광고게재 거부 운동을 전개하자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Barbara Ciara). 만평에서 침팬지가 등장한 것은 여성을 공격해 경찰에 사살된 침팬지 ‘트래비스(Travis)’가 화제였기 때문입니다. 뉴욕포스트 편집국장(Col Allan)은 “오늘자 만평은 침팬지 난동 관련 뉴스를 패러디한 것이고, 좀 더 포괄적으로는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경기부양법안 등 경제회복을 위한 정치권의 노력을 조롱한 것”이라고 해명했고, 한 칼럼니스트(Sam Stein)는 “이 만평은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여성을 공격해 사살된 침팬지같이 경기부양법안도 나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일 그와 같은 만평이 우리 언론에 등장했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을까요? 지난 2023년 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일어났던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건을 보도했던 MBC 방송국을 상대로 외교부가 제기했던 정정보도청구소송에서 법원은 방송사측이 허위보도를 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 사건 판결 확정 후 최초로 방송하는 ‘뉴스데스크’ 프로그램의 첫 머리에 진행자로 하여금 정정보도문을 통상적인 진행속도로 1회 낭독하고, 낭독하는 동안 위 정정보도문의 제목과 본문을 통상의 프로그램 자막과 같은 글자체 및 크기로 계속 표시하라”며 “이 같은 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할 때까지 하루 1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얼마 전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대통령에게 “국정기조를 달리해야 한다”며 직언하던 강성희 진보당 국회의원(전주을)을 경호원들이 강제로 제압해 입을 막고 팔다리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몰아낸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경력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고, 불순한 의도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이제 이 나라에서는 대표적인 언론이나 국회의원까지도 대통령을 비판하려면 상당한 불이익과 처벌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준 사건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 미가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던 그는 “모레셋 사람”이라 했습니다. 당시 대부분 선지자들이 사마리아나 예루살렘 등 대도시에서 활동했던 반변 미가는 시골 작은 마을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낮은 자,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지 않습니까? 미가서는 다른 어떤 선지서보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특별하기로 유명합니다. 베들레헴 탄생을 예언(5:2)한 유일무이한 성경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미가서에 유명한 구절이 하나 더 있는데,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미가에게 그랬습니다.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1:6). 그래서 그가 입을 닫았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부디 오늘 이 시대에 일종의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 하는 언론들이 두려워서 입을 닫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언론보다 더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 하는 성직자들이 두려워서 입을 닫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와 마찬가지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헌법 정치 제1장 제1조의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뿐이시라,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나니..”가 잘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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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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